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어보기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2017년 참 고마운 나날들이여~

2017이 끝나간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은 2017년의 마지막 날. 

2017년에는 무슨일들이 있었는지 쭉 돌아보면 참 감사한 일들만 가득했다.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남자친구와의 결혼.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꿀맛같은 신혼생활을 즐기던 중 찾아온 아기 천사까지.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던 2017년을 보내면 새로운 한 해가 찾아온다. 

 

다가올 2018년에는 예쁜 아기가 태어날 예정이며, 나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는 나에게도 행복만이 늘 가득하기를 기도하고 바래본다. 

하루하루 열심히 즐기며 행복하게 지내려 노력했더니 정말 행복한 일들이 가득했다. 

역시 생각하기 나름이다. 인생은. 그리고 그 날의 기분을.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일들이 가득 찾아오지만, 불행하다 느낀다면 불행만 가득 찾아올 것이다. 

매일 행복하다, 주문을 외운다면 정말 행복한 일들이 소소하게 찾아오기 마련인 것을 나는 왜 이제서야 알게 되었을까?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하루하루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분명 정말 소중한 선물이 가득 찾아올거야. 

그러니까, 소소한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내가 되어야지, 다짐해본다. 

 

글 이어보기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너를 떠나 더 행복한 곳으로

 

네 옆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사람마냥 늘 웃고 행복했던 그런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온 세상이 너로만 가득차 있던 그때의 나는, 그저 철부지 어린 아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너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세상이 너였을 때, 넌 너의 세상의 전부가 다른 것이었지. 

그렇게 우린 엇갈리고 엇갈려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지쳤었지. 

 

대화를 해도 무색해질 만큼 서로의 의견과 생각이 너무나 달랐었던 우리의 앞에 결국 이별이란 게 놓여있더라. 

나는 널 붙잡으려 안간힘을 써봤지만 넌 이미 저 멀리 떠나버렸구나. 

 

나는 너를 떠나 더 행복한 곳으로 갈거야. 

그게 어디든, 내 세상의 전부였던 널 버릴거야. 

난 다시 태어나 훨훨 자유롭게 날아갈거야. 

나를 옭아매던 너의 모든 것들에서 자유로워질거야. 

 

이제 나는 홀로서기를 준비하려 해.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게 즐길 수 있는 모든 걸 찾을거야. 

그래서 나는 결국 행복해질거야. 

나만이 느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에서 더 많이 웃을거야. 

글 이어보기

길 위에서 in

순박한 맛이 스며든 벨기에의 맛

■ 순박한 맛이 스며든 벨기에의 맛

 

 

 

벨기에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벨기에 사람들이 참 순박하다는 생각을 했다. 길을 걷다가 길을 물어보려 도움을 청하면 그들은 수줍은 미소를 가득 머금고 설명해 주었다. 기념품 샵에 들어가면 고개를 살짝 까딱이는 그 작은 환영의 인사에도 미소가 가득했고, 가게 내부 사진을 찍겠다고 허락을 구하는 말에도 은은한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그래서였을까?

벨기에 특히 브뤼셀은 치안이 불안하다는 걱정들과 영사관에서 하루에 두번씩 보내던 위협스러웠던 문자들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벨기에에 체류하는 동안 벨기에의 사람들은 참 순박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벨기에에서 맛보았던 모든 음식에도 녹아있었다.

 

 

 

 

 

 

벨기에에 체류하는 동안 나의 아침을 담당했던 건 갓 구워낸 따뜻한 와플과 커피였다. 벨기에의 와플은 입안에서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도 특별했다. 과하지 않은 달콤함과 바삭바삭함이 입안에 퍼졌고, 약간은 씁쓸한 커피가 균형을 잘 맞춰주었다. ​특히 벨기에에 도착한 첫날 길거리에서 와플을 먹었던 탓에 비둘기의 방해를 도망다녀야 했던 것이 못내 아쉬워1-2유로쯤 더 들더라도 편안하게 앉아서 커피와 함께 와플을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까만 간판으로 꾸며진 와플가게였다. 그랑플라스에서 오줌싸개 동상으로 향하는 길목 코너에 자리한 커피숍이었는데, 보이는 유리창으로 와플 반죽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말랑말랑한 반죽을 와플팬에 굽고 갓 구운 따끈따끈한 와플에 슈가파우더를 뿌려주는데 커피와 함께 풍겨오는 와플의 향기가 잠에 취한 내 콧털을 건드려 잠에서 깨우는 느낌이었다. 얇은 프라스틱 나이프로 잘라도 부드럽게 잘려지는 와플은 신기하게도 쫄깃하고 바삭했다.

 

 

 

 

 

 

나중에 폴란드를 여행하면서 만났던 벨기에 청년 역시 와플에 지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당시 숙소 스탭이 와플을 구워서 위에 과일 얹은 것을 굉장히 못마땅해했다. 무언가 얹은 건 와플이 아니라는 그의 지론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위에 이것저것 얹은 와플을 맛보지는 않았지만, 벨기에에서 휘향찬란한 토핑 얹은 와플을 안 먹은 것이 오히려 잘했다고 생각되던 순간이었다.

​와플 부심을 가진 벨기에 청년과는 사흘 정도를 매일 밤 만나며 맥주를 마셨다. 폴란드 일정이 꽤나 겹쳐서 낮엔 각자 여행하고 돌아와 밤 시간에는 여행했던 이야기를 주고 받거나 서로 같은 공간에 앉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런 벨기에 청년이 내 사진첩을 보던 중 곧장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운 것은 벨기에의 맥주 사진이었다.

 

 

 

 

 

 

브뤼셀 센트럴 광장에는 맥주 상점이 고디바 초코렛 상점 만큼이나 많았다. 푸줏간 거리 한쪽 구석에 위치한 2층짜리 PUB에서는 300여 가지의 벨기에 맥주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자랑일 정도이니, 4-5 종류에 불과한 한국 맥주 시장과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양인 것이다.  맥주를 사랑하는 1인으로서 맥주 골라먹는 재미에 흠뻑 빠질 만큼 맥주의 종류도 다양했기 때문에 매일 밤 맥주 가게에서 참 오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벨기에 맥주 가게에 처음 들어간 날, 나는 점원에게 벨기에 맥주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여기에 있는 게 다 벨기에 맥주야!" 하는 것이었다. 그 많은 맥주를 다 마셔볼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없었기에 가장 유명한 호가든 이외에는 상표가 예쁜 맥주들로 고심해서 골랐다. 그 중에서도 가장 진하고 깊이 인상에 남은 맥주는 가장 왼쪽의 파우벨 크왁 (kwak)였다. 점원의 침이 내 얼굴에 그대로 쏟아질 만큼 칭찬해 마지 않던 그 맥주. 매년 상을 받을 만큼 맛있고, 벨기에 사람이라면 모두들 엄지를 척척 들어올린다던 맥주였다. ​도수는 8%정도로 일반 맥주에 비해 조금 높았다. 전문 소믈리에가 아닌 내 입맛 레벨에서는 진한 보리맛과 알싸한 끝맛이 그 다음 한 모금을 부르는 맛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벨기에 청년 역시 크왁의 사진을 보더니 "크흐~" 하는 신음 비슷한 소리를 절로 내고 있었다. 점원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벨기에에 도착한 첫째 날엔 이상하게도 컨디션이 매우 나빴다. 여행을 떠나온 지 20일이 지나갈 쯤이었는데, 딱히 감기나 몸살 같이 증상을 동반한 아픔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컨디션이 무너져있는 것 같았다. 그건 아마도 한국을 떠나오면서 사시나무 떨듯 긴장했던 긴장감이 조금은 현지에 적응하며 유연해졌고, 그 사이에 느끼진 못했지만 체내에 차곡차곡 쌓인 여행 피로감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몸이 힘들거나 아플 땐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주저없이 고기를 찾아 나섰다. 적당한 곳을 찾던 내 눈을 끌어당긴 곳은 별이 일곱 개쯤 붙어있는 길가의 큰 레스토랑이었다. 센트럴 역에서 그랑플라스 광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는데, 투어리스트 센터에서 센트럴역으로 한 블럭 직진 후 보이는 코너의 와플가게 바로 옆 레스토랑이었다​.

 ​

​몇번의 눈짓을 시도하자 웨이터가 왔다. 그는 곧게 자세를 잡고 서서 주문을 받았는데,내 의사가 제대로 전달이 될지 안될지 불안한 마음에 나는 메뉴판의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웨이터가 대뜸 내게 말했다. "레이디~ 유럽에서는 손가락질을 하지 않아. 너의 목소리로 주문을 해줄래?" 하는 것이었다. '허허...까칠한 양반...내 저질 발음이 그렇게 듣고 싶다면 원하는데로 해드리지...' 하는 마음으로 더듬더듬 메뉴를 말해주었다. 꼿꼿하게 선 웨이터가 질문하는 순서대로 주문을 마친 후, 내 요리가 나오기 전까지 웨이터를 주시했다. 그는 어떤 테이블에 가서도 꼿꼿한 자세였다. 그리고 다른 웨이터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종횡무진 가게 안을 누비는 사나이였다. 손님들은 다들 그 사나이를 찾았고, 다른 웨이터들은 대기만 하고 있었다. 가게는 어느 덧 손님이 가득찼고, 한참 식사를 하는 내게 그는 슬그머니 다가와서는 예의 그 꼿꼿한 자세를 유지한 채 물었다.

 

"음식은 입에 잘 맞아? 더 필요한 건 없어?"

 

내 테이블을 담당한 꼿꼿한 사나이가 다른 웨이터들과 다른 점은 테이블의 맞은 편이나 측면이 아닌, 나의 바로 곁에 서서 말을 건네왔다. 그 모습은 다른 웨이터들이 지나치듯이 가볍게 말을 거는 것보다 더욱 품위있게 느껴졌고, 상대방을 존중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처음 레스토랑에 들어섰을 때, 짚업후드를 입고 있었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작은 가방을 크로스로 메고 있었기에 누가 봐도 주머니가 가벼운 배낭 여행객의 차림새였다. 게다가 까만머리의 눈에 띠는 외국인. 내게 자리를 안내하지 않고 비웃는 듯한 미소로 나를 외면했던 웨이터의 첫 이미지에 기분이 조금은 상한 상태였다. 첫번째 웨이터가 나를 외면한 탓으로 그 바쁜 사나이가 내 테이블을 맡게 되었는데, 나는 식사를 하는 동안 바쁜 사나이에게 참 감사했다. 그는 첫번째 웨이터와 같이 나를 외면하지 않았고, 방실거리는 미소는 보이지 않았지만, 다른 손님들과 똑같이 나를 대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식사를 다 마친 후 나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사실 레스토랑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도 했고, 나에게 품위를 유지해 준 그에게 나 역시 품위있게 행동하고 싶기도 했다. 어딘가 책에서 보았던 데로 접시의 오른쪽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모아 놓고 가만히 앉아서 그와 눈이 마주치길 기다렸다. 그러다 다른 테이블의 접시를 치우는 그와 눈이 마주쳤고, 그는 나의 접시를 보고는 가벼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레이디~ 식사는 만족했어?" 하고 물어오는 그에게 완벽했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접시를 치워주고는 영수증을 가져왔다. 맥주와 스테이크의 가격은 22유로. 25유로를 주고는 거스름돈을 주려는 그를 만류했. 3유로는 주머니 가벼운 이 외국인 배낭 여행자가 주는 고마움의 팁이었다. 그리고 나는 3유로 덕분에 꼿꼿하고 품위있는 웨이터의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오! 레이디~ 너 내일도 또 와야돼~"

 

처음엔 꼿꼿한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그는 자신의 일에 꽤나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것 같다. 여행하면서 만났던 많은 웨이터들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보니, 나는 그의 태도와 일하는 모습에 꽤나 큰 감동을 한 모양이다. 언젠가 다시 한번 가게 되면 그때에도 바쁜 사나이의 꼿꼿한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여행하며 먹는 것을 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버릇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특별히 그 나라에 가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것들을 특별히 조사하지 않고 떠나기 때문이다. 그 나라에서 꼭 먹어봐야 할 만큼 유명한 것이라면 분명, 그것을 파는 상점들이 많을 것이다라는 이유로 먹거리 조사를 생략하곤 한다. 브뤼셀을 돌아다니면서 정말 많이 보았던 것이 홍합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두집 건너 한집씩 있는 삼겹살집 만큼 많았다. 저마다 입간판을 꺼내어 놓고 홍합스튜의 가격을 표시해 놓았는데, 16유로~25유로까지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어디가 맛집인지를 몰라서 푸줏간 거리를 계속 헤매고 있자니, 유독 한국사람과 중국사람이 바글바글한 레스토랑이 있었다. 테이블엔 다들 홍합스튜가 놓여있었는데, 그 집을 첫번째로 제외했다. 내가 아무리 여행객이어도 여행객들만의 리그에 참여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나는 한참을 구경하던 끝에 편안한 옷차림의 노부부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들어가는 식당으로 따라서 들어갔다. 그리고는 호기롭게 홍합스튜를 주문했다. 국물은 많지 않았지만 홍합만큼은 가득 들어있었다. 포크로 홍합을 빼먹고 있는 내 모습을 본 점원이 친절하게도 홍합껍데기로 빼먹는 게 벨기에 식이라고 알려주었다. 우리가 포장마차에서 자주 하는 그 행동들이 한국가면 한국 식이고, 일본가면 일본 식이고, 벨기에에 오면 벨기에 식이 되는 모양이었다. 호록호록 홍합을 빼먹고 있자니 통후추의 향기가 느껴졌다. 아마도 홍합의 비린 맛을 통후추로 잡아낸 모양이었다. 국물은 맑은 국물이었는데, 우리나라 포장마차에 파는 홍합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벨기에는 참 작은 나라임에도 유명한 게 많았다. 수제레이스와 스머프, 와플, 맥주는 물론이고, 초콜릿과 홍합, 감자튀김까지 그래서 벨기에에서 머무는 매일 매일이 즐거웠다. 수제품 구경을 하다가 배가 고프면 길거리에 널려있는 맛있는 집들에서 군것질을 사 먹고, 저녁엔 싸고 맛있는 레스토랑 식사와 맥주가 가능했으니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식사를 주문하면 어느 레스토랑이건 감자튀김을 배가 터지게 많이 준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통통하고 포근포근한 감자튀김이 가득 있어서 스테이크를 다 먹고 난 후에는 남은 맥주와 함께 느긋하게 즐기기에 딱 좋았다.

 

 

 

 ㅣ 특제소스 스테이크와 서비스로 받은 감자튀김.

 

 

 

누군가 그랬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덤을 기대하면 안되고 서비스로 무언가를 무료로 받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만약 그게 정설이라면 벨기에는 유럽이 아닐 지도 모르겠다. 식사가 끝난 후에도 남아있는 맥주를 맛있게 먹으라는 듯 감자튀김을 덤으로 받아 먹었고, 맥주를 사니 손바닥만한 작은 프레첼 과자를 끼워주는가 하면, 초콜릿은 무료 시식으로 두 손 가득 챙겨주는 소박한 정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브뤼셀에서 한끼 식사를 하기에 적당한 레스토랑을 찾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푸줏간 거리에는 레스토랑이 즐비해 있었고, 눈에 잘 보이도록 가격과 메뉴 사진을 첨부해 두어서 선택의 폭을 넓히기에도 좋았다. 또한 그들이 내놓은 메뉴를 훑어보며 서 있노라면 레스토랑 외부에서 한창 영업중인 웨이터들은 귀신같이 국적을 알아보고는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왔기 때문에 좀처럼 레스토랑에 친숙하지 않은 나 같은 촌뜨기도 편안한 마음으로 레스토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만, 자리를 잡고 앉으면 밖에서 보았던 메뉴판과 내게 가져다 주는 메뉴판의 상이한 가격표가 나를 당황시켰던 것만 빼고.

 

 

 

 

 

 

사진 속 연어구이가 그랬다. 지나가는 길에 연어구이 사진을 보고 시선이 꽂힌 나를 발견한 웨이터가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건네왔다. 처음엔 신기하기도 하고, 어설픈 한국어로 노력하는 그 사람이 괜스레 반가웠다. 그래서 슬쩍 웃으며 그의 뒤로 보이는 입간판 속 메뉴를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며칠 동안 스테이크만 먹어댄 탓에 조금은 물린 느낌이었는데 마침 연어구이의 가격이 14유로라고 큼지막하게 쓰여있었다. 적당한 가격에 이미 마음을 빼앗겼는데 방실방실 웃으며 영업을 걸어오는 웨이터 덕분에 덩달아 신나 '내 사랑 벨기에~'를 마음 속으로 외치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미 메뉴는 정해놓고 들어왔지만 그래도 구경이나 해볼까 하며 웨이터가 가져다 준 메뉴판을 펼쳤는데, 연어구이 가격에 22유로가 표시돼 있었다. 순간 매우 당황했다. 맥주 두 잔과 연어구이를 22유로에 해결보려 했던 내 예산에 금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웨이터에게 사정을 묻자 14유로는 런치 스페셜 가격이란다. 내 두 눈이 그저 장식이란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갈까 말까를 무한반복하며 고민하는 동안 웨이터를 꿈뻑꿈뻑 쳐다보고 있었더니 그가 슬쩍 웃으면서 그런다.

 

"어쩔 수 없네. 그냥 스페셜 메뉴로 해줄게. 대신에 한국 사람들한테 소문내줘 ^.^"

 

잠깐의 실랑이(?)였지만 웨이터의 배려 덕분에 예산을 깨뜨리지 않고 맥주 두 잔과 연어구이를 22유로에 즐길 수 있었다. 그 날의 연어구이 맛은 벨기에 사람들이 가진 순박하고 착한 맛이었다.

 

벨기에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소박했던 것 같다. 아주 고급스러운 맛은 아니었지만 먹으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맛이었다. 푸짐한 양에 감자튀김으로 보여주는 후한 인심은 한국에서 말하는 "따뜻한 정"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입에 한 입 넣자 마자 호들갑 떨 만큼 강렬하지는 않아도 두고 두고 진하게 여운이 남는 그리운 맛이기도 했다. 그것이 벨기에 사람들의 모습과 참 닮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부산스럽지도 않고, 바쁘지도 않게 조용히 흘러가는 벨기에 사람들의 일상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미소 띈 얼굴들이 은은하게 남아서 벨기에를 떠올릴 때 마다 그날의 맛과 그날의 기억을 음미하게 된다. 벨기에가 더욱 그리워진다.

 

 

 

 

 

                                                                                       + 벨기에 맛집 즐기기

                                                                                 

                                                                                         와플 : 오줌싸개 동상 가기 한블록 앞 코너의 Waffle factory

                                                                                                   와플은 3~6유로, 커피는 세트메뉴로 주문 가능

 

                                                                                       스테이크 : 브뤼셀 센트럴 투어리스트 센터에서 센트럴역 가는 길

                                                                                                       두 블럭 직진 후 오른편 코너에 와플가게 보이면

                                                                                                        와플 가게 바로 옆 레스토랑 Brussel-Grill

 

                                                                                       홍합스튜 : 푸줏간 거리의 유명한 chez LEON(쉐레옹)에서

                                                                                                        대각선으로 맞은 편 위치.

                                                                                                        쉐레옹에 여행객이 너무 많아 선택했던 레스토랑이므로

                                                                                                        여행객들만의 맛집에 도전하고 싶다면

                                                                                                        쉐레옹으로 가면 될듯.

 

                                                                                       연어구이 : 쉐레옹을 등지고 맞은편 골목으로 직진,

                                                                                                        가게 두 개 지나 왼쪽에 위치한 레스토랑

 

 

글 이어보기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뉴질랜드의 여름 바다

 

뉴질랜드에서 그렇게 오래 살아도 바닷가에 가서 일광욕만 하고 돌아오던 때가 있었다. 

바다에 들어갔다 나오면 끈적거리고 모래가 사방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느낌이 싫어

그저 조신하게 그늘에 앉아 바다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만 구경했었지.

 

그런데 점점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바다에 들어가기 싫어하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바다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고 있고, 

쨍쨍 내리쬐는 햇빛에 뜨거워진 모래가 따뜻해 몸에 모래들을 묻히며 뒹굴거리고, 

썬크림을 덕지덕지 바르면서도 신경질이 아닌 해맑게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여름만 되면 "바다가자!" 를 외쳐대기 시작하며

깊은 물까지는 무서워 들어가진 못하지만 파도를 타면서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뉴질랜드의 여름 바다는 예쁘다. 아름답고, 찬란하다. 

서핑하는 사람들도 있고, 부기보드타며 파도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고, 

그저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뉴질랜드의 여름 바다는 자유롭고 자유롭다. 

 

사람은 점점 달라지는 게 맞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늘 그 자리에 머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모든 게 알게 모르게 변해간다. 

변해가는 과정을 그저 즐겁게 받아들이면 정말 내 것이 되는 것이다. 

글 이어보기

길 위에서 in

동화 속 미로를 헤매는 기분, 브뤼헤

■ 동화 속 미로를 헤매는 기분, 브뤼헤

 

 

벨기에는 정말 나에게 생소했다. 워낙 유럽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했지만 그 안에 벨기에는 더더욱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영국에서 유럽으로 통하는 기착지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 그곳에서 4박 5일을 보낼거라는 내게 대부분의 지나가는 여행객들은 벨기에에서 그렇게 할 게 많나? 하는 의아한 질문을 던졌다. 지금 돌이켜 만약 여행하던 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과감히 숙박을 일주일 혹은 이주일쯤 늘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깝지 않은,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 벨기에였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벨기에의 인상을 더욱 강렬하게 각인시켜 준 곳이 브뤼헤였다.

 

 

 

 

 

 

브뤼셀 센트럴 역에서 기차타고 40여분 달리니 브뤼헤에 도착했다. 벨기에에서 머문 4일 중 두번째 도착한 브뤼헤였다.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과 한번 갔었는데, 그날따라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우산이나 우비라도 사려던 우리의 계획은 품절로 인해 수포로 돌아갔고, 아쉬운 마음에 역 안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만 마시고 브뤼셀로 발길을 돌려야했다. 아마 혼자였다면 나는 비를 맞고 돌아다녔겠지만, 일행들과 함께 그렇게 하기엔 쉽지 않았다.

 

일행들이 벨기에에서 먼저 빠져나가고 난 후 혼자남은 나는 브뤼헤를 못 가보고 발길을 돌리는 게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벨기에를 빠져나갈때 개시하려던 유레일을 며칠 앞당겨 과감히 개시한 후 브뤼헤로 향했다. 브뤼헤 기차역에서 마르크트 광장으로 향하는 길은 내게 미로와도 같았다. 한적하고 조용한 브뤼헤의 거리는 그저 골목골목으로 나를 끌어들였다. 정처없이 두 시간 정도 걷는 동안, 사실 길을 찾지 못해 헤매었지만, 조금 더 이 조용한 거리를 걷고 싶어졌다.

 

 

 

│ 머무름이 행복한 브뤼헤의 길거리

 

 

│ 어느 평범한 가정집 선반에 장식돼 있던 정다운 백조들.

 

 

이때쯤 유럽은 가을 옷으로 한참 가을 옷으로 갈아입는 중이었다. 그래선지 시선을 돌리는 곳곳에서 성숙하게 익어가는 푸르름을 만날 수 있었다. 브뤼헤를 소개하는 관광지도에는 벨기에 안에서 그 어느 곳보다 로맨틱한 도시라고 소개하고 있다. 아마도 벨기에의 베네치아라는 별명에서 갈라져 나온 설명글이 아닐까 싶다. 7세기경 플랑드르인에 의해 세워졌다는 브뤼헤는 바다와 연결된 유리한 입지조건을 기반으로 베네치아, 카탈루냐의 상인들이 올리브유, 오렌지, 포도주, 다이아몬드 등을 거래하면서 상공업과 무역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13세기에는 세계적인 무역항으로 명성을 떨친 곳도 바로 브뤼헤였다. 도시를 둘러싸고 관통하는 운하는 멋드러진 풍경을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보트를 타고 브뤼헤를 즐기는 사람들도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그들이 신나서 다리 위의 우리에게 손을 흔들면, 다리 위 우리들 역시 환호로 화답해 주었다. 나는 그것이 브뤼헤가 가진 로맨틱이 아닐까 생각했다. 연인과 함께하기에 좋은 로맨틱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보트와 다리 위에서 여행자들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조용한 거리를 걷는 동안 나의 여행과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ㅣ 더없이 로맨틱한 브뤼헤

 

 

ㅣ 보트를 타고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 "우리 보트 탄다! 부럽지~!" "야~ 니네 재밌겠다!!!"

 

 

처음 브뤼헤에 도착했을 때는 마르크트 광장을 먼저 찾고 거기부터 시작해야지 생각했다. 그러나 미로 같은 브뤼헤는 만만하지 않았다. 방향을 잡았는가 싶으면 또 길을 헤맸고, 같은 건물과 골목을 뱅글뱅글 돌다가 익숙해졌다 싶으면 새로운 골목길이 나타나 구미를 당겼다. 그러다보니 목적지를 상실한 채 눈에 보이는 데로 내 발길이 가고 싶은 곳으로 마구 걸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빗물을 머금은 가을 바람이 조금 쌀쌀하게 느껴질 때쯤 나는 크리스마스를 분주하게 준비하는 작은 상점 앞에 서 있었다. 아직은 때이른 10월 말, 어쩌면 앞으로 유럽을 여행하며 만나게 될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에 한껏 녹아들 수 있을 것만 같은 두근거림이 다가오고 있었다.

 

 

 

 

 

 

 

 

 

 

 

 

 

 

 

 

 

 

 

 

 

 

 

 

 ㅣ 크리스마스 상점에서 만난 산타들과 호두까기 인형

 

 

브뤼헤의 아름다움은 백조를 만났을 때에야 비로소 몸으로 다가왔다. 백조의 도시임을 인증하듯 내 앞에 펼쳐진 사랑의 호수에는 브뤼헤 시에서 소유한 백조들이 천진난만하게 여행자들의 시선을 독차지 하고 있었다. 사랑의 호수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꿈이 있는 사람이 이 호수를 찾으면 새로운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시(詩)가 전해지는 곳이다. 백조들이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자유롭게 놀고 있으니 그 모습을 묘사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백조의 날갯짓이 인생에 지친 영혼들에게 위로가 되어 주길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ㅣ 사랑의 호수

 

 ㅣ 브뤼헤의 상징인 브뤼헤 소유의 백조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 생활권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내 눈 앞에 펼쳐진 브뤼헤의 풍경은 마치 작은 보물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었을 때 느껴지는 설렘과도 같았다. 길을 잃고 무작정 헤매는 시간 마저도 소중하게 느껴질 만큼 아기자기한 브뤼헤는 벨기에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어느 곳이든 여행을 할 때마다 그 도시, 그 나라만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을 때 작게 나마 남아있던 두려움은 물러가고 그 자리를 만족감이 대신 채우곤 한다. 게다가 낯선 여행자와의 다정스러운 한 토막 수다는 그 여행지를 즐거움으로 남겨준다. 내게는 브뤼헤가 그랬다. 사랑의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작은 다리 위에 서 있었더니 터키에서 온 여행자가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서로 사진을 찍어 주고는 어설픈 영어로 시덥잖은 수다를 떨며 걷다가 우리는 나란히 서서 길을 잃고 말았다. 서로 갈 곳을 잃고 지도를 들여다보면서도 우리는 낄낄거리고 웃어댔다. 네 번째, 아니 다섯 번째 서로 길 잃어 버린 횟수를 자랑 삼아 늘어놓던 우리 앞에 커다란 하얀 대문이 나타났다. 그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호기심 가득한 눈을 번뜩이며 하얀 대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수다를 떨던 시간보다 조금 더 길게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었다.

 

 

 

 

 

 ㅣ 바닥을 노랗게 물들인 낙엽마저도 고요한 베긴회 수도원

 

 

 

카메라 셔터를 눌러야겠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한 채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한참 넋을 놓고 서 있었다. 이곳에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 피해가 갈까 걸음 걸음이 조심스러운 곳이었다. 하얀 대문 밖에서는 백조를 구경하는 여행자들의 크고 작은 소리들이 연달아 들려왔지만 대문 안쪽 세계에는 짙은 고요가 깔려있었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 뒹구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 보니, 문득 내가 홀로 여행을 떠나온 이유가 떠올랐다. 곁에 선 터키 여행자의 눈빛을 보아하니 그도 자신만의 깊은 세계로 끌려들어간 것 같았다. 유쾌하고 조금은 다정했던 수다를 뒤로 하고 우리는 베긴회 수도원을 마지막으로 서로의 길로 헤어졌다. 건강한 여행이 되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브뤼헤 역에서 출발한지 네 시간쯤 흘러 내 머리 속에는 마르크트 광장에 대한 목표의식이 점차 흐려지고 있었다. 브뤼헤 역에 내릴 때만해도 꽤 많이 보였던 여행자들의 모습도 잃어버린지 오래고, 길도 방향도 송두리째 잃어버려서 오히려 브뤼헤 역으론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조금씩 드리워질 때쯤이었다. 내 눈앞에  성모마리아 교회가 모습을 드러냈다. 박물관으로서의 역할에 더욱 충실한 성모마리아 교회를 가볍게 구경하고 뒷문으로 나와서 보니 놓치고 싶지 않은 풍경이 눈가에 맺힌다. 이곳에서 십 년, 이십 년을 살고 싶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ㅣ 눈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브뤼헤 마을 풍경

 

 

브뤼헤의 물길을 벗삼아 잠시간 걷자니 점점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브뤼헤 역에서 스치듯 지나쳤던 그 많은 여행자들의 목소리 같았다. 그제야 나는 여행자들의 행렬에 동참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들의 발길을 따라 마르크트 광장으로 향했다. 브뤼헤에 도착해 터키 여행자를 제외하고는 줄곧 정적 속에 있다 보니 마르크트 광장에 모여 한껏 수다를 떠는 여행자들과 동네 주민들의 소리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내가 헤매고 다닌 4시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다 여기에 모여있던 모양이었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프랑스에서 독립을 쟁취하는 데 일조한 얀 브레델과 피테르 드 코니크의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어느 도시를 여행하던 광장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유럽에서 광장은 굉장히 중요한 길잡이가 돼주곤 한다. 중세시대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번화가이자 도시 중심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기 때문이다. 그 도시의 광장에 도착하면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을 보여줄 수 있는 동상이나 건물들도 광장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오래된 교회는 물론 시청사나 종탑, 길드 건물을 비롯해 여행 가이드 책에서 소개하는 건물 등은 대부분 광장만 도착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광장을 가장 먼저 찾고 그 바깥으로 반경을 넓히면서 여행하는 편이다. 비록 나는 여정의 가장 마지막에서야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ㅣ 4시간 만에 도착한 마르크트 광장

 

 ㅣ 브뤼헤 마르크트 광장으로 향하는 길. 세련된 느낌이 물씬 풍긴다.

 

ㅣ 광장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펍의 맥주벽과 캔디 제조 장인들.

 

 ㅣ 시선을 강탈해 가는 플랑드르 주청사

 

 

마르크트 광장에 도착해서 내가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366개의 계단을 올라 브뤼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종루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종루에 올라 도시를 바라보는 것이 별 의미없다고 생각했었다. 그 이유는 종루까지도 멋스럽게 어우러진 모습이야 말로 진짜 그 도시의 매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종루에 오르면 그 모습을 볼 수 없으니까. 그러나 브뤼헤는 달랐다. 내 두 발로 구석구석 걸어다녀보니 한눈에 내려다 보면 어떤 모습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위풍당당하고도 씩씩한 발걸음으로 종루로 향했다.

 

 

 

 ㅣ아쉬움을 안겨 준 종루                           

            

 

종루 앞에는 이미 많은 여행자들이 모여 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주고 받으며 웅성웅성하는 그들을 뒤로 하고 문이 닫힌 티켓 박스를 지나 입장하는 줄에 당당하게 가서 섰다. 이때 나는 알아차렸어야 했다. 내 앞에 서 있는 여행자들이 순서대로 퇴짜를 맞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줄줄이 화가 난 여행자들이 줄에서 이탈하여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그때, 티켓을 검사하는 남자 직원이 너무나 단호하게 "NO"를 외치는 것이었다. 단호박을 백개쯤은 드신 듯, 칼로 무를 자르듯 냉정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NO"를 들으니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 앞에 서 있던 여행자들의 무리에 뭉쳐지게 됐고, 우리는 단체로 "WHY?"를 돌림노래라도 부를 기세로 외쳐댔다. 그럼에도 들려온 대답은 "절대안됨"이었다. 허탈하게 종루 벽에 기대어 갈길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 앞으로 한 일본인 커플이 종루에 입장했다. 그 커플을 바라보는 우리 (종루에서 쫓겨난 여행자들과 나)는 내심 그들이 우리와 같이 내동댕이 쳐질 것을 기대했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들은 종루 안으로 몸을 숨겼다. 그 모습을 목격한 우리들은 또 다시 우르르 몰려가 돌림노래로 "WHY?"를 외쳤다. 그러자 문지기 아저씨는 숨을 깊이 내쉬고는 말했다. "쟤들은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온 애들이야." 그 말에 폭동이라도 일으킬 기세였던 우리들은 "아!"하는 짧은 탄식과 함께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재미있는 일화였지만, 그럼 진작에 예약을 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씁쓸함과 366개의 계단을 오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경험이기도 했다.

 

종루를 포기한 후 내 발길은 커피숍으로 향했다. 그때까지 한끼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커피 한잔 마시며 느긋하게 마르크트 광장에서의 활기찬 시간을 만끽했다. 아쉬움은 아쉬움이지만 덕분에 다음에 한번 더 갈 핑계가 생겼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향긋한 커피에 취해 브뤼헤의 넉넉한 분위기에 취해 한참을 시간을 보낸 뒤, 브뤼헤 역으로 돌아 나오는 길은 또 다시 미로찾기 였다. 분명히 여행 정보 센터 직원에게 길을 물었고, 내 지도 그림까지 그려주며 친절히 설명해 준 덕분에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지도를 보고도 엉뚱한 길로 빠져버린 것이었다. 차도 없고, 사람은 더 없고, 지나가는 개나 고양이 한 마리도 없는 골목길을 홀로 40여분 간 돌아돌아 겨우 브뤼헤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역시나 골목골목이 매우 정취있고 아름다웠으므로, 이렇게 보석을 찾는 듯한 기분의 미로찾기라면 백번은 더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도착해서부터 나올때까지 미로 속을 헤매야 했지만 운하에 둘러싸인 유유자적한 브뤼헤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어서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중에 조용히 장기간 글작업 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브뤼헤에서 터를 잡고 숨쉬듯이 글을 쓰고 싶은 곳이었다.

 

 

 

 

 

 

                                                                                               + 브뤼헤 가는 길

                                                                                                        기차: 브뤼셀 센트럴 역에서 40분 소요.

                                                                                                       

                                                                                                        브뤼헤 역 - 마르크트 광장은 도보 20분.

                                                                                                        급히 둘러본다면 2시간이면 다 둘러볼 수 있는

                                                                                                        소규모의 도시이다.

 

                                                                                                        특별히 여행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면

                                                                                                        2~3일쯤 쉬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브뤼헤 즐기기

                                                                                                       나와 같이 자신이 지독한 길치라고 생각한다면 

                                                                                                       겸허히 마음을 비울 것을 추천.

                                                                                                       구글맵이든 종이 지도이든 뭔갈 들여다보며

                                                                                                       목적지만을 찾는 여행을 하기엔 아까운 도시.

                                                                                                       눈에 담고 가슴에 담아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여행지이므로

                                                                                                       보물찾기하는 심정으로 골목골목을 다니는 편이

                                                                                                       브뤼헤에서 선사하는 진한 감동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글 이어보기

안녕, 어떤 여행

[안녕,어떤여행] D+05 반짝반짝 빛나는

 

믿을 수 없지만, 오늘이 라파즈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내일 아침 일찍 대망의 우유니로 떠나는데, 기분이 왜 이렇지? 첫 정이 무섭다고, 라파즈에 정이 듬뿍 들어버렸다. 가이드북에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 후기에도 그렇고 라파즈는 치안이 나빠서 우유니로 가기 위한 관문에 지나지 않지만, 내가 이틀 동안 겪은 라파즈는 그야말로 매혹적인 도시였다. 이 도시의 혼잡함과 소란스러움 마저 참 좋다.

 

오늘은 일찍 일어난 김에 8시 전에 아침을 먹고 엄빠와 페이스톡을 하고 S와 오랜만에 카톡도 했다. 내가 오기 직전에 남미를 여행한 전혜빈은 또 다른 오혜영인 서현진과 여행을 했다고 한다. 도밍고 아저씨에게 세탁할 옷들을 맡기고 (짐이 터질 것 같은데도 왜 입을 옷이 없을까) 영어를 잘하는 아마도 주인인 언니에게 왜 나를 픽업하러 나오지 않았는지 물어봤다. 언니는 처음 듣는 얘기라며 당황하더니, 확인을 해보곤 내가 탄 비행기가 일찍 도착해서라고 한다. 아, 드디어 궁금증이 풀렸다. 그래서 별 문제는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라고 했다. (근데 분명히 나는 제대로 된 시간을 알려준 것 같은데)

 

산프란시스코 성당을 향하는 길, 마스크를 꺼낸 후 자물쇠가 잘못 잠기게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1분 정도 후에 깨닫고 바로 돌아갔지만 그새 자물쇠는 사라지고 없었다. 떨어뜨린 게 자물쇠라서 다행이다, 정말. 산프란시스코 성당 앞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데 (완만한 경사지만 지이이이인짜 숨이 찬다) 인디오 여자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물론, Si! 알고 보니 그녀는 촐리타 (여자 레슬러... 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유명인) 글로리아였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서정적인 하엔 거리를 찾아 육교를 건너니 계단이, 계단이! 라파즈, 이러기냐! 무리하지 않도록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데 그런다고 무리가 되지 않을 리가 없다. 어쨌든 하엔 거리는 꼭 독일 퓌센 같은 느낌의 짧은 골목이었고 비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곧 해가 나와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메 뽀드리아 또마르 우나 뽀또? 이걸 달달 외워서 한 번 써먹어 봤다, 히히.

 

아침을 거하게 먹은 탓에 아직 배가 고프진 않아 다시 육교를 지나 이번엔 빨간 케이블카를 타러 가기로 했다. 오렌지 주스 한 잔을 사 먹고, 자, 또 등산이다! 하하! 그래도 어제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오랜만에 한국인 여자들을 만났다. 첫날 한국인 남자 둘을 만난 이후로 처음 보는 한국인이다. 물론 인사는 하지 못했다. 미국인들처럼 스몰토크를 하는 문화면 모를까, 이상한 여자 취급을 당할 게 뻔하니까. 빨간 케이블카는 노란 케이블카와는 또 다른 느낌인데, 둘 중 한 개만 탈 수 있다면 빨간 케이블카를 조금 더 추천한다. 정상에 오르면 엘 알토 해발 4,095m다. 하하. 스케일 한 번 대단하다.

 

내려오는 케이블카를 타는데, 한 아저씨와 자꾸 동선이 겹치는데 아저씨가 자꾸 양보를 해주셨다. 아저씨는 주황색 작업복을 입고 계셨는데, 케이블카 안에서 신나게 촬영을 하다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는데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얌전히 앉아있었다. 함부로 동정하는 건 나쁜 일이다. 하지만 예의를 지키는 건 중요한 일이다. 케이블카는 관광용이기 이전에 그들의 교통수단이다. 아침에 나오면서 이세타졸을 먹는 걸 잊어버려서인지 손과 발이 내내 저리더니 이제 얼굴까지 저리고 얼얼했다. 마침 눈 앞에 약국이 보여서 소로체를 한 알 샀다. 라파즈 때문이냐고 묻길래, Si. 신기하게도 약을 먹고 나니 저린 증상이 싹 가셨다.  저림도 고산병 증상이었나 보다.

 

올라갈 땐 힘들었는데 내려가는 건 금방이다. 이제 배가 고파서 현대화된 재래시장 렌자에 갔다. 현지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다. 마침 사람들이 엄-청 많은 피데오 식당이 있어서 줄을 섰다. 피데오는 뭐랄까, 쇼트 파스타 같은 느낌의 면 요리 위에 달걀이나 소시지, 실판초 같은 걸 올려 먹는 건데, 실판초는 어제 먹어서 소시지로 주문했다. 20여 명의 현지인 사이 유일한 외국인 나! 똑같이 소스를 뿌려서 벤치에 앉아서 먹었다. 기대했던 팟타이 류의 볶음면 맛은 아니었지만, 나름 먹을만했다. 가격은 단 돈 3볼! 오렌지주스보다 싸다! 약 540원 정도! 너무 좋다.

 

마녀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보라색 판초를 샀다. 왠지 더 깎아야 했을 것 같지만 나는 흥정에는 영 재능이 없다. 비가 뚝뚝 떨어져서 카메라는 백팩에 넣고 우산과 고프로만 꺼냈다. 환전을 백불 더 하고 암푸 거리를 끝에서 끝까지 걸었다. 라파즈를 떠나는 게 왠지 아쉬웠다. 사가르나가 거리를 내려가다 목도 마르고 비도 많이 와서 카페로 몸을 피신했다. 유창한 영어를 하는 직원이 있는, 전형적인 서양 백패커스들의 아지트 같은 느낌의. 그래도 3층 창가에 앉아 비 오는 거리를 내려다보며 마신 스타후르츠 주스는 맛있었다. 다시 비 오는 거리로 나와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쉬운 마음에 고프로를 손에 꽉 쥐고, 그 혼잡함 속을 뚫고 걸었다. 나를 놀라게 했던 총성의 정체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위 한 번 과격하다, 이 동네. 우리나라 촛불 좀 가르쳐주고 싶네.

 

숙소에 들어가 계속 쉬다 해가 지면 나갈 생각이었는데 배가 고픈 건지 아픈 건지 모르는 상태라, 숙소 앞 모퉁이에 파는 빵 같은 걸 좀 사다 놓을 생각으로 밖으로 나갔더니 문을 안 열었다. 이 아줌마들은 통 나랑 타이밍이 안 맞다니까! 근처에 큰 재래시장이 있다고 해서 주머니에 열쇠랑 휴대폰, 고프로만 넣고 길을 나섰다. 어느새 다시 해가 떴고 시장은 별 거 없었다. 허탕만 치고 대학교 쪽 노점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마땅한 음식을 찾지 못한 오르막길 끝에서 중국 음식점을 발견했다. 아, 쌀밥이 먹고 싶었다. 내내 밀가루나 고기만 먹은 터라 속이 불편한 거 아닐까? 좋아, 선택했어! 노점 음식을 살 생각이었던 터라 주머니엔 20볼만 있었고 14볼짜리 후라이드 치킨 한 조각이 올라간 볶음밥을 시켰다. 그리고 나는 정신없이, 그야말로 푸드 파이터처럼 밥을 먹었다. 음, 배가 고팠던 거구나. 그리고 늘 생각하지만 중국인에게선 상냥함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도 맛있는 쌀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늦은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7월 16일 대로는 그야말로 불금 직전이었고, 나는 들어가는 길에 물 한 통을 샀다. 그리고 모퉁이 노점이 문을 연 것을 발견했다. 이런 타이밍! 대체 뭘 파는 것인가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니 두 분 중 한 분이 내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하셨다. "살테냐?" 살 거냐고 묻는 게 아니고, 살테냐라는 볼리비아 음식이냐고 물은 거다. "노, 블라블라"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아직 얼마냐고 묻는 걸 못 외워서 영어로 얼마냐고 묻지 못 알아들으시길래 주머니에 있던 동전을 꺼내 보여주더니 용케 알아듣고 "꽈트로" 라며 손가락 네 개를 펼쳐 보이신다. 잔돈이 모자라 얼른 방으로 뛰어들어가 동전을 가지고 나와 빵을 하나 샀다. 방금 먹방을 제대로 찍고 난 터라 야식으로 먹을 생각이었다.

 

밤에 혼자 다니지 않는 것은 여자 혼자 다니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 중 하나다. 그것이 설사 매우 안전한 도시라고 하더라도. 나는 라파즈가 그리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외진 킬리킬리 전망대에 가기 위해 숙소 리셉션에 택시를 불러 달라고 했다. 전망대까지 왕복하는데 35볼, 그렇게 저렴하진 않지만 또 그렇게 비싸진 않은 가격. 한참 기다려 택시를 타는데 모퉁이 노점 아줌마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준다. 나도 안녕! 하고 손을 흔들었다.

 

킬리킬리 전망대는 기대 이상이었다. 별들이 점점이 박힌 것 같은 꿈같은 세상! 이렇게 아름다운 야경이라니! 말도 안 된다. 도저히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아름다운 야경, 내가 본 야경 베스트 안에 들 법했다. 10분 정도만 보고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20분 넘게 머물렀고 드라이버에겐 3볼을 더 챙겨줬다. 내려오는 택시 안에서 정말 부끄럽지만 괜히 울컥하는 기분이 들어 눈물이 찔끔 났다. 파묵칼레의 선셋 이후 두 번째다, 이런 감정은. 그냥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느껴졌을 보석 같은 도시, 라파즈! 안녕, 차오! 야식으로 사다 놓은 빵은 그야말로 우리로 치면 왕만두 같은 것이었는데 배가 꺼지질 않아 반 정도밖에 못 먹었다.

글 이어보기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힘들때면, 꿈이 나를 일으켰다.

 

 

희망이 없다고 느꼈을 때, 나는 가능성이 없다고 느껴졌을 때,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을 때.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나를 일으켜 세워준 건 다름아닌

늘 희망을 이야기하고 꿈을 꾸며 늘 당차게 살았던 나의 지난날의 일기들이었다. 

 

일기장을 펼쳐 부지런히 그동안 나의 희망적인 이야기들을 읽어내려갔고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을 때.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면서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늦은 밤, 나는 글이 쓰고 싶어졌고 바로 노트북을 켜,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무엇인지 적어내려가기 시작했고 그 글은 나에게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다시 희망을 갖고 꿈을 꾸기 시작한다. 

비록,

늦었다고 생각했었던 지난날의 불완전한 생각들과 마주할 나에게 두렵다고 포기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넌 할 수 있다고 희망을 가져도 된다고

노력하면 반드시 너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그 날이 올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자신을 믿고 굳건하게 너의 그 길을 걸어가라고 응원하면서 말이다. 

글 이어보기

안녕, 어떤 여행

[안녕,어떤여행] D+04 아름다운 나의 도시

 

오늘은 해보고 싶은 일들이 좀 있어서 부지런히 움직이기로 했다. 어김없이 맛있는 아침을 먹는데, 갑자기 햇살이 비추면서 너무 행복해졌다. 누구라도 붙잡고 "저 지금 행복해요!"라고 소리치고 싶은 기분. 그렇지만 얌전하게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걱정했던 두통은 아주 미미하다. 하지만 나는 그리 오래 행복하진 못했다. 킬리킬리 전망대를 내일 밤에 택시나 우버로 다녀올 생각이라서 라이카코타 전망대는 낮에 다녀오기로 했는데, 마침 숙소 근처라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최단거리 길은 뭔가 복잡해서 큰길로 가는 두 번째 경로를 선택했는데, 덕분에 운동 자-알 했다. 10분이면 될 길을 30분은 족히 걸은 듯했다. 몇 번이나 물어가면서. 그래도 (스페인어지만) 친절하게 대답해준 아주머니와 여학생들 덕분에 기뻤다.

 

라이카코타에 서자, 일단 드는 생각은 숙소가 코 앞이라는 사실이었고 감탄은 두 번째였다. 무슨 연유로 이 높은 산속 분지에 저렇게 달동네를 만들고 살아가는 걸까. 붉은 지붕들이 빼곡하게 산비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난 아무래도 이 도시, 라파즈가 좋은 것 같다. 이래서 첫 정이 무섭다. 비교의 대상이 없기 때문에. 나쁜 공기 때문에 쉴 새 없이 콧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뇨제 덕분에 화장실도 급해 숙소에 들르기로 했다. 내려오기는 분명 쉬웠을 계단은, 오르기엔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숨이 턱까지, 아니, 머리까지 차올랐다. 한국에서도 운동부족인 내가 산소가 부족한 여기서 계단을 오르고 있으니, 고통도 2배다. 거의 울먹이며 숙소로 돌아와 일단 쇼파에 드러누웠다. 괜찮았던 두통이 다시 시작되었다.

 

1시 30분에 떠나는 달의 계곡 시티투어에 참가하고 싶어서, 다시 몸을 일으켰다. 들어오면서 눈여겨보아둔 샌드위치 가게에 들러 샌드위치와 딸기주스를 먹었다. 13볼, 약 2천원에 아보카도가 듬뿍 든 샌드위치였다. 하지만 과식은 금물이라, 조금만 먹었다. 샌드위치를 먹고 나왔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정말 총소리였다. 이 대낮에? 총이라고? 오마이갓! 숙소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 걸까! 일단은 목에 걸고 다니던 카메라를 백팩에 넣고 소리가 들리는 큰길 말고 아래쪽 길을 따라 걸었다. 사람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계속 총소리가 나는데 누구 하나 당황하지 않고 가던 길을 가길래, 나도 의연하게 가던 길을 가기로 했다. 사실 스페인어가 됐다면 이유라도 물어볼 텐데, 여러모로 언어 장벽을 실감하는 여행이다.

 

시티투어 버스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설마 이거 나 혼자 가는 건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백인 남자 한 명이 탔고 출발 직전이 일본인 가족이 마지막으로 탔다. 백인 남자는 분명히 영어권 나라에서 온 것 같은데, 영어를 쓰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말해서 더 이상 말을 걸진 않았다. 흥. 일본인 가족은 사진을 찍어주면서 물어보니 나고야에서 왔다고 했다. 쳇, 하필이면 나고야여서 할 말이 없었다. 달의 계곡은 꽤 근사했고, 가는 길에 라파즈에서 가장 고도가 낮은 해발 3,000미터 지점을 지나서 산소를 많~이 마셔두라고 했다. 맙소사! 기분 탓인지 정말 숨 쉬기가 편한 것 같기도 하고. 달의 계곡은 달의 표면처럼 생긴 지형 탓에 붙은 이름. 후에 갈 칠레 산페드로 아타카마에도 동일한 이름의 계곡이 있다. 이런 계곡은 왜 생겼는지 궁금했지만, 영어가 짧아 관뒀다. 난 점점 의기소침 중이다.

 

다시 라파즈 시티로 돌아와서는 이 도시의 명물인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원래 계획은 내일이었는데 시간도 남았고 다행히 체력도 남았다. 가이드가 노란 케이블카가 제일 가깝다고 알려주는데, 4블럭인가를 가야 한다고. 일단 출발하는데, 맞게 가는 건지 알 수가 있나! 결국 아주 가파른 언덕 앞에서 이 길이 틀리면 정말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 나와 눈이 마주치자 예쁘게 웃는 언니(혹은 동생)에게 "텔레페리코!"를 외쳤다. 뭐라 설명을 하더니 내가 못 알아듣는 걸 알자 따라오라며 갑자기 언덕을 오르기 시작한다. 아, 너무 고마워! 나도 씩씩하게 언덕을 올라야지......!

 

아, 근데 또 언덕이. 마침 텔레페리코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 "알겠어, 알겠어, 혼자 가볼게!" 했더니 "정말? 정말 괜찮아? 여기서 더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꺾어야 해!"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언니. 내가 절대 언니 따라가는 게 힘들어서가 아니에요, 방금 그 언덕을 내려온 언니가 다시 올라가는 게 너무 미안해서 그래요. "그라시아스!" 유일하게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스페인어를 크게 소리쳤다. 고마워요, 예쁜 언니. 다음 언덕에선 결국 남의 집 대문 앞에 주저앉고 말았다. 숨은 차고 심장은 날뛰고 다리는 천근만근, 마치 몸에 추를 매달고 걷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더 가보자! 하고 힘을 내보기로 한다. 마침내 평지가 나오고 공원은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평화로운 공원을 지나, 예쁜 언니가 일러준 대로 오른쪽으로 꺾자 드디어 케이블카 정류장이! 만세!

 

케이블카는 지하철을 만들 수 없는 라파즈 지형의 특성을 고려해 고안해낸 대중교통인데, 해발 4,000미터쯤 되는 산꼭대기와 아래쪽을 연결해준다. 내 기분으로는 케이블카 타러 가다 먼저 죽겠구나, 싶었지만. 3볼을 내고 일단 상행선을 탔다. 아, 정말 그 고생을 하길 잘했구나 싶었다. 라파즈가 이렇게 큰 도시였다니! 아래서 보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도시가 그곳에 있었다. 이 도시은 가난한 사람일수록 산 위에 산다는데, 꼭대기 정류장은 왠지 분위기가 좀 별로였다. 기분 탓인가? 다시 제일 아래까지 내려가 본다. 그리고 원래 탔던 중간 정류장으로 올라가 걸어서 언덕을 내려가기로 한다. 노점에서 5볼짜리 오렌지 주스를 사 먹었다. 천원도 안 하는데, 물도 시럽도 없는 즉석 주스! 오예! 숙소까진 다시 걸어서 가야 하는데 조금 걷다가 안 되겠어서 큰 맘먹고 택시를 탔다. 숙소 바로 옆 큰 호텔 이름을 말하고 흥정도 없이 출발! 트래픽잼이 장난 아니다, 이 도시는. 그래도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고, 요금은 12볼. 예상했던 범위 내라서 기꺼이 지불했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려는데, 마땅히 먹을 곳을 찾지 못해 리셉션에 물어보니 산프란치스코 광장 근처의 고려 대상 중 하나였던 호텔 라 카소나의 레스토랑을 추천한다. 거기 말고 가까운 데는 없냐니 오전에 내가 죽을 뻔했던 계단 옆 식당을 추천해준다. 호기롭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6시부터 영업한다고, 30분 남아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난 이제 좀 지쳤거든. 볼리비아식 슈니첼은 꽤 맛있었지만 양이 많아서 많이 먹질 못했고 크림이 올라간 비엔나를 기대하고 시킨 비엔나는 (식당 이름도 비엔나였다) 웨이터 아저씨가 꼬냑이라고 말해줬는데 제대로 못 알아듣고 (또) Si, si라고 해놓곤 나오고 나서 알코올이냐고 물어봐서 아저씨도 나도 당황. "네, 네, 술 주세요!" 결국 카푸치노로 바꿔주셨다. 비엔나는 꽤나 수준 높은 다이닝 레스토랑이었다. 즉, 내가 스니커즈를 신고 갈 곳은 아니었단 말이다, 하하.

 

힝. 저녁을 먹고 나오니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진다. 하루 종일 흐리다 맑기를 반복하더니, 결국. 우기에서 건기로 넘어가는 시점이라 어쩔 수 없나 보다. 열심히 뛰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컴퓨터로 외장하드에 사진을 백업하고 졸음이 몰려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시차 때문인지 (내 몸은 그런 거 모르는 줄 알았는데?) 새벽에 깨서는 다시 잠이 들질 않는다.

 

+ 참, 댈러스에서 카메라를 떨어트렸다. 그 충격으로 렌즈캡이 밀려들어가 UV 필터를 산산조각 냈다. 다행히 렌즈는 무사하다. 필터는 이런 용도로 쓰는 거구나아!

++ 참, 총소리는 무슨 시위 중에 시위대가 공중으로 공포탄을 쏘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