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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3 프란치스카의 공개일기

5시간 논 유정이 생일 파티 [2017. 0617. 토]

나는 유정이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다섯 시간 동안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지우, 가연이, 세은이, 동현이, 환이도 생일 파티에 초대 받았다.

 

처음에는 핼로팡팡에 갔다. 헬로팡팡은 쑥고개에 있는 어린이, 아기들을 위한 키즈 카페이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는데 아주 신나는 곳이어서 금새 적응이 되었다. 우리는 트렘폴린에서 누가 누가 높이 뛰는지 시합이라도 하듯이 천장을 향해 힘껏 몸을 뻗어 뛰었다. 땀을 뻘뻘 흘릴만큼 열심히 놀았다. 동현이가 힘껏 공중으로 뛰어 오르다가 내려올 때 잘못 헛디뎌서 넘어졌다. 다행히 동현이 다리가 조금 아팠을 뿐 부러지거나 삐지 않았다. 1시간 정도 마음껏 뛰어 놀던 중 치킨과 피자를 먹으라고 유정이 엄마가 부르셨다. 나는 너무 신나게 놀던 나머지 배고픔도 잊어버렸지만 치킨과 피자를 보는 순간 와락 배가 고프고 입에 침이 고였다. 유정이 생일축하 노래가 끝나고 유정이가 생일 촛불을 불자마자 나는 허겁지겁 맛있게 먹었다. 헬로팡팡에서 2시간 반 정도 놀았을 때 우리는 노래방으로 이동했다. 그 노래방은 유정이 할머니가 운영하시며 옛날 신림 9동에 위치했다. 우리는 트와이스 노래를 제일 많이 불렀다. 특히 T.T 노래는 그 중에서 내가 가사를 잘 알아서 내가 마치 아이돌이 된 듯 큰 소리로 불렀다.  하지만 노래를 자기가 먼저 부르려고 티격태격 거렸다.

 

한참 재미있어 할 때 집으로 가야 된 게 너무 아쉬웠다. 내 생일파티 때에는 유정이와 다른 친구들을 초대해서 일곱 시간을 놀고야 말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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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Think & Write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by 알랭 드 보통(2016)

#The Course of Love: 오리지널 제목을 번역하여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서 저자가 결혼에 대해 가지는 생각이 썩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을 접해서였을까, 이 장편소설은 저자가 그 전 에세이에서 담고자 했던 메시지를 소설로 풀어낸 것이구나 생각했다. 사랑은 '점(intervals)'이 아니라 '선(continuation)'이며 낭만주의적 강렬한 감정이 전부가 아니라 서로 맞춰 발전해 나가야 하는 제도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현실에서 사랑은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라는 진부한 문구와 함께 클라이막스에서 끝나는 영화와 소설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지속되어야 하는 변화무쌍하고 예측불가의 유기체이다. 영화와 소설에서 극적으로 묘사하여 우리를 감동의 도가니로 집어넣는 사랑은 한낱 'the course of love'의 작은 단편이자 러브스토리의 시작일 뿐, 진정한 '러브'에 대한 '스토리'는 그 다음부터라는 냉소적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현실 이야기.

 

이미 결혼생활 15년이 넘는 내가 이 책을 왜 읽고 앉았는지 모르겠다며 툴툴댔지만 '독서토론'이라는 원대한 목적을 위해 짜증을 꾹 참고 끝까지 읽은 결과 이 책은 내게 툭~ 하고 생각 돌맹이를 던져 주었다. 팍팍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쿨하게 보여줘서 속이 시원하다? 나중에 딸내미가 결혼을 하려고 할 때 꼭 읽게 해야겠다? 아님 지금도 계속해서 my course of love에 파트너로 열심히(?) 살고 있는 내 남편에게 권해야겠다? 

 

#낭만을 뛰어넘어 '철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296 페이지 첫 번째 단락. "삶의 추함을 인정하고 낭만주의를 뛰어넘어 짧고 뜨거운 사랑을 일생으로 확장하는 일에는 철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일상의 삐긋거림은 맹독으로 작용하기 쉽지만 성찰에 담그면 묘약으로 연금된다." 나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결혼이 아닌 '양육'에 대해 반추했다. 라비와 커스틴 이야기에서 언급되지만 아이는 결실을 이룬 사랑의 절정이라고나 할까? 다들 그러지 않나?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며 결실은 아이라고. 결혼처럼 출산과 육아 또한 사랑의 감동적인 열매라는 생각은 아마 출산 후 일주일 정도일 것이며 아이가 자라면서 아주 간헐적으로 느끼는 행복과 만족감 덕분일 것이다. 육아라는 현실의 민낯은 그보다 훨씬 더 혹독하고 고통스러우며 오해와 실망, 바닥으로 내닿는 피로와 우울감으로 점철된다는 것을 우리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 엄마로서 내 아이와의 관계는 사랑과 헌신 위에 있는 것을 결코 부인하지는 않는다. 완벽하게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말하기에는 내가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이 솔직히 너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내가 아이를 위해 경력의 황금기를 발로 뻥 차버리고 전업엄마로 눌러 앉았다는 사실은 내가 아이를 낳았다는 출산에 이어 두 번째 기적이다. 아이만 생각하면 마음이 벅차고 짠해지는 낭만적인 사랑은 내 마음 아래에 든든히 뿌리박혀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자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들기 시작했다. 육아 역시 시간과 함께 지속되고 우리의 육체와 정신이 변함과 함께 확장 또는 조정되어야 하므로 그 역시 '철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랑이라는 반석 위에 나는 육아에 대해 어떤 철학을 세울 것인가?

 

"엄마가 너를 무척 사랑하지만 이제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 충실하는 데에도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쓸 수 있도록 하자. 내가 너만을 위해 내 남은 인생을 올인할 수는 없지 않니? 너도 엄마의 무조걱적인 헌신이 전부라는 생각은 내려놓는 것이 어떨까? 낭만으로만 살기에는 우리 인생이 길고 깊으며 복잡하고 변화무쌍하고 예측불가능하구나. 엄마는 엄마 인생을 충실히 살고, 너는 너의 인생을 충실히 사는 거지. 가끔 함께 하며 순도 100% 의미있는 시간을 함께 하자꾸나. 언제나 손을 뻗으면 우리는 손이 닿는 곳에 있어. 격이 없이 만나고 기쁘고 힘들 때 두 배로 축하하고 네 배로 위로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함께 하며 기나긴 인생의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가는 여행의 동반자라고나 할까?" 열 살 짜리에게 너무 어렵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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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될 줄 알았지

퇴사 후 남미 여행, 과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까?

약 오년 하고도 반년을 일했던 회사를 갑자기 그만 두게 되었다. (뭐, 짤렸다고 해도 무방하다.)

첫 직장인데다 나는 유난히 모난 성격이라 지난 오년 반은 그야말로 좌충우돌 고난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전세 자금으로 받은 사내 대출 상환만 마무리되면 퇴사를 하리라 벼르고 있던 터였다.

 

마침 사업부 철수로 본사 발령이 떨어지면서 이때다 싶어 1등으로 퇴사 의사를 밝혔다.

말이 씨가 되었다며 S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실은 웃펐지만) 어쩜 이렇게 일이 잘 풀릴 수가 있을까?

스스로 그만 둘 용기는 없으니, 제발 회사가 날 좀 짤라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하던 나였다.

 

마음 같아선 한 2년 세계일주라도 다녀오면 좋겠지만,

워낙 박봉이었던지라 퇴직금도 쬐끄만해서 남은 빚을 갚고 나니 별로 남는 돈도 없었다.

앞으로 몇 년 안엔 결혼도 하고 싶으니, 빚을 낼 수도 없고.

 

그래도 이런 하늘이 내린 기회를 버릴 순 없어서

그토록 염원하던 아프리카와 남미, 교토 한 달 살기를 두고 고민하던 중에

얼마 전 모로코에 남편과 다녀온 친구가 여자 혼자는 좀 성가실 것 같다, 라고 해서

남미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남미라고 성가시지 않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나름 열심히 여행을 다녔는데 아직 아메리카 대륙을 밟아보지 못한 터,

트럼트 할아버지 때문에 입국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지만 뉴욕도 들르기로 했다.

 

2014년 터키로 떠나던 날, 라운지에서 꽃보다 청춘 페루편을 보면서

언젠가는 페루도 갈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정말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의 기운이 도와준다, 말은 씨가 되니 열심히 말하고 다니자.

다음은 아프리카, 다음은 아프리카, 다음은 아프리카.

 

아무튼 조금 쉬다가 여행 준비를 해서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나! 네상에나! 남미 여행의 성수기는 12월에서 2월 사이, 즉 여름 시즌이란다.

제일 가고 싶은 우유니 사막의 우기는 3월까지라고 하니,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말았다.

 

부랴부랴 카약을 돌리고 서점에서 가이드북 두 권을 사고 남미 여행 카페에 가입했다.

일단 급한 건 볼리비아 비자를 준비해야 하는 건데, 맙소사, 황열병 예방 접종이 필수라고?

그것도 출국 최소 10일 전에는 접종을 해야 한다고 한다. 안 맞으면 볼리비아에 못 간다고.

 

니들 포비아가 있는 나는 남미의 소매치기나 강도보다 주사가 더 무섭다.

그래도 어쩌겠어, 우유니를 위해서라면 까짓거 기절 좀 하면 되지, 뭐.

동료 디자이너는 "에디터님은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주사에 대한 공포를 이겼네요" 라며 웃었다.

 

남들은 몇 달 간 준비해서 떠나는 남미 여행을 한 달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준비해서 떠나려고 한다.

나는 이제 스물다섯 살이 아니어서 여기저기 허락 받을 사람도 많았고

또 원래도 그랬지만 이젠 나이 인센티브까지 더해서 체력이 완전 바닥인지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힘들었던 회사 생활이지만, 오늘 문득 블로그를 보다 보니

회사에 들어오기 전보다 회사를 다니면서 다녀온 여행이 더 많은 것 같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고맙다, 덕분에 많은 곳을 다닐 수 있어서.

마지막 선물로 이렇게 두근거리는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해줘서 지-인짜 고맙다!

(나는 곧잘 여행 다니려고 일한다는 말을 하곤 했었는데 그게 정말이었다)

 

엄마는 "넌 커서 뭐라도 될 줄 알았는데" 라며 혀를 찼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하루 아침에 백수가 된 것도 기가 찰 텐데,

퇴직금을 탈탈 털어 여행을 가겠다는 서른 두 살 딸을 쉬이 이해해준 부모님께 감사를 전한다.

잘난 딸은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뭐라도 되지 않겠냐며,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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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모음집

초여름, AM 1:30의 바람

잠을 자고 싶지 않다. 먹는 거는 싫은데 마시는 건 또 마시고 싶은걸.. 믹스커피를 시원하게 탔다. 방으로 들고 와 헤드셋을 끼고서 인디음악을 들어본다. 잔잔한 것이 참 좋다. 침대에 기대어 앉아 옆에 뚫린 창문을 보았다. 붉은빛의 십자가가 밝게 빛이 난다. 까만 밤, 까맣다고 하기보다는 진한 남색의 천공의 홀로 빛나는 십자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모기를 싫어해서 방충망은 꼭 해 놓는 사람인데 오늘따라 새벽 공기가 너무나도 좋다. 얼굴 표면에 닿는 바람의 느낌도 차가운 듯 시원한 듯 너무 강하게 불어서 싫지도 않은 그런 바람이었다. 이렇게 시간이 멈추어 버렸으면 한다. 지금 이 공간에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좋다. 행복이라는 것은 항상 큰 것에서 오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다. 이렇게 사소한 하나까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전날은 너무 힘들었다. 근래 들어서 모든 것이 다시 무기력해지기 시작하였다. 사는 게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예민해져 있는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자꾸만 다른 탓을 하는 것을 보면서 참, 거지 같다고 생각하였다. 자꾸만 남탓으로 돌릴 때마다 끝에는 자기의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인정하기 싫은 건지 아니면 기대고 싶은 건지, 위로받고 싶은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고 한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우주의 만물을 아는 것보다 자기의 생각과 의도를 아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 아닌가라는 짧은 생각을 해본다. 입맛도 도통 없다. 무엇을 해도 즐겁지가 않다. 정말 억지로 이어나가는 인간관계가 보였다. 표정관리가 잘 되지 않는 자신을 본다. 눈물이 많아진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었다. 종교를 믿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기댈 곳이 필요하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기대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않은가, 분명 그 사람들도 힘들고 말 못 할 무언가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기에 기대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새벽에 아무런 대가도 없이 주는 바람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공기를 살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을 사서 냉장고에 오랫동안 보관하고 싶다는 헛된 상상을 해본다. 적당한 커피의 맛, 달지도 쓰지도 않은 적당한 맛과 적당한 바람, 그리고 적당한 노래 모든 것이 완벽해서 행복하다.
  
고마워, 바람 그리고 새벽

 

* 정말 오랜만에 들려 글을 쓰는 것 같네요.. 요즘에는 책도 자주 못 읽고 아쉽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날들입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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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연애하듯 삶을 살 것~!

당신의 삶을 사랑하라.

당신의 삶을 연애하라.

당신의 삶은 당신의 연인이다. 

 

연애하듯 삶을 살아라. 

 

당신이 불행하다고 해서 남을 원망하느라

기운과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라. 

 

어느 누구도 당신의 

인생의 질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다. 

 

모든 것은 타인의 행동에 반응하는 

자신의 생각과 태도에 달려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 자신과 다른 

뭔가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라. 

 

당신은 이미 중요한 사람이다. 

당신은 당신이다. 

 

당신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할 때 

비로소 당신은 행복해질 수 있다. 

 

당신 본연의 모습에 평안을 얻지 못한다면 

절대 진정한 만족을 얻지 못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서 

뭐라고 말을 하든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말고

심지어 어머니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니 언제나 당신 자신과 연애하듯 삶을 살아라. 

 

-어니 J. 젤린스키-

 

"연애하듯 나의 삶을 살아라"

 

정말 명언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어떻게 연애하듯 삶을 살으라는 것인가?

내 인생은 이렇게 치열한데 무슨 개소릴 하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현실이 치열하더라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지 않은가?

삶이 치열하다고 해서 연애를 안하는 사람들은 없지 않은가?

모두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연애들은 잘만 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면 연애하듯이 나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은가!

 

우리 모두 이 명언을 가슴에 새기고 내 인생을 언제나 연애하듯이 잘 살아가 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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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첫 복사단 등산

힘든 첫 복사단 등산 [2017.0603. 토]

* 복사(altar server):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복사는 주요 예식이 거행될 때, 사제의 곁에서 의식을 돕는다. (출처: 위키피디아, 엄마가 찾아주셨다.) 

 

오늘은 신부님과 함께 복사단에서 관악산으로 첫 등산을 갔다. 10시 미사를 마치고 11시 30분경 출발했다.

 

나는 원래 등산을 좋아하고 잘 한다. 올해 3월에 아빠와 함께 미끄러운 바위와 가파른 경사가 있는 2시간이 넘는 등산코스를 거뜬히 해냈다. 가족과 함께 등산할 때처럼 이번 등산도 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족과 갔던 똑같은 길 일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완전히 다른 길로 가고 있었고 아주 힘든 코스였다. 왜냐하면 끝도 없이 이어진 계단 때문이었다. 오히려 미끄러운 바위와 가파른 경사가 내게는 더 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계단은 올라가기 위해 다리에 힘을 더 줘야 해서 다리도 더 아프고 힘들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힘들 거라 생각 못했는데 1분도 안돼서 벌써 이마에 땀이 가득했다. 신부님이 빨리 가자고 해서 쉬지도 못해 더욱 더 힘들었다.

 

이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면 내가 좋아하는 가파른 곳이 나온다기에 꾹 참고 올라갔는데 결국 전망대에서 돌아오고 말았다. 유아세례식 때문에 신부님께서 3시 30분까지 성당에 도착하셔야했기 때문이다. 나는 더욱 더 가파른 코스로 간다고 생각 했는데 못 가서 아쉬웠다. 다음에는 신부님이 약속하셨던 흥미진진한 지점에 꼭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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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때로 믿을 수 없고, 앞뒤가 맞지 않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용서하라. 

 

당신이 친절을 베풀면 사람들은 당신에게 숨은 의도가 있다고 비난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을 베풀라. 

 

당신이 어떤 일에 성공하면 몇 명의 가짜 친구와 몇 명의 진짜 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하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기 쉬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직하고 솔직하라. 

 

오늘 당신이 하는 좋은 일이 내일이면 잊혀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을 하라. 

 

가장 위대한 생각을 갖고 있는 가장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가장 작은 생각을 가진 작은 사람들의 총에 쓰러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생각을 하라. 

 

사람들은 약자에게 동정을 베풀면서도 강자만을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약자를 위해 싸우라. 

 

당신이 몇 년을 걸려 세운 것이 하룻밤 사이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라. 

 

당신이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발견하면 사람들은 질투를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고 행복하라. 

 

당신이 가진 최고의 것을 세상과 나누라. 

언제나 부족해 보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것을 세상에 주라. 

 

-인도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 본부 벽에 붙은 시-

 

위에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나는 얼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사용하는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일단 첫번째에서부터 '음...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용서하라? 말이 돼?' 를 떠올렸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었을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배신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대답은 절대 용서 못한다로 결론이 났으며,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뭐...

나도 어차피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알아서 잘 살아가면 되는것이며....

 

내가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면 어떤 의도가 있을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냥 무시하면 되는데 굳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란 말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 공감이 되는 글귀.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그 기준을 똑바로 세워서 살아간다면 크게 어렵게 살지 않을 것 같은데...

우리 인생은 그렇게 간단하거나 쉽지 않다는 것이 참...아이러니 할 뿐이다. 

그래도 인생은 한 번뿐인데, 최대한 즐겁게! 행복하게 !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괴롭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정말 즐거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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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인

미식가

 

 억지로 먹은 유동식이 피와 함께 쏟아져 나온다. 내장을 쥐어짜는 복통과 함께 피가 흐른다.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잔숨을 몰아쉰다. 멀건 침을 바닥에 흥건히 흘린다. 복통은 피를 전부 쏟아내야만 멎는다. 팔목에 꽂힌 굵은 바늘을 타고 핏줄기가 솓구친다. 면역억제제를 갈아야 할 시간이다. 근육이 녹아 얇아진 다리 사이에 손을 넣어 엉덩이를 타고 흐르는 핏줄기를 닦는다.

 세시간마다 간호사는 억제제를 갈고 피를 뽑고 체온을 잰다. 의사의 회진은 하루 두 번, 오전 10시와 오후 4시다. 소화기내과 병동에 의사는 셋. 간호사는 여덟이다. 병원에서 하루는 약을 맞고 밥을 먹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우리집은 맞벌이를 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 식탁 위에 있는 돈으로 밥을 먹는다. 짜짱면, 짬뽕, 볶음밥, 잡채밥, 오징어 덮밥, 해산물 덮밥…. 중학생이 되었을 때, 동네에 있는 모든 식당을 알게되었다. 맛있는 집, 맛없는 집. 맛을 구분하고 느끼는 것이 혼자 먹는 밥의 즐거움이었다.

 고등학교에 와서는 급식을 했다. 누군가와 함께 먹는 식사는 외롭지 않았지만 아침, 점심, 저녁. 매일 같이 쪄든 기름에 튀겨내고 조미료로 맛을 낸 음식은 견디기 힘들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구는 커졌다. 선생님과 학생, 공부와 급식만 있는 학교에서 맛과 음식이 있는 세상은 도서관에만 있었다.

 학교에 있는 모든 책을 읽었고 주말에는 인터넷으로 음식을 공부했다. 용돈을 모아 전국 유명음식점을 찾아다녔다. 음식은 무채색 유년에 유일한 빛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음식을 만들게 되었다. 수 많은 요리법과 음식이 머리 속에 들어있었지만 내 손은 형편없었다. 손가락을 썰고 손등을 불에 익혔다. 맛을 잘낸다는 것이 유일한 칭찬인 열등생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가진 칼은 잘 벼려진 식도였고 내가 가진 칼은 과일 껍질마저 겨우 벗길 뿐인 뭉뚝한 과도였다. 나는 과도를 꽂아두고 학교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기전 남은 보증금으로 그 동안 가고 싶었던 음식점을 돌아다녔다. 애석하게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

 

 목표를 잃은 인생은 방황조차 할 수 없고 죽기엔 용기가 없었다. 대신 천천히 죽기를 기다렸다. 하루 종일 누워있다 잠이오면 자고 잠이 오지 않으면 책을 읽었다. 집에 있는 책을 모두 읽었을 때, 몇 개월만에 스스로 집을 나왔다. 덮수룩한 머리로 서점에 갔다. 서점의 음식코너에는 읽을 책, 살 책이 많았다. 손가락을 파고드는 봉지의 무게만큼 죽기엔 이르다는 마음이 생겼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어야하고 음식을 먹으면 배가 아프다. 병에 익숙해지면서 배가 아픈 것과 고픈 것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다. 매일 밤, 병원에서 가장 조용한 수술실 2층 복도에서 밤새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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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거닐다

비행기 구름

 

나날이 과학이 발전하면서 우리의 운송수단은 급격히 바뀌었다.

땅위를 빠르게 달리다가 하늘을 날기 시작했으니까.

 

나라와 나라사이, 도시와 도시 사이 하늘 노선들이 우후죽순 생기고 

비행기가 수없이 뜨고 지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지나갈때 비행기 구름이 생기는데 이렇게 인위적으로 생기는 구름이 기후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의심하기 시작한 과학자가 있었다. 

 

아무래도 구름이란게 햇빛을 반사시키기 마련인데, 그저 가느다란 줄의 비행기구름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수백만 이상이 되면 무언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그러나 그의 이론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매일 비행기는 뜨고 졌으며, 비행기 구름이 없는 하늘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온 세계가 경악한, 비극적인 일이 생겼다.

수많은 희생을 치뤄내었던 9.11 테러사건.

 

모든 이들이 경악을 하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은채 당황스러워 할 때

조심스레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테러사건이 일어난 그 순간부터 미국전역의 모든 비행기가 3일동안 멈췄다. 

미국의 영공폐쇄 조치.

정부는 하늘에 떠있던 비행기들을 강제 착륙 시켰다.

 

그렇게 단 3일, 비행기 구름이 없는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고,

30년간의 기후 자료와 그 3일간의 기후를 비교 연구할 수 있었다.

그 결과로 항공사는 비행운의 환경적 영향을 고려한 신형항공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나에게 이 이야기는 소름 돋는 반전의 느낌이었다.

가장 최악의 사건 조차 그 유익이 존재할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의 막연한 앎 이었달까.

 

집으로 가는 길에, 문득 내 머리위로 비행기가 하나 지나갔고

언제적에 들었는지도 모를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쩌면 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최악의 순간들조차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유익이 존재할지 모른다.

아니,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일로 슬픔과 아픔을 알게 되었으며 같은 상황에 있을 다른 이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나 하나 버릴 경험은 없으며,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완성 시켜간다.

전체의 그림에선 그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아름다울것이니..

 

우리의 과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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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한, 밤의 기록

8시의 경계

일을 다니가 보면 회사는 작은 사회, 사회는 회사가 모여 만든 단체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사회 속 나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기 마련이다. 회사에서 꿈을 말하는 것이 정말 부끄럽고 뜬구름 같은 일이 되고 그렇게 치부해버린다. 

 

열정가득 했던 사회초년생의 열정이 금새 타버리면, 넌 요새 젊은애 답지 않아, 라는 소리를 듣기 쉽상이다. 내가 좋다는 일이 안될 일이 되고 두루뭉술 넘어가 버리는 일이 익숙해졌다. 이 상황에서 열정과 자부심 운운하는 일이 나에게 정말 사치가 되버렸다. 

 

이런 일이 가장 크게 와닿은 사건은 작년 쯤, 겨울이 가을에 들락말락하며 숨통을 트기 시작할 때다. 8시를 넘기면 야근수당을 주는 회사다 보니, 8시가 가까워지면 기껏 넘기고 가는 일이 많아진다. 회사에서 사람들이 좋으면 대표가 안좋다는 말이 sns상에서 우스개소리처럼 떠다닌다. 나 역시 좋은 사람들 덕분에 일을 견디고 있었다. 그날도 우정을 끔찍히 여기는 나지만 잠시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른 팀이지만 그들의 일을 돕기 위해 의리로 남게 되었다. 8시의 경계가 겨우 넘어가고 있었다. 밥까지 굶으면서 빠른 업무 진행을 위해 일처리에 여념이 없었다. 8시가 지나자, 미안함을 느낀 동료들이 나를 먼저 보냈다. 

 

그러나, 대표님 입장에선 탐탁치 않았을 것이다. 유일하게 저녁식사를 하지 않았던 나지만, 그에겐 내가 밥을 먹었는지 따위 관심이 없었다. 당연히 본인 주머니에 저녁식사비가 나갔으니 남은 이는 모두가 먹었겠거니 생각했을 것이다. 이젠 친구들과 의리를 위해 퇴근 준비를 마치고 인사를 드리니, 먹튀라는 말을 듣는다. 

 

충분한 명분으로 야근한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일일이 보고하는 말에 여전히 탐탁치 않아하는 대표님에게 난 그런 존재라는 각인이 박혔다. A의 업무를 맡고 있다면, 혼자 책임지고 혼자 스스로 관리하며, 쓴소리만 여태껏 듣고 왔지만 난 그런 존재인가 싶었다. 

 

그는 그랬다. 직원 사이 신임은 좋지만 나에게 불꽃이 없다며. 그동안 피운 불들은 누가 장작을 패서 불이라는 존재를 발견하여, 겨우 불씨를 살려낸 이 인류발전과 맞먹는 A일은 대체 누가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 이후로 난 자존감이 없는 사람으로 팀에서 그런 척 한다. 내 업적이 위대하다고 떠들 필요가 없다. 타성에 젖었다. 그렇다고 꿈이 없는 것이 아닌 감추고 있다. 하지만 애늙은이 같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렇게 사는 편이 맘이 편할 수도 있다. 

 

열정은 감춰줘야 이 사회는 그나마 살만 하더라. 큰 파이가 있다면 아주 일부분만 콕 집어 맛봤지만 꽤 쓰다. 쓴맛에 익숙해져야 나중에 달디 달다고 느껴지겠지. 

 

8시의 경계는 수당의 차이보다, 내가 나에게 긋는 선이 되었다. 그 대표와 나의 선은 여기까지. 오히려 어필하지 않는 나에게 가끔 던지는 칭찬의 말은 파리떼와 같다. 귀찮은 것. 

 

이직이 무조건적인 답도 아니기에 오늘도 이러고 산다. 오늘도 파이의 더 큰 부분을 맛보기 위해, 8시의 경계를 어쩔 수 없이 넘어버린 오늘 탄식을 하며, 덜컹이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