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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생각을 담다

아들에게...

아들아.

네가 세상의 빛을 보기 전부터, 아빤 너를 위해 기도했단다.

첫 심장소리를 들으며, 심장이 온전함에 감사했고,

손과 발 사진을 보며, 손가락, 발가락 갯수를 세어 보았고,

얼굴모습을 보며, 눈, 코, 입이 엄마, 아빠를 닮은 거 같아 너무나 행복했단다.

네가 아직 엄마 뱃속에 있을때, 아빤 매일 새벽기도를 나가서 기도했단다.

당신이 보내주신 우리 아이가, 이 세상에 온전한 모습으로 나올 수 있도록...

그렇게 엄마, 아빠는 너를 낳았단다.

 

엄마와의 연결선이었던 탯줄을 떼고, 엄마 젖을 먹고, 우유를 먹고, 이유식을 먹으면서...

누웠다, 엎드렸다, 고개를 들었다, 네 발로 기었다, 비틀 비틀 위태롭게 서 있다가,

한 발, 한 발 내딛게 되고, 이제는 이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니기 까지...

엄마, 아빠는 하루에도 몇번씩 가슴이 철렁하고,  그 배로 감사하며 살아 오고 있단다.

 

더 맛있는거 주지 못함에 미안하고, 더 좋은 장난감 사주지 못함에 또 미안하고,

더 재밌는 책 사 주지 못함에 늘 미안한 엄마 아빠란다.

 

아들아, 아빠는 네가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단다.

하지만, 그전에 '행복'이 무엇인지를 느끼기를 바란단다.

돈, 명예, 권력등의 외적요인이 행복의 필요조건도 아니요, 척도도 아님을 깨닫기를 바란다.

이러한 것들은 '세상'이 너에게 강요하는 가식적인 행복임을 알기를 바란다.

행복은 너에게 이미 있음을 느끼거라.

세상이 판단할 수 없는, 어찌할 수 없는 그런 '행복'이 이미 네 안에 있음을 깨달아라.

네 안에 이미 주어진, 숨겨져 있는 그 '행복'을 조금 더 빨리 발견하여 소유하기를 아빠는 기도한다.

 

아들아, 아빠는 너에게 멋진 세상,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네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멋지지만도, 아름답지만도 않단다.

그리고 이미 네가 '행복'을 손에 쥐고 있다 할지라도, 때론 이 '행복'이 마치 사라져 눈에 보이지 않을 순간들이 많을 것이다. 아니, 사실 눈에 보이는 순간보다 사라져 찾게 되는 순간들이 훨 많을지도 모른단다.

하지만, 명심하거라. 이미 네가 소유한 그 '행복'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너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을 뿐이다.

네가 조금만 고개를 좌우로 돌려보면 금방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리에 있을 것이란다.

아빤, 그러한 순간에 네가 고개를 좌우로 돌릴 수 있는 용기와 여유가 있기를 바란단다.

일곱번 넘어지면 여덟번 일어난다는 누군가처럼, 넘어지면 무릎 탁탁 털면서 웃음한번 짓고 다시 걸어가길 바란다.

 

모든 생물에는 다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이유가 있단다.

아빠는 네가 그 이유를 최대한 빨리 발견하고 깨닫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단다.

그래서 하루 하루를 그냥 흘러가듯 보내지만 말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 되기를 원한단다.

삶의 길의 방향을 정하고, 그 길끝에 기다리고 있을 너의 그 무언가를 위해 정진하길 바란다.

때로는 그 길이 직선이기도 하고, 꼬불 꼬불 돌아가기도 하고, 무수한 장애물들이 놓여 있을지라도,

가끔, 이 길이 맞나 싶을 만큼 길을 잃어 헤매고 있을때에도,

너를 믿고, 너를 보내신 이를 믿고, 이 길을 처음부터 너와 동행하고 계시는 그 분의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손을 잡고 다시 힘찬 한걸음을 내딛기를 기도한다.

 

아들아, 세상에는 너 혼자가 아님을 명심하거라.

네가 원하든 원치 않던, 니 옆에는 항상 누군가가 있음을 기억하거라.

그들이 너에게 선한 사람 일수도, 악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너는 그들 모두에게 선하기를 아빠는 바란다.

왜냐면, 너를 보내신 이도 너에게, 그들 모두에게 선하기 때문이란다.

너의 선함을 받는 그들이 선하면, 너의 선함을 감사히 받을 것이고,

그들이 악하다면, 너의 선함은 더욱 빛을 발하여, 그들의 악함을 덮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들아.

이전에는 네가 있는 삶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네가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단다.

이런 엄마, 아빠의 마음을 늘 생각하며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그러니, 효도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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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편지

부모님께

얼마 만에 엄마와 아빠께 쓰는 편지인지 모르겠네요. 어떤 책을 읽었어요. 감성적인 에세이였어요. 자신의 집에 있는 책장 속 책을 보고 아빠가 읽던 책이 자기계발서로 채워진 것을 깨달은 저자는 어느 날 한켠에서 아빠가 아주 젊었을 때 읽던 소설과 에세이 책을 발견해요. 그리고 아빠도 그런 종류의 책만 읽었던 때가 있었음을, 깨닫죠. 아빠가 되면서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읽는 책의 종류가 자기계발서로 바뀌어갔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그 글을 읽으면서 엄마와 아빠가 떠올랐어요. 유난히 다른 집보다 책이 많은 우리 집이 생각났고, 거기에 꽂혀있던 책들이 떠올랐어요. 아빠의 자기계발서, 경제 책, 엄마의 국어책, 딸 키우는 법에 관한 책. 책장 앞에서 수많은 책들의 이름들을 읽는 것이 취미이기도 했던 저에게 그 책들이 눈앞에 하나둘씩 지나갔어요. 그리고 그 책을 서점에서 집으로 데리고 올 때 그때의 엄마 아빠를 떠올려봤어요. 엄마 아빠도 엄마 아빠가 처음이니까 우리를 어떻게 키워야할지 많이 고민하셨을 거고 우리에게 좋은 것 많이 먹이고 많이 입히고 싶었을 그 마음에 자신의 일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하셨을 그 모습. 그 과거가 고스란히 남은 책장이 다시 보고 싶어졌어요. 이 책은 어떤 책일까, 하나하나 만져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아빠 엄마가 그리워졌어요. 두 분이 서로 처음 만났을 때, 결혼을 결정하셨을 때, 우리를 낳았을 때, 우리를 키울 때 그때 엄마 아빠의 시선이 궁금해요. 그리고 그 시간 모두 가슴 속에 따뜻하게 넣고 간직하고 싶어요. 아참, 이 생각을 하게 해 준 그 책에는 이런 문장도 나와요.

“나는 아빠의 청춘을 훔치며 자랐다. … 그래서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아빠의 청춘과 맞바꾼 내가 적어도 딱 그만큼의 가치는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달의 조각> 하현

저는 이 말을 조금 바꿔서 말하고 싶어요.

“나는 부모님의 청춘을 훔치며 자랐다. 그래서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부모님의 청춘과 맞바꾼 내가 적어도 딱 그만큼의 가치는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우리 삼남매가 태어나면서 하고 싶었던 일을 수없이 포기했을 아빠 엄마 감사합니다. 아직 부모님의 마음이 어떤 건지 완전하게 모르지만 그래도 무슨 느낌인지 조금은 알겠어요. 음, 아기 돌보는 알바를 하면서 우리를 키웠을 엄마 아빠를 상상해 봤던 것도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해요.

제가 하고 싶은 일, 하면 행복한 일, 기분이 좋아지는 일을 찾아낼게요. 찾아서 행복한 사람이 될게요. 아빠 엄마도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곧 얼굴 봅시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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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촛불을 든 오늘, 당신의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

 

마음속에 일렁이는 촛불 하나.

 

주섬주섬 양말 신고, 두둑한 겉옷 걸치고 문을 열고 나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은

 

그저 평범한 사람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일상의 희로애락이 응축되어 드넓은 광장의 바다로 펼쳐졌던


오늘날의 겨울은 참으로 뜨거웠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거슬러 세상사 이야기를 펼쳐놓았고


공공의 역사를 되짚어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고 싶었지요.


주저하지 않은 목청은 쉬지 않고 밤을 향해 새웠고, 관성처럼 밥 벌이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래도 희망'을 외쳤습니다.


그렇게 저마다의 마음은 어디론가 향하다, 흐르고, 모여서 '우리'가 되었습니다.


순박한 '우리'는 그저 사랑하는 이를 위해 촛불을 켜지요.

 

군대 간 우리 아들 몸 건강하길.


졸업한 우리 딸 사회생활 잘 하길.

 

하루도 쉬지 못한 우리 부모님 맘 편히 여행이라도 보내드릴 수 있길.

 

이 소소한 바람들은 꼭 지켜져야 할 우리들의 삶, 그 자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먹는 거나 잘 챙겨라는 엄마의 말에 문득 코 끝이 찡해졌던 어느 날,


자식들인 우리는 책임감있는 어른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 사랑해요' 삐뚤하게 쓰인 고사리 같은 첫 글자를 본 어느날,


부모인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한 어른이 되어야했습니다.

 

이 반복되는 소망들이 촛불 하나 거대한 물결이 되어 미래를 향해 일렁이게 만들었나 봅니다.

 

살아갑시다! 살아봅시다!

 

다짐에 찬 이 말 한마디가 시큰하게 가슴으로 파고드는 것은


붉고, 파란 또는 노랗게 물든 사계절의 알록달록이 아직은 아름다워서이지 않을까요.

 

 

 

살아가는 이 모든 시간이 가치 있게 흐를 수 있길 소망하며

 

그대에게 편지를 써봅니다.


P.S

 

촛불을 든 오늘,


당신의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

 

2016. 12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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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린과 독자들의 소통공간

Dear. 마리

안녕?

 

난 만다린이야

 

원래 수요일날 써야했었는데 못 썼네...

 

뭐, 변명을 해보자면...

 

3.1절이 수요일이라 쉬는 날이다 생각해서

 

옴니글로 쓰는건 생각도 안났어...ㅜ.ㅜ

 

미아내ㅜㅜㅜ

 

내가 꼭 쓰도록할게! 응?

 

음...그리고 말야

 

갑자기 생각난게 있어

 

그 막장인 소설, 사랑고백 있잖아?

 

그거..아마 중단편일거야...

 

하하하하ㅏ하ㅏ하하ㅏ하ㅏㅅ

 

그래도 완결은 내야하지 않겠어?

 

솔직히 그거 처음에 고백하고 이어진 다음에 일어나는 일로 바탕을 해서 사건을 만들고,

 

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과 '나' 의 감정,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말, 마음 등을 적을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막장이...ㅜㅜ

 

수정할 부분은 수정해야겠담...

 

크허허허허ㅓ허허ㅓ허ㅓㅓ

 

아무튼...주말 잘 보내고오~!

 

수요일날! 보자고~

 

잘가요~

 

사랑합니다~^^

 

 

                                                              - From. 마리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던 만다린이 -

 

 

 

 

ㄴ안녕하세요 만다린입니다.

 

ㄴ오늘은요 여러분들께 하고싶은 말을 적어보았습니다.

 

ㄴ여러분들 늦게 쓴거 정말 죄송해요...크허..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해요~사랑합니다 마리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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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내가 사랑했던 당신, B.E.S.T

이 세상이 다 변한다고 해도, 당신만큼은 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비록 내 곁에 없는 당신이지만

같은 하늘아래에 살고 있으니

언젠가는 우연이라도 마주칠 수 있으니

그 때 당신을 마주쳤을 때, 내가 알던 그 모습으로 변치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고 있다.

그 때, 당신은 정말로 멋있었다.

내가 충분히 반할만큼.

많은 사람들과 함께였어도, 충분히 그대에게 집중할 수 있을 만큼 정말 멋졌다.

 

내가 먼저 당신의 핸드폰 번호를 물었고

당신도 웃으면서 번호를 알려줬었지.

 

서로 연락을 자주 하게 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되었고

처음에는 호감, 그 후에는 정신없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당신에게 빠져들었었다.

그 때의 우리는 대화가 아주 잘 통했었다.

 

당신과의 만남과 연락은 늘 설레고 행복했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면서

부러워하기도 했었고, 우린 언제나 함께였었다.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워, 밤새 얘기하면서

달콤한 사랑도 많이 속삭였던 그 때의 우리였었다.

절대로 변하지 말자며 수많은 약속들과 함께 행복한 미래를 얘기하기도 했었지.

 

하지만, 그 행복한 시간이 석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너무 허무하게 끝이 나 버렸다.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신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잘 통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라는 걸

우리는 왜 인정하지 못했을까?

 

처음부터 당신과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이었을까?

 

늘 행복하기만을 바라던 당신과는 달리,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도 당신과 함께 나누길 바랐었는데

당신은 귀를 닫아버리고, 입도 닫아버리곤 했었지.

 

그런 당신에게 너무 서운했던 나는

더 어리광을 피워댔고, 지칠 대로 지쳐버린 당신은

시종일관 묵언했었지.

 

나는 당신에게 많은 걸 원한 게 아니었는데…….

 

그냥,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면 되는 거였는데,

속상한 마음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지.

 

왜, 내가 힘들다고 얘기하면 나에게 차가워지는 거냐고.

 

한참동안 말이 없던 당신은 대답했다.

 

왜 굳이 힘들다는 얘기로 충분히 즐겁게 할 수 있는 데이트를 망쳐 놓는 거냐며

오히려 내게 반문하며 지겹다고 했던 당신.

 

당신의 지겹다는 말 한마디에 나는 발끈했는데,

당신은 내게 더 냉정하게 얘기했었다.

 

“네가 누군지 나는 모르겠다.”

 

그 말이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처음엔 매사에 밝고 긍정적이었던 내가 좋아서

당신이 나를 정말 닮고 싶었기에 연애를 시작했던 것이었고,

앞으로 나와 함께 꿈꾸는 미래가 너무 즐겁고

행복할거란 기대에 가득 차 있었는데

 

지금은 왜 항상 만날 때마다 힘들다고 어리광 피워대며

나의 우울한 감정을 당신에게까지도 옮기는 거냐고.

 

나는 연인사이에 힘들다고 얘기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며

물었지만, 당신은 내가 너무 어린 것 같다고만 말했었다.

 

우리는 더 이상 대화가 되질 않았었지.

겁이 많은 나는, 그 후로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었고

그런 날 당신은 어떻게든 다시 잘 지내보자며 타이르기도 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는 풀리지 않는 숙제를 계속 껴안고

힘들어하다가 술에 의존한 채 취하면 울면서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은 한숨만 내쉴 뿐, 아무런 답이 없었지.

 

우리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고,

늘 서로에게 지쳐있던 상황에서 나는 또다시 사랑에 상처받고 싶지 않아

계속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었다.

 

한 없이 다정다감했던 당신은,

이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처럼 나에게 냉정해졌고

나는 또다시 애써 밝은 척, 당신의 마음을 되돌리려

노력해보았지만, 이미 늦었던 것이다.

 

당신은 내게 이별을 고했고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지만

당신의 마지막 한마디에 나는 깊은 절망 속으로 빠졌었다.

 

이제 더 이상 당신에게 나는 여자가 아니라며 잔인하게 전화를 끊어버린 당신.

 

하필이면, 그 날 비가 무척 많이 오던 날이었지.

우산을 쓰고 빗소리에 묻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르겠다.

 

한동안은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그 다음에는 분노로 바뀌었고, 미친 듯이 화가 나서

당신을 참 오랫동안 괴롭혔었다.

 

나랑 헤어지고, 당신도 나처럼

아니

나보다 훨씬 불행했으면 좋겠다고 빌고 또 빌었다.

 

수시로, 구질구질하게 매달려보기도 했고,

온갖 심한 막말도 거침없이 해대면서도

마음속 한 구석에는 다시 돌아 와주길 바라고 또 바랐었는데

나에게 돌아온 건 당신의 무응답.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보아도 당신은 칼같이 나를 잘라냈다.

나는 이제 더 이상은 정말 안 되겠구나 받아들이기까지 너무 힘들었다.

 

당신과의 사랑이 끝이 나고, 시간은 정말 빠르게도 흘러가더라.

허무하게 당신과의 사랑이 끝난 게 아쉬워서 인건지

그동안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달콤한 미래에 기대가 너무 커서

미련이었던 건지는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겠더라.

 

난 아직도 당신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 한다는 사실.

아직도 당신을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내지 못하고

당신을 아직도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걸 말이야.

 

다시 되돌리기엔 너무 많이 늦었다는 걸 알지만

한번쯤은 시간을 되돌리고 싶긴 하다.

 

만약, 다시 되돌아간다면, 당신을 힘들게 하지 않았을까?

 

조금은 더 생각해봐야 하는 아직은 풀리지 않는 숙제를 껴안고 있는 듯하다.

시간이 얼마나 더 지나야 당신을 잊을 수 있을까?

 

그 때, 당신이 나빴던 게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기에 타이밍이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가 사랑하고 있을 땐,

서로에게 거짓 없이 진실 된 사랑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 생각하진 않기로 한다.

당신도 충분히 많이 아프고 힘들었을 테니까.

워낙, 힘든 거 내색하지 않던 당신이었으니까.

 

비록, 짧은 사랑을 했던 우리였지만

이제는 당신과 만날 수도 연락도 할 수 없지만

처음처럼 당신은 여전히 멋있는 사람으로 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항상 당신은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내가 너무 많이 의지했고, 진심으로 당신과의 행복한 미래가 이뤄지길

누구보다 간절히 원했던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당신이니까.

 

나도 당신을 내 마음속에서 잘 떠나보내고

행복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가끔씩은 그 때의 우리가, 당신이 그리워질 때도 있겠지만

또 하나의 좋은 추억으로 남겨둬야지.

 

당신은 정말 최고로 멋있었고

한없이 다정다감하고 늘 진실 된 사람이었으니까

앞으로도 그 모습이 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딱 한 가지, 변했으면 하는 건

앞으로 누군가와 다시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된다면

힘들다고 말하는 상대방을 감싸 안아 줄 수 있는 당신이 되었으면 하는 것.

 

그 부분만 변화된다면,

아마 당신은 최고로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진심으로 온 마음 다해 사랑했던 당신, B. E. S. T!

 

이제는 각자의 길 위에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길 바라면서 이제 정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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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미답[前人未踏]

마지막 편지 : 나미야 잡화점

이름 없는 분에게.

 

어렵게 백지 편지를 보내신 이유를 내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이건 어지간히 중대한 사안인게 틀림없다, 어설피 섣부른 답장을 써서는 안 되겠다, 하고 생각한 참입니다.

 

늙어 망령이 난 머리를 채찍질해가며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결과, 이것은 지도가 없다는 뜻이라고 내 나름대로 해석해봤습니다.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을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마 당신은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것 같군요.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지도가 백지라면 난감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누구라도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겠지요.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상담편지에 답장을 쓰는 일은 이제 더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멋진 난문을 보내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 나미야 잡화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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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괜찮아.

아빠

아빠,

나에게 아빠는 좋은 존재가 아니었어요.

 

어린 시절, 기억나는 순간부터 아빠는 나에게

나를 무서움에 떨게 만드는 사람.

나를 슬프게 만드는 사람.

온갖 아픈 말들로 나에게 못을 박던 사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 스물 둘까지

오래된 기억들조차도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나를 아프게 해요.

아빠가 나에게 했던 말들은

이 세상에서 나란 존재를 지워버리는 말들이었지요.

 

그 때 그 슬픔과 원망, 속으로 생각했어요.

언젠간 꼭 후회할거라고. 자식을 그렇게밖에 대하지 못한 걸 눈감을 땐 꼭 후회하라고.

 

근데, 참 이상하죠.

이제는 예전처럼 나를 번쩍 안지도, 나를 목마 태우지도 못할 정도로

늙어버린 아빠를 보면 가슴이 먹먹한 게 목이 메요.

 

애증이라는 감정이 이런 걸까요.

그래서 ‘차라리 남이었으면 좋았을 걸’하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남이었다면 마음 놓고 실컷 미워하고 원망할 수 있었을 테니까.

 

누군가는 그래요.

이제 길어봐야 10년이다. 그러니 계실 때 잘해라.

그럴 때 마다 코웃음 쳤어요.

 

근데 지금 제 마음은요.

아빠와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이 다음에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꼭 아빠 손을 잡고 들어가고 싶어요.

 

그러니까 꼭, 건강히 오래오래

제 옆에 있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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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 그래도 나 오늘은 엄마가 낳아준 보람이 있네.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1.8.31. 토 맑음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이름 - 이슬

오늘은 우리 귀엽고  예쁘기만 한 슬이가 태어난 날이다. (3.5kg) (아침 7시 56분, 음력 7월 22일)

어제저녁, 무거운 배를 내밀고 여느 때와 다른 힘든 저녁을 준비하고 힘들게 저녁을 먹으면서 여느 때와 다름을 아빠와 얘기했고 급기야는 이슬이 비쳐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작은 이모네 집으로 택시를 타고 떠났다.

 

도착하니 10시가 넘어있었고 이모는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가서 자고 오겠다고 했단다.

급히 이모께 전화하여 이모는 달려왔고 엄마는 아프고 힘든 진통을 시작했던 거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4.5분 간격으로 진통이 느껴졌고 이모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른 새벽 병원문을 두드리는 것보다 밤중에 입원하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아 12시가 넘어 병원 문을 두드렸다.

간호원과 의사 선생님이 진찰을 했고 엄마는 꼬박 밤을 새우며 진통을 했고 아빠 또한 옆에서 힘겨워하는 엄마를 보면서 초조해했지만 아침 7시. 수술에 들어갔다.

 

엄마 아빠는 정상적으로 슬이를 낳고 싶었지만 골반이 벌어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수술로 너를 낳은 것이다.

엄마가 마취에서 깨어난 것은 누군가가 입원실로 옮겨와서 엄마를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아빠와 이모 말소리가 들리면서 엄마는 서서히 깨어났단다.

한참 후 아빠는 너를 안아 데리고 왔단다.

슬이 너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엄마는 조금 서운 했단다.

이왕이면 시공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원하시던 아들을 낳고 싶었거든.

하지만 엄마는 건강하게 태어난 너에게 감사했고 열심히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슬이가 누구를 닮았을까?

엄마는 이곳저곳을 찾아보았지만 알 수가 없더구나.

남들이 아빠를 닮았다니 그런가 보다 생각할 뿐이다.

슬아!

예쁘고 착하고 건강하게 커야 한다.

엄마 아빠의 가장 큰 바람이다.

엄마 아빠는 슬이를 사랑해!

 

 

2016. 8.31

 

태어난 지 올해로 벌써 9132일째 되는 날이다. 구천일이 넘게 살아왔는데 태어났을 때와 별반 다름없는 아무것도 없는 몸이 돼버린 날이었다.

두 번째는 열심히 다녀보자 으쌰 으쌰 했던 직장도 잃어버리고, 돼지 간 마냥 퍽퍽한 삶에 적응하느라 내 꿈은 어디로 갔는지 찾기도 전에 오늘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내 룸메이트는 매력 있고 착한 친구다. 창원에서 올라와 승무원 준비를 하다가 서울 근처에 취직이 돼서 일을 다녔다. 서울에 연고라곤 몇 없었고, 나도 서울살이 힘듦을 알기에 잠시 우리 집에 머물라고 했다.

크고 시원한 눈매, 긴 다리에 어여쁜 친구. 엄마와 떨어져 생활하기 시작한 힘든 서울 살이에 유일하게 내게 힘이 되어준 친구였다. 그렇게 취직이 된 친구가 백수가 된 내게 오늘 생일이라고 봉투를 내밀었다.

 

"생일 선물이야."

"웬 선물?"

 

백수가 되었다는 자괴감과 앞으로 살아갈 막막함에 생일이라는 큰 일 년의 이벤트 날이었음에도 나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생일선물을 누군가에게 주기에도 또한 받기에도 많이 커버린 나이가 돼버린 것이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된 생일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내 일을 하기에도 바빴고, 누군가에게 생일 축하를 받는 것도 민망했기 때문이다.

 

친구 회사 로고가 적혀있는 봉투를 받아 들었다. 봉투에는 오만 원짜리 지폐와 A4용지로 만든 편지가 이었다.

오랜만에 받아 본 편지였다. 편지에는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분명 더 좋은 일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불안해하지 말라고. 자신이 백수였을 때 내가 힘이 되었던 것처럼 이번엔 자신이 내게 힘이 되겠다고. 그러니 우리 잘살아보자고. 적혀있었다.

 

예쁜 얼굴과 정반대인 편지지 안의 초등학생 글씨를 보고 난 피식- 웃음이 일었다.

그제야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생일날 마사지받을래?"

"무슨 백수가 마사지야. 돈 아깝게 그거 돈으로 줘."

 

생일날 마사지를 받게 해주겠다는 룸메이트에게 무슨 마사지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부러 버럭 했다.

백수 주제에 마사지가 가당키나 해? 당장에 생활비도 빠듯해서 걱정인데, 했다.

 

황금색 오만원 지폐를 보니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룸메는 봉투를 휙- 주고는 화장실로 씻으러 들어갔다.

나는 친구가 준 오만원과 편지를 고이 지갑에 넣었다. 생일 선물을 돈으로 달라고 했던 내가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영화도 보고 저녁까지 풀코스로 선물을 받은 나는 불룩 나온 배를 두드리며 집으로 왔다.

아직도 머릿속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공존하지만 회사를 관둔 오늘, 생일인 오늘, 부자처럼 큰 선물을 받은 오늘이 참 특별한 날이 되었다. 태어난 날, 새롭게 태어난 날. 난 또 다른 시작 점에 서있다.

 

엄마, 좋은 친구 덕에 그래도 나 오늘은 엄마가 낳아준 보람이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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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 나 회사 관둘까?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년 4월 8일 목요일 비 오는 날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 이름 - 이슬
: 선영 - 슬이의 친구

 

아침부터 날씨가 쌀쌀하고 흐리더니 드디어 비가 내린다.

 

엄마는 부엌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아빤 슬이를 보행기에 짚고 서게 하며 아빠가 천천히 밀면서 한 발 한 발 발 띄는 연습을 시켰단다. 덕분인지 오후에 선영이가 놀러 왔었는데 엄마가 슬이 손을 잡아준 오른발을 냉큼 들었다가 놓는다. 왼쪽 발은 아직 힘든지 띄지를 못하는구나.

 

슬이는 앉아있고 슬이 앞에 과자봉지를 놓아주니 그것을 잡으려고 한 손을 땅에 집고 또 다른 손은 앞으로 내밀며 번갈아 몇 번을 해보았지만 턱없이 손이 닿지 않자 포기를 하고 다른 것을 만지며 논다.

 

너무 힘이 들었는지 아랫도리를 다 벗겨 놓았는데도 머리가 땀에 촉촉이 젖었단다. 오늘 아침 슬인 6시에 일어났다. 엄마가 잠결에 '바스락'소리를 듣고 눈을 뜨니 슬인 머리가 요 밑으로 내려가 있고 파우더 통은 이미 엎질러져 있고, 엄마 머리핀을 잡으려고 두 손을 뻗고 있었다. 슬인 아직 기어 다니지는 못하고, 배로 밀고 뱅뱅 돌면서 이곳저곳을 두루 다닌다.

 

선영인 무엇이 즐거운지 슬이를 보더니 자꾸 '깔깔' 거리며 웃었다. 저녁때 엄마가 슬이에게 초콜릿을 주었다. 슬인 입속에서 오물오물 거리면서 맛있게 먹었다.

 

 

 

2016년 4월 8일 금요일 날씨는 맑은데 아직은 추움

 

엄마, 나 회사 관둘까?

처음엔 계속해서 좋은 직장, 이름 있는 직업, 복지가 좋고, 어디 가서도 떵떵거리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 서울에 혼자 떨어져서 생계만 유지할 수 있는 비용을 받아가면서 정직원이 될지 안 될지 고민하면서 이 일을 하는 게 맞는지 매일 생각해. 보통 회사 들어가면 인턴부터 시작해서 통과하면 계약직이고 또 언제 계약이 연장될지 조마조마한 상태에서 정규직이 되기를 기다리잖아. 그렇게 정규직이 되면 다행인데, 잘리면 또 다른 일을 구해야 하고, 그 또 다른 일은 또 계약직이고.

 

엄마 그거 알아? 내가 어디서 본 건데 '인턴'이라는 뜻이 '인'간을 '턴'다는 뜻 이래. 웃기지? 요즘 내 친구들은 인턴 하고, 또 다른 인턴을 하고, 또 인턴을 하더라고. 그걸 '메뚜기 인턴'이라고 한데. 요즘 참 재미있는 말들이 많은 것 같아.

 

어제 아침에 텔레비전에서 '바다로 돌아간 청년들'이라는 내용이 나오더라고. 25살 청년이 가업을 이어받아서 전복을 양식하는 일을 하고 있더라. 그 25살 친구가 그러더라?

 

"언제 잘릴지 모르는 일보다는 70-80년 기술만 있으면 먹고살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고"

 

그 말을 듣는데 나 울컥-했어. 도시에서 지방대 출신인 내가 들어갈 수 있는 회사도 마땅하지 않고, 월세에 학자금 대출에 생활비에.... 나도 집에 내려가면 월급을 조금만 받아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혼자 나와 사니까 집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더라. 나, 이 작은 지하방에서 울면서 고민했어. 집으로 내려갈까? 하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도 잘 모르겠고, 내 미래가 암울한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워 엄마.

 

계속 돈만 쫒아가다 보니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는 것 같아서,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회사를 옮겼어. 경력도 얼마 없고, 나이도 애매하다 보니까 월급이 더 적어졌어. 그래서 돈 좀 아껴보겠다고 요즘은 도시락을 가지고 다녀. 아침에 너무 피곤해서 간신히 엄마가 준 김치랑 김만 싸서 출발하지만 그래도 뭐 일은 재미있어! 다행히도.

 

아직 수습기간이라 월급에 80%밖에 받지 못하는데, 이번 달은 어떻게 생활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래도 여기는 작은 회사라 수습만 잘 끝나면 바로 정직원이래. (좋아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엄마, 월급이 170인 사람이 서울에 집을 사려면 137년이 걸린데.... 

 

 

 

 

 

나 어릴 때 걷기 위해서 한 발 한 발 노력했던 것처럼 한 발 한 발 걷다 보면 더 나은 미래가 있을까? 오늘이 내가 처음 초콜릿을 먹은 날이라고 그랬잖아. 오물오물거리면서 맛있게 초콜릿 먹었다고. 어릴 적 처음 맛본 초콜릿 맛처럼 그런 달달한 앞날이 올까?

 

그래도 나 엄마 딸이니까. 뭐든 열심히 해볼게.

언제나 내편인 엄마! 오늘은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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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 나 남자친구랑 헤어졌어.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6.12. 금 맑음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이름 - 이슬
: 유림이 혜진이 보람이 - 이슬의 사촌
: 예슬 - 슬이의 친구

지난 월요일에 슬이와 엄만 강원도 외할머니 댁을 다녀왔다. 가는 길에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슬이를 봐주어서 엄만 편하게 긴 여행을 할 수가 있었단다. 요즘 한참 전국적으로 어린아이를 훔쳐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엄마도 바짝 긴장을 하고 긴 여행에 화장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은근히 걱정도 되었었다. 그래서 화장실을 다녀오라는 아주머니의 얘기를 듣고 엄마가 머뭇거리자 그 아주머니는 웃으시면서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해서 웃었단다.

 

슬인 낯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의 품에 안겨 올 때는 옆에 앉은 대학생 오빠의 품과 엄마 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서울까지 왔고 또 뒤에 앉은 군인 아저씨들 품에서 있다가 오곤 했었다. 장난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고 손을 잡아주면 웃고 '짝짝쿵'하고 '곤지곤지'도하고 '잼잼'도 번갈아 가면서 열심히 해대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주곤 했단다.

 

슬인 얼마 전부터 '짜까짜까'라는 소리를 하루에도 수없이 해대면서 돌아다니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소리를 지르곤 했다. 엄마가 생각하기엔 엄마가 슬이에게 시계를 보여주면서 시계 소리도 들려주면서 시계가 '째깍째깍' 움직인다고 알려 준 것을 슬이가 그런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슬인 할머니 댁에서도 할머니 외삼촌 외숙모 품을 왔다 갔다 하면서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면서 '짜까'를 해댔다. 그래서 외삼촌과 할머니는 그 소리가 재미있어서 '슬아! 짜까 짜까'하면 슬인 또 곧바로 '짜까'를 해대면서 놀았다.

 

할머니는 '짝짝쿵' '곤지' '잼잼'을 하면서 방긋방긋 웃는 슬이가 너무 사랑스러운지 슬이가 사람 애간장을 녹인다고 표현하셨단다.

 

슬인 할머니네 집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왔다. 마굿간에 메어있는 소와 송아지도 보고, 닭장에 들어있는 벼슬도 크고 뒤 꽁지도 큰 수탉도 보고, 장독대에 놓여있는 각종 장단지들도 보았단다.

 

밤에는 시골 곳곳을 개구리 울음소리가 '개골개골' 들려왔다. 유림이 혜진이 보람이 언니가 슬이를 둘러싸고 서로 만지고 건드리자 슬인 싫다고 짜증을 냈다. 슬이가 좀 컸다는 증거일까?

 

슬인 몇일 전부터 밥상에 손을 짚고 손으로 이것저것 마구 만지려 든다. 만지면 안된다고 야단을 치면 소리를 마구 지르면서 양 날개를 치고 울어댄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여 엄마 아빠가 저지하려 들면 마구 악을 써댄다. 그것이 크는 과정인가 모르겠다.

 

시골에 갔다가 목요일날 왔다. 그리고 오늘은 금요일이라 예슬이네 집에 갔다가 예슬이 엄마가 슬이 머리를 잘라 주었다. 요즘 한창 유행인 '멕 가이버' 형 머리다. 뒷머리는 길게 기르고 귀를 둥그렇게 파는 모양이다. 머리를 깎고 나니 슬인 머슴 아이 같으다. 머리 깎기 전에 슬이가 졸렵다고 칭얼거려 입에 우유병을 물리고 슬이를 바닥에 앉혀 놓고 보자기를 씌워놓으니 슬인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앙증맞고 귀여워 모두들 웃었단다. 거의 머리 모양이 다 완성 될쯤 슬인 스르르 두 눈을 감고 엄마 무릎에 머리를 묻었다. 머리를 만져주니 잠이 왔든 모양이다.

 

집에 오늘 삼촌이 와 계셨다. 슬이 옷을 사 왔는데 남자 옷이었다. 그 머리에 그 옷을 입혀 놓으니 완전 남자아이였다. 슬아! 너무나 귀엽구나 사랑한다.

 

 

2016.6.22 수요일 제가 쓴 일기 입니다.

 

러브픽션이라는 영화를 다시 봤어. 처음에 불태웠다가 서서히 사그라드는 남자와 미적지근했다가 서서히 그 남자에게 마음을 여는 여자. 남녀 간의 입장 차이가 느껴졌고, 예전에 봤을 때 지루했던 내용들이 이별 후에는 대사 하나하나가 와 닿더라.

"사랑한다는 말 말고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다른 말해줘""나는 너를 방울방울 해."

나는 공효진이 질투가 났어. 달달하고 방울방울 한 멘트를 듣고 싶었어. 그래서 나도 만들어달라고 떼를 썼고, 그렇게 만들었는데 그래도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사랑해였던것 같아.

 

그는 그렇게 나에게 사랑한다고, 딸기딸기포도포도해한다고 했어.

그는 그렇게 나에게 그만하자고, 헤어지자고 했어.

 

 

그게 끝이었어.

시차가 우리를 가로막았고, 살아감의 벅참이 우리를 만나지 못하게 했어. 내가 잘하겠다고, 내가 미안하다고, 우리 잘 견뎌보면 안 되겠냐고 묻고 또 물으면서 매달렸어. 나 자존심 다 던져버리고. 그는 헤어졌고, 나는 헤어지지 못했어. 동시에 헤어진다는 게 가능한 걸까? 아니,  그런 헤어짐은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닐까. 진심이었다면 동시에 헤어지는 게 불가능한 것 같아. 그리워하고, 또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더 이상 그 생각에 아파하지 않을 때가 헤어짐이 온 것이 아닐까. 나는 아직도 그 이별의 치유 과정 앞에 있는 것 같아.

 

술을 마셨어. 많이 마신 것은 아니었는데, 금세 취해버렸고 잔뜩 주변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며 집에 왔어. 집에 도착하니 눈물이 나왔어.

끝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속이 너무 안 좋았고, 계속해서 먹은 것들을 게워냈어. 그를 머릿속에서 비워내는 것처럼. 속이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았는데도 잠이 오더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이렇게 속이 아파도 잠이 오는 것처럼, 헤어짐이 너무 힘들고 죽을 것 같아도 그냥 그렇게 살아지지 않을까. 아프고 힘들었었던 지난날의 사랑이 금세 미화돼서 빛바래 좋았던 기억으로 내게 남겨진 것처럼, 지금의 이별도 언젠가 "그때 그랬었지." 하며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다들 날 사랑하기만 하는 건 아닌가 봐.

 

다 같이 집에서 아빠가 만든 막걸리 한잔씩 마시고 예전 이야기를 했던 날.

엄마랑 아빠가 어떻게 만났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 엄마가 대답했지.

 

"아빠 회사 옆에 있는 회사를 엄마가 다녔는데, 아빠가 나를 보고 한눈에 반해서 만나 달라고 졸랐지."

 

그때 아빠는 겸연쩍게 웃으면서 암시롱도 아닌 척 과일을 먹었는데 엄마가 아빠를 보고 "맞지?"라고 물었을 때 나 되게 엄마가 부러웠다? 사실 이번에는 진짜라고 생각했는데. 환경이, 시간이, 이유 같지 않은 이유들로 헤어진 거니까. 그와 나는 아닌 거겠지.

 

엄마가 아직 만나고 있냐고 물었을 때 "아니, 헤어졌어."라고 덤덤하게 아무렇지 않게 말했는데. 사실 괜찮지가 않아.

어릴 때의 나는 누구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투성이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게 날 더 힘들게 해.

 

길가다가도 음악을 듣다가도 어느 그 순간순간에 이별이 내 삶 속에 끼어들어 나를 괴롭혀. 하루는 온전히 아무런 생각이 없다가 또 다른 하루는 하루 종일 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해서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져. 이별에 관한 글귀나 노래들이 전부 내 이야기 같고, 밤에 중간중간 일어나서 핸드폰을 확인하다가 잠들어. 문자도 sns도 다 차단했다가 혹시라도 연락이 오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풀었다가를 반복해.

 

시간이 지나면 나 괜찮아 질까? 얼마나 지나야 괜찮아지는 걸까. 하루하루 그냥 버티면서 지내는 중이야. 하루에도 감정이 수십 번 바뀌어. 꼭 다중인격을 가진 사람처럼. 화가 나서 계속 욕을 하다가 우울해서 울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헤헤-웃기도 하다가 멍하니 정신을 놓아버리기도 해. 내가 미친 게 아닌지 무서워. 미쳤지 사실, 미쳤지. 끝이라는 데도 붙잡고 있는 내가 미치지 않고 뭐겠어. 다시 한번 붙잡아 볼까 생각하다가도 안될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하루에도 수십 번 포기해.

 

그가 보고 싶어. 그래서 너무 힘들어, 엄마.

마음의 고름이 있다면 이미 곪아 터진 듯해. 이렇게 터져버렸는데 이제 딱지가 앉으려면 내가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뭐라도 하고 싶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게.

 

그때의 엄마도 아빠를 만나기 전에 나랑 비슷했겠지? 사소한 거에 상처받고 겁을 내고 아파하고. 저 일기 때의 엄마 나이가 나랑 비슷할 때니까. 엄마도 그랬겠지?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사랑하고 그리고 아프게 헤어지고. 그리곤 아빠라는 사람을 만난 거겠지? 나도 내 짝이 있을까? 오늘은 물음표가 많네. 나 오늘 좀 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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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梅夏 매일 그리고 하루

엄마, 난 돈 먹는 하마야

1990년도 엄마의 일기에 2016년도 제 일기를 더한 글입니다. 엄마의 하루와 제 오늘이 담겼습니다.

1992.8.19. 수 맑음 엄마가 쓴 일기입니다.: 이름 - 이슬
: 선영 - 이슬의 친구

선영이네 집에서 저녁을 먹고 유모차를 끌고 집으로 왔다. 이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 약간 춥다는 생각마저 든다. 오는 길에 아주머니 들께서 집 앞에 나와계시면서 슬이를 보더니 머리핀 꽂았다고들 하자 슬이가 그 아주머니들을 향해 손을 마구 흔들어 대는 거다. 그러자 아주머니들도 손을 같이 흔들자 슬인 박수를 마구 쳐댔다. 

 

오후에 아빠가 출근을 하셔서 엄마랑 슬이랑 같이 밖을 나섰다. 아빠는 출근을 하시고 슬이와 엄만 은행에 들렀다. 슬이 앞으로 조그마한 적금을 만들었다. 이젠 슬이 통장도 생긴 거다. 

 

슬인 구멍이 있는 나무토막에 볼펜을 집어넣었다 뺐다 하면서 놀고 있다. 아침에는 뚜껑을 가지고 그 구멍에 넣으면서 놀자 아빠가 슬이를 칭찬해 주었단다. 

 

열쇠 꾸러미를 가지고 놀다가 부엌 바닥으로 떨어뜨리자 옆에 있는 부채 손잡이를 거꾸로 잡고는 그 열쇠를 잡으려고 엎드려서 계속 시도를 했다. 엄마와 아빠는 그 모습을 보면서 슬이가 머리를 쓴다고 칭찬을 했단다. 

 

노트 속에 있는 엄마 지갑을 꺼내서 종이돈은 구겼다 뺐다 다기 집어넣다 하면서 흐트러 놓는다. 전화카드, 주민등록증까지 꺼내서 이리저리 만져본다. 종이돈이 빳빳하니까 구기기도 재미있는 모양이다. 

 

2016.8.18 목요일 숨 막히게 더움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잔인한 여름을 보내고 있어.

어릴 땐 마냥 내가 잘될 줄 알았어.

TV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화려하게 돈도 많이 벌고, 하고 싶은 것도 다 하면서 살 줄 알았어.

 

우리 집에서 일하시는 분 중에 명문대를 나온 분이 있었잖아. 나는 어릴 때 왜 저렇게 좋은 대학을 나와서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시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어.

"그 나이 먹고 아르바이트라니"라며 못된 소리를 속으로 했던 것 같아. 

 

사촌언니가 공무원을 8년 준비하다가 결혼을 했을 땐, 왜 저런

"멍청한 짓을 하나. 이젠 취직하긴 글렀네."라며 비하했었어.

 

사촌오빠가 하고 싶었던 일을 포기하고 가족을 위해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도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했었어.

 

그런데 삶은 참 힘들고 어려운 것 같아.

꼭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만 잘 사는 건 줄로 알았던 내가, 사회에 나가면 금방 성공하고 원하는 일로 돈을 많이 벌줄 알았던 내가, 절대 저 사람들처럼 살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내가,

어느새 삶에 타협점을 찾고 있더라.

 

예전엔 '이게 하고 싶다' '저게 하고 싶다' 분명했었는데  이젠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어.

원하는 곳은 취업이 안되고, 급한 데로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싫은 일을 하다가 금방 회사를 관둬버리고.

빚은 많고 하고 싶은 건 모르겠고 내가 무엇 때문에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지 의문이야.

 

가끔 엄마에게 내가 묻잖아.

"엄마는 어떻게 50년을 살았어?"라고.

 

엄마는 그러면,

"글쎄 살다 보니 벌써 50년을 살았네"하지.

 

난 늘 생각해. 나도 엄마처럼 남편을 만들고, 아이를 만들고, 집을 가지고, 그냥이 아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뛰고 걷고 이야기하며 차곡차곡 나만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다 보면 나도 '글쎄 살다 보니 50년을 살았네, 60년을 살았네, 70년을 살았네'할 수 있을 것 같아. 차곡차곡 쌓이는 적금처럼 지금 이 힘든 시기도 인생의 경험처럼 쌓여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나이를 많이 먹고도 당당하게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8년 동안 미친 듯이 한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하고 싶은 일보다 더 소중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는 사람이 되길.

 

나는 내 미래가 그렇게 되길 희망해.  

 

-엄마의 돈 먹는 하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