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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어떤 여행

[안녕,어떤여행] D+03 해발 3,700m에서

 

새벽 5시에 도착해놓고는 그래도 아침은 먹겠다고 또 꾸역꾸역 8시 즈음 일어난다. 아침 식사는 따뜻한 빵과 진짜 맛있는 버터와 수제 오렌지 마멀레이드, 요거트, 치즈, 햄, 과일, 스크램블에그 등이 푸짐하게 제공되고 커피나 코카티 중 선택할 수 있는데 나는 주저 없이 코카티를 외쳤다. 아침을 먹은 후엔 다시 기절. 사실 첫날은 계속 자려고 했는데,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새어들어오는 빛 때문에 도저히 몸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뜨거운 물로 씻으면 산소를 더 필요로 하게 해서 고산병을 악화시킨다고 하는데, 한여름에도 뜨거운 물로 씻는 나는 감기 걸리는 게 더 무서워 그냥 원래 씻는 온도로 씻었다. (나는 감기 예방에는 뜨거운 물로 하는 샤워와 프로폴리스가 최고라고 맹신한다) 어차피 온도도 내 맘대로 맞춰지지 않았다.

 

오후 2시 즈음, 산프란시스코 성당으로 가보기로 한다. 원래 사가르나가 거리 쪽 숙소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지금 묵는 호텔에 꽂히는 바람에... 뭐 그래도 덕분에 그 근처에서만 있었음 못 봤을 풍경들을 많이 봤으니 됐다. 거리는 무척 번잡했고 소란했다. 이 익숙한 느낌은 뭐지? 필리핀, 딱 그쯤 되겠다. 참을성 없이 울려대는 클락션 소리, 코를 찌르는 매연, 아무데서나 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 그들의 피부색, 식민지풍의 건물들. 인디오 아줌마들의 패션만 아니라면, 여기가 동남아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슬프게도 생각보다 새롭지 않았고 기쁘게도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산프란시스코 성당 앞 광장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여행자 거리라는 사가르나가 거리를 향해 올라갔다. 일단 환전을 좀 해야 했는데, 으잉, 환전소가 눈에 보이질 않는다. 헤매고 다니며 마녀시장까지 다 구경하고, 결국 여행사에 들어가 환전소를 물어보니 "바로 옆에" 라고. 아, 민망해라. 환전은 1달러에 695볼리비아노. 100달러를 환전했다. 아직 물가에 대한 감이 없어서 얼마나 쓸 수 있는 건진 모르겠다. 슬슬 배가 고파오는데 내가 마침 암푸 거리에 있길래(?) 가이드북에 나온 모짜렐라 피자라는 식당을 가볼까 하는데, 또 마침 바로 눈앞에 그 식당 2호점이 보였다. 피자는 댈러스에서 바로 직전에 먹은 터라, 로제 파스타와 딸기주스를 시켰다. 토핑이라곤 아무것도 없이 소스와 면만 있는데, 이게 뭐라고 또 이렇게 맛있냐.

 

슬슬 체력이 고갈되고(뭐 했다고?) 해도 지려고 해서 숙소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마침 네일샵이 보였다. 비행기 몇 번 탔다고 악건성 중에서도 악건성인 내 피부는 난리가 났는데, 특히 손가락의 큐티클은 난리법석이었다. 기세 좋게 네일샵에 들어갔는데, 아차, 나는 스페인어를 1도 못했다. 번역기를 돌려도 의사소통이 안 되고. 결국 5볼짜리 매니큐어만 바르고 끝났다... 그 마저도 다 까짐. 천원도 안 하는 거였으니까 맘 쓰지 말자, 헷! 숙소로 돌아오니 미친 듯이 잠이 쏟아져 대강 얼굴만 씻고 잠이 들었는데 밤 12시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잠이 깬 뒤로 두통이 시작됐다. 시간마다 타이레놀도 먹고 고산병약도 먹었지만 결국 새벽 4시까지 편두통은 계속 되었다. 그래도 소화계통으로 탈이 안 난 게 다행이랄까. 그래도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겨우 다시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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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라는 감정

차분한 일상

**차분한 일상
나의 하루는 의미 없이 흐른다.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시간을 잘게 쪼개어 쓸 줄 모른다. 아니, 사실은 그러고 싶지 않다. 뼛속까지 나태한 나라는 인간은 핸드폰을 붙잡고 있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하는 등의 늘어진 일상만이 익숙하다. 어느 하나 생산적인 일이 없고 어느 하나 가치 있어 뵈지 않는다. 어쩐지 낙오자 같아서 우울해졌다.
그럴 때, 나는 나로써 깊어지는 시간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말도 안 되는 포장 안으로 숨어든다. 겉보기만 좋은 빈 선물 곽처럼 안은 텅텅 비었으면서, 번지르르한 말들로 내 가치를 세우려고 한다. 나는 나를 공격하는 수많은 것들로부터 나라는 사람을 그렇게 지켜냈다. 어느 시점이 되면 의미 없이 부서질 방패임을 알면서도.

 

나는 그 방패 안에서 위로 받지 못할 것을 알지만, 누군가 저 방패를 제치고 다가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기대라는 게 마음을 깎아먹는다는 걸 알면서도, 희망이란 이름으로 포장한다. 희망이라는 이름마저 저버리면 내 모든 삶이 버림받은 것처럼 처절할까봐.


<의연한 척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더 멀어질까봐. 폭풍 속에서도 굳건해 보이는 내 모습에 누군가 감동하지 않을까. 그걸로 내 삶이 조금 더 가치 있어 보이지 않을까 위로한다.
고작 내 삶은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 처참한 비명을 혀끝에 달랑달랑 매달고 있으면서, 천근같은 한숨을 목 끝에 꾹꾹 밀어 넣고 있으면서. 입 밖으론 보기 좋은 말만 해댄다. 그런 게 나를 더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걸 알지만, 사람들은 그런 걸 더 좋아한다. 눈물을 쏟아내는 사람보다 혼자 감내하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을 더 멋지다 생각한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한다는 건 어렵다. 아마 영원히 어린아이일지도 모르는 우리는. 어른이라는 책임감에 쉽게 말할 수 없다. 나는 아직 자라지 못했다고. 그래서 두렵고 도망치고 울고 싶다고. 내 지금이라도 당장 메마른 입술을 가르고 비명이 튀어나올 것 같다고.

 

.....이렇듯 언제나 차분하고 고요하게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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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한, 밤의 기록

가을, 햇살이 울던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야 이렇게 전해드리게 되어 죄송한 마음입니다.'

며칠 전, 시집 한 권과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원고지 모양의 편지지에 자필로 눌러쓴 시인의 편지였다. 지난가을 초입에 독립출판을 주제로 한 프리마켓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시인이 파는 엽서 몇 장을 사게 되었다. 그러나, 엽서에 문제가 있어 다시 보내준다고 했다. 재인쇄 후 연락한다길래 잊어버린 채 몇 주를 기다렸다. 엽서가 결국 제대로 인쇄되지 못해 편지와 함께 시집을 보내주었다. 그런데, 저 문장을 보자 마음 속 덮어두었던 감정이 떠올랐다.  

 

좋은 사람들과 청평으로 여행을 갔다. 전날 밤, 별이 빽빽이 박힌 하늘을 봤다. 그렇게 많은 별은 오랜만이었다. 또 우연히 혼자서만 두 번의 별똥별을 봤다.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며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그 시각이었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쓰러지셨다는 말에 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는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오빠랑 차를 몰고 천천히 내려갔다.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우린 말이 없었다. 

자지 않으려고 했지만, 차에서 깊은 잠이 들었다. 심해 속으로 몸이 빨려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꿈도 없는 맑은 잠을 잤다. 지방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 댁에 들렸다. 할머니 댁은 꽤 분주했다. 살아생전 할머니를 도우셨던 요양사분이 집을 정리하고 계셨고, 할머니 친구분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고모는 내려오고 있냐, 너희는 어디서 왔냐, 집은 어떻게 정리할 거냐 등 참 사소하고 평소 오지랖이라고 느꼈던 질문에 정신없이 대답했다. 그 와중에 창가에 햇빛을 보면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인형이 눈에 띈다. "너거 할머니 저거 참 좋아했는데. 매일 춤을 추댄다고."

할머니는 저 친구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멀리 있어 신경 쓰지 못해 미안하다는 자식들의 뻔한 레퍼토리가 머리 속에서 웅웅 맴돈다. 우리도 그랬구나. 

 

장례식장 입구 모니터엔 할머니 이름과 함께 나를 포함한 가족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상복을 갈아입고, 손님을 받으며 점점 실감했다. 3일의 장례는 정신없이 진행되었다. 장례 동안 여러 번의 충격이 여진처럼 밀려왔지만 흔들리지 않고 꽤  잘 버텼다. 손님들은 올 때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유에 대해 수백 번을 물었고 아버지는 수백 번을 답했다. 손님맞이를 하다 이튿날, 입관식이 있었다. 몇달 만에 마주하는 할머니였다. 평소 같은 얼굴에 깊은 잠을 주무시듯 미동이 없었다. 할머니의 품에 노잣돈을 넣고 식어버린 다리를 꾹꾹 주물렀다. 고모는 할머니 생신상에 미역국 몇 번 올리지 못했다고 오열했다. 울음 섞인 장송곡이 장례식장에 메아리처럼 울린다. 고모의 울음을 이어받아 다음 입관식에서 옆집 가족의 울음이 메들리처럼 이어진다. 

 

장례의 중반쯤, 큰어머니는 그러셨다. 앞으로 울 날이 더 많다고 계속해서 죽상으로 있는 건 아니라고. 사촌 언니는 지난 추석 때 할머니와의 통화를 잊지 못했다. 반갑게 통화 후 끊으면서 할머니는 '한 달 후에 보자'는 말을 남겼다. 거짓말처럼 한 달 후 모두가 모였다. 몇 년을 보지 못했던 친인척을 다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마지막으로 화장터에서 한 줌 재로 남은 할머니를 마주하며 보내드렸다. 화장터 옆 칸에는 새로운 가족이 들어왔다. 화구로 들어가는 관을 붙잡고 붙잡는다. 화장 후 제를 지내며 3일 동안 우리를 도운 병원 측 장의사는 한마디로 장례의 끝을 알렸다. "저희 OO병원 장례식장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이 다음에도 저희 병원을 찾아달라는 뜻으로 들리는 건 뭘까. 노래방에서 1시간이 끝나고 조심히 돌아가라는 멘트가 생각난다. 장의사의 마음이 이해도 되고 3일간의 식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아직 말라가는 눈물 자국 위에 웃음이 피식 났다. 

 

장례를 마치고, 할머니 사진과 유골함을 들고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3일 전 집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나왔음에도 매캐한 냄새가 집안을 채웠다. 허전한 빈 침대, 말라버린 고추, 가지, 호박들, 주인없는 마당에 나른한 잠을 자는 길고양이들. 사진을 들고 마당 한 바퀴를 죽 돌았다. 집을 나오는데 담벼락에 개나리를 발견했다. 새롭게 싹이 나는 것도 있었고, 활짝 핀 뒤 지고 있는 꽃도 있었다. 겨울이 얼마 남지 않아 코끝이 시큰한 계절이었다. 

 

할머니는 잠자리에서 조용히 떠나셨다. 할머니는 가난한 가정에서 부모 곁을 떠나 어릴 적부터 대감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자라왔다. 그 집에서 몸이 조금 불편한 둘째 아들과 결혼하여 남매를 낳았다. 새벽같이 밥을 하고 집안을 돌보되 본인의 위치는 숨기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작은 것에도 만족하며 과한 행복감을 표현하셨다. 힘들게 자란 만큼 우리에게도 그런 점을 요구했다. 윗사람 혹은 남자 어른에겐 '네'만 하고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 남자가 위다. 어릴 땐 그런 말들과 요구가 참 싫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의 그러한 삶이 가엽다. 그만큼 효도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이 많이 허하다. 첫 월급으로 사드린 신발도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하시는지. 더 드리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할머니의 눈가엔 항상 눈물이 말라 있었다. 할머니의 시선 끝에 머문 먼 산을 보며 고향을 떠올리는 걸까. 어린 시절을 그리는 걸까. 거친 손바닥을 한 번이라도 더 쓸어볼걸, 할머니가 가자는 곳 한 번 더 갈걸. 할머니의 모습이 잔상이 되어 맴돈다. 

 

지금 내 마음이, 시인이 보낸 편지의 첫 문장이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야 이렇게 마음을 표현하여 참 죄송할 따름이다. 장례가 다 끝나고 서울에 올라와서 쉬는데, 아이폰에서 옛날 사진이 떴다. 아이폰은 '몇 년 전' 사진들을 가끔 보여주곤 한다. 거기에서 할머니와 생신 때마다 가던 여행 사진이 보였다. 가을 억새와 함께 가족은 환하게 웃고 있다. 

 

할머니는 잔치국수를 참 잘 말아주셨다. 라면보다 간단히 만드셨다. 어릴 적 할머니 손에서 컸다. 자고 일어났는데 엄마가 없어 펑펑 울었다. 할머니는 달래주면서 얼른 잔치 국수를 말아주셨다. 참 편하고 맛있게 먹던 그 음식은 손이 많이 간다. 채소를 하나씩 다듬어서 일일이 볶고 육수도 따로 내야 하고, 면도 따로 삶아야 한다. 그만큼 정성을 필요로 한다. 매일 할머니의 마음과 손길을 먹고 살았다. 지금 그 잔치국수가 어느 때보다 너무 그립다.

볕 좋은 날에 떠난 할머니가 그곳에선 매일 잔치 같은 나날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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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어떤 여행

[안녕,어떤여행] D+02 남미 도착

 

생각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아침을 먹어야지, 진짜 American breakfast다. 빵, 씨리얼, 베이컨과 스크램블 에그 정도의. 그래도 셀프로 구워 먹는 와플과 블루베리 요거트가 제법 맛있었다. 예의 위염 때문에 과식은 자제 중인데 먹다 보니 금세 배가 차올랐다. 방으로 돌아오니 약간의 두통과 메스꺼움이 있어서 조금 더 자려고 했지만 잠이 들진 않았다.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씻고 짐을 다시 정리하는데, 가방이 닫히질 않아 또 땀을 뻘뻘 흘려야만 했다. 마이애미로 가는 비행기는 오후 5시 10분인데, 체크아웃에 맞춰 셔틀은 오후 1시로 신청했다. 혹은 신청당했다. 사십 분 정도 시간이 남아서 바깥 구경을 나섰는데 그냥 도로 옆이라 아무것도 볼 게 없었다. 쇼핑몰이 옆에 있다는 베스트 웨스턴으로 갈 걸 그랬나? 그래도 룸은 맘에 들었으니까 됐어.

 

공기에도 냄새가 있다는 말을 실감한다. 이곳에선 미국 냄새가 난다. 미군 캠프에서 일할 당시에 맡았던 냄새가 여기서 똑같이 난다. 그리운 봉덕동, 그리고 미묘하게 뉴질랜드의 냄새도 난다. 정갈한 인도도, 도로 옆인데도 풀 냄새가 나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영어권 사람들에게선 같은 냄새가 나는 걸까. 혹시 내겐 마늘 냄새가 날까? 나는 한식을 좋아하지 않지만 말이다.

 

미국에선 계속해서 어리버리함의 연속이다. 일단 출국 전까지 터미널이 정해지지 않아, 일단 같은 셔틀을 탄 남자와 함께 터미널 B에서 내렸다. 무작정 게이트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A 어쩌고 저쩌고라는데 되묻고도 못 알아들어서 그냥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입국장으로 가려고 하니 되돌아 가란다. 체크인을 안 했단다. 아, 우리가 생각하는 체크인 카운터와 완전 다른 모습의 체크인 키오스크가 몇 대 있었다. 키오스크에 갔더니 뭔가 문제가 있는지 직원에게 문의하란다. 또 어리버리하게 직원에게 갔더니 엄청 답답해하며 처리를 해준다. 입국장에 들어가는 보안검색은 엄청 까다로워서 신발까지 벗어야 했고 터질 듯한 백팩을 열고 검사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래도 아저씨들은 모두 사람 좋게 웃어준다.)

 

알고 보니 A 어쩌고 저쩌고는 A24 게이트였고 스카이링크를 타고 터미널 A로 이동했다. 점심 먹을 시간이 지나 식당을 찾아 헤매다 밀가루를 피해 보고자 아시안 요리를 파는 식당에 갔는데 직원의 불친절함 +남동생의 미국 피자 타령 +치명적인 피자 냄새 때문에 결국 캘리포니아 피자를 파는 식당으로 갔다. 두 시간 동안 피자를 먹고 일기를 쓰는 동안 직원이 계속 나를 체크(?)해줬는데, 계산을 할 때 팁이 낯설어 카드를 냈더니 음식값만 결제되고 영수증을 가져다준다. 거기에 팁을 적는 란이 있어 3달러를 적고 기다리는데 계산이 끝났다고... 엥, 그럼 팁은 언제 주는 거죠? 버벅거리며 일단 그냥 나왔는데, 그냥 현금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나오면 되는 거였을까? 아무튼 짠순이 코리안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후에 영수증에 팁을 체크해두면 추가로 결제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이애미에서는 환승 시간이 짧은데, 십오 분 연착이란다. 오 마이갓! 거기다 삼십 분 더 연착. 망했다. 연착된 비행기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므로 일단은 자기로 한다. 마이애미에 도착한 시간은 9시 30분, 라파즈로 가는 항공편 탑승 시간은 9시 20분부터. 방송으로는 계속 환승 고객을 위해 양보해달라고 하는데 다들 빨리 내리려고 난리였다. 겨우겨우 비행기에서 내리니 9시 40분, 내리자마자 마이애미로 가는 게이트 물어보니 다행히 같은 터미널이다. 부지런히 D20을 향해 걷는데 라스트콜로 내 이름이 불린다. 마침내 옆에 걷던 부부도 함께 불려서 셋이 엄청 뛰어 겨우 마지막으로 탑승할 수 있었다. 만약에 탑승을 못했다면... 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라파즈로 가는 비행편은 하루에 한 편이다. 일본인 여자 두 명과 함께한 일곱 시간의 비행은 열두 시간 비행 못지않게 힘들었다. 각종 약 덕분에 잠은 미친 듯이 쏟아지는데, 자리가 너무 불편했다. 안고 있는 카메라는 또 얼마나 성가신지, 이럴 땐 내가 왜 널 데리고 왔을까 싶다.

 

무사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도 해발 3,700m의 라파즈에 도착은 했는데, 입국 심사가 원활히 진행된 것에 반해 호텔에서 보내기로 한 드라이버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호객하러 나온 택시 아저씨가 호텔로 전화해 뭐라고 얘기하더니 나보고 스페인어를 할 수 있냐고 묻길래 영어밖에 못한다고 했더니 (영어를 할 수 있는 게 맞긴 한 건가 싶지만) 전화를 끊고는 "택시 타고 오래" 란다. 그리고 뭔가 시간과 관련한 설명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는 못 알아 들었다. 라파즈는 택시 강도 후기도 있고 외교부 문자에도 콕 집어 택시 조심하라고 해서 일부러 픽업을 신청한 건데 꼼짝없이 택시를 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른 아저씨의 택시를 타고 숙소 바우처를 보여주고 몇 번이나 확인을 하고 요금도 15달러(픽업은 16달러였다)라고 확인을 하고 택시를 탔다. 그리고 호텔에 전화해준 아저씨는 그제야 전화를 사용한 돈을 달라고 했다. 그냥 1달러짜리 한 장을 줘버렸다.

 

새벽의 라파즈에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꽤 돌아다니고 있었고 택시는 롤러코스터 수준의 경사를 달렸다. 무사히 호텔 앞에 도착했고 택시 아저씨에게도 1달러의 팁을 더해 16달러를 줬다. 이건 진심으로 무사함에 대한 감사의 팁이었다. 리셉션의 아저씨는 영어를 정말 1도 못해서 대강 숙박부를 작성하고 아침 식사 시간만 확인하고 곧장 침대로 뛰어들었다. 종일 이동만 하며 하루를 보냈다. 역시 남미는 멀고도 먼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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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어떤 여행

[안녕,어떤여행] D+01 남미는 멀다.

 

미리미리 준비한다고 했지만 결국 떠나기 직전 아침에서야 마무리된 짐싸기. 그런데 필요한 짐을 다 담고 나니 캐리어가 닫히질 않았다. 결국 짐을 하나씩 빼고 또 빼고. 그래도 결국 22킬로그램이나 되는 캐리어와 어깨가 빠질 것 같은 백팩을 짊어지고 아슬아슬하게 동대구 복합환승센터에 도착해서 예약해둔 리무진에 탑승했다. 2시 조금 넘어 인천공항에 도착해 위비뱅크와 써니뱅크로 신청해둔 달러를 찾고 커피앳홈에 갔더니 무료 음료는 커피만 된다고 해서 오랜만에 라떼를 마셨는데 마시자마자 위가 아파와서 반만 마셨다. 그 좋아하는 라떼도 마음껏 못 마시다니, 쳇. 지난 오년 반의 회사 생활이 내게 남긴 것은 고작 이런 것뿐이다. 슬슬 체크인을 하러 갔더니 아직 카운터가 열리지도 않았는데도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열두 시간이 넘는 비행이라 복도석에 앉고 싶었는데 사전에 좌석 지정을 하려니 10만원 가까이 추가로 줘야 가능해서 일찍 체크인하는 걸 노리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망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 뒤로도 어마어마하게 줄이 서기 시작해 나는 무사히 복도석을 잡을 수 있었다.

 

명가의 뜰에서 제육볶음이랑 늦은 점심을 먹는데 왜 이렇게 서글픈지 모르겠다. 오랜만의 혼자 출국이라 영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사실 이번엔 준비하면서 너무 힘든 나머지 진심으로 내가 왜 여행을 가겠다고 했는지 후회를 했다. 누가 가라고 시킨 것도 아닌 데 가기 싫어서 죽겠는 마음.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항공권 예약들. 간다, 그래! 동생 넷북을 빌려가려고 했는데 넷북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포기하고 동생 몰래 동생 외장하드를 챙긴 터였다. 그런데 공항으로 오는 길에 메모리 카드 리더기가 없다는 사실과 함께 선글라스를 두고 왔다는 사실도 덤으로 깨달았다. 면세점에서 직원의 추천으로 선글라스 하나를 충동적으로 샀고 가까스로 리더기도 구입했다. 언제나처럼 바쁘게 아시아나 라운지에 들러 면세품 정리를 하고 양치하고 비행기에 타니, 아, 엄마한테 전화를 안 했네? 일단은 가자.

 

얼마 전 칸쿤에 다녀온 친구의 후기도 그렇고 아메리칸 에어라인은 악평이 자자해서 걱정했는데, 새로 도입한 기종이라더니 시설은 굉장히 좋았다. 자리도 화장실이 보이는 중간 복도석이고 옆엔 한국인 남자 둘이 일행이라 자리를 비켜줄 필요도 없어 보였다. 참, 나는 누가 봐도 한국인이고 VOD도 한국어로 설정해두고 있었는데 내 옆의 남자는 굳이 내게 "sorry" 라고 영어로 말을 했다. 무슨 심리일까? 웰컴 음악은 굉장히 신나는 팝이었고 기내 안전 영상은 상당히 트렌디했으며 승무원들은 난동을 부렸다간 그대로 등짝을 때릴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서비스는 실로 쿨-했다. 나는 주로 아시아와 중동 항공사를 이용했기 때문에 상당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약 열두 시간의 비행은 아무리 시설이 좋고 자리가 좋아도 힘들다. 비즈니스나 퍼스트를 타면 얘기가 좀 달라질까? 간식으로 제공된 라면을 포함해 세 번의 기내식을 받았고 모두 배가 고프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만 먹었다. 그럼에도 배가 빵빵해서 힘들었다. 잠은 거의 자질 못했는데 다리가 짧은 건지 의자가 높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발이 바닥에 딱 붙지 못해 내내 다리가 불편했다. (후에 유독 AA항공의 좌석이 높다는 걸 알았다, 나의 짧은 다리 탓만은 아니었던 걸로.)

 

12일 저녁 6시 30분에 출국을 했는데, 댈러스에 도착하니 12일 저녁 5시였다. 과거로 왔네? 우와, 신기해! 시차가 이렇게 많이 나는 나라는 처음이라서 괜히 신기했다, 촌스럽게. 댈러스에 도착해서는 미리 미국 입국 과정 공부를 좀 할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사람들을 따라서 움직이면 되지만, 이게 입국 심사인지 세관 심사인지 알 수 없어 어리버리하게 굴었다. 키오스크로 세관 신고서를 작성하고 세관 심사를 받는데, 뭐라고 묻는데 못 알아들어서 어버버하고 있으니 "과일?" 하고 한국어로 물어봤다. 하하. 미국 입국 과정은 그야말로 줄 서기의 연속이었다. 마지막 과정은 (아마도) 입국 심사였는데, 하루만 머물고 볼리비아에 간다니 "오, 볼리비아. 좋은 여행 되렴." 하고 쿨하게 입국 도장을 찍어주었다. 어리버리하게 굴었지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수월하게 입국했다. 휴.

 

공항 근처 지역인 어빙의 호텔을 예약해뒀는데 무료 공항 셔틀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아 출국 직전까지 애를 태웠다. 결국 부킹닷컴 측에 문의해 공항에 도착해 숙소로 전화를 하라는 답을 얻었다. 전화? 전화라고? 원래 전화를 싫어하는데, 거기다 영어로 전화라니, 눈앞이 깜깜했다. 입국장은 완전 심플해서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공중전화도 없었다. 와이파이 신호도 안 잡혀서, 결국 휴대폰 국제 전화로 숙소에 전화를 걸었었다. 대강 말을 하고 대강 알아듣고 끊은 후 내키는 대로 가다 보니 호텔 셔틀 타는 곳이 보이길래 무작정 기다렸더니 셔틀이 왔다. 하, 언제나처럼 눈치와 운빨로 살아남았다.

 

숙소 체크인을 하면서 저녁 식사할 곳을 물어보니 오 분 정도 걸어가면 식당이 있고 배달을 시킬 수도 있다고 했는데, 나가기엔 조금 늦은 시간이었고 배가 별로 안 고픈데 배달은 최소 금액이 있는 데다 전화하기 것도 싫어서 그냥 호텔 로비에서 파는 냉동 마카로니앤치즈를 간단히 먹기로 했다. 미국에 왔으면 쇼파에 누워 맥앤치즈 정도는 먹어줘야지? 숙소는 꽤 좋았다. 침실과 거실이 따로 있는 스위트룸이 기본 객실이었는데 꽤 깨끗하고 아늑했다.

 

8시가 조금 넘자 미친 듯이 졸리기 시작했는데 출국하기 전에 부모님께 전화를 못한 게 마음에 걸려서 엄마랑 통화 가능한 시간이 될 때까지 버티다, 결국 10시 반에 엄마랑 페이스톡을 하고 잠들었다. 침대는 너무 푹신했는데, 너무 피곤하다 보니 자꾸 깼다. 깨서 더 잘 수 있음을 확인하고 다시 잠드는 행복을 만끽했다. 단, 층간소음이 좀 있어서 위층의 쿵쿵 거리는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고 도로 쪽에 위치해 차가 쌩쌩 지나가는 소리도 들렸지만 나는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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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어떤 여행

[안녕,어떤여행] D-Day 여행의 시작

 

꿈에 그리던 남미

페루·볼리비아·칠레·아르헨티나·브라질

덤으로 뉴욕

어쩌다 도쿄까지

 

 

갑작스럽게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이 되지 않아 꽤 곤혹스러운 시간을 가진 끝에 어렵게 구한 직장이었다. 5년 5개월 동안의 회사 생활은 취업 준비생 시절이 그리웠을 만큼 힘들었다. 업무는 괜찮았지만, 그 업무를 제외한 모든 것이 나를 힘들게 했다. 늘 퇴사의 꿈을 품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직장인처럼 버티고 버텨가던 중, 자의반 타의반 좋은 조건으로 회사를 그만 둘 기회를 얻게 되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직 의사를 밝혔다.

남미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남들은 몇 달씩 준비해서 가는 여행을 단 2주 만에 준비해서 떠났다. 조금 쉬다가 출발하고 싶었지만, 물 찬 우유니를 보려면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준비를 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며칠 동안 앓아눕기도 했다.  숨 가쁘게 준비를 마치고 보니, 어느덧 떠나는 날이 되어있었다.

이렇게 여행은 '덜컥' 시작되었다.

 

자아를 찾겠다거나 새로운 인생을 찾겠다거나 그런 거창한 이유나 목적은 없었다. 그런 꿈을 꿀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회사를 그만뒀으니 어디로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내게는 좀 기계적인 선택이었다. 가슴이 부풀지도 않았고 설레지도 않았다,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지만. 그냥 떠나야 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의무인양 나는 떠났다.

여행을 하는 동안도 나는 그랬다. 흔히 회사를 관두고 꿈을 찾아 떠나온 여행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풍부한 영혼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계획한 대로 하루하루를 보냈을 뿐이었다, 회사에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듯.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기에 나는 이제 나이가 많았고, 너무 많은 것을 보고 겪었고, 또 지쳐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여행기는 다소 드라마틱한 모험을 기대한 사람들에겐 아주 시시하고 심심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무미건조한 기록이 누군가에겐 꿈의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그 기록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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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뉴질랜드에서 살고 있다는 건

2000년, 12월 초.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뉴질랜드로 떠나왔을 때,

'과연 뉴질랜드라는 낯선 땅에서 적응하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보다는, 그저 설레고 마냥 기분 좋았던 어렸던 나에게 환상을 심어줬었지. 

한국은 추운 겨울이었던 12월이 뉴질랜드에서는 여름이라는 것도 마냥 신기했고,

길거리에는 동양인보다 서양인이 당연히 많았던, 조금은 아니 많이 낯설었던 뉴질랜드의 삶이 시작되었다. 

 

뉴질랜드에서는 어떤 환상적인 일들이 일어날까? 늘 기대했던 나에게 큰 시련이 다가온 것은, 

영어의 A도 모르고 무작정 학교부터 입학한 것이었다. 

언어의 장벽은 생각보다 굉장히 큰 벽이었고,

그 벽을 뛰어넘기엔 의지가 없었던 나에게 낯선 외국인들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자꾸 말을 걸어오는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으면 영어가 빨리 늘었을텐데

파란 눈동자를 가진 그들의 눈을 보고 있으면 괜히 부끄럽기도 하고,

내가 하는 말을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면 어쩌나 쓸데없는 걱정에 도망만 쳤던 나.

결국, 영어를 배우기 좋은 환경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한국인들끼리만 어울리며 영어를 소홀히 했었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뉴질랜드에서 살면 현지인처럼 영어 진짜 잘 하겠어요~"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현지인처럼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영어 한 마디 못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답니다. 얼마나 노력을 했고, 얼마나 공부를 했느냐에 따라 틀려요~ 오래 살았다고 해서 무조건 영어를 잘 하는 건 아니예요."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부터라도 노력하면 유창한 영어실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2017년 12월 초, 

17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뉴질랜드의 여름은 여전히 아름답고 예쁘다. 

바닷가에 놀러가기 딱 좋은 요즘, 언제 바다 놀러가지? 생각에 들떠있다. 

영어공부는 늘 해야하는 일, 여전히 영어는 어렵지만 사는 데 지장없으면 됐지, 뭐. 

 

이제 2017년도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그저 이 순간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가자. 

지금 이 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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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오늘도

행여나 내가 화를내면 너가 기분이 나쁠까

노심초사.

어떻게 하면 최대한 완곡하게 내가 기분이 상했다는걸

웃으면서 말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잔뜩 토라져도, 눈물이 범벅이 되도

애틋하게 내려다봐주던 너인데

무엇을 잘못했을까 내가.

 

너와 싸우다 큰소리를 내면

나는 또 너에게 혼날 일만 만드는거더라.

너의 행동에 아무리 화가 나도,

너가 사과를 하면 나는 받아줘야하더라.

그저 내 기분 아랑곳하지않고

급하디 급한 사과이기에

받아주지않으면,

나는 노력하는데

너는 노력하지 않는다며

매서운 질책이 날라온다.

 

내가 노력하지 않은게 뭘까....

난 너의 가벼운 말들에

상처를 받고,

화가 나서 뱉은 말들에

너는 화를 낸다.

나는 실수로 뱉었지만

너는 일부로라고.

 

졸지에 너는 실수가 잦은 아이가 되고,

나는 일부로 남에게 상처주는 못난이가 된다.

그거 알아?

실수가 안고쳐지는건

그냥 성격인거야.

톡 쏘아주고 싶지만,

행여 너가 상처 받을까, 나는 또 고민한다.

 

너무 많이 붙어있었던걸까.

너무 많은걸 함께한걸까.

 

처음,

나에게 열심히 산다며 대단하다고

웃어주던 너.

사귀었던 날. 이뻐서 눈도 제대로 못보겠다고

설레었던 너.

어디 의지 할 곳 없어서 핸드폰 붙잡고 울던 나에게

너앞에서만 울라고 했던 너.

 

그런 너는 이제 없더라.

 

그저 너만 생각하는 나인데.

퇴근하면 너를 조금이라도 혼자두지 않기 위해

내달리는 나인데.

맛있는거 해먹이겠다고 피곤한 몸 이끌고

이것저것 끄적이는 나인데.

너가 조금이라도 덜 힘들어하기 위해

퇴근하고 또 다시 너가 마치는 곳으로

향하는 나인데.

 

나는 너에게 노력조차 안하는 못난이가 되었지.

 

내가 아닌 핸드폰을 바라보는 너의 눈이.

내 손이 아닌 호주머니로 향하는 너의 손이.

내가 먹고싶은게 아닌 너가 먹고싶은 음식을 찾는 너의 입이.

그 모든게 견디기 힘들어서

헤어지자 했을 때.

 

너에게 돌아온 말들.

'변한듯한 행동들은 잘못했어. 마음이 변한건 아니야.'

'나만 말 심하게 한거아니야. 너도 말 심하게 했잖아.'

'나는 아직 너가 좋아.'

 

그래 나도 아직 너가 좋으니까

한번 더, 너의 손을 붙잡았다.

 

처음처럼 돌아온

애정.

손길.

시선.

칭찬.

 

그 짧고 덧없는 행복은

얼마지나지 않아 드러나버렸어.

너는 노력을 참 잘하는 아이라.

내가 원한건

자연스러운 사랑인데

너는 그걸

노력으로 할 수 있더라.

 

헤어짐을 뒤로 미루고

계속 만나자 했을때,

너는 벼르고 있었던 걸까.

얼마못가 또다시 너의 말실수로

내가 화가나 있을 때,

너는 사과를 했지.

얼른 넘어가려고 하는 듯한 그 사과에

기분이 더 나빠져

화를 풀지 않았더니,

 

너는 말하더라.

 

'나는 너가 장난쳐도 넘어갔잖아.'

'너가 저번에 잘못하면 바로 사과하라고 해서 사과했잖아.'

'사과했는데 안받아주는건 너잖아.'

'너 혼자 있으면 심심할까봐 나 공부 쉬는 시간에 바람 쐬러가자고 배려해주는데 난.'

'나는 노력하는데 너는 노력을 안하잖아.'

'넌 변하는게 없잖아.'

'상대방에게 일부로 상처주잖아.'

 

결국. 같더라.

너의 말이 장난 수준이 아니기에 나는 화를 낸거였다.

사과를 했지만 얼른 화해하고 나가려고 애쓰는 사과라

나는 더 화가났다.

쉬는 시간에 나가자고 제안하는건 배려가 아니라 당연한 사랑인거다.

내가 노력을 안했다면.

너가 받은 사랑은 뭐였을까.

나는 화가나도 화를 내면 안된다.

 

너의 말에 따르면

싸움이 커지는건

너의 아주 작은 잘못에

내가 화를 내서

너를 화나게 만들기 때문이라니까.

 

나는 또 참아야겠지.

 

기억해?

멀리 떨어져있던 너가 아팠을 때,

나는 다 팽개치고 바로 열차를 예약해서

뛰어갔어.

 

바로 옆에있던 내가 아팠을 때,

너는 전날 싸운일을 기억하며

등을 돌려 잠만 자더라.

 

내가 아프다고 할 때마다,

너는

내가 너를 기분나쁘게 한 일이 있다며

신경조차 써주지 않아.

 

나 아픈데 왜 안봐줬어.

'너랑 싸운거 때문에 기분이 안좋았어.'

 

그래..

시간이 흐를수록 달라지는 거니까

나는 이해해보려 한다.

내 끝났던 모든 사랑들이

나의 이해로 끝이났지만,

너도 나는 이해해보려 한다.

 

이건 사랑이 맞는데.

웃을 때, 우린 너무 행복한데

나는 슬프기도 하다.

어쩔 수 없는 흐르는 시간이

나는 야속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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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의 날들

아름다운 우리의 날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을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일상속에서 삶에 만족할 수 있을까?
삶에 만족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그 만족감을 어디에 두고 있나?
나는 아직도 이쪽과 저쪽에 두 발을 어정쩡하게 걸친 채 서있다.
지금 삶에 만족하는 것은 어쩐지 안주하는 것 같아서 뭔가 더 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고개를 들 때가 있다.
마음은 조급해져 가고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
삶에 만족하지 못함은 현재를 온전히 향유할 수 없게 한다.
현재를 음미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 이 시간, 순간에 내가 있지 않은 것이다.
삶이 나에게 주는 많은 것들을 놓쳐 버리는 것이다.
삶의 만족을 내가 가지고 있는 소유물에 놓는다면 나는 그것에 영원히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남들이 보는 나에 초첨을 맞춘다면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할 때 나는 더이상 무언가를 찾아 헤메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미 많은 것들을 가졌고 누리고 있다.
나는 존재 자체로 빛난다.
내가 찾아 헤멨던 것은 '특별한 나'가 아니라 가장 나다운 '있는 그대로의 나'였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삶이라는 꽃을 피우는 것.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계속해서 이어지는 하루하루의 나날은 내 삶의 한 조각들이다.
나날의 조각들은 한 데 모여 하나의 작품이 되어져 간다.
무엇을 더 해야 하고, 무엇을 더 가져야 하고,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것이 아닌
나를 알아가고 나를 경험하는 것이 우리 삶의, 나날의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듯 보이는 일상이지만 실은 너무나 다채롭다.
나는 어제보다 오늘 더 성장했고 내 안의 한 부분을 경험했다.
삶의 만족은 현재에 두 발을 딛고 있을 때 충만하게 밀려온다.
우리의 나날은 그래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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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열린 생각

로봇 친구 앤디 [2017.1112.일]

 

안녕? 나는 오늘 로봇 친구 앤디 라는 책을 소개 할거야. 주요 등장인물을 설명할게. 주인공은 '이로'야. 이로의 외삼촌이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어서 이로랑 같이 지내게 했어. 그 로봇은 이름이 '앤디'였는데 이로랑 성격이 비슷비슷 했어. 그래서 둘은 금새 친해졌지. 이로에게는 '세아'라는 친구가 있었어. 그런데 세아는 의족을 가졌어. 의족이 뭔지 알지? 가짜다리 말야. 교통 사고로 다리를 다쳤지 뭐야. 안타깝지? 세아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의족을 가장 져렴한 겄으로 사야됬어. 그건 되게 무겁고 오래 착용하고 있으면 닿는 부분마다 아픈 거였어! 많이 힘들었겠지? 그 사실을 안 이로 외삼촌은 새로운 의족을 만들어 주었지.

 

마지막으로 이로 학교에 새로 전학 온 아이가 있었는데 이 아이는 이름이 두 개야. 하나는 도윤이고 다른 하나는 태오야. 이상하지? 내가 설명해 줄게. 도윤이는 그 아이의 얫날 이름이야. 그리고 태오는 새로 지은 이름이고. 도윤이 할아버지가 자기 손자를 로봇으로 만들어 기억을 잃게 했고 나쁜 아이로 만들었지 뭐야? 이상한 할아버지야, 그치? 그러면서 이름도 태오로 바꿨대. 도윤이는 원래 이로와 유치원 때부터 친구였어. 그런데 이 학교로 전학왔을 때 이미 태오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이로를 기억하지 못했어. 다행히 태오는 기억을 찾고 다시 도윤이로 돌아왔어.  어느날 태오가 잠에서 깨어났는데 할아버지의 방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대. 호기심이 생긴 태오는 할아버지 방에 있는 조각상 뒤에 숨었지. 그런데 할아버지는 태오의 얘기를 하고 있었던 거야! 그것 때문에 자신이 태오가 아닌 도윤이 라는걸 알았지. 그리고 엄마가 큰 위험에 처해 있다는걸 알았지.

 

나는 로봇 친구 앤디 책을 읽고 나서 도윤이가 정상으로 돌아와서 이로와 다시 친해진 해피 앤딩이 좋았어. 그리고 도윤이 엄마도 다시 찾아서 좋았어. 하지만 나쁜 점은 처음 파트 몇몇 부분에서 도윤이랑 태오랑 헷갈렸어. 또 도윤이를 그렇게 만든 할아버지가 미워!

 

나도 앤디처럼 인공지능 로봇이 있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로봇이 있으면 하나도 안 외롭잖아. ^^ 그리고 숙제할 때도 도와주고 같이 이것 저것 할 수 있잖아~~ 그렇니까 미래 세상에 로봇이 생기면 나도 꼭~ 하나 가질거양!! 오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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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여행기

1._저마다의 여행

오랜만에 출장을 다녀왔다. 대규모의 인원을 끌고갔던 이전 출장과 달리 이번에는 나를 포함,

달랑 두명이서(그것도 잘 모르는 분) 다녀오는 출장이었다. 기사님을 포함하여 세명,

회사 앞에서 출발한 승합차는 출장지를 향하여 달렸다.

안면 한 번 튼 사이이기에 날씨 얘기가 끝나니 할 말은 현저히 줄었고,

다른 직원은 잠에 빠졌고, 나는 창 밖에 빠졌고,

기사님은 운전에 열중하였다.

최근의 고민들이 머릿속을 채웠고,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의 뜻하지 않던 여유에 빠져

여행아닌 여행을 즐겼다.

 

단조로운 풍경에 지쳐 살짝 눈이 감기던 찰나,

차가 휘청하더니 클락션 소리가 들렸다.

뒷 차의 클락션.

고속도로에서는 웬만하면 듣지 못하는 소리이기에,

눈만 똥그랗게 뜬채 기사님 쪽을 보았다.

룸미러로 보이는 기사님의 이마는 발게져있었다.

눈을 볼 수 없었지만 적지않게 당황하신 모양이었다.

다행인건지 곤히 잠든 다른 직원은 상황을 알지 못한다.

내 잠은 이미 달아난지 오래였지만,

혹여나 기사님이 더 당황하실까하여 짐짓 모른척하고,

룸미러를 슬쩍슬쩍 보았다.

 

'부스럭, 부스럭'

 

기사님의 눈은 정면을 향했지만

기사님의 오른손은 조수석 한켠에 벗어 놓은 점퍼로 향했다.

호주머니 속,

투명한 비닐봉지를 꺼내셨다.

오래된 듯, 구김이 심한 봉투 안에는

종류도 가지각색인 사탕 한웅큼이 들어있었다.

익숙한듯

한 손으로 한알을 집어 포장은 이빨로 뜯으셨다.

 

'까드득'

 

사탕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간 얼마나 많은 사탕을 드셔왔을까.

우리 회사의 계약업체(승합차) 기사님 중, 가장 연세가 많으시다던데.

무수히 많은 졸음을 깨오셨을 거다.

사탕으로도 해결이 안되는 듯,

조수석  앞 서랍으로 손이 향하신다. 여전히 눈은 정면을 응시한 채,

느낌만으로 낚아챈 병은

편의점이나 약국에서 파는 박카스.

사무실에서 야근하거나, 공부를 할 때 먹곤했던 박카스.

순식간에 한 병, 두 병. 다 드셔버렸다.

인근 휴게소에 들르시더니 또 드시는 두 병.

총 네 병.

 

휴게소에 도착하자 기지개를 피는 다른 직원은

오랜만에 푹 잠을 청했는지 얼굴이 퉁퉁 부었다.

나는 풍경이 유명한 휴게소라는 말을 듣고

휴게소 뒤 쪽에서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산을 바라보고 있자니,

답답한 모니터 화면을 뚫고 나온 기분이었다.

 

공기 좋은 출장지에 도착하여, 간단한 업무를 보고

먼저 출장와있던 담당 직원과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있었던 일이 심히 걱정돼서.

 

"저기, 오늘 기사님 유독 조시더라고."

"엥?, 그 분 나이가 있으신 분이라 일부로 어제 초저녁에 서울로 보내드렸는데.

  이상하네요. 충분히 주무셨을텐데.. 피로가 덜 풀리셨나?"

"아, 그래? 박카스 네병을 연달아 드시더라. 박카스라도 좀 더 챙겨드리고, 난 다른 기사님이랑

 올라갈테니까. 기사님 나중에 올려보내드려."

 

지극히 업무적 전달만 마치고, 지극히 통상적인 안부를 묻고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승합차에 탔다.

3시간이 걸릴 예정이라는 서울행 기사님의 말에,

창밖으로 눈을 돌렸고.

다시 한 번, 고민들을 정리하는 생각의 세계로 빠질 준비를 하였다.

 

"오늘 내려오실 때, 기사님 어떠셨어요? 많이 피곤해하시던데."

 

정적을 깨는 서울행 기사님의 한 마디.

 

" 아. 음.. 조금 피곤해하시긴 했는데 별 일 없었어요."

" 아 그래요? 워낙 연세가 있으셔서. 저도 안졸라면 박카스나 먹어야겠습니다."

 

순식간에 동나버린 빈 병을 바라보며.

나에게는 생각 정리와 휴식의 여행이었던 시간들이

이들에게는 치열한 생존과 업무였음을 또 한 번 느꼈다.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데도

누군가는 투쟁을 벌이고 있고,

누군가는 머리를 비우고 있었다.

물론 나도 업무적 차원의 출장이었지만.

그 조차 훌륭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공간에 있던 이들에게 그 시간은

여행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다는 위압감에 눌린채,

윤택한 삶을 위해 정면만을 바라본 것이다.

 

양 옆 창문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가을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들은 아스팔트를 보아야했다.

그들의 업무를 체감한 순간,

홀로 여행한 듯한 미안함과 어색함이 감돌았다.

어쭙잖은 동정. 그 안타까움으로

창밖만 바라보고 있을 때.

너무나도 활기찬 목소리로 기사님으 물으셨다.

 

"우리 어느 고속도로로 갈까요? 00고속도로는 빠르긴 한데 @@@고속도로가 풍경이 더 이쁘더라고요."

"아 그래요? 기사님 바쁘실까봐 걱정되는데 괜찮으세요?"

"아유 평일에는 뭐. 비슷해요 두 길 다. 오랜만에 풍경이나 구경하시죠."

"저야 좋죠."

 

의외의 질문과 의외의 답변.

정말 자주 지나다니는 길일텐데 승합차 안은 어느새 활기가 돌았다.

기사님 말씀대로 가을 산으로 유명한 그 곳은

눈에 가득 차 넣기도 안 될만큼 아름다웠다.

연신 사진을 창문에 대고 찍고 있었다.

 

"그러지말고, 잠깐 저 쪽에 세워서 사진 좀 찍으실래요?"

"기사님 안바쁘시겠어요? 저는 괜찮은데."

"아이고 그거 잠깐 5분 서서 구경한다고 큰일나나요."

 

꽤나 시원시원하신 기사님은 어느새,

'포토 스팟'이라며 차를 세우셨다.

 

갓길에서 좀 더 떨어진 그곳.

마치 도로 위에서 풍경을 채우는 듯한 그 느낌을 온전히 느끼며

사진을 찍었다.

 

"여기 서보세요. 한장 찍어드릴게요."

 

찰칵.

 

연신 감탄하는 나를 보며 뿌듯해하시는 기사님은,

즐기고 계셨다.

여행이었다.

 

나는 도대체 왜 오롯이 나만 여행하고 있다고 생각한걸까.

바쁘고 치열한 삶 속에서

잠시 떠나는 것이 바로 여행인데.

그들은 운전대를 잡는 그 시간 중에서도

그들만의 여행을 즐길 때가 있었다.

그들도 잠시 차를 세워 풍경을 즐기며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출장이라는 업무속에서도

잠시의 여행을 즐길 줄 안다고,

으스대고 있었는지 모른다.

 

모든 이들의 여행이 모두

같은데 말이다.

 

누군가는 일상을 벗어난 찰나의 그 순간을 여행하고.

누군가는 색다른 곳으로 떠나는 그 순간을 여행하고.

누군가는 삶을 여행한다.

 

우리는 즐기고 있는 것이다.

저마다의 여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