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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아이가 된 그녀

그녀, 모두 잊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 뽀글뽀글한 머리에 통통한 몸매를 하고 후줄근한 옷을 입는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글도 배우지 못했다. 평생 고되고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아낄 줄은 알았어도 자신을 위해서는 조금도 쓸 줄 몰랐다. 그저 내 얼굴만 보면 끼니 거르지 말고, 물은 멀리하고, 길 건널 때는 좌우 살피기를 일러주기 바빴다. 나 없인 못 산다던 그녀가 하루아침에 나를 잊어버렸다.

여느 때와 같던 점심. 식사를 마친 그녀는 늘 달고 살던 약봉지를 뜯지 못하고 손에 든 채 꾸벅꾸벅 졸았다. 그녀와 함께 있던 이는 많이 졸리면 한숨 자고 일어나라며 그녀를 거실에 바로 눕혔다. 거짓말처럼 그 자리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뇌경색. 중환자실에서 세 달 남짓. 가까스로 눈을 떴지만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주 어릴 적 가난하고, 아픈 기억만 남아 그녀를 괴롭혔다. 눈물 많은 아이가 되었다.

그래도 잊지 않은 것
그녀를 휠체어에 태워 산책을 나선다. 푹 쉬어서 그런지 살도 쏙 빠지고, 얼굴도 하얗게 이뻐졌다. 아이를 다루듯 살며시 손을 잡고, 말을 건네고, 얼굴을 쓰다듬는다. 내가 묻고 잠시 기다렸다 내가 답한다. 그래도 아이가 되어서도 잊지 않은 말, "바람이 차다. 그만 돌아가거라.".

 

할머니, 이제 걱정은 내려 놓고 마음 편히 쉬세요. 끼니 거르지 말고 밥 꼬박꼬박 잘 먹고,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웃으면서 잘 있어요. 다음에 또 올게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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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소설

사랑

“일종의 편린이지, 인생 자체가. 무엇 하나 완성된 게 없이.”

 

2년 만에 만난 그녀는 눈에 띄게 수척해 있었다. 몇 년의 시간이 얼굴에 사정없이 폭격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것 같았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언니, 동생으로, 같은 과 동기로서 친하게 지내다가, 대학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서로를 잊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연락이 온 그녀는 퇴근 시간에 맞춰 내가 다니는 회사 앞으로 나오겠다고 했다. 회사를 나서다가, 하마터면 그녀를 못 알아볼 뻔 했다. 수척해진 모습에, 그녀답지 않은 회색 빛 촌스러운 의상까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녀는 항상 밝고 자신감에 넘치고 아름다워, ‘태양의 여자’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연신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자니, 나까지도 불안해졌다. 대체 그녀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야. 내 인생은 아이러니야.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 너도 들으면 웃을 거야.”

 

그녀는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더니, 맥주 한잔을 거침없이 들이켰다. 언니가 이렇게 술을 잘 마셨나. 전화 벨소리가 울리는 데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다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우리 출판사에 삽화를 그리기로 새로 계약한 사람이 있어서 환영의 의미로 팀 사람들과 조촐하게 회식을 했어. 미대생이라 그런지, 얼굴도 말끔하게 생긴 게 진짜 예쁘장하더라고. 근데 그 꼬마가 무슨 얘기를 하다가 로르까 시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로르까를 말이야. …아, 잠깐만.”

 

그녀는 계속되는 벨소리에 핸드폰을 집어 들어, 대충 ‘알았어, 신경 쓰지 마’등 무미건조한 말투로 몇 마디를 하더니,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안, 짜증나는 전화가 계속 오네. 암튼, 아니 글쎄, 그 꼬마가 로르까 시를 읽고 그림 그린 것도 있다는 거야. 그러다가 어느 새 다들 집에 갔는지 우리 둘만 남게 됐어. 그래서 술도 취했겠다, ‘로르까풍 회화 작품’을 보여 달라고 했지. 그렇게 그날 그 애네 집에 가서 자게 됐어. 작품이 어땠는지는 기억도 안 나. 근데 아침에 일어났는데 뭔가 이상한 거야. 한번 와본 곳 같은 거야. 문에 달린 장식이며, 천장 등이며…, 언젠가 본 것 같은. 그래서 꼬마한테 장난스레 물어봤지. 꿈속에서 한번 와본 것 같다고. 그랬더니, 그 애 표정이 약간 이상해지는 거야. 그러더니, ‘저 기억 안 나요?’ 이러는 거 있지. 그제야 그 애를 만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게 생각이 났어. 웃기지 않냐?”

 

그녀가 말하고 있는 사이에 채워 놓은 맥주잔을 그녀는 다시 단숨에 들이켰다. 별로 웃기진 않았다. 대학 다닐 때도 워낙 인기가 좋았던 그녀는 많은 남자와 교제했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교제했던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과 잠자리를 했던 것 같다. 그런 그녀가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혐오스러웠고, 아름다운 그녀가 자신의 진가를 모르는 것 같기도 해서 일정부분은 통쾌했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같이 잤던 남자들 이마에 표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잤던 사람과 안 잤던 사람을 구별하고 그게 몇 번을 잤는지도 알 수 있게끔 하는 거야. 아니다, 차라리 남자들 가슴에 내 이름을 문신해놨으면 좋겠다. 그럼 그 사람의 셔츠 속 가슴을 들여다보며, ‘아, 네가 잃어버린 과거의 나를 아는 구나’하는 거지.”

 

그 순간 내 핸드폰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손으로 집으며 그녀를 얼핏 보자, 받으면 서운해 할 것 같았다. 나는 벨소리가 안 나게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다시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나에게 사랑은 제로 칼로리 콜라와 같은 거야. 강렬한 느낌에 끌려 마시고 또 마시지만, 그건 나에게 절대 아무것도 채워주지 않아. 제로 칼로리인 걸 알고, 그렇기 때문에 마시려고 했던 건데, 나는 그게 기적처럼 날 풍성하게 채워줄 듯 계속 마셔. 그렇게 배는 부르고 점점 목은 따가워지는데, 나는 콜라를 마시기 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아. 이 콜라만 마시면 될 것 같았는데. 그런 느낌 이해하겠니? 끊임없이 갈망하는데, 절대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는. 말하자면, 제로 칼로리의 비애지, 내 사랑은. 잉여쾌락일 수도 있고, 잉여가치, 잉여환상…….”

 

자기 연민에 가득 찬 그녀의 연애 이야기가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시켜놓은 풍성한 안주는 우리 둘 다 별로 손을 대지 않은 관계로 풍성한 그대로였다. 그렇게 속을 채우고 싶다면, 안주라도 먹지.

 

우리가 있는 호프집에선 금방이라도 천장에서 바퀴벌레가 스스로 자신의 몸을 날려도 전혀 놀라지 않을 만큼 허름하고 어두운 데다가 습기가 가득 차 있는 불쾌한 환경이었다. 회사 앞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 아니, 지구상에 이런 곳이 존재하는 지도 몰랐다. 나는 안주에도, 그렇다고 술에도 손이 안 가고 그나마 물만 괜찮게 여겨, 물만 마셨다. 그녀는 열심히 말하면서도 틈틈이 술을 들이켰다. 그녀 혼자 술잔을 비워댔고, 술을 잘 하진 못하는지 눈에 띄게 취해가고 있었다. 난 그저 그녀의 얘기를 대강 듣고 술잔이 비지 않게끔 채워주면서, 부재중으로 택배기사가 앞집에 대신 맡겨놓았을 카메라를 빨리 찾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생리할 때가 됐는데, 계속 안 하더라고. 임신했구나 하고, 누가 애 아빠일까 생각해봤는데, 딱히 적당한 사람이 없더라고. 그래도 별로 상관없었어. 왠지 내가 무언가 해냈다는 느낌, 내 안이 따뜻하게 가득 채워졌다는 느낌이 드는 거야. 신성한 느낌마저 들더라고. 그래서 일부러 병원을 가지 않고 한 달을 더 넘기고 또 한 달을 넘기고……, 그렇게 반년을 넘겼어. 병원에 가면 현실을 직시하고 수술을 감행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배가 별로 불러오질 않는 거야. 한참을 고민하다가 산부인과를 갔지. …아씨, 이거 진짜 시끄럽게 하네!”

 

그녀는 벨소리 나는 핸드폰을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팽개쳤다. 오늘 처음 만났을 때 불안하게 떨리던 그녀의 눈동자는 이제 술에 취해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근데 말이야, 병원에서 뭐라는 줄 알아? 내가……, 글쎄, 폐경이라는 거야. 스물아홉 밖에 안 됐는데.”

 

그녀는 애초에 울음을 참을 생각도 없었는지, 그때부터 격렬하게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아들, 딸 다 낳고 기른 오십 살 중년부인도 아니고 스물아홉에 무슨 폐경이냐고 물었더니, 의사는 담담하게 ‘요즘 뉴스에도 간혹 나오고 하는데, 환경 호르몬 영향 때문, 어쩌고’하는 거야. 약으로 치유가 될 확률이 50%이상인데, 문제는 내가 너무 늦게 왔다는 거야. 잘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약을 먹어보자고 하더라.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칼슘제도 먹자고 하더라고. 혹시 올지 모를 골다공증 때문에. 이게 말이나 되니? 진이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게 많아서 이렇게 벌을 받은 걸까?”

 

그녀는 마치 상처 받은 들짐승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다소 충격적이고 그녀가 받았을 고통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이나, 내가 뭘 어떻게 해줘야하는지 모르겠다. 그녀의 표현대로 정말 벌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에겐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아 생경하게만 느껴졌다.

 

“헛것을 가졌던 거지, 나를 갉아먹은. 누군가와 살을 부빈 시간이 많을수록 나는 점점 없어지고, 마침내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숨 사이사이 먼지가 되어버린거야.”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저 그녀의 다분히 문학적인 발언에 감탄하고 있었다.

 

“정말, 이제는, 내가, 사라져, 버린 거야.”

 

 

 

아마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나는 얼마간 멍하니 그녀가 있었던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던히 놀랐지만, 나는 오래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 술값을 계산하고 나왔다. 어떻게 그 곳을 빠져나와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히 기억나는 건, 다음 날 아침, 전날의 일이 몇 년의 일처럼 낯설게 느껴졌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고 그녀에게서도 그 후로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퇴근 후에 호프집을 다시 찾아보려고 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시간이 1년 정도 흐른 뒤였다. 학교 후배에게서 들은 얘기로는, 그녀가 독일로 가서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마 다시는 한국에 오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후배는 그 독일인이 호모 같은데다가, 그녀 또한 예전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이 살이 많이 찌고 여러모로 굉장히 상했다고 했다. 대학 때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그녀를 알아볼 수 없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제야 궁금해졌다. 그때 그녀는 어디로 사라졌던 걸까? 그럼, 나는 예전 모습이 남았던 그녀를 본 마지막 증인인 걸까? 대체 나는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 듣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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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린의 시/소설/편지/기타

Part 1-11 [시/조각글]- 난, 너의 마음에 닫길 바랬던 거야.

약간의 오타가..ㅜㅜ 

 

재밌게 감상해주세요!! 복귀하고 바로 씁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난 왜 이러는데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건

 

믿음이 깨지는 거 같은 이 느낌은 뭘까

 

아무도 안 말해주는 건

 

그건 뭘까

 

내 눈치를 보며 점점 도망가는 건 뭘까

 

내가 심한건가?

 

아무리 말해도 답 안해주잖아

 

생각만 해도 끔직한 걸

 

 이게 내 세상이면 좋을텐데...큭

 

잔인..ㄷㄷ 크억...

 

마리분들 사랑합니댜ㅑ >_< (돼지 멱따는 소리: ASMR)

 

 

사랑은 끝내 가지 않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응답했으니까

 

사소한 것이라도 챙겨주는 센스란 것

 

서로 감시하는, 해주는 관계

 

그런게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할 수 있는건가

 

좀 자유로우면 마음에 안 드니까 감시하는 거라고

 

그런게 서로 센스가 있는 건가?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것

 

그게 과연 미안한 것일까

 

서로의 배려인가??

 

난 잘 모르는 게 정답인가

 

그게 심하면, 좀 더 심하면 

 

점점 더 심해지면,

 

결국 그것은 집착이 되는 것이다.

 

 

사랑.

 

좋은선택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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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愛

처음처럼 그때처럼

처음처럼 그때처럼

 

깨끗한 벽지와 바닥, 햇살이 비추어드는 새집.

앞으로 행복한 일만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믿으며 나란히 발을 들여놓는다.

 

비록 작지만 함께 마련한 보금자리에서 열심히 살자며 서로를 북돋는다.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나 정말로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뜨는 나날을 보낸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서툴고 어설프게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웃을 수 있다.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고, 익숙해지는 만큼 피로가 늘어가지만 견딜 수 있다.

 

설레고 바쁜 봄을 보내고, 축축하고 우울한 여름을 보낸다.

마주보며 웃는 시간이 줄어들고, 피곤함에 대화가 잦아든다.

 

유난히도 비가 쏟아지는 날, 상사에게 꾸지람을 듣고 귀가한 날.

어둡고 좁은 현관에 서서 초라함을 느꼈다.

 

서로의 일에 쫓겨 아직도 제대로 정리가 끝나지 않은 짐으로 어질러진 집.

신발을 벗어던지며 치미는 짜증을 이기지 못하고 성난 걸음으로 들어가 창문을 벌컥 열었다.

 

- 쏴아아...

 

장맛비가 거침없이 창가로 빗발친다. 숨을 크게 몰아쉬는 사이로 퀴퀴한 냄새가 코를 스친다.

 

“이거 설마...?”

 

불긴한 예감에 벽으로 다가가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켰다. 환하게 밝아진 거실과 방을 돌아다니며 냄새의 원인을 발견한 그때, 현관문이 열리고 피곤에 지친 그가 들어선다. 난 일부러 보란 듯이 화난 기척을 내며 남편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내 기대에 부응하듯 옆으로 다가온 남편에게 천장 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곰팡이 생겼어!”

 

불쾌함이 가득 담긴 내 목소리에 그는 시선을 돌려 곰팡이를 확인하고서 무덤하게 대꾸했다.

 

“그러네.”

 

“그러네? 그게 다야? 곰팡이 생겼다고. 처음엔 분명 깨끗했잖아.”

 

터지기 직전의 불만을 꾹꾹 누르며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가 모든 걸 해결해주기를 바라듯이, 그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곰팡이가 핀 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이사하고 제대로 치우지 않은 짐과 확실하게 끝내지 않은 벽의 페인트칠 자국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칠하다 말아서 생긴 거 아냐? 짐정리도 안했고, 왜 하다가 말았어.”

 

“뭐야? 왜 다 내 잘못인 것처럼 말해? 나 혼자 사는 집이야? 아니잖아! 도와주다 만 게 누군데?!”

 

“그러게 적당히 하자고 했잖아. 그냥 짐만 정리해도 될 걸 뭘 굳이...”

 

“처음엔 너도 맘에 든다며, 좋다고 했잖아. 그러면 끝까지 도와줘야할 거 아냐!”

 

“퇴근하면 피곤하니까 쉬어야지. 그래서 휴가 끝나기 전에 적당히 하자고 했잖아.”

 

“너만 피곤해? 나도 피곤해!”

 

결국 서로 언성을 높이다 대화가 끊어지고 살얼음 같은 침묵 속에서 시간이 흐른다. 깨끗한 벽지를 좀먹으며 천장과 벽으로 퍼져나가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는 장마 내내 이어졌다. 곰팡이처럼 퍼져 나온 불만과 짜증은 그와 나의 감정을 좀먹기 시작했다.

 

서로 신경질을 내고, 냉랭하게 입을 닫아버리고, 본 체 만 체 고개를 돌리며 날짜가 지나갔다. 둘 사이의 감정에 불쾌감이 짙어질수록 회사의 일도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감정의 불쾌감이 쌓여가니 신체의 피로도 가중되는 기분이었다.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숙이고 계단을 올랐다.

 

“하-...”

 

계단의 끝, 지하철역 입구에서 무심히 고개를 들었다.

 

“와-...”

 

바로 앞에 주차장이 펼쳐진 위로 노을이 지는 하늘이 보였다. 몽실몽실 작은 털뭉치 같은 양떼구름 사이사이로 옅은 금빛이 스며들고, 짙은 노란색과 황금빛 주황색이 어우러진 하늘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 장마 끝났구나.’

 

그 순간, 벽과 장 구석을 잠식한 곰팡이가 생각났다. 어느새 집을 잠식한 곰팡이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짐과 마무리되지 않은 페인트 칠, 천천히 하나하나 떠올리는 동안 마음이 가라앉았다. 말갛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있었다.

 

“여기서 뭐해?”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남편이 의아한 얼굴로 옆에 서있었다.

 

“그냥. 하늘이 너무 예뻐서.”

 

그는 고개를 돌려 더욱 짙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았다.

남편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다 살며시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우리 오랜만에 같이 맥주 한잔 어때?”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손을 잡고 근처의 아담한 맥주바에 들어갔다. 간단하게 안주를 주문하고 작은 맥주 한병을 들고서 자리에 앉았다. 병을 따서 한모금을 넘겨 목을 매끄럽게 만들고 입을 열었다.

 

“화내고 짜증내서 미안해.”

 

불시에 나온 사과에 남편은 머쓱해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나도 미안해.”

 

약간의 어색함이 흐르고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 곰팡이. 찾아보니까 쉽게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더라고...”

 

“그래? 어떻게?”

 

이후로는 맥주를 마시고 안주를 집어먹으며 곰팡이를 제거할 방법과 짐정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의논하며 오랜만에 즐겁게 대화하며 시간을 보냈다. 모처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진 골목을 남편의 팔짱을 끼고서 걸으며 환한 달을 바라보았다.

 

문득 그와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그날도 하늘이 참 예뻤었다.

 

추억에 젖어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햇볕이 쨍쨍한 날씨에 감사하며 창문과 문을 전부 열어두고 곰팡이와 사투를 시작했다. 곰팡이를 제거하는 비법이라며 알아낸 방법을 이용해 열심히 뿌리고, 닦아내고, 말리는 동안 해는 중천을 지나갔다. 해가 저물 즈음에는 곰팡이는 말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깨끗하네. 좋다.”

 

개운한 미소를 지으며 말끔해진 천장과 벽을 둘러보았다. 이 집에 처음으로 들어섰을 때가 생각났다.

 

“여보.”

 

“응?”

 

상쾌한 오렌지 빛 노을이 천장과 벽을 물들이는 걸 보며 그의 어깨에 살포시 머리를 기대었다.

 

“고마워.”

 

그는 싱긋- 웃으며 손을 들어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포근한 온기에 서로 기대어 노을이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속삭였다. 서로를 사랑한 처음처럼, 신뢰와 사랑을 약조한 그때처럼, 잔잔하고 따스하게 두근거리며 설레는 시간 속에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진다.

 

- 언제나 당신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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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愛

나를 잊지 말아요

나를 잊지 말아요.

 

여리게 밝아오는 하늘 아래 새벽 이슬에 젖어 또르르- 한방울 흘러냅니다.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리운 그대를 기다리며...

 

당신은 내게 생애 처음으로 느껴본 설렘이었습니다.

모질고 고된 일상 속에서 처음으로 맛본 달콤함이었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대를 향한 마음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에 짧은 만남이라도 소중했습니다.

 

당신과 함께하는 그 시간, 그 순간이 더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습니다.

이별이 멀지 않음을 알면서도 잊을 수 있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비록 당신이 떠나가더라도, 더 이상 만날 수 없더라도 잊지 않겠습니다.

나와 함께한 시간과 기억이 그대에게 아픔이 아닌 추억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이제는 곁에 다가갈 수조차 없기에 다시 만날 때에는 먼발치에서 나마 볼 수 있기를...

투명한 이슬을 떨어내는 물빛 꽃송이를 바라보며 간절하게 바랍니다.

 

그대여 나를 잊지 말아요.

 

우리 함께한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하게 웃어요.

가슴 아픈 상처가 아닌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해줘요.

 

그대여 나를 잊지 말아요.

 

나를 잊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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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라는 감정

관계의 종지부

 

 

 

   그건 작별인사 같은게 아니었다. 내가 생각했던 관계에 종지부를 찍겠노라 선언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우리에겐 꽤 아름답지 않은 끝이었다. 내가 그에게서 느꼈던 일말의 동정심도 털어버리겠다는 뜻이었으며,

이제 그가 했던 어떤 달콤한 말도 붙잡고 있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되돌아 생각했을 때, 함께했던 순간들이 많아서 털어낼 감정의 잔재들이 수북했다. 조금 더 어린 나였더라면 끝내 찾을 수도 없는 이유를 찾아헤매며 매달렸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없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인데, 나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

 

  그 순간 처절하게 울지 못했던 것은 당신이 아닌, 그 이전의 누군가들이 만들고 간 상처가 나를 견고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상처받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켜켜이 쌓여 견고함을 만들었고, 나는 그래서 당신의 어떠한 말도 들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래도 두렵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혼자 바라보고 고민해야 할지. 돌아오는 상처를 감내하기 위해 얼마나 더 단단해져야 할지. 사실 나는 견고해지고 싶지 않다. 막 돋아난 새순처럼 푸르르고 연약한 존재이고 싶단 말이다.

 

   나는 그래서 당신을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