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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12월의 어느 어두운 날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아. 유난히 추웠고 새벽에는 눈도 펑펑 쏟아지더라.

그날따라 늦게까지 잠이 오질 않았어.

집 앞에 나가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소복히 쌓인 눈을 밟으며 발자국을 남겼어.

그러다 네 생각이 났어. 같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하고.

그 어두운 밤에 홀로 밖에 있으니 점점 무서워져서 집으로 다시 들어가려는데 핸드폰 진동이 느껴졌어.

확인해보니, 너였어. 

 

'어두운데 위험하게 혼자 청승떨고 있냐?'

 

응?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널 발견했어.

너무 좋아서 그 자리에 서서 널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었는데 또 문자가 온거야.

 

'가만히 서서 뭐하냐, 나 안 반가워? 다시 갈까?'

 

치...너가 오면 되잖아! 저 멀리에서 두 팔 벌리고 서 있는 너.

그래,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한 걸음, 또 한걸음 너와 가까워진다.

넌 빨리와서 안기라고 제스처를 취하지만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만 있다.

난 그게 괜히 얄미워 천천히 한걸음씩만 너에게 간다.

몇걸음만 더 가면 널 안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데 난 멈춰서서 널 바라봤어.

의아한 듯이 나를 쳐다보는 너는 말해.

 

"거기서 뭐하고 있어? 어서 안겨!"

 

그 말에 나도 말해.

 

"너가 와서 나 안아주면 되잖아."

 

사랑앞에서 너와 나는 항상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려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곤 했지.

그 놈의 기선제압이 뭐라고?

 

결국, 넌 끝까지 먼저 나를 안아주지 않았고 그런 네가 너무 미워서 뒤돌아 왔던 길을 되돌아갔어. 

내가 집으로 들어가기까지 넌 잡지 않더라, 나를. 내심 기대했었는데.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여자가 삐져서 뒤돌아가면 남자는 백허그해주며 달콤한 말도 잘해주던데. 

 

그 날, 하루종일 널 기다렸는데 결국 넌 나에게 오지 않더라. 

그렇게 흐지부지 끝나버린 사랑에 너무 허무해진 밤이었어.

 

12월의 어느 어두운 밤에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사랑앞에서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가 안타까웠던 날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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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눈소리

 

 

 

    어릴 땐 눈이 소리 없이 내린다고 생각했다. 빗소리를 노래하는 가사는 많지만 눈이 내리는 소리를 담은 멜로디는 없었으니까. 그러고보니 사전에도 '눈소리'라는 단어는 없는 것 같다.

 

  침침한 눈으로 휴대폰 주소록을 더듬으며 하나 둘 마음을 전하다, 문득 우리가 인생의 반 하고도 열 해를 더 보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맛있는 것도 두 번 세 번 먹으면 무뎌지는 것처럼 나이도 계속 먹으니 잊게 된다. 아니면 일부러 어딘가에 던져둔 채 그 위로 눈이 소복이 쌓이기를 기다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찾지 않은 보물이 시간을 먹고 썩어버리듯, 내 나이도 세월을 먹고 어딘가에서 녹이 슬어 없어져버리길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귀 기울이지 않는 동안 소리 없이 내린 눈처럼 푸른 새벽에 후두둑 쌓여버린, 예순을 조용히 끌어안아본다. 쿵쾅, 심장 가까이에 두니 체온에 녹아 내 안으로 금세 스며든다. 아무도 듣지 않는 눈소리를 나마저 외면하면 외로워서 어쩌누…. 그렇게 생각하니 꼭 돌봐주어야 할 벗처럼 느껴져, 흰 눈송이가 된 세월과 근심이 귓등에 앉아 소근소근 속삭이는 것만 같다.

 

 

 

       to. 올 해 예순이 되신 엄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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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가

눈길, 행성 안호

 눈길

 

 난 항상 눈길을 걸을 때면 운동화 바닥이 눈 위로 사뿐히 내려앉도록 하면서 길을 걸었다. 그럴 때면 눈 부딪히는 소리가 더 천천히 나서, 그 소리에 집중하면 난 그 소리에 취해 길 걷는 것을 즐겼다. 스웨터와 어제 정리한 단발머리 위로 눈송이들이 기분 좋게 쌓이고 있다. 밤 가로등 아래가 눈으로 가라앉고, 길 양옆으로는 이제 막 한적해진 식당들이 드문드문 빛을 내고 있다. 어느새 얀과 약속했던 우동집에 도착했다. 얀이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얀이 좋아한다는 김치우동 두 개를 시켰다.

 

 겨울의 공기들을 달래기에는 적당한 양의 김치우동이었다.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입김들을 마주 보며 겨울을 바라보았다. 우동은 천천히 먹었다. 눈들이 천천히 쌓여가는 소리에 시간이 천천히 흘렀고, 나도 그 흐름에 맞추어 이 시간을 더 섬세하고 또렷하게 느꼈다. 식당주인은 뉴스 채널을 보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행성 ‘안호’에 세워진 식민지를 향해 지구를 떠나는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 얀의 모습이 보였다.

 

 

 행성 안호

 

 planet 안호 D-2 11:30

 planet 黃河 D-4 16:45

 planet Fulosiatico D-11 23:10

 

 am 7:44

 

 복도 창밖으로 서로 다른 별들이 보였다. 인터넷에서 행성 안호행 우주선에서 7번째 날 8시면 ‘곰 발바닥 성운’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너무 일찍 온 모양이었다. 승객구역은 여전히 조용했다. 밥을 먹으러 갈까 생각했지만, 아직 식당은 열지 않는 시간이었다. 옆으로 젊은 아시아계 남자가 다가왔다. 덥수룩한 수염에 처친 눈은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인상이었다. 남자가 물었다.

 

 “얘야. 식당이 어디 있는지 아니?”

 “여기서 조금만 더 걷다 보면 나와요.”

 “고맙다.”

 

 남자는 내가 말했던 곳으로 걸어갔다. 머리 위로 조금만 올려다보면, 어디에 식당이 있는지 화살표로 나와 있었지만, 그저 남자가 주의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땅을 보면서 걸었다. 휴대폰을 보니 7:55였다. 저기 멀리서 곰 발바닥 성운이 보였다. 푸른 성운으로 이루어진 저 거대한 성운은 머릿속을 가득 메우기에는 더없이 충분했다. 나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보여줄 생각을 했다.

 

 엄마는 주문했던 음식을 들고 왔다. 접시에서 나는 스크램블드에그 향이 달콤했다. 바싹 구워진 토스트를 한입 베어 먹고, 옆의 비엔나 하나를 포크로 찍어 먹었다. 뱃속에서 음식들의 온도가 전해졌다. 스크램블드에그를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조금 짭조름한 것이 먹기 좋았다. 그때 엄마가 말했다.

 

 “나중에 저녁에는 우동먹자. 오늘은 우동이 먹고 싶어.”

 “우동?”

 “오랜만에 김치우동이 먹고 싶어. 근데 여기 팔지는 모르겠네.”

 

 김치우동은 여기엔 없었다. 여러 지역의 음식들을 팔고 있었지만, 판다는 것은 그 지역에서 아주 유명한 음식이었고, 지역 내에서만 알려진 음식들은 팔지 않았다. 한국지역 음식점도 있었지만, 비빔밥이라던가 해장국, 냉면 같은 것들을 팔고 있었다. 일본지역 음식점에도 김치우동은 없었다.

 

 이제는 지구에 식당들이 줄어드는 추세라서, 한국지역에서라도 김치우동을 맛보기는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엄마는 그 김치우동을 위한 사랑 때문에 어떻게 김치우동을 잘 만드는 가게를 찾아내셨다. 난 엄마가 김치우동을 좋아하는 것을 그저 한 사람이 어떤 음식을 그냥 취향에 맞아서 좋아하는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가 찾았던 가게의 이름은 ‘환청’이었다. 엄마는 식당의 이름이 참 특이해서 가게 주인에게 왜 식당을 이런 이름으로 지으셨는지 물어보셨다. ‘환청’이라는 이름은 다시 오라는 환청이 들릴 만큼 음식이 맛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나는 그런 이름으로 가게가 망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쩌면 그 ‘환청’이라는 이름이 부르는 호기심 때문이지 않을까. 난 내 방식대로, 환청이라는 그 이름은 여기 한 번 와보라는 환청이 들린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김치우동에 대한 엄마의 사랑을 제쳐놓고, 엄마는 김치우동이 없는 행성 ‘안호’로 이주하기를 결정했다. 바람이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가듯, 사람들은 지구에서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했다. 지구는 이젠 인간들만 가득한 오래된 행성이었고, 그에 반해 새로운 행성들은 아직 젊음으로 가득 차고, 미지로 가득한 세계였다. 새로운 행성들은 여전히 개발되는 중이었고, 그 때문에 일자리도 지구보다 더 많은 편이었다. 이제 지구의 인구는 40억 명으로 줄었고, 그중 한국지역은 인구 1,500만 명밖에 남지 않은 아주 작은 지역이었다. 지구에서 살 것이라고 한다고 하면 살 순 있지만, 지구는 이제 시간이 죽어가는 별이었다.

 

 승객구역으로 돌아가는 중에, 엄마에게 내가 찍은 곰 발바닥 성운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엄마는 흰 이빨이 가득한 미소로 예쁘다고 말씀하셨다. 휴대폰 화면 안에 곰 발바닥 성운은 아무런 소리도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우주선 밖에서 눈이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엄마는 어제 인공정원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셨다. 나이도 같고 서로 한국지역 출신이라서 말도 잘 통했다. 엄마는 그 친구를 만나러 간다며, 나에게 점심값을 주곤 알아서 사 먹으라고 하셨다. 엄마는 친구와 점심을 먹는다고 하셨다. 나는 할 일 없이 게임방에서 철권 15를 하다가 그것조차 질려서, 어제 가봤던 전망대로 가봤다.

 

 사람들은 이 우주선에서 생활한 지 7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우주선의 전망대를 좋아했다. 전망대 한쪽 구석에는 곰 발바닥 성운의 기념품이나, 우주선 모형 같은 것들을 팔았고, 사람들은 기념품을 구경하거나,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연인들을 별들을 배경 삼아 서로의 사진을 찍어댔고, 이제 막 돌을 지난 듯한 아이를 가진 부부는 아이가 별을 보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첫 번째 날만큼은 아니었지만, 사람이 적다고 할 수는 없었다.

 

 나는 하얀 기둥에 원형으로 둘러싸인 벤치에 앉아 밖의 별들을 아무런 말도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눈과 얼음으로 덮인 행성이 보였다. 휴대폰으로 행성을 찍어 행성의 이름을 알아보았다. 행성의 이름은 ‘3LS7’라는 공식적인 이름과 ‘백설’이라는 비공식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이라서, 3번째 행성 식민지화의 후보 중 하나였지만 행성 ‘안호’가 지구의 기후와 더 비슷했기 때문에 후보에서 탈락하고, 현재는 과학적인 연구를 위한 기지만 남아있다고 한다. 나는 멀리서 백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대하고 깨끗한, 눈사람의 몸통 같았다. 휴대폰을 보니 점심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나는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아침보다 더 붐볐다. 나는 구석진 곳에 있는 2인석에 앉아 초밥 정식을 시켜 먹었다. 그나마 내가 알던 음식 중에서는 무난한 편이었고, 적당 미지근한 온도는 점심으로 먹기에는 알맞았다. 초밥 위에 올려진 어류의 이름들은 알 수 없었지만 난 그중에서 가장 투명한 생선의 초밥을 먹었다. 입안에서 밥알과 알싸한 고추냉이의 향과 부드럽게 씹혀가는 이름 모를 생선이 뒤섞였다. 그다음 초밥으로 젓가락을 옮길 때, 누군가가 식판을 들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앉아도 돼? 다른 자리는 거의 다 차서.......”

 

 위로 올려다보니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시아계 남자애가 식판을 들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을 보니 나와 같은 동아시아계 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앉지 말라고 할 이유는 없었다.

 

 “고마워. 다른 자리는 죄다 다른 대륙 사람들이라서 엄청 불편했거든.”

 “고맙기는. 나도 아까부터 심심해서 잘됐구나 싶었어. 어디서 왔어?”

 “한국. 너는?”

 “난 일본에서 왔어.” _한국어

 

 남자는 자그마하게 웃었다. 나도 그 애를 따라서 웃었다. 우리는 한국어로 말했다.

 

 “전망대 가봤어? 밖에 엄청 예쁜 행성이 있던데.”

 “나도 아침에 봤어. 이름이 뭐였더라?”

 “백설이라던데.”

 “백설? 무슨 복잡한 이름이던데. 왜 그런 거 있잖아. 자동가입방지문자 같은 거.”

 “나도 그건 까먹었어. 사람들은 그냥 ‘백설’이라고 부른데.”

 “그래? 그편이 훨씬 더 낫다. 난 과학자들이 왜 그런 복잡한 이름을 붙이나 싶어.”

 

 그 애의 이름은 얀이라고 한다. ‘하 얀’. 혀와 잇몸이 살짝 달라붙는 ‘얀’이라는 이름은 연못에 가라앉는 깃털 같아서 듣기 좋았다. 대화는 그저 평범한, 우리의 나잇대면 그저 다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먹는 것, 보았던 것, 읽었던 것. 점심시간이 그렇게나 길었을까. 초밥이 식어갔다. 미적지근한 그 온도 더 아래로. 시간 아래로.

 

 오후. 얀은 전화를 받고는 자신은 가야 한다면서 나와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가버렸다. 나는 얀의 인상과 말투, 이야기들을 떠올리면서 승객구역으로 갔다. 얀은 평양에 살다가 부모님과 함께 안호로 이주하러 왔다고 했다. 얀도 자신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얀의 부모님은 그저 안호에서는 옥수수 농사를 할 수 있는 땅이 더 많다는 말만 했다고 한다. 조금 무책임한 말이지 않나 하고 생각했지만, 얀은 그저 자신의 부모님이 장난기 가득하지만, 생각 많으신 분이라고 말하며 나에게 왜 안호로 이주할 생각을 했는지 물었다. 난, 우리 엄마가 안호에서 김치우동가게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침실 창밖으로 보이는 별들이 낯설었다. 얀과 했던 이야기들, 거짓말에 대해서 생각했다. 사람은 그리 좋은 생물체는 아니다. 처음 보는 동족에게 구애하며 자신의 사랑을 마음껏 표현하는 공작새 같은 생물체는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그런 동물적인 사람도 있겠지만, 난 적어도 평범한 사람이다. 아무런 생각이 없기 위해서 별들의 개수를 셌다. 하나. 둘. 셋.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밖이 소란스러웠다. 엄마가 나를 깨웠다. 엄마는 빨리 이곳에서 나가 생존 캡슐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엄마도 잘 모른다고 했다. 단지 우주선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것만 알고 있다고 했다. 그저 고요하기만 했던 우주선이 진동하고 있었다. 난 홀로 살아 숨 쉼 없이 우주를 떠도는 내 모습을 상상하였다. 창밖의 검은 추위가 내 몸을 둘렀다.

 

 상어 한 마리에 겁에 질린 정어리떼 같았다. 영어만이 들리지는 않았다. 다들 자신들의 언어로 세상을 증오하고 있었다. 살기를 바라고 있었다. 저기 이틀간의 문턱을 넘어선 곳에 있는 자신들의 목적지를 바라보며, 생존 캡슐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 말들 사이로 우주선 함장의 안내방송이 들렸다.

 

 ----주선은 행성 3LS7의 중력에 의해 추락하고 있습니다. 승객분들은 서둘러 생존 캡슐에 탑승하여 우주선이 추락하기 전에 탈출하시기 바랍니다. 생존 캡슐에 탈출하시면 99%의 확률로 행성 3LS7에 추락하실 겁니다. 이후에는 생존 캡슐 속에서 구조대를 기다리시면 됩니다. 생존 캡슐은 승객 수에 맞게 설치되어 있습니다. 당황하지 마시고 차례대로 캡슐에 탑승하시면----

 

 우주선 창밖으로 백설로 떨어지는 생존 캡슐을 볼 수 있었다. 엄마는 나를 먼저 생존 캡슐에 태웠다. 그러고선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셨다. 살아있음을 느끼며 이것이 계속되기를 빌었다. 엄마가 멀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우주선이 멀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별들이 가득한 검은 땅이 멀어지고 있었다. 구름이 멀어졌다.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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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즈의 감성에세이

마음의 눈물

두 눈에서 흐르는 기쁨의 눈물,

슬픔의 눈물이 아닌. 

 

남들이 쉽게 알아채지 못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살짝 고이게 되는 그런 추억 담긴 마음의 눈물.

 

살면서 마음에 눈물이 나게 하는 아련한 요소들이 있다

 

나에게는 크게 두 가지.

 

눈 내리는 깜깜한 저녁 처마 아래

따뜻한 불빛을 흘러보내는 은은한 노란 전구와

 

옛날 그 언젠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깊게 빠져들게 된 감미로운 OST들

 

그 겨울 밤하늘에 총총히 뜬 별들을 바라보며 시덥잖은 소원을 빈 뒤

손을 잡고 동네를 걸으면

집집마다 장식된 노란 전구들이 눈에 띄었고.

전구의 은은한 불빛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맞잡은 두 손 만큼이나 따뜻히 내 몸을 녹여주었다. 

 

입소문이 난 영화를 함께 보고난 뒤

귀속에 맴도는 음악과 잔잔한 여운을 새겨둔채 

소파에서 세시간이 넘도록 스토리에 대해 열띈 토론을 하며

입씨름 하는 순간은 나에게 성장을 주었다.

 

이처럼 일렁이는 인생의 순간들

 

이 순간들을 처음으로 내 머릿속에 '자각'하게 된 뒤로는

시간이 몇달이건, 몇년이건 흘러가도

비슷한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

어김없이 내 마음속에서 마음의 눈물이 다시 새어나온다.

 

그리움과 사랑. 때론 미안함과 아쉬움이

복잡하게 뭉쳐져 응어리진 마음의 눈물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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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雜

까마귀 엄마

 

까마귀 엄마

 

“응애”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어디서 들리는 걸까?

 

“응애”

 

대답이라도 하듯이 다시 들려오는 울음소리. 고개를 갸웃거리며 찾아가 본다.

 

-폴짝폴짝...푸드덕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잘 짜여진 대바구니가 놓여있었다. 바구니 안에는 하얗고 보드라운 천에 갓난아기가 싸여 있었다. 늙은 까마귀는 바구니의 손잡이 위에 앉아 가만히 아기를 들여다보았다. 아기의 새파란 하늘빛 눈동자가 반짝거리며 까마귀를 향해 웃었다.

 

아기의 그 새파란 눈을 가만히 마주보던 까마귀는 훌쩍 날아가더니 어디선가 새알을 하나 가져와 아기의 입 안에 흘려 넣었다. 아주 조금씩, 혹시나 아기가 먹다가 체할까 조심스레 흘려 넣었다. 그렇게 한 알, 두 알, 마지막 세 번째 알을 가져왔을 때 아기는 까마귀에게 양손을 내밀었다. 마치 자신의 것인지 안다는 양 달라는 듯이 내밀어진 그 작은 손에 까마귀는 구멍을 뚫은 세번째 알을 쥐어주었다.

 

그 이후 까마귀는 자신이 보모라도 된 양 아기를 돌보았다. 시간이 흘러 아기가 걸음마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까마귀는 나는 법을 잊어버렸다. 아기가 자라 옹알이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까마귀는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아기가 더 이상 옹알이가 아닌 제대로 된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까마귀도 사람의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 *

 

“저쪽이다 잡아!”

 

남자가 가리키는 곳에는 하얀 천이 나풀거리며 잔디 위를 달려가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 하얀 천을 뒤집어 쓴 까마귀가 도망치고 있었다.

 

“이놈의 까마귀가 어디 감히 여사제님의 옷을 훔치는 거냐!”

 

“거기 서라. 옷 도둑놈아!”

 

- 퍼억!

 

입에 물고 있던 옷이 나부끼다 눈앞을 가리자 까마귀는 결국 나무에 부딪쳐 나뒹굴었다. 그런 까마귀를 둘러싸는 사람들, 손에 뜰채를 든 사람도 보이고 몽둥이를 든 사람도 있었다.

 

“좋았어! 어디 맛 좀 봐라!”

 

“저놈 봐. 저 와중에도 입에 문 옷은 안 놓는데?!”

 

“그래봐야 독 안에 든 쥐야! 날지도 못하는 것 같잖아?!”

 

몽둥이가 막 까마귀를 내려치려는 찰나! 갑자기 앙칼진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둬! 우리 엄마한테 뭐하는 짓이야!”

 

주변 덤불에서 갑자기 달려 나와 몽둥이를 휘두르던 남자에게 달려든 건 작은 소녀였다.

 

“이 꼬마가 뭐라고 하는 거야! 저 까마귀가 네 엄마라고?”

 

소녀에게 밀쳐진 남자는 소녀를 밀어냈다. 소녀는 까마귀 앞을 막아섰다. 마치 까마귀를 지키겠다는 듯이 말이다.

 

“까마귀보고 엄마라니. 실성한 거 아냐?”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근처 마을에 사는 아이인가?”

 

갑자기 나타난 소녀와 소녀가 한 말에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헤치고 한 여인이 다가왔다. 새하얀 사제복에 하얀 피부, 밝은 금발의 기품이 느껴지는 온화한 표정의 여인이었다. 그 여인은 소녀와 까마귀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마치 소녀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궁금하다는 눈이었다.

 

소녀의 등 뒤에서 사람들을 주시하며 움츠린 까마귀.

그런 까마귀를 지키겠다는 듯이 가로막고 있는 소녀.

그리고 신중한 눈빛으로 까마귀와 소녀를 살피는 여인.

 

“아이야, 그 까마귀가 어찌 너의 엄마란 것이지? 너는 인간이고 네 뒤에 있는 것은 까마귀인데. 까마귀가 인간인 너를 낳았다는 거니?”

 

“날 낳은 게 누구인지는 몰라요. 하지만 날 키워준 건 내 뒤에 있는 엄마라고요!”

 

소녀의 대답에 여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녀의 말대로라면 저 까마귀가 소녀를 돌봐주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저 늙은 까마귀가 어린 소녀를 키웠다는 말은 그리 쉽게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엄마라고? 까마귀가 아니라?”

 

“그래요! 엄마에요! 엄마. 그렇지? 엄마도 뭐라고 말 좀 해봐! 왜 아무 말도 안하는 거야?!”

 

소녀의 말에 까마귀는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렸다. 그 모습이 여인의 눈에는 어쩐지 곤란해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겁을 먹은 것 같았다. 결국 참다못한 소녀가 까마귀를 돌아보고는 재차 불러댔다.

 

“엄마. 왜 아무 말도 안 해! 뭐라고 말 좀 해봐!”

 

그 모습에 여인은 까마귀를 바라보며 말을 건네었다.

 

“혹시 이 아이가 곤란할까봐 그러는 건가요?”

 

그런 여인의 모습에 까마귀는 주저하듯이 고개를 주춤거렸다. 여인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여인의 근처에서 보다 못한 사람들이 뜰채를 휘두르며 나서려고 할 때 그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게 되었다. 까마귀의 부리가 움직이고 그 부리에서 나온 건 '까악'거리는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허스키하고 거칠지만 분명 사람의 말이었다.

 

“그야 곤란하니까. 난 당신들의 옷을 훔쳤고, 난 까마귀이니까. 당신들은 이 아이를 나에게서 떼어놓을지도 모르니까.”

 

아이를 떼어놓을지도 모른다니. 이건 정말 엄마가 아이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무슨 소리야. 이 사람들이 엄마와 나를 왜 떼어놔! 그리고 이 옷 아직 입을 만한데 옷은 왜 훔쳤어? 나중에 낡은 옷 내놓을 때 하나 가져오면 된다니까! 왜 그랬어?”

 

울먹거리는 소녀의 말에 까마귀가 한 대답은 사람들의 손에 들린 뜰채와 몽둥이를 내려놓게 만들었다.

 

“오늘이 너를 만난 지 12년이 되는 날이니까. 깨끗하고 좋은걸 주고 싶었어.”

 

까마귀는 소녀에게 생일 선물을 주고 싶었던 거였다. 그래서 신전에서 빨아 널어놓은 옷 중에 가장 깨끗하고 좋은 옷을 가져가려 했는데. 그 옷이 하필 여사제의 사제복이라 사람들에게 쫓기게 된 것이다.

 

‘정말로 저 까마귀가 이 아이의 엄마구나. 신이시여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거군요.’

 

“저 옷은 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사제복이니까요. 하지만 깨끗하고 좋은 옷이라면 다른 것도 있어요. 그러니 나와 함께 가지 않겠습니까?”

 

여인의 말에 아이는 까마귀를 품에 안은 채 여전히 경계하며 두리번거렸다. 까마귀는 여인에게 정말이냐는 듯이 되물었다.

 

“우릴 해치지 않을 거야? 이 아이를 뺏어가지 않을 거야?”

 

“네. 약속하죠. 당신들을 해치지도 떼어놓지도 않겠습니다.”

 

* * *

 

여사제를 따라 신전의 복도를 걷던 소녀는 열려진 문 앞에 멈춰 섰다. 소녀가 멈춘 곳은 신전의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에는 어머 어마한 양의 책들이 있었고 소녀와 까마귀는 처음 보는 책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책장 사이를 누비며 책을 뺐다 넣었다하며 구경했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던 여사제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까마귀는 소녀에게 글을 가르친 적이 없다고 하였고 소녀도 글을 배운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소녀는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처음 보는 글자를 배우지도 않았는데 쓰기도 하고 읽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에 여사제는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고 수도의 대신전에 까마귀와 소녀의 일을 보고했다.

 

얼마 후 대신전에서 보낸 사제와 마법사 길드에서 보낸 마스터들이 신전을 방문했다. 그들은 까마귀와 소녀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내린 결론은 아마도 이것이 누군가의 마법일 가능성이 크다는 추측이었다. 그 마법이 신성마법인지 마법사의 마법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소녀에게 걸린 마법이 소녀를 발견한 까마귀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그로 인해 까마귀는 소녀와 함께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의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날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과 소녀는 마법으로 인해 굳이 무언가를 배우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 많은 것들을 알 수 있게 되고 익힐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갓난아기에게 이런 마법을 걸어 숲속에 버려둔 것일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소녀와 까마귀는 서로에게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저 늙은 까마귀가 정말로 소녀의 어미가 되었다는 것. 그것만큼은 그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사제의 배려로 신전에서 지내게 된 소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사제가 되길 원했다. 그날 까마귀가 여사제의 옷을 훔친 것이 마치 미래에 대한 예언이었다는 듯이 말이다. 여사제는 소녀가 사제가 되는 것을 허락했다.

 

소녀가 20살이 되어 여인이 되던 날 성인식과 함께 정식 사제가 되었다. 소녀의 사제명은 ‘도노두아’ 이곳의 말로는 ‘축복받은 아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여사제는 까마귀에게도 이름을 주었다. ‘카르두아’ ‘축복받은 까마귀’ 라고 말이다.

 

* * *

 

“엄마. 저 다녀올게요.”

 

카르두아를 향해 웃는 소녀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었다. 새하얀 정식 사제복을 입고 환하게 웃는 여인이었다. 카르두아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그 눈은 그때처럼 새파란 하늘빛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조심해서 다녀와. 보고 싶을 거야.”

 

보고 싶을 거라는 말에 도노두아는 환하게 웃으며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도노두아는 내심 아쉬웠다. 같이 갈수 있다면 좋을 텐데. 대신전에서는 까마귀를 들일 수 없다하여 도노두아만 가게 된 것이다.

 

“응. 나도.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올게요. 사제 신고만 하고 바로 올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도노두아는 카르두아를 안고 있는 여사제에게도 인사를 건네었다.

 

“다녀올게요. 스승님.”

 

마차에 올라탄 도노두아는 신전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카르두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카르두아 역시 마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도노두아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마치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듯이. 절대로 잊을 수 없다는 듯이.

 

* * *

 

도노두아가 정식 여사제 신고를 위해 수도의 대신전으로 간지 며칠쯤 되었을까. 여사제는 창가에서 날개를 퍼덕이는 카르두아를 보았다.

 

“카르두아? 뭐하는 거야?”

 

“나는 법을 떠올리고 있어.”

 

그 말에 여사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날수 있어? 당신 못 날잖아?”

 

“날수 있게 될 거야.”

 

최근 들어 신전의 수도사들이 요즘 들어 창가에서 날갯짓을 하는 카르두아를 자주 보았다고 했다. 그게 나는 연습을 하는 거였을까? 도노두아를 보러가기 위해서? 여사제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며 재차 물었다.

 

“날수 있게 되면 어딜 가려고?”

 

“보러 갈 거야. 내 아이.”

 

“기다리면 올 텐데?”

 

“안 돼. 늦어.”

 

점점 더 알 수 없었다. 늦다니? 무슨 뜻일까? 그러고 보니 수련사들이 최근 들어 카르두아가 가끔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다고도 하였다. 여사제는 정말 불안했다. 카르두아가 날게 되면 그대로 날아가서 돌아오지 않을까봐. 도노두아가 슬퍼하게 될까봐.

 

* * *

 

“스승님. 저 왔어요. 다녀왔어요.”

 

신전 도서관의 문이 열리며 도노두아가 뛰어 들어왔다. 여사제는 읽고 있던 책을 제자리에 꽂아두고는 어딘가 슬퍼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도노두아를 반겨주었다.

 

“생각보다 빨리 왔군요.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엄마가 보고 싶어서요. 그리고 스승님도요.”

 

도노두아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여사제를 그런 그녀를 보며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스승님. 그런데 엄마는요? 아까부터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어요. 어디 계신 거예요?”

 

여사제는 살포시 한숨을 쉬며 슬픈 표정으로 도노두아를 바라보았다.

 

“도노두아. 카르두아는 돌아갔어요. 원래 자신이 있던 곳으로...”

 

여사제의 말에 도노두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무슨...말씀이세요? 엄마가 돌아가다니요? 어디로요? 어디로 가셨는데요?”

 

새파란 하늘빛의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하얀 뺨을 따라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여사제는 마음이 아팠다. 갓난아기 때부터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을 모녀를 이렇게 헤어지게 한 게 마치 자신의 잘못 같았다. 대신전에 한번이라도 더 부탁해 볼 것을...카르두아를 새장에 넣어서라도 같이 보낼 것을...괜스레 자신의 잘못 같았다.

 

“도노두아. 어제 카르두아는 숲속을 향해서 날아갔어요. 혹시나 해서 방문도 창문도 덧문까지 다 닫아두었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자신의 몸집만한 석상으로 덧문까지 부셔버리고는 날아갔어요. 미안해요. 도노두아. 미안해요.”

 

도노두아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잊은 채 숲속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오늘이 도노두아의 20번째 생일인데. 자신의 생일날 항상 옆에 있어주던 엄마가 더 이상 자신의 곁에 없는 것이다.

 

도노두아는 그 자리에서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을 잊은 채 날아가 버린 엄마를 원망하며 그리워하며 한참을 울었다. 문득 신전 앞마당이 소란스러워졌다. 뒤이어 한 수련사가 도서관으로 황급히 들어오며 말했다.

 

“여사제님. 도노두아. 카르두아가 돌아왔어요! 지금 앞마당에...”

 

수련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도노두아는 이미 일어서서 앞마당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자신을 잊었다고 생각한 엄마가 돌아온 것이다. 잊은 줄 알았는데 안 올 줄 알았는데. 너무나 보고 싶었던 엄마가 돌아온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최고이자 가장 사랑하는 엄마였다.

 

환하게 햇살이 비치는 신전 앞마당. 그곳에 카르두아가 있었다. 많이 지쳐 보이는 모습으로 부리에는 커다란 대바구니를 물고는 그렇게 지쳐 쓰러져 있었다. 도노두아는 카르두아를 품안에 안아들었다. 도노두아의 품에서 카르두아는 아끼고 아껴두었던 마지막 말을 꺼냈다.

 

“사랑하는 내 아이. 네가 먹어 버린 게 내 마지막 알이었지만 괜찮아. 네가 내 아이니까. 내 사랑하는 아이. 20번째 생일 축하해.”

 

늙은 까마귀 카르두아는 그 말을 끝으로 사랑하는 아이의 품안에서 마지막 숨을 쉬었다. 카르두아가 가져온 대바구니에는 20송이의 새하얀 장미가 담겨있었다. 20송이 순백의 장미는 아침 이슬을 머금은 채 찬란한 햇빛 아래 너무나 아름답고 향기롭게 빛나고 있었다. 카르두아를 안은 도노두아의 새파란 하늘빛 눈에서는 눈물이 반짝이며 흘러내렸다. 마치 아름다운 보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