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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같은 인생

'엄마의 빗질과 머리끈' 카네이션:carnation

'엄마가 많이 늙었구나.'

매일같이 얼굴을 보니까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이듦'이었는데, 새삼 엄마의 세월이 빨리도 흘렀구나 느껴졌다.

늦은 밤, 자고 있는 엄마를 보니 눈덩이까지 내려앉은 주름이 그동안의 삶의 무게를 말해주는 것 같아 코끝이 시큰해졌다.

우리 엄마가 젊었고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내가 2학년 때 처음 머리를 스스로 묶었으니까) 엄마는 예쁜 머리끈을 자주 사서 머리를 묶어주셨다. 딸을 사랑하는 엄마의 사랑을 표현의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은 작고 앙증맞은 꼬마가 새겨진 머리끈, 포도알처럼 주렁주렁 작은 구슬이 달린 끈, 장식은 달려있지 않지만 형광색이 포인트인 긴 끈까지...

너무 세게 묶어서 종종 내 눈이 여우눈처럼 치켜올라가곤 했지만 내 전문 미용 선생님의 손길이 참 좋았더랬다.

예쁘게 묶인 머리를 보고 부러워하던 친구들도 많았다.(아마도 맞벌이 부모님을 둔 까닭에 상황상 단정한 빗질은 어려웠을 거다)

지금은 엄마 손은 다소 투박해졌고 쪼글쪼글하다. 내일은 왠지 엄마한테 내 머리를 부탁하고 싶다. 나는 아직도 어리고 내 기억 속의 엄마는 늘 30대다.

모정, 부인의 사랑.

카네이션의 꽃말이다. 우리집 곳곳에는 카네이션이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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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같은 인생

'슬프고 괴로운 사랑의 쓴맛' 아네모네 anemone : 바람꽃

배신, 속절없는 사랑, 기대, 사랑의 쓴맛...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어요. 당신을 사랑하기에 저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 비록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아네모네의 꽃말은 슬프고 괴롭다. 부정적인 뉘앙스의 저 말들의 공통점이라면 이뤄지지 않은 사랑, 혹은 이별 뒤 쌉싸름한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 속 '아도니스와 아프로디테의 사랑이야기'는 아네모네를 더욱 사연있는 꽃으로 만들어준다. 

먼 옛날, 키프로스 섬에 살고 있는 키니라스 왕에게는 미르라라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딸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던 왕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보다 미르라가 더 아름답다'고 말했고, 이 사실을 안 아프로디테는 미르라가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는 저주를 내리게 된다. 

죄책감과 수치스러움, 절망감으로 가득찬 나날을 보내던 미르라. 그녀의 자초지종을 들은 유모는 아무도 모르게 키니라스 왕과 동침하도록 뒤를 봐준다. 후에 미르라는 아이를 잉태하게 됐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왕은 미르라를 죽이려 한다.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미르라는 신들에게 자신은 죽어도 좋으나 아이만큼은 살려달라고 기도한다.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는 이를 불쌍히 여겨 미르라를 몰약 나무로 만들어 산 목숨도, 죽은 목숨도 아닌 상태로 만든다. 

그리고 미르라는 요정들의 도움으로 건강한 아이를 출산한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가 '아도니스'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를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저승의 신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에게 맡겼고,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서 아름다운 청년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를 사랑하게 된다. 이에 페르세포네에게 아도니스를 빼앗으려 하지만, 페르세포네 역시 만만치 않게 아도니스를 사랑하는 상황. 

과정이야 어쨌든 아도니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했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에게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언제나 곁에 두고 싶은 건 신들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매일같이 함께 사냥에 나서기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아프로디테는 잠시 아도니스의 곁에서 떨어지게 되는데 하필 그날 아도니스는 멧돼지에게 겁없이 덤벼들다 날카로운 엄니에 찔려 숨을 거둔다. 당시 아도니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멧돼지는 아프로디테의 전 연인인 전쟁의 신 아레스가 변화한 것이었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가 흘린 붉은 피 위에 향기로운 신주 '넥타르'를 뿌렸고, 그 자리에서는 꽃이 피어났는데 그 꽃이 아네모네다. 

 

아네모네는 다른 말로 '바람꽃'으로 불린다. 아네모네라는 이름도 그리스어로 바람을 뜻하는 anemos에서 유래됐다.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 아도니스처럼 살짝 부는 바람에도 꽃잎이 떨어진다. 비록 꽃이 피어있는 기간은 짧지만, 그럼에도 아네모네는 피어있을 때만큼은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하늘하늘 벨벳같은 꽃잎의 질감, 보기만해도 취하는 꽃잎의 색감... 한창 아름답게 피어있던 아도니스처럼.

 

*아네모네는 9~10월 가을에 심어져 이듬해 이른 봄에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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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같은 인생

'충분히 예뻐' 러넌큘러스 Ranunculus:개구리눈알

개구리 눈알처럼 꽃 얼굴이 동그랗고 큰 '러넌큘러스'의 꽃말은 '매력', '매혹', 그리고 '비난하다'다.

하늘하늘 거리는 꽃잎이 겹겹이 쌓여있는 모습을 보면 황홀하기 그지없다. 꽃말처럼 꽃 자체가 매력적이고 매혹적이다.

희고 은은한 핑크 색상은 웨딩 부케로도 많이 쓰이는, 신부들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꽃들 중 하나다. '하노이'라고도 불리며 꽃이 다른 색상보다 크고 풍성한 것이 특징.

또 다른 꽃말 '비난하다'는 의외이지만, 비난하는 사람에게 혹은 미워하는 사람에게 이 꽃을 선물하거나 받음으로써 마음속 앙금이 녹아내릴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최근 5개월 동안 운동에 나태해지고 먹는 즐거움에 푹 빠져있었는지 5kg이 늘고 말았다. 여자의 평생 숙제가 다이어트라는 말이 있다. 원래도 몸무게에 민감했지만, 불어버린 몸무게를 보고 화가 치밀어올랐다. 1,2kg이면 열심히 운동해서 한 달 안에 돌려놓으면 돼 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뜻밖의 숫자에 허탈함이 더 크게 밀려왔다. 레프트 훅 라이트 훅, 양훅으로 머리통을 강타당한 느낌이었다. 반격을 하고 싶지만, 무기력해졌다. 그리고 그 무기력함은 곧 나 자신을 향한 비난으로 바뀌었다. 

일하기도 싫어졌고, 타인과 말을 섞는 것도 싫어졌다. 평소 좋아하던 쇼핑도 하기 싫었다. 사봤자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일거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좀 남았던 화요일 오후 집에서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도착하는 큰 화원에 갔다. 

축축하지만 싱그럽고, 따뜻한 풍경일 것 같지만, 시끄럽고 분주한 꽃 도매점.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매력적인 노란 러넌큘러스와 디디스커스 한단씩을 샀다.

내가 나에게 건네는 화해의 선물이었다. 

'매력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이제 더 이상 자기 자신을 비난하는 마음은 버리는 게 어때?' 

왔다 갔다 왕복 두 시간은 너무 긴 시간이었지만, 손질해서 물병에 꽂아놓은 꽃들을 보니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리고, 움츠러들었던 내 마음이 조금씩 다시 부풀어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올망졸망 작은 꽃들이 모여 피어있는 디디스커스와 풍성한 얼굴의 러넌큘러스로 충만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알기에 화원으로 무작정 향한 내가 기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