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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라는 감정

모라토리엄 인간

흔들흔들,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나도 흔들린다. 얼마나 흔들렸는지, 모든 것을 그만하고 싶었다. 그만두면 편하지 않을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졸업도, 젊음도, 시간도 - 생각도 유예시키면 나는 고통에서 벗어날까? 온갖 물음들이 걸음 속에 흩어졌다.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어느 날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 본 적이 있다. 아무 미동도 없는 하늘이 어찌나 무심하게 보이던지. 순간 나와 더불어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았다. 등 뒤에 짊어진 가방이 인생의 무게만큼 무거웠을 때, 나는 그 곳에 못 박힌 채로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나와 닮은 단어를 떠올렸다.

 

모라토리엄 인간 -사회적 자아를 확립하고 사회적 책무가 따르는 성인이 되기를 유예하는 사람을 가리킨다-의 의미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다. 잘 벼른 칼날에 베이는 것 같다. 내 미래가 조각나고 부서진다. 꿈꿔왔던 것들은 모두 내 발 아래 있다.

 

부서진 미래를 걸으면서, 나는 울었다. 이런건 내가 생각하던 것들이 아닌데. 어린시절 전부였던 꿈을 밟아가며 나는 어른이 된다. 그리고 아마 나는 영원히 내가 원하던 어른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데, 정체 된 내 삶은 방향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모라토리엄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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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나의 이야기

그래도 희망이다

‘몹시 가난한 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 소년은 점쟁이를 찾아갔다. 점쟁이는 소년에게, “너는 손금이 나빠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고 일러 준다. 그 후 소년은 자신의 손금을 바늘로 파가며 열심히 산 끝에 오래 오래 잘 살게 되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들으면 긴장하게 된다. 타성에 젖은 날들을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궁금하다. 이 이야기에서 소년이 잘 살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손금을 다시 팠기 때문일까? 아니면 손금을 파며 노력한 덕분일까? 알 수 없다. 우리의 인생은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이미 결정지어진 대로 살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고스란히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인지.

 

미래는 우리에게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준다. 하지만 운명이든 의지든, 사람은 누구나 희망 쪽에 매달리게 된다. 손금이 좋다면 그 희망에 힘을 얻어 살 것이며 나쁘다면 그렇게 손금을 다시 파가면서라도 살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어쨌든 살아가야 하기에.

 

우린 나약하여 손금에 숨은 미래를 궁금해 하지만, 대답이 무엇이든 희망을 버리지 않기에 또 강하다. 그러기에 운명이냐 의지냐가 아니라, 희망이냐 아니냐 일 것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그렇게 손금 파가며 희망하는 미래조차 이미 다 정해진 운명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도 오늘 아침 신발 끈 고쳐 매고 씩씩하게 길을 나섰을 것이다. 희망은 찾으려 노력하는 이에게만 주어지는 운명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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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가위 끝

 

 

 

 

    어린 시절, 내 손에 제일 오래 머물렀던 것은 연필도 장난감도 아닌 가위였다. 비록 아버지와 나, 둘 뿐이기는 했지만 한 가족의 식사 준비를 한다는 것은 어린 내가 맞닥뜨린 인생 최초의 난관이었다. 때문에 언제나 바빴던 나에게 어머니의 빈자리 같은 것을 느낄 여유는 별로 없었다. 나의 탄생과 동시에 숨을 거둔 어머니는, 그저 내게 다른 아이들보다 주방에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기회를 준 존재에 불과했다. 생각해보면 슬픈 것은 오히려 그쪽이다. 어머니의 부재가 어린 나에게 그 정도 의미밖에 되지 못했다는 것. 그 나이 대 아이에게 부모의 의미란 어떤 것인지, 나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어찌되었든 나는 식사 때가 되면 주방에 들어가 가위를 들어야 했다. 그것은 식전에 행해지는 자연스런 일과였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내가 가위로 인해 특별한 방식으로 자극을 받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차츰 내 손이 주방 가위와 익숙해지자, 김치나 고기를 능숙하게 자르는 것 따위에는 금세 싫증이 났다.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대통령이나 여군은 아니더라도, 여하튼 좀 더 멋진 일을 해내고 싶었다. 그렇게 고민 끝에 찾아낸 것이 인형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이었다. 여덟 살의 나는, 인형의 금발을 조금씩 잘라내며 훗날 내게 머리를 맡길 사람들의 뒷모습을 상상했다.

 

    몸이 아파 시내 미용실까지 다니는 것이 무리인 할머니들이나 코흘리개 어린아이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주게 된 것은 2년이 지나고 난 뒤부터였다. 맨 처음 아버지는 내가 사람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그 짓 - 아버지는 나의 일을 그렇게 불렀다 - 을 하고 다니는 것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듯 했지만, 동네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내가 '이문동 귀염둥이' 대접을 받자 이내 마음이 풀린 듯 했다. 확인해본 적은 없지만, 눈치를 보아 하니 아무래도 아버지의 한의원에 단골손님이 늘어난 모양이었다. 내가 대놓고 사람들의 옆구리를 찌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내가 한의사 양반의 늦둥이라는 것을 온 동네 사람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선전 효과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침내 아버지는 열두 살 생일날 내게 미용 가위까지 선물해 주었고, 이내 우리 집 앞마당은 미용실이 되었다.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아버지와 나를 기술자 모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기술자. 사람들은 한의사인 아버지까지 기술자라 불렀다. 문득 몇 년 전 큰 인기를 끈, 그래서 나 또한 자주 시청했던, 외과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의사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메쩬바움 대신 미용 가위를 들게 된 것은, 어쩌면 아버지가 어린이날마다 사다 준 마론인형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무한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데는 현실적인 제약이 뒤따르기 마련이니까. 선물 받은 인형이 분해가 가능한, 그러니까 보들보들한 털로 뒤덮인 곰이나 토끼 따위였다면 나의 미래는 달라졌을까.

 

 

 

 

※ "난 아주 어릴 때부터 가위를 가지고 놀았어요." 사회인이 되고 나서 알게 된 언니와 '서로에 대해 몰랐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다가 들은 문장 몇 개로 글을 적어봤습니다. 어린 시절 그녀의 가위 양 쪽 끝에는 무엇이 달려 있었을까요. 일이 너무 힘들 때마다 손에 쥔 가위를 보며 종종 그런 생각을 해본다는 언니. 그녀는 물론 지금의 자기 모습도 너무 사랑하지만 가위로 할 수 있었던 다른 일에 대한 가능성을 상상하면 괜시리 기분이 묘해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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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미래를 불안해하지 마세요!

현재를 살아가면서 미래를 불안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 것 같다.

물론, 지금 하는 일이 잘 안된다면 미래가 걱정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절대로 단순하지가 않다.

희로애락이 있고 롤러코스터처럼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가 정상을 찍고 빠른 속도로 곤두박질 쳤다가

정신없이 360도 회전을 하며 혼을 빼놓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의 인생 또한 정신없이 흐르며 지나가 버린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 통을 겪으면서 어른이 되어가고

꾸준히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도 하면서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지루해지면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기도 하고,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도전을 할 수도 있다.

 

한번뿐인 인생을 살면서 많은 것들을 경험해봐야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 있고 갖고 싶은 것들이 있다.

그 모든 것들을 전부 만족할 만큼은 못하겠지만 도전해봐야 한다.

도전을 해보지 않는다면 인생이 즐겁거나 신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것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것에도 걱정과 불안을 껴안고 힘겹게 살아가는 것 밖에는 안 된다.

 

왜 그래야만 하지?

 

어쩌면 내가 그렇게 살아왔기에 이제부터라도 도전해보면서

인생을 즐겁고 신나게 살아가야 된다고 그 무언의 압박감이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걱정과 근심이 굉장히 많은 사람에 속하는 편이다.

무엇을 하게 되었을 때, 이미 머릿속에서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올라 지레 겁먹고 포기하기도 했고,

부딪혀보기도 전에 도망치고 숨어버리느라 시도도 해보지 못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살아왔나 싶다.

정말 신나고 즐겁게 해보고 싶은 일들에 망설임 없이 도전해볼걸,

실패를 하게 되더라도 후회를 남기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후회가 너무 많다.

다시 되돌리기에는 시간도 많이 지나버렸고, 이미 할 수 없게 되어버린 일들도 너무나 많다.

 

예를 들면, 여행 같은 것. 나는 친구들과의 여행은 많이 가보지 못했던 것이 제일 아쉽다.

그 당시에는 핑계와 변명이 많았고 제일 큰 문제는 아무래도 돈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돈이 없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가계부를 쓰지도 않고 돈이 생기면 바로 쓰기에 바빠서 그랬으리라. 나는 저축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식이었다. 그랬기에, 늘 내 돈은 나의 소유가 아니었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전부 부모님이 관리해주셨고,

졸지에 나는 부모님께 필요한 만큼 받아서 쓸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나는 자유롭지 못했고 친구들과의 여행을 간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부모님께 돈 달라고 하기에는 평소에 내가 쓰던 돈이랑은 다르게 액수가 컸고

당연히 안주실 것을 알기에 나는 거짓말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부모님께 들통이 나서 더 혼나게 되고.

나는 부모님께 솔직해지지 못해 신뢰감을 잃었고 소중한 시간도 잃고

친구들과의 즐거운 여행을 하고 난 후의 추억들을 잃었다.

 

나이를 먹고 난 후에는 친구들과의 여행이 너무 어려워졌다.

서로 먹고 살기에 바쁘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보니, 여행은커녕 따로 시간 내서 만나는 것조차 어렵다.

도전해보고 할 수 있다는 것도 때가 있는 법이다.

그 때라는 시기를 놓치게 되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 할지라도

그때의 즐거움을 맛볼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꿈과 하고자하는 목표가 확실하다면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

꿈이 있는 사람은 늘 항상 바쁘고 열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확실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원하는 걸 쟁취할 때까지 끊임없는 노력을 할 것이다.

설령, 불안함이 엄습해오더라도 강한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꿈도 명확하게 정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미래가 솔직히 불안하다.

고정적인 수입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나의 실력대로 혹은, 능력대로 수입이 달라질 수 있기에

심리적인 압박감이 나를 조여 온다. 하지만, 나는 내가 글을 쓸 수 있어서 정말 좋고 신나고 감사할 따름이다.

 

글을 쓰기에 앞서 원고지를 펼쳐놓고 연필을 잡고 있으면 마음이 쿵쾅쿵쾅 빠르게 요동을 친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까, 즐거운 상상 속에서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가끔은 힘들고 괴로울 때도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이 결국,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다.

물질만능주의가 되어버린 각박한 세상살이에 많이 지치긴 하지만,

지친마음을 위로해주는 나의 꿈이 있기에 희망을 붙들고 용기 있게 살아갈 수 있음에 그저 즐겁다.

나의 글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힘들고 지친마음에 쉼이 되어주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포옹해줄 수 있는

희망의 글들이 되길 기도하면서 나는 매일 꾸준히 글을 쓴다.

그 어느 누구의 방해도 없고 잘했네, 못했네!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없이

오로지 내 상상 속에서 만들어지고 아주 잠깐이라도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짧지만 강한 몽롱한 마약 같은 글을 쓰고 싶어 매일매일 습작을 한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두렵지도, 불안해지지도 않을 수 있다.

제일 평온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마법처럼 그 순간만큼은 내가 최고라 느껴지고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아 천하무적이 되어버리는 기분.

그 기분을 만끽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힘들긴하지만, 자신감은 생긴다.

 

요즘 들어, 부쩍 드는 생각인데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성공한 삶이 아닐까?

아무리 물질만능주의 사회가 되었다고 하지만 즐겁게 일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충분히 잘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은 그 어느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 어차피 우리 모두가 서로 공존해가며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에

각자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가져가는 것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기에 누구나 성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결국,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임을 잊지 말기로 한다.

그러니 앞으로 살아가면서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불안해하지 말자.

미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를 얼마나 즐겁고 신나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도 달라지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