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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나날

과거가 되어가는 과정

첫 번째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기도 전에 시작되어 세 번째 시린 겨울을 맞이하며 끝나버린 한 편의 사랑이야기가 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시작된 징조들은 행복했던 나날을 사정없이 난도질했고, 준비하지 못했던 반전 없는 결말은 나를 지독한 감기에 걸려 무기력해진 아이처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마음 속 깊이 뿌리 내려버린 방향을 알 수 없는 기대감과 찢겨버린 날들이 뒤엉켜 나를 옭아매고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망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고통이란 마약에 취해 시간의 흐름조차 무뎌질 즈음, 물속의 시체가 표면 위로 떠오르듯 나는 다시 떠올랐지만 눈을  뜨지 못하고 한참을 그렇게 떠다녔다.

망망대해 같은 절망 위에서 부표처럼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던 내가 발견한 것은 사랑에 밀려 사라진 '다른 행복'이었다. 특별함은 없지만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던 일상 속의 그 행복은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순간부터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에게서도 기억 속에서도 점점 밀려나며 잊힌 그 행복이 나에게 다가와 절망 속에서 헤맨 고통스러운 나날을 견뎌낼 수 있는 의지를 만들어주었다. 처음엔 찰나 같던 그 시간은 새싹이 자라듯 자라나면서 '지나간 나날'을 기억 속에서 조금씩 밀어냈고 그 자리를 새로운 시간으로 채워주었다. 나의 의지로 만든 새로운 나날들은 내 존재의 가치를 다시 알게 해주었고 더 나은 나 자신을 만들며 살아가게 해주었다. 해질녘 하늘의 붉은 노을처럼 마음에 퍼지는 허전함과 외로움이 이따금씩 나를 절망 속으로 끌어당겼지만 되찾은 일상과 그 속에서 느끼는 행복은 든든한 뿌리가 되어 삶을 지탱해주었다. 새로운 날들이 계속되며 행복해질수록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했던 '나날'은 그저 또 다른 하나의 ‘지나간 나날’이 됬고 시간이 흘러 나는 그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시간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우리의 곁을 흘러간다. 그 시간이 흘러가면서 사람의 마음에 묻어 있는 감정을 조금씩 씻으며 가는데 그 시간이 흘러내려가서 호수처럼 모이면 기억 속의 '지나간 나날'이 만들어진다.

먼저 온 날들은 뒤에 오는 날들에 밀려 끊임없이 가라앉게 되고, 그 속에 갇혀 있던 감정들도 같이 가라앉게 되어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 날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무뎌지고 언젠가 그 나날에서 벗어나게 된다. 누구나 살다 보면 살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날들이 한번쯤 찾아온다. 어떤 형태로, 얼마나 긴 시간으로 찾아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순간이 아무리 힘들게 나를 괴롭혀도 시간은 반드시 지나가며 그저 하나의 '지나간 나날'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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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품집

<겨울 안부>

 

안녕. 잘 지내니?

이르게 찾아온 겨울의 온도가 마치 재작년의 늦겨울 같아 네 생각이 났어.

그러다 너와 진지한 고민을 쏟아내던 때가 아득하게 느껴지길래 편지지를 꺼냈다.

잘 지내는 거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자꾸만 묻고 싶어.

나는 사랑하던 사람과 마침표를 찍고 겨울을 맞았어. 물론 사랑하고 있었다면 헤어지지 않았을 테니,

사랑하지 않아가던 사람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 후로도 잔잔히 일상을 살아가곤 있지만

너도 알다시피 이때까지 몇 번의 쓸쓸한 연애를 하고 나니, 사랑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된 것 같아.

 

기억나니? 우리 몇 년 전에 같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웠었잖아. 분명 똑같은 방법을 배웠는데도

너와 내 모습은 퍽 달랐었지. 나는 여기저기에서 더 쉽고 빠르게 하는 방법을 찾아 요령을 피웠지만

너는 거북이처럼 하나하나 느리고 정직하게 해나가더라. 미안하지만 사실 그런 너를 보며 답답하다고 생각했었어.

더 쉬운 방법으로, 더 멋진 결과물을 만든 내가, 너보다 더 세상을 잘 살아가겠구나라고, 감히 잘난체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너는 요즘도 그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더구나. 나는 있지, 그 프로그램을 다루는 법이 생각나지 않아. 요령만 잔뜩 부렸던 손가락이 부끄럽게 자판 위를 헤매고 있어.

 

이젠 너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지?

그래. 어쩌면 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듯 사랑하는 법을 배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다 꺼내 보여주던 내 모습이 상처였던 그때부터 더 이상은 어설프게 헤메고, 허둥대고 싶지 않아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요령을 피운 거지. 나는 그저 사랑을 잘하고 싶었어. 다가가고 물러설 적당한 거리를 알고 있는, 더 쉽게 사랑하면서도 손해 보지 않고 이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야.

 

그래서인지 요즘 느릿한 정직함을 가진 네가 많이 생각나.

너라면 사랑도, 아니 사랑은 더욱, 헤매고 부딪히면서 구석까지 꼼꼼히 채워나가고 있을 거라 믿기에.

그런 너를 떠올리며 나도, 마치 처음부터 다시 사랑하는 사람처럼,

성실하게 내 마음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하는 중이야.

 

그립다. 네가 많이 보고 싶어. 예전 너와 나누었던 고민이 생생히 기억나는 건,

볼에 홍조가 필 정도로 누군가를 사랑했던 그 마음이 여전히 반짝이기 때문이겠지.

모처럼 네게 편지를 쓰는 내 볼도 물들어 있어서, 꼭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애편지를 써보내는 기분이 든다.

오랜 시간 보지 못했어도, 문득 붉게 생각나 주어서 고맙고,

아무렇지 않게 사랑을 담아 편지 보낼 수 있는 사람이어 주어서 고맙다.

어디서든 우리는 가까이에 있어. 잘 지내다 어느 겨울날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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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2017년 참 고마운 나날들이여~

2017이 끝나간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은 2017년의 마지막 날. 

2017년에는 무슨일들이 있었는지 쭉 돌아보면 참 감사한 일들만 가득했다.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남자친구와의 결혼.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꿀맛같은 신혼생활을 즐기던 중 찾아온 아기 천사까지.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던 2017년을 보내면 새로운 한 해가 찾아온다. 

 

다가올 2018년에는 예쁜 아기가 태어날 예정이며, 나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는 나에게도 행복만이 늘 가득하기를 기도하고 바래본다. 

하루하루 열심히 즐기며 행복하게 지내려 노력했더니 정말 행복한 일들이 가득했다. 

역시 생각하기 나름이다. 인생은. 그리고 그 날의 기분을.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일들이 가득 찾아오지만, 불행하다 느낀다면 불행만 가득 찾아올 것이다. 

매일 행복하다, 주문을 외운다면 정말 행복한 일들이 소소하게 찾아오기 마련인 것을 나는 왜 이제서야 알게 되었을까?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하루하루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분명 정말 소중한 선물이 가득 찾아올거야. 

그러니까, 소소한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내가 되어야지,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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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별사탕

청춘에 관하여

어느 느즈막한 새벽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마친 후 가로등 불빛 한 점 없는 어두운 거리를 걸었다

 

인생이 하나의 산을 넘는 일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믿고 있었다 

그 산을 넘는 순간 평평한 대지가 펼쳐져 있을 거라고

산을 넘으니 더 높은 산이 서있었다

 

마른 기침을 내뱉어도 내 안에 쌓인 먼지들을 털어내지 못했다

내가 풀어야 할 문제들은 아무 해답이 없었다 

사람들은 귀가 없었고 나는 어리석게도 입이 없었다

이성과 논리를 잃은 말들이 하루살이떼처럼 공중을 떠다녔다

나는 가래 섞인 욕설을 내뱉곤 했다 

 

세상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선택지를 만들어놨었다

나는 선택지를 맞추기만 하였다

그러나 가끔 틀린 선택의 뒤에는 내가 이해 못 할 답안지의 설명들이 기다렸다
그리고 후회만이 찌꺼기처럼 남았다

 

대학생이 된 나는 더 외로워졌다

거리 먼 친구들과의 연락을 붙잡느라 애를 썼지만

소중한 것들 모두 나의 울타리 밖으로 도망갔다

이젠 아주 사소한 이별에는 아무렇지 않다

 

꿈은 꾸라고 있는 것이지만
나는 꿈을 꾸지 못해 버텼다
꿈을 꾸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무기력해졌다

 

집이 있어도 나는 집을 찾아다니고 싶었다

온전히 나만 있을 수 있는 집이 필요했다

집도 바깥 세상도 내겐 감옥이었다

 

나는 매일 밤 스스로를 학대했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상상을 하며 신음을 내뱉었다

다음날 나는 사람들 앞에서 미소지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아직 가로등 하나 켜지지 않았다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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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너를 떠나 더 행복한 곳으로

 

네 옆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사람마냥 늘 웃고 행복했던 그런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온 세상이 너로만 가득차 있던 그때의 나는, 그저 철부지 어린 아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너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세상이 너였을 때, 넌 너의 세상의 전부가 다른 것이었지. 

그렇게 우린 엇갈리고 엇갈려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지쳤었지. 

 

대화를 해도 무색해질 만큼 서로의 의견과 생각이 너무나 달랐었던 우리의 앞에 결국 이별이란 게 놓여있더라. 

나는 널 붙잡으려 안간힘을 써봤지만 넌 이미 저 멀리 떠나버렸구나. 

 

나는 너를 떠나 더 행복한 곳으로 갈거야. 

그게 어디든, 내 세상의 전부였던 널 버릴거야. 

난 다시 태어나 훨훨 자유롭게 날아갈거야. 

나를 옭아매던 너의 모든 것들에서 자유로워질거야. 

 

이제 나는 홀로서기를 준비하려 해.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게 즐길 수 있는 모든 걸 찾을거야. 

그래서 나는 결국 행복해질거야. 

나만이 느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에서 더 많이 웃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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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in

순박한 맛이 스며든 벨기에의 맛

■ 순박한 맛이 스며든 벨기에의 맛

 

 

 

벨기에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벨기에 사람들이 참 순박하다는 생각을 했다. 길을 걷다가 길을 물어보려 도움을 청하면 그들은 수줍은 미소를 가득 머금고 설명해 주었다. 기념품 샵에 들어가면 고개를 살짝 까딱이는 그 작은 환영의 인사에도 미소가 가득했고, 가게 내부 사진을 찍겠다고 허락을 구하는 말에도 은은한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그래서였을까?

벨기에 특히 브뤼셀은 치안이 불안하다는 걱정들과 영사관에서 하루에 두번씩 보내던 위협스러웠던 문자들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벨기에에 체류하는 동안 벨기에의 사람들은 참 순박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벨기에에서 맛보았던 모든 음식에도 녹아있었다.

 

 

 

 

 

 

벨기에에 체류하는 동안 나의 아침을 담당했던 건 갓 구워낸 따뜻한 와플과 커피였다. 벨기에의 와플은 입안에서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도 특별했다. 과하지 않은 달콤함과 바삭바삭함이 입안에 퍼졌고, 약간은 씁쓸한 커피가 균형을 잘 맞춰주었다. ​특히 벨기에에 도착한 첫날 길거리에서 와플을 먹었던 탓에 비둘기의 방해를 도망다녀야 했던 것이 못내 아쉬워1-2유로쯤 더 들더라도 편안하게 앉아서 커피와 함께 와플을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까만 간판으로 꾸며진 와플가게였다. 그랑플라스에서 오줌싸개 동상으로 향하는 길목 코너에 자리한 커피숍이었는데, 보이는 유리창으로 와플 반죽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말랑말랑한 반죽을 와플팬에 굽고 갓 구운 따끈따끈한 와플에 슈가파우더를 뿌려주는데 커피와 함께 풍겨오는 와플의 향기가 잠에 취한 내 콧털을 건드려 잠에서 깨우는 느낌이었다. 얇은 프라스틱 나이프로 잘라도 부드럽게 잘려지는 와플은 신기하게도 쫄깃하고 바삭했다.

 

 

 

 

 

 

나중에 폴란드를 여행하면서 만났던 벨기에 청년 역시 와플에 지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당시 숙소 스탭이 와플을 구워서 위에 과일 얹은 것을 굉장히 못마땅해했다. 무언가 얹은 건 와플이 아니라는 그의 지론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위에 이것저것 얹은 와플을 맛보지는 않았지만, 벨기에에서 휘향찬란한 토핑 얹은 와플을 안 먹은 것이 오히려 잘했다고 생각되던 순간이었다.

​와플 부심을 가진 벨기에 청년과는 사흘 정도를 매일 밤 만나며 맥주를 마셨다. 폴란드 일정이 꽤나 겹쳐서 낮엔 각자 여행하고 돌아와 밤 시간에는 여행했던 이야기를 주고 받거나 서로 같은 공간에 앉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런 벨기에 청년이 내 사진첩을 보던 중 곧장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운 것은 벨기에의 맥주 사진이었다.

 

 

 

 

 

 

브뤼셀 센트럴 광장에는 맥주 상점이 고디바 초코렛 상점 만큼이나 많았다. 푸줏간 거리 한쪽 구석에 위치한 2층짜리 PUB에서는 300여 가지의 벨기에 맥주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자랑일 정도이니, 4-5 종류에 불과한 한국 맥주 시장과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양인 것이다.  맥주를 사랑하는 1인으로서 맥주 골라먹는 재미에 흠뻑 빠질 만큼 맥주의 종류도 다양했기 때문에 매일 밤 맥주 가게에서 참 오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벨기에 맥주 가게에 처음 들어간 날, 나는 점원에게 벨기에 맥주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여기에 있는 게 다 벨기에 맥주야!" 하는 것이었다. 그 많은 맥주를 다 마셔볼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없었기에 가장 유명한 호가든 이외에는 상표가 예쁜 맥주들로 고심해서 골랐다. 그 중에서도 가장 진하고 깊이 인상에 남은 맥주는 가장 왼쪽의 파우벨 크왁 (kwak)였다. 점원의 침이 내 얼굴에 그대로 쏟아질 만큼 칭찬해 마지 않던 그 맥주. 매년 상을 받을 만큼 맛있고, 벨기에 사람이라면 모두들 엄지를 척척 들어올린다던 맥주였다. ​도수는 8%정도로 일반 맥주에 비해 조금 높았다. 전문 소믈리에가 아닌 내 입맛 레벨에서는 진한 보리맛과 알싸한 끝맛이 그 다음 한 모금을 부르는 맛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벨기에 청년 역시 크왁의 사진을 보더니 "크흐~" 하는 신음 비슷한 소리를 절로 내고 있었다. 점원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벨기에에 도착한 첫째 날엔 이상하게도 컨디션이 매우 나빴다. 여행을 떠나온 지 20일이 지나갈 쯤이었는데, 딱히 감기나 몸살 같이 증상을 동반한 아픔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컨디션이 무너져있는 것 같았다. 그건 아마도 한국을 떠나오면서 사시나무 떨듯 긴장했던 긴장감이 조금은 현지에 적응하며 유연해졌고, 그 사이에 느끼진 못했지만 체내에 차곡차곡 쌓인 여행 피로감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몸이 힘들거나 아플 땐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주저없이 고기를 찾아 나섰다. 적당한 곳을 찾던 내 눈을 끌어당긴 곳은 별이 일곱 개쯤 붙어있는 길가의 큰 레스토랑이었다. 센트럴 역에서 그랑플라스 광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는데, 투어리스트 센터에서 센트럴역으로 한 블럭 직진 후 보이는 코너의 와플가게 바로 옆 레스토랑이었다​.

 ​

​몇번의 눈짓을 시도하자 웨이터가 왔다. 그는 곧게 자세를 잡고 서서 주문을 받았는데,내 의사가 제대로 전달이 될지 안될지 불안한 마음에 나는 메뉴판의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웨이터가 대뜸 내게 말했다. "레이디~ 유럽에서는 손가락질을 하지 않아. 너의 목소리로 주문을 해줄래?" 하는 것이었다. '허허...까칠한 양반...내 저질 발음이 그렇게 듣고 싶다면 원하는데로 해드리지...' 하는 마음으로 더듬더듬 메뉴를 말해주었다. 꼿꼿하게 선 웨이터가 질문하는 순서대로 주문을 마친 후, 내 요리가 나오기 전까지 웨이터를 주시했다. 그는 어떤 테이블에 가서도 꼿꼿한 자세였다. 그리고 다른 웨이터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종횡무진 가게 안을 누비는 사나이였다. 손님들은 다들 그 사나이를 찾았고, 다른 웨이터들은 대기만 하고 있었다. 가게는 어느 덧 손님이 가득찼고, 한참 식사를 하는 내게 그는 슬그머니 다가와서는 예의 그 꼿꼿한 자세를 유지한 채 물었다.

 

"음식은 입에 잘 맞아? 더 필요한 건 없어?"

 

내 테이블을 담당한 꼿꼿한 사나이가 다른 웨이터들과 다른 점은 테이블의 맞은 편이나 측면이 아닌, 나의 바로 곁에 서서 말을 건네왔다. 그 모습은 다른 웨이터들이 지나치듯이 가볍게 말을 거는 것보다 더욱 품위있게 느껴졌고, 상대방을 존중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처음 레스토랑에 들어섰을 때, 짚업후드를 입고 있었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작은 가방을 크로스로 메고 있었기에 누가 봐도 주머니가 가벼운 배낭 여행객의 차림새였다. 게다가 까만머리의 눈에 띠는 외국인. 내게 자리를 안내하지 않고 비웃는 듯한 미소로 나를 외면했던 웨이터의 첫 이미지에 기분이 조금은 상한 상태였다. 첫번째 웨이터가 나를 외면한 탓으로 그 바쁜 사나이가 내 테이블을 맡게 되었는데, 나는 식사를 하는 동안 바쁜 사나이에게 참 감사했다. 그는 첫번째 웨이터와 같이 나를 외면하지 않았고, 방실거리는 미소는 보이지 않았지만, 다른 손님들과 똑같이 나를 대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식사를 다 마친 후 나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사실 레스토랑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도 했고, 나에게 품위를 유지해 준 그에게 나 역시 품위있게 행동하고 싶기도 했다. 어딘가 책에서 보았던 데로 접시의 오른쪽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모아 놓고 가만히 앉아서 그와 눈이 마주치길 기다렸다. 그러다 다른 테이블의 접시를 치우는 그와 눈이 마주쳤고, 그는 나의 접시를 보고는 가벼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레이디~ 식사는 만족했어?" 하고 물어오는 그에게 완벽했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접시를 치워주고는 영수증을 가져왔다. 맥주와 스테이크의 가격은 22유로. 25유로를 주고는 거스름돈을 주려는 그를 만류했. 3유로는 주머니 가벼운 이 외국인 배낭 여행자가 주는 고마움의 팁이었다. 그리고 나는 3유로 덕분에 꼿꼿하고 품위있는 웨이터의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오! 레이디~ 너 내일도 또 와야돼~"

 

처음엔 꼿꼿한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그는 자신의 일에 꽤나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것 같다. 여행하면서 만났던 많은 웨이터들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보니, 나는 그의 태도와 일하는 모습에 꽤나 큰 감동을 한 모양이다. 언젠가 다시 한번 가게 되면 그때에도 바쁜 사나이의 꼿꼿한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여행하며 먹는 것을 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버릇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특별히 그 나라에 가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것들을 특별히 조사하지 않고 떠나기 때문이다. 그 나라에서 꼭 먹어봐야 할 만큼 유명한 것이라면 분명, 그것을 파는 상점들이 많을 것이다라는 이유로 먹거리 조사를 생략하곤 한다. 브뤼셀을 돌아다니면서 정말 많이 보았던 것이 홍합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두집 건너 한집씩 있는 삼겹살집 만큼 많았다. 저마다 입간판을 꺼내어 놓고 홍합스튜의 가격을 표시해 놓았는데, 16유로~25유로까지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어디가 맛집인지를 몰라서 푸줏간 거리를 계속 헤매고 있자니, 유독 한국사람과 중국사람이 바글바글한 레스토랑이 있었다. 테이블엔 다들 홍합스튜가 놓여있었는데, 그 집을 첫번째로 제외했다. 내가 아무리 여행객이어도 여행객들만의 리그에 참여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나는 한참을 구경하던 끝에 편안한 옷차림의 노부부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들어가는 식당으로 따라서 들어갔다. 그리고는 호기롭게 홍합스튜를 주문했다. 국물은 많지 않았지만 홍합만큼은 가득 들어있었다. 포크로 홍합을 빼먹고 있는 내 모습을 본 점원이 친절하게도 홍합껍데기로 빼먹는 게 벨기에 식이라고 알려주었다. 우리가 포장마차에서 자주 하는 그 행동들이 한국가면 한국 식이고, 일본가면 일본 식이고, 벨기에에 오면 벨기에 식이 되는 모양이었다. 호록호록 홍합을 빼먹고 있자니 통후추의 향기가 느껴졌다. 아마도 홍합의 비린 맛을 통후추로 잡아낸 모양이었다. 국물은 맑은 국물이었는데, 우리나라 포장마차에 파는 홍합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벨기에는 참 작은 나라임에도 유명한 게 많았다. 수제레이스와 스머프, 와플, 맥주는 물론이고, 초콜릿과 홍합, 감자튀김까지 그래서 벨기에에서 머무는 매일 매일이 즐거웠다. 수제품 구경을 하다가 배가 고프면 길거리에 널려있는 맛있는 집들에서 군것질을 사 먹고, 저녁엔 싸고 맛있는 레스토랑 식사와 맥주가 가능했으니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식사를 주문하면 어느 레스토랑이건 감자튀김을 배가 터지게 많이 준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통통하고 포근포근한 감자튀김이 가득 있어서 스테이크를 다 먹고 난 후에는 남은 맥주와 함께 느긋하게 즐기기에 딱 좋았다.

 

 

 

 ㅣ 특제소스 스테이크와 서비스로 받은 감자튀김.

 

 

 

누군가 그랬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덤을 기대하면 안되고 서비스로 무언가를 무료로 받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만약 그게 정설이라면 벨기에는 유럽이 아닐 지도 모르겠다. 식사가 끝난 후에도 남아있는 맥주를 맛있게 먹으라는 듯 감자튀김을 덤으로 받아 먹었고, 맥주를 사니 손바닥만한 작은 프레첼 과자를 끼워주는가 하면, 초콜릿은 무료 시식으로 두 손 가득 챙겨주는 소박한 정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브뤼셀에서 한끼 식사를 하기에 적당한 레스토랑을 찾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푸줏간 거리에는 레스토랑이 즐비해 있었고, 눈에 잘 보이도록 가격과 메뉴 사진을 첨부해 두어서 선택의 폭을 넓히기에도 좋았다. 또한 그들이 내놓은 메뉴를 훑어보며 서 있노라면 레스토랑 외부에서 한창 영업중인 웨이터들은 귀신같이 국적을 알아보고는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왔기 때문에 좀처럼 레스토랑에 친숙하지 않은 나 같은 촌뜨기도 편안한 마음으로 레스토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만, 자리를 잡고 앉으면 밖에서 보았던 메뉴판과 내게 가져다 주는 메뉴판의 상이한 가격표가 나를 당황시켰던 것만 빼고.

 

 

 

 

 

 

사진 속 연어구이가 그랬다. 지나가는 길에 연어구이 사진을 보고 시선이 꽂힌 나를 발견한 웨이터가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건네왔다. 처음엔 신기하기도 하고, 어설픈 한국어로 노력하는 그 사람이 괜스레 반가웠다. 그래서 슬쩍 웃으며 그의 뒤로 보이는 입간판 속 메뉴를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며칠 동안 스테이크만 먹어댄 탓에 조금은 물린 느낌이었는데 마침 연어구이의 가격이 14유로라고 큼지막하게 쓰여있었다. 적당한 가격에 이미 마음을 빼앗겼는데 방실방실 웃으며 영업을 걸어오는 웨이터 덕분에 덩달아 신나 '내 사랑 벨기에~'를 마음 속으로 외치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미 메뉴는 정해놓고 들어왔지만 그래도 구경이나 해볼까 하며 웨이터가 가져다 준 메뉴판을 펼쳤는데, 연어구이 가격에 22유로가 표시돼 있었다. 순간 매우 당황했다. 맥주 두 잔과 연어구이를 22유로에 해결보려 했던 내 예산에 금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웨이터에게 사정을 묻자 14유로는 런치 스페셜 가격이란다. 내 두 눈이 그저 장식이란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갈까 말까를 무한반복하며 고민하는 동안 웨이터를 꿈뻑꿈뻑 쳐다보고 있었더니 그가 슬쩍 웃으면서 그런다.

 

"어쩔 수 없네. 그냥 스페셜 메뉴로 해줄게. 대신에 한국 사람들한테 소문내줘 ^.^"

 

잠깐의 실랑이(?)였지만 웨이터의 배려 덕분에 예산을 깨뜨리지 않고 맥주 두 잔과 연어구이를 22유로에 즐길 수 있었다. 그 날의 연어구이 맛은 벨기에 사람들이 가진 순박하고 착한 맛이었다.

 

벨기에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소박했던 것 같다. 아주 고급스러운 맛은 아니었지만 먹으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맛이었다. 푸짐한 양에 감자튀김으로 보여주는 후한 인심은 한국에서 말하는 "따뜻한 정"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입에 한 입 넣자 마자 호들갑 떨 만큼 강렬하지는 않아도 두고 두고 진하게 여운이 남는 그리운 맛이기도 했다. 그것이 벨기에 사람들의 모습과 참 닮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부산스럽지도 않고, 바쁘지도 않게 조용히 흘러가는 벨기에 사람들의 일상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미소 띈 얼굴들이 은은하게 남아서 벨기에를 떠올릴 때 마다 그날의 맛과 그날의 기억을 음미하게 된다. 벨기에가 더욱 그리워진다.

 

 

 

 

 

                                                                                       + 벨기에 맛집 즐기기

                                                                                 

                                                                                         와플 : 오줌싸개 동상 가기 한블록 앞 코너의 Waffle factory

                                                                                                   와플은 3~6유로, 커피는 세트메뉴로 주문 가능

 

                                                                                       스테이크 : 브뤼셀 센트럴 투어리스트 센터에서 센트럴역 가는 길

                                                                                                       두 블럭 직진 후 오른편 코너에 와플가게 보이면

                                                                                                        와플 가게 바로 옆 레스토랑 Brussel-Grill

 

                                                                                       홍합스튜 : 푸줏간 거리의 유명한 chez LEON(쉐레옹)에서

                                                                                                        대각선으로 맞은 편 위치.

                                                                                                        쉐레옹에 여행객이 너무 많아 선택했던 레스토랑이므로

                                                                                                        여행객들만의 맛집에 도전하고 싶다면

                                                                                                        쉐레옹으로 가면 될듯.

 

                                                                                       연어구이 : 쉐레옹을 등지고 맞은편 골목으로 직진,

                                                                                                        가게 두 개 지나 왼쪽에 위치한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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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뉴질랜드의 여름 바다

 

뉴질랜드에서 그렇게 오래 살아도 바닷가에 가서 일광욕만 하고 돌아오던 때가 있었다. 

바다에 들어갔다 나오면 끈적거리고 모래가 사방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느낌이 싫어

그저 조신하게 그늘에 앉아 바다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만 구경했었지.

 

그런데 점점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바다에 들어가기 싫어하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바다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고 있고, 

쨍쨍 내리쬐는 햇빛에 뜨거워진 모래가 따뜻해 몸에 모래들을 묻히며 뒹굴거리고, 

썬크림을 덕지덕지 바르면서도 신경질이 아닌 해맑게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여름만 되면 "바다가자!" 를 외쳐대기 시작하며

깊은 물까지는 무서워 들어가진 못하지만 파도를 타면서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뉴질랜드의 여름 바다는 예쁘다. 아름답고, 찬란하다. 

서핑하는 사람들도 있고, 부기보드타며 파도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고, 

그저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뉴질랜드의 여름 바다는 자유롭고 자유롭다. 

 

사람은 점점 달라지는 게 맞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늘 그 자리에 머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게 알게 모르게 변해간다. 

변해가는 과정을 그저 즐겁게 받아들이면 정말 내 것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