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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거닐다

나는 왜 그를 미워하는가

사람들은 서로를 왜 미워하는가.

아니, 나는 왜 그를 미워하는가.

 

 

한 사람을 미워했었다. 이상하게도 나만 유독 그러했다.

내가 보기엔 그 사람의 대부분이 가식적으로 보였고, 무언가 '척'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볼때마다 불편했고, 함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 사람을 예뻐했다. 귀여워했다.

내 견해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구할 수 없었고 혼란스러워했으며,

그럴수록 더 미워졌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그에게 비춰지는,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이 내 눈에 걸린다는 것을.

 

나와 참 닮은 사람이었다.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이 그를 통해 들켜버린듯 했다.

 

바깥에서 일어나는 것은 내 안의 투사라는 것을 배웠다.

내 안의 무언가 걸림이 다른 사람에게 투사되었을 때 불편해 했고, 싫어했다.

 

사실 아무런 걸림이 없으면 그저 지나쳤을 일이다.

 

그 사람이 정말 가식적으로 굴었는지는 실은 모른다.

'내 눈'에 그렇게 보였고, 그렇게 해석했을 뿐이다.

 

어쩌면 정말로 그 사람에게는 그저 귀여운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은 말이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자신의 미워하는 부분을 되비쳐 보이는 거울일지도 모른다.

 

그럴리 없다고, 그는 정말 미운짓을 한다고 소리쳐봐도

내 안에 그러한 점이 없다면 전혀 거리낌 없이 넘어갔을테다.

그저 '귀여운 구석이 있구먼'하고 말이다.

 

 

라 우루 후는 말한다.

"세상에는 자신을 증오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증오하는 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다.

설령 사랑한다 여긴들, 실은 내 바람을 투사하여 만들어낸 환상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그 환상이 깨지면, 돌연 증오로 돌아서곤 한다.

 

나는 이렇게 결론 내리고 싶다.

 

 

내가 남을 미워하는 한,

나를 사랑할 수 없고,

 

내가 나를 미워하는 한

남을 사랑할 수 없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남을 사랑할 수 있고,

 

내가 남을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를 사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