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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속의 마녀

#1화

 

 

“너희, 그거 들었어?”

 

“뭘?”

 

“마녀가 나타났대.”

 

“에이, 전설에나 있는 얘기지. 그런 걸 믿어?”

 

“진짜라니까?”

 

 

소녀들이 마을을 거닐며 호들갑스럽게 수다를 떤다. 수다의 주제는 ‘마을에 마녀가 나타났다’는 ‘소문’.

소녀들은 막 소식을 접한 듯 했지만, 소문은 이미 마을 어른들 사이에서 꽤 흥미로운 이슈로 자리잡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소문일 뿐이다, 전설일 뿐이다, 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설 속의 ‘라푼젤’과 같은 금발에 에메랄드 눈동자를 가진 마을의 소녀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어서 들어가. 해가 지고 있어.’

 

‘금발을 가진 여자아이들은 조심하렴. 마녀가 찾아올 수도 있어.’

 

‘절대 숲 근처에는 가지 마. 마녀가 산대.’

 

 

+++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마을 사람들의 불안감도 더뎌지고, 한때 불붙었던 소문도 잠잠해졌다.

그리고 사건은 아무도 모르게 터졌다.

 

 

“얘들아, 그거 들었어?”

 

“실종 사건 말이야?”

 

“그래, 그거. ‘전설’이 진짜였나 봐.”

 

 

여인이 사라졌다. 하지만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른 여인이었다.

마을의 그 어떤 여인보다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여인. 평범하디 평범해서, 무리 속에 한둘쯤 없어도 크게 티나지 않을 그런 여인이었다.

 

 

“이런 작은 마을에서 사람이 없어지면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대체 누가 사라진 거야?”

 

“그러고 보니 그렇네. 누구라더라...”

 

 

헤레.

그것이 그 여자의 이름이었다.

 

 

+++

 

 

-사건 전날-

 

“슬란.”

 

“응, 헤레. 왜?”

 

 

헤레와 슬란이 골목 어귀에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헤레는 딱히 그렇다 할 재주가 있는 것도, 화려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닌, 소심하고 평범한 마을의 여자 중 한 명이었다. 슬란은 헤레가 마을에서 유일하게 가깝게 지내는 사람으로 알고 지낸 지 7년 정도가 되는 오랜 친구였다. 여담으로 한 마디 붙이자면 헤레에게 슬란은 친구 이상이었지만, 슬란에게는 헤레가 좋은 친구, 딱 거기까지였다.

 

헤레는 여느 때와 같이 슬란과 함께라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입을 뗐다.

 

 

“요즘 ‘전설’ 이야기가 많이 돌더라.”

 

“그렇더라. 너도 조심해, 헤레.”

 

 

헤레는 당연하다는 듯, 자신을 향하는 걱정의 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그녀는 슬란을 참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

헤레는 애써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말을 이어갔다.

 

 

“...나는 괜찮아, 금발도 아니고, 눈동자도 에메랄드 색이 아니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살그머니 미소지은 슬란의 말에 헤레가 조심스레 슬란을 올려다봤다. 헤레의 볼에 남모를 홍조가 비쳤다.

슬란은 빼어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고, 돈이 엄청 많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슬란 또한 헤레처럼, 평범하고 착한, 마을의 남자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슬란은 헤레에 비해 많이 활발했고, 친구도 많았다는 것. 어쨌든 헤레는 슬란이 설렜다. 아마 어떤 모습이었어도 설렜을 거라고 생각했다. 헤레의 고요하고 행복한 상상이 이어졌다.

슬란이 생각에 잠겨 말이 없어진 헤레를 의아하게 여기고 그녀의 눈 앞에 손을 흔들었다. 헤레는 슬란의 손이 바로 눈 앞에 보이자 귀까지 붉어진 채 슬란에게서 몸을 떼며 고개를 저었다. 슬란은 그런 헤레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헤레는 얼굴이 타버릴 것만 같아 그에게서 몸을 돌려 버렸다. 뒤에서 슬란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런 상태론 돌아볼 수 없었다.

 

 

“헤레?”

 

“...아, 아, 나 이만 가볼게.”

 

“어, 그래. 또 보자. 엇, 헤이나!!”

 

“아, 슬란. 헤레도 안녕!!”

 

“......”

 

 

헤레는 자신에게 작별인사를 하다가도 다른 여인을 향해 웃어보이는 슬란의 태도에 착잡해졌다.

헤이나. 슬란과 교제하는 여자였다. 헤레는 그녀가 부러웠다. 적어도 자신보다는 여성스럽고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고 느꼈기 때문에. 헤이나는 사교성도 좋은 편이었고, 뛰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웃는 모습만큼은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다. 그걸 인정하기 때문에 헤레는 그녀가 부럽고, 밉고, 닮고 싶었다.

 

 

“응, 안녕, 슬란...”

 

 

헤레가 뒤늦게 슬란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대답은 없었다. 슬란은 이미 헤이나에게 달려간 지 오래였다.

슬펐다. 스스로가 싫었다.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외모도, 좋아한다고, 용기 한 번 내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도,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하고 늘 겉도는 점도,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걸 알면서 포기하지도 못하는 미련함도.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생각에 이어 마음이 시려왔다. 아직 익숙해지기에는 먼 듯한 통증이 가슴을 쳤다.

 

 

 

 

+++

 

 

슬란과 헤어진 후, 헤레는 정처없이 앞만을 향했다. 끝의 끝까지 걷다 보면 감정이 조금 사그라질 것 같았다. 이럴 때 감정을 털어놓을 친구조차도 없다니.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소심하고 답답한 헤레의 성격을 버티지 못했고, 결국 그녀의 곁에는 슬란뿐이었다. 헤이나도 슬란과 교제를 시작한 후 길에서 헤레를 보면 종종 말을 걸곤 했지만, 슬란을 짝사랑하는 헤레에게 그런 헤이나의 모습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그래서 헤레는 헤이나에게도 퉁명스러운 태도로 일관했고, 헤이나가 헤레에게 접근하는 일도 점점 줄어갔다.

헤레는 그것조차 한심했다. 그래서 정말 하잘 것 없는 생각을 하며 앞만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그러던 와중, 바람과 함께 생각 하나가 흩날리듯 불어갔다.

 

 

‘설령 내가 사라져 버린다 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겠지.’

 

 

바람에 날린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렸다.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치우니 숲이 보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숲 근처까지 와 버린 모양이다. 잠시 멍하니 숲을 바라보던 헤레의 머릿속에 문득, 얼마 전까지 마을에 돌았던 흉흉한 소문이 떠올랐다.

 

 

‘마녀가 ‘전설’ 속의 ‘라푼젤’과 닮은 여자를 잡아간대.’

 

‘얼마 전에 그 마녀가 우리 마을에 나타났다더라.’

 

‘마녀는 숲에 산대. 숲 근처는 위험하니 조심해.’

 

 

헤레는 소문을 떠올린 순간 흠칫했지만,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전설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전설이 사실이라고 해도, 마녀가 노린다고 한 건 ‘금발’과 ‘에메랄드 빛 눈동자’, 그리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여인이니까. 고동색 머리칼에 평범한, 아니, 못난 자신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안도감과 함께 비참함이 느껴졌다. 이어서 슬란이 생각났다.

너무도 좋아하는 그의 표정이, 그의 손짓이, 그의 목소리가-

 

 

‘헤이나!!!’

 

 

-설레는 표정으로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르던 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헤레는 눈을 꾹 감았다. 아무리 떨치려 해도 슬란과 헤이나의 모습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포기해야 하는 건 자신이라는 걸 안다. 알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마음에 괴로웠다.

후- 헤레가 하늘을 향해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이만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기분이 끝도 없이 늘어졌다. 이러다 아무 곳에나 주저앉아서 울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헤레는 숲을 한 번 더 바라보고 발걸음을 돌려 다시 마을로 향했다.

 

 

+++

 

 

“거기, 아가씨.”

 

 

어느덧 노을이 지고 있었다. 석양이 낮은 건물들을 주황빛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그 아래 골목길에서, 노을보다 빛나는 주황빛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헤레에게 말을 걸었다. 뒤집어 쓴 로브 때문에 보이는 건 콧망울과 입, 턱, 그리고 흘러나온 머리카락뿐이었지만 굉장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에서 본 적은 없는 것 같은 사람이었다. 낯선 사람-더군다나 얼굴도 채 드러나지 않은 수상한 차림새였으니-에게 드는 경계심에 헤레가 뒷걸음질쳤다. 여자는 헤레가 뒷걸음질 치는 만큼 다가오며 말을 이어갔다.

 

 

“원하는 게 있지 않나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소심한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말을 못 하게 하는 주술에 걸린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괜히 울컥, 눈물이 차오르고 시야가 흐려졌다. 왜 나한테는 이런 일만 생기는 건지. 오늘따라 우울했던 기분이 여자를 기폭제로 순식간에 심장에 번져갔다.

 

 

“...그의 마음이라던가. 네가 가지지 못한 것.”

 

 

여자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음과 동시에 말투도 바꼈다. 하지만 헤레는 그것보다도 로브 아래로 묘하게 뒤틀려 올라간 입매가 기묘하면서도 매혹적이라고 생각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여자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가여운 아이.”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 말인데도 불구하고, 여자의 말에 매료되는 기분이었다. 여자는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모르는 사람인데도, 막연한 안도감이 들었다. 이 여자와 함께라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 같았다. 다시금 슬란과 헤이나의 잔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여전히 씁쓸했지만, 조금 전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아니,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서히 잊어가는 것도 같았다. 슬란이 어떻게 생겼더라? 기억이 희미해져 갔다.

여자가 헤레에게 손을 내밀었다. 맞잡아주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헤레는 어떤 의심도 걱정도 없이, 영혼을 먹힌 사람처럼 여자의 손을 잡았다.

 

 

헤레는 최면에라도 걸린 듯, 한 발짝 여자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가까워지니 늘어트린 로브 뒤에 감춰져 있던 여자의 눈동자가 보였다. 모든 것을 담았으면서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듯한, 영롱한 보랏빛이었다.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자, 여자가 헤레를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동시에 여자의 새빨간 입술이 벌어지고 잔혹하리만치 달콤한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그’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 내게 오렴.”

 

 

그 말에 헤레가 고개를 떨궜다. 고여 있던 눈물이 투둑, 하고 신발 앞코와 땅을 적셨다. 샛노란 빛이 발밑에 피어올랐다. 그 빛에서 나온 작은 빛들이 하늘하늘 날아올라 두 사람의 주변을 감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사라졌다. 로브를 뒤집어쓴 여자도, 헤레도. 처음부터 그 골목에는 아무도 없었던 듯, 두 사람은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

 

 

-다음 날(현재)-

 

헤레가 사라진 다음 날.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실종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다급한 얼굴로 ‘누군가 사라졌다’며 사라진 사람을 찾는 데 정신이 팔린 듯했다. 슬란과 헤이나도 마을 어귀에서 ‘사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헤이나. 이번 실종 사건 말야.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렇게 작은 마을인데도, 누가 사라졌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하지만 아무도 ‘누가’ 사라졌는지는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 마을은 다른 마을에 비해 규모가 굉장히 작은 편이었고, 그래서 아무리 소심하고 말이 없던 사람이라도 이 마을의 구성원이었다면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리가 없었다. 설령 이름을 모르더라도, 그 존재와 공백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헤레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 사람이 안 보이네?”

 

“누구?”

 

“헤...헤... 나랑 이름 첫 글자가 같았어. 너랑 친했던, 말수 적던 여자분 말야.”

 

“무슨 소리야, 헤이나.”

 

“응?”

 

“내가 아는 여자 중 이름이 ‘헤’로 시작하는 사람은 너뿐인걸.”

 

 

슬란이 단호한 얼굴로 헤이나에게 대답했다. 헤레는 있었다. 분명 존재했고, 7년이란 시간 동안 마을 사람 중 슬란과 제일 가깝게 지냈다. 슬란에게 있어서도 헤레는 좋은 친구였고, 헤이나 외에 가깝게 지낸 여자는 헤레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슬란은 헤레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헤이나는 단호한 슬란의 태도에 순간 멈칫했지만, 아무래도 미심쩍다는 듯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아냐, 분명 누군가 있었어.”

 

“하하, 생각이 깊었던 거야. 내가 아는 마을 사람 중 사라진 사람은 없어.”

 

“하지만...”

 

“정말 사라진 사람이 있다면 나도 나지만 네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잖아?”

 

 

헤이나는 뭐라고 더 반박하고 싶었지만, 슬란의 말이 맞았다. 이 마을에서 누군가 정말 사라졌다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정답이 나오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아무도 사라진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다. 헤이나는 복잡한 마음을 안고 슬란의 품에 기댔다. 뭔가 개운하지 못했지만, 달리 이 뭔지 모를 느낌을 증명할 방법도 없었다. 그것보다 ‘조용한 마을에서 갑작스레 터진 사건 때문에 혼란스러워 착각을 일으켰다’는 쪽이 더 신빈성 있었다. 슬란은 품에 기댄 헤이나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헤이나는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래, 아무도 사라지지 않은 거다. 설령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기억에 없으니, 이건 혼란스러움에서 비롯된 작은 착각일 거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거다, 고, 헤이나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석양이 마을을 덮었다, 붉디붉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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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雜

동심파괴

왕자와 공주님은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과연 그럴까?

 

유리관 속에 잠들어있는 백설공주를 사랑한 왕자가 시체애호가라면?

다시 되살아난 백설공주와 행복하게 살았을까?

 

마녀의 탑 속에 갇힌 라푼젤이 지독한 팜프파탈이라면?

자신을 구해준 왕자와 행복하게 살았을까?

 

100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건너뛴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공주를 깨운 왕자는 100년의 세대 차이를 극복했을까?

 

파란수염을 해치운 부인은 이후 재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파란수염과 결혼생활로 인해 의부증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장화신은 고양이 덕분에 공주와 결혼한 남자는?

나중에 사기결혼으로 몰리지 않았을까?

 

인당수로 뛰어들어 연꽃에서 다시 태어나 왕비가 된 심청이는 행복했을까?

엄하고 고달프고 치열한 왕궁에 제대로 적응했을까?

 

제비가 물어다준 박씨로 부자가 된 흥부는 놀부와 사이좋게 잘 살았을까?

만약에 흥부가 경제관념이 엉망이라면 다시 가난해지지 않았을까?

.

.

.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결말은 누가 먼저 시작한 걸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결말은 믿을 게 못되는 것 같다.

 

동화의 결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기를 바라는 희망사항에 가깝지 않을까?

아이들의 동심을 위해서, 꿈과 희망을 위해서 만들어진 결말이 아닐까?

 

동화를 듣고 자라는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게

착하고 올바르게 살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게 말이다.

 

세상이 동화처럼 된다면 어떨까?

 

착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요정의 도움이 주어진다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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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속의 마녀

프롤로그

 

   「옛날 옛날에, 어느 마을에 화려한 금발에 투명한 에메랄드 빛 눈동자를 가진 ‘라푼젤’이라는 아름다운 소녀가 살고 있었어요.

 

 

   라푼젤은 외모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심성마저 고와 매일같이 마을 청년들에게 구애를 받고, 어른들에게는 예의바른 아이로 사랑받았어요.

 

 

   그런데, 라푼젤이 살고 있는 마을 옆에 위치한 음산한 숲에는 사악한 마녀가 살고 있었어요. 주황 머리에 보랏빛 눈을 가진 마녀는 아름답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라푼젤을 시기한 나머지, 어느 날 라푼젤을 납치해 높은 탑에 가둬 버렸어요.

 

 

   라푼젤은 매일 작은 창문을 통해 탑을 지나치는 사람들을 목이 터져라 불렀지만, 탑에 걸린 마녀의 주술 때문에 아무도 라푼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게다가 라푼젤이 납치되던 순간을 기점으로, 마녀는 마을 사람들에게도 주술을 걸어 아무도 라푼젤을 기억하지 못하게 했어요.

 

 

   시간이 흘러 외로운 라푼젤의 머리카락은 땅에 끌릴 만큼 길게 자랐고, 아름다웠던 눈동자는 빛을 잃어 탁하게 변했어요. 마녀가 일정 시기마다 식량을 구해다 준 덕분에 굶어 죽는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지만, 오랜 감금 생활에 지친 라푼젤은 마녀를 죽이고서라도 탑에서 탈출하기로 결심했어요.

 

 

 

‘이번에 마녀가 식량을 가지고 돌아오면, 마녀를 죽일 거야. 그리고 탑을 나갈 거야.’

 

 

   하지만 마녀는 어째서인지 돌아오지 않았고, 라푼젤은 식량마저 떨어져 버린 탑 안에서 마녀를, 복수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결국, 홀로 굶어 죽었어요. 절대 만나지 못할 ‘그녀’ -원래 쓰여진 것을 지우고 그 위에 내용을 덧쓴 듯하다-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외롭고 비참한, ‘진짜 라푼젤’의 이야기. 끝.」

 

   탁-.

   어두운 오두막 속에서 로브를 뒤집어 쓴 여자가 책을 덮고는 중얼거렸다.

 

 

   “웃기지도 않아.”

 

 

   여자는 ‘라푼젤’이라는 글자가 또렷이 박힌 낡은 책 표지를 조심스레 쓰다듬고는 창 밖을 바라본다. 얼핏 달빛에 비친 눈망울은 죽은 사람의 그것인 듯, 빛이라곤 없어 보였다. 힘없이 웃는 입꼬리마저 지쳐 보였다.

 

 

 

+++

 

 

“너희, 그거 들었어?”

 

“뭘?”

 

“마을에 마녀가 나타났대.”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진짜라니까?”

 

“에이, 잠 덜 깼어? 전설에나 있는 얘기지.”

 

“그런가...”

 

 

   소녀들이 마을을 거닐며 호들갑스럽게 수다를 떤다. 그 내용은 ‘마을에 마녀가 나타났다’는 것. 그 소문은 이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일부는 '전설'과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며, ‘전설’ 속의 그 ‘소녀’와 같은 금발에 에메랄드 눈동자를 가진 마을의 소녀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리고 사건은 언제나 그렇듯, 예고도 없이 일어났다.

 

 

“아, 안녕, 슬란.”

 

“안녕, 헤레. 잘 지냈어?”

 

“으응...”

 

 

   마을의 그 어떤 여인보다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여인이, 오히려 그 어떤 여인보다 주목을 받지 못한 여인이,

 

 

“저, 슬란, 있지.”

 

“응.”

 

“나, 사실, 널...”

 

“응?”

 

“...아니야.”

 

 

   그래, ‘헤레’가 사라졌다.

 

 

 

+++

 

 

어둠 속에서는 모든 것이 불명확했다. 하지만 단 하나, 질리도록 뚜렷한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아이야, ‘그’의 마음을 얻고 싶다면 내게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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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주의보

Sister

Sister

 

1.

집에 와보니 누나가 내 옷장 속에 들어가 있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가출 중이었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 어떤 이유로 누나가 옷장 속에 들어갔는지 몰랐다. 엄마는 이모 집으로 가서 아빠를 향한 농성 중이었고, 아빠는 그런 엄마를 견제하기 위해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그리고 나는 엄마와 아빠한테 개 같은 짓은 그만 두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차마 부모한테 그런 말은 할 수 없어서 내가 개 같은 짓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가출을 하던 도중 밥이나 먹을 요량으로 집에 들어와, “누나, 있어?” 하고 물어봤을 뿐인데, 누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나 지금 네 옷장 속에 있어!” 하고 외쳤다. 나는 누나가 곰팡이 낀 벽지라도 긁어먹었나 싶었다. 누나라면 충분히 곰팡이를 먹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나는 소화제를 들고 옷장 문에 손을 얹었다. “열면 안 돼!” 누나가 경고했다. “왜 열면 안 돼?” 내가 물었고, “어쨌든 열지 마!” 하고 누나가 외쳤다. 나는 결국 아빠의 헐렁한 셔츠를 걸친 채 접이식 의자와 3분 카레를 부은 밥그릇을 들고 옷장과 마주했다. 아빠도 엄마도 집에 없는 마당에 누나까지 내 옷장 속에 있다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하는 걸까, 고민하며 우선은 막내답게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2.

“왜!”

누나가 외쳤다.

“왜 거기 들어간 거야? 이유 정도는 알려줄 수 있잖아.” 하고 말한 뒤 나는 카레를 한 입 퍼먹었다. “내 어린 시절 일기장이라도 훔쳐보다가 갑자기 내가 와서 숨은 거야? 어차피 다 거짓말이야.”

“네 일기 같은 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 누나가 말했다. “어차피 맨날 축구나 게임 같은 거 했다고 써놨을 게 뻔해.”

“가끔은 태권도 학원을 빠진 이유가 연쇄살인범한테 쫓겼기 때문이란 내용도 썼어. 엄마도 선생님도 믿어주지 않았지만.”

“어디서 네가 누구한테 찔려죽든 내 알 바 아니야!”

“그건 좀 너무한데.” 하고 말하며 나는 카레를 한 입 더 떠먹었다. “화내지 마, 누나. 지금 누나가 화낼까봐 옷장 억지로 안 열고 있는 거야. 계속 화내면 어차피 화내는 거 억지로 열어버려도 상관없어.”

“억지로 열면.” 하고 말한 뒤 누나가 숨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들렸다. “더 화낼 거야!”

“누나.”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난 지금 누나가 우리 집 곰팡이라도 먹은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어.”

“아니야!”

“그러면 혹시 신병이라도 났어? 누나가 무당이 되면 많은 가정이 무너질 텐데.”

“그것도 아니야!”

“그럼 카레 먹을래?” 카레를 떠먹으며 내가 물었다. “배고파서 정신착란이 온 걸 수도 있어. 어차피 나 없으면 밥도 잘 안 챙겨먹으니까, 누나는.”

“아니야!”

“그럼 도대체 뭐야!” 내가 외쳤다. “내가 너무 오래 나가 살아서 삐쳤어?”

“아니라니까!”

나는 한숨을 쉬었다.

“누나, 나 좋아하지?”

“아냐!”

“그래도 상관없어.”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난 누나 좋아해.”

그런 맥락으로 나는 옷장 속에 계속 있고 싶다는 누나의 뜻을 존중해줄 수밖에 없었다.

 

3.

누나가 처음으로 자신의 겨드랑이 털을 발견했던 날을 기억한다. 욕실에서 앙칼진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고, 나는 햄 반찬이 없다고 엄마에게 투덜거리던 도중이었다. 내가 계속 불만을 토로하자 엄마는 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햄 덩이를 꺼내 구워 접시에 담아 식탁 위에 올려놨다. 내가 젓가락을 햄 구이에 가져다대자, “그거 치워.” 하고 엄마는 말한 뒤, “엄마 안주니까.” 정말 집을 나가지 않고 버틸 수 없을 만한 소리를 나불대며 소주를 꺼내왔다. 나는 내가 먹던 밥을 햄 구이가 담긴 접시 위에 부어버린 뒤, “누나가 소리 질렀어.” 하고 엄마에게 충고했다.

욕실에 들어가 보니 누나는 면도칼을 겨드랑이 사이에 가져다대려다 말고, 가져다대려다 말고, 가져다대려다 말던 도중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비명을 질렀다. 나는 머리카락을 헝클며 고개를 저은 뒤, 욕조에 팔등을 올려놓고 턱을 괴었다. “누나 설마 겨드랑이 털 처음 봐?” 탐정이 된 기분으로 내가 물었다. “그렇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거야. 난 누나 지금 누나 겨드랑이 털하고 같은 취급을 받은 거잖아.”

“난 이런 거 몰라.” 욕조 위에 떠있던 꼬부랑거리는 털 한 가닥을 집어 흔들며 누나가 말했다. “왜 이게 나한테 나는 거야?”

“그건 누나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 그렇지.” 내가 말했다. “사실 난 이미 수북해. 보여줄까?”

“더러운 거 보여주지 마.”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누나가 말했다.

“더러운 게 아니야, 누나.” 하고 말하며 나는 누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 누나 머리카락도 더러운 거잖아. 내 머리카락도 그렇고. 그럼 우린 매일 아침마다 더러운 머리카락을 손질하려고 기를 쓰는 거야. 그리고 그런 털들을 내뿜은 우리 몸도 더러운 거겠지. 근데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까 진짜 더러운 거 같네. 나 갑자기 똥마렵거든.”

“야!” 하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누나가 외쳤다. “야!”

“왜 그래?”

“눈 가려.” 양손으로 내 얼굴을 거칠게 감싸며 누나가 말했다. “왜 내가 가리고 있던 거야?”

그렇게 묻는 누나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인 것 같아서, “안심해.” 하고 내가 말했다. “어릴 때 난 누나한테 불알이 없다면서 울기도 했는데 새삼스럽게.”

누나는 샤워기로 내 머리를 후려쳤다.

 

4.

카레를 전부 먹은 뒤, 나는 설거지를 하고 냉장고에서 엄마가 사다뒀던 캔맥주를 꺼냈다. 캔맥주를 따서 한 모금 마시며 방으로 돌아오니, “너 너무 냄새나.” 하고 누나가 다짜고짜 말했다. “엄청 냄새나.”

“씻을 거야.” 하고 말하며 나는 옷장 앞에 펼쳐둔 접의식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바빠. 이제부터 누나가 옷장에 들어간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볼 계획이거든. 설거지를 하면서도 계속 생각해봤는데 잘 모르겠어. 혹시 명왕성이나 망아지와 관련된 게 아닐까? 예전에 아빠가 그랬는데 명왕성과 망아지에 대해서 생각하려면 우선 침대에 누워야만 한 대.”

“내가 여기 있는 건 명왕성이랑 망아지와 아무런 상관도 없어.”

“누나, 나중 일은 모르는 거야.” 내가 말했다. “혹시 나중에 누나가 명왕성에 가고 싶다면서 망아지를 사달라고 조를지 어떻게 알아? 누나는 겨드랑이에 털이 날 거라 생각조차 못했잖아.”

“그건 엄마 같은 사람한테나 나는 줄 알았단 말이야! 난 엄마처럼 술을 자주 마시지도 않고, 담배를 피우는 것도 아니니까 털 안 날 줄 알았어.”

“누나, 엄마는 지금 이모 집에서 내 도래 남자애랑 뒹굴고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결국은 우리 엄마야. 엄마는 다른 호칭으로 부를 수 없잖아.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으면 난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을 알 필요가 없는 걸. 그러니까 엄마라고 계속 부른다면, 엄마라는 사람은 우릴 낳아준 사람이라는 의미고, 결국 유전자로 얽힌 사이라는 거야. 당연히 누나도 엄마 같은 사람이 되겠지.”

“난 술 안 마실 거야. 담배도 안 피울 거고.”

“그러지 않아도 엄마처럼 될 거야.” 하고 말한 뒤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누나는 언젠가 묘령의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한테 엄마라고 불릴 거야.”

“그럼 남자랑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으면 엄마처럼 되지 않을 수 있어?”

“그럴 수도 있겠지.”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내가 벗어둔 교복 재킷 주머니를 뒤졌다. “하지만 나는 우리 엄마 같은 사람 때문에 누나가 엄마가 되지 않는 길을 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주머니 속에서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내 의자에 다시 앉아 하품을 했다.

“누나, 우리 집이 좀 괴상하다고 모든 가정이 괴상할 리가 없잖아.”

“하지만 괴상하지 않을 거란 보장도 없어.”

“나는 우리 집 빼곤 다들 괜찮을 거라 생각해.” 하고 말하며 나는 담배를 물었다. “누나가 모든 가정이 우리 집 같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나는 우리 집 빼고 다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 거야. 그러니까 누나가 나중에 꾸릴 가정도 괜찮을 거라 믿을 수밖에 없어.”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너 담배 피우지?”

누나가 물었다.

“이미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담배 연기를 뿜으며 내가 말했다. “별로 감추지도 않았고.”

“넌 지금 담배를 피울 나이가 아니야.”

“하지만 곧 그럴 나이가 될 거야.” 나는 맥주를 마셨다. “누나는 못 보겠지만 난 지금 엄마 맥주도 마시고 있어.”

“정말 싫어.”

“괜찮아.” 나는 웃었다. “어쨌든 누나는 집에 있으니까.”

“난 계속 집에 있었어. 네가 가출을 한 거고, 또 가출할 거잖아.”

“그건 누나 탓이 아니야. 엄마가 이모 집에 의탁한 탓이고, 아빠가 회사로 도망친 탓이야. 엄마랑 아빠가 그런 사람이니까 나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아.”

“난 엄마나 아빠 같은 사람이 딱 질색이야.”

“하지만 누나, 굳이 엄마나 아빠 같아서가 아니라도 나처럼 나이가 차지 않았는데도 술담배를 하는 애들이 많아. 그리고 겨드랑이 털도 엄마 같은 사람한테만 나는 게 아니야. 아빠도 났고, 말했듯이 나도 겨드랑이 털이 잔뜩 났고, 내 여자 친구 겨드랑이에도 가끔 털이 있어.”

“잘 들어. 나는 겨드랑이 털이 싫어. 엄마도 싫고 아빠도 싫고, 너도 싫고 네 여자 친구도 싫어. 네 여자 친구는 얼굴도 본 적 없지만, 그래도 싫어. 애초에 언제 여자 친구를 사귄 거야? 일단 난 네 옷장도 냄새나서 싫어. 내가 싫어하는 걸 억지로 좋아하라고 강요하지 마.”

“내 옷장이 싫은데 왜 거기 들어가 있는 거야?” 그렇게 묻고, “당연한 질문이겠지만.” 하고 나는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이제 여기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았어.”

옷장 속에서 누나가 몸을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5.

막 고등학교 1학년이 된 누나는 며칠 학교를 다니다가 느닷없이, “애들 몸이 다 이상해!” 하고 내게 말했다. 나는 그때 방에서 만화책을 읽던 중이었는데, 여자애 팬티가 보이는 장면을 주시하고 있던 차에 누나가 내 만화책을 뺏어들며 외친 것이다. 누나는 내 만화책의 내용을 대충 훑곤 한숨을 쉬며 등 뒤로 던져버렸다. 나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애들이 어쨌다고?” 간신히 누나에게 물었다. “애들 몸에 이상한 빨간 점도 있고 털도 있고 다 이상해. 병에 걸린 거 같아, 다들.” 절박한 어조로 누나가 토로했다. “전염병에 걸린 게 아닐까?”

“누나, 설마 누나는 어느 순간 기독교를 믿기로 한 거야?”

내가 물었고, 누나는 고개를 저었다.

“난 믿기는 해.” 내가 말했다. “일단 최대한 착하게 살다가 죽으면 천국으로 가서 신의 죽빵을 날릴 거야. 그리고 왜 사람 고추를 이따위 모양으로 만들었냐면서 따져야지. 말로는 천사도 만들고 꽃도 만들었다는 양반이 왜 내 고추는 이렇게 만들었는지 변명이라도 듣고 싶어.”

내 말이 누나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바보야. 난 지금 그 얘길 하는 게 아니야.” 하고 누나가 말했다. “애들 몸이 병에 걸린 것 같단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 누나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날 나는 문턱에 떨어진 만화책을 집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침대에 걸터앉아 줄담배를 피웠다. 나는 누나가 학교에 친구가 한 명도 없을 거라 확신했다. 내 생각이 맞았는지 누나는 그로부터 며칠 더 학교를 다니곤 집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게 됐다. 이런 누나를 주제로 엄마와 아빠는 또 싸움을 시작했지만, 애초에 그들의 싸움은 옆집이 시끄러워서, 저녁 반찬이 담긴 접시가 더러워서, 그리고 나를 낳았다는 것과 같은 시답잖은 이유로 시작되는 법이었기 때문에, 나는 누나가 등교를 거부하지 않아도 어떤 이유로든 싸웠을 거라 생각했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동안 누나는 방문을 꾹 잠그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엄마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아빠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자동차 트렁크에 실었다. 나는 아빠에게 다가가, “이제 누나 학교 안 나가니까 식비 더 줘야 돼.” 하고 말했다. 아빠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너도 이제 다 컸구나.” 하고 말하면서 카드를 내밀었다. 내가 카드를 받자 아빠는, “돈이 좋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난 아빠를 좀 더 좋아하고 싶었어.” 내가 말했다. “하지만 다시 집에 돌아오면 죽여 버릴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카드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빠가 집으로 돌아와도 나는 아무 짓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빠도 나도 잘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죽여 버린다는 말은 아빠가 아니라 엄마에게도 건넬 수 있었다. 누나에게는 무리였지만, 누나는 내게 얼마든지 죽여 버린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엄마와 아빠를 증오하는 만큼만 누나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에 늘 안도했다. 그날 나는 이모 집으로 향하는 엄마를 배웅하고 식탁 위에 아빠의 카드를 올려놓은 뒤 짐을 챙겼다. 누나는 내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가버려!” 하고 외쳤다. 나는 그렇게 가출을 했다.

 

6

“오줌이 마려워.” 잠들려고 하던 참에 누나가 말했다. “배도 고파.”

“그럼 옷장에서 나오면 되잖아.”

이불을 껴안은 채 내가 말했다.

“네 이불 뽀송뽀송하지?”

“아주 눅눅해.” 나는 하품을 했다. “술기운이랑 이불 냄새 때문에 토할 것 같아.”

“너 오늘 캔맥주 하나 마셨는데 취한 거야?”

“취하지 않았어.”

“취한 목소리야.”

나는 한숨을 쉬었다.

“있잖아.” 누나가 말했다. “우리 집 마당에 잡초가 늘지 않았니?”

“별로.” 내가 대답했다. “예전부터 잔뜩 있었으니까 늘어나든 말든 똑같아.”

“내가 집밖으로 안 나나게 되기 전엔 옆집에서 개를 키웠어.”

“갠 지금 동네 수컷 누렁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어. 어지간히 애를 많이 낳는다고, 오늘 집 오는데 옆집 아줌마가 새끼 개 한 마리 데려가지 않겠냐고 물었어.”

“왜 안 데리고 온 거야?”

“개 사료는 비싸, 누나. 애초에 우리 집은 너무 좁단 말이야. 그러니까 서로 뒤엉키면서 맨날 싸우는 거지. 개를 데려오면 더 비좁아질 테고, 망아지를 데려오면 더 곤란할 테고, 명왕성은 애초에 집어넣지도 못해. 적어도 집 밖은 여기보단 넓어. 그러니까 서로 싸울 필요도 없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밖에서도 다들 많이 싸우더라고. 애초에 엄마랑 아빠 같은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가는데 어련하겠어. 다음엔 우주로 가야하나 봐.”

“네 옷장 속은 우리 집보다 훨씬 비좁아.”

“알고 있어.”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난 더 멀리 가출할 거고, 누나는 더 구석으로 숨어들겠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내가 등교를 거부할걸 그랬어.”

“그게.” 누나가 말했다. “많이 졸려?”

“응.” 내가 대답했다. “지금 난 아주 죽은 벌레처럼 누워 있어. 지금 눈 감기기 일보 직전이야.”

“잘 거야?”

“당연히 자야지.”

 

7.

“다행이다.” 누나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푹 자.”

나는 피우던 담배를 떨어트렸다.

“아, 근데.” 담배를 주워 다시 입으로 가져가며 내가 말했다. “좀 불편해. 아빠도 없고 엄마도 없는데다, 게다가 누난 옷장 속에 들어가 있잖아.”

그러자 누나는 옷장 속에서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정말 좋아해, 누나.”

담배 연기를 뿜으며 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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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주의보

Emily

Emily

 

1.

에밀리, 너와 거리를 걷던 도중 보도에 눌러앉아 리코더를 부는 아저씨를 봤어. 아저씨의 곁에는 깡통이 놓여 있었고, 나는 망설이다가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냈지.

 

2.

에밀리는 거리에 나가 하루 종일 가만히 서있기 시작했다. 발치에 깡통을 하나 두고, 해가 질 때까지 조용히 버티는 것이다.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땐 깡통을 껴안고 건물 사이에 숨어든다. 처음으로 에밀리가 거리에 서있던 날, 나는 팔짱을 끼고 가만히 에밀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못난 표정을 짓고 있니, 에밀리. 나는 단지 그렇게 물었다. 에밀리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은 채 내 말을 무시해 나는 더 입을 열지 않았다. 며칠 후 나는 에밀리의 깡통 속에 동전 몇 개나 떨어져 있는 걸 보았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에밀리의 손에 동전을 쥐어주었다. 동전을 주섬주섬 치마 주머니에 넣고, 에밀리는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나는 에밀리의 정면에 서있기 부담스러워 그녀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녁이 될 즈음에 에밀리는 집으로 돌아갔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등에 대고 우린 아무것도 잃지 않았어, 하고 나는 말했다. 우린 거지가 아니야, 에밀리. 내 말을 듣고 에밀리는 욕심도 잃어버리지 않았어, 하고 작게 말했다.

 

3.

에밀리는 추잡해지는 방식으로 행인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샤워를 하면 머리카락을 일부러 빗지 않았고, 원피스는 집에서 가장 낡은 것으로 골라 입었다. 에밀리의 방식은 그녀가 서있던 거리의 유행과 궁합이 좋아 제법 많은 동전을 털어냈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에밀리의 깡통 속에 동전이 불어나는 걸 지켜보았다. 자그마한 깡통으로는 사람들이 넣어주는 돈을 다 지탱할 수 없게 되자, 에밀리는 깡통을 들고 화장실에 가는 걸 포기했다. 집에도 가져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자리에 놔둘 수밖에 없었고, 밤중에 누군가가 깡통을 비워갔다. 그리고 다음날 깡통이 새로 채워졌고, 다시 비워졌다. 나랑 같이 운반하면 어떻게 가능하지 않을까, 한 번은 내가 물었다.

 

4.

나는 잃어버릴 거야, 에밀리가 대답했다. 아니면 잃어버린 거야. 운이 나빴어.

에밀리, 운이 나쁘다는 말은 참 무서워. 운만 나쁘다면 우린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었을 거야. 운이 나빴다면 말이야. 나는 당장 폭탄과 크리스마스트리를 착각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아. 너는 그런 방식으로 운이 나쁘고 싶은 거니?

잊어버렸어.

 

5.

어느 날 경찰이 에밀리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집의 위치나 가족의 유무, 어째서 깡통을 앞에 두고 서있냐는 등의 질문들을 에밀리에게 건넸다. 경찰의 질문을 듣고 에밀리는 말없이 검지를 깡통 쪽으로 향했다. 경찰을 마지못해 주머니에서 구겨진 지폐를 꺼내 에밀리의 깡통에 넣어주었다. 말하지 않는 것도 힘들어요, 에밀리가 경찰에게 말했다. 경찰은 에밀리에게 어째서 말하지 않는 게 힘든지 물었다. 에밀리는 다시 깡통을 가리켰다. 경찰은 지폐를 한 장 더 깡통 속에 넣었다. 질문을 받는 것도 힘들어요, 에밀리가 말했다. 경찰은 지갑을 깡통 속에 던져 넣었다. 아저씨랑 같이 가지 않을래, 하고 경찰이 물었다. 에밀리는 그게 가장 힘든 일일 거예요, 하고 답했다. 경찰은 에밀리의 깡통에서 지갑을 꺼내 주머니에 넣었다. 나한테도 이건 꽤 힘든 일이라고, 경찰은 투덜거렸다.

 

6.

거스름돈은 안 주나요? 누군가가 에밀리에게 물은 적도 있었다. 에밀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나서서 에밀리의 깡통을 뒤져 동전과 지폐 몇 장을 건네주자, 내가 아까워, 하고 에밀리가 중얼거렸다. 에밀리, 세상에 아까운 건 없어. 거스름돈을 받은 행인이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내가 말했다. 다만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졌을 뿐이야, 하고 나는 덧붙였다. 건물이 무너져 사람들이 죽거나 어딘가에 전쟁이 터지면 가격들이 바뀐다고 해, 하고 말한 뒤, 에밀리가 내게 물었다. 그게 사고와 전쟁의 값이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에밀리, 무언가의 값어치가 바뀐다는 건 말이지. 그냥 거기 매겨진 값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얘기야.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말이야.

 

7.

그러니까 에밀리, 왜 계속 여기 서있는 거니?

서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너는 깡통을 앞에 두고 거리에 서있는 놀이를 하고 싶은 거야?

아마도 그런 것 같아. 놀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꼭 생각을 하게 된 이유라는 게 필요한 거야?

너한테 필요하진 않을 거야. 하지만 나한테 필요한 것 같아.

그런 건 주고 싶어도 줄 수 없어.

그래서 내가 지금 네 옆에 서있는 게 아닐까?

내가 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그런 것 같아. 에밀리, 너와 거리를 걷던 도중 보도에 눌러앉아 리코더를 부는 아저씨를 봤어.

나도 기억하고 있어. 그 아저씨는 계속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거야.

누굴 말이야?

누구도 기다릴 수 없게 되었을 때 사람은 구걸을 시작해. 구걸을 하면 모든 사람을 기다리게 되니까.

너는 아무도 기다릴 수 없게 되어버린 거야?

아니, 나는 리코더 부는 아저씨가 오길 기다리고 있어.

에밀리, 아저씨는 오지 않을 거야. 구걸을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돈을 줄 사람을 기다리는 거야.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지에게 줄 동전 정도는 가지고 있을 뿐이고. 그러니까 구걸을 하는 사람은 자기처럼 구걸하는 사람만은 절대로 기다리지 않아. 네가 이런 방식을 택하지만 않았으면 언제든지 아저씨를 다시 찾을 수 있었어.

난 아저씨를 찾아가고 싶은 게 아니야.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는 거야. 난 며칠 째 씻지도 않았고, 계속 같은 옷만 입고 있는데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든 귀담아 듣지 않았어. 나는 앞으로 아저씨보다 훨씬 초라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거야. 그런 방식이 아니면 어떻게 기다릴 수 있겠니?

아저씨를 말이야?

거지를, 하고 에밀리가 중얼거렸다. 말이야.

 

8.

하지만 에밀리의 농성은 경찰을 비롯한 거리의 주민들과, 그녀의 가족들로 인해 종막에 다다랐다. 경찰이 에밀리에 대해 수소문해 그녀의 부모님께 현재 상황을 알렸고, 에밀리는 거리 한 가운데에서 악을 쓰며 부모의 손길을 버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에밀리의 최후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행인으로 취급하여 무언가를 구경하는 데에 익숙해진 이들이고, 그들은 오늘 자신들이 지켜봐도 괜찮을 문제로 에밀리의 농성을 꼽은 것이다. 거리의 인파는 그들이 주체가 되어 치안을 담당할 필요가 없었고, 그런 맥락으로 에밀리와 가족이 될 필요도 없었다. 단지 그들에겐 서로를 행인으로 취급할 근거가 너무 많았던 것뿐이었다. 다만 나는 누구도 행인으로 취급하고 싶지 않았고, 나 또한 행인으로 취급받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며 크게 외쳤다.

한 푼만 주세요!

 

9.

다음날 에밀리의 집에 찾아갔더니, 에밀리는 깨끗한 옷을 입고 머리카락을 말끔하게 묶은 채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에밀리의 어머니는 내게도 우유를 권했고, 나는 우유와 샌드위치를 받아 에밀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왜 온 거야, 하고 에밀리가 물었다.

어제 내가 그대로 집으로 끌려갔으니까, 오늘은 집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왜 그때 한 푼만 달라고 소리친 거야?

그런 말 밖에 생각나지 않았어. 그게 제일 불편한 말 같았거든.

불편한 말을 해버리면 아무도 널 주목하지 않을 거야.

난 모두가 주목할 줄 알았거든. 내 착각이었어.

그럴 땐 편한 말을 하는 게 오히려 나아.

미안해.

그게 너한테 편한 말이야?

그런가 봐. 이제 리코더 부는 아저씨는 더 기다리지 않을 거니?

아니, 지금도 기다리고 있어.

에밀리, 그게 너한테 편한 말이야?

불편한 말이야.

나도 그럴 거라 생각했어. 그러니까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을래.

그런 말을 하는 건 편하니?

아니, 이게 나한테 불편한 말이라서 그래.

 

9.

에밀리는 내 입 속에 동전을 하나 넣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