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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雜

사막의 나비

사막의 나비

 

태양이 내려쬐는 뜨거운 모래 바다 위에서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날개를 가진 나비가 팔랑인다.

위로 올라가면 햇살이 뜨겁고 아래로 내려앉기에는 데워진 모래가 뜨겁다.

 

꽃도 없고 가지도 없으며 작은 돌멩이 하나 보이지를 않는다.

쉬어갈 곳을 찾지 못하고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나비는 계속해서 허공을 헤엄친다.

 

수십, 수백, 수천…나비가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날개가 남긴 흔적이 이어지며 쌓인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얼마나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한번의 날갯짓이 수만번의 흔적을 남길 때까지 쉼 없이 날아도 멈출 수가 없다.

쉬지 못한 날개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푸른 나비는 비틀거린다.

 

마침내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고 너덜너덜해진 날개로 식어가는 모래 위에 내려앉았을 때

차가워지는 모래를 따라 나비의 열기도 식어가고 불어오는 바람에 서서히 가라앉는다.

 

사구 속에 가라앉은 나비는 흔적도 보이지 않지만 허공에 새겨진 날개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모래 파도 위로 불어오는 바람에 뒤섞이며 휘몰아치는 푸른 날개의 잔상.

 

작은 나비 한 마리가 허공에 남긴 수천, 수만의 발자국이 모여 거대한 태풍을 이룬다.

마치 수천, 수만의 모래 알갱이가 모여서 사막을 이루듯이…

 

인터넷이라는 사막, 네티즌이라는 나비

 

문명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전하며 쌓이고 쌓인 노력이 이루어낸 정보의 바다 인터넷.

하루 또는 1시간 만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정보가 쌓이고 쏟아진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마우스와 키보드를 타고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며 흔적을 남긴다.

공감, 좋아요, 댓글, 하트, 별…무수한 날갯짓을 남기는 수많은 나비 떼.

 

무심코 남긴 작은 흔적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괴로움을 선사하고

무심코 남긴 작은 흔적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감동이 되어 축복한다.

 

무수한 나비가 남기고 간 자리에서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린다.

때로는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생명을 죽이기도 하는 나비의 날갯짓.

 

의미 없이 흘린 한마디가 이리저리 휩쓸리며 부풀려지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뼈와 살이 붙어 진실이 되어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무수한 무관심이 쌓이고 덮여 알려져야 하는 것들이 묻히기도 하고

거짓이 진실의 가면을 쓰기도, 진실이 거짓이라는 무덤에 들어가기도 한다.

 

마치 뜨거운 아지랑이처럼 또는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날개의 잔상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신기루가 되어 눈을 어지럽힌다.

 

 

당신은 어떤 나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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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愛

단 한번을 위한 구애

단 한번을 위한 구애

 

은은한 조명이 비치는 홀, 아롱지는 불빛이 가득한 야경이 내려비치는 창가에 앉아 눈앞의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슬림한 라인의 바지에 타이트한 셔츠, 제법 세련된 재킷이 꽤 맘에 들었달까?

 

칵테일이 담긴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남자는 사탕처럼 달콤한 말을 부드러운 속삭임에 실어 내뱉는다. 은근한 유혹이 담긴 눈빛에 고개를 앞으로 숙이며 얼굴을 가까이 한다.

 

닿을 듯 말듯 슬쩍 슬쩍 스치는 손끝이 오히려 더 애태우며 열기를 더한다. 끈질기고도 능숙한 그 놀림에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하다가 선심이라도 쓰듯이 넘어가려는 때에 사나운 구두소리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다.

 

곧장 다가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린 그는 순식간에 백지장처럼 질리더니,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다가오는 구두소리와 반대방향으로 내달린다.

 

"야! 너 거기 안 서? 잡히기만 해봐. 아주 그냥 가죽을 몽땅 벗겨버릴 테니까!"

 

"여긴 또 어찌 알고, 젠장!"

 

잔잔하게 낭만적이던 bar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워진다. 여자는 온갖 욕을 내지르며 남자를 쫓고, 남자는 인상을 한껏 구기며 궁시렁댄다.

 

방금까지도 내 앞에서 매너가 철철 넘치던 그가 맞나 싶을 정도로 한심한 모습이다. 더불어 밀려드는 배신감에 자리에서 일어나 기세 좋게 그의 멱살을 잡아챈 여자에게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이봐요. 당신 누구에요?"

 

"나? 나 이 인간 조강지처다. 왜?"

 

눈을 부릅뜨며 대꾸하는 그녀에게 그는 억울하기 그지없다는 듯이 언성을 높이며 손을 뿌리친다.

 

"조강지처는 무슨! 네가 왜 내 조강지처냐? 난 아직 솔로거든?"

 

그러면서 보란 듯이 왼손을 들어 흔든다. 결혼반지는 없다. 다시 살펴보니 여자의 손에도 반지는 없다. 나는 물론 다들 어리둥절하거나 픽- 웃으며 고개를 돌린다. 그런 주변의 반응에 그녀는 되레 비웃으며 웬 사진과 서류를 꺼내 남자의 가슴팍에 집어던졌다. 남자는 이게 뭐냐는 듯이 바라보며 사진과 서류를 집어서 살핀다.

 

"친자검사, 네 아들이야. 설마 그러고도 도망가지는 않겠지?"

 

"잠, 잠깐만. 아니, 이게..."

 

팔짱을 끼며 기세등등한 여자와 멍하니 당황한 남자가 마주한 광경에 실소를 뱉어주고 뒤돌아섰다. 완전히 잡쳐버린 기분에 거리를 걷다 문득 고개를 돌린 곳에 <원앙>이라는 간판이 걸린 복고풍 다방이 보인다.

 

"하!"

 

참 묘하다. 하필 이런 일에 저런 단어가 보이다니, 빤히 바라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카운터에 있는 직원부터 서빙하는 직원까지 모두 남자다. 멋을 낸 유니폼을 차려입은 수려한 남자직원들, 여자 손님에게 각자의 개성대로 주문을 받고 말을 받아주는 그 모습이 왜인지 <원앙>이라는 간판과 잘 어울린다. 마치 암컷에게 구애를 하는 화려한 수컷 말이다. 단 한 번의 교미를 위해서 온갖 속을 내놓는 구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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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쓰다

I AM MOANA

 

0. 올해로 스물 하고도 여덟이 되었다. 
곧 서른이 되는 스물여덟의 난, 이제 나를 확실히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1. 안타깝게도 자아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십 대 초반엔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고민했다면, 이십 대 중반의 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지 를 치열하게 고민했었다. 


그리고 이제 후반이 되었다.


후반전을 시작하며 드는 고민은 좀 나아졌냐고? 


아니. 


여전히 막연하다.

 

“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동시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건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2. 설 연휴를 보내며 가족과 애니메이션 ‘모아나’를 보았다. 주토피아 이후 노래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지루함이 생겨 피하고 있었는데, 마땅히 설에 온 가족이 모여 볼 영화도 없었고 뒤늦게 올라오는 입소문에 끌리기도 했고. 그리고 사실 포스터도 별로였다. 남자 주인공이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얼굴과 너무 닮았달까.

 

 

단 하나 끌리는 게 있었다면 배경이 열대지방이라는 점. 춥고 춥고 추운 날씨에 에메랄드 빛 바다는 그래도 매력적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영화를 보았고 지금은 그 영화에 반해 이 글을 쓰고 있다. 자아를 찾고 자신을 찾아갔던 모아나와 함께 나는 이제 나의 자아를 찾아가는 글을 써보려 한다. 그래 내가 모안다고 영화 서평을 써본다.           

 

 

 

3. 본격적인 시작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크게 둘이다. 겨울왕국의 엘사와, 주토피아 주디 홉스에 이어 등장한 또 다른 여주인공 ‘모아나’. 모아나는 엘사와 같이 흰 피부가 아니었지만 주디만큼 쾌활하고 적극적이었고,

 

 

 

주디만큼 경찰이 되겠다는 하나의 확실하고 명확한 꿈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엘사만큼 아파했고 성장했다. 어쨌든 이전에 있지 않던 여주인공이란 이야기. 

 

 

그런 모아나와 우정 라인으로 등장하는 ‘마우이’. 마우이는 반인반신이다. 우리나라에도 위대한 반인반신이 있다고 하지만 그런 반인반신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귀엽고 개념 있는 서브주인공. 

 

 

혹시 몰라 작게

 

그는 우람하고 근육질의 남성이지만 그는 작은 벌레로도 변하고 무시무시한 상어로도, 창공을 나르는 독수리로도 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자기의 모습을 바꾸는 마우이를 보며 예전의 나를 떠올렸다. (내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건 아니고)   

 

4. 『사람들의 기대에 부합한다는 건-』     

 

나는 착하다는 소리를 꽤나 많이 들어왔다. 지금이야 착하다는 게 무엇인지, 어떨 때 착하다고 말하고, 왜 착하다고 하는지를 알지만 고딩까지만 해도 나는 착하다는 말이 인생을 참 잘 살고 있다는 말과 동의로 받아들였다.      
그럼 사람들은 언제 착하다고 할까? 그건 잔인하게 말해 크게 두 가지다. 내가 못하거나 귀찮아서 안 하는 일을 네가 대신할 때거나 내 뜻대로 네가 잘 따라줄 때. 

 

이렇게 두 가지의 상황에서 우린 상대방에게 ‘착하다’고 말한다.      

 

    

 

왜 그렇게 배배 꼬였냐고 묻겠지만 나는 ‘착하다’는 말에 어마어마하게 데었으니 나름 ‘착함’에 대한 권위가 있다고나 할까. 착하다는 말에 현혹돼 내 의지를 늘 포기해왔고, 착하다는 말에 약해져 지켜야 할 걸 지키지 못했으니 난 이제 착하다는 말의 의미를 곱씹어 말할만하다. 




그리고 그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내게 ‘착하다’고 말했던 사람이 아닌 그저 착한 내가 다 지었어야 했고.      

마우이를 보며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마우이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에게서 버림받는 사람. 그런 사람을 신이 도와 갈고리를 주었고, 그 갈고리의 힘으로 마우이는 신이 되었다. 자신을 버린 사람들을 위해 섬을 일으키고, 물고기를 잡아주고, 멋진 독수리로 변신해 날아다니는 마우이. 


이 모든 일은 착한 마우이, 착한 신, 사람들에게 맘에 들고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태웠던 
마우이의 두려운 마음이 그 시작이었다.        




신도 두려운 것이 있을까. 
모든 것을 만들고 만든 모든 것을 움직일 힘이 있는 신이 두려운 게 있을까. 난 있다고 본다. 자신이 애써 만든 것이 그 의미와 필요가 없어지는 것. 내가 애써 만들었으나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는 것.  신인 마우이도 그 쓸모없어짐에 두려움을 느꼈을 테다. 애써 만든 사람들의 지지와 기대로 만들어진 나의 모습이 더 이상 쓸모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마우이는 어느 정도의 상실감을 느꼈을까. 그 deep deep 한 상실감을 내가 잘 알기에 난 마우이에 나를 빗대, 화면 속 그를 통하여 나를 다시 바라본다.     

 

 

5. 『처음엔. 언제나 발목을 잡히는 법-』  

 

 

모아나는 평화롭고 안전한 섬의 존재다. 이 섬에서 시간만 지나면 그는 부족을 이끄는 장이 되고, 섬의 가장 위 족장들만의 영역에서 그는 자신만의 돌을 올릴 수 있다. 그런 섬을 놔두고 모아나는 드넓은 바다로 향하고 싶어 한다. 모아나는 결국 몰래 배를 이끌고 파도에 몸을 싣는다.  


   

내가 처음 바다로 향했던 순간이 있다. 휴학을 하고 무언가 세상 속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다는 목마름이 있을 때. 부산에 살기에 어느 방향으로 가도 바다를 만날 수 있던 난 바다에 앉아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치열하게 고민했다.      


봄에 가도, 여름에 가도, 겨울에 가도 그 모습 그대로인 바다는 내게 위로의 공간이자 내 안으로 침잠할 수 있는 세상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 시간 안에서 나는 첫 도전을 결심했고 가열히 도전했다. 그 당시 했던 것은 홀몸어르신 고독사 캠페인. 타인의 일상 속에서 고독사의 현실과 변화를 위해 당신의 쌀을 모은다는 피켓 하나를 들고 했던 내 첫 도전은 매일매일이 무지하게도 괴로웠다.      


어린 날의 치기인가 혹은 도전의 무게인가. 
지금 내가 하는 것은 변화의 시작일까 혹은 실패의 시작일까.      




내 안에서 답을 찾지 못했던, 내가 직면했던 첫 두려움이 모아나에게도 다가왔다. 모아나가 배를 끌고 처음으로 산호 밖으로 나갔던 순간, 산호 밖의 파도는 더 이상 섬의 영역이 아니었고 그만큼 매서웠다. 그 파도 두 번에 배는 뒤집혔고 부서졌다. 모아나는 바다에 잠겼고 바닥에 있던 산호에 모아나는 발목이 끼고 만다.      

 

 

언제나 첫 도전엔 좌절을 맛보기 마련이니까-  
그렇기에 이 좌절은 실패라기 보단 확인의 과정이 될 테다. 모아나는 파도란 이름의 현실을 확인하는 거고, 나는 무관심의 이름의 현실을 확인했던 것. 이 처음의 좌절에서 재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우린 끝없이 이 기억에 발목이 잡히고 만다.      



마치 산호에 발목이 끼었던 모아나의 첫 도전처럼 말이다.         




       

6. 『잊지 말아야 한다- 정착하는 섬은 재가 된다.』     




모아나가 바다로 나갈 수 있냐 와는 별개로 세상의 어둠은 섬을 삼켜온다. 맑은 소리가 났던 코코넛은 안에서부터 썩어가고 풍족하던 물고기도 산호 밖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어둠은 눈치채지 못한 동안 바로 내 곁까지 다가왔고 안에서부터 섬은 재로 변해간다.      


우린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정착하는 곳은 속도만 다를 뿐 언제나 그 끝은 재가 된다. 그 어디에도 나를 평생 지켜줄 수 있는 섬은 없고, 끊이지 않는 먹거리와 안락한 잠자리가 계속해서 제공되는 곳도 없다. 이젠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건 내가 늘 갖기 위해 불안해하던 것. 그래 난 늘 평생의 ‘정착’을 꿈꿔왔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가지고 계신가요? 네! 맞아요! 그게 바로 저예요! 나는 내 삶을 관통하며 ‘불안정’과 ‘불안함’을 경험했다. 누군가 불안하다는 얘길 할 때면 난 나의 지난 불안했던 감정이 올라왔고, 그 감정에 기초한 언어와 나만이 아는 미세한 떨림이 세어 나왔다. 난 이미 단어의 선을 넘어버린 두 단어를 가지고 있고, 이 단어의 합은 ‘가난’으로 좁혀졌다.      


가난한 자가 가지고 싶은 것은 안정이고 확실함이다. 미래에 대한 안정과 확실함. 그러나 너무 슬프게도 세상에 그런 안정과 확실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이걸 알았던 건 평생을 정착하고 싶던 터전이 재가 되어 다 타버리고 나서야, 그제야 알았다.      


“모아나야, 떠나! 바로 지금이야!” 영화를 보며 마음속으로 외친 내 소리. 지금 네가 떠나지 않는다면 결국 너의 섬은 재가 되고야 말 거란다. 떠남은 숙명이야. 언제든 우린 떠나야 해. 너의 짐이 가벼울수록, 난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할수록 섬은 더 활기차지고 더 오래 있을 수 있단다.         







 

떠남은 숙명이야. 언제든 우린 떠나야 해.










            

7. 『오픈 유어 아이스』     




영화는 중반을 넘어간다. 모아나는 할머니의 도움으로 파도를 건널 수 있는 큰 배를 찾았고 우리가 어떤 민족의 후예인지를 깨닫는다. (우리는 배달의 민족) 길을 아는 자만이 향할 수 있는 길. 그 길을 향해 모아나는 돛을 열어 바람을 모은다. 다시 생명을 찾아올 거란 자신의 바람과 함께.   
  

바다를 항해하던 민족. 길을 아는 자만이 향할 수 있는 길. 아니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아는 자만이 갈 수 있는 길을 향해 모아나는 출발한다. 그리고 이 여정에서 모아나는 마우이를 만났고, 나도 만났다. 모아나와 마우이는 갈고리를 되찾기 위해 괴물들의 섬으로 향하고, 그 섬에서 빛나는 것들을 모으는 소라게를 만난다. 소라게가 부르는 노래의 제목은 “샤이니” (누난 너무 예뻐어)      

 

나는 빛난다고 말하는 소라게를 보며 내가 느낀 감정은 ‘정말 너는 괴물이구나’. 


도덕책인가 바른생활 책인가 어쨌든 이젠 존재하지 않는 옛 교과과정의 교과서를 보면 사람은 두 부류가 있다고 했다. ‘난 사람’과 ‘된 사람’. 하지만 이것보다 우선돼야 할 전제는 과연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사람인가’ 하는 질문.      


소라게가 왜 괴물이 되었을까 생각해보았다. 단순히 덩치가 크다고 괴물이 되진 않았을 테다. 못생기기도 했지만 잘생긴 괴물도 요즘 많으니 이것도 아닌 셈 치면, 소라게 네가 괴물이 된 건 자신을 찾지 못하고 빛나는 것들로 널 치장하고 거기에 매몰되서야. 아주 단순히 말해 빛나는 것들로 치장할수록 우리의 내면에선 어두운 것이 나오고, 어두운 것으로 날 덮을수록 내면의 가치가 빛나 보이는 법이란 거지.      


난 누구보다도 빛났던 소라게가 괴물의 세계에 있는 걸 보며 어쩌면 우린 모두 한 끗 차이로 괴물과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잃은 채 더 멋진 것, 더 비싼 것, 사람들이 더 우와 아아 하는 것을 모으는 데 우선하면 내가 누군지 아는 사람과 사람들의 기대에서 벗어나 혼자 서려는 두 존재가 ‘네가 그 괴물이구나’ 하면서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돈은 좋지만 괴물보단 난 사람이 되자. 아니 된 사람인데 조금 여유롭게 사는 된 사람이 되자.                  




   

8. 『I am Moana』     




모아나에서 나왔던 노래 중에 어느 노래가 가장 좋았냐 묻는다면, 난 단언컨대 배를 타고 산호섬을 벗어나며 사자후처럼 외쳤던 “I AM MOANA" 이 부분이다. 나는 과연 내가 나라고 세상에 대고 소리칠 수 있을까. "나는 바람꽃이다!"라고 난 노래부를 수 있을까.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간다. 이십 대 후반인 내가 또 한 번의 설을 보내며 가진 질문. 
“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건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난 이제 어느 정도 나를 찾았다. 내가 싫어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이게 저예요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나다. 영화를 보며 원큐로 위의 두 질문까지 해결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모아나를 보며 나는 뜻밖의 나를 다시 보게 된다. 아니 정확힌 자신이 갈 길을 아는 모아나와 나와 너무나 닮은 마우이를 보며.      


이 글은 마루와 함께 하는 매거진 쓰다의 내 첫 글이다. 첫 글의 맛은 시다. 눈이 저절로 감길 정도로 내게 시큼한 이야기다. ‘신글’ 카테고리의 첫 스타트를 끊으며 신글답게 다음 글로 내 고민을 넘긴다.       








“내가 누군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이게 바로 저예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된 내가 하고 있는 건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