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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한, 밤의 기록

남 같지 않은, 사사로운 감정이 얽힌 관계, 친구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이 사람과 과연 친해질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지금은 너무 우습다. 그때의 너와 나는 프레임 속에서 참 어색하고 낯간지러웠다. 

 

눈떠보니 어느새 4개월 차가 넘었던 회사 생활. 우리 팀에 신입이 들어왔다. 이력서를 봐도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우리 팀에서 유일한 여자였던 나에게 굳이 차 문까지 닫아줬다. 넌 예의가 몸에 배어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더 꼴사나웠을까. 참 유별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지능 못지않게 각잡힌 생활과 웃음기 없던 너의 표정. 너의 포커페이스로 제나이보다 나이가 많아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다. 1년이 지나도 어색함이 감돌았다. 동료 그 이하 그 이상도 아니었다. 동갑내기였지만 다른 또래 직원들보다 너와 친해지는 시간은 오래 걸렸다. 지금와서 들은 말이지만 그때 넌 이미 우리가 친했다고 생각했단다. 당시, 일할 땐 편했지만 둘이 남겨지면 어색해 죽을 것 같았다. 어색한 빈틈이 싫어 할말을 준비해 두었다. 그러다 단둘이 외근을 가고 식사를 했다. 꽉 막힌 도로에서 팀장에 대한 너의 생각을 처음 들었다. 너도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너도 '같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또래 직원들과 우린 거의 매일 술 한잔, 그 이상을 기울이며 닭발, 곱창, 회사를 맛보고 즐기고 뜯었다. 

 

적립식 통장보다 더 빠르게 쌓여가는 스트레스에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 날 너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친구"

일할 땐 우연이라도 손끝이 닿을까봐 거리를 두고 격을 차렸다. 그런 우리가 동료를 끝내고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되니  동료 때보다 트러블은 더 많았다. 너는 스스럼없이 장난을 참 많이 쳤고 난 참 잘도 속았다. 화가 나 눈물이 나던 날도 있었다. 화해의 악수는 몇 번이나 했던지, 널 몇 번이나 때렸는지 이제 기억도 안 난다. 그만큼 추억이 쌓여갔다. 그때쯤 나는 약간 우리의 관계에 혼동이 왔다. 친구나 되자고 시작한 관계에서 연인으로 질릴 만큼 만나 끝낸 관계가 몇 번 있었다. 그래서 예전엔 서로 다른 염색체 사이에 친구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주변에서도 뻔한 멘트가 들렸다. 

"너희 둘이 그냥 사귀어. 언제 사귀니?" 

너와 나는 자연스러운 재치로 흘려넘기고 언제나 친구 관계를 운운했다. 그런데도 너는 매너와 장난이 적당히 양념된  행동으로 날 헷갈리게 했다. 여중, 여고를 나와 쉽게 선을 넘지 않는 나에겐 낯설었다. 여사친도 적지 않게 있는 너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들과 다 함께 가까운 근교로 여행을 떠났다. 아직은 어색한 반말을 편한 척 주고받았다. 새벽녘, 동료들에게 별을 보러 가자고 졸랐다. 달을 보는 걸 좋아하던 너는 별을 보고 오랜만에 천진한 웃음을 보였다. 술기운도 있었는지 넌 잘 하지 않던 말도 했다.

"별 진짜 많다. 별 따줄까?"  

손발이 사라지는 말에 난 귀를 씻어냈다. 돗자리를 아스팔트 바닥에 깔고 추위와 별을 안주로 소주 한 잔씩 기울였다. 소주병 아래에 핸드폰 빛을 조명삼아 불을 밝혔다. 라섹으로 눈부심에 약해진 터라 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너는 손으로 내 눈을 가려주었다. 그러던 와중 동료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평소 아니라고 한 사람도 잘 맞는다면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누가 봐도 우리에게 한 말이었다. 지겹도록 들어온 말이지만 그땐 한번 쯤 이런 친구를 만나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들었다. 무수한 연상의 사랑에 지친 참이었고, 매섭게 겨울바람이 다가오던 시절이었다. 

 

네가 우연히 던진 말에는 시가 있었다. 그러나, 묘하게 우리의 화살은 서로를 조금씩 빗나갔다. 그럴수록 난 점점 막역해지는 이 관계가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 날의 만남이 내 과거의 생각을 일깨웠다. 친구나 되자고 서로의 친구들을 소개했다. 사실, 처음의 목적은 나의 모태쏠로 친구 B의 솔로 탈출을 위해서였다. 그 친구가 소개팅은 어색하다며 다 같이 밥이나 먹자고 제안했다. 그 모임이 반복되면서 우린 친해졌고 넌 내 친구 A에게 관심을 가졌다. 나에게도 썸인듯 아닌듯한 친구가 생겼다. 그런데도 너와 친구 A의 관계에 더 신경이 쓰였다. 둘 다 나에게 가장 최측근이었다. 너는 버릇처럼 여자친구가 생기면 너와 연락을 자주 못할 거라고 말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네가 같은 염색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고민을 애초부터 하지 않도록. 그래서 난 둘은 절대 안 된다고, 다 같이 친구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쯤 나의 썸남과 미묘하게 감정이 틀어지고 있었다. 잘 돼 가는 너와 친구 A를 보며 생긴 열등감도 없지 않았다. 이런 대화가 반복되자 너는 나를 푹 찔렀다.

"너 나 좋아했어? 이제 나 좀 풀어줘." 

 

내가 구속했는지 부터 먼저 생각했다. 평소 우린 장난처럼 주인과 강아지와 같은 역할놀이를 했다. 절대 변태적 성향은 아니다. 넌 내 앞에서 포커페이스를 풀고 모든 감정을 다 드러냈다. 스스로 널 비글이라고 칭했다. 우린 갑자기 만나 끌리는 데로 먹고, 보고, 하고 싶은 일을 했다. 내 마음대로 굴어도 너는 다 받아줬다. 그러던 와중 그 말을 들으니 사고가 정지했다. '내가 너를 좋아했던가?' 나마져도 나에게 의심이 들었다. 난 내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니 너와 다니는 일에 즐거웠다고 답했다. 사랑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 갖기는 싫고 남 주기는 싫은 게 내 마음이야."

 

이어서, "내가 당긴다고 올 것도 아니잖아."고 답했다. 너는 막역한 친구가 될수록 다른 관계로 발전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땐 동의할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너는 백번 맞는 말만 했다. 그리고, 내 친구 역시 우리의 시간들을 알기에 너와 관계발전에 망설였다. 너와 친구, 사이에 낀 나, 갈등은 깊어졌다. 난 너무 이기적이라 불편한 감정이 싫었다. 너와 내 친구가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기를 빌었다. 결국 너와 내 친구의 이야기는 시작되지 못했다. 

"안된다고 한 건데 내가 괜한 짓 했지. 안 만날 테니 걱정하지 말고."

너의 모진 말에 난 면목이 없었다. 며칠 동안 연락을 안 하고 있었다. 넌 아무렇지 않게 먼저 다가왔다. 평소처럼. 

 

회사 다닐 때부터 네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믿고 따르던 사수가 건강상의 문제로 그만뒀고 난 혼자 남았다. 사수가 그만두자 무능력한 사람이 팀장이 되었다. 난 팀장의 몫까지 하느라 지쳐갔다. 그럴 때마다 너는 페이스메이커가 되었다. 원래는 직무가 달라 외근 때 말고는 도움받을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넌 내 일거리를 차곡차곡 정리해주면서 언제나 뒤에 있었다. 늘어가는 나의 투정도 꾸준히 들어주었다. 사회에 나오고 다닌 첫 회사였다. 사회경험이 많던 넌 큰 힘이 되었다. 간과 쓸개를 빼도 회사를 나오면 역적이 되는 세상이다. 그동안의 고생이 무색하게 쫓겨나듯 나온 회사에 후폭풍이 더욱 심했다. 그럴 때마다 넌 내 자존감을 올려줬다. 너의 과거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넌  '네가 최고다, 예쁘다, 넌 어디 가든 잘할 거야'라고 툭툭 던지듯 말했다. 너도 나에게 너의 이야기를 꺼냈다. 어쭙잖은 나의 위로에도 고마워했다. 

"1년 동안 이 회사에서 뭘 했나 싶어도 널 만나서 다행이야. 네가 좋은가 봐 친구로서."

매일 티격태격해도 너의 그 말에 고마웠다. 그래서 너와 친구 A의 일에 더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렇지만 다시 둘이 연락할까 봐 난 아직도 걱정한다. 정말 난 못돼빠졌다. 

 

이젠 정말 편한 사이가 되었다. 너와 같은 소파에 다리를 엉켜 누워도 아무렇지 않다. 주변의 부추김에 혹시라도 너와 연인 관계가 되었다면 후회했을 것이다. 좋은 친구를 잃기는 싫다. 그래서 더욱 너의 연애가 늦춰졌으면 한다. 못된 심보다. 이 사사로운 감정이 얽힌 복잡한 관계가 가끔은 지친다. 이제는 너를 내 욕심으로부터 놓으려고 이 글을 쓴다. 넌 최근에 이런 말을 했다. 
"평생은 없어. 우리 관계도 평생 가지는 않을 거야. 죽어서라도."

평생이란 단어는 참 무모하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조금 여유가 생긴 이 시간에 감사하며 살 것이다. 우리가 평생은 아니더라도 좋은 친구로 오래 남고 싶다. 너도나도 언젠가 좋은 사람 만나겠지. 최근 꿈에서 낯선 여자와 함께 있는 너를 봤고 너는 나에게 그를 소개했다. 내가 버릇처럼 "내가 모르는 사람과 만나"라고 한 말이 이뤄져 다행이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이기적이다. 그래도 참 잘 어울렸다.  

 

모든 일에 끙끙대며 안절부절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친오빠는 '미움받을 용기'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책에선 '난 단점 투성이 이야'고 생각한다면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스스로 만든 것이라 한다. 나 역시 나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서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내가 이기적이기에 우정이란 이름으로 너에게 모질게 굴어도 괜찮다고. 어쩌면 정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이 스쳐 갔거나 감추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관계를 깨기 싫어 나를 속이는 걸지도 모른다. 저 드라마 속 뻔한 남사친, 여사친처럼. 

 

인생이 뻔하지 않아서 '기대, 미래, 예측불허' 와 같은 단어가 생기지 않을까? 지금은 우리의 관계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너의 존재를 소중히 하며 너의 아픔을 더 달래주고 싶다. 내가 위로받은 시간만큼, 내가 가진 미안함만큼 너에게 보답하고 싶다. 아주 명확하면서도 아직 애매모호한 관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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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12월의 어느 어두운 날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아. 유난히 추웠고 새벽에는 눈도 펑펑 쏟아지더라.

그날따라 늦게까지 잠이 오질 않았어.

집 앞에 나가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소복히 쌓인 눈을 밟으며 발자국을 남겼어.

그러다 네 생각이 났어. 같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하고.

그 어두운 밤에 홀로 밖에 있으니 점점 무서워져서 집으로 다시 들어가려는데 핸드폰 진동이 느껴졌어.

확인해보니, 너였어. 

 

'어두운데 위험하게 혼자 청승떨고 있냐?'

 

응?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널 발견했어.

너무 좋아서 그 자리에 서서 널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었는데 또 문자가 온거야.

 

'가만히 서서 뭐하냐, 나 안 반가워? 다시 갈까?'

 

치...너가 오면 되잖아! 저 멀리에서 두 팔 벌리고 서 있는 너.

그래,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한 걸음, 또 한걸음 너와 가까워진다.

넌 빨리와서 안기라고 제스처를 취하지만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만 있다.

난 그게 괜히 얄미워 천천히 한걸음씩만 너에게 간다.

몇걸음만 더 가면 널 안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데 난 멈춰서서 널 바라봤어.

의아한 듯이 나를 쳐다보는 너는 말해.

 

"거기서 뭐하고 있어? 어서 안겨!"

 

그 말에 나도 말해.

 

"너가 와서 나 안아주면 되잖아."

 

사랑앞에서 너와 나는 항상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려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곤 했지.

그 놈의 기선제압이 뭐라고?

 

결국, 넌 끝까지 먼저 나를 안아주지 않았고 그런 네가 너무 미워서 뒤돌아 왔던 길을 되돌아갔어. 

내가 집으로 들어가기까지 넌 잡지 않더라, 나를. 내심 기대했었는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여자가 삐져서 뒤돌아가면 남자는 백허그해주며 달콤한 말도 잘해주던데. 

 

그 날, 하루종일 널 기다렸는데 결국 넌 나에게 오지 않더라. 

그렇게 흐지부지 끝나버린 사랑에 너무 허무해진 밤이었어.

 

12월의 어느 어두운 밤에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사랑앞에서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가 안타까웠던 날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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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움이주는 따뜻함

겨울밤이 돌아오고있어

바람은 차가워졌다

여기 내가사는 시골의밤도 빨라지고있다.

사람들은 저녁이되기전 불을떼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서 뽀얀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어서나도  서둘러야한다.

아직가을밤이라 생각했다간 큰코다치지..

난 겨울이 좋다. 정확히 겨울밤을 좋아한다. 어릴적 우리집은 흔히보이는 도시의 골목집이었다. 추워지는 겨울밤에 라디오를켜고 언니와 이불을덮고 미주알고주알 나두던밤이면 어김없이 창문밖으로 "찹살떠억~ 재첩~~국" 소리가들렸다. 나도모르게 조용히따라 부르곤했다.

아랫목은 따뜻하고 몸위로 뚜꺼운이불을 덮고있으면 세상에서 제일 안전하고 아늑한곳 같았다. 방학과함께 돌아온 나의 겨울밤은 나를 들뜨게만들곤이내 평화롭게 만들었다. 어떤날은 밤늦게 돌아오시는 아빠의소리에 안도감도느꼈고 어떤날엔  골목안 바람소리에 서글퍼지기도했다. "휭~휭~" 

이제 차가워진 바람에 겨울살이를 준비를 해야하는 나이가되었고 좀 피곤한잡일도 늘었났다. 우리집개도 털이무척 굵고북실해져있다. 나무뗄감도 준비하고 기름도 채워넣었다. 겨울밤 음료수가되어줄 동치미도 준비되었고 나의 겨울의 친구가되어줄 분홍털실도 준비해두었다. 난 여전히 차가운겨울밤이 주는따뜻함을 찾아낼것이고 이 시간은 유한할것임을 나는 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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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雜

사막의 밤

사막의 밤

 

태양은 서쪽으로 기울고 하늘에 붉은 빛이 퍼진다. 황금이 타오르는 것 같은 모래 위로 열기가 남은 바람이 불고 선두에 선 이는 쉴 곳을 찾아 주변을 살핀다. 모래가 뒤섞인 바람사이로 희미하게 무언가 보인다. 남자는 걸음을 멈춰 손을 이마에 댄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시선을 집중했다.

 

잠시 바람이 약해지고, 남자의 눈이 살짝 웃는다. 그는 손을 내려 뒤쪽을 일행들에게 무어라 소리치며 앞장선다. 마차와 짐수레, 낙타가 골고루 어우러진 무리는 남자를 따라 서쪽으로 향하는 방향에서 살짝 벗어나 모래언덕을 내려간다. 모래언덕 아래에 작은 오아시스가 있다.

 

크지는 않지만 일행이 휴식을 취하기에는 충분한 규모다. 오아시스로 다가가는 무리 사이로 간간이 반가운 기색이 흘러나온다. 새빨간 태양은 어느새 절반 이상이 모래 속으로 가라앉아 있다. 오아시스 옆에 멈춘 무리는 마차와 짐수레를 나란히 세워 모래바람을 막았다.

 

낙타는 한곳에 모아 쉴 수 있게 해주고, 물을 길어와 저녁을 준비하고, 길어온 물로 몸을 닦는 등. 다들 분주하게 움직인다. 세워진 마차 중에서 가장 화려한 마차에서 내린 여인들은 온종일 좁은 공간에 갇혀있느라 뻐근해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모닥불 근처로 다가와 앉는다.

 

화려한 옷을 입은 여인들이 모닥불 근처에 편히 앉아 몸을 푸는 사이, 투박한 옷을 입은 또 다른 여인들은 저녁식사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마차와 짐을 살피며 상태점검을 마친 젊은 사내가 모닥불로 다가와 앉았다. 붉은 선홍빛 피부에 새까만 머리와 짙은 회색의 눈동자가 인상적인 미청년이다.

 

“단주, 어째 이번은 저번보다 상품이 많은 모양입니다?”

 

근처에 앉은 여인 중에서 한 여인이 머리에 두르고 있던 면사를 살짝 내리며 다가왔다. 달빛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금발이 넘실거리며 파도쳤다. 투명한 분홍빛의 커다란 눈동자를 지닌 여인은 단연코 손에 꼽을 미인이었다. 단주라 불린 사내는 시동이 내미는 술잔을 받아들었다.

 

“타미란국에서 사절단이 온다는군.”

 

타국의 사절단이 오게 되어 손님을 대접하기 위한 준비로 납품이 늘었다는 말이다. 덕분에 상단에 소속된 무희까지 궁중의 연회에 초청을 받았다. 그 소식이야 여인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저 생글거리며 웃었다. 어린 여동이 사내와 여인에게 식사가 담긴 접시를 내밀었다.

 

주변에서도 하나 둘 접시를 손에 들고 자리에 앉아 허기진 배를 채웠다. 피로를 잊기 위해 작은 술잔이 채워지고, 아직 식지 않은 체온에 미약한 취기가 올라 흥얼거림이 나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누군가 나무로 된 작은 하프를 꺼내어 줄을 튕겼다. 고요한 사막에 흥겨운 음이 퍼져나간다.

 

식사가 끝난 접시들이 거두어지고, 한쪽에서 접시를 닦는 동안, 무리의 곳곳에서는 망토를 깔고 카드와 나무패를 꺼낸다. 사내는 술잔을 기울이며 말없이 그 광경을 둘러보았다. 술김에 칼부림만 나지 않는다면 도박이고 뭐고 눈감아주는 게 대부분이다.

 

사내의 눈치를 살피던 여인이 조용히 일어나 하프를 연주하고 있는 사내에게 눈짓했다. 음이 바뀌는가 싶더니 나직하고 관능적인 소리가 흐른다. 살금살금 뒤꿈치를 들고 발을 놀리는 여인의 옷자락이 하늘거리고, 교태스런 몸짓과 나긋한 손끝에 시선이 모인다.

 

그 시선 속에서 사내의 시선을 느끼며, 여인은 더 유려한 몸짓을 보인다. 밤의 사막을 누비는 한 마리의 나비처럼 가볍고 애정 어린 춤사위를 보이던 여인은 사내와 눈이 마주친 순간 일시적으로 몸이 굳었다. 여인을 바라보는 사내의 눈빛은 일말의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준비된 상품에 이상은 없는지, 상태는 어떤지 살피는 것뿐, 다른 사내들처럼 묘한 흥분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흠칫한 여인의 낌새에 사내는 픽- 웃고는 술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인은 사내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으며 춤을 멈추었다.

 

사내는 소란스러운 곳에서 벗어나 마차와 수레의 사이, 모래바람이 들지 않는 곳을 찾아 두꺼운 담요를 깔고 누웠다. 어두운 밤하늘에는 사막의 모래만큼이나 많은 별들이 촘촘히 자리하고 있다. 크고 밝게 빛나는 것부터 먼지처럼 무리를 지어 빛나는 별까지,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다.

 

“너무하십니다.”

 

사내는 눈을 감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 사내의 기척에도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옆으로 다가와 슬며시 사내에게 기대어 누웠다. 얇은 옷에 싸인 여인의 부드러운 살결이 겹겹이 걸친 옷 너머로도 충분히 느껴졌다. 여인은 곱게 웃으며 한손으로 슬며시 사내의 가슴팍을 쓸었다.

 

“사막의 밤은 춥지 않습니까.”

 

태양이 뜨는 시점부터 지기까지, 열기를 머금은 사막은 쇠도 구부러뜨릴 만큼 뜨겁다. 그 뜨거운 해가 지고 달이 뜨면 몸이 으슬거릴 정도로 추워지는 게 사막이다. 그렇기에 낮에는 뜨거운 햇살을 막기 위해서, 밤에는 추위에 체온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옷이 두터울 수밖에 없다.

 

“추우면 불가로 가거라.”

 

“단주, 아시면서...”

 

콧소리를 내며 대꾸하는 여인을 사내는 힐긋 눈동자만 굴려 바라보았다. 상단에 속한 무희 중에서는 물론이요, 이 나라 안에서도 한손에 꼽히는 그녀가 이리도 목을 매는 이유는 하나다. 뛰어난 춤 실력도 중요하지만, 외모가 빠질 수 없는 게 무희다. 그런 무희로의 수명은 길지 않다.

 

그녀를 원하는 이들이 줄은 선다면 수도 성벽을 몇 바퀴나 두를 수 있을 테다. 그 중에는 소문난 부호도 있고 제법 고위직의 관리도 있을 것이며, 몇몇 귀족도 포함될 것이다. 은근슬쩍 사내에게 그녀의 몸값을 물어온 이들만 해도 다 기억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 생활 청산하고 싶은 거면 다른데 알아봐라. 얼마든지 고를 수 있잖느냐.”

 

사내는 귀찮은 내색으로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여인은 눈썹을 늘어뜨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주, 그러지 마시...”

 

감은 듯 가늘게 떠진 사내의 눈이 매섭게 여인을 쏘아보았다.

 

“네가 아무래도 잊은 모양이구나. 다시 한 번 알려주랴?”

 

- 나에게 넌 그저 팔아야할 상품일 뿐이다.

 

그녀가 처음으로 속을 내보였을 때 사내가 한 말이었다. 그 말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여인은 손을 거두고 몸을 일으켰다. 살짝 물린 입술로 바짝 굳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어찌 잊겠습니까. 물러가겠습니다.”

 

여인이 멀어지고, 사내는 한쪽에 말아둔 담요를 당겨 눈 아래까지 덮었다. 여인은 그대로 마차로 들어가 억지로 잠을 청했다. 사내와 여인이 어떻든 모닥불 근처는 몇몇 무리로 나뉜 이들이 이리저리 시간을 보내며 새벽까지 시끌시끌했다.

 

시끄러운 소리도 잦아들고 달이 밤하늘의 한가운데를 지날 즈음에는 쥐 죽은 듯이 적막이 찾아들었다. 모닥불 근처에는 불침번을 서는 이들이 나직하게 대화를 나누는 소리 외에는 잠든 이들의 고른 숨소리만이 맴돌았다. 그렇게 세상이 잠든 것 같은 밤이 지나고 동녘이 희미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시린 오아시스의 물로 잠을 깨우고, 마차와 수레 위에 쌓인 모래를 털어내고, 낙타를 마차와 수레에 매고, 머문 흔적을 치운다. 간단하게 아침 허기를 때우며, 점검을 마친 무리는 다시 모래 위를 걸으며 길을 나선다. 이 속도면 수도까지는 사흘이 걸릴 것이다.

 

그나마 걸음을 서두르면 해가 지기 전에 마을에 도착할 테다. 선두는 바람의 방향과 태양의 위치를 확인하며 길을 잡는다. 머리와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민 이들은 최대한 체력을 아끼며 선두를 따라 익숙하게 발을 옮긴다. 낙타는 무리를 따라 무심하게 묵묵히 걷는다.

 

무리의 뒤에서 이글거리며 하늘을 가로지른 태양이 정면에서 지고, 그 앞에 마을의 형체가 드러난다. 다들 가벼워지는 발걸음으로 마을을 향해 다가간다. 오늘 밤은 노숙이 아니라 지붕이 있는 숙소에서 지낼 수 있을 테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행복한 콧소리도 들린다.

 

단골 여관에 짐을 풀고 휴식을 취하는 사내에게 시동이 다가와 작게 속삭인다. 사내는 쿡- 웃으며 몸을 일으켜 여관을 나와 멀찍이 떨어져있는 마차에 올라탄다. 얼마 후 다시 마차에서 나온 사내의 손에는 작지만 묵직한 주머니가 들려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소. 잊지 마시오. 꼭 무사히, 데리고 와야 하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거래만큼은 확실하게 지키니까요.”

 

마차 안의 사내가 입매를 올리며 웃는다. 소단주는 방금 상단에서 가장 비싼 상품을 판 것이다. 그것도 때를 놓치기 전에 최고가로 말이다. 마차가 출발하고, 사내는 대금으로 받은 주머니를 품에 넣으며 여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입가에는 미묘하게 만족스런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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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奇

공중전화

 

공중전화

 

학원을 마치고 어두운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드리워진 골목길에는 지나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매일 다니는 길이라 혼자 걷고 있다는 게 그리 무섭지도 않았다. 오히려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면 무서웠을지도 모르겠다.

 

‘졸려. 얼른 가서 잠이나 자야겠다.’

 

작게 하품을 하며 오르막길로 들어섰다. 왼편에는 빌라의 담장이 있고 오른편에는 모 회사의 기숙사 담장이 있는 길이었다. 오르막길을 반쯤 올랐을 때 무심결에 고개를 돌려 기숙사 정문 안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불이 꺼진 건물과 가로등 옆에 공중전화 박스가 보였다.

 

그 박스 안에 누군가가 이쪽을 바라보며 통화 중이었다. 난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에 다시 눈을 돌려 그 공중전화 박스를 바라보았다. 비어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 가로등 불빛 아래 박스 안에서 통화를 하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어? 내가 잘못 봤나?’

 

이상했다. 정문 안의 마당에도 인기척은 없었다. 공중전화 박스를 나왔다면 어딘가 걸어가고 있는 그림자라도 보여야 하는 게 아닌가? 고개를 돌렸던 단 몇 초? 그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나? 난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며칠 뒤, 같은 시간 학원을 마치고 친구와 함께 그 길을 지나게 되었다. 그리고 난 다시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다. 공중전화 박스에 그때 본 그 사람이 또 있었다.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나 며칠 전에도 여기서 똑같이 저 사람 봤는데...”

 

“응? 아무도 없는데?”

 

“어? 저기 공중전화 박스에 있잖아.”

 

“없는데. 너 누구 말하는 거야?”

 

난 고개를 돌려 공중전화 박스를 바라보았다. 비어있었다. 그 길을 지나는 내내 난 분명히 봤다며 중얼거렸고, 친구는 재차 아무도 없었다고 날 타박했다. 그 이후로는 꼬박꼬박 학원 차를 타고 다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니던 학원도 그만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겁도 없었다. 헛것이겠지만, 아닐 수도 있는 걸, 그리 빤히 보며 무심히 지나치다니 싶다.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겁이 늘어난 게 아닐까 싶다. 고등학생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던 공포영화를 지금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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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愛

벚꽃 같은 그대

 

벚꽃 같은 그대

 

땅 위에는 하얀 벚꽃 잎이 깔려있고 머리 위에는 달빛에 새하얗게 빛나는 벚꽃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달빛 아래 벚꽃을 밟으며, 벚꽃을 올려다보며, 사뿐사뿐~ 나풀나풀~ 걷는 여인을 한 사내가 조용히 뒤따른다.

 

바람에 벚꽃 잎이 흩날리고, 바람에 여인의 새까만 머리가 살랑거린다.

흩날리는 꽃잎처럼 춤추듯 걷는 여인을 사내는 아련하면서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따라 걷는다.

 

“그리도 좋으십니까?”

 

빙글. 사내의 말에 몸을 돌리는 여인의 벚꽃 같은 옷자락이 나풀거린다.

여인의 고운 얼굴은 밤하늘의 달 마냥 환하게 미소 짓는다.

 

“좋아요. 너무나 아름답고...좋아요.”

 

벚꽃이 좋다는 것일까? 그녀를 뒤따르는 사내가 좋다는 것일까? 아니면 둘 다 일까?

벚꽃이 아름답다는 것일까? 그녀를 뒤따르는 사내가 아름답다는 것일까? 이것도 둘 다 일까?

 

그녀의 말에 사내의 단정한 입매가 ‘못 말리겠군요.’라는 듯이 미소 짓는다.

앞서가는 여인을 지나 불어오는 바람에 사내의 옅은 옷자락이 펄럭 거린다.

 

여인은 바람에 날리며 떨어지는 벚꽃 잎을 향해 손을 뻗어보지만

꽃잎은 매정하게도 여인의 손을 스쳐 떨어져 내린다.

 

그 모습을 보던 사내가 다가와 여인의 양손을 자신의 양손으로 살며시 감싸 잡는다.

그 위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벚꽃 잎 하나가 사뿐히 내려앉는다.

 

여인은 기쁜 듯이 손을 포개어 꽃잎을 덮고 잠시 눈을 감더니 곧 입김을 불어 꽃잎을 날려 보낸다.

사내가 살풋- 웃더니 여인에게 묻는다.

 

“소원이라도 비셨습니까?”

 

“네. 꼭 이뤄달라고 빌었어요.”

 

“무엇을 비셨습니까?”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보는 사내를 마주보던 여인이 짓궂게 웃는다.

 

“안 가르쳐 줄래요.”

 

빙글. 여인은 다시 몸을 돌려 저만치 사뿐사뿐 꽃잎 위로 걸어간다.

그런 여인의 뒤를 사내는 조용히 웃으며 다시 따라 걸어간다.

 

* * *

 

가로등 불빛에 붉은 빛을 띠며, 달빛에 창백한 빛을 띠며 벚꽃 잎이 바람에 하늘거리며 흩날린다.

그 벚꽃 길을 새까만 머리를 흩날리며 걸어가는 여자를 남자는 느긋하게 걸으며 따라간다.

 

“예쁘다.”

 

빙글. 몸을 돌리는 여자 주변으로 바람결에 흩날리던 벚꽃 잎이 휘감긴다.

그녀는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이 생긋 웃는다.

 

“그거 알아?”

 

“뭔데?”

 

살짝 미소 지으며 되묻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떨어지는 벚꽃 잎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러나 아쉽게도 꽃잎은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그 모습을 보던 남자가 픽- 웃더니 다가와 여자의 양손을 자신의 양손으로 가만히 감싸 잡는다.

그 손 위로 벚꽃 잎 하나가 사뿐히 내려앉는다.

 

여자는 조금 놀란 듯 감탄한 듯 멈칫하더니 손을 포개고 잠시 눈을 감는다.

잠시 후 살며시 눈을 뜬 여자는 입김을 불어 벚꽃 잎을 날려 보내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다.

 

“이렇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데.”

 

“뭘 빌었는데?”

 

묘한 미소를 짓던 여자는 빙글. 몸을 돌리고 몇 걸음 걸어가더니 가로등 아래에서 멈춰 선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벚꽃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남자를 향해 돌아선다.

 

“안 가르쳐죠.”

 

여자의 말에 조금 맥 빠진 듯이 웃던 남자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간다.

남자는 여자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안 가르쳐줘도 괜찮아. 나도 같은 걸 빌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