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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雜

17. The Star

17. The Star

 

등교하기 전 이른 아침, 평소라면 불이 꺼진 채 문이 닫혀 있을 카페가 불이 켜져 있었다. 입구에 라는 작은 명패가 달린 이 카페는 평소에 친구들과 심심풀이 삼아 타로 점을 보러오는 곳이다. 최근에는 시험기간이라서 자주 오지 못했는데 이른 아침에 문을 연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들어가 볼까?’

 

그렇지 않아도 시험이 끝나면 와볼까 싶었다. 친구들과 같이 오는 게 아닌 나 혼자서. 어쩔까 망설이고 있는데 문이 살짝 열리고 낯선 사람이 얼굴을 내밀었다. 카페에서 주로 타로 점을 봐주는 언니도 아니었고,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고 계산을 해주는 오빠도 아니었다.

 

“들어올래?”

 

“네? 저요?”

 

얼떨결에 되묻는 나를 보며 그는 싱긋- 웃었다. 귀공자 같은 외모에 그런 살인적인 미소라니, 뺨이 화끈거린다. 이건 반칙이다. 그러면서도 발은 내 대답을 들을 필요 없다는 듯이 카페로 향한다. 카페 안으로 들어와 그를 따라서 창가의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최현, 여기 오너야.”

 

“아, 네. 네?”

 

엉겁결에 대답하다가 깜짝 놀랐다. 이렇게 젊은 미남이 카페 사장이라니, 소문으로만 들었지 보는 건 처음이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자랑이라도 해야겠다. 그는 조용히 미소하며 카드를 골고루 섞었다.

 

* 점을 보기 전 카드를 골고루 섞는 걸 Shuffle이라고 한다.

 

‘언니는 주면서 직접 섞으라고 하던데. 조금 다르네.’

 

사람마다 다르다고는 들었지만, 조금 의외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이어서 그는 테이블 위에 카드를 일렬로 쭉- 펼쳐놓고 말했다.

 

“딱 3장만 골라봐.”

 

“음-.”

 

나는 테이블 위에 일렬로 펼쳐져 있는 78장의 카드를 노려보았다. 마치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3장의 카드를 골라서 빈자리로 빼내었다. 그는 아직 뒷장을 보이고 있는 카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좌우는 상관없지만, 상하는 신중하게 정해서 뒤집어봐.”

 

가장 왼쪽에 있는 카드를 집어서 아래에서 위로 뒤집었다. 드러난 카드는 [01. 마법사] 정방향이다. 다음은 위에서 아래로, 마지막 카드는 다시 아래에서 위로 뒤집었다. 각각 [17. 별]과 [13. 죽음] 모두 정방향이었다. 마지막에 나온 카드에 시선을 고정하며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저 카드가 모두 나쁜 건 아니라고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심 찝찝했다. 해골이 그려진 우중충한 그림이 기분 좋은 사람은 없을 거 같다. 눈동자를 굴려 힐긋 바라보았다. 순간 시선이 마주치며 그가 걱정 말라는 듯이 웃었다.

 

“하고 싶은 일을 속에 숨겨두고 있구나?”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찌 알았을까? 부모님에게도 친오빠에게도 친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부끄럽고 창피해서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속에만 숨겨두고 있었다. 놀란 내 눈을 보며 그는 마법사 카드를 가리켰다.

 

“마법사의 카드는 지식이나 지혜와 관련이 있지만, 속임수를 쓴다는 점에서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 때도 나오지. 반면, 지금은 또 다른 의미로 숨겨진, 잠재된 능력을 뜻하기도 해.”

 

“잠재된 능력이요?”

 

그는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별이 반짝이고 있는 카드를 짚었다.

 

“네가 희망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

 

곱고 남자다운 손가락이 짚은 카드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하고 싶은 일,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나 성적을 올리는 일이 중요하고 우선이다. 그 이유를 알고 있고 납득하면서도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생각이 들어 답답하다.

 

“겁나니?”

 

그림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섭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얘기했을 때, 부모님이 뭐라고 하실지, 친구들은, 선생님은 뭐라고 하실지, 그리고 나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겁이 났다. 그의 손가락이 다시 마법사 카드로 옮겨갔다.

 

“너 자신의 능력이 부족할까봐 겁먹을 필요는 없어. 넌 이미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으니까. 다만, 그 자질이 빛을 발하려면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거야.”

 

그의 말에 울적한 말이 조금 가라앉아 눈을 들어 작게 되물었다.

 

“정말요?”

 

“그럼. 다만...”

 

그는 가장 마지막, 해골이 그려진 카드를 짚었다.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 성장하려면 이 고비를 반드시 넘겨야 해.”

 

“어떻게요?”

 

그는 팔을 테이블에 올려서 기대고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이며 상냥한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숨기지 말고 알려야지. 설령 누군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너의 의지가 굳건하다는 걸 보여주며 설득해야 해. 그리고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배워나가야겠지.”

 

“꼭, 알려야 돼요?”

 

나를 마주한 미소가 한층 더 부드러워지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받고 배우기 위해서라도 알릴 필요가 있어. 너를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나를 이해하고 도와줄 사람.’

 

카드를 처음부터 찬찬히 훑어보았다. 잿빛 머리의 노련해 보이는 마법사와 크고 아름답게 빛나는 별과 깃발과 방패를 든 해골, 필요한 건 용기와 노력과 배움이다.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순간 가슴 한구석이 찡하게 울렸다. 울림이 사라지고 마음이 상쾌해졌다.

 

‘할 수 있어!’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냐. 얼른 가 봐.”

 

그는 유리창 밖을 눈짓했다. 낯익은 여고생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와 달려갔다.

 

“얘들아! 같이 가!”

 

“어? 너 왜 저기서 나와?”

 

“아침부터 커피 마셨어?”

 

난 활짝 웃으며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아니! 앞으로 내 운을 봤어. 그런 의미에서 너희에게 할 말이 있는데.”

 

“뭔데?”

 

씩- 웃으며 내가 꺼낸 말에 등굣길 내내 놀라기도 하고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전혀 생각도 못했다는 반응은 금세 이런저런 호기심과 관심으로 이어졌고, 나중에는 참고할 만한 자료나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은 달랐다. 현재 고3, 수능을 앞 둔 수험생이 갑자기 진로를 바꾼 것에 선생님은 크게 걱정하셨다. 심지어 엄마는 화를 내기도 하셨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리냐며, 왜 탄탄한 진로를 두고 그런 불확실한 길을 선택하는 거냐고 눈물이 쏙 빠질 만큼 된통 꾸지람도 들었다.

 

그럴 때면 힘이 되어주는 건 친구들이었다. 부모님도 언젠가는 이해하실 거라고, 오히려 그렇게 하고 싶은 꿈이 있다는 게 부럽다는 말도 들었다. 그때마다 용기를 내서 부모님을 설득했고,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다. 내 끈질긴 설득에 먼저 마음을 움직여주신 건 선생님이셨다.

 

“현재 네가 원하는 학과로 안전하게 지망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 하면...”

 

선생님은 그렇게 내가 원하는 길을 택할 수 있게 안내를 해주셨고, 이미 마음을 굳혔다는 걸 눈치 챈 오빠와 아빠가 엄마를 설득해주셨다. 덕분에 마지못해 내 선택을 인정해주셨지만, 시간이 지나서 수능을 끝내고 대학에 들어가 장학금도 받으며 열심인 모습에 엄마도 천천히 나를 인정해주셨다.

 

계절이 바뀌고, 학년이 바뀌고, 대학을 졸업하는 동안 꾸준히 노력한 결과, 20대 중반에는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넉넉하지는 않아도 자리를 잡고, 인정도 받으며 소소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일상을 보낸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그날 아침의 일이 떠오른다.

 

너 자신의 능력이 부족할까봐 겁먹을 필요는 없어.

넌 이미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으니까.

다만, 그 자질이 빛을 발하려면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거야.

 

그날 이후 수능이 끝나고 대학교 근처로 이사를 할 때까지, 다시 보지 못했다. 소문은 여전히 무성하게 나 있지만, 어깨를 으쓱거리며 창문 너머로 새벽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신기하지만, 확실하게 사람이었으니까. 언젠가 우연히 다시 마주칠 수도 있지 않을까?’

 

새삼 희미하게 떠오르는 얼굴에도 미소만은 뚜렷하다는 느낌에 쿡- 하고 작게 웃었다. 동쪽 하늘에 새빨갛게 떠오르는 태양이 너무도 아름답다. 그 태양을 마주보며 눈이 다 감길 만큼 미소했다.

 

오늘 하루도 시작이다. 반짝이며 빛나는 꿈을 위해 달려갈 하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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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노력없이는 얻어지는 것도 없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늘 행복할 수만은 없습니다.

아프고 괴로운 일들도 분명 있기 마련입니다.

처음에는 죽을 것처럼 아프지만 어느 순간 아픔에도 면역력이 생기나봅니다.

두 번, 세 번...여러번 똑같이 아프진 않습니다.

점점 무뎌지고 아픔을 대처할 수 있는 혼자만의 노하우나 방법들이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그렇게 한층 성숙해지고, 대처능력 또한 생기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살아가는 인생이 처음이기 때문에 아프면 아픈대로 견디고 버텨내야 합니다.

단지 똑같은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뿐입니다.

 

노력하지 않고, 애쓰지 않으면서

어떻게 내 인생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걸까요?

나이를 먹으면서 성숙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도 아픔을 견디고 버텨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아픔과 슬픔을 또다시 받지 않기 위해

우리들은 더 많이 애쓰고 노력하는 것이겠지요.

 

나중에 내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행복한 기억들만 떠올릴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우리들은 행복해지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절대 노력없이는 얻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오늘도 노력하는 나와 당신이 되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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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질문

02. 유명세

* 이글의 소재가 되는 마법의 질문은 실제로 1997년 아서 아론 박사의 실험 자료입니다.

단, 글의 내용은 저의 창작물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여기저기 사방으로 허리를 굽히며 꾸벅- 인사를 하고, 매니저 형을 따라 차에 올라타면 몸은 이미 알아서 늘어져버린다.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힘없이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불타오르는 금요일을 외치며 즐거운 얼굴로 돌아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또래다.

 

“좋겠다.”

 

무심결에 나온 중얼거림에 매니저 형이 쓰게 웃는다. 그래. 나도 안다. 배부른 소리라는 걸. 하지만 진심이다. 원 없이 사랑받고, 원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그래도 난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저들이 부럽다. 고개를 돌려 머리를 뒤로 기대고 눈을 감아버렸다.

 

나직한 자동차 소음만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렇게나 하고 싶은 일이었는데, 그렇게나 원하던 일이었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아니. 왜 점점 행복해지지 못할까? 왜 점점 더 힘들고, 점점 더 외롭고, 점점 더 후회가 될까?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루었는데, 어째서 이렇게나 행복하지 못 할까?

 

“신후야. 다 왔다.”

 

어깨를 흔드는 기척에 눈을 뜨고 차에서 내렸다. 형은 차 뒤로 돌아가 트렁크를 열었다. 가득 찬 쇼핑백 5~6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둘이서 양손에 나눠들고 걸음을 옮겼다. 현관문을 열고 들고 온 쇼핑백을 내려놓은 형은 조금 걱정스레 한번 훑어보았다.

 

“뜯을 때 조심하고, 푹 쉬어라.”

 

“네. 형도 조심해서 가요.”

 

문이 닫히고 혼자 남은 집은 고요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욕실로 들어가 물을 틀었다. 옷을 벗어두고 적당히 따듯한 물에 몸을 담갔다. 피식- 우스웠다. 쇼핑백 안에 든 건 전부 팬레터와 선물인데. 뜯을 때 조심하라는 말을 들어야 하다니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 웃음이 난다.

 

“하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고,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고,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사람이란, 인간이란, 누군가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만큼 누군가를 미워하고 시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주 당연한 것임에도 난 날이 갈수록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필시, 저 중에도 선물 아닌 선물이 섞여 있겠지.’

 

악플과 소문과 안티와 스토커에게 시달려야하는, 적어도 내가 바란 건 이런 생활은 아니었다. 난 그저 같이 서고 싶었고, 같이 하고 싶었는데, 왜 나만 남았을까? 넌 어디로 가버리고 나만 남았을까? 내가 인정받고 싶은 사람은 너 하나였는데, 넌 왜 내 옆에 없는 걸까?

 

멍하니 욕조에 늘어져 하얀 타일이 가득한 천장을 바라보았다.

 

- 똑. 똑.

 

샤워기에서 하나 둘 물방울이 떨어졌다. 규칙적인 물방울 소리와 옅게 퍼져나가는 동심원, 천장의 새하얀 타일들, 그대로 있다가는 욕조에서 잠들어버릴 것 같았다. 머리를 흔들어 몽롱한 정신을 깨우고 욕실을 나왔다. 대충 물기를 닦고 침실로 가려는 걸음을 멈췄다.

 

- 툭.

 

현관에 놓아둔 쇼핑백 하나가 쓰러졌다. 한숨을 쉬고 걸음을 돌렸다. 쓰러진 쇼핑백을 세우고, 방바닥으로 쏟아진 자잘한 선물상자와 편지봉투를 주워 담았다. 손에 뭉쳐 잡은 봉투 중에 하나가 미끄러져 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선명한 보라색 봉투다. 물끄러미 바라보다, 집어 들었다.

 

“뭐야?”

 

발신자는 비어있고, 수신자에는 주소도 없이 내 이름만 적혀있다. 딱 봐도 수상하다. 분명히 또 이상한 혈서나, 욕지거리나, 괴상한 그런 게 들어있겠지. 그런 생각과 달리, 풀칠도 안 된 봉투 안에서 나온 건 새하얀 종이였다.

 

마법의 질문

유명해지고 싶은가요? 어떤 식으로 유명해지고 싶은가요?

 

“행운의 편지도 아니고, 이게 뭐야?”

 

이건 또 무슨 신종 장난인가 싶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안 나온다. 약 올리는 건가? 목을 타고 울컥하는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은 내 상황에서는 너무나 유치하고 악질적인 장난이었다. 점점 늘어가는 헛소문에, 안티에, 악플에, 있던 팬마저 잃어가고 있는 나한테는 말이다.

 

“유명해지고 싶으냐고?”

 

괜히 그 사람하고 얽히는 게 아니었다. 무반응이 답이라며 입 다무는 게 아니었다.

 

‘이미 늦어버렸지만.’

 

처음으로 터진 스캔들에 그동안 쌓아온 게 이리 쉽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허무하게 말이야.’

 

그래서 더 보고 싶다. 다른 누가 뭐라고 하든지 날 믿어줄 네가 너무도 보고 싶다.

 

“주소가 없다는 건 직접 갖다 넣은 거겠지?”

 

봉투와 종이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 펜을 꺼냈다. 내가 적은 답을 보면, 이걸 보낸 사람은 뭐라고 생각할까? 쓴웃음이 나온다. 내가 이걸 왜 적고 있나 싶으면서도, 적어도 누군가는 알아주었으면 싶다. 억울한 헛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디선가 내 소식을 듣고 있을 너만은 알아주면 좋겠다.

 

* * *

 

“내려가고 있어요. 이제 1층이에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통화를 종료했다. 문을 나서기 전, 잠깐 걸음을 멈추고 우편함에 봉투를 넣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가져갈 것이다. 어제와 같은 곳, 내 스케줄을 알고 있다면, 어디선가 날 보고 있을 테니 말이다.

 

‘반응이 궁금하지만, 확인할 수는 없겠지. 아쉽네.’

 

문을 나와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 * *

 

어두운 밤. 건물의 모든 불이 꺼지고, 문이 잠기고, 셔터가 내려갔다. 달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푸른 어둠속에 한줄기 보랏빛 바람이 분다. 그 바람에 실려 우편함 밖으로 빠져나온 봉투가 열리고, 새하얀 종이가 환하게 빛을 낸다. 질문 아래 적힌 답이 어둠보다 더 진하고 선명하게 도드라진다.

 

- 네. 거짓된 모습이 아닌 진실된 모습으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

 

종이가 봉투 안으로 들어가고, 한줄기 푸르스름한 보랏빛이 봉투를 휘감는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 훗. 답변 접수. 확인했습니다. -

 

보랏빛 봉투는 어둠속에서 소리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 *

 

2016년 6월 26일. 신문과 잡지, 온라인이 온통 하나의 기사로 화제가 되고 있다.

 

<< K양과 S군의 진실 게임 >>

 

어제 오후 S군은 작년 연말부터 계속해서 열애설과 결별설이 오가며 구설수에 오르던 K양과 스캔들에 관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S군은 K양과의 열애설은 근거 없는 소문이며, 서로 사적인 친분도 없는 사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스캔들을 이용한 노이즈 마케팅을 노린 양측 소속사의 제재 아래, 두 당사자는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게 된 거라며, S군 자신은 물론이고 K양도 피해자라고 밝혔다. 이에 S군의 입장표명에 소속사는 그런 적이 없다고 입장을 밝힌 반면, K양측의 소속사는 아직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S군은 소속사와의 계약이 만료되는 오늘 이후, 휴식기를 가진 뒤 홀로서기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S군의 진실 고백에 팬들은 차라리 잘됐다고 홀가분하게 벗어나라는 응원이 대다수이며, 안티들의 경우는 이것도 짜고 치는 거 아니냐며 믿지 않는 분위기이다. 소속사와 좋지 않게 끝낸 S군의 향후 행방이 걱정되는 가운데...[하략].

 

* * *

 

그 한번의 인터뷰에서 모든 걸 털어놓고, 다음날 바로 가방을 챙겨 여행을 떠났다. 그동안 숨 돌릴 틈도 없었던 생활에서 벗어나, 가보고 싶었던 곳,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며, 혼자서 바람처럼, 쿡-. 그래. 유치하지만, 바람처럼 그렇게 떠돌았다. 이국적인 거리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 섞여 길을 걸었다.

 

일상적인 거리와 일상적인 풍경과 그 속에서 일상적으로 오가는 사람들 속에 섞여, 목적지 없이 돌아다녔다. 가끔은 너와 함께 왔다면, 내 옆에 네가 있다면, 네가 그리워지는 만큼, 더 많은 걸 보고, 더 많은 걸 들었다. 그렇게 1년을 떠돌며, 소문에서, 안티에서, 악플에서 벗어나 5년만의 자유를 만끽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공항에 네가 마중 나와 있었다.

 

그 많은 인파속에서 단번에 널 찾을 수 있었다.

 

그대로 달려가 널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 너무 보고 싶었어.”

 

네 손이 내 등을 토닥인다. 네가 울먹이며 미소한다.

 

“나도 네가 보고 싶었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네가 다시 내게 와주었다. 이제는 절대 놓지 않아. 너와 멀어지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거다. 네 옆에서, 네 손을 잡고, 너와 함께 걸으며, 너와 함께 할 테다. 다른 그 누구보다 너만 날 알아주고, 날 믿어주고, 날 바라봐주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세상 모두보다 너 하나면 충분하니까.

 

* * *

 

창밖에는 새하얀 눈이 내리고, 창가에서는 네가 건반을 치며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네 눈은 그때처럼 반짝였고, 너의 허밍[humming]은 여전히 간지럽다. 따뜻하게 데운 우유가 든 컵을 들고 옆에 앉았다.

 

“어때?”

 

양손으로 머그컵을 받아들며, 생긋- 웃는다.

 

“좋아. 봄날에 내리는 눈송이 같은 느낌?”

 

“그래서. 가사는 떠오르십니까?”

 

“흠...좀 기다려 주시죠?”

 

결국 서로 마주보며 웃고 만다. 내가 만든 멜로디에 네가 가사를 붙이고, 그걸 함께 부르고, 나와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일상. 비록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더 이상 거짓된 내 모습에 시달리지 않고, 우리가 함께한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만으로 나에게는 이미 충분하다.

 

세상 모두가 아닌, 너 하나면 돼.

 

마법의 질문

유명해지고 싶은가요? 어떤 식으로 유명해지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