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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메리 고 라운드

 

 

 

 

 

    미영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그녀가 전동 휠체어에 앉아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유영하듯 미끄러져 나아가는 그녀는 누구보다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찬란한 미소를 사람들은 경이로운 듯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가 내 앞에 멈춰 서니 왠지 모를 우쭐함까지 느껴졌다. 미영은 만나자마자 예뻐졌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제법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듣는 칭찬이 싫지 않아 미소가 절로 나왔다.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그녀가 잘 안다는 파스타 집으로 향했다. 길 양 옆에 늘어선 나무들이 내뿜는 초록빛이 내 안에 남아 있던 옅은 살얼음마저 녹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오늘이 봄의 첫 날임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우리는 소박한 식사로 온모밀을 주문했다. 테이블 위 작은 화분에는 흰 소국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딸 아이가 스파게티를 좋아해 이곳에 자주 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늘 해 오던 일상의 의식儀式인 듯 국화 앞에 코를 가까이 가져갔다. 공기 정화 기능이 있대, 그녀는 한동안 먼지와 매연으로 더럽혀진 콧속을 씻어냈다. 내 친구와 그녀의 딸아이가 마주 보고 앉아 언제까지고 작은 화분 앞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상상을 하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미영이 아이를 입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이다. 나는 친구의 딸아이가 꽤 궁금했지만,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그녀의 집을 방문할 기회를 만들지 않았다. 미영이 서운해 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밝고 명랑하며 아이 같은 순진함이 있어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지만, 그런 성격 때문에 오랫동안 공들여 이야기해보지 않으면 좀체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거듭되는 유산에도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가지려 애썼던 것, 그래서 홀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 병원 저 병원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하고 몸에 좋은 음식들만 먹으며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왔던 것, 하지만 그녀보다 더욱 순진했던 남편은 세 번의 유산이 서른 살 여자에게 준 상처와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내의 장애만을 탓하며 밖으로만 돌았다는 것 등등…. 어느 날 이혼녀로 나타난 미영은 그런 것들을 마치 진부하고 오래 된 전설처럼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나마 이혼 전에 아이를 입양하는 데 동의해준 건 정말 다행이라고, 하지만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겼으니 남편이 좀 더 믿음직한 가장 역할을 해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자기의 오산이었다고, 그녀는 단단하게 웃으며 말했다. 미영의 밝음은 아마도 선천적인 생명력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말고 오늘은 우리 집에 한 번 가 보자. 

 

  예정에 없던 일이지만, 어차피 오래도록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나는 그녀를 따라나섰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다양한 크기의 알록달록한 알이었다. 예쁘다, 개미만한 목소리를 들었는지 미영이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렸다. 그녀는 아이도 못 낳는 병신에게는 아무것도 줄 수 없다며 폭언을 퍼붓는 시어머니와 그 뒤로 숨어 있던 맥 빠진 남편에게 악착같이 위자료를 받아내 이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왔다고 했다.

 

  그 사람, 아마 무지 놀랐을 거야. 

 

  쓸쓸히 웃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도 이 친구가 악을 쓰는 모습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사실 아이 가져보겠답시고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아내를 뒤로 하고 허구한 날 여기저기 팁이나 꽂아주던 사람에게 그 정도밖에 받아내지 못한 것이 억울한 일이었다. 남편과 함께였던 시절에는 아이를 낳는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느라 다른 건 거의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의 미영은 아는 사람의 공방에서 알공예를 가르치며 바쁘게 생활해 나간다고 했다. 사회 시간에 부도를 펼쳐 놓고 ㅇ이나 ㅁ 같은 글자마다 샤프로 까만 칠을 하던 내가 선생님에게 걸려 복도에서 벌을 서고 있으면 이내 끌려나오던 어린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넌 왜 걸렸어, 라 물으면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수첩을 펼치며 자기가 그린 그림을 내게 보여주곤 했었는데….

 

  그녀가 선물이라며 크고 둥그런 조명을 건넸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이런 동글동글한 것들이 바퀴가 되어 그녀의 삶을 멈추지 않고 굴러가게 해 준 거구나. 어린 날, 나는 미영이 나중에 커서 유명한 화가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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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눈소리

 

 

 

    어릴 땐 눈이 소리 없이 내린다고 생각했다. 빗소리를 노래하는 가사는 많지만 눈이 내리는 소리를 담은 멜로디는 없었으니까. 그러고보니 사전에도 '눈소리'라는 단어는 없는 것 같다.

 

  침침한 눈으로 휴대폰 주소록을 더듬으며 하나 둘 마음을 전하다, 문득 우리가 인생의 반 하고도 열 해를 더 보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맛있는 것도 두 번 세 번 먹으면 무뎌지는 것처럼 나이도 계속 먹으니 잊게 된다. 아니면 일부러 어딘가에 던져둔 채 그 위로 눈이 소복이 쌓이기를 기다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찾지 않은 보물이 시간을 먹고 썩어버리듯, 내 나이도 세월을 먹고 어딘가에서 녹이 슬어 없어져버리길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귀 기울이지 않는 동안 소리 없이 내린 눈처럼 푸른 새벽에 후두둑 쌓여버린, 예순을 조용히 끌어안아본다. 쿵쾅, 심장 가까이에 두니 체온에 녹아 내 안으로 금세 스며든다. 아무도 듣지 않는 눈소리를 나마저 외면하면 외로워서 어쩌누…. 그렇게 생각하니 꼭 돌봐주어야 할 벗처럼 느껴져, 흰 눈송이가 된 세월과 근심이 귓등에 앉아 소근소근 속삭이는 것만 같다.

 

 

 

       to. 올 해 예순이 되신 엄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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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어느덧 어른이 된 아이의 소토리

김훈 작가는 동인문학상 수상소감에 이런 말을 남겼다.

 

"생사의 급박함을 스스로 알아서 사람 모이는 대처에 나다니지 않고 혼자서 처박혀서 한 글 한 글 쓰도록 하겠습니다. 무리를 아늑해하지 않으며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스물일곱이었을까. 이 문장을 읽을 즈음 나는 세상을 아는 척하며 사람 모이는 대처에 들어앉아 무리 속의 아늑함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놈'이었다. 무엇이 중한지도 모른 채 목적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지금은 생사의 급박함에 허덕이며 한 무리의 일원으로서 여전히 희미한 삶의 목적을 찾아 살아가고 있다. 세상살이가 다 힘들다지만 그 중 가장 고된 것이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홀로 있는 시간을 무언가 의미 있는 것들로 채우며 버텨내기란 여간 쉽지 않다.

 

퇴근 후 돌아온 내 작은 방에 어둠이 짙다. 애써 가라앉은 공기를 들추며 방 한 구석 책상 위에 노트북을 켰다. 저녁도 잊은 채 직장동료 덕분에 알게 된 옴니글로에 글을 끄적인다. 책 제목이란 것도 만들어 보고, 간략한 소개도 덧붙인다. 문득 내게도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음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글을 끄적이고 있었다. 화려한 미사여구와 깊이를 담지 못했어도 나름의 삶이 묻어나는 글을 쓰려 했었다. 내 글을 보고 흐뭇하게 웃는 사람이 있기도 했다.

 

세상을 다 알 것만 같던 나이, 서른.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이번엔 여전히, 아직은 좁고 얕은 우주 속에서 헤메는 나와 대화하고 싶다. 무리를 아늑해하지 않으며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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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시작점에 서다!

내 나이 만으로 이제 꽉 서른이다.

서른 살이면 꽤 괜찮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것 같았는데

나는 여전히 부족한 것들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깨닫는다.

 

스무살까지는 부모님의 보호아래 살았다면,

스무살부터 10년이란 세월을 나는 무얼 하며 살았을까,

되돌아 보게 된다.

괜찮은 인생을 살았던 10년은 분명 아니었다.

실수도 많았고, 상처도 많았으며 불안했던 나의 삶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기를 거쳐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음을 느낀다.

 

10년이란 세월동안 방황도 많이 했지만,

분명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10년이란 세월동안 나는

배운 것들이 그래도 많다는 것을 느낀다.

잘못된 선택으로 나락으로 떨어진 적도 있었지만,

그로 인해 나는 한뼘 더 성장을 했고,

어떤 선택을 하든 책임을 져야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으니

나쁘지 않던 방황이었고,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는 몇 십년을 더 살아가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

앞으로 나는 몇 십년이란 세월을 어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야만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

그냥 이렇게 되는대로 살아가기엔 나는 아직 너무도 젊지 않은가?

 

내가 하고 싶은 것들만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노력하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내 의지대로 내 선택으로 살아가는 앞으로의 나날들이

나는 잔뜩 기대가 된다.

설렘으로 가득찬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기억하고

열심히 살아가도록 노력해야겠다.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이 나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분명 좋은 날 또한 오지 않을까?

 

그 좋은 날이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 삶을 사랑하면서 살아가겠노라 다짐한다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외롭지 않을 것이다.

 

나의 삶을 사랑하자.

아직 서른 살밖에 안됐으니까.

 

서른, 이제 정말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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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서른, 책갈피

 

 

 

 

    나의 전공은 철학. 이상하게도 나는 철학을 하나의 독립적인 학문이라기보다는, 어떤 방법론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존재와 일들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는, 그런 방법론. 그래서 철학이 좋았다. 대학생 신분이었던 4년, 그리고 대학원을 다니던 2년 동안, 내 안에 움츠리고 있던 아집을 없애고 최대한 많은 색깔의 생각들과 표정들, 소리들을 그대로 바라보려 노력했다. 비닐 장막 같았던 편견을 걷어내니 궁금한 것도 많아졌다. 시도 때도 없이 이상한 질문을 늘어놓았다. 친구들은 가끔 날 보고 특이하다거나 웃기다고 말했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이십대 초 ․ 중반, 가장 꽃다웠던 나의 청춘의 시기이다.
 
  원래 나는 국문과를 가려고 했던 여고생이었다. 다섯 살 때 밤새 책을 읽다가 아버지에게 크게 혼이 난 적이 있는데, 어릴 때부터 반항기가 다분했던 나는 그 다음 날도 또 책상 밑에 기어들어갔다. 남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나에게 어마어마한 짜릿함을 선사해주었으므로, 그 정도 크기의 강압으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책읽기에 대한 애정은 자연스레 글쓰기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고, 이것저것 끄적이는 습관이 생겼다. 작가가 되고 싶다며 떠들고 다녔고, 대학을 간다면 국문과에 진학해야겠다는 생각도 제법 진지하게 했다. 하지만 대학 지원의 순간 나는 왠지 모를 두려움에 휩싸이고 말았다. 혹시 국문과에 가면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문학에 고정관념이 생기는 건 아닐까. 작품을 더 훌륭하게 해석할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고정된 시선을 가진 정답형 인간이 되지는 않을까.
 
  사실 ‘문학’을 좋아하면서도 고등학교 ‘문학 과목’에서는 그리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는 이상한 학생이기도 했다. 시와 소설에 정답이 있다는 것 자체에 의문을 품는 아이, 그래서 객관식 시험에 꽤나 어려움을 겪는 아이였다. 고 3 말미, 나의 이러한 기질이 훌륭한 국문학도로 성장하기에는 어렵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결국 철학을 전공하는 쪽으로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물론 나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4년 동안 나와 타인을 향해 끝도 없이 질문하고, 수많은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또 반성하면서 좋은 정답보다는 좋은 질문에 천착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므로.
 
  서른이 된 지도 벌써 아홉 달. 사실 요즘 나는 슬프다. 눈주름이 생기고 피부가 조금씩 건조해지는, 그런 신체적인 변화 때문이 아니다. 해가 갈수록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는 것이, 아주 많이 슬프다. 타인의 말에 토를 달지 말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사건이 벌어진 까닭보다는 결과에 나타난 수치들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낀 채로 생존해야 한다. 무미건조하다. 힘이 든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삼십대라는 나이가 주는 중압감이 있다. 주변 눈치가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꼭 내 식대로 살아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한다. 누군가는 아직도 철이 덜 든 거냐고 나를 비웃겠지만. 그저 그런 어른이 되는 것보다는 비난받으며 철딱서니로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소년이 될 거에요?” 늘 가슴 속에 품고 사는 질문이다. 독립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나온 대사이기도 한데, 자기반성을 좋아하는 나는 스스로에게 종종 이 물음을 던진다. 이 말은 내가 과연 이 세상을 철들지 않고 살아가도 되는가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고민의 끝에 언제나 따라붙는 나의 대답은, 결국 “YES”다. 가능하면 아주 오래도록 이 질문을,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
 
  서른의 한 가운데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는 핑계로 일상 곳곳에 책갈피를 끼워 둔다. 선언하듯 다짐하고, 꿈꾸듯 소망한다. 짧은 질문에 매달린 꿈들이 너무 많아 때론 버겁겠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내내 청춘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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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엄마의 보리

 

 

 

 

    엄마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물론 나 또한 내가 그녀의 운명 또는 운의 방향을 정확히 짚어 주었고, 그래서 그것을 꼭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가 엄마에게 슬며시 카드를 꺼내 놓은 이유는 오랜만에 본 그녀의 얼굴에서 슬픈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서른이 된 아들이 엄마에게 대놓고 고민이 있는지 물어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니, 꼭 서른이 아니더라도 그런 말은 정말 하기 힘들다. 자식은, 특히 아들은 그렇다. 엄마를 무척이나 사랑하지만, 둘이 얼굴을 맞대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편해진다. 그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영 모른 체 할 수는 없어 항상 가지고 다니는 상자 안에서 카드를 꺼냈던 것이다. 카드만큼 누군가가 내게 고민을 털어 놓기를 껄끄럽지 않게 만들어주는 것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근데 아들, 이거 잘 안 맞는 것 같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일어섰다. 사실 큰 수확은 없었다. 아들에게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듯, 엄마에게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나 보다. 엄마는 카드점을 보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멀뚱멀뚱, 자신의 손으로 뽑은 카드에 그려진 그림만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의미 풀이가 모두 끝난 후에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그림이 다 똑같아 보여."였다.
 

  무엇이 잘 안 맞는다는 걸까. 나는 그리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엄마에게 의미를 바꾸어 말한 카드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은 점괘의 기반을 나타내는 세 번째 카드였다. 엄마는 무지개 속에서 10개의 컵들이 나타나는, Ten of Cups 카드를 뽑았다. 무지개 아래로 펼쳐진 평원에는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고, 그들 주변에는 춤추는 어린아이들이 있다. 평화로운 분위기의 그 카드는 실제로도 평온함과 만족스러움을 뜻한다. 하지만 엄마는 그 카드를 역방향으로 뽑았다. 뚫어져라 그림을 살피던 엄마는 카드를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아마도 카드의 방향이 바뀌면 의미도 바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리라. 만약 그 사실을 알고 카드를 돌렸더라도, 나는 엄마의 행동을 제지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금 전까지 엄마가 앉아 있던 자리는 이미 식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온기라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없었을 지도 모른다. 엄마의 따뜻한 온도를 유지해주던 그 무언가가 사라진 게 분명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남자는 여자의 생활을 읽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번에도 그만큼 가져갈 거지?"


  엄마가 나를 보고 있었다. 플라스틱으로 된 커다란 원통 용기 안에 보리알을 쏟아 부으며. 나는 슬쩍 카드를 집어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은… 재미있니?"
 

  그녀가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처음이어서, 나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을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채 그만 두고 타로 점술가가 되겠다고 선언한 뒤로도, 엄마는 내게 한결같았다. 나를 죽일 놈 취급하지도, 철이 없다고 윽박지르지도 않았다. 나는 내가 그 전까지는 별다른 사고 없이 자란 괜찮은 아들이었기 때문에 엄마가 온전히 나를 이해해주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나를 이해한 그녀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자식이 자기 자신에 대한 부모의 애정도를 확인하는 방법은 딱 하나, ‘간섭’이기 때문이었다. 젊은이들은 부모의 간섭에 대해서는 치를 떨지만, 막상 간섭의 대상이 되지 않는 날이 오면 가슴에 드리우는 서운함의 그을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법이다.


  "난 줄곧 그런 생각을 했어. 혹시 네가 어렸을 때 본 그 무당 때문이 아닌지…."
  "엄마, 내가 하는 일은 그런 게 아니에요. 그건… 그래, 말하자면 상담 같은 거예요. 나는 지쳐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편해질 수 있도록 조언을 해 주는 것뿐이에요."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과방에 놓을 에어컨을 장만하기 위해 처음 타로카드 이벤트를 기획했을 때, 내 머릿속에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다. 대학 축제 이틀 전 대자보를 붙이던 내게 말을 건넨 H를 축제 첫 날 좌판에서 고객으로 다시 만났을 때도, 나는 그저 사흘 동안 그 돈을 벌 수 있을 지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마 세 달 뒤 이루어진 H와의 세 번째 만남에서 그녀가 내게 타로카드 동호회 가입을 권유했을 때에도, 그 다음 해 본격적으로 사업이라는 것을 시작해보자고 결심한 순간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에 나를 찾는 고객이 처음 다섯 명에서 스무 명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어느 날,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보잘것없는 약한 뿌리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뿌리는 일부러 물이나 거름을 주지 않아도 조금씩 단단해졌다. 나는 점점 더 깊어지는 뿌리를 바라보면서, 그동안 신념이나 좌우명이 적힐 자리를 빈 칸으로 놓아둔 것에 대해 처음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도 엄마는 가끔 꿈을 꿔. 네가 기절하는 모습을 보면,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온 몸에 돋은 소름이 가시질 않아."


  나는 작은 내 몸에 소금이 마구 뿌려지는 장면을 떠올렸다. 커다란 대접에 가득 담긴 소금은 여간해서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적이 흐른다.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움직임이 멈춘 것 같다. 그들의 얼굴이 점점 잿빛으로 변해간다. 반면에 나는…. 목울대가 뜨겁고 아랫도리가 묵직해진다. 손끝으로 턱을 쓸어보니 까끌까끌한 것이 만져진다. 이제 무당은 나보다 머리 하나 쯤은 작다. 하지만 새하얀 얼굴은 여전히 무서워서, 나는 그녀가 던지는 소금을 맞고 서 있다.


  "자, 평소보다 조금 넉넉히 넣었어."


  멍하니 보리로 가득 채워진 병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엄마는 정성들여 공수한 보리로 내게 남아 있을 무언가를 깨끗이 씻어주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소금인지, 아니면 악한 기운인지는 알 수 없다.

 

 

 

 

※ 예전에 썼던 <흙과 소금>이라는 제목의 글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세상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가진 '서른들'이 참 많아서, 적어놓고 싶은 글도 참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