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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무늬

#4. 포장을 풀며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다. 어딘가 꾸깃꾸깃 뭉쳐 있던 기억들이 천천히 일어선다. 여행이라는 핑계로 잠시 가려놓은 이야기다.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줄거리일까. 어디서부터 놓쳤을까. 나는 이 이야기 어디쯤 있는 걸까. 그 다음은 어디로 이어질까. 아무튼 눅진한 곰팡이가 소복히 피었을 것만 같은, 우리 사회 저 어둔 장막에도 이제 볕이 서서히 가닿기 시작했다. 3월, 드디어 봄이 왔다고들 한다.

 

라스 팔마스에는 카사 데 콜론(Casa de Colon)이 있다. 콜럼버스 박물관이다. 라스 팔마스와 콜럼버스의 첫 만남은 1492년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하는 1차 항해에서 여기 라스 팔마스에 머물렀다. 연이은 원정에서도 카나리아 제도는 배를 정비하고 물자를 공급하는 기착지로서 활용됐다고 한다. 박물관 1층에는 콜럼버스가 탄 배의 모형과 선실 내부, 항해물품 등을 전시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기까지의 항로와 그 배경 및 일정을 간략하게 살펴볼 수 있다.

 

예상은 했었지만, 박물관은 카나리아 제도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에 대해서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지하에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유물을 모아 놨고, 2층에서는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몇몇 그림과 카나리아 제도의 지도 및 모형 등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박물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어쩌면 정반대로 콜럼버스의 홀로코스트를 떠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인디언들은 아무런 죄도 없이 자기들의 왕국과 땅, 자유, 목숨, 아내 그리고 집을 유린당했다. 그들은 매일같이 스페인 사람들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대우로 죽어가고, 말발굽에 뭉개지고, 칼로 동강나고, 개에게 먹혀 찢기고, 산 채로 묻혀 죽고, 온갖 고문으로 고통 받는 가운데… ‘생존자들은’ 산으로 도망가서 굶어죽었다.” 콜럼버스의 두 번째 항해에 동참한 스페인의 역사가 라스 카사스의 증언이다. 그러나 카사 데 콜론에서 이는 사실관계를 논하기에 앞서 그 누구도 묻지 않고 그 누구도 답하지 않는 ‘없는 이야기’다.

 

여기 카나리아 제도의 원주민, 관체족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겪을 고난을 한 발 앞서 겪었다. 총칼을 앞세운 학살, 전염병 창궐, 강제 노동, 자원 착취, 종교와 법률과 언어의 강요 등 ‘콜럼버스의 교환’이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말이다. 이제 이 섬에서 그들 존재의 흔적은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누군가에게 불편한 기억도 함께 말이다.

 

사실은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실수는 없었다고, 실패도 잘못도 없었다며 애써 눈감아보려는 그런 시도 말이다. 그것이 죄책감이라면 아마 더욱 간절해질 것이다. 맥락이 다를 순 있지만 언제부턴가 지나간 모든 순간이 의미 있다거나 필요했다는 등의 긍정 어린 말이 거북해졌다. 뭐랄까, 애써 포장한다는 느낌일까. ‘그것들’을 작은 상자에 고스란히 담아 마트료시카처럼 더욱 큰 상자에 수차례 옮겨 담고 각종 리본 장식과 포장지로 꽁꽁 싸맨다. 누가 보더라도 선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말이다. 심지어 포장한 사람도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아주 가끔 마음을 톡 하고 놓아본다. 허송세월도 많이 했고, 무의미한 순간도 있었고, 없었으면 좋을 뻔한 이야기도 있었다고 말이다. 맞아, 그땐 내가 잘못했지라며. 그러면 억지로 쥐어짜낸 의미나 변명이 이내 고개를 숙이며 후드득 떨어진다. 그렇게 드러난 그 앙상하고 볼품없는 생의 무늬가 차라리 한결 편해 보일 때다.

 

카사 데 콜론에서 돌아오는 길, 포장을 싸기보다는 풀어가는 데 익숙해지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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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무늬

#1. 사전에 사과를

 

‘그란 카나리아로 이사했다. 남는 방이 하나 있다. 온다면 환영이다.’

 

“한국사람이구나?”

“아니, 스페인 사람.”

“오, 스페인 사람은 또 어떻게 만났대?”

 

글쎄, 복숭아랄까. 자세한 날짜나 장소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복숭아만큼은 확실하다. 5년 전, 여름방학을 틈타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그 어딘가다. 작은 개울 하나가 흘렀고, 미겔은 씻고 있던 복숭아 하나를 내게 건넸다. 별 말 없이 열흘 가량을 동행하고는 그는 회사로, 나는 학교로 복귀했다. 그 후로는 아주 이따금씩 이메일로 서로의 근황을 짤막하게 나눴다. 회사를 이직했다거나, 만나는 사람이 있다거나, 나라 경제가 망해가고 있다거나 등등.

 

3개월을 답했다. 무비자 체류 기한을 넘길 수는 없으니까. 다만, 왜 떠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그냥' 혹은 '답답해서'다. 또 다른 월급살이를 하루빨리 찾아 연명해야 하는 일시적 백수에게는 아마 사치에 가까울 것이다.  게다가 휴양지라니... 

​사실 어떻게든 그럴듯한 추임새를 넣어보려 했는데, 허사였다. 목적이라는 게 애초에 만들어진다기 보다는 나타나는 쪽에 더욱 가까운 건지도. 아무튼 주변에서는 부럽다고만 하는데, 속내는 썩 그렇지 않다. 솔직해질수록 여행은 힐링보다는 도피나 망각을 닮아갔고 결국엔 ‘하아, 모르겠다’로 끝마쳤다.

 

제1식: 케이준 치킨을 곁들은 감자샐러드, 데친 야채와 밥을 곁들인 삼계찜, 라임향 리코타치즈 무스케이크, 버터, 소프트 롤빵.

제2식: 훈제 치킨 슬라이스를 곁들인 샐러드, 굴소스를 곁들인 에그누들과 생강소스 곁들인 볶은 닭고기, 오예스 초코렛 파이, 버터, 호밀롤빵.

 

하릴없이 기내식 리플렛을 읽다가 괜한 문구에 눈길이 머문다. ‘메뉴에서 뭔가 부족하면 우리는 사전에 사과드립니다.’ 재료가 부족해지기 전에 미리 사과를 드린다는 이야기인가 싶어 몇 번을 재차 읽었다. 맞다. 수면부족이 틀림없다. 기압차에 따른 두뇌활동 둔화인지도.

 

왼편에는 지젝을 연상케 하는 외모의 러시아 아저씨가 이륙할 때부터 잠에 시달렸다. 심지어 포크를 쥔 채 식사를 하다가도 꾸벅꾸벅 졸았다. 앞좌석에 닿을 것만 같은 아저씨 뱃살을 옆눈으로 흘끔 훔쳐보다 생각도 않던 화장실이 간절해졌다. 서울에서 모스크바, 모스크바에서 마드리드, 마드리드에서 그란 카나리아. 거진 하루에 가까운 이동 시간 동안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다.

 

여행을 떠나기 3일 전 타로를 펼쳤다. 딱히 기대할 바도 없지만, 궁금한 건 궁금하니까. 흐름을 살펴보니, 바보카드가 눈에 띈다. 구름 하나 없는 화창한 날씨, 어느 젊은이가 절벽을 따라 발걸음을 내딛는다. 소풍일까. 표정도 해맑고 몸짓도 가볍다. 아마 나는 곧 그 뒤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미지의 문을 열어젖힐 것이다. 신선한 만큼 무모한, 또는 무모한 만큼 신선한 문을.

 

대학교 때 어느 교수님은 자신이 겪은 혹은 지켜본 짤막한 일화를 거의 매수업마다 들려주셨는데, 하루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인생은 어떤 거창한 게 아니라 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 뒤바뀐다고.

다행히 마드리드행 비행기에서는 옆자리가 비어 있는 창가 쪽에 앉았다. 이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스크바가 금세 점점이 박힌 무수한 불빛으로 넘실거렸다. 도시 하나 하나가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주황색 열대어처럼 그란 카나리아를 향해 헤엄친다. 어찌 될지 모르지만, 아니, 모르기 때문에 일단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랄까. 나뿐만 아니라, 미겔을 비롯하여 이 떠남에 연루된 모든 이들에게도.

    

​하늘에는 별자리를 그려볼 만큼 무수한 별들이 오래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