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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사랑한다는 헛소리

 

 

 

 

  사랑해

 

  그에게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하던 행동을 모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막 사물에 대한 명칭을 알아가는 아이도, 마음을 표현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가는 소년·소녀도, 군데군데 미세먼지보다 더 강력한 잡음이 끼어든 인생을 어떻게든 사랑해보려는 청년도, 안녕하세요? 보다 건강하시죠? 라는 인사가 더 익숙해진, 지긋한 나이의 어른들도 모두 좋아하는 말. 그렇지만 손만 뻗으면 닿아 까먹을 수 있는 귤처럼 여기고 싶지는 않은 그 말.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그런 의미였다. 그래서 나는 그가 왜 뜬금없이 그런 말을 갑자기 해버린 건지 궁금했고, 그 이유에 대해 너무 오래 생각하다 그만 그 사람을 내 인생에서 스쳐지나가는 이로 만들어버렸다. 사랑의 말에 이유를 묻는 순간, 진심은 헛소리가 되었다.

 

 

  사랑해

 

  얼마 뒤, 나는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그 말과 또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조우했다. 작년부터 엄마는 간헐적으로 헛소리를 내뱉었다. 처음 그녀의 그런 모습을 알아챈 건 다름 아닌 나였는데, 나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한 두 번의 이상 반응인 걸로 넘겨버렸다. 그러나 그 헛소리는 조금씩 느슨하게 엄마라는 존재 안에서 영역을 넓혔고, 시간이 지나며 그녀를 원래의 엄마 반, 낯선 엄마 반이 함께 공존하는 다면적 인간으로 만들었다. 엄마는 예전에 자신이 재미도 보람도 없는 삶을 산 것 같다면 자주 자책했는데, 그래서 나는 그녀가 피안彼岸을 끌어들여 인생에 즐거움의 빛을 드리운 게 아닐까 종종 생각하기도 했다. 여하튼 갑작스런 그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건 엄마의 입을 통해서였다. 저 말을 한 건 낮의 엄마일까 아니면 밤의 엄마일까, 내가 서서 고민하는 중에 그녀는 내 눈을 곧이 바라보며 아무런 미동도 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거기서 내가 해야 하는 건 우리를 둘러싼 공기가 더 이상 아득해지기 전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웃는 일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사랑한다는 말을 머리맡에 두고 떠나보내지 않는 일, 스쳐지나가지 않도록 잡아두는 일, 그녀에게 나는 기적을 행할 수 없지만 나에게 그녀는, 엄마라는 사람은 여전히 기적이라는 사실을 저버리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사실은 낮의 엄마가 보내는 진심의 신호든 밤의 엄마가 토해낸 헛소리든, 나는 전혀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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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힘들때면, 꿈이 나를 일으켰다.

 

 

희망이 없다고 느꼈을 때, 나는 가능성이 없다고 느껴졌을 때,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을 때.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나를 일으켜 세워준 건 다름아닌

늘 희망을 이야기하고 꿈을 꾸며 늘 당차게 살았던 나의 지난날의 일기들이었다. 

 

일기장을 펼쳐 부지런히 그동안 나의 희망적인 이야기들을 읽어내려갔고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을 때.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면서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늦은 밤, 나는 글이 쓰고 싶어졌고 바로 노트북을 켜,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무엇인지 적어내려가기 시작했고 그 글은 나에게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다시 희망을 갖고 꿈을 꾸기 시작한다. 

비록,

늦었다고 생각했었던 지난날의 불완전한 생각들과 마주할 나에게 두렵다고 포기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넌 할 수 있다고 희망을 가져도 된다고

노력하면 반드시 너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그 날이 올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자신을 믿고 굳건하게 너의 그 길을 걸어가라고 응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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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기

Prologue_몰래 떠난 여행

 지금이야 내 스스로를 책임지는 성인이라 어디든 맘대로 떠날 수 있지만, 누구나 있지 않은가? 부모님 몰래 친구들과 혹은 남자친구,여자친구와 함께 떠났던 여행이. (물론 성인이라도 연인끼리 여행은 부모님께 비밀이긴 하다.)

 그 일말의 죄책감과 두려움을 안고 스스로 동네를 벗어난 첫 여행은 고등학생 때였다. SNS에 여행 사진을 잔뜩 올리고 연인과의 애정을 자랑하는 지금의 학생들과 달리, 그때만 해도 '쟤네 같이 잤대.', '쟤네 뭐 했다더라.' 하며 뒤로 뒤로 얘기가 나돌던 때였다. 과도기였다고 보면 된다. 학생들의 연애(여행)를 마음껏 공개 할 수 있는 지금으로 넘어오는 과도기였다. 그런 시대에 나는 심지어 친구 커플과 함께 4명이서 여행을 떠나는 당돌한 짓을 했다. 미성년자는 예약이 불가한 펜션들 사이를 뒤지고 뒤져서 도대체 어떻게 예약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겨우겨우 예약을 했다. (아마 대학생인척 했겠지.) 그렇게 간 여행지는 경포대였다. 꽤나 멀리간 여행이었지만, 나름 인생의 첫 남자친구(초등학생,중학생 때는 제외하고)와 함께기에 나로써는 엄청난 용기와 돈을 들인 여행이었다. 부모님을 속였다는 죄책감 따위, 남자친구와 사진을 찍다보니 이미 짜그러진지 오래였다. 17살, 누가봐도 애티나는 모양새. 아마 펜션 주인도 속아줬을거다. 화장기 거의 없는 수수한 얼굴에, 보송보송한(여드름은 좀 있지만) 솜털도 채 안가신 애들을 어떻게 대학생으로 봤겠는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처구니 없는 짓이었는데도 그 때는 나름 의기양양 했다.

 내가 이만큼 컸다고. 어른들처럼 여행도 왔다고 말이다.

그때 무얼 했는가 떠올려보면 아득하지만 멀리서나마 선명한 무지개마냥 아름다운 잔상이 쏟아진다. 사실, 그렇게 여행까지 다녀온 남자친구와 미친듯이 싸우고 헤어졌는데도 그 여행만큼은 즉시 인화가 가능 할 만큼 생생한 필름으로 남겨져있다.

 수평선, 바닷가, 모래사장, 옛 남자친구 뒷모습, 불꽃놀이

그 아름다운 그림들이 아직도 그려진다. 지금도 경포대에 가면 그 어린 17살의 내가 총총총 뛰어다니는게 보이니까.

 

 첫 번째 여행. 몰래 떠난 나의 여행은,

짜릿함의 묘미를 안겨줬다.

나의 법이었던 부모님을 거역한 첫 일탈.

내 스스로 어딘가로 찾아갔다는 그 성취감.

 

집순이인 나를 밖으로 이끌어준 '여행'

나의 삶 여행기.

 

'몰래'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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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雜

월요병

월요병

 

즐거운 주말이 지나면 언제나 찾아오는 월요일.

출근과 업무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이 만들어낸 월요병.

 

나도 한때는 출근만 하면 머리가 지끈 거렸던 적이 있었다. 24살 대학을 갓 졸업하고 학부 전공 조교로 일할 때였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남들은 한번이라도 잠깐이라도 해보는 아르바이트 한번 하지 않았기에 사회경험이라고는 백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가정 형편이 넉넉했던 건 아니다. 그저 매달 받는 용돈 범위에서 넘지 않게 아꼈을 뿐이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최대한 용돈 내에서 해결하려 했을 뿐이다. 더불어 자랑은 아니지만 등록금의 30%가 면제되는 장학금도 한번 받았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시작된 일과 업무는 나에게 참으로 낯선 것 투성이었다. 서툴렀고 미련했으며 어리숙했다. 실수도 많았고 꾸지람도 많이 들었다. 학생일 때는 그리도 좋던 교수님이 날이 갈수록 스트레스 덩어리가 되어갔다. 퇴근이나 주말에는 괜찮다가 출근만하면 머리가 지끈거릴 만큼 말이다.

 

그렇게 1년을 겨우 버티고 나와서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때는 교수님도 참 답답하셨겠다는 생각이 든다. 덜렁거리고 느긋한 성격의 내가 꼼꼼하고 직설적인 교수님에게 얼마나 답답해보였을지, 한번씩 떠오를 때면 픽-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때는 정말 월요병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와닿을 만큼 출근이 싫었고 월요일이 싫었다. 1년을 겨우 버티며 그만둘 때에 숨이 확- 트이는 걸 느낄 만큼 출근이라는 것이, 월요일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런 반면 한동안 일을 푹- 쉬다가 최근 다시 일을 시작한 요즘은 월요일이 와도 딱히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가는 순서대로 월요일을 그저 하나의 날로 받아들이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힘들다거나 피곤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월요일이 오면 오는가 보다, 주말이 오면 오는가 보다, 이런 심정이라고 할까?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 대신 출근하면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받아들여서가 아닐까 싶다.

 

문득 모니터 하단의 시계를 보니 2017년 2월 20알 월요일, 오늘도 3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남은 월요일을 마저 보내고 4일의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주말이다. 다가올 주말을 위하여! 월요일이 지나가고 있다.

 

일주일 후에 다시 찾아올 월요일, 월요일은 더 이상 내게 월요병이 아니다.

그저 7개의 요일 중에 하나일 뿐.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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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愛

나를 잊지 말아요

나를 잊지 말아요.

 

여리게 밝아오는 하늘 아래 새벽 이슬에 젖어 또르르- 한방울 흘러냅니다.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리운 그대를 기다리며...

 

당신은 내게 생애 처음으로 느껴본 설렘이었습니다.

모질고 고된 일상 속에서 처음으로 맛본 달콤함이었습니다.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대를 향한 마음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기에 짧은 만남이라도 소중했습니다.

 

당신과 함께하는 그 시간, 그 순간이 더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습니다.

이별이 멀지 않음을 알면서도 잊을 수 있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비록 당신이 떠나가더라도, 더 이상 만날 수 없더라도 잊지 않겠습니다.

나와 함께한 시간과 기억이 그대에게 아픔이 아닌 추억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이제는 곁에 다가갈 수조차 없기에 다시 만날 때에는 먼발치에서 나마 볼 수 있기를...

투명한 이슬을 떨어내는 물빛 꽃송이를 바라보며 간절하게 바랍니다.

 

그대여 나를 잊지 말아요.

 

우리 함께한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하게 웃어요.

가슴 아픈 상처가 아닌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해줘요.

 

그대여 나를 잊지 말아요.

 

나를 잊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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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같은 인생

'엄마의 빗질과 머리끈' 카네이션:carnation

'엄마가 많이 늙었구나.'

매일같이 얼굴을 보니까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이듦'이었는데, 새삼 엄마의 세월이 빨리도 흘렀구나 느껴졌다.

늦은 밤, 자고 있는 엄마를 보니 눈덩이까지 내려앉은 주름이 그동안의 삶의 무게를 말해주는 것 같아 코끝이 시큰해졌다.

우리 엄마가 젊었고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내가 2학년 때 처음 머리를 스스로 묶었으니까) 엄마는 예쁜 머리끈을 자주 사서 머리를 묶어주셨다. 딸을 사랑하는 엄마의 사랑을 표현의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은 작고 앙증맞은 꼬마가 새겨진 머리끈, 포도알처럼 주렁주렁 작은 구슬이 달린 끈, 장식은 달려있지 않지만 형광색이 포인트인 긴 끈까지...

너무 세게 묶어서 종종 내 눈이 여우눈처럼 치켜올라가곤 했지만 내 전문 미용 선생님의 손길이 참 좋았더랬다.

예쁘게 묶인 머리를 보고 부러워하던 친구들도 많았다.(아마도 맞벌이 부모님을 둔 까닭에 상황상 단정한 빗질은 어려웠을 거다)

지금은 엄마 손은 다소 투박해졌고 쪼글쪼글하다. 내일은 왠지 엄마한테 내 머리를 부탁하고 싶다. 나는 아직도 어리고 내 기억 속의 엄마는 늘 30대다.

모정, 부인의 사랑.

카네이션의 꽃말이다. 우리집 곳곳에는 카네이션이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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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같은 인생

'슬프고 괴로운 사랑의 쓴맛' 아네모네 anemone : 바람꽃

배신, 속절없는 사랑, 기대, 사랑의 쓴맛...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어요. 당신을 사랑하기에 저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 비록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아네모네의 꽃말은 슬프고 괴롭다. 부정적인 뉘앙스의 저 말들의 공통점이라면 이뤄지지 않은 사랑, 혹은 이별 뒤 쌉싸름한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 속 '아도니스와 아프로디테의 사랑이야기'는 아네모네를 더욱 사연있는 꽃으로 만들어준다. 

먼 옛날, 키프로스 섬에 살고 있는 키니라스 왕에게는 미르라라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딸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던 왕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보다 미르라가 더 아름답다'고 말했고, 이 사실을 안 아프로디테는 미르라가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는 저주를 내리게 된다. 

죄책감과 수치스러움, 절망감으로 가득찬 나날을 보내던 미르라. 그녀의 자초지종을 들은 유모는 아무도 모르게 키니라스 왕과 동침하도록 뒤를 봐준다. 후에 미르라는 아이를 잉태하게 됐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왕은 미르라를 죽이려 한다.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미르라는 신들에게 자신은 죽어도 좋으나 아이만큼은 살려달라고 기도한다.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는 이를 불쌍히 여겨 미르라를 몰약 나무로 만들어 산 목숨도, 죽은 목숨도 아닌 상태로 만든다. 

그리고 미르라는 요정들의 도움으로 건강한 아이를 출산한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가 '아도니스'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를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저승의 신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에게 맡겼고,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서 아름다운 청년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를 사랑하게 된다. 이에 페르세포네에게 아도니스를 빼앗으려 하지만, 페르세포네 역시 만만치 않게 아도니스를 사랑하는 상황. 

과정이야 어쨌든 아도니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했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에게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언제나 곁에 두고 싶은 건 신들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매일같이 함께 사냥에 나서기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아프로디테는 잠시 아도니스의 곁에서 떨어지게 되는데 하필 그날 아도니스는 멧돼지에게 겁없이 덤벼들다 날카로운 엄니에 찔려 숨을 거둔다. 당시 아도니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멧돼지는 아프로디테의 전 연인인 전쟁의 신 아레스가 변화한 것이었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가 흘린 붉은 피 위에 향기로운 신주 '넥타르'를 뿌렸고, 그 자리에서는 꽃이 피어났는데 그 꽃이 아네모네다. 

 

아네모네는 다른 말로 '바람꽃'으로 불린다. 아네모네라는 이름도 그리스어로 바람을 뜻하는 anemos에서 유래됐다.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 아도니스처럼 살짝 부는 바람에도 꽃잎이 떨어진다. 비록 꽃이 피어있는 기간은 짧지만, 그럼에도 아네모네는 피어있을 때만큼은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하늘하늘 벨벳같은 꽃잎의 질감, 보기만해도 취하는 꽃잎의 색감... 한창 아름답게 피어있던 아도니스처럼.

 

*아네모네는 9~10월 가을에 심어져 이듬해 이른 봄에 꽃이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