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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사전

사진

 

사진 Photo

: 물체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찍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든 것

 

 

제주 여기저기를 다니며 그것을 사진으로 담아보려고 노력해보다가 지금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내 카메라가 고가가 아니기도 했지만 아무리 좋은 카메라를 가져도 절경을 사진 속으로 제대로 옮겨오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제주도에 내려와서 금방 깨달았다.

                                                                                              - 요조,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 中

 

 

 

 

여행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다만 하루하루, 갈 수 있는 곳에 가서 그 안에 있는 작고 평범한 것들을 지켜보는 걸 좋아한다. 때때로 사진을 찍는다. 풍경을 앞에 두고는 인증샷보다 풀, 꽃, 흙, 물 그대로를 담는다. 그렇게 찍힌 사진 속에 내 얼굴은 없지만, 기록 장치에 저장되기 전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가장 먼저 사진을 확인한 게 나니까. 그 정도로 충분하다. 잘 찍힌 사진을 확인하며 그 때 그 순간, 그 장소, 그 대상에 대한 나의 애정을 확인하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전부를 옮겨올 수는 없지만, 사람에게 사진은 기억을 소환하는 가장 좋은 매개체가 되어주기에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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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사전

평화

 

평화 Peace

: 갈등 없이 평온하고 화목함

 

 

평화는 눈이 내리는 걸 지켜보는 거야. 평화는 누군가를 아프게 했을 때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야. 평화는 네 자신의 모습 그대로인 거야.

                                                                                              - 토드 파, <평화 책(The Peace Book)> 中

 

 

 

 

포털 사이트에 평화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최상단에 연관검색어로 대한민국 대통령과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름이 함께 묶여 뜬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모두의 마음속에 아로새겨져 있던 금단의 선. 그 모호하면서도 진하디 진한 선을 손잡고 넘나든 남과 북 두 정상의 몇 걸음이 평화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했나 보다.

 

사실 나와 너를 구분하는 것은 유일한 개인으로서 내 정체성을 확고히 해주는, 매우 유의미한 행위다. 내가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습관적으로 나누며 산다. 언제든 선을 그을 준비가 되어 있다.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나 자신이니까.

 

하지만 선을 긋는다는 것은 그 선 너머에 존재하는 누군가에 대해 알아가기를 멈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선을 거두는 순간 관심은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시의時宜를 잃은 관념이 생긴다. 현재와 미래가 포함되지 않은 관념은 딱딱하게 굳어져 곧 편견이 된다. 무관심의 밭에서 자의적 기준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라난 편견은 이미 그어놓은 선 위로 더 진하고 더 강력한 선을 덧그린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선은 지우기가 힘들어진다. 선 위에서 경쟁과 갈등을 즐기지만, 반복되는 전쟁은 때때로 나를 지치게 한다.

 

평화는 바로 그 균열에서 싹을 틔운다. 하루하루 일어나는 싸움은 견딜 수 있지만, 삶 전체가 온통 갈등으로 범벅이 된다고 상상하면 두렵고, 외롭고, 암담해진다. 선을 긋고 나에 대해 골몰함으로써 내가 특별하다는 사실에 대해 충분히 인지했다면, 선을 지워도 그 사실은 변함없다는 것 역시 깨달아야 한다. 스스로에게 애정과 확신을 가진 사람은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나 아닌 타인을 적으로 삼는 일 따위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

 

그리고 사실, 세상에 완벽하게 갈라져 있는 건 없다. 바다가 끝나는 곳을 땅이라 부르고, 땅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바다가 펼쳐진다. 평화의 실마리는 생각보다 원초적인 것에서 발견되곤 한다. 확실하고 단단한 내 바운더리를 벗어나 그동안 시선이 닿지 않았던 곳을 내다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 떠도는 소문이 아닌, 나 자신을 믿고 미지의 것을 경험해보려는 용기. 내가 발을 딛고 있는 땅 위에서 별다른 게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언가 다른 게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상상력. 마지막으로 미지의 것을 마침내 발견했을 때, 눈에 비치는 그 대상을 다른 판단이 끼어들 새도 없이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순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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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하다

 

부정하다 否定--

: 어떤 것을 그렇지 않다고 단정하거나 옳지 않다고 반대하다

 

 

생은 자기완성을 위하여 자기부정을 하는 것이다.

                                                                                       - 함석헌, <함석헌 전집 2 : 인간혁명의 철학> 中

 

 

 

 

엄마의 건강에 빨간 불이 켜진 뒤부터 우리는 교환일기를 쓰고 있다. 중학생 때 친구와, 대학생 때 남자친구와 함께 써본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도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어렵다. 과거 그들과의 일기가 긍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면, 요즘 우리의 노트에는 반쯤 그늘이 져 있다. 우울감에 물든 엄마는 펜 끝에 대롱대롱 검은 잉크와 더 검은 생각을 매달고 지낸다. 과거에 대한 회한은 사람을 부정적으로 만든다. 어제의 어둠은 오늘을 뛰어넘어 며칠, 몇 달, 몇 년까지 자기영역을 확대한다.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딸의 애정 어린 희망은 거센 자기 부정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엄마의 담장을 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담장 너머를 엿본다. 검은 잉크는 언젠가 다 쓰기 마련이고, 그걸 다 쓰고 나면 새 것으로 갈아 끼울 수 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푸른 바다를 닮았거나 소나무 냄새가 나는 잉크를 넣어버릴 생각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긍정도 부정만큼이나 힘이 강하다는, 설익은 믿음 하나로 견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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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사전

지금

 

지금 Now

: 말하는 바로 이때

 

 

마치 내 안으로 여행이라도 떠난 듯이, 내 마음속 아득한 곳에 있는, 내가 지금 느끼는 단조로움과는 매우 다른, 오래된 시골집의 단조로움을 기억한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때가 지금보다 더 행복했는지 아니었는지 말해야 한다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거기서 살았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른 나였다. 그 삶과 지금의 삶은 비교 불가능한 다른 삶이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中

 

 

 

 

오래된 친구와 만날 때면 늘 듣는 이야기가 있다. “그때가 좋았어”라는 말.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연신 잔을 채우고 이리저리 신나게 부딪쳐도, 어쩐지 그 말은 뼛조각처럼 마음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나를 찌른다. 왜 우리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 ‘그때’를 ‘좋았다’고 말하며 그리워하는 걸까. 영 마음이 불편한 까닭은, 그 말이 단순히 과거에 대한 자기긍정이 아니라 지금의 자기 자신을 반대편에 올려놓고 둘을 저울질하다 결국 지나간 시간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버리는 이상한 계산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5년 전, 1년 전, 그리고 오늘의 ‘그때’가 가리키는 시점은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겹쳐지면서도 분리되어 있다. 어찌됐든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지금’도 얼마 후면 ‘좋았던 그때’가 된다는 것이다. 이미 손에 쥐고 있어 언제나 가벼운 것처럼 여겨지는 지금을, 비교도 경쟁도 없이 온전히 긍정할 수 있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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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편지

사랑한다는 헛소리

 

 

 

 

  사랑해

 

  그에게서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하던 행동을 모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막 사물에 대한 명칭을 알아가는 아이도, 마음을 표현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가는 소년·소녀도, 군데군데 미세먼지보다 더 강력한 잡음이 끼어든 인생을 어떻게든 사랑해보려는 청년도, 안녕하세요? 보다 건강하시죠? 라는 인사가 더 익숙해진, 지긋한 나이의 어른들도 모두 좋아하는 말. 그렇지만 손만 뻗으면 닿아 까먹을 수 있는 귤처럼 여기고 싶지는 않은 그 말.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그런 의미였다. 그래서 나는 그가 왜 뜬금없이 그런 말을 갑자기 해버린 건지 궁금했고, 그 이유에 대해 너무 오래 생각하다 그만 그 사람을 내 인생에서 스쳐지나가는 이로 만들어버렸다. 사랑의 말에 이유를 묻는 순간, 진심은 헛소리가 되었다.

 

 

  사랑해

 

  얼마 뒤, 나는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그 말과 또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조우했다. 작년부터 엄마는 간헐적으로 헛소리를 내뱉었다. 처음 그녀의 그런 모습을 알아챈 건 다름 아닌 나였는데, 나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한 두 번의 이상 반응인 걸로 넘겨버렸다. 그러나 그 헛소리는 조금씩 느슨하게 엄마라는 존재 안에서 영역을 넓혔고, 시간이 지나며 그녀를 원래의 엄마 반, 낯선 엄마 반이 함께 공존하는 다면적 인간으로 만들었다. 엄마는 예전에 자신이 재미도 보람도 없는 삶을 산 것 같다면 자주 자책했는데, 그래서 나는 그녀가 피안彼岸을 끌어들여 인생에 즐거움의 빛을 드리운 게 아닐까 종종 생각하기도 했다. 여하튼 갑작스런 그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건 엄마의 입을 통해서였다. 저 말을 한 건 낮의 엄마일까 아니면 밤의 엄마일까, 내가 서서 고민하는 중에 그녀는 내 눈을 곧이 바라보며 아무런 미동도 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거기서 내가 해야 하는 건 우리를 둘러싼 공기가 더 이상 아득해지기 전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웃는 일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사랑한다는 말을 머리맡에 두고 떠나보내지 않는 일, 스쳐지나가지 않도록 잡아두는 일, 그녀에게 나는 기적을 행할 수 없지만 나에게 그녀는, 엄마라는 사람은 여전히 기적이라는 사실을 저버리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사실은 낮의 엄마가 보내는 진심의 신호든 밤의 엄마가 토해낸 헛소리든, 나는 전혀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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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 주인공

속마음을 겉으로 말한다는 것,

난 속과 겉이 다른거 같다.

 

이말은 이상하게 보여지는 이중적인 모습이 아니라

정작, 내가 속으로 말하는 것들을 겉으로 표현할때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나이도 어느덧 먹을만큼 먹었지만...

 

솔직한 표현조차 못한다는게 조금 우수워진다.

 

한때는 너무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철없이 말한다는 말을 듣고

나의 말에 상처 입은 사람들을 보면서

속마음을 누르고 있었는데...

 

이게 어느덧 표현하는 법을 잃어버린 듯 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공동체 룰에 맞춰

사적인 일과 공적인 일을 나눠서 할 줄 알다보니

 

구지 하루에 80% 이상 보내고 있는 직장내에서는 속마음을 보여줄 필요가 없어져서 그런건지...

아니면 나의 속마음을 보여주면 또 나로인해 상처받을 사람이 생길 거 같다는 그런 마음에서인지...

 

나의 속마음 풀어버리기. 

'풀어버리다: 이야기하다. 표현하다. 상대방이 알수있게 눈치를 주다.'

 

 최근 나의 가족의 일로 인해

속에 담아 주고 있던 마음을 어느정도 표현해 본적이 있다.

 

너무 나의 속마음을 다 이야기 해버린다면...

나만의 생각으로 인해 상대방 및 당사자에게도 적지 않은 문제가 있을거 같은 생각이 들어

그냥 작게나마 포인트로 딱딱 표현을 한 적이 있다.

 

혹시나 제 삼자의 이야기를 듣고자

몇 가지 사진과 상대방 및 당사자 상황을 비밀글로 모 카페에 적은적이 있는데...

현재 내가 우려했던 것처럼 댓글이 난리가 나버렸다.

상대방과 당사자는 철저히 비밀로 했으며 더이상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고

그 글도 일주일 뒤엔 스스로 내려버리겠다고 했다.

 

구지 내가 스스로 아파해 가며 그 글을 남겨둘 필요도 없을 거 같고

어느정도 내가 판단한 기준이 있기 때문에...

 

조금은 댓글을 보면서 '그래 내가 저렇게 까지 했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지만

또 한편으론...

'내가 더 이상 해봤자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증거가 없다면 당사자만 힘들어질거야...'

생각도 들기때문에 향후 멀리 생각해 보고 결정한 일이다.

 

그런일이 있은 후 상대방은 더더욱 조심스럽게 나의 말과 당사자의 행동에 관심있게 듣고 표현해주고 있으며,

난 당사자가 더이상 나의 최종적인 생각에 아니라고 판단되어 지길 바라며...

조금은 느리겠지만 빨리 적응 할 수있게 아침마다 자는 얼굴을 보며 기도하고 있다.

'그래 넌 잘 할수 있을거야. 같이 힘내자. 그리고 미안하다...'

 

 

 

일년 반 정도 다시 글을 적기 시작했다.

게으른 탓도 있고 정말 스스로 너무 힘들었던 일도 있다.

최근엔 어느정도 일도 다시 익숙해졌고 나름 스트레스 해소하는 법도 알고 있기에...

속마음을 털어놓고자 할 때...

글을 적어볼까 한다.

 

최근 매일마다 구독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의 글귀게 나의 폰에 스크랩 되어있다.

 

"If you are quilty, you are dead."

"너에게 되가 있다면 넌 죽는다."

 

내가 이렇게 까지 이번 일을 덮어둘려고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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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쓰는 편지

...중에서

- 그럼 제가 물어볼게요.
물어 봐.
- 인생이란 뭘까요?
글쎄.
- 안다는 거예요? 모른다는 거예요?
네가 욕실에 물을 뿌려두고 그 가운데에 서 있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아마도.
- 물을 뿌려요?
그래. 넌 한참이 지난 후에야 물기가 말라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지.
- 그게 무슨 소리에요?
가만히 서서 물방울이 증발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잖아.
- 그런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서서 몇 분이 지나도록 넌 별 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할 테니까.
- 그렇겠죠.
하지만 실제로 너는 그 모든 것들을 다 경험하고 보고 있는 거지.
- 요점이 뭐에요?
네 인생의 한 부분을 들여다보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그래서 너는 매순간 너의 미래가 불안하게 느껴지지. 하지만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면 깨닫게 되는 거야. 물기가 얼마나 사라졌는지, 네가 창문을 열어뒀는지 아닌지. 우리가 지금 인생을 논하는 건 마치 거대한 건축물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보며 전체를 맞히려는 것과 같아. 네가 지금 현재를 바라보며 너의 인생을 궁금해하는 것처럼.
-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네가 뭘 할 수 있을까?
- 몰라서 물어보잖아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지. 하나는 지금처럼 계속 너의 모든 것을 의심하며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일을 알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과 커다란 무언가가 내려다보일 그 날이 올 때까지 묵묵히 너의 길을 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