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어보기

오늘도

학원에서 크게 깨졌다. 이번에는 과외를 짜르겠다는 말 까지 나왔다. 그 선생님 앞에만 앉으면 말이 안나온다. 자신감이 사라진다. 아무것도 없었던 것 처럼 머리 속이 하얘지고 내가 맞는 답을 하는지 자꾸만 눈치를 본다. 그럼에도 그만두지 못한다. 그 선생님께 배운다고 더 나아지는것도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이건 마지막 자존심인걸까. 치기 어린 마음이라는 건 잘 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 스트레스 받는 건 나인 걸 안다. 그렇지만 그 선생님을 놓아 버리면 꼭 지는것만 같다.

나는 욕먹어도 잘 참는다. 내가 공부 안했다는 걸 아니까 굳이 변명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내가 못 견뎌서 나가는 꼴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금 울었다. 그 선생님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내가 다니려는지 마음이 흔들렸다. 이렇게 힘들어 하면서 잘 가르친다는 쌤한테 배워야 할까? 그게 내 대학에 큰 영향이 있을까? 선생님은 내가 갈 대학이 뻔히 보인다고 했다. 진짜일까?

영화 한편 보고 마음을 좀 가라앉혔다. 내일 학교가면 그냥 피곤한 일이 있었다고 해야지. 친구들한테 학원쌤한테 욕들어먹었다 해야지. 그리고는 수다도 떨고, 야자할때 좀 졸고, 책도 읽어야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것 처럼 책을 펴야지.

글 이어보기

유리병 편지

캔버스에 여백, 2018.

 

 

 

  회화에 있어 여백이란 배경을 그대로 비워둠으로써 캔버스 위 작은 설국雪國을 입맛대로 상상하게 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또는 반대로 여백이 아닌 부분에 시선을 더 오래 두도록 유혹하기도 한다.

 

 

  실은 퇴근길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읽은 이 글 때문에 갑자기 든 생각이면서, 기어이 ‘상상력을 숨겨두고 살 만큼 마음이 메마른 사람은 되기 싫다’는 거창한 핑계를 내세우며 취미 미술반에 등록했다. 하지만 첫 수업이 있던 날, 비장한 표정으로 건물 앞에 다다른 나는 화실 문턱을 넘자마자 그만 머리에 피도 채 마르지 않은 여고생의 마음이 되고 말았다. 12년 만에 처음 잡아본 4B연필이 그렇게 어색할 수 없었다. 희멀건 손가락과 흰 도화지를 번갈아가며 바라보던 나는 이왕 철딱서니 없이 시작한 일, 첫 날엔 공쳐도 괜찮다며 철없는 자기위안에 빠져들기로 결정했다. 능청을 떨며 자분자분 주변을 살피니 화실의 모습이 꼭 한 폭의 그림처럼 눈에 들어왔다. 제목을 붙이자면 『Hello Strangers』, 91×65.2cm, 캔버스에 유채, 2018. 정도가 어떨까.

 

  한 타임 당 예닐곱 명에 불과한 소규모 클래스였지만, 강사 1명이 2시간 동안 우리 모두의 그림을 꼼꼼히 돌봐주기엔 부족함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성인이 된 후의 첫 그림에 대한 살뜰한 보살핌을 바랐던 내게 선생님의 깃털처럼 가벼운 눈빛은 그다지 만족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감동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되었다. 그 4B연필에 뭐 사연이라도 있어요? 계속 노려보네. 낯설지만, 그보다 더 냉랭한 수업시간의 분위기를 단번에 풀어줄 만큼 다정한 목소리. 나는 그날 화실에서 진이를 처음 만났다.

 

  수업이 끝난 건 오후 4시가 갓 넘어 이른 시각이었지만 목을 축이기엔 커피보다 맥주가 나을 것 같아 근처 호프로 이동했다. 나보다 석 달 먼저 화실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진이는 아버지를 그리는 게 목표라 했다. 가족애가 남다른가보다 싶어 나도 보조를 맞추려 우리 집 식구들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자 그는 술이 들어가서 말이 술술 나오냐며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뺨이 봉숭아처럼 물든 뒤에는 술잔에 술을 따르듯 자기 이야기를 술술 흘렸다.

 

  내가 아주 작았을 때 올려다본 아버지는 그냥 큰 사람이었어. 물론 모든 아버지들이 그런 경향이 있지만 내 아버지는 유난스러울 정도로 그래보였지. 왜 그런 형용사 있잖아. ‘크다, 넓다, 단단하다’ 같은 말… 왜 사람이 나이 들면 잔뜩 쪼그라들고, 그래서 불쌍해 보이고, 연민을 자극하는 모든 수식어가 덕지덕지 붙어서 꼭 콩떡처럼 된다고 하던데, 나한테는 아직도 아버지는 그냥 대문자야. 저 혼자 우뚝 선 알파벳 대문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사람.

 

  하지만 자기의 주관을 갖고 붓칠을 할 수 있게 된 시기부터는 긴 면이 고작 41센티 정도 되는 화폭 안에도 그를 집어넣을 수 있다고, 심지어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꼬마병정만큼 줄여서 그릴 수도 있다고 말하며 피식 웃었다. 병정만치 자그마하게 아버지를 그리면 그 옆엔 무얼 둘 거냐고 물었더니 아무 것도 두지 않는단다. 파란 하늘도, 깨끗한 물도, 보기 좋은 꽃도, 건강해 보이는 강아지도, 아내도 아들도 전부 그의 곁엔 놓고 싶지 않다고.

 

  술자리가 마무리되고 밖으로 나와 발을 내딛은 길 위에서 혀도 다리도 꼬여버린 진이는 비탈길을 비틀길이라 우겨대기 시작했다. 물기 가득한 그의 혀에서 툭 튀어나오는 오타誤打가 마치 내 심장 중앙에 콩 콩 점을 찍는 것처럼 느껴져서, 들키지 않으려 쿵 쿵 큰 보폭으로 앞서나갔다. 나는 진이가 좋았지만 당장 그걸 알리고 싶진 않았다. 그가 깨닫는 때가 온다면, 서로가 감춰둔 빈 화폭 위에 점 하나 찍어도 웃어넘길 수 있을 그런 날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틀비틀 비틀길을 걷던 진이는 딱 한 잔만 더 하자며 나를 불러 세웠다. 오늘만 살 거냐고 묻는 내게 속 빈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그를 외면할 수 없었다. 소주잔을 앞에 두고 영 횡설수설하던 그는, 그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크고 단단하기만 한 병정 곁에 꼭 무언가를 내줘야 한다면 하얀 눈밭을 선물해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진짜 눈을 줘야지. 스키장 같은 데서 퍼다가 부어버리는 건 안 돼. 그건 진짜 눈이 아니니까. 가짜 눈엔 붓질도 안 될걸. 내 여백을 그런 식으로 망칠 순 없지.

 

  그리고 그 위엔 옛날의 공기를, 그 공기 안의 기억과 기분과 마음 따위를 떠다니게 할 거라고. 형체가 분명하지 않은 것들이라 물감으로 덧칠하려면 시간이 제법 걸릴 거라고. 그래서 그걸 그릴 수 있게 될 때까지 비틀길을 넘어 화실에 다닐 거라고, 그는 말했다. 그럼 우리가 언젠가 화실에서 만날 수 없게 되는 때가 온다면 그 날이 너에겐 축일祝日이겠구나. 하얀 눈밭 위엔 네 숨, 엄마 숨, 날숨 그런 걸 올려둘 테니. 그럼 그 날 비로소 가족이 완성될 테니. 진이는 내 말에 아무런 대꾸 없이 연거푸 세 번이나 원 샷으로 소주를 들이켰다. 절대로 아버지를 따뜻하게 그릴 수 없는 사람. 하지만 그의 곁에 둔 여백을 세상 가장 오랫동안 지켜볼 사람. 나는 진이가 그릴 눈밭의 기온이 영하권으로는 내려가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흰 여백에 쌓인 진짜 눈이 녹아버리면 다시 흰 물감으로 눈을 퍼와 노병老兵의 여백을 지켜줄 신병新兵의 모습을 상상했다. 짐짓 하품을 하며 빈 잔 위로 흘린 두어 방울의 눈물과 이게 바로 참이슬이라는 농담을 흘리는 진이의 한 마디를, 나는 그냥 흐르도록 두었다.

 

  어떤 남자에게 여백이란 희미해진 과거의 원망들을 캔버스 위에 까무룩 내려놓음으로써 더 이상 이슬에 취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도구로 쓰인다. 그게 아니라면, 실은 그 흰 벌판을 단 한 번도 가까이에서 마주하지 못한 아버지의 등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등바등 아버지를 기억하고 싶어 하는, 하얀 욕심 같은 것. 그의 여백이 완성되는 날, 나는 이런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여백』, 333×218cm, 캔버스에 수채, 2018.

 

 

 

 

                                                                  작년 겨울, 그림을 그리던 친구를 보며 썼던 <그 남자의 여백>이라는 글에

                                                                                                                조금 살을 붙여 다시 써 보았습니다 :)

글 이어보기

유리병 편지

그 남자의 여백

 

 

 

 

    회화에 있어 여백이란 배경을 그대로 비워둠으로써 캔버스 위 작은 설국雪國을 입맛대로 상상하게 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또 그것은 반대로 여백 아닌 부분에 시선을 더 오래 두도록 유혹하기도 한다.

 

  H는 아버지를 그린다고 했다. 아주 작았을 때 올려다본 아버지는 크다, 넓다, 단단하다 따위의 언어 혹은 대문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자기의 주관을 갖고 붓칠을 할 수 있게 된 시기부터는 긴 면이 고작 41센티 정도 되는 화폭 안에도 그를 집어넣을 수 있다고, 심지어 꼬마병정만큼 줄여서 그릴 수도 있다고 말하며 피식 웃었다. 그럼 병정만한 아버지 옆엔 무얼 두냐고 물었더니 아무 것도 두지 않는단다. 파란 하늘도, 깨끗한 물도, 보기 좋은 꽃도, 건강해 보이는 강아지도, 부인과 아들도 전부 두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에게 꼭 무언가를 내줘야 한다면 하얀 눈밭을 선물해주겠다고도 했다. 형체가 불분명한 과거의 공기 같은 것들을 그리려면 시간이 필요하며, 그걸 그릴 수 있게 되는 날 비로소 가족이 완성될 거라고 속삭였다. 아버지를 따뜻하게 표현할 자신이 없다는 고백은 하지 않았지만, H가 반쯤 들어찬 잔을 내려다보며 흘린 두어 방울의 눈물과 “이게 바로 참이슬”이라는 농담 섞인 한 마디를 스치듯 마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H에게 여백이란 과거의 원망을 종이 위에 내려놓음으로써 더 이상 취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도구로 쓰인다. 그게 아니라면, 그는 사실 그 허허벌판을 등에 때 한번 목격하지 못한 아버지의 등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등바등 아버지란 사람을 기억하고 싶어 하는, 어떤 남자의 욕심 같은 것.

 

글 이어보기

짧은 글 모음집:奇

공중전화

 

공중전화

 

학원을 마치고 어두운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드리워진 골목길에는 지나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매일 다니는 길이라 혼자 걷고 있다는 게 그리 무섭지도 않았다. 오히려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면 무서웠을지도 모르겠다.

 

‘졸려. 얼른 가서 잠이나 자야겠다.’

 

작게 하품을 하며 오르막길로 들어섰다. 왼편에는 빌라의 담장이 있고 오른편에는 모 회사의 기숙사 담장이 있는 길이었다. 오르막길을 반쯤 올랐을 때 무심결에 고개를 돌려 기숙사 정문 안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불이 꺼진 건물과 가로등 옆에 공중전화 박스가 보였다.

 

그 박스 안에 누군가가 이쪽을 바라보며 통화 중이었다. 난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에 다시 눈을 돌려 그 공중전화 박스를 바라보았다. 비어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 가로등 불빛 아래 박스 안에서 통화를 하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어? 내가 잘못 봤나?’

 

이상했다. 정문 안의 마당에도 인기척은 없었다. 공중전화 박스를 나왔다면 어딘가 걸어가고 있는 그림자라도 보여야 하는 게 아닌가? 고개를 돌렸던 단 몇 초? 그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나? 난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며칠 뒤, 같은 시간 학원을 마치고 친구와 함께 그 길을 지나게 되었다. 그리고 난 다시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다. 공중전화 박스에 그때 본 그 사람이 또 있었다.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나 며칠 전에도 여기서 똑같이 저 사람 봤는데...”

 

“응? 아무도 없는데?”

 

“어? 저기 공중전화 박스에 있잖아.”

 

“없는데. 너 누구 말하는 거야?”

 

난 고개를 돌려 공중전화 박스를 바라보았다. 비어있었다. 그 길을 지나는 내내 난 분명히 봤다며 중얼거렸고, 친구는 재차 아무도 없었다고 날 타박했다. 그 이후로는 꼬박꼬박 학원 차를 타고 다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니던 학원도 그만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겁도 없었다. 헛것이겠지만, 아닐 수도 있는 걸, 그리 빤히 보며 무심히 지나치다니 싶다.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겁이 늘어난 게 아닐까 싶다. 고등학생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던 공포영화를 지금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