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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한, 밤의 기록

남 같지 않은, 사사로운 감정이 얽힌 관계, 친구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이 사람과 과연 친해질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지금은 너무 우습다. 그때의 너와 나는 프레임 속에서 참 어색하고 낯간지러웠다. 

 

눈떠보니 어느새 4개월 차가 넘었던 회사 생활. 우리 팀에 신입이 들어왔다. 이력서를 봐도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우리 팀에서 유일한 여자였던 나에게 굳이 차 문까지 닫아줬다. 넌 예의가 몸에 배어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더 꼴사나웠을까. 참 유별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지능 못지않게 각잡힌 생활과 웃음기 없던 너의 표정. 너의 포커페이스로 제나이보다 나이가 많아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다. 1년이 지나도 어색함이 감돌았다. 동료 그 이하 그 이상도 아니었다. 동갑내기였지만 다른 또래 직원들보다 너와 친해지는 시간은 오래 걸렸다. 지금와서 들은 말이지만 그때 넌 이미 우리가 친했다고 생각했단다. 당시, 일할 땐 편했지만 둘이 남겨지면 어색해 죽을 것 같았다. 어색한 빈틈이 싫어 할말을 준비해 두었다. 그러다 단둘이 외근을 가고 식사를 했다. 꽉 막힌 도로에서 팀장에 대한 너의 생각을 처음 들었다. 너도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너도 '같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또래 직원들과 우린 거의 매일 술 한잔, 그 이상을 기울이며 닭발, 곱창, 회사를 맛보고 즐기고 뜯었다. 

 

적립식 통장보다 더 빠르게 쌓여가는 스트레스에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 날 너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친구"

일할 땐 우연이라도 손끝이 닿을까봐 거리를 두고 격을 차렸다. 그런 우리가 동료를 끝내고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되니  동료 때보다 트러블은 더 많았다. 너는 스스럼없이 장난을 참 많이 쳤고 난 참 잘도 속았다. 화가 나 눈물이 나던 날도 있었다. 화해의 악수는 몇 번이나 했던지, 널 몇 번이나 때렸는지 이제 기억도 안 난다. 그만큼 추억이 쌓여갔다. 그때쯤 나는 약간 우리의 관계에 혼동이 왔다. 친구나 되자고 시작한 관계에서 연인으로 질릴 만큼 만나 끝낸 관계가 몇 번 있었다. 그래서 예전엔 서로 다른 염색체 사이에 친구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주변에서도 뻔한 멘트가 들렸다. 

"너희 둘이 그냥 사귀어. 언제 사귀니?" 

너와 나는 자연스러운 재치로 흘려넘기고 언제나 친구 관계를 운운했다. 그런데도 너는 매너와 장난이 적당히 양념된  행동으로 날 헷갈리게 했다. 여중, 여고를 나와 쉽게 선을 넘지 않는 나에겐 낯설었다. 여사친도 적지 않게 있는 너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들과 다 함께 가까운 근교로 여행을 떠났다. 아직은 어색한 반말을 편한 척 주고받았다. 새벽녘, 동료들에게 별을 보러 가자고 졸랐다. 달을 보는 걸 좋아하던 너는 별을 보고 오랜만에 천진한 웃음을 보였다. 술기운도 있었는지 넌 잘 하지 않던 말도 했다.

"별 진짜 많다. 별 따줄까?"  

손발이 사라지는 말에 난 귀를 씻어냈다. 돗자리를 아스팔트 바닥에 깔고 추위와 별을 안주로 소주 한 잔씩 기울였다. 소주병 아래에 핸드폰 빛을 조명삼아 불을 밝혔다. 라섹으로 눈부심에 약해진 터라 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너는 손으로 내 눈을 가려주었다. 그러던 와중 동료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평소 아니라고 한 사람도 잘 맞는다면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누가 봐도 우리에게 한 말이었다. 지겹도록 들어온 말이지만 그땐 한번 쯤 이런 친구를 만나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들었다. 무수한 연상의 사랑에 지친 참이었고, 매섭게 겨울바람이 다가오던 시절이었다. 

 

네가 우연히 던진 말에는 시가 있었다. 그러나, 묘하게 우리의 화살은 서로를 조금씩 빗나갔다. 그럴수록 난 점점 막역해지는 이 관계가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 날의 만남이 내 과거의 생각을 일깨웠다. 친구나 되자고 서로의 친구들을 소개했다. 사실, 처음의 목적은 나의 모태쏠로 친구 B의 솔로 탈출을 위해서였다. 그 친구가 소개팅은 어색하다며 다 같이 밥이나 먹자고 제안했다. 그 모임이 반복되면서 우린 친해졌고 넌 내 친구 A에게 관심을 가졌다. 나에게도 썸인듯 아닌듯한 친구가 생겼다. 그런데도 너와 친구 A의 관계에 더 신경이 쓰였다. 둘 다 나에게 가장 최측근이었다. 너는 버릇처럼 여자친구가 생기면 너와 연락을 자주 못할 거라고 말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네가 같은 염색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고민을 애초부터 하지 않도록. 그래서 난 둘은 절대 안 된다고, 다 같이 친구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쯤 나의 썸남과 미묘하게 감정이 틀어지고 있었다. 잘 돼 가는 너와 친구 A를 보며 생긴 열등감도 없지 않았다. 이런 대화가 반복되자 너는 나를 푹 찔렀다.

"너 나 좋아했어? 이제 나 좀 풀어줘." 

 

내가 구속했는지 부터 먼저 생각했다. 평소 우린 장난처럼 주인과 강아지와 같은 역할놀이를 했다. 절대 변태적 성향은 아니다. 넌 내 앞에서 포커페이스를 풀고 모든 감정을 다 드러냈다. 스스로 널 비글이라고 칭했다. 우린 갑자기 만나 끌리는 데로 먹고, 보고, 하고 싶은 일을 했다. 내 마음대로 굴어도 너는 다 받아줬다. 그러던 와중 그 말을 들으니 사고가 정지했다. '내가 너를 좋아했던가?' 나마져도 나에게 의심이 들었다. 난 내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니 너와 다니는 일에 즐거웠다고 답했다. 사랑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 갖기는 싫고 남 주기는 싫은 게 내 마음이야."

 

이어서, "내가 당긴다고 올 것도 아니잖아."고 답했다. 너는 막역한 친구가 될수록 다른 관계로 발전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땐 동의할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너는 백번 맞는 말만 했다. 그리고, 내 친구 역시 우리의 시간들을 알기에 너와 관계발전에 망설였다. 너와 친구, 사이에 낀 나, 갈등은 깊어졌다. 난 너무 이기적이라 불편한 감정이 싫었다. 너와 내 친구가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기를 빌었다. 결국 너와 내 친구의 이야기는 시작되지 못했다. 

"안된다고 한 건데 내가 괜한 짓 했지. 안 만날 테니 걱정하지 말고."

너의 모진 말에 난 면목이 없었다. 며칠 동안 연락을 안 하고 있었다. 넌 아무렇지 않게 먼저 다가왔다. 평소처럼. 

 

회사 다닐 때부터 네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믿고 따르던 사수가 건강상의 문제로 그만뒀고 난 혼자 남았다. 사수가 그만두자 무능력한 사람이 팀장이 되었다. 난 팀장의 몫까지 하느라 지쳐갔다. 그럴 때마다 너는 페이스메이커가 되었다. 원래는 직무가 달라 외근 때 말고는 도움받을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넌 내 일거리를 차곡차곡 정리해주면서 언제나 뒤에 있었다. 늘어가는 나의 투정도 꾸준히 들어주었다. 사회에 나오고 다닌 첫 회사였다. 사회경험이 많던 넌 큰 힘이 되었다. 간과 쓸개를 빼도 회사를 나오면 역적이 되는 세상이다. 그동안의 고생이 무색하게 쫓겨나듯 나온 회사에 후폭풍이 더욱 심했다. 그럴 때마다 넌 내 자존감을 올려줬다. 너의 과거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넌  '네가 최고다, 예쁘다, 넌 어디 가든 잘할 거야'라고 툭툭 던지듯 말했다. 너도 나에게 너의 이야기를 꺼냈다. 어쭙잖은 나의 위로에도 고마워했다. 

"1년 동안 이 회사에서 뭘 했나 싶어도 널 만나서 다행이야. 네가 좋은가 봐 친구로서."

매일 티격태격해도 너의 그 말에 고마웠다. 그래서 너와 친구 A의 일에 더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렇지만 다시 둘이 연락할까 봐 난 아직도 걱정한다. 정말 난 못돼빠졌다. 

 

이젠 정말 편한 사이가 되었다. 너와 같은 소파에 다리를 엉켜 누워도 아무렇지 않다. 주변의 부추김에 혹시라도 너와 연인 관계가 되었다면 후회했을 것이다. 좋은 친구를 잃기는 싫다. 그래서 더욱 너의 연애가 늦춰졌으면 한다. 못된 심보다. 이 사사로운 감정이 얽힌 복잡한 관계가 가끔은 지친다. 이제는 너를 내 욕심으로부터 놓으려고 이 글을 쓴다. 넌 최근에 이런 말을 했다. 
"평생은 없어. 우리 관계도 평생 가지는 않을 거야. 죽어서라도."

평생이란 단어는 참 무모하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조금 여유가 생긴 이 시간에 감사하며 살 것이다. 우리가 평생은 아니더라도 좋은 친구로 오래 남고 싶다. 너도나도 언젠가 좋은 사람 만나겠지. 최근 꿈에서 낯선 여자와 함께 있는 너를 봤고 너는 나에게 그를 소개했다. 내가 버릇처럼 "내가 모르는 사람과 만나"라고 한 말이 이뤄져 다행이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이기적이다. 그래도 참 잘 어울렸다.  

 

모든 일에 끙끙대며 안절부절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친오빠는 '미움받을 용기'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책에선 '난 단점 투성이 이야'고 생각한다면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스스로 만든 것이라 한다. 나 역시 나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서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내가 이기적이기에 우정이란 이름으로 너에게 모질게 굴어도 괜찮다고. 어쩌면 정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이 스쳐 갔거나 감추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관계를 깨기 싫어 나를 속이는 걸지도 모른다. 저 드라마 속 뻔한 남사친, 여사친처럼. 

 

인생이 뻔하지 않아서 '기대, 미래, 예측불허' 와 같은 단어가 생기지 않을까? 지금은 우리의 관계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너의 존재를 소중히 하며 너의 아픔을 더 달래주고 싶다. 내가 위로받은 시간만큼, 내가 가진 미안함만큼 너에게 보답하고 싶다. 아주 명확하면서도 아직 애매모호한 관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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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전 직장상사를 저주하며

나에게 형이라 불리고 싶지만

깍듯한 예의를 중시하며

공과사를 구분하고 싶어하는

감정기복이 제멋대로인

전 회사, ​직장 상사 'ㅈ'

 

지난 30개월 간 나를 향해

날을 세운 그의 검은 채찍은

날이 흐리면 무릎이 쑤시듯

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다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

게으르다. 멍청하다. 모자르다. 능력이 그것밖에. 넌 안되겠다.

이런 말을 하기도 싫고, 내게 이득이 되는 것이 없음에도

널 자극해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하는 말이다.

모욕, 모멸감을 느껴 자존감이 무너진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말이다.

그러므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의 문제다.

욕설과 폭력은 목적에 따라, 원인에 따라, 정당화 될 수 있다.

(직장 내 선후배 관계에서 이러한 논리가 옳다고 내세우는건 이해하기 어렵다)

 

모름은 죄다. 발전해야한다.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휴일에도, 멈춰있어서는 안된다.

명절에 쉬는 동안 회사를 위해 어떤 생각을 하고, 공부를 했는지 궁금하다.

월급에는 휴일수당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고있나.

그 돈은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쉬면서도 회사 생각을 하라고 주는 것이다.

 

노력을 했더라도 결과물이 좋지 못하면 노력을 잘못한 것이다.

노력을 잘해야지 열심히해서는 소용이 없다.

노력을 했는데 결과가 없다는 것은 패배자들의 핑계와 변명이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도 좋았던 것이고,

결과가 나쁘면 과정도 나빴던 것이다.

 

저녁 6시에 일을 주더라도

내일 아침 9시에 보고하겠다는 말을 듣고 싶다.

내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하고 싶어서 해야 한다.

 

회사가 돈을 그냥 주는 게 아니다.

너가 돈을 받는 만큼 일을 한다고 생각하냐.

너가 받는 돈은 내가 주는 것이다.

 

네가 나가면 어디 갈 수 있을 것 같으냐

3년은 채워야 경력으로 받아주지

지금 그걸로는 어림도 없다.

 

못버티고 나가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다

그 사람들의 인성이 잘못되었다

저런 사람들은 어딜가서도 안될 것이다
왕따는 당하는 사람이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남의 물건을 뺴앗는 아이는 얼마나 갖고 싶어서 그랬겠어

(학창시절 자신이 왕따시키고, 갈취한 이야기를 영웅담처럼 이야기하며 미화시킨다)

 

점심시간에 밥먹으면서 왜 말을 안하는거야

점심먹고나서 혼자 있을 때 말안하고 쉬면되지

직원들이 다 모이는 게 점심시간밖에 없는데

굳이 꼭 이 시간에 말을 안해야겠냐

 

(문구점에서 업무에 필요한 포스트잇을 구매하려는데)

그거 네 돈으로 사는 건 아깝니?

 

여직원들에게 스킨쉽한 것은 의도한 것이 아니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으며, 앞으로 하지 않겠다.

 

목적에 따라 여러명의 여자를 몰래 만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예를들면 공부 잘하고 외모가 떨어지는 여자,

공부 못하고 외모가 이상형인 여자,

그럭저럭인데 돈이 많은 여자

세 여자를 만나면 각 사람마다 뛰어난 것에서 만족을 얻고,

부족한 것을 강요하지 않아도 되니 서로 스트레스 안받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팀장이 여직원을 포함해 모두 있는 자리에서

어떤 목적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

 

직장이 아닌 대학선후배로 만났으면 나와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며 착각하던 '그'는
'왜' 사람들이 떠나가는지 깨닫지 못하고 남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했다

 

이 글을 읽는다면 또 아니라고 하겠지. 양쪽 의견을 다 들어봐야 한다며 손바닥 뒤집듯 태세전환하겠지.

말과 행동이 모순으로 가득한 모습으로 사람이 먼저라고 하겠지.

하고 싶다던 입양은 그 아이가 더 큰 상처를 받지 않도록 제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속승진한 36살 젊은 팀장의 '능력'과 '간사함'은

회사의 성장을 바라는 대표의 눈만 가렸을 뿐

추악하고 역겨운 '인성'은 덮을 수 없었다


한 조직의 막내로

'그'와 30개월이란 시간을 보내며

보이지 않던 자본주의로 빚어진 사회를

온 몸으로 또렷히 보고, 느끼고, 배웠다.

 

 

사무치게 아팠고

아직 가슴이 미어온다

 

내가 그에게 내리는 벌은

그에게만은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던 것과

그보다 더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를 살며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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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낭만에 대하여

 

 

 

 

    운전을 할 때는 앞서 가는 자동차 혹은 보행자의 모습이 운전자의 시야에 잘 들어와야 합니다. 특히 어둑어둑한 터널 안에서 가시거리를 확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지요.

 

  나는 안개를 걷어내고 어둠 안에 빛을 제공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어느 날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3분의 시간을 노랗게 물들입니다. 노을이 지는 하늘만큼 로맨틱하지는 않지만, 빛의 알을 산란시키는 우리의 세계도 꽤나 매력적이랍니다.

 

  예컨대 나의 작은 우주에서 낭만이란 이런 것들입니다.

 

  바이칼 호수를 에둘러 달리는 러시아의 게으른 기차처럼, 내가 사는 이 곳엔 사시사철 느린 바람이 붑니다. 덕분에 시원하기는 하지만 사실 조금 시끄럽지요. 나는 높은 곳에 올라가 빛을 잉태하고 있지만, 모양새가 그리 신성하진 않아요.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웅웅대고 검댕이 달라붙기 일쑤라 귀와 코와 입을 막아야 합니다. 가끔 기침을 하면 3년 묵은 먼지가 튀어나온다고, 머리를 긁적이며 농담을 건네는 친구도 있지요.

 

  가늘었던 빛줄기가 거세지는 순간, 허공에 떠돌던 작은 먼지들은 노란 개나리꽃이 되어 사부작, 볼품없는 신(神)을 위로해줍니다. 도로를 횡단하던 벌들이 고단해 자취를 감추면, 나는 오늘도 하늘로 올라가 고장난 태양을 고칩니다. 이게 낭만이 아니면 또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런 게 生이 아니라면 또 무엇이란 말입니까.


 

 

 

 

※ 터널에서 조명등을 고치는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한 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세상을 밝게 비추어주고 계신 분들께 존경을 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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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통조림

 

 

 

 

    사실 그 누구의 위로도 필요하지 않다는 말은 너무 많은 위로가 필요하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타인이 아닌 나 스스로의 따스함이 간절하다는 의미였다. 두 다리를 모아 가슴 부근까지 끌어안았다. 이렇게 하면 심장에 닿지 않을까. 지난 몇 년 동안 겪어낸 감정들이 뭉실뭉실 뭉쳐져 공처럼 내게 달려들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을 때, 어이없게도 배가 고팠다. 아니, 배가 고프다는 말로 부족할 정도로 굶주려 있었다. 그건 꼭 인간의 감각이 아닌 듯했다. 나를 지탱하고 있는 속 안의 모든 것들이, 내가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마치 텅 빈 통조림 캔이 된 느낌이었다. “S씨는 이제 나오지 않아도 좋아요.” 망설임 없이 움직이는 여 팀장의 입술을 바라보며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걸까. 하루가 지난 지금에서야 상해버리는 내 속은, 무슨 방부제를 그리도 뿌렸기에 이리도 무딘 걸까.


  혹시 내가 처음부터 정규직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럼 방부제를 끼얹는 것 대신 조금 더 생생한 인간 쪽에 가까운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세상에 태어날 때 나는 너무도 사람이었지만, 어느새 사람답게 살고 싶어 하는 반쪽짜리 인간이 되어 있었다. 내가 만약 정규직이었다면, 애초에 내 반쪽을 잃어버릴 일 따위는 경험하지 않아도 괜찮았을까.

 

 

 

 

※ p.s. 최근 힘든 일을 겪은 친구의 이야기를 짧게 재구성해보았습니다. 그가 너무 오래 아프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