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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너에게 물드는가

비와 당신

 

 

 

  비가 옵니다. 날씨가 오늘따라 흐리구나 싶던 것이 자그마한 물방울에서 시작되어 비로 내립니다. 손을 내밀어 비를 맞아 봅니다. 나는 원래 비 오는 날을 좋아했습니다. 문득 당신이 생각납니다. 당신은 추운 것이 싫다 했지요. 비 오는데 나처럼 우산이 없는 것은 아닐지, 감기라도 걸리는 것은 아닐지. 나는 전화기를 꺼냅니다. 뭐라고 문자를 보내볼까요. 전화를 할까요? 전화를 하면 뭐라고 말을 할까요.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옆구리가 시큰해져옵니다.

 

 

  빗줄기가 굵어집니다. 우산을 살까요? 한 번 생각을 해봅니다. 우산을 들고 찾아가는 나와 늘 그랬듯 웃어주는 당신을. 오늘도 내 오른쪽 어깨는 젖을 겁니다. 젖은 옷을 보고 미안하다고 당신은 말할 테고 나는 괜찮다고. 이 정도는 괜찮다고, 정 미안하면 커피라도 한 잔 사라고 나는 평소처럼 웃으며 말할 겁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커피 잔에 덥혀진 손으로 그대의 찬 손을 잡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손을 잡을 지 생각을 하는 나를 보며 피식 웃습니다.

 

 

  빗소리가 시원하게 내 마음 속으로 파고 듭니다. 걸음이 빨라집니다. 빨라지던 걸음은 이윽고 달리기가 되어버립니다. 비가 옵니다. 알게 모르게 내 옷은 비로 스며들어 갑니다. 스며듦. 스며든다는 표현을 곱씹어봅니다. 참으로 예쁜 말입니다. 스며들다. 스며들었다. 스며든다. 나는 달려갑니다. 비가 옵니다. 나는 속도를 높여 달려갑니다. 비가 계속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같이 우산을 쓰는 그 순간까지만이라도 이 비가 내려줬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원래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지만 오늘은 더 좋은 날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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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내가 사랑했던 당신, B.E.S.T

이 세상이 다 변한다고 해도, 당신만큼은 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비록 내 곁에 없는 당신이지만

같은 하늘아래에 살고 있으니

언젠가는 우연이라도 마주칠 수 있으니

그 때 당신을 마주쳤을 때, 내가 알던 그 모습으로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고 있다.

그 때, 당신은 정말로 멋있었다.

내가 충분히 반할만큼.

많은 사람들과 함께였어도, 충분히 그대에게 집중할 수 있을 만큼 정말 멋졌다.

 

내가 먼저 당신의 핸드폰 번호를 물었고

당신도 웃으면서 번호를 알려줬었지.

 

서로 연락을 자주 하게 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되었고

처음에는 호감, 그 후에는 정신없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당신에게 빠져들었었다.

그 때의 우리는 대화가 아주 잘 통했었다.

 

당신과의 만남과 연락은 늘 설레고 행복했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면서

부러워하기도 했었고, 우린 언제나 함께였었다.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워, 밤새 얘기하면서

달콤한 사랑도 많이 속삭였던 그 때의 우리였었다.

절대로 변하지 말자며 수많은 약속들과 함께 행복한 미래를 얘기하기도 했었지.

 

하지만, 그 행복한 시간이 석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너무 허무하게 끝이 나 버렸다.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신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잘 통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라는 걸

우리는 왜 인정하지 못했을까?

 

처음부터 당신과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이었을까?

 

늘 행복하기만을 바라던 당신과는 달리,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도 당신과 함께 나누길 바랐었는데

당신은 귀를 닫아버리고, 입도 닫아버리곤 했었지.

 

그런 당신에게 너무 서운했던 나는

더 어리광을 피워댔고, 지칠 대로 지쳐버린 당신은

시종일관 묵언했었지.

 

나는 당신에게 많은 걸 원한 게 아니었는데…….

 

그냥,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면 되는 거였는데,

속상한 마음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지.

 

왜, 내가 힘들다고 얘기하면 나에게 차가워지는 거냐고.

 

한참동안 말이 없던 당신은 대답했다.

 

왜 굳이 힘들다는 얘기로 충분히 즐겁게 할 수 있는 데이트를 망쳐 놓는 거냐며

오히려 내게 반문하며 지겹다고 했던 당신.

 

당신의 지겹다는 말 한마디에 나는 발끈했는데,

당신은 내게 더 냉정하게 얘기했었다.

 

“네가 누군지 나는 모르겠다.”

 

그 말이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처음엔 매사에 밝고 긍정적이었던 내가 좋아서

당신이 나를 정말 닮고 싶었기에 연애를 시작했던 것이었고,

앞으로 나와 함께 꿈꾸는 미래가 너무 즐겁고

행복할거란 기대에 가득 차 있었는데

 

지금은 왜 항상 만날 때마다 힘들다고 어리광 피워대며

나의 우울한 감정을 당신에게까지도 옮기는 거냐고.

 

나는 연인사이에 힘들다고 얘기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며

물었지만, 당신은 내가 너무 어린 것 같다고만 말했었다.

 

우리는 더 이상 대화가 되질 않았었지.

겁이 많은 나는, 그 후로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었고

그런 날 당신은 어떻게든 다시 잘 지내보자며 타이르기도 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는 풀리지 않는 숙제를 계속 껴안고

힘들어하다가 술에 의존한 채 취하면 울면서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은 한숨만 내쉴 뿐, 아무런 답이 없었지.

 

우리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고,

늘 서로에게 지쳐있던 상황에서 나는 또다시 사랑에 상처받고 싶지 않아

계속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었다.

 

한 없이 다정다감했던 당신은,

이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처럼 나에게 냉정해졌고

나는 또다시 애써 밝은 척, 당신의 마음을 되돌리려

노력해보았지만, 이미 늦었던 것이다.

 

당신은 내게 이별을 고했고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지만

당신의 마지막 한마디에 나는 깊은 절망 속으로 빠졌었다.

 

이제 더 이상 당신에게 나는 여자가 아니라며 잔인하게 전화를 끊어버린 당신.

 

하필이면, 그 날 비가 무척 많이 오던 날이었지.

우산을 쓰고 빗소리에 묻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르겠다.

 

한동안은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그 다음에는 분노로 바뀌었고, 미친 듯이 화가 나서

당신을 참 오랫동안 괴롭혔었다.

 

나랑 헤어지고, 당신도 나처럼

아니

나보다 훨씬 불행했으면 좋겠다고 빌고 또 빌었다.

 

수시로, 구질구질하게 매달려보기도 했고,

온갖 심한 막말도 거침없이 해대면서도

마음속 한 구석에는 다시 돌아 와주길 바라고 또 바랐었는데

나에게 돌아온 건 당신의 무응답.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보아도 당신은 칼같이 나를 잘라냈다.

나는 이제 더 이상은 정말 안 되겠구나 받아들이기까지 너무 힘들었다.

 

당신과의 사랑이 끝이 나고, 시간은 정말 빠르게도 흘러가더라.

허무하게 당신과의 사랑이 끝난 게 아쉬워서 인건지

그동안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달콤한 미래에 기대가 너무 커서

미련이었던 건지는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겠더라.

 

난 아직도 당신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 한다는 사실.

아직도 당신을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내지 못하고

당신을 아직도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걸 말이야.

 

다시 되돌리기엔 너무 많이 늦었다는 걸 알지만

한번쯤은 시간을 되돌리고 싶긴 하다.

 

만약, 다시 되돌아간다면, 당신을 힘들게 하지 않았을까?

 

조금은 더 생각해봐야 하는 아직은 풀리지 않는 숙제를 껴안고 있는 듯하다.

시간이 얼마나 더 지나야 당신을 잊을 수 있을까?

 

그 때, 당신이 나빴던 게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기에 타이밍이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가 사랑하고 있을 땐,

서로에게 거짓 없이 진실 된 사랑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 생각하진 않기로 한다.

당신도 충분히 많이 아프고 힘들었을 테니까.

워낙, 힘든 거 내색하지 않던 당신이었으니까.

 

비록, 짧은 사랑을 했던 우리였지만

이제는 당신과 만날 수도 연락도 할 수 없지만

처음처럼 당신은 여전히 멋있는 사람으로 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항상 당신은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내가 너무 많이 의지했고, 진심으로 당신과의 행복한 미래가 이뤄지길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던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당신이니까.

 

나도 당신을 내 마음속에서 잘 떠나보내고

행복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가끔씩은 그 때의 우리가, 당신이 그리워질 때도 있겠지만

또 하나의 좋은 추억으로 남겨둬야지.

 

당신은 정말 최고로 멋있었고

한없이 다정다감하고 늘 진실 된 사람이었으니까

앞으로도 그 모습이 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딱 한 가지, 변했으면 하는 건

앞으로 누군가와 다시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된다면

힘들다고 말하는 상대방을 감싸 안아 줄 수 있는 당신이 되었으면 하는 것.

 

그 부분만 변화된다면,

아마 당신은 최고로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진심으로 온 마음 다해 사랑했던 당신, B. E. S. T!

 

이제는 각자의 길 위에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길 바라면서 이제 정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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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우리들은 어디쯤 살아가고 있을까?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다른 계절이다.

 

봄에는 예쁜 꽃들이 피어 오르며 뭔가 새롭게 시작되는 계절이다.

새싹이 돋아오르며 마음을 설레게 하는 봄에는

많은 연인들이 꽃구경을 나오고

사랑을 해도 제일 아름다워보이는 계절이 아닐까 싶다.

 

여름에는 날씨가 더워서일까,

많은 사람들이 시원한 바다를 많이 찾아간다.

계곡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피서를 떠나기도 한다.

너도 나도 몸매자랑들이 한참이다.

물놀이에 정신없어 머리 망가지랴,

얼굴에 열심히 화장한 것들도 신경쓰랴,

이것저것 신경이 많이 쓰여 아예 물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외모관리에 한창인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도 연인의 눈에는 뭔들 안 예뻐 보일까 싶다.

요즘에는 좋은 화장품들도 많이 나와

물에 들어가도 번지지 않는다고 한다.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다.

 

한참 무더위가 지나고 나면 선선한 바람이

기분을 좋게 만드는 가을이라는 계절이 찾아온다.

독서의 계절이다, 고독함을 즐겨야 하는 계절이다.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계절이다 등등

수식어들이 많이 붙는 가을이라는 계절은

한참 꽃들이 지고 낙엽들이 바닥으로 사정없이 추락해

사람들의 발에 이리저리 치이고 밟혀 찢어지기도 한다.

혹은 연인들이 헤어지면 제일 슬픈 계절이기도 하다.

그냥 가을은 뭔가 고독하고 낭만적이면서

슬픈 계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그렇게 가을이 지나면 매서운 추위를 견뎌내야 하는

겨울이라는 계절이 다가온다.

나무들도 추워서 벌벌 떠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눈이 오면 벌거벗은 나무들에게 하얀색의 옷을 덮어주기도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마다 너무 다른 매력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람들도 각자 너무 다른 매력들을 가지고 있다.

 

봄처럼 설레는 마음을 안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일까?

여름처럼 뜨겁고 정열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일까?

가을처럼 고독하면서 슬픈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일까?

겨울처럼 매섭고 독한 추위를 견뎌내야 하는

차가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일까?

 

나는 어디쯤 살아가고 있을까?

.

.

.

당신은 어디쯤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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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奇

또 다른 나

또 다른 나

 

“어? 너 저 위에서 내려오고 있지 않았어?”

 

“무슨 소리야? 나 저 밑에서 올라오고 있었는데?”

 

횡단보도 건너 언덕길에서 내려오던 소영이가 날 보더니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난 방금 집에서 나와 횡단보도 쪽으로 올라오고 있던 중인데 말이다. 소영이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상하다는 얼굴로 뒤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저 위에서 분명히 너 봤는데. 옷도 똑같고 불러도 대답도 안 하더니.”

 

“별일이야. 나 간다. 낼 봐.”

 

“어. 응. 그래 낼 학교에서 보자.”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는 소영이를 뒤로 하고 난 건너편의 슈퍼로 들어갔다. 엄마가 시킨 두부와 계란, 애호박을 산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 소영이가 한 말은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고 기억해 두지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는 20살 대학생이 되었다. 그 날은 전공 수업을 마치고 채플 수업을 듣기 위해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산학협력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앞 시간 채플이 끝나고 정문이 열렸다. 먼저 마치고 나오는 사람 중에 아는 얼굴이 보였다. 난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어? 너 방금 채플 수업 듣고 나오지 않았어?”

 

날 발견하고 다가온 선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나는 무슨 엉뚱한 소리냐는 듯이 웃으며 대꾸했다.

 

“무슨 소리에요. 선배. 저 지금 들으러 가는 중인데. 이제는 후배도 못 알아봐요?”

 

그 말에 옆에 있던 친구들이 키득거리며 웃었고 선배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하하. 내가 잘못 봤나보다. 그보다 이따 저녁때 동아리 회식 있는 거 알지?”

 

“네. 근데 저 6시까지 수업이라서 좀 늦을 거 같아요. 장소 확정되면 문자 좀 보내주세요.”

 

“그래. 수업 잘 듣고. 졸지 말고. 이따 보자.”

 

“네.”

 

선배는 졸지 말라고 했지만 자고로 채플 수업은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는 시간이다. 난 무대에서 기도를 하든지 공연을 하든지 졸음으로 시작해 졸음으로 끝난 채플 수업을 마쳤다. 뒤이어 전공수업까지 마치고 문자를 확인 한 뒤 선배가 알려준 장소로 갔다. 그 날 낮의 일은 저녁 때 회식의 즐거움에 까맣게 다 잊고 말았다.

 

그리고 내 나이 30이 되던 해. 난 평범한 직장에 평범한 연애를 하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랬기에 여느 날과 다름이 없었던 그 날이 이렇게 끔찍한 일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소영이의 말을 선배의 말을 흘려 넘기는 것이 아닌데. 후회스럽다.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해서 업무준비를 하던 나에게 입사동기인 지현언니가 오더니 내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혜영씨. 괜찮아?”

 

“예? 뭐가요?”

 

“응? 아까 같은 버스 탔는데 안색이 엄청 창백하더라고. 나도 사람들 틈에 끼여 있어서 보고만 있었는데. 결국 몇 정거장 못 가서 내렸잖아. 지금 보니 괜찮은 거 같네. 혜영씨 멀미했나보다.”

 

“언니. 저 오늘 지하철 타고 왔는데요.”

 

언니는 내 대답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상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어? 혜영씨 맞는데. 옷도 같고 머리도 같은데. 아닌가? 불렀을 때 살짝 뒤돌아 본 것도 같은데.”

 

“그냥 닮은 사람인가보죠. 옷이야 비슷한 옷들도 많고 머리도 뭐. 이런 머리가 한 둘도 아닐 테고.”

 

“그런가?”

 

“그럼요. 아님 제가 쌍둥이게요? 저 오늘 지하철 타고 왔다니까요. 언니가 잘 못 본 거예요.”

 

그렇게 난 또 한 번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그 날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점심시간 오전 업무를 마무리 하느라 조금 늦게 밥을 먹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나에게 같은 부서의 최대리에게 그 날의 두 번째 목격담을 들을 수 있었다.

 

“어? 혜영씨 아까 밥 먹고 또 먹으러 가?”

 

“예? 무슨 소리세요. 대리님. 저 오전 업무가 좀 늦게 끝나서 지금 내려가는 건데요.”

 

“어? 아까 1층 로비에서 들어오는 걸 봤는데. 밥 먹고 들어오는 거 아니었어?”

 

“저 출근하고 1층에 내려간 적이 없는데요. 이제 점심 먹으려고 내려가는 거라니까요. 그러는 대리님이야 말로 또 어딜 가시는데요?”

 

“아. 난 담배 사오는 걸 깜빡해서. 내가 잘못 봤나?”

 

그때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함과 동시에 내 핸드폰이 울렸다. 난 폰을 받아서 식당에 먼저 간 동료들에게 내가 먹을 메뉴를 부탁했다. 나와 같이 1층에 내린 최대리는 여전히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1층 로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최대리는 곧 머리를 긁적이며 담배를 사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때 이 경고라도 들었어야 하는데. 난 역시나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것이다. 그리고 퇴근 후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난 내 어린 시절부터 내 주변을 맴돌았던 그 존재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 중에 가로등이 없는 짧은 골목길이 있었다. 근처 창문들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전부인 20걸음 남짓한 골목길이었다. 그 길의 맞은편에서 한 여자가 마주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오늘 저녁은 뭘까? 하며 걷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길의 가운데. 정확히 10걸음을 남겨두고 그 여자가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었다. 난 여자에게 밀쳐져 벽에 부딪히며 여자와 벽 사이에 끼게 되었다. 그때 가슴 한 구석에서부터 서늘하게 퍼져나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고개를 숙여 내려다 본 곳에는 차가운 칼날이 내 피부를 뚫고 들어가 심장에 박혀있었다.

 

“어...?”

 

어째서인지 피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더 실감나지 않았던 거겠지. 내가 사라져 가는 것이.

고개를 들어 날 찌른 여자를 바라보았다. 창백한 안색에 알게 모르게 나와 닮은 이목구비.

나와 비슷한 옷차림에 내 또래 여자. 그녀는 날 보며 희열에 가득 찬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내가 되는 거야. 이제 내 것이 되는 거야.”

 

무슨 말이지? 춥다. 싸늘한 한기는 점점 더 퍼져가고 내 체온이 식어갈수록 그녀의 모습은 뚜렷해진다.

흐릿하던 실루엣도 희미하던 이목구비도 옅어서 잘 보이지도 않던 그녀의 그림자까지.

반면에 나의 그림자가 옅어져가는 게 보였다.

 

“그래도 하나 알려줄까?”

 

“무엇을...?”

 

“오늘을 잘 기억해둬. 내가 네가 된 이 날을. 앞으로 태어날지.

혹은 이미 태어났을지 모를 또 다른 네가 너에게 모든 것을 빼앗길 이날을...”

 

그 말을 끝으로 난 모든 것을 잃었고 정신을 차린 난 어디인지 모를 곳을 헤매고 있었다.

한 손에는 내 모든 것을 앗아간 그 칼을 쥐고서....

 

그 날 난 나를 찾아온 또 다른 나에게 나의 일상을 뺏겼고 난 또 다른 나를 찾아 그 일상을 뺏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있을 자리도, 나의 존재도, 나의 가치도, 아무것도 되찾지 못할 것이다.

내가 나로 살아가기 위해. 나로 남기 위해. 난 또 다른 나를 찾아 낼 것이다. 반드시.

그리고 바로 당신일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