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어보기

만다린과 독자들의 소통공간

음..이건 뭘까아아아?


안뇽하세요... 만다린입니당

 

오늘은요오오오오....

 

쓸께없어요ㅜㅜㅜㅜㅜ

 

우에에에에에에에우ㅜㅜㅜ

 

그냥 잡담이나 하려구요

 

헤헷..

 

방금 생각났따 >_<

 

소리님...댓에 단것처럼

 

진짜로 생각 해봐야 할 것 같습니돠...(진지진지)

 

ㄹㅇ로요

 

제가 넘... 진지했나용?

 

음..... 아니예용

 

ㅋㅋㅋㅋㅋ 죄송합니다.....

 

제가

 

혼자놀기를 넘 잘해서용

 

--------------------------------------------------------------

 

여러분~

 

제 글 많이 보실거죠?

갑자기 그러는 이유는...

제가 글을 쓰는 곳이 넘 많습니다

그래서 아이디어가 자주 떨어지는데

 

그래도 독자님들 보면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고 더 글 많이써야겠다 라는 생각도 들고

무언가 행복해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그래요

 

요즘에 블로그 가보고 카페 가보면

다들 좋아요랑 댓 달아주라고 하는 작가분들이 많은데

처음에 글쓰기 전에는 '귀찮은데 왜 써'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쓰고 나서 보니

왜 그러시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처음에 연우님,

감사했습니다

그때 댓글보고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처음, 이상했지만

(그때 그 뭐였지? 지금은 없는 작품인뎅... 제 일기 1편 올렸다가 삭제했죵 : )

댓글 달아주신거 보고

다른사람한테 댓 달려있다고 자랑하고

그랬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잘 없지만

행복하게 쓰고 있습니다.

 

이상, 만다린이었구요 :)

행복하시고요,

흔적만 남겨주세요.^^

 

-------------------------

 

음... '마음' 이란 주제로 글을 쓰는데

그거 아직도 하나요?

태그 아직도 달아야하는건가?

잘 모르겠따 >_<

글 이어보기

일상잡기

#1 여행.

연말에 남아있던 연차를 모두 소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주위 직장 동료나 상사분들은 연말인데 어디 놀러가냐고 필자에게 물었고, 그저 고향에 내려가서 쉬다가 온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다들 신기한 듯이 필자를 쳐다보며,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여기저기 다녀야 한다고 필자에게 말했다.

 

며칠 전, 휴가 일정을 공유하면서 들은 이야기다. 다들 휴가를 길게 쓰면, 으레 어느 나라를 여행할 계획이냐고 묻곤 한다. 그리고 실제로 여행을 가는 직장인들의 대다수는 해외여행을 계획한다. 특히, 아직 나이가 젊은 사람들일 수록 해외여행을 자주 간다. 아무래도 책임져야 할 것이 적을 수록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 역시도 아직은 '젊은 사람' 축에 드는 보통 사람이다. 그러나 여행에서만큼은 철저하게 보통사람이 아닌 특별한 사람이다. 20살 대학교에 입학한 이래로 해외여행 한번 안 가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심지어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중인데,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필자는 독특한 면이 존재한다. 그러다보니 회식이라던가 업무에서 벗어나는 시간에 회사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 여행 이야기만큼은 할 말이 없어 입을 꾹 닫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여행한번 못갈 정도로 벌이가 시원찮은 건 아니다. 그렇게 높은 벌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은 내 한몸 건사할 정도는 된다. 주변에 친한 친구나 후배들도 여행 한번씩은 잘 다녀오지만, 가끔씩 만나 이야기를 하면 필자는 여전히 독특한 캐릭터로 취급된다.

 

최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보게 되는 일이 잦다. '저 사람은 저렇게 사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서로의 삶을 바라보고 나아가 비교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너도나도 여행을 예찬하며 해외로 향하게 된다. 해외가 아니더라도 여행을 가게 된다.

 

필자가 태어나기도 전엔 해외에 나가지도 못했던 보통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매년 명절시즌이나 연말이 되면 다들 여행을 떠난다. 물론 그런 보통사람들 와중엔 필자와 같은 일부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여행을 예찬하는 사람들은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며 여행을 예찬하곤 한다. 당장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들어가봐도 예쁘고 화사한 필터로 찍은 여행사진들이 즐비하며, 해쉬태그에는 각종 유명 여행지 이름들이 즐비해있다. 그 사진 속의 사람들은 정말로 행복해 보인다.

 

그렇다면, 여행을 가지 않는 사람은 불행한 것일까? 아니다. 여행을 가지 않는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여행은 고역에 불과한 타향체험에 불과할 수 있다. 여행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느냐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누군가에게 여행이라는 것은 그리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다. 여행을 가는 시간보다 지금 이곳에서의 시간이 더 많기에 중요하다고 느낄 수 있다. 또, 여행을 가는 것보다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한다거나 평소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여행의 효용가치를 비판한다거나 여행의 감동을 무시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특별한 일이 중요해 보이는 것 만큼이나 일상의 일들도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본인은 집에서 편히 쉬면서 늦잠도 자보고, 가보고 싶었던 카페도 가며 일상 속의 행복을 누리고 싶지만, 뭔가 여행을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묘한 압박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본인이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한 사진을 찍는 여행도 옳다 그르다라는 가치판단을 내릴 순 없다. 오로지 여행이라는 행위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오롯이 본인의 만족만이 측정 기준이 될 것이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야 말로 진짜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해서 내가 만족한다면 굳이 여행을 안가도 된다. 여행에서 얻는 만족보다 집에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보던가, 따뜻한 장판에 몸을 지지며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더 큰 만족을 줄 수도 있다. 이를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폭력일 수도 있다.

 

그런고로 필자 역시 연말에 긴 휴가를 고향에서 보내면서 딱히 무언갈 하고 있진 않다. 그러나 집 근처 카페를 가거나, 평소에 보기 힘든 친구들을 만나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필자에게 소중한 시간이다. 또한, 큰 만족감을 주고 있다. 보통사람으로 살아가다 보면 받게 되는 스트레스를 이런 휴가를 통해 풀어버릴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엄청 특별하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나만 만족하는 이런 휴가도 한번쯤은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조심스럽게 모두에게 추천해본다. 굳이 무언가 하지 않더라도 평범함 속에 특별함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친 것들의 또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글 이어보기

일상잡기

#0 씀.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매서운 추위에 입고있던 외투를 다시한번 여미게 만드는 날씨다. 다사다난했던 올해도 그 끝이 보인다. 물론, 개인적으로도 다사다난했고, 어떤 부분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다사다난의 의미도 달라질 것이다. 아무튼 필자 개인적으로는 힘든 한해였다.

 

부산과 창원에서 줄곧 생활해온 촌놈이 서울에서 직장을 구해, 본의아닌 상경을 하게되었으며, 보통사람들처럼 매일 아침 출근길에 사람들이 빼곡한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향했다. 어쩌다보니 남들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그나마 일하기 편해 보이는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으나, 필자도 어림없는 보통사람이었으니 남들만큼의 스트레스를 받는 채로 일하고 있었다.

 

운좋게 연말에 고향으로 내려와 카페에 앉아 한가로이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노라면, 회사에서의 갑갑했던 기억이 멀게만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지금도 그런 묘한 기분에 휩쌓인채로 글을 쓰고 있다. 물론, 02로 시작하는 서울 전화번호로 전화가 걸려오면, 여느 보통사람처럼 심장이 두근거리고 걱정이 앞서는 직장인이다.

 

글을 쓴다라는 행위는 과연 어떤 행위 일까. 어떤 이에게는 아주 가치가 크고 숭고한 작업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이에게는 시간낭비에 불과한 작업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어떠한 가치로 사람들에게 느껴지던지 모든 것들은 오롯이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가 받아야 할 평가일 것이다.

 

그럼에도 요즘에 드는 생각은 글쓰기라는 행위는 그리 거창한 것도, 소수의 엘리트들에게만 허용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보통사람인 필자가 글을 몇글자 끼적거리고 있는 것 자체가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그야말로 누구나 글을 쓰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언제부터,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했을까?

 

사실 글쓰기는 과거에는 소수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제한된 특권이었다. 소위 말하는 엘리트 계층,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사람들은 생업을 하느라 글을 따로 배우고 익힐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서방에서는 라틴어가, 동방에서는 한자가 지배계층의 특권을 공고히 하는데에 이용되었다. 그러다보니 글쓰기의 행위는 이들에 의해 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문맹률은 낮아졌으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우리나라만 봐도 글못쓰는 사람의 비중이 과거와 비교해봤을 때, 극단적으로 낮아졌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행위는 무언가 보통사람이 하기엔 거리가 먼 것으로만 느껴졌다. 그래서 소위 문학을 한다던가 작가라고 하면 '저 사람은 특별하다'라는 선입견에 휩쌓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선입견이 서서히 깨져만 가고 있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수상자가 밥 딜런과 같이 문학을 향유하는 계층이 넓어졌다. 물론, 여기에 대해선 의견이 다른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문학의 향유층이 넓어지는 것을 나쁘게만 보진 않는다.

 

사실 문학이라는 것의 출발은 춤과 음악, 노랫말이 어우러진 원시종합예술행위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여기에서 분화가 되기도 하고 어우러지기도 하며, 작금의 소설, 극 등의 장르들이 등장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과거에는 단순히 보는 문학이 아닌 듣는 문학의 비중이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듣는 문학의 경우에는 휘발성이 높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구전되는 이야기에서 변형되는 부분이 많았을 것이고, 사라져버린 이야기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보는 문학이 대두되었을 것이다. 책이라는 매체가 등장하면서 구비되는 이야기들이 기록되어지고, 고착화되었을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작성하는데에 오래 걸리고, 집중해야 하는 보는 문학을 향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보는 문학은 미디어의 한계로 인해 일방향적 성격을 나타낼 수 밖에 없다. 작가가 독자에게 책을 통해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물론, 열린 결말이라던가 독자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면서 보완했다고는 하나 쌍방향적 소통이라기엔 부족했다.

 

이후에 발명된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등의 대중매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방향적인 미디어로 우리는 글을 읽어왔던 것이다. 보통사람은 글을 수용하는 독자, 소수의 사람들은 글을 쓰는 작가로 고정된 업을 수행해 온 것이다.

 

이제는 다르다. IT기술의 발전은 볼 수 있는 매체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불과 몇년 사이에 디스플레이 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하였다. 필자가 군 복무중일 때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이 막 생겼던 시기였다. 그런데 군복무를 마쳤을 때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기기를 목적성에 맞추어 여러개를 구비하는 이용자들이 늘어나면서 그야말로 N스크린 시대가 도래했다.

 

비단 IT기술은 하드웨어만이 발전하지 않았다. 각종 소셜미디어 서비스들이 오픈하면서 보다 쉽게 자신의 글을 남들과 공유하고 상호교환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런 소셜미디어 역시 하나의 글쓰기 플랫폼이라 필자는 바라본다. 각 플랫폼마다의 특성이 있고, 이 특성에 맞는 글들이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있다. 이 또한 하나의 장르 분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과거에 비해 독립출판의 기회도 많아졌고, 보통사람이 글을 쓰는데에 투입해야 할 비용은 급격하게 감소했다. 이 얼마나 글쓰기 좋은 시대인가. 그야말로 글쓰기의 시대다.

 

옴니글로같은 글쓰기 플랫폼 서비스들이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보다 많은 보통사람들이 글쓰기를 즐기다보면, 언젠가는 마치 원시시대에 부족 사람들과 희노애락을 나누었던 글쓰기가 가능해 지지 않을까 필자는 생각해본다.

 

추운 겨울 날, 보통 사람이 휴가를 맞아 고향에 내려와 쓴 최초의 잡기이다. 아무래도 보통사람이다보니 아는 것도 부족하고 글도 매끄럽게 쓰질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틈나는 대로 잡다한 것을 글로 써보려 한다.

글 이어보기

서른.

어느덧 어른이 된 아이의 소토리

김훈 작가는 동인문학상 수상소감에 이런 말을 남겼다.

 

"생사의 급박함을 스스로 알아서 사람 모이는 대처에 나다니지 않고 혼자서 처박혀서 한 글 한 글 쓰도록 하겠습니다. 무리를 아늑해하지 않으며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스물일곱이었을까. 이 문장을 읽을 즈음 나는 세상을 아는 척하며 사람 모이는 대처에 들어앉아 무리 속의 아늑함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놈'이었다. 무엇이 중한지도 모른 채 목적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지금은 생사의 급박함에 허덕이며 한 무리의 일원으로서 여전히 희미한 삶의 목적을 찾아 살아가고 있다. 세상살이가 다 힘들다지만 그 중 가장 고된 것이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홀로 있는 시간을 무언가 의미 있는 것들로 채우며 버텨내기란 여간 쉽지 않다.

 

퇴근 후 돌아온 내 작은 방에 어둠이 짙다. 애써 가라앉은 공기를 들추며 방 한 구석 책상 위에 노트북을 켰다. 저녁도 잊은 채 직장동료 덕분에 알게 된 옴니글로에 글을 끄적인다. 책 제목이란 것도 만들어 보고, 간략한 소개도 덧붙인다. 문득 내게도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음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글을 끄적이고 있었다. 화려한 미사여구와 깊이를 담지 못했어도 나름의 삶이 묻어나는 글을 쓰려 했었다. 내 글을 보고 흐뭇하게 웃는 사람이 있기도 했다.

 

세상을 다 알 것만 같던 나이, 서른.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이번엔 여전히, 아직은 좁고 얕은 우주 속에서 헤메는 나와 대화하고 싶다. 무리를 아늑해하지 않으며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