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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雜

커튼이 걷힌 뒤에

커튼이 걷힌 뒤에...

 

공연이 끝나고 우렁찬 박수소리가 넓은 홀을 메우며 높게 울려 퍼진다. 손에 손을 잡고 줄지어선 배우들은 밝게 미소하며 인사하고, 금빛 술장식이 달린 붉은 버튼이 촤르륵- 내려온다. 커튼 뒤로 배우들이 물러가고 관객들마저 떠난 조용한 공연장, 어디선가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붉은 커튼 뒤, 적막이 내려앉은 무대 위에서 한 소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직 파릇하고 수줍은 소녀의 미성은 실바람에 몸을 맡긴 꽃잎처럼 청초하다. 부끄러운 듯 발그레한 볼에 살며시 말려 올라간 입꼬리는 순수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설레임 가득한 손짓으로 눈짓으로 몰입한 소녀의 모습.

 

무대 한켠에서 소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묵직하게 침체된다. 조금씩 힘이 들어간 손은 주먹을 쥐며 바르르- 떨린다. 소녀의 감정이, 목소리가, 멜로디가 고조될수록 그 연기를 감상하는 눈빛은 더욱 무거워진다. 마침내 소녀의 독무대가 끝나고 무대 아래로 내려가는 그 작고 여린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시선은 그녀의 여운의 쫓는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한달, 두달, 석달, 넉달. 커튼이 내려오면 항상 소녀가 무대에 오른다. 그런 소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김없이 나타난다. 때로는 한쌍, 때로는 두쌍, 온 마음을 쏟아 노래하고 열정적으로 연기하는 소녀와 지켜보는 시선은 한줌의 소통도 없이 몇년의 세월을 거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의 인사와 관객들의 환호 속에서 붉은 커튼이 무대 위로 드리워진다. 그리고 조용해진 무대 위로 올라온 소녀는 언제나처럼 커튼의 뒤에서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노래, 그녀에게 가장 아름다운 노래의 멜로디를 풀어낸다.

 

수줍음을 담아 잔잔하게 시작한 멜로디는 투명한 연못 위에 가느다란 실비가 사뿐사뿐 춤을 추듯이 고조되며 스며든다. 소녀의 얼굴에는 장밋빛 홍조가 피어나고 눈망울은 꿈을 꾸며 젖어든다. 손끝 하나하나 멜로디를 따라 취한 소녀는 무대 위의 커튼이 올라가는 것을 알지 못했다.

 

바람을 타고 가벼이 날아올라 구름에 닿는 감각, 이 세상의 것이라 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하고 향기로우며 녹아내릴 듯이 부드러운 속삭임, 공연장을 떠나지 않았던 관객들은 넋을 잃고 말았다.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천여 명의 관객에 공연장에는 소녀의 노래만이 울린다.

 

소녀의 노래가 끝나고 그녀가 무대를 내려가려는 순간 하나의 박수소리가 터졌다. 소녀가 놀라서 걸음을 멈춘 순간 두 번째 박수가 시작되고, 곧 쏟아지는 박수소리에 공연장의 천장이 뚫어질 것 같다. 소녀는 어깨를 움츠리며 정신없이 두리번거렸다. 그런 그녀에게 한명의 중년 사내와 부인이 다가온다.

 

“놀랄 것 없단다. 우리 딸.”

 

“다나, 이건 널 위한 박수란다.”

 

부인은 놀란 다나를 품에 안고 다독였으며, 이 극단의 단장이자 최고의 배우인 사내는 관객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했다. 박수와 환호가 잦아들고 사내는 벅찬 감정을 차분히 자제하며 입을 열었다.

 

“많이 놀라셨음에도 끝까지 들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아낌없이 보여주신 환호에 한 번 더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 앞에 이렇게 소개할 수 있어서 더없는 영광입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여기 저의 소중한 딸, 다나 브라이트입니다.”

 

부인은 품안의 딸을 부착하며 함께 무대 앞으로 나왔다. 아름다운 백금발이 무대 조명 아래 반짝이고, 짙은 벽안은 초점이 맞지 않는다. 피부는 여기저기 얽어서 거뭇거뭇하며, 움츠린 어깨 너머로 굽어있는 등에 양 다리는 길이가 맞지 않아 걸음이 비뚤하다.

 

오, 맙소사. 저 아이가 진정 저 두 사람의 딸이라니, 한탄과 한숨이 간간이 새어나온다. 소녀의 양 옆으로 서있는 그녀의 부모는 누가보아도 그림 같은 선남선녀다. 헌데 그런 두 사람의 딸이 곰보에 곱추이며 장님인 것이다. 다나의 고개가 아래로 쳐지고 눈시울이 붉어질 때에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정말 아름다운 노래였습니다. 다나 브라이트양, 내 생애 그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는 들은 적이 없을 만큼 가히 천사의 노래였습니다.”

 

노년의 신사는 온화한 미소와 진심어린 감동을 전하며 박수를 쳤다. 그에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동이 가시지 않은 눈빛으로 잔득 겁에 질린 소녀를 향해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게 일어난 파도가 번져나가듯 어느새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다.

 

“아름답습니다. 다나양.” “최고였소!” “정말 좋은 노래였어요.”

 

수많은 찬사가 소녀를 향해 다가간다. 소녀는 꿈만 같았다. 누군가 들어줄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아름답다는 말도 처음 들어보았다. 스스로의 모습을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예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노래도 멜로디도, 어머니의 것을 듣고 따라 부른 것이었기에 소녀에게 지금의 상황은 정말 꿈만 같았다.

 

“다나, 이리오렴. 같이 인사드리자구나.”

 

소녀는 주춤거리며 조심스레 부모의 손을 잡고 나란히 섰다. 소녀의 모친은 관객석을 향해 환하게 미소하며 말했다.

 

“다나, 웃으렴, 환하게. 넌 충분히 아름답단다.”

 

이른 아침 가장 먼저 맺힌 이슬처럼,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물방울로 채운 것 같은 벽안이 미소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아름다운 목소리가 청중을 향해 마음을 전한다. 노래가 아닌 인사로써...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기쁨에 떨려나오는 목소리에 박수와 환호는 공연장을 가득 메우며 맴돌고 세 사람은 깊숙이 허리를 숙여 그에 답한다. 커튼이 걷히고 한 소녀의 목소리가 아름다운 메아리가 되어 세상에 울려 퍼진 날이었다.

 

세상은 그녀의 멜로디에 감동하고 환호했다. 소녀는 아낌없는 찬사 속에서도 언제나 과거를 잊지 않았다. 곰보에 곱추인 모습 때문에 항상 커튼 뒤에서 남몰래 연습한 날들을 그리고 처음으로 박수와 환호를 받은 날을 평생간직하며 언제나 푸르른 벽안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보며 노래했다.

 

티 없이 순수한 벽안에 비친 세상처럼, 티 없이 맑은 멜로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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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愛

새와 소년

구중궁궐(九重宮闕) 깊고 깊은 황궁의 한곳에는 황제의 보물이 있다.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는 오로지 황제만이 들어갈 수 있는 그곳, 유리로 된 천장과 나무와 꽃이 우거진 정원의 한가운데, 황금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새장, 두꺼운 철문 너머로 퍼져 나오는 아름다운 노래, 사람들은 무지개빛 깃털의 아름다운 새일 거라고 말한다.

 

화창한 어느 날, 열 살 남짓 어린 황자는 고운 수가 놓인 비단 공을 가지고 놀다 데구르르 굴러가는 공을 따라 커다란 철문 앞에 멈춘다. 공이 툭- 철문에 부딪치고, 공을 주워 돌아서려는 황자의 귀에 고운 노래 소리가 들린다. 가사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홀릴 법하다.

 

어린 황자는 눈을 반짝이며 문을 밀었다. 지키는 이 하나 없는 무거운 철문이 어린 황자의 손길에 소리도 없이 열린다. 황자는 슬며시 벌어진 문틈으로 들어가고 그 등 뒤로 조용히 문이 닫히며 흔적을 감춘다. 장인이 만든 듯 섬세한 세공이 아름다운 새장에 새하얀 옷자락이 나풀거리며 깃털이 흩날린다.

 

“새?”

 

살포시 내뱉어진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황자, 그 까맣고 순진한 눈동자에 비친 건 햇살 같은 소녀다. 얇고 하얀 옷자락이 나부끼는 가녀린 몸에 포근한 햇살 같은 날개가 달린 소녀, 황자와 눈이 마주치며 노래가 멈춘다. 커다란 새장 안을 빙글빙글 맴돌며 내려선다.

 

황자는 공을 잡은 양손을 새장 속의 소녀에게 뻗는다. 공이 떨어지고, 소녀는 창살 안으로 내밀어진 손을 맞잡는다. 작고 어린 손, 처음으로 느껴보는 따스한 타인의 온기, 소녀는 양손으로 작은 소년의 손을 감싸 쥐며 미소한다. 그리고 다시금 들려오는 노래...

 

* * *

 

20번째 생일을 앞둔 황자는 늦은 밤, 거처를 나와 발소리를 죽이며 걸음을 옮긴다. 달빛 아래 늘어진 그림자를 장막 삼아 가장 은밀한 곳으로, 두꺼운 철문을 지나 그녀가 있는 곳에 들어선다. 가닥가닥 달빛이 새어드는 새장으로 다가가며, 황자는 한껏 기쁨을 담아 그녀를 부른다.

 

“가가(佳歌).”

 

황자의 애정 어린 부름에 가가는 고운 미소와 청아한 목소리로 화답한다. 손을 맞잡고, 다정히 눈을 맞추고, 황자의 손이 부드러이 그녀의 뺨을 매만지며 다짐하고 약속한다.

 

“이곳에서 꺼내줄게. 내 황제가 되는 날, 그 옆자리는 너와 함께 할 것이다. 그리하여 네가 자유로이 노래하며 날 수 있게, 꼭 약속하마.”

 

가가의 손을 소중히 잡고 황자는 굳은 약속을 말한다. 그녀는 그 마음이 고마워 달빛이 부끄러울 만큼, 별빛이 무색할 만큼, 곱고 고운 정성을 담아 노래한다. 그와 함께 푸른 하늘 아래를 자유로이 누릴 그날을 꿈꾸며 희망을 담은 노래가 밤하늘에 닿을 마냥 울린다.

 

* * *

 

이른 아침부터 궐 안은 금빛과 붉은 빛의 물결이 일렁인다. 궁의 대전 앞에는 문무백관(文武百官)이 홍색과 청색의 예복을 갖추어 입고 열을 맞추어 서있다. 높은 단상에서는 태사가 양손으로 보석으로 장식된 왕관을 양손으로 받쳐 들고 무릎을 꿇은 황태자의 머리에 씌운다.

 

황제가 된 젊은 청년이 몸을 곧게 세우며 일어서고, 문무백관은 입을 모아 소리를 높인다. 황제 폐하 만세만세 만만세, 옥체보존 만수무강 하시옵소서- 한결같은 함성 속에서 황제와 황자의 눈빛이 맞부딪친다. 황자는 태연히 시선을 내리며 고개를 조아린다.

 

늦은 밤, 환하게 불을 밝힌 궁은 향긋한 술 냄새와 흥겨운 음악이 넘실대고 현란한 춤사위가 벌어진다. 술잔이 오가고 기름진 음식이 몇 번이고 채워지며 연회가 한창 무르익을 때에 달빛과 불빛을 받으며 황금빛 거대한 새장이 연회장으로 들어선다. 황제는 술잔을 내려놓고 왼손을 검대에 올리며 일어선다.

 

“자, 보시오! 저게 바로 그 요물이오. 나의 아비를 홀리고 어미를 죽게 만든 그 요물이 바로 저 새란 말이오! 고작 저 새 한 마리 때문에 현명한 황제가 사리분별을 잃고 무능한 황제로 추락한 것이오!”

 

황제는 검을 뽑고 새장으로 다가가고, 대신들은 입을 다문 채 그런 황제와 새장 속의 새를 외면한다. 한때는 영물이라 칭해지며 대를 이어 내려온 보물, 허나 전 황제의 과오(過誤)로 씻을 수 없는 불명예가 되어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어미는 죽고 남아있는 새끼마저 죽을 위기이다.

 

가가는 분기탱천하여 다가오는 황제의 모습에 창백한 안색으로 벌벌 떨며 황자의 모습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그런 가가의 모습에 황제는 가소로운 웃음을 흘리며 참을 수 없는 노기로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는다.

 

“왜? 누굴 찾는 게냐? 오호라~ 그런 게냐? 고작 새 주제에 감히 누굴 찾는 게냔 말이다!”

 

- 채앵! 차라락.

 

날카로운 금속이 스치고, 새장의 잠금쇠가 풀려 떨어진다. 뒤이어 연회장의 뒤편에서 소란스러운 고함과 발소리가 들리고, 곳곳에 멍이 들고 핏물이 앉은 몸으로 황자가 연회장으로 뛰어든다.

 

“멈추십시오. 형님! 크흑.”

 

뒤따라온 병사들이 황자를 붙잡아 무릎을 꿇리고, 가가는 두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몸을 움츠린다. 황자는 그런 가가의 모습을 한번 바라보고 황제를 올려다보며 간구(干求)한다.

 

“부디 목숨만, 그녀의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제발, 목숨만은...”

 

“하! 지금 무어라했느냐? 그녀? 그녀라고?!”

 

황제는 뚜벅, 뚜벅 아우의 앞으로 걸어가 검 끝으로 새장 안을 가리킨다.

 

“네 눈에는 저것이 대체 어찌 보이는 게냐? 너 마저 홀린 게냐?! 반란을 일으킨 이유가 저것이냔 말이다!”

 

아우를 내려다보는 황제의 눈에서도, 형님을 올려다보는 황자의 눈에서도 눈물이 한가닥 흘러내린다. 황자는 고개를 숙여 이마를 땅에 대고 다시 한 번 간절히 청한다.

 

“부디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폐하.”

 

황제는 그런 아우의 모습을 더없이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바라보다 거칠게 몸을 돌려 새장으로 다가갔다. 이미 잠금쇠가 풀린 새장의 입구를 열어젖히고 가가를 끌어내 내동댕이친다.

 

“그래, 그럼 어디 한번 날아 보거라. 그 날개로 어디 한번 날아서 도망가 보아라!”

 

가가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황자를 바라본다. 황자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향해 끄덕인다. 가라고, 이곳에서 떠나라고, 저 멀리 안전한 곳으로 훨훨- 날아가라고, 애달픈 미소를 짓는다.

 

- 펄럭. 푸득.

 

가가는 생애 처음으로 새장이 아닌 넓고 넓은 하늘을 향해, 새까만 밤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천천히 조금씩 하늘로 떠오르며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다 어디로 갈지 모른 채 제자리를 맴돈다. 아니, 차마 그를 두고 갈 수가 없어 제자리를 맴돈다.

 

“가! 가거라, 어서!”

 

황자는 목이 터져라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치고, 황제는 병사가 메고 있는 활과 화살을 뺏어 쏘아 올린다. 가가는 매섭게 날아오는 화살에 놀라며 푸득거리다 마지못해 멀리 날개짓을 한다. 멀리- 멀리- 어두운 밤하늘을 크고 아름다운 한 마리의 새가 날아간다.

 

달빛에 반짝이는 눈물을 떨구며, 애달프고 구슬픈 노래를 울리며 그렇게 날아간다.

 

* * *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계절이 바뀌고 강산이 바뀌고, 황자가 별궁에 유폐된 지 50년이 되어가는 해. 고즈넉한 늦가을 밤, 풀벌레 우는 소리를 벗 삼아 마음을 달래는 황자의 귀에 익숙한 노래가 흘러든다. 황자의 눈에 아련함이 떠오르고 입가에 눈물 젖은 미소가 어린다.

 

“가가.”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는 사뿐히 내려와 황자의 품에 안긴다. 어린 소년이, 젊은 청년이, 이제 노년이 된 그는 눈을 감으며 품안의 그녀를 살며시 감싸 안는다. 그의 귓가에 은은한 노래가 스며들고 그 노래는 밤이 새도록 이어지다 아침 동이 틀 때에 멈춘다.

 

이른 아침, 황자를 깨우러 온 시동은 별궁 문턱을 넘자마자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별궁의 입구에, 나지막한 계단에, 노년의 황자가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고 기둥에 기대어 앉아있어서, 그의 무릎에 생전 처음 보는 크고 아름다운 새가 엎드려있어서, 그 새하얀 깃털에 반사되는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그 광경이 너무도 평온하고 황홀하여 시동은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며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