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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같은 인생

'슬프고 괴로운 사랑의 쓴맛' 아네모네 anemone : 바람꽃

배신, 속절없는 사랑, 기대, 사랑의 쓴맛...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어요. 당신을 사랑하기에 저의 모든 것을 드립니다. 비록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

 

아네모네의 꽃말은 슬프고 괴롭다. 부정적인 뉘앙스의 저 말들의 공통점이라면 이뤄지지 않은 사랑, 혹은 이별 뒤 쌉싸름한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 속 '아도니스와 아프로디테의 사랑이야기'는 아네모네를 더욱 사연있는 꽃으로 만들어준다. 

먼 옛날, 키프로스 섬에 살고 있는 키니라스 왕에게는 미르라라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딸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던 왕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보다 미르라가 더 아름답다'고 말했고, 이 사실을 안 아프로디테는 미르라가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는 저주를 내리게 된다. 

죄책감과 수치스러움, 절망감으로 가득찬 나날을 보내던 미르라. 그녀의 자초지종을 들은 유모는 아무도 모르게 키니라스 왕과 동침하도록 뒤를 봐준다. 후에 미르라는 아이를 잉태하게 됐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왕은 미르라를 죽이려 한다.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미르라는 신들에게 자신은 죽어도 좋으나 아이만큼은 살려달라고 기도한다.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는 이를 불쌍히 여겨 미르라를 몰약 나무로 만들어 산 목숨도, 죽은 목숨도 아닌 상태로 만든다. 

그리고 미르라는 요정들의 도움으로 건강한 아이를 출산한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가 '아도니스'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를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저승의 신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에게 맡겼고,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서 아름다운 청년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를 사랑하게 된다. 이에 페르세포네에게 아도니스를 빼앗으려 하지만, 페르세포네 역시 만만치 않게 아도니스를 사랑하는 상황. 

과정이야 어쨌든 아도니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했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에게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언제나 곁에 두고 싶은 건 신들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매일같이 함께 사냥에 나서기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아프로디테는 잠시 아도니스의 곁에서 떨어지게 되는데 하필 그날 아도니스는 멧돼지에게 겁없이 덤벼들다 날카로운 엄니에 찔려 숨을 거둔다. 당시 아도니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멧돼지는 아프로디테의 전 연인인 전쟁의 신 아레스가 변화한 것이었다. 

아프로디테는 아도니스가 흘린 붉은 피 위에 향기로운 신주 '넥타르'를 뿌렸고, 그 자리에서는 꽃이 피어났는데 그 꽃이 아네모네다. 

 

아네모네는 다른 말로 '바람꽃'으로 불린다. 아네모네라는 이름도 그리스어로 바람을 뜻하는 anemos에서 유래됐다.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 아도니스처럼 살짝 부는 바람에도 꽃잎이 떨어진다. 비록 꽃이 피어있는 기간은 짧지만, 그럼에도 아네모네는 피어있을 때만큼은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하늘하늘 벨벳같은 꽃잎의 질감, 보기만해도 취하는 꽃잎의 색감... 한창 아름답게 피어있던 아도니스처럼.

 

*아네모네는 9~10월 가을에 심어져 이듬해 이른 봄에 꽃이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