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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와 함께 하는 가을의 바삭함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1.10.24. 목 맑음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이름 - 이슬

슬이는 혼자서 손을 허우적거리고 이불을 발로 차면서 20분 정도를 놀더니 하품을 했다.

졸리운가 보다. 엄마를 보면서 안아 달라고 잠투정을 한다.

이제 슬이는 이불을 덮어주면 발로 차고 옷소매를 입에 물고 빨면서 노는구나.

엄마가 딸랑이를 손에 쥐어주니 그것도 입에 가져가 빠는구나.

 

지금 슬이는 엄마 무릎에서 두 눈을 감았다 떴다 한다.

엄마가 시를 (이해인 님) 읽어주니 엄마를 똑바로 쳐다본다.

두 귀를 쫑긋 새우는 것 같기도 하다. (민들레의 영토)

 

슬이는 푹 자고 난 아침에 엄마가 슬이를 보면서 다리를 만져주며 노래를 불러주면 기쁜지 큰 소리로 웃기도 하고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낸단다. 엄마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가 보다고 엄마는 생각한단다.

 

연신 입을 벌려 웃는 네 모습 너무나 예쁘다.

그렇게 한 20,30분을 노래 부르고 나면 엄마 목도 아프고 슬이도 싫증이 나는 것 같아 엄마는 슬이를 안아준단다.

 

슬이는 엄마 품에서 두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입을 벌리고 오물오물거린다. 배냇짓을 한다.

입을 벌려 웃기도 하고 양 미간을 찡그리며 아픈 표정도 짓고 무엇이 슬픈지 흐느끼기도 한다.

 

이젠 엄마품에 안긴 슬이가 제법 무겁다.

슬이 속눈썹이 처음에는 작고 촉촉하게 젖어 잘 보이지 않더니 두 눈 감은 것을 보니 많이 자랐구나.

아빠 속눈썹을 닮아 길고 예뻤으면 한다.

 

2016.10.24 월요일 날씨 바람이 불지만 맑은 날.

 

백수 생활을 하면서 좋은 점은 시간적 여유가 많아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백수생활을 하면서 글을 못 올리고 있다. 어찌나 뭉그적+게으름이 심한지 내가 나에게 놀랄 지경.)

 

요즘 책을 읽을 때면 따로 찾는 정자가 있다.

이 정자에서 책을 읽으면 내가 꼭 신선이 된 것 같아 풍류를 한껏 즐기며 풍경과 여유를 누린다. (누려~)

 

 

8월에는 지긋지긋한 폭염이 기승을 부려 괴롭게 했는데 이제는 제법 선선하다 못해 스산한 느낌이다. 이 정자를 가는 길에 나는 가을이 완연하게 다가왔음을 느낀다.

 

정자를 가는 길은 해가 뜨겁지 않은 시간에 집을 나와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짧은 다리를 건너, 바닥이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지나, 보라색 흰색 도라지 꽃밭을 넘어, 벚꽃나무가 양옆으로 가득한 길을 쭈욱- 걷다 보면 내가 책을 읽는 정자가 나온다.

 

봄에는 핑크 빛 연한 벚꽃들이 흩날리고 여름에는 푸르고 파란 싱그러운 잎을 보다가 이젠 바닥에 떨어진 낙엽 잎을 보니 가을이 왔구나, 했다.

 

정자 가는길 벚꽃나무 길

 

정자에 가는 길 늘어진 벚꽃나무 길을 걸을 때 나는 퍽- 즐겁다. 바닥에 흩뿌려진 총 천연 갈색 잎을 밟으면 아침에 가끔 먹는 씨리얼처럼 바삭거린다. 그 바삭 바스락 소리가 흥겨워 이리저리 밟으며 걸으면 길었던 10분이 금방 간다.

 

책 한 권, 물한병 달랑 들고 정자에 도착하면 오자마자 벌러덩 누워 하늘을 보다가 책을 읽고 또 졸음이 오면 잠을 자는 그야말로 이곳은 무릉도원, 유토피아가 따로 없고 나의 마음은 유유자적, 물아일체가 되어 한껏 다가온 가을의 바삭함을 온몸으로 느낀다.

 

보통 이상태ㅋㅋㅋㅋ(유유자적, 물아일체) 저 지금 취직했어요. 11/1일부터 일하기로 했습니다 ㅋㅋ

 

오늘은 엄마와 함께 정자를 찾아왔다. 짧은 다리를 건너 양쪽으로 늘어선 벚꽃나무를 지나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메뚜기를 보고, 벼베기가 한창 진행 중인 논을 보면서 그 길을 걸었다.

 

정자에 도착하니 엄마가 석양, 김인배 씨의 노래를 틀었다. 알록달록 고추장을 한껏 온몸에 바른 나뭇잎을 정자에 누워 바라봤다. 시를 들려줄 테니 제목을 맞춰보라고 하고는 엄마에게 석양 노래에 맞춰 시를 읽어드렸다.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 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서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

활활 타다 남은 저녁노을에

저렇게 긴 강이 흐른다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여위기 전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란에 날려 보낼

기쁨의 꽃시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 싶은 얼굴이여

 

-민들레의 영토, 이해인

 

1991년 오늘 엄마가 나에게 읽어 줬던 시를 

2016년 오늘 내가 엄마에게 들려준다.

그렇게 완연하게 내게 다가온 가을은 내 마음을 바삭 바스락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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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그녀의 꽃자리

<그녀의 꽃자리>     앉은 자리가 꽃자리 이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이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 이니라

 

내가 좋아하는 구상 시인의 <꽃자리>를 한창 읊조리며 나의 처지, 나의 자리를 돌아보던 즈음 봄바람에 벚꽃이 흩날리듯 흐드러지게 눈발이 날리던 날 한바탕 소나기를 맞고서야 정신을 차린 중년의 여인을 책을 통해 만났다.

 

그녀는 남들보다 일찍 시작한 사회생활에서 어린 나이에 천생연분을 만나 아주 잠깐 아가씨 시절을 누려보곤 바로 결혼이라는 굴레에 묶여 젖소 목장을 하며 살아간다.

 

축사에서 소똥을 치워가며 자신과 같이 배운 것도 아는 것도 부족한 남편과 함께 그냥저냥 살아가다 가끔은 미혼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홀가분히 청바지 입고 생맥주 마시던 시절을 막연히 그리워만 하던 어느 날

딸아이가 켜놓은 컴퓨터 앞에 앉아 우연찮게 낯선 남자랑 채팅을 하게 된다.

 

무조건 본인의 잣대로만 재단하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우겨대며 사사건건 아내를 무시하는 남편에게 진저리를 치다 나긋하고 품위도 있어 보이고 무엇보다 자신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직업이 의사라는 남자를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 것 같다며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기에 이르고 핸드폰이 없는 그녀는 머뭇거리다 상대방이 모니터에서 사라져 버리면 어쩌나 싶어 조바심으로 얼떨결에 남편의 번호를 알려준다.

 

미리 자신의 핸드폰을 장만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다 행여나 폰이 울릴까 싶어서 남편에게 건네지도 못하고 자모회장에게서 연락이 올 거라며 한사코 남편에게 돌려주기를 거부한다.

 

식사 준비를 할 때면 바가지로 살짝 덮어서 싱크대에 올려놓고 축사 청소를 할 때는 트레이닝 바지 주머니에 넣고는 이제나저제나 벨이 울리기만을 학수고대한다.

 

그렇게 하루에도 수십 번 혼자서 모래성을 쌓다가 부수고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느닷없이 찾아온 사랑의 감정에 중년의 여인은 그간 잊고 있었던 사랑의 달뜸이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이런 마음을 남편이 알아차릴까 겁도 나고 한 편 남편에 대한 미안함에 이런 경우 남편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싶어 남편의 의중을 살짝 떠보았으나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골 빈 것들이 정신 나간 짓거리를 하는 거지 정신 온전한 인간들은 하라고 해도 안 할 것이다”라며 그런 걸 묻는 그녀를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한다.

그런 생각이 어디 그녀 남편만의 생각이겠는가.

 

다수의 보편적이고 지극히 정상적인 생각이겠지만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 하지 않던가.

그녀는 남편에게 들켜 다리몽둥이가 부러진다고 해도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며 다리에 깁스를 하고서라도 만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이미 사랑의 달콤함을 알아버린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어 남편에게 자모회원들을 만나 밥 먹고 노래방까지 들러 늦을 것 같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채팅남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선다.

그러나 막상 만난 채팅 남은 그녀가 매일 밤 그려보던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

 

의사는 물론 아니거니와 건축현장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해 그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를 절며 치료를 계속해야만 하는 사고와 함께 꿈도 잃어버린 서른을 훌쩍 넘겨 마흔이 다 된 노총각일 뿐이었다.

 

처음부터 장난칠 생각은 아니었다며 치료차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채팅을 하게 됐고 자신의 어렸을 때 희망이 하얀 가운을 입고 회전의자에 앉아 청진기를 목에 걸고 환자를 돌보는 것이었다며 하루 종일 젖소 돌보고 축사 청소하다 지쳐있을 때 잠시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고 싶었다고...

 

진심으로 사죄하는 그를 뒤로하고 그녀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오늘도 여전히 굳어버린 젖소 똥을 삽으로 박박 긁고 있던 땀범벅인 된 남편의 가슴을 파고들며 소리 없이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그리고 진동으로 해놓았던 핸드폰의 벨소리를 최대로 높여선 남편에게 건넨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일상의 무료를 겪다가 그렇게 한바탕 소나기를 맞은 그녀는 구름 걷혀 다시 찬란히 빛을 내는 햇빛이 그제야 고마움으로 다가오고 늘 상 받고 있어서 잠시 잊고 있었던 남편의 넉넉한 품을 감사하며 소똥 냄새나는 축사가, 건강한 땀방울을 흘리는 남편 옆이, 늘 그 자리가 가시방석처럼 느껴져 벗어나고만 싶어 하던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임을 알게 된다.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의 고마움을 쉽게 잊고 내게 없는 것, 내게 부족하다 싶은 것에 얽매어 가끔은 자신을 비관하고 한탄하며 산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암이 남과 비교하는 “비교암”이라 하지 않던가.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만족하는 삶이 최고의 삶이 아닐까 해서 올려다본 가을 하늘에선 막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 낙엽들이 어느새 내 주위를 갈색 꽃밭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네가 서 있는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 이니라”

어디선가 바람 타고 환청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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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나이가 들어도 힘 안 들이고 먹는 건 어려운 것 같아.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1.9.12. 목 맑음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이름 - 이슬

슬이는 최초로 작은 엄마가 사다준 딸랑이를 손에 잡고서 간간히 몇 번 딸랑거렸다.

고사리 손으로 헐겁게 손에 딸랑이를 잡고 입 쪽으로 가져가니 가볍게 소리가 났다.

네 모습이 얼마나 예뻤던지 엄만 꼭 깨물어 주고 싶었단다.

이내 슬이는 피곤한지 손을 펴면서 딸랑이를 떨어뜨렸고 다시 손에 쥐어주니 싫어했단다.

 

저녁때 출생 신고를 하고 왔다는 아빠에게 얘기하니 흐뭇해하신다.

이모는 날이 갈수록 우리 슬이가 뽀얗게 되면서 이뻐진다고 하셨다.

엄마가 주는 우유 많이 먹고 어서어서 자라거라.

 

슬이 입술에서 한 꺼풀 껍질이 벗겨졌다.

젖꼭지를 빠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서 크는 동안 몇 번을 벗겨진다고 이모는 말씀하셨다.

우유를 먹는 동안 먹고 나면 네 이마엔 땀이 송송 맺히고 온 머리는 땀으로 젖어 있구나.

 

네 모습에서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또 한모습을 본다.

본능적으로 빨아대는 네 모습을 보노라면 신기하다.

땀 흘리며 먹는 네 모습을 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힘 안 들이고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어서어서 크거라.

 

 

 

2016.09.09 금요일

 

백수가 된 지 9일 차.

부모님에 권유에 떠밀려 군청에서 열리는 작은 취업 박람회에 가게 되었다. 집과는 거리가 쫌 있지만 차를 타고 가기엔 가까운 거리여서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날도 이쯤이면 선선하겠다 싶어 정장은 아니지만 깔끔하게 옷을 입곤 집을 나왔다. 바람이 살랑살랑 머리칼을 건드렸다. 바람결에 시원 초록빛 잎을 흔들거리는 나무들이 파이팅을 하라고 네게 응원을 보내는 듯했다. 발걸음은 억지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무거웠지만 내가 백수가 되어 이렇게 집에서 놀게 된 건 내 탓이거니 하고 입을 앙 다물었다.

 

코엑스에서 열리는 박람회를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시골에서 열리는 취업 박람회는 박람회라고 하기엔 생각보다 많이 협소했다. 천막으로 칸을 나눈 곳에선 20여 개의 중소기업이 일렬로 줄지어 있었다. 면접관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기업 당 두 명씩 칸칸이 앉아 있었다.

 

이곳에 들어가기 전 나는 입구에서 잠시 발을 주춤거렸다. 입구엔 주변 학교 고등학생들이 잔뜩 있었고, 안쪽엔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어딜 둘러봐도  20대 후반인 내게 맞는 직장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이왕 온 김에 어떤 직업군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용기를 내서 입구에 발을 들였다.

 

초록색 조끼를 입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아주머니가 얼굴을 갸우뚱- 하시더니 "학생?" 이렇게 물음표를 붙이면서 물으셨다. 나는 작게 아뇨-,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아! 기업에서 나온 분이시구나!"라고 말하시며 손에 들고 있던 팸플릿을 내게 건네주려다가 도로 가져가셨다. 나는 또 작게 아닌데요-,했다. 그제야 아주머니는 멋쩍은 듯 팸플릿을 아무 말 없이 건넸다.

 

입장하자마자 왠지 모르게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 입장하는 그곳에서 엉거주춤 제대로 된 한발 자국을 떼지 못한 내가 손에 들게 된 팸플릿을 그 자리에서 열었다. 파란 팸플릿엔 참여한 기업 이름, 기업별 원하는 사람, 급여, 담당업무가 적혀있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20여 개의 기업들에 적혀있는 모든 업무를 눈으로 쭉- 훑고는 뒤를 돌아 그곳을 나왔다.

 

전 직장도 전전 직장도 서울에서 온라인 마케팅 일을 했던 내가 회계, 경리, 생산직 일을 보고 지레 겁을 먹어 박람회장을 나온 것이다. 시골 취업박람회에서 큰 기대를 한건 아니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냥 안 간다고 할걸.

서울에서 내려오지 말걸.

 

등등 후회가 가을바람처럼 불어왔다. 너무 일찍 집에 들어가면 한소리를 들을 것 같아 도서관에서 한 시간 정도 책을 읽고 집엘 들어갔다. 들고 간 이력서 그대로 가져온 나를 보고는 엄만 내게 절박함이 부족하다고 했다. 절박하지 않은 건 사실인데.. 절박하지 않으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 절박할수록 더더욱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 거리는데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또 깨닫는다.

불안하다, 불안타.

그렇지만 그 불안함 때문에 아무 일이나 하고 싶지 않은 내가 너무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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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작년에 받았던 커피나무는 잘 자라고 있다.

작년 4월 5일, 

어느덧 코끝에 연둣빛 향기의 싱그러움이, 살랑살랑 창 너머 파란 숨결이 불어왔던 날이었다. 조용하게 다가온 계절은 내 마음을 이상하게도 간질간질하게 했다. 나는 늘 어김없이 분주한 아침을 집 근처 한 카페에서 시작했다. 6개월을 매일 아침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사성이 부족한 나는 개미 목소리만한 소리로 "고맙습니다"를 속삭이듯 말하며 커피를 받았다. 계속 아침 7시에 봤던 내 얼굴을 기억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식목일'이라는 이달에 특별한 날이어서 인지는 몰라도 카페 언니(나보다 어려도 늘 언니)가 나에게 커피와 함께 작은 나무를 건넸다.

커피나무예요.

한 손엔 아메리카노와 또 한 손엔 작은 커피나무를 들고 카페를 나왔다. 나에게 딱히 의미가 없었던 '식목일'을 나는 그냥 지나가는 빨간 날이 아닌 날,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들고 나온 커피나무를 집안에 뒹굴 거리던 화분에 옮겨 심었고 가금 물을 주는 정도로만 나무를 돌보았다. 그렇게 겨울이 왔다.

 

 

 

 

날씨가 얼얼해지고 나서야 베란다에 키우던 커피나무를 거실로 옮겼고, 추위에 약한 커피나무만큼은 거실에서 월동을 시키게 되었다. 겨울을 잘 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거실이 꽤 따뜻한 편이라 멀쩡하게 잘 버텼던 것 같다. 겨울에 갓 거실에 옮길 때만 해도 잎이 푸르렀는데 거실에 옮기고 나서도 계속 하엽이 져서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 나무에 관심이 없었던 내가 커피나무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추위에 약한 게 나와 같아서, 아니면 사회에 막 나와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나와 처음으로 추운 겨울을 맞이한 이 작은 나무가 비슷해서 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커피나무가 계절에 따라 하엽이 졌다가 다시 괜찮아지는 것처럼, 
나에게도 다시 말랑한 봄이 오면 푸른 잎이 돋아나지 않을까, 
그렇게 나도 잘 자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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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나는 이기적으로 살기로 했다.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예전에 나랑 싸웠던 친구 이야기가 나왔다. 이름을 듣자마자 나는 아직도 화가 났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왜 싸웠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도.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싸우고, 화해를 했는데. 화해가 잘 안돼서 그냥 그 길로 인연이 끝나버린 사람들이 많다.

 

그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성격이 모났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잘못했던 일들도 있고, 친구가 잘못했던 일도 있고, 둘 다 잘못했던 일들도 있는데. 괜한 자존심으로 아니면 그냥 싫다는 이유들로 화해를 못했던 경우가 많았다.

 

나는 화가 나면 얼굴에 "나 화났어요"라고 쓰여 있었고, 몸짓이며 행동에 화남이 늘 묻어있었다. 나이 먹고 결혼 안 하면 남는 게 성격밖에 없다고 언니들이 이야기하곤 했는데, 날이 갈수록 성격이 독해지고, 이기적이여지는 것 같다. 예전에 시골 소녀였던 순둥이는 어디로 갔는지.

 

그래도 요즘은 나랑 안 맞는 사람이 있으면 싸우기보다는 그냥 돌아간다. 싸우면서 "내가 먼저 갈 거야!"라고 하기 보다는 그래 난 다른 길로 다른 사람이랑 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한다. 

 

쫌 굳이 트러블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달까?

 

 

그렇게 적당한 거리.

 

그 적당한 거리 때문에 완전하게 친한 사람이 없는 걸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인간관계는 늘 어려웠다. 

준만큼 돌려받을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건데, 나도 모르게 내가 이 정도를 이 친구에게 해줬으니 이 친구도 그 정도는 해주겠지?라고. 그런 기브 앤 테이크 사고방식이 아직도 내게 남아있다.

 

"중요시하는 가치가 항상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들어맞는 건 아니니, 그럼에도 맞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전혀 나와 다른 이와도 소통할 줄 알아야 하고, 내 의견과 다른 이의 생각이 맞지 않더라도 그렇게 함께 발전해 같이 가는 거라고. 조금은 참을 때도 있고, 양보를 해야 할 때도 있고, 너그러워져야 할 때도 있는 거라고. 그래서 둥글게 둥글게 모든 이들과 다치지 않게 지나가는 거라고. 

 

근데,

무작정 참고 싶지도 않고, 착해지고 싶지도 않다. 남들에게 해가 가지는 않지만 이기적이게 자신의 잇속을 다 채울 줄 아는 사람. 하지만 내 사람만큼은 제대로 챙길 줄 아는 사람. 마이웨이를 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옆에 있어주는 이들에겐 달달한 초코라떼같이 대하는 내가 되고 싶다.

 

조금은 모나지만 하고 싶은 말 다하고 후회하지 않는 쌓아두지 않고 바로바로 풀어버리는 그런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오늘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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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황금 레시피

집에서 김치를 받아왔다. 들고 오는 길에서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나는 김치를 송송 썰어 두고는 인터넷 검색창에 "김치찌개 황금 레시피"를 검색했다. 수 많은 블로그와 카페에 올라와 있는 황금 레시피들이 있었다.

 

그 중 나는 제일 위에 있는 것을 클릭했다. 상세한 설명 속에서 고기는 얼마나 볶아야 하는지 국물을 우려서 넣어야 맛있다는 내용과 함께 첨부된 친절한 김치찌개 사진을 보곤 바로 따라 만들기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황태머리, 무, 파뿌리, 다시마 등으로 육수를 내라고 적혀 있었다. 혼자녀의 집에는 황태머리는커녕 다시마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짜증은 났지만 완벽한 김치찌개를 위해 재료를 사러 다시 마트를 갔다. 육수재료를 산 뒤 집으로 돌아와 돼지고기, 김치, 두부, 파, 식초 한 큰 술, 고춧가루 한 큰 술도 준비했다. 준비에만 30분이 넘게 걸렸지만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맛있어 보이는 김치찌개를 위해서라고 나를 다독였다.

 

고기를 먼저 달달 볶고 잘 익은 우리 집 김치를 볶으면서 설탕 한 큰 술을 넣었다. (설탕이 잡내를 없애 준다고 했다.) 그 후에 황태머리, 무, 파뿌리, 다시마등을 넣고 만든 육수를 부어준 뒤 두부, 파 등 아까 준비해둔 재료를 넣고 30분을 푹 끓였다. 김치찌개가 끓여지는 동안 밥솥이 칙익치익- 거리며 밥을 만들어 냈다. 그 동안 나는 주변 정리를 하고, 상을 폈다. 오랜만에 집에서 혼자 먹는 정상적인 밥상에 기뻤다.

 

좁아터진 원룸에 김치찌개 냄새가 풀풀-났지만 행복했다. 김치찌개가 들어있는 냄비를 들어 상으로 옮겼다. 밥솥에서 윤기가 자르르 도는 밥을 꺼내 그릇에 담았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챙겼고, 자리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다.

 

그렇게 기다리던 황금 레시피 김치찌개. 그 맛은 정말 신기하게도 일반 한식집에서 파는 김치찌개의 맛이 났다.

 

그런데 웬걸 생각보다 맛이 별로 였다. 내가 원래 먹던 김치찌개는 당면과 버섯이 들어가 있었고 걸쭉하면서 깔끔한 맛이 강했는데, 이 황금 레시피 김치찌개는 맛은 있었지만 정말 집 김치찌개라기보다는 밖에서 먹는 김치찌개의 맛이 났다.

 

어.. 내가 원한 게 이게 아닌데.. 황금 레시피라고 했는데.

 

아무리 일반적인 황금 레시피 라고해도 모두의 입맛을 만족시킬 순 없는것 같다. 이 사람에게 정말 맛있는 음식이 다른 사람에게는 별로인 음식이 될수 있는 것처럼 각자가 가진 입맛이 다른 거니까.

 

어떻게 만들어야 제일 맛있고, 어떻게 만들어야 제일 완벽할 수 있는가를 고심하다가 검색을 통해 찾은 레시피였다. 그렇게 완벽한 김치찌개를 끓이기 위해서 애를 써서 없는 재료까지 구해서 만들었는데 그 황금 레시피 김치찌개는 영~ 내 입맛에 맞지않았다.

 

 

 

황금레시피처럼 요리에도 레시피가 있듯 내 삶에서도 늘 완벽한 공식이 있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공식을 찾으려 애를썼고, 일이든 사람관계에서든 내가 완벽해지길 원했다. 공부도 잘하고 일도 잘하고 사람들에게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예쁘고 모든 것이 준비가 되어있는 완벽한 나이길 바랐다.

 

그래서 일을 시작할 때도 완벽한 계획부터 세웠고, 나의 완벽한 인간관계를 위해서 화가나더라도 참고 넘어갔다. 하지만 그 완벽한 계획을 지키려다 보니 내몸은 늘 힘들었고, 그 완벽한 인간관계를 지키려다보니 내 마음은 돌덩이로 꽉 막혀있는 듯이 답답했다.

 

그렇게 '완벽'이라는 성에 갇혀 일에대해서는 앞으로는 한발자국도 나가질 못했다. 그렇게 '완벽'이라는 부담감에 모두에게 사랑받으려 애를썼다.

 

'음식에서도 삶속에서도 이 세상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황금 레시피는 없다.'

 

완벽을 기하려다가 다가온 기회를 놓쳐버릴 수 있고, 준비된 것이 없다며 시작부터 할 수 없다고 무너질 수도 있다. 아무리 완벽한 인간관계를 만들려 해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완벽을 쫒아가다가 그 완벽이라는 벽에 부딪혀 다음 단계를 넘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해서 우리는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닌듯 싶다.

김치찌개에 황태머리가 없어 스트레스를 받았던 나처럼, 오히려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불행해지지 않을까.

 

그저 자신의 입맛에 맞게 그렇게 내 삶을 조리해 나가는 것이 인생의 황금레시피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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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해

핸드폰 진동이 울렸고, 회사에서 무심히 컴퓨터를 보고 있던 나는 PC로 카톡을 읽었다. 중학교를 같이 다니던 친구였는데 작년에 한 번보고 1년 동안 못 보다가 연락이 온 것이었다.

 

"오~ 오랜만"

 

오늘 뭐하냐는 친구의 말에 퇴근 후에 딱히 할 일이 없던 나는 그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6시 땡- 하자마자 눈치를 보고 회사를 빠져나와 친구를 보러 갔다. 친구는 오늘 외근을 나와서 회사 강의를 듣고 일찍 끝날 것 같아 연락을 했다고 했다. 우리는 조용한 근처 초밥집을 들러 초밥이랑 사시미를 주문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어제 만난 것처럼 그렇게 수다를 떨었다.

 

예전엔 만나기만 하면 남자 이야기였는데, 시간이 흐르니 회사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됐다. 이런 게 힘들고, 나와 안 맞는 사람 때문에 괴롭고 일은 하기 싫고. 공부할 때가 좋았다고 학생 때가 행복했다고 웃으며 옛이야기 들을 꺼냈다. 술 한잔에 사는 게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풋내 나는 어른인양 서로의 푸념을 털어냈다.

 

"너는 얼마 받아?""어? 아~ 너는?"

 

자연스럽게 일에서 급여 이야기로 넘어갔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친구랑 나는 급여가 100만 원이나 차이가 났다. 뭔가 자존심이 상했다. 나도 모르게 너는 야근도 많고 주말 출근도 있고 하니까 힘들겠네~라고 친구에게 말하곤 나는 칼 퇴근에 일도 편하니까 그런 것 같다고, 나는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합리화를 했지만 액수 하나에 내가 평가되는 것 같고, 친구 앞에서 위축이 됐다. 열등감이 내 마음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면서 언제 만나도 즐겁고 좋았던 친구가 더 이상 만나기 싫어졌다.

 

나와 남을 자꾸 비교하면 안 되는 건데, 누구는 얼마를 받고 일하고, 몇 평에 사는지 그런 걸 묻고 나는 또 상처를 받았다. 나는 그렇게 받은 상처를 또다시 비교를 통해 회복하고자 했다. 난 그래도 이 정돈 아니잖아. 난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니니까. 남과 비교하면서. 하지만 남과 비교해서 찾은 행복은 얼마 가지 못하고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나면 또다시 불행해졌다. 분명히 나는 만족하고 충분히 행복한데, 나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면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졌다.

 

"어느 날 붉은 장미는 잎사귀 사이로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눈이 부시게 흰 백합을 보게 되었죠.

장미는 희고, 아름다운 백합을 보고 신에게 빌었어요.

 

신이시여! 저에게 이 핏빛이 아닌 청순하고 맑은, 저 흰 백합처럼 되게 해 주소서.

기도하면 할수록 자신의 핏빛이 더 못마땅해지고, 줄기마다에 돋은 가시들이 부끄럽기 시작했어요.

백합에 대한 부러움이 커져 장미는 점점 시들해 갔어요.

그 싱그럽던 입들도, 붉던 꽃잎도 어느새 생기를 잃어 볼품이 없어졌어요.

 

실의에 빠진 장미에게 신은 말했어요. 너는 나의 소중한 피로 만들었단다. 네 붉은 잎은 내가 사람들을 사랑한 증표요. 줄기에 돋은 가시는 내가 고통 속에서도 사람들을 사랑한 증표란다. 넌 누구보다 내 사랑을 잘 표현하고 있단다. 이 말을 들은 장미는 더 이상 백합의 희고 맑음을 부러워하지 않았답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준 자신만의 신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이라는 책을 보면, 행복의 조건 23가지가 나온다. 첫 번째가 “행복의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인데 백합은 백합이기에 더 아름답고, 장미는 붉은 잎과 가시를 가졌기에 더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백합도 붉은 장미의 모습을 보고 부러워했을 수도 있다.

 

안정된 일을 하고 있던 친구는 자신의 꿈을 쫒는 친구가 부러웠고, 꿈을 쫒는 친구는 안정된 직장을 가진 친구가 부러웠다는 말이 있듯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를 수 있다.

 

남보다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을 보면서 열등의식에 휩싸여 한심해 하기보다는 자신이 장점을 들여다 보고 내가 가진 것에서 더 노력할 수 있기를.

 

욕심 때문에 남과 비교를 하는 게 아닌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더 나은 미래의 나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 초점을 두기를.

 

계속해서 다른 이와 비교하며 비참해할지, 내가 가진 것에 행복해하며 더 발전해 갈지는 오롯이 내 선택에 달렸음을

나도 이젠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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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나쁜 일이여 올 테면 와라.

내 알람은 어두 컴컴한 방안에서 아침 8:11분에 어김없이 울린다. 평일은 6:43분, 주말은 8:11분. 이상하게도 나는 정시에 알람을 맞춰놓지 않는데 그 이유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그렇게 애매하고 또 애매한 시간에 알람이 늘 울린다.

그렇게 주말을 시작했다. 아침부터 목이 칼칼했고 몸이 무거워 어제 밤에 떠놓은 자리끼 한잔을 벌컥벌컥 마셨다. 무언가 목구멍을 간질간질 거리는 기분과 코가 답답 먹먹한 기분에 감기임을 직감했다. 대충 얼굴에 물을 끼얹어 세수를 하고 외출복으로 갈아입고는 집을 나왔다.

 

눅눅한 궂은 날씨에 우산을 챙길까 했지만 나는 그냥 그대로 걸어 버스 정류장에 왔고, 눈앞에 허망하게 지나간 버스에 '에라 잇-' 속으로 말하며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이비인후과에 왔다.

 

"감기네요"

 

역시나, 감기. 간단하다면 간단한 약간의 성의 없는 진료를 받고는 병원 바로 옆 약국에 들러 약을 구입했다.

 

그러곤 왼쪽 다리에 멍이 심해서 치료를 받으러 근처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그런데 그 날따라 사람은 많았고, 덕분에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렸다. 물리치료까지 한 시간이나 걸렸고, 치료를 받고 나서 감기 때문인지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비타민 주사를 맞았다. 간호사 언니가

 

"20분이면 될 거예요. 다 들어가면 불러주세요."

 

나는 네-라는 간단한 대답을 하곤 똑똑 떨어지는 수액을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뜬것 같았는데 벌써 한 시간이 지났고, 그렇게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오후 3시.

 

뭉글뭉글 짜증이 피어올랐다. 그렇게 지하철을 탔는데 배가 너무 고팠고, 감기 때문에 어지러웠고, 다리는 시퍼런 멍으로 만신창이였고 그걸 알아줄 사람은 없었다. 

 

지하철을 둘러보았는데 자리가 없어서 잠시 서있었다.

그러곤 얼마 후 내 앞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여기에 좀 앉아야겠다-'

그때 갑자기 아주머니가 나를 툭-치더니 자리를 빼앗아 갔다. 나는 절로 인상이 구겨졌다.

 

여긴 내 자리였다고! 내 앞에 있던 자리!

 

아주머니는 먼저 앉은 사람이 임자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속이 부글거렸다. 그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한 채 내려야 할 곳보다 두 정거장 빨리 내렸다. 늘 먹던 가게가 있어서 밥이나 한 끼 때우고 집에 갈 요량으로.

 

하늘도 무심하시지. 갑자기 엄청난 소나기가 쏟아졌고, 우산은 없었고, 주변에 딱히 우산 살 곳이 보이지 않았다. 지하철 역에서 음식점까지는 쫌 멀었고, 그냥 비를 맞으며 걸었다. 그냥 뛰고 싶지 않았다.

 

3:30부터 브레이크 타임. 지금은 3:35분.

 

제기랄.

 

배속을 든든하게 채우고 집에 가려했건만 비 때문에 온몸은 쫄딱 젖었고, 몸은 뜨거웠다. 저녁 오픈은 5:30.

 

기다리고 싶지 않아 다시 집에 가기로 했다. 온몸을 질척인 채 버스를 기다렸지만 버스 소요시간은 20분. 결국 다시 지하철로 돌아가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서 내리니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맑은 하늘이 나를 더 화나게 했다.

 화내건 웃던 간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축축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와 샤워를 했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니 살 것 같았다. 비를 맞아서 인지 오늘의 샤워가 더 좋았다.

 

오랜만에 집에서 밥을 했다. 고소한 밥 향기가 집안 가득 퍼지면서 치익치익-소리를 냈고, 청양고추가 팍팍 들어간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었다. 샤워를 마친 후 밥 한 공기를 푹- 퍼서 두부와 애호박이 잔뜩 들어간 된장찌개를 쓰윽쓰윽- 비벼 밥을 해치웠다.

 

통통-

배를 두들기다가 후식으로 파인애플을. 또 다음 후식으로 요플레를. 또 다음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리곤 약을 먹었다. 에어컨을 켰고 눅진한 습기가 사라졌고 나는 두꺼운 이불속에 들어가 몸을 웅크렸다.

 

으- 행복해.

그렇게 약기운에 취해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비를 맞았기 때문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 좋았던 것이고, 배가 고팠기 때문에 흔한 된장찌개가 너무나도 맛있었던 거고, 피곤했기에 더 잘 잘 수 있었던 것 같다.

 

불행 하나에 행복하나, 그렇게 오니까.너무 행복해하지도 너무 아파하지도 말자고.

자잘한 일들이 모여 나에게 스트레스를 줘도 나는 반응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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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가장 단순한 것이 질리지 않는다

8:40분.

매일 아침 화이트 톤 외관이 무척이나 예쁜 카페이 들어간다.

딸랑-하는 문소리를 듣고 고소한 커피 향을 맡으며 계산대 앞에 선다.

그리고는 메뉴를 한번 뚫어지게 보다가 손을 입으로 가져간다.

고민하는 거다.

 

그렇게 잠깐의 고민이 끝나면 내 입에서 나오는 단어는 늘 한결같다.

아메리카노 주세요.

변하는 게 있다면 날씨에 따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을 건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먹을 건지 정도다.

그럼에도 매일 아침 메뉴 앞에서 망설인다. 

 

점심으로 가까운 파스타 가게를 갔다.

엔틱 한 인테리어와 우드 소재 의자에 놓여있는 알록달록한 쿠션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나는 핑크 보라 살구가 앙증맞게 섞인 쿠션이 있는 의자에 앉았다.

 

검정 앞치마를 입은 직원이 가까이와 회갈색 메뉴판을 건넸다.

나는 메뉴판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살폈다.

메뉴판을 보는 동안 점원은 탁자 위 물컵에 물을 3분의 2만큼 따르고 사라졌다.

 

기본적으로 파스타라고 했을 때 토마토파스타, 크림 파스타, 오일 파스타 이 세 가지가 떠올랐다.

메뉴판에는 이외에도 로제 파스타까지 있었고, 파스타 안에 들어간 재료에 따라 맵기에 따라 종류가 너무나 다양했다. 두 번째 고민에 빠졌다. 

토마토 파스타를 먹을 건지 오일 파스타를 먹을 건지.

 

내가 잘 아는 집이라면 오일 파스타를 먹는데, 잘 모르는 집이면 토마토파스타를 선택한다.

토마토파스타는 맛을 내기가 쉬워도 오일 파스타는 진짜 맛집에서 먹어야 한다는 게 내 주장이다.

나는 늘 똑같다. 

 

알리오 올리오로 주세요

그럼에도 메뉴 앞에서 매번 망설인다.

 

음식도 마찬가지이지만, 옷도 그렇다.

봄가을에는 트렌치코트, 라이더 재킷. 사계절 입기 좋은 화이트 셔츠와 기본 청바지. 어디에나 어울일법한 검정 가방 등등. 매번 패션 트렌드는 변하지만 바뀌지 않는 아이템들이 존재한다.

 

가장 단순한 것이 질리지 않는다.

 

나는 너무 복잡했다.

늘 생각에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문제가 하나 생기면 하루 종일 그 문제만 들여다보다가 지쳤다.

심플하게 넘길 수 있는 이야기들도 비꼬고 악의적으로 받아들여 상처를 받았다.

 

단순한 것이 무서웠다. 가벼운 것 같아서.

하지만, "단순해지려고"

너무 휘둘리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복잡하지 않게.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아메리카노처럼,

내 머릿속도 비우고 단순해지면

질리지 않을 것 같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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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포기'가 나쁜 걸까

내가 포기한 것들

먼저 기억에 남는 건 초등학교 4~5학년 때, 체육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간단한 줄넘기 시험이었는데, 연속으로 8자 뛰기를 10번 하고, 2단 뛰기를 2번 이상해야 하는 시험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몸무게가 28kg이었으니, 초등학교 4~5학년 때는 아마 더 마르고 약했었을 거다. 나에게 체육은 먹다 뱉은 껌을 다시 입에 넣는 것보다 어려웠다. 엄마의 꾸중을 들으면서 나는 집에서 미친 듯이 밤새 줄넘기 연습을 했다. 줄넘기는 수학 점수를 100점 맞는 것보다 내게 힘들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배로 연습을 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요리를 배울 수 있는 특수목적고등학교로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요리 공부를 시작했다. 한식부터 양식 중식에 이르기까지 고등학교 3년 내내 요리를 배웠다. 한식, 양식 자격증은 3번씩 도전해서 총 6번 만에 취득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과와 제빵은 12번씩 시험을 봤는데도 계속해서 떨어졌다. 생각해보면 레시피를 외우지 않았고, 그냥 물 흐르듯이 옆사람을 똑같이 따라 했으며, 자격증을 따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지 빵을 배우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제과 제빵 자격증 시험을 그만 보기로 했다.

 

호텔경영학과라는 과를 선택했다. 요리를 했기에 좀 더 이해가 수월할 것 같았고, 뭘 해야 할지도 잘 몰라서 그냥 어중 띄게 성적에 맞춰 아무 곳이나 정했던 게 호텔 과였던 것 같다. 공부를 하다 보니 호텔에서 일을 하는 것은 3교대인 육체적 노동이 많이 필요하고, 서비스 정신이 투철해야지만 가능한 일이라 생각이 되었다. 체력이 약했고, 나는 서비스 마인드도 부족했다. 그래서 쉽게 그 길을 돌아섰다.

 

한 때 남들에게 보이는걸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는 텔레비전에 얼굴이 나오고, 내 식품 쪽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렇게 '쇼핑호스트'를 준비했다. 발음을 공부하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꿈을 꿨지만, 생각해보면 어딘가에 나가 제품들을 판매한다는 게 무서웠다. 그래서 공부를 하다가 말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3인류'라는 책은 1권만 3번째 읽고 있고 (총 4권), 서예는 다니다가 지겨워서 한 달 만에 그만뒀고, 블로그는 사진 편집이 귀찮아한 때 열성적이었다가 금세 시들해졌으며, 토익 책은 늘 앞장에만 펜 자국이 남아있다.

 

이렇게 나는 포기를 많이 했다. 
하지만 꼭 모든 것들을 끝까지 해야 하는 걸까?

 

사람들은 말한다 최선을 다해, 미친 듯이 끝까지 해보라고. 끝까지 하다 보면 안 되는 건 없다고. 한 우물을 파서 무슨 일이든지 끝까지 가보라고. 그런데 꼭 한 우물만 파야하는 것일까. 한 우물을 파다가 물이 없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 우물 저 우물 파다 보면 나중엔 크고 좋은 수영장이 될지도 모르는데.

 

뭐 어찌 생각하면 금방 포기하네~ 하고 생각할 수 도 있다. 나는, 안돼도 계속해서 시도하고 도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줄넘기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운동이 되었고, 제과 제빵 자격증을 따지는 못했지만 빵에 대해 남들보다 많이 알게 되었으며, 학과에서 배운 마케팅으로 식품마케팅 관련 일을 하고 있고, 쇼호스트를 공부했던 경험으로 PT를 맛깔나게 하고 있는 나를 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포기가 아니라 그 포기가 배움의 연장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 모든 일들은 배울게 있고, 쓸 떼 없는 일은 없기에 나는 늘 계속해서 도전하고 포기하고 있다. 새해 들어서 다짐한 운동도, 아침을 꼭 챙겨 먹자는 의지도, 어느새 훨훨 날아가 지금의 나와 이별해 버렸지만 나는 누구보다 잘 걸어가고 있다고, 시도하고 도전하고 있다고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