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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B

 

 

 

B급 코드가 수면 위로 올라온 지 몇 년이 지났다. 과거 B급은 다소 그늘진 성향을 드러내는 의미로 통용되었지만, 지금은 가벼움과 웃음, 반전이라는 요소가 전면에 드러나 있다. 이는 비주류에 대한 대중 일반의 시각의 변화를 증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도 하나의 취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된 것. 가요계는 물론이거니와 광고계, 영화계 등 문화 산업 전반에, B급 문화는 이미 확산해 있다. 음지에 머물러 있던 마이너 문화가 양지로 끌어내진 것이다. 이제 병맛은 조롱의 대상이 아니며, 그것은 오히려 너무 진지하고 어두운 현실 속에서 사람들을 웃게 해줄 수 있는 유희의 대상의 위치를 갖는다.

 

재미는 대중문화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저마다의 피로에 지친 사람들은 더는 문화를 콧대 높은 사람들이 독점하는 예술로서 대하려 하지 않는 듯하다. 남들과의 경쟁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세계에서 번쩍이는 스펙으로 자신을 고급화하지만, 마음 한 켠에는 불편함을 잔뜩 축적해두고 사는 우리에게, 싼 티를 간판으로 내건 B급 문화는 꽁꽁 감춰두었던 욕망을 꿈틀거리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내숭에 길들여진 양반들이 저잣거리 사당패를 보고 혀를 끌끌 차면서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자꾸만 곁눈질로 훔쳐보게 되는 것처럼.

 

B급 문화의 가볍고 고급스럽지 못한 모양새 때문에, 그것이 속 빈 강정처럼 아무 내용이 없다고 지레 짐작해서는 안 된다. B라는 알파벳의 어감 때문에, 그것이 A의 하위 혹은 A가 되지 못한 어떤 것처럼 여겨지기 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B급 문화는 형식적인 틀에 갇힌 A가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조명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 그것은 다양한 문화를 누리고 싶어 하는 대중들을 위해 존재해야 할 필수요소이기도 하다. A와 다른 것으로서의 B, 이것이 B급 문화가 나아가는 방향이다.

 

90년대를 주름잡았던 홍콩 배우 주성치의 영화는 영화관보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훨씬 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보고 싶지만 왠지 나 혼자 봐야 할 것 같았던, B급 문화에 대한 이중모션에서 마이너의 기원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단지 우리는 사회적인 존재이기에, 남들의 평균에 맞추려 겉으로는 내색하기 힘든 것들을 마이너라는 단어로 묶어야 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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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어떤 여행

[안녕,어떤여행] D+08 팀 로드리고 in 우유니

 

지난번보다는 나아진 컨디션으로 두 번째 선라이즈 투어를 나선다. 오아시스 여행사 앞에는 한국인들이 바글바글한데, 나는 호다카 앞에서 일본인들 사이에 조용히 서있었다. 오아시스와 달리 호다카는 장화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 보라색 헌트 부츠를 골랐다. 마리노와 아사코가 그나마 친근하게 말을 걸어주었는데, 이 친구들은 상태가 조금 독특(?)했다. 흥이 지나치게 넘친다고 할까, 아무튼 내가 알던 일본인들 특유의 분위기와는 상당히 달랐다. 그래도 아사코가 영어로 계속 통역을 해줘서 그 그룹에서 무사히 투어를 진행할 수 있었다.

 

스타라이트 동안 몇 장의 그룹 포토를 찍고 일출까지는 각자 시간을 보냈다. 사진을 찍어달란 말이 쉽게 나오질 않아 눈치를 보다 몇 장 찍고 너무 추워 차 안에 머물렀다. 그리고 호다카의 가이드(그의 이름도 모른다)는 아예 대놓고 내내 차 안에서 잠을 잤다. 어제 우리에게 항의를 당한(?) 가이드는 그래도 밖에서 서성이며 우리가 해달라는 건 거의 다 해주었는데, 좀 미안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별로 불만이 없는 것 같은 걸 보면, 우리가 너무 유별난 건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해가 떠올랐고, 가이드가 나와 드디어 몇 장의 그룹 포토를 찍어주었다. 어제와는 달리, 조금은 외로운 기분이었다. 여행지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건 썩 유쾌하지 않은 일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이곳, 우유니에서 만큼은 예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말이 통해야 합도 잘 맞고 예쁜 사진들과 즐거운 수다들이 오갈 수 있는 것 같다. 마지막 선셋 투어는 그냥 오아시스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가이드보단 팀원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물론 6명의 일본인 친구들은 친절하고 상냥했지만, 어제처럼 즐겁지는 않았다. 그래도 외국인들과 다른 여행사의 투어를 해본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마지막으로 선셋 투어를 한 번 더 할 생각이었는데, 결국 오아시스 여행사로 돌아가게 되었다. 마침 선셋 투어 빈자리가 딱 1개 남아있어, 지나가던 한국인 여자 둘에게 펜 좀 빌려 달라니 뒤따라 오던 남자들에게 있을 거라고 가르쳐줬다. 펜을 빌려 이름을 적으니, 그녀들이 자기들도 그 투어를 한다고 해 오후에 만나자고 하고 헤어졌다. 9시에 찾으러 오라던 세탁물을 조금 일찍 찾으러 갔다. 한참 벨을 눌러도 나오지 않아 결국 2층까지 올라가 재촉해서 세탁물을 받았다. 조금 깨끗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소금물 흔적은 깨끗이 사라졌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나오니 아침이 준비되었다고 한다. 숙소의 아침 식사는 꽤 맛있다. 매번 싹싹 비우게 된다. 그러니까 고산병에는 과식이 금물인데...! 그리고 선셋 투어 전까지 뒤죽박죽이 된 잠을 청한다. 오후 1시쯤 일어나 씻고 오아시스 회사에 결제를 하러 갔다. 원래 빈칸에 이름을 적고 바로 결제를 해야 예약이 확정되는데, 아침엔 문을 열지 않아 이름만 적어둔 터였다. 혹시나 그 사이 예약이 취소되진 않았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여행사로 갔더니, 마침 한국인 세 명과 여행사의 남녀 사장, 그리고 가이드로 추정되는 인물이 한창 싸우고 있었다. (이제는 으레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가만히 듣다 보니, 내가 하려는 투어 얘긴 거 같았다. 원래 하기로 되어있던 인원 중 4명이 취소를 해서 우리 팀이 분해되었다고. 그래서 내가 바로 마지막 이름의 주인공이라고 했더니 그럼 두 명의 원래 우리 팀에 한 명의 한국인 여자, 그리고 나까지 해서 최소 2명만 더 구해오면 로드리고가 가이드를 해주느냐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한국인 커플(당시엔 커플임 줄 알았다)이 내게 가이드가 로드리고인 줄 알고 예약했냐고 묻길래, 그건 아니라고 했더니 무조건 로드리고로 알고 했다고 하라고 했다(!) 사실 아침에 펜을 빌려준 남자분들이 로메오라고 했지만, 일단 나도 로드리고로 우기고 본다. 그리고 나는 알 수 없는 대화들이 한참 오간 다음, 결론은 왜인지 알 수 없지만 나만 결제하면 원래 이름 적힌 대로 7명이 로드리고 팀으로 진행하는 것이었다. 로드리고는 이 여행사의 투톱으로 꼽히는 가이드인데, 그 자리에 있던 인물이 바로 로드리고였다. 나는 얼른 결제를 하고 예약을 확정했다. 와인과 치즈가 포함되어 다른 팀보다 비싼 1인 140볼. 하지만 가이드 로드리고가 확정이라면 노 프라블럼! 우리 팀에 합류하고 싶어 했던 다른 한 명의 여자분에겐 미안하지만, 어쨌든 아침에 펜을 빌려서라도 이름을 적길 잘했다. 한 번 가이드가 바뀐 적이 있기 때문에 몇 번이나 로드리고에게 "좀 있다 너랑 같이 가는 거 맞지?"라고 확인했다. 커플인 줄 알았던 한국인 남녀, 봉균과 혜인은 그냥 동행 중이었고 키친이 있는 숙소를 찾고 있었다. 내게 숙소가 어디냐고 물었지만, 우리 숙소는 아마 우유니에서 제일 비싼 숙소일 것이어서 얼른 키친이 없다고 했다. 봉균, 혜인과 헤어져 나는 점심을 먹기로 했다. 어제부터 먹고 싶었던 크림 파스타를 먹었다. 맛은, 없었다. 숙소에 들어 리모컨을 챙기고 감기약을 먹었다. 약을 먹지 않으면 콧물이 멈추질 않는다.

 

시간을 맞춰 오아시스 앞으로 가니 좀 전에 만났던 얼굴들이 다 모여있었다. 앳된 얼굴의 한국인 남자 둘과 아침에 만난 여자 둘, 봉균과 혜인, 그리고 나까지 일곱이다. 한국인 남자 둘은 부산에서 온 스물세 살 애기들이었는데 (사실 누나라기 보단 이모가 맞지 않을까 싶은) 정말로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아침에 내가 펜을 빌릴 수 있도록 도와준 여자들은 자매라고, 언니 선영은 나와 동갑이고 동생 난희는 서른 살. 이렇게 셋만 유일한 삼십대다. 두 사람은 회사를 휴직하고 여행을 왔다고 했다. (좋은 회사들이다! 참, 난희가 다니는 회사는 FNC였다) 우유니 첫째 날을 제외하곤 계속 이렇게 왕언니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귀여운 막내들, 상남과 도훈. (도훈은 카메라가 없고 상남은 휴대폰이 없었다, 사실 상남은 카메라도 잃어버려 여행자로부터 고프로를 하나 샀다) 우리는 유난히 금세 친해져서 첫 시작부터 왠지 느낌이 좋았다.

 

로드리고는 그나마 영어를 할 줄 아는 가이드라서 정말 좋았다! 스물여섯의 이 청년은 대학에서 투어리즘을 전공하고 있어서 데이투어는 할 수 없다고 했다. (뭔가 귀엽다) 우리가 로드리고! 로드리고! 를 외칠 때마다 부끄러워하는 게 얼마나 귀여운지, 누나는 너한테 완전 반했어...♥︎

 

사막에 접어들자 로드리고는 지프 지붕 위에 올라가 보겠냐고 물었다. 당연히 우리는 좋아서 냉큼 봉균, 혜인, 선영이 먼저 올라갔다. 그런데 한참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로드리고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저기, 지금 얘 조는 거 같은데...?"라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속도가 높아졌고 나는 얼른 로드리고를 깨웠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휴, 그런데 왜 화나거나 무섭지 않은지! 그저 신나기만 했다. 나도 지붕 위에 올라가 봤는데, 너무너무 신났다!

 

마른 우유니에서 로드리고는 열정을 다해 동영상을 찍어주었고 우리는 열심히 시키는 대로 했다. 다들 합이 척척 맞아서 엄청 신났다. 중간에 로드리고에게 고맙다고 팁을 모아서 줬다. 물 찬 우유니에서도 로드리고의 열정은 끝이 없어, 결국 우리가 지치고 말았다. 말이 필요 없는, 그저 사진이 모든 걸 말해주는 아름다운 순간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다시 마른 우유니에 멈춰, 별빛 아래서 와인과 치즈를 먹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밤이어도 되는 걸까! 내일 우유니를 떠나는데, 마지막 투어가 이렇게 만족스러워 정말 다행이었다.

 

로드리고가 또 졸지 않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로드리고는 나중에 대학을 졸업하면 호텔이나 투어 에이전시를 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나는 이미 너의 팬이 이렇게 많으니, 너는 뭘 하든 다 잘 될 거라고 말해줬다. 로드리고는 만약에 허니문으로 우유니에 오면 자기가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팀을 만나서 기쁘다고도 했다. 그는 우유니에서 나고 자랐는데, 가족들은 지금 다른 도시에 있고 우유니에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여자 친구는 없냐고 물으니, 너무 바빠서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차가 여자 친구라는 뻔한 멘트를 날려서, 그러지 말라고 말해줬다. 도로도 없고 불빛도 없는 사막에서 어떻게 길을 찾은 지 궁금했는데, 자 멀리 있는 도시의 불빛과 소금 호텔의 불빛을 등대 삼아 운전을 하는 거라고 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아쉽게도 도착하고 말았다. 우리는 조금 더 돈을 모아 팁을 더 줬다. 10볼이 전혀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아니, 우리가 느낀 기분에 비하면 모자랄 정도였다. 나는 일을 할 때, 저렇게 열심히 한 적이 있었을까? 내가 정말 하고 싶어서 일을 하면 주변에서도 분명 그걸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로드리고는 정말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게 절로 느껴져 왠지 자극이 되었다.

 

다시 선라이즈를 가야 한다는 로드리고와 헤어지고 우리끼리 술 한 잔 하기로 했다. 시계탑 근처 식당에 들어가 피자와 맥주를 시키고 상남과 도훈이 소주를 가지고 와, 우유니에서 소맥을 마셨다(!) 나는 먹고 있는 약이 한 보따리라서 술은 조금만 마셨다. 12시가 조금 넘어, 술이 약한 상남과 도훈이 얼른 자리를 떠나 나머지도 헤어졌다. 일정이 맞는다면, 산페드로 드 아타카마에서도 만나자고 했다. 오랜만에 정상적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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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어떤 여행

[안녕,어떤여행] D+07 우유니의 아버지?

 

2시간 남짓 자고 일어나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선라이즈 투어를 하러 뛰쳐나갔다. 고산병 증상인지 알 수 없지만 조금만 빨리 걸으면 오른쪽 옆구리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혹시 맹장염 같은 건 아니겠지?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든다. (다행히 고산지대에서 내려오니 괜찮다) 숙소는 컨디션이 매우 좋은데, 다만 투어 회사들이 있는 거리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서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3시를 1분 앞두고 도착해 겨우 지프에 올라탔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는데 아무도 반응이 없다. 시무룩한 채로 눈을 감고 있는다. 중간에 내려서 장화를 갈아 신는데, 그제야 다들 인사를 나눈다. 첫인상과는 달리 모두 좋은 사람들 같았다.

 

다소 무리한 일정임에도 이 투어를 신청한 건 가이드가 우유니의 아버지(?)라는 빅토르라고 해서인데, 나랑 같은 이유로 같이 신청한 정음은 가이드가 완전 1개월 차 비기너로 바뀌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다행히 정음이 우유니에서 벌써 4일이나 머문 터라 우리끼리 별 사진을 찍으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지만, 가이드는 딱히 한 게 없었다. 혜원과 서영이 선라이즈는 정말 춥다고 경고를 했었는데, 와! 정말로 추워서 죽을 것 같았다. 예진과 둘이 부둥켜안고 바들바들 떨었다. 팀원 중에 스페인어를 잘하는 친구가 있어서 좋았다. 유난히 언어의 벽을 절감하는 여행이다.

 

정말로 예쁜 우유니의 하늘을 봤고 기분 좋게 돌아오는 길, 재원이 SD카드를 좀 달라고 했다. 알다시피 SD카드란 친구들은 워낙 예민해서 잠시 망설였다. 순간 머리 속에 오류가 스쳐갔는데, 아마도 그게 내 예지력이 발동된 게 아니었을까? 케이스를 벗기고 있는데 "꺼내기 힘들어요?"라고 묻길래 "네, 좀" 하고 완곡한 거절을 했으나 결국 나는 그에게 SD카드를 건넸다. 그는 리더기로 자신의 휴대폰에 연결해보더니 "안 되네" 하고 내게 다시 돌려줬지만, 이미 그 카드는 포맷 오류가 생긴 후였다. 하........ 화내면 안 돼. 나는 여기서 유일한 30대니까. 우유니 사진은 다른 사람들도 찍었고 나는 선셋과 선라이즈를 한 번씩 더 할 생각이라 타격이 덜하지만 라파즈의 이틀 치가 그 안에 있었다. 처마 화는 못 내고 팀원들에게 애써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재원은 몹시 당황하며 미안해했다. (그래, 미안해야 마땅하다) 사진을 빨리 받고 싶었다면 와이파이로 연결해서 휴대폰으로 건네줄 수 있었는데, 하... 숙소에 돌아와 컴퓨터로 시도해도 마찬가지여서 여러 번 시도하면 복구가 더 어려워진다고 해서 고이 케이스에 담아 캐리어 깊숙이에 넣어두었다. 5월 중순까지 그 사진들의 운명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투어가 끝나고 가이드가 바뀐 것을 (또) 항의하러 갔다. 정음이 몹시 화를 냈고 스페인어를 잘하는 형근이 힘을 보탰다. 결국 가이드까지 불러와 삼자대면을 했으나, 나는 알아들을 수 없어서 답답했다.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예진에게 살짝 물어보니 가이드와 회사는 되려 큰 소리를 치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들으니 정음이 빅토르나 로드리고 같은 가이드를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고 했더니 우리 가이드(난 이름도 모른다)는 자기가 그들만큼 일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쳤다고 했다. 결국 우리의 항의는 10볼씩 받고 마무리됐고 이틀 연속 '먹고 떨어져'를 경험하고 나니 정말 정이 떨어져 호다카 투어 회사에 가서 6명의 일본인과 투어를 신청했다.

 

일단은 졸려서 낮잠을 잤고 오후에 일어나 런드리를 맡기고 점심을 먹을 겸 밖으로 나갔다. 우유니는 보통 투어를 하기 위해 머무는 마을이라 마을 자체는 별로 볼 게 없다. 그래도 천천히 걸으며 둘러본 마을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맑고 건조한 날씨에 파란 하늘이 있어서 싫어할 수가 없는 마을이긴 했다. 다만, 과장 좀 해서 늑대 같은 길멍멍이들과 흙먼지, 고산 지대라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는 것만 빼면.

 

2박 3일 투어에서 첫째 날 일정은 덥다고 반바지를 입기를 권해서 반바지를 하나 사려고 했는데, 겨우 찾은 한 곳에선 정말 촌스러운 스팽글이 달린 반바지가 150볼이나 해서 포기했다. (그리고 첫째 날은 진짜 추웠다) 목이 말라 노점에서 주스를 한 잔 사 먹었다. 다른 사람들은 파르페를 주문했는데 얼마나 예쁘게 만들어 주던지! 내가 단 걸 좋아했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 같다. 지나가다 신라면을 파는 식당을 발견해 몸도 안 좋은 터라 보양식(?)으로 신라면을 먹었다. 어지간 해선 한국 음식을 찾지 않는데. 6시 조금 넘어 짧은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우유니에서는 모든 것이 투어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틈이 날 때마다 자 둬야만 한다. 다시 새벽 3시 선라이즈 투어를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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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어떤 여행

[안녕,어떤여행] D+04 아름다운 나의 도시

 

오늘은 해보고 싶은 일들이 좀 있어서 부지런히 움직이기로 했다. 어김없이 맛있는 아침을 먹는데, 갑자기 햇살이 비추면서 너무 행복해졌다. 누구라도 붙잡고 "저 지금 행복해요!"라고 소리치고 싶은 기분. 그렇지만 얌전하게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걱정했던 두통은 아주 미미하다. 하지만 나는 그리 오래 행복하진 못했다. 킬리킬리 전망대를 내일 밤에 택시나 우버로 다녀올 생각이라서 라이카코타 전망대는 낮에 다녀오기로 했는데, 마침 숙소 근처라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최단거리 길은 뭔가 복잡해서 큰길로 가는 두 번째 경로를 선택했는데, 덕분에 운동 자-알 했다. 10분이면 될 길을 30분은 족히 걸은 듯했다. 몇 번이나 물어가면서. 그래도 (스페인어지만) 친절하게 대답해준 아주머니와 여학생들 덕분에 기뻤다.

 

라이카코타에 서자, 일단 드는 생각은 숙소가 코 앞이라는 사실이었고 감탄은 두 번째였다. 무슨 연유로 이 높은 산속 분지에 저렇게 달동네를 만들고 살아가는 걸까. 붉은 지붕들이 빼곡하게 산비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난 아무래도 이 도시, 라파즈가 좋은 것 같다. 이래서 첫 정이 무섭다. 비교의 대상이 없기 때문에. 나쁜 공기 때문에 쉴 새 없이 콧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뇨제 덕분에 화장실도 급해 숙소에 들르기로 했다. 내려오기는 분명 쉬웠을 계단은, 오르기엔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숨이 턱까지, 아니, 머리까지 차올랐다. 한국에서도 운동부족인 내가 산소가 부족한 여기서 계단을 오르고 있으니, 고통도 2배다. 거의 울먹이며 숙소로 돌아와 일단 쇼파에 드러누웠다. 괜찮았던 두통이 다시 시작되었다.

 

1시 30분에 떠나는 달의 계곡 시티투어에 참가하고 싶어서, 다시 몸을 일으켰다. 들어오면서 눈여겨보아둔 샌드위치 가게에 들러 샌드위치와 딸기주스를 먹었다. 13볼, 약 2천원에 아보카도가 듬뿍 든 샌드위치였다. 하지만 과식은 금물이라, 조금만 먹었다. 샌드위치를 먹고 나왔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정말 총소리였다. 이 대낮에? 총이라고? 오마이갓! 숙소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 걸까! 일단은 목에 걸고 다니던 카메라를 백팩에 넣고 소리가 들리는 큰길 말고 아래쪽 길을 따라 걸었다. 사람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계속 총소리가 나는데 누구 하나 당황하지 않고 가던 길을 가길래, 나도 의연하게 가던 길을 가기로 했다. 사실 스페인어가 됐다면 이유라도 물어볼 텐데, 여러모로 언어 장벽을 실감하는 여행이다.

 

시티투어 버스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설마 이거 나 혼자 가는 건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백인 남자 한 명이 탔고 출발 직전이 일본인 가족이 마지막으로 탔다. 백인 남자는 분명히 영어권 나라에서 온 것 같은데, 영어를 쓰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말해서 더 이상 말을 걸진 않았다. 흥. 일본인 가족은 사진을 찍어주면서 물어보니 나고야에서 왔다고 했다. 쳇, 하필이면 나고야여서 할 말이 없었다. 달의 계곡은 꽤 근사했고, 가는 길에 라파즈에서 가장 고도가 낮은 해발 3,000미터 지점을 지나서 산소를 많~이 마셔두라고 했다. 맙소사! 기분 탓인지 정말 숨 쉬기가 편한 것 같기도 하고. 달의 계곡은 달의 표면처럼 생긴 지형 탓에 붙은 이름. 후에 갈 칠레 산페드로 아타카마에도 동일한 이름의 계곡이 있다. 이런 계곡은 왜 생겼는지 궁금했지만, 영어가 짧아 관뒀다. 난 점점 의기소침 중이다.

 

다시 라파즈 시티로 돌아와서는 이 도시의 명물인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원래 계획은 내일이었는데 시간도 남았고 다행히 체력도 남았다. 가이드가 노란 케이블카가 제일 가깝다고 알려주는데, 4블럭인가를 가야 한다고. 일단 출발하는데, 맞게 가는 건지 알 수가 있나! 결국 아주 가파른 언덕 앞에서 이 길이 틀리면 정말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 나와 눈이 마주치자 예쁘게 웃는 언니(혹은 동생)에게 "텔레페리코!"를 외쳤다. 뭐라 설명을 하더니 내가 못 알아듣는 걸 알자 따라오라며 갑자기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아, 너무 고마워! 나도 씩씩하게 언덕을 올라야지......!

 

아, 근데 또 언덕이. 마침 텔레페리코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 "알겠어, 알겠어, 혼자 가볼게!" 했더니 "정말? 정말 괜찮아? 여기서 더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꺾어야 해!"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언니. 내가 절대 언니 따라가는 게 힘들어서가 아니에요, 방금 그 언덕을 내려온 언니가 다시 올라가는 게 너무 미안해서 그래요. "그라시아스!" 유일하게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스페인어를 크게 소리쳤다. 고마워요, 예쁜 언니. 다음 언덕에선 결국 남의 집 대문 앞에 주저앉고 말았다. 숨은 차고 심장은 날뛰고 다리는 천근만근, 마치 몸에 추를 매달고 걷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더 가보자! 하고 힘을 내보기로 한다. 마침내 평지가 나오고 공원은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평화로운 공원을 지나, 예쁜 언니가 일러준 대로 오른쪽으로 꺾자 드디어 케이블카 정류장이! 만세!

 

케이블카는 지하철을 만들 수 없는 라파즈 지형의 특성을 고려해 고안해낸 대중교통인데, 해발 4,000미터쯤 되는 산꼭대기와 아래쪽을 연결해준다. 내 기분으로는 케이블카 타러 가다 먼저 죽겠구나, 싶었지만. 3볼을 내고 일단 상행선을 탔다. 아, 정말 그 고생을 하길 잘했구나 싶었다. 라파즈가 이렇게 큰 도시였다니! 아래서 보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도시가 그곳에 있었다. 이 도시은 가난한 사람일수록 산 위에 산다는데, 꼭대기 정류장은 왠지 분위기가 좀 별로였다. 기분 탓인가? 다시 제일 아래까지 내려가 본다. 그리고 원래 탔던 중간 정류장으로 올라가 걸어서 언덕을 내려가기로 한다. 노점에서 5볼짜리 오렌지 주스를 사 먹었다. 천원도 안 하는데, 물도 시럽도 없는 즉석 주스! 오예! 숙소까진 다시 걸어서 가야 하는데 조금 걷다가 안 되겠어서 큰 맘먹고 택시를 탔다. 숙소 바로 옆 큰 호텔 이름을 말하고 흥정도 없이 출발! 트래픽잼이 장난 아니다, 이 도시는. 그래도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고, 요금은 12볼. 예상했던 범위 내라서 기꺼이 지불했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려는데, 마땅히 먹을 곳을 찾지 못해 리셉션에 물어보니 산프란치스코 광장 근처의 고려 대상 중 하나였던 호텔 라 카소나의 레스토랑을 추천한다. 거기 말고 가까운 데는 없냐니 오전에 내가 죽을 뻔했던 계단 옆 식당을 추천해준다. 호기롭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6시부터 영업한다고, 30분 남아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난 이제 좀 지쳤거든. 볼리비아식 슈니첼은 꽤 맛있었지만 양이 많아서 많이 먹질 못했고 크림이 올라간 비엔나를 기대하고 시킨 비엔나는 (식당 이름도 비엔나였다) 웨이터 아저씨가 꼬냑이라고 말해줬는데 제대로 못 알아듣고 (또) Si, si라고 해놓곤 나오고 나서 알코올이냐고 물어봐서 아저씨도 나도 당황. "네, 네, 술 주세요!" 결국 카푸치노로 바꿔주셨다. 비엔나는 꽤나 수준 높은 다이닝 레스토랑이었다. 즉, 내가 스니커즈를 신고 갈 곳은 아니었단 말이다, 하하.

 

힝. 저녁을 먹고 나오니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진다. 하루 종일 흐리다 맑기를 반복하더니, 결국. 우기에서 건기로 넘어가는 시점이라 어쩔 수 없나 보다. 열심히 뛰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컴퓨터로 외장하드에 사진을 백업하고 졸음이 몰려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시차 때문인지 (내 몸은 그런 거 모르는 줄 알았는데?) 새벽에 깨서는 다시 잠이 들질 않는다.

 

+ 참, 댈러스에서 카메라를 떨어트렸다. 그 충격으로 렌즈캡이 밀려들어가 UV 필터를 산산조각 냈다. 다행히 렌즈는 무사하다. 필터는 이런 용도로 쓰는 거구나아!

++ 참, 총소리는 무슨 시위 중에 시위대가 공중으로 공포탄을 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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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雜

사막의 나비

사막의 나비

 

태양이 내려쬐는 뜨거운 모래 바다 위에서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날개를 가진 나비가 팔랑인다.

위로 올라가면 햇살이 뜨겁고 아래로 내려앉기에는 데워진 모래가 뜨겁다.

 

꽃도 없고 가지도 없으며 작은 돌멩이 하나 보이지를 않는다.

쉬어갈 곳을 찾지 못하고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나비는 계속해서 허공을 헤엄친다.

 

수십, 수백, 수천…나비가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날개가 남긴 흔적이 이어지며 쌓인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얼마나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한번의 날갯짓이 수만번의 흔적을 남길 때까지 쉼 없이 날아도 멈출 수가 없다.

쉬지 못한 날개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푸른 나비는 비틀거린다.

 

마침내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고 너덜너덜해진 날개로 식어가는 모래 위에 내려앉았을 때

차가워지는 모래를 따라 나비의 열기도 식어가고 불어오는 바람에 서서히 가라앉는다.

 

사구 속에 가라앉은 나비는 흔적도 보이지 않지만 허공에 새겨진 날개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모래 파도 위로 불어오는 바람에 뒤섞이며 휘몰아치는 푸른 날개의 잔상.

 

작은 나비 한 마리가 허공에 남긴 수천, 수만의 발자국이 모여 거대한 태풍을 이룬다.

마치 수천, 수만의 모래 알갱이가 모여서 사막을 이루듯이…

 

인터넷이라는 사막, 네티즌이라는 나비

 

문명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전하며 쌓이고 쌓인 노력이 이루어낸 정보의 바다 인터넷.

하루 또는 1시간 만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정보가 쌓이고 쏟아진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마우스와 키보드를 타고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며 흔적을 남긴다.

공감, 좋아요, 댓글, 하트, 별…무수한 날갯짓을 남기는 수많은 나비 떼.

 

무심코 남긴 작은 흔적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괴로움을 선사하고

무심코 남긴 작은 흔적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감동이 되어 축복한다.

 

무수한 나비가 남기고 간 자리에서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린다.

때로는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생명을 죽이기도 하는 나비의 날갯짓.

 

의미 없이 흘린 한마디가 이리저리 휩쓸리며 부풀려지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뼈와 살이 붙어 진실이 되어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무수한 무관심이 쌓이고 덮여 알려져야 하는 것들이 묻히기도 하고

거짓이 진실의 가면을 쓰기도, 진실이 거짓이라는 무덤에 들어가기도 한다.

 

마치 뜨거운 아지랑이처럼 또는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날개의 잔상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신기루가 되어 눈을 어지럽힌다.

 

 

당신은 어떤 나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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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거닐다

비가 오는 밤이면

 

이렇게 오늘 밤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면

돌곶이역에서 살았던, 

아주 작았던 옥탑방이 생각난다.

 

다시 부모님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모아둔 돈도 없고,

하지만 당장 있던 곳에서 나가야 할 때.

 

가장 저렴한 곳을 고르고 골랐다.

서울에서도 저 윗동네,

상가건물 옥탑에 있었던 방 하나.

심지어는 방세조차 둘이 나눠 냈던.

 

그렇게 처음 만난 친구와 함께 옥탑방 생활을 했다.

 

그녀나 나나 아무 기댈곳 없이 서울로 올라와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발버둥치는 중이었다.

 

한번은 비오는 날, 둘이 조용히 앉아 옥상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있잖아요, 전 비오는 날의 로망이 하나 있어요. 빗소리를 들으면서 와인 한잔 마시는거에요. 아직 한번도 마셔본 적은 없지만."

 

"그런 로망이라면 언제든 실현할 수 있죠! 우리 당장 와인 하나 사러 가볼까요?"

 

바로 이마트에 가서 점원의 추천을 받아 만 얼마짜리 와인 한병을 샀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다이소에서 와인잔도 덤으로 준비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와인잔이 아닌 샴페인 잔이었지만)

 

그녀나 나나 술이 약했다. 그저 와인잔에 반정도만 따르고는 비오는 옥상에 서서 한 두 모금을 마셨을 뿐이다.

 

그 이후로 비가 오는 밤이면, 우린 약속한 것도 아닌데 옥상에 나가 와인을 즐겼다. 비오지 않은 날엔 생각조차 나지 않던 와인을 말이다. 

 

우리가 즐길 수 있었던 유일한 사치였다.

 

정말로 무더웠던 여름이 그렇게 갔다. 

난 다시 집을 옮기게 되었고, 그 후로 우린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비가 오는 날이면, 그 때의 기억이 따뜻하게 떠오른다.

 

정말 가난했던 20대의 어느 날, 

원룸에서조차 살 수 없었기에

좁은 옥탑방을 둘이서 공유하며,

 

비오는 날이면 즐겼던 

만 얼마짜리의 싸구려 와인 한 잔의 여유가

참 풍성했던 그 날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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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雜

비상구 : 탈출을 향해서

비상구 : 탈출을 향해서

 

하얀 바탕에 초록색의 그림.

계단에서 문에서 흔히 보이는 비상구 표지판이다.

 

그런 표지판에 지금 내 눈 앞에 수십 개가 있다.

수십 개의 표지판 아래는 똑같은 모양의 문도 수십 개가 닫혀있다.

 

그 광경에 당황한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그 웅성거림을 잠재우며 벽에 걸린 스피커에서 경쾌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자, 여러분.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했습니다.

이제 보시다시피 여러분의 앞에는 비상구가 남아있죠?」

 

그의 말대로 비상구가 코앞에 있다. 이제 이곳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어느 게 진짜인가 말이다! 그런 생각을 꿰뚫듯이 말이 이어진다.

 

「이중에 진짜 비상구는 단 하나입니다. 더불어 지나갈 수 인원은 단 3명!

그 3명이 지나간 뒤에는 모든 비상구가 자동으로 폐쇄됩니다. 흥미진진하죠?」

 

곳곳에서 욕설이 들려온다. 흥미진진하다니! 누가?

전혀 흥미진진하지 않다. 이 많은 사람 중에 단 3명만 나갈 수 있다는 말이잖은가.

 

「탈출을 하려면 어느 게 진짜인지 알아야겠죠? 힌트를 드릴까요?」

 

너무나 즐겁다는 듯이 흘러나오는 질문에 성난 목소리들이 튀어나온다.

당연히 힌트를 주어야 맞지 않나, 모든 표지판과 문이 똑같이 생겼는데.

 

「흐음. 어디, 어떤 힌트를 드릴까나?」

 

사람들은 힌트를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단 3명만이 이곳을 나갈 수 있다.

힌트를 듣고 누구보다 먼저 진짜 비상구를 찾아야한다.

 

「아하! 열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순간 정적이 넘실거리며 춤을 추었다. 이윽고 그 정적을 깨뜨리며 누군가 고함을 질렀다.

무슨 힌트가 그 따위냐며 버럭- 외침이 늘어간다.

 

「정말로 그것 말고는 달리 드릴 힌트가 없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말이죠.」

 

분노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에 누군가 안간힘을 짜내어 질문을 던졌다.

만에 하나 가짜를 열면 어떻게 되느냐고, 조금의 지체도 없이 대답이 흘러나온다.

 

「그야 당연히 여러분은 스스로가 지은 죗값을 치르게 되겠지요.」

 

억울하다. 난 죄가 없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정말로 억울하다.

그런 소리 없는 외침이 들리기라도 한 듯이 스피커에서 나온 말이 귀를 파고든다.

 

「여러분의 가장 큰 죄는 태만(怠慢)입니다.

그런 여러분이 이곳에서는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정말 속이 다 시원하답니다.

물론 그 수단과 방법은 제쳐두고 말이죠.」

 

욕지거리가 나오려는 걸 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게을렀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다.

매번 똑같은 일상에 지쳐 그렇게 살다보니 게을러진 것을, 그게 죄란 말인가? 죽을죄란 말인가?

 

「단 한번 뿐인 소중한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였으니, 그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답니까?

문을 여는 게 두렵다면 영원히 이곳에 있으세요. 말리지 않겠습니다. 그럼 이만.」

 

스피커가 꺼지고 간절하게 또는 애타게 그를 부르는 외침이 터져 나온다.

죽기 살기로 정말 생애 처음으로 안간힘을 다해 여기까지 왔다.

 

나는 바로 앞에 보이는 문으로 다가가 문손잡이를 잡았다.

덜덜 떨리는 손에 힘을 주고 한참을 그대로 서서 망설였다.

 

주변에서는 나처럼 문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도 있고 하나의 문을 두고 다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사람 수만큼 딱 맞는 문의 개수에 다들 문손잡이를 잡고 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끼익- 잠금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린다.

천천히 열리는 문밖의 희미한 빛 속으로 침을 꿀꺽- 삼키고 한걸음 내딛었다.

 

여기서 무사히 나간다면, 살아서 나간다면 이제는 그리 살지 않으리라.

매 순간 미련과 후회가 남지 않도록 살리라!

 

열 걸음 남짓, 빛이 나를 감싸고 나는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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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라는 감정

낯선남자

 

 

나는 그날 이름 모를 사내에게 모든 비밀을 털어놓았다.

우린 아직 통성명도 하기 전이었으며,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곤 어떻게 생겼는지가 전부였다.

그리고 우습게도 우리는 그날 남들에게 절대 말하지 않을 비밀들을 털어놓았다. 감정 밑바닥까지 모두 긁어 남김없이 털어놓자 조금은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우습네요. 초면에 이런 이야기를 하다니."

 

상대방이 먼저 웃었다.

 

"못할 건 없잖아요?"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나 자신도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긴했지만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러웠다.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의 바닥을 탐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둘이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날이 전부였다. 그 날 우리는 둘도 없는 소울메이트가 된 것처럼 서로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고 밑바닥까지 공유했다.

 

어쩌면 그건,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고 또 다시 만나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도. 그 밤이 지나면 서로에 대한건 모두 잊고 다시 또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것임을 알았기에. 아무 교집합도 없는 삶 속에서 그 날은 그저 일상의 한 에피소드로 남을 것임을 알았기에 가능했던 일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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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잡기

#0 씀.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매서운 추위에 입고있던 외투를 다시한번 여미게 만드는 날씨다. 다사다난했던 올해도 그 끝이 보인다. 물론, 개인적으로도 다사다난했고, 어떤 부분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다사다난의 의미도 달라질 것이다. 아무튼 필자 개인적으로는 힘든 한해였다.

 

부산과 창원에서 줄곧 생활해온 촌놈이 서울에서 직장을 구해, 본의아닌 상경을 하게되었으며, 보통사람들처럼 매일 아침 출근길에 사람들이 빼곡한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향했다. 어쩌다보니 남들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그나마 일하기 편해 보이는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으나, 필자도 어림없는 보통사람이었으니 남들만큼의 스트레스를 받는 채로 일하고 있었다.

 

운좋게 연말에 고향으로 내려와 카페에 앉아 한가로이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노라면, 회사에서의 갑갑했던 기억이 멀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지금도 그런 묘한 기분에 휩쌓인채로 글을 쓰고 있다. 물론, 02로 시작하는 서울 전화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면, 여느 보통사람처럼 심장이 두근거리고 걱정이 앞서는 직장인이다.

 

글을 쓴다라는 행위는 과연 어떤 행위 일까. 어떤 이에게는 아주 가치가 크고 숭고한 작업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이에게는 시간낭비에 불과한 작업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어떠한 가치로 사람들에게 느껴지던지 모든 것들은 오롯이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가 받아야 할 평가일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에 드는 생각은 글쓰기라는 행위는 그리 거창한 것도, 소수의 엘리트들에게만 허용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보통사람인 필자가 글을 몇글자 끼적거리고 있는 것 자체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그야말로 누구나 글을 쓰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언제부터,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했을까?

 

사실 글쓰기는 과거에는 소수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제한된 특권이었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 계층,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사람들은 생업을 하느라 글을 따로 배우고 익힐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서방에서는 라틴어가, 동방에서는 한자가 지배계층의 특권을 공고히 하는데에 이용되었다. 그러다보니 글쓰기의 행위는 이들에 의해 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문맹률은 낮아졌으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우리나라만 봐도 글못쓰는 사람의 비중이 과거와 비교해봤을 때, 극단적으로 낮아졌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행위는 무언가 보통사람이 하기엔 거리가 먼 것으로만 느껴졌다. 그래서 소위 문학을 한다던가 작가라고 하면 '저 사람은 특별하다'라는 선입견에 휩쌓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선입견이 서서히 깨져만 가고 있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수상자가 밥 딜런과 같이 문학을 향유하는 계층이 넓어졌다. 물론, 여기에 대해선 의견이 다른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의 향유층이 넓어지는 것을 나쁘게만 보진 않는다.

 

사실 문학이라는 것의 출발은 춤과 음악, 노랫말이 어우러진 원시종합예술행위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여기에서 분화가 되기도 하고 어우러지기도 하며, 작금의 소설, 극 등의 장르들이 등장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과거에는 단순히 보는 문학이 아닌 듣는 문학의 비중이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듣는 문학의 경우에는 휘발성이 높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구전되는 이야기에서 변형되는 부분이 많았을 것이고, 사라져버린 이야기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보는 문학이 대두되었을 것이다. 책이라는 매체가 등장하면서 구비되는 이야기들이 기록되어지고, 고착화되었을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작성하는데에 오래 걸리고, 집중해야 하는 보는 문학을 향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보는 문학은 미디어의 한계로 인해 일방향적 성격을 나타낼 수 밖에 없다. 작가가 독자에게 책을 통해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물론, 열린 결말이라던가 독자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면서 보완했다고는 하나 쌍방향적 소통이라기엔 부족했다.

 

이후에 발명된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등의 대중매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방향적인 미디어로 우리는 글을 읽어왔던 것이다. 보통사람은 글을 수용하는 독자, 소수의 사람들은 글을 쓰는 작가로 고정된 업을 수행해 온 것이다.

 

이제는 다르다. IT기술의 발전은 볼 수 있는 매체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불과 몇년 사이에 디스플레이 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하였다. 필자가 군 복무중일 때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이 막 생겼던 시기였다. 그런데 군복무를 마쳤을 때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기기를 목적성에 맞추어 여러개를 구비하는 이용자들이 늘어나면서 그야말로 N스크린 시대가 도래했다.

 

비단 IT기술은 하드웨어만이 발전하지 않았다. 각종 소셜미디어 서비스들이 오픈하면서 보다 쉽게 자신의 글을 남들과 공유하고 상호교환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런 소셜미디어 역시 하나의 글쓰기 플랫폼이라 필자는 바라본다. 각 플랫폼마다의 특성이 있고, 이 특성에 맞는 글들이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있다. 이 또한 하나의 장르 분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과거에 비해 독립출판의 기회도 많아졌고, 보통사람이 글을 쓰는데에 투입해야 할 비용은 급격하게 감소했다. 이 얼마나 글쓰기 좋은 시대인가. 그야말로 글쓰기의 시대다.

 

옴니글로같은 글쓰기 플랫폼 서비스들이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보다 많은 보통사람들이 글쓰기를 즐기다보면, 언젠가는 마치 원시시대에 부족 사람들과 희노애락을 나누었던 글쓰기가 가능해 지지 않을까 필자는 생각해본다.

 

추운 겨울 날, 보통 사람이 휴가를 맞아 고향에 내려와 쓴 최초의 잡기이다. 아무래도 보통사람이다보니 아는 것도 부족하고 글도 매끄럽게 쓰질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틈나는 대로 잡다한 것을 글로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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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雜

17. The Star

17. The Star

 

등교하기 전 이른 아침, 평소라면 불이 꺼진 채 문이 닫혀 있을 카페가 불이 켜져 있었다. 입구에 라는 작은 명패가 달린 이 카페는 평소에 친구들과 심심풀이 삼아 타로 점을 보러오는 곳이다. 최근에는 시험기간이라서 자주 오지 못했는데 이른 아침에 문을 연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들어가 볼까?’

 

그렇지 않아도 시험이 끝나면 와볼까 싶었다. 친구들과 같이 오는 게 아닌 나 혼자서. 어쩔까 망설이고 있는데 문이 살짝 열리고 낯선 사람이 얼굴을 내밀었다. 카페에서 주로 타로 점을 봐주는 언니도 아니었고,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해주는 오빠도 아니었다.

 

“들어올래?”

 

“네? 저요?”

 

얼떨결에 되묻는 나를 보며 그는 싱긋- 웃었다. 귀공자 같은 외모에 그런 살인적인 미소라니, 뺨이 화끈거린다. 이건 반칙이다. 그러면서도 발은 내 대답을 들을 필요 없다는 듯이 카페로 향한다. 카페 안으로 들어와 그를 따라서 창가의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최현, 여기 오너야.”

 

“아, 네. 네?”

 

엉겁결에 대답하다가 깜짝 놀랐다. 이렇게 젊은 미남이 카페 사장이라니, 소문으로만 들었지 보는 건 처음이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자랑이라도 해야겠다. 그는 조용히 미소하며 카드를 골고루 섞었다.

 

* 점을 보기 전 카드를 골고루 섞는 걸 Shuffle이라고 한다.

 

‘언니는 주면서 직접 섞으라고 하던데. 조금 다르네.’

 

사람마다 다르다고는 들었지만, 조금 의외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이어서 그는 테이블 위에 카드를 일렬로 쭉- 펼쳐놓고 말했다.

 

“딱 3장만 골라봐.”

 

“음-.”

 

나는 테이블 위에 일렬로 펼쳐져 있는 78장의 카드를 노려보았다. 마치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3장의 카드를 골라서 빈자리로 빼내었다. 그는 아직 뒷장을 보이고 있는 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좌우는 상관없지만, 상하는 신중하게 정해서 뒤집어봐.”

 

가장 왼쪽에 있는 카드를 집어서 아래에서 위로 뒤집었다. 드러난 카드는 [01. 마법사] 정방향이다. 다음은 위에서 아래로, 마지막 카드는 다시 아래에서 위로 뒤집었다. 각각 [17. 별]과 [13. 죽음] 모두 정방향이었다. 마지막에 나온 카드에 시선을 고정하며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저 카드가 모두 나쁜 건 아니라고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심 찝찝했다. 해골이 그려진 우중충한 그림이 기분 좋은 사람은 없을 거 같다. 눈동자를 굴려 힐긋 바라보았다. 순간 시선이 마주치며 그가 걱정 말라는 듯이 웃었다.

 

“하고 싶은 일을 속에 숨겨두고 있구나?”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찌 알았을까? 부모님에게도 친오빠에게도 친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부끄럽고 창피해서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속에만 숨겨두고 있었다. 놀란 내 눈을 보며 그는 마법사 카드를 가리켰다.

 

“마법사의 카드는 지식이나 지혜와 관련이 있지만, 속임수를 쓴다는 점에서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 때도 나오지. 반면, 지금은 또 다른 의미로 숨겨진, 잠재된 능력을 뜻하기도 해.”

 

“잠재된 능력이요?”

 

그는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별이 반짝이고 있는 카드를 짚었다.

 

“네가 희망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

 

곱고 남자다운 손가락이 짚은 카드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하고 싶은 일,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나 성적을 올리는 일이 중요하고 우선이다. 그 이유를 알고 있고 납득하면서도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생각이 들어 답답하다.

 

“겁나니?”

 

그림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섭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얘기했을 때, 부모님이 뭐라고 하실지, 친구들은, 선생님은 뭐라고 하실지, 그리고 나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겁이 났다. 그의 손가락이 다시 마법사 카드로 옮겨갔다.

 

“너 자신의 능력이 부족할까봐 겁먹을 필요는 없어. 넌 이미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으니까. 다만, 그 자질이 빛을 발하려면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거야.”

 

그의 말에 울적한 말이 조금 가라앉아 눈을 들어 작게 되물었다.

 

“정말요?”

 

“그럼. 다만...”

 

그는 가장 마지막, 해골이 그려진 카드를 짚었다.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 성장하려면 이 고비를 반드시 넘겨야 해.”

 

“어떻게요?”

 

그는 팔을 테이블에 올려서 기대고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며 상냥한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숨기지 말고 알려야지. 설령 누군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너의 의지가 굳건하다는 걸 보여주며 설득해야 해. 그리고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배워나가야겠지.”

 

“꼭, 알려야 돼요?”

 

나를 마주한 미소가 한층 더 부드러워지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받고 배우기 위해서라도 알릴 필요가 있어. 너를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나를 이해하고 도와줄 사람.’

 

카드를 처음부터 찬찬히 훑어보았다. 잿빛 머리의 노련해 보이는 마법사와 크고 아름답게 빛나는 별과 깃발과 방패를 든 해골, 필요한 건 용기와 노력과 배움이다.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순간 가슴 한구석이 찡하게 울렸다. 울림이 사라지고 마음이 상쾌해졌다.

 

‘할 수 있어!’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냐. 얼른 가 봐.”

 

그는 유리창 밖을 눈짓했다. 낯익은 여고생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와 달려갔다.

 

“얘들아! 같이 가!”

 

“어? 너 왜 저기서 나와?”

 

“아침부터 커피 마셨어?”

 

난 활짝 웃으며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아니! 앞으로 내 운을 봤어. 그런 의미에서 너희에게 할 말이 있는데.”

 

“뭔데?”

 

씩- 웃으며 내가 꺼낸 말에 등굣길 내내 놀라기도 하고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전혀 생각도 못했다는 반응은 금세 이런저런 호기심과 관심으로 이어졌고, 나중에는 참고할 만한 자료나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은 달랐다. 현재 고3, 수능을 앞 둔 수험생이 갑자기 진로를 바꾼 것에 선생님은 크게 걱정하셨다. 심지어 엄마는 화를 내기도 하셨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리냐며, 왜 탄탄한 진로를 두고 그런 불확실한 길을 선택하는 거냐고 눈물이 쏙 빠질 만큼 된통 꾸지람도 들었다.

 

그럴 때면 힘이 되어주는 건 친구들이었다. 부모님도 언젠가는 이해하실 거라고, 오히려 그렇게 하고 싶은 꿈이 있다는 게 부럽다는 말도 들었다. 그때마다 용기를 내서 부모님을 설득했고,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다. 내 끈질긴 설득에 먼저 마음을 움직여주신 건 선생님이셨다.

 

“현재 네가 원하는 학과로 안전하게 지망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 하면...”

 

선생님은 그렇게 내가 원하는 길을 택할 수 있게 안내를 해주셨고, 이미 마음을 굳혔다는 걸 눈치 챈 오빠와 아빠가 엄마를 설득해주셨다. 덕분에 마지못해 내 선택을 인정해주셨지만, 시간이 지나서 수능을 끝내고 대학에 들어가 장학금도 받으며 열심인 모습에 엄마도 천천히 나를 인정해주셨다.

 

계절이 바뀌고, 학년이 바뀌고, 대학을 졸업하는 동안 꾸준히 노력한 결과, 20대 중반에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넉넉하지는 않아도 자리를 잡고, 인정도 받으며 소소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일상을 보낸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그날 아침의 일이 떠오른다.

 

너 자신의 능력이 부족할까봐 겁먹을 필요는 없어.

넌 이미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으니까.

다만, 그 자질이 빛을 발하려면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거야.

 

그날 이후 수능이 끝나고 대학교 근처로 이사를 할 때까지, 다시 보지 못했다. 소문은 여전히 무성하게 나 있지만, 어깨를 으쓱거리며 창문 너머로 새벽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신기하지만, 확실하게 사람이었으니까. 언젠가 우연히 다시 마주칠 수도 있지 않을까?’

 

새삼 희미하게 떠오르는 얼굴에도 미소만은 뚜렷하다는 느낌에 쿡- 하고 작게 웃었다. 동쪽 하늘에 새빨갛게 떠오르는 태양이 너무도 아름답다. 그 태양을 마주보며 눈이 다 감길 만큼 미소했다.

 

오늘 하루도 시작이다. 반짝이며 빛나는 꿈을 위해 달려갈 하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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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모음집

미드나잇 인 파리, 제비 다방

좋아하는 영화들이 많다. 최근에 본 영화들도 있고 옛날에 본 영화들도 있고, 내가 태어나기 전에 영화들도 있고 많은 카메라안에서 담겨진 영화들은 많다. 그 중에서 좋아하는 영화는 얼마나 있을까, 그 중에서도 감명있게 본 영화 중 하나인 미드나잇인 파리를 오늘 다시 한번 보았다. 참 멋진 영화이다.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 예술이 꽃 피며 아름다웠던 시대로 가서 허밍웨이,피카소, 달리 ... 참 멋진 영화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꾸 보다 보니 우리도 저런 영화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관통했다. 격동의 시대였던 일제강점기 속에서는 수많은 지식인들의 작품들이 놓여져있다. 그 중에서 나는 이상을 좋아라한다. 사실 이상은 제비다방이라는 다방을 운영했었다. 서울에 이상의 제비다방이 놓여져있다. 우디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 처럼 화려한 공간이 아니지만 그 시대 속에서 다른 것들이 섞여 놓여진 그 다방에서 여러 문학인들과 예술인들이 앉아 있다고 생각만 해도 참 아찔한 상상이지 않는가, 만약 그 속에 내가 있다면 정말 어떨떨 할꺼 같다. 모던보이인 백석까지 그 공간에 놓여 있다면 아, 그건 정말 황홀한 상상이지 않는가, 아픈 시대였고, 고통의 시대였지만 그 시대 속의 문학은 아름답게 피어났다. 말로는 잘 표현을 못할지도 모른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라 함부로 말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만약, 그런 작품이 만들어진다면, 잊지 못할 작품이 될 것이다.

 

머릿속의 수 많은 지식인들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레코드 판을 만지고 있는 한 지식인과, 서로 글에 대해 토론을 하는 지식인들과 , 고뇌의 빠져 있는 지식인들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을 상상한다. 그리고 묻어본다. 묻고 또 묻어 결국에는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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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그녀의 꽃자리

<그녀의 꽃자리>     앉은 자리가 꽃자리 이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이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 이니라

 

내가 좋아하는 구상 시인의 <꽃자리>를 한창 읊조리며 나의 처지, 나의 자리를 돌아보던 즈음 봄바람에 벚꽃이 흩날리듯 흐드러지게 눈발이 날리던 날 한바탕 소나기를 맞고서야 정신을 차린 중년의 여인을 책을 통해 만났다.

 

그녀는 남들보다 일찍 시작한 사회생활에서 어린 나이에 천생연분을 만나 아주 잠깐 아가씨 시절을 누려보곤 바로 결혼이라는 굴레에 묶여 젖소 목장을 하며 살아간다.

 

축사에서 소똥을 치워가며 자신과 같이 배운 것도 아는 것도 부족한 남편과 함께 그냥저냥 살아가다 가끔은 미혼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홀가분히 청바지 입고 생맥주 마시던 시절을 막연히 그리워만 하던 어느 날

딸아이가 켜놓은 컴퓨터 앞에 앉아 우연찮게 낯선 남자랑 채팅을 하게 된다.

 

무조건 본인의 잣대로만 재단하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우겨대며 사사건건 아내를 무시하는 남편에게 진저리를 치다 나긋하고 품위도 있어 보이고 무엇보다 자신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직업이 의사라는 남자를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 것 같다며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기에 이르고 핸드폰이 없는 그녀는 머뭇거리다 상대방이 모니터에서 사라져 버리면 어쩌나 싶어 조바심으로 얼떨결에 남편의 번호를 알려준다.

 

미리 자신의 핸드폰을 장만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다 행여나 폰이 울릴까 싶어서 남편에게 건네지도 못하고 자모회장에게서 연락이 올 거라며 한사코 남편에게 돌려주기를 거부한다.

 

식사 준비를 할 때면 바가지로 살짝 덮어서 싱크대에 올려놓고 축사 청소를 할 때는 트레이닝 바지 주머니에 넣고는 이제나저제나 벨이 울리기만을 학수고대한다.

 

그렇게 하루에도 수십 번 혼자서 모래성을 쌓다가 부수고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느닷없이 찾아온 사랑의 감정에 중년의 여인은 그간 잊고 있었던 사랑의 달뜸이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이런 마음을 남편이 알아차릴까 겁도 나고 한 편 남편에 대한 미안함에 이런 경우 남편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싶어 남편의 의중을 살짝 떠보았으나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골 빈 것들이 정신 나간 짓거리를 하는 거지 정신 온전한 인간들은 하라고 해도 안 할 것이다”라며 그런 걸 묻는 그녀를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한다.

그런 생각이 어디 그녀 남편만의 생각이겠는가.

 

다수의 보편적이고 지극히 정상적인 생각이겠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 하지 않던가.

그녀는 남편에게 들켜 다리몽둥이가 부러진다고 해도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며 다리에 깁스를 하고서라도 만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이미 사랑의 달콤함을 알아버린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 남편에게 자모회원들을 만나 밥 먹고 노래방까지 들러 늦을 것 같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채팅남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선다.

그러나 막상 만난 채팅 남은 그녀가 매일 밤 그려보던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

 

의사는 물론 아니거니와 건축현장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해 그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를 절며 치료를 계속해야만 하는 사고와 함께 꿈도 잃어버린 서른을 훌쩍 넘겨 마흔이 다 된 노총각일 뿐이었다.

 

처음부터 장난칠 생각은 아니었다며 치료차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채팅을 하게 됐고 자신의 어렸을 때 희망이 하얀 가운을 입고 회전의자에 앉아 청진기를 목에 걸고 환자를 돌보는 것이었다며 하루 종일 젖소 돌보고 축사 청소하다 지쳐있을 때 잠시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고 싶었다고...

 

진심으로 사죄하는 그를 뒤로하고 그녀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오늘도 여전히 굳어버린 젖소 똥을 삽으로 박박 긁고 있던 땀범벅인 된 남편의 가슴을 파고들며 소리 없이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그리고 진동으로 해놓았던 핸드폰의 벨소리를 최대로 높여선 남편에게 건넨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일상의 무료를 겪다가 그렇게 한바탕 소나기를 맞은 그녀는 구름 걷혀 다시 찬란히 빛을 내는 햇빛이 그제야 고마움으로 다가오고 늘 상 받고 있어서 잠시 잊고 있었던 남편의 넉넉한 품을 감사하며 소똥 냄새나는 축사가, 건강한 땀방울을 흘리는 남편 옆이, 늘 그 자리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져 벗어나고만 싶어 하던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임을 알게 된다.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의 고마움을 쉽게 잊고 내게 없는 것, 내게 부족하다 싶은 것에 얽매어 가끔은 자신을 비관하고 한탄하며 산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암이 남과 비교하는 “비교암”이라 하지 않던가.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만족하는 삶이 최고의 삶이 아닐까 해서 올려다본 가을 하늘에선 막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 낙엽들이 어느새 내 주위를 갈색 꽃밭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네가 서 있는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 이니라”

어디선가 바람 타고 환청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