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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2 - 10

478

 

 

 

사실 30분이라는 시간이 많을 정도로 이곳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자세히 생각을 해보면 내가 이미 꿈이라고 인식을 하는 시점부터 일어나게 되어있으니까. 평상시에도 자다가 꿈이라는 걸 인식하자마자 모두 일어나게 되지 않는가? 당연히 거기서도 일어날 수 없다면 완벽하게 몽마를 원망해야지.

 

그러므로 지금 아리엘의 존재가 깨어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꿈의 주도권을 네가 잡고 있으니 일어나지 못하는 거잖아. 그리 간단한 거였는데 아주 가까운 문제점을 배제할 뻔했네.”

 

“저도 이곳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모르니 어쩔 수 없잖아요. 25분남았어요.”

 

“그 전에 너와 내가 봉인 되었는데 어째서 내 꿈으로 네가 이송이 되는 거야?”

 

“천성적인 본능이라고 해야 하나요?”

 

아리엘의 대답은 자신의 이성과는 관계 없이 내 꿈으로 들어왔다는 소리를 하려는 모양이다. 자신도 난감한 얼굴로 팔짱을 끼면서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오히려 내가 한숨을 쉬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몽마로 바꾸는 건 켈모리아가 한 실수 중에 가장 큰 실수일거야. 그전에 세피르를 아르트리옴과 분리시키는 걸 먼저 해야 할 텐데...”

 

“세피르가? 아르트리옴과 합쳐지다뇨?”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카멜롯 지하에 있는 검은 존재가 너의 다른 인격으로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지만, 세피르가 그 안에 뛰어들어가서 뭘 했는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이야기 해주는 걸 까먹었어.”

 

만약 세피르를 제대로 구출한다면 나부터 구해달라는 소리를 해야 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봉인되기 전에 말하지 못한 게 너무 많았을까? 솔직히 봉인이 해제된 기념으로 루니아 누나가 요리하는 것은 막아달라는 말도 해야 했고, 잡화점 청소는 아침에 꼭 한번씩 해야 한다는 것과, 마당청소를 할 때는 요즘 많이 더우니까 물을 뿌려가면서 해야 한다는 것도...

 

아직까지 너무 많은 일이 남아있는데, 이별이라는 것이 정말 무섭긴 하나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적은 없었는데, 머릿속에서는 분명 떠나갈 사람은 떠나가고 올 사람은 온다는 생각을 확실하게 하고 있던 내가, 돌아올 수 있는 짧은 이별에 이렇게 안절부절 할 정도라니.

 

지금은 아리엘이 불안해 하니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을 나가기 위해 6번째 양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이 안에서 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니?”

 

“메에~”

 

“아니. 몽마가 있으니 내가 스스로 못나간다는 것은 잘 알고 있어, 그러니 몽마를 먼저 현실로 내보내야 내가 나갈 수 있을 거 아냐?”

 

“메에?”

 

지금 이 양의 울음소리와 사람이 대화할 때 목소리 톤을 비교했을 때.“그래서?”라는 말과 매우 흡사했다. 이 양은 지금 나와 별다른 이야기를 하기 싫다는 듯이, 울타리를 넘어가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 대체 다른 양들은 다 넘어가는 울타리를 6번째 양은 못 올라가는 이유가 뭘까?

 

“그러니까 울타리에 있을 때 제대로 점프나 뛰라고! 이 망할 양아!”

 

나도 모르게 6번째 양을 걷어차버렸다. 마법과 마나를 운용할 수 없는 내 몸은 그저 일반인보다 아주 살짝 조금 아픈 발차기. 하지만 양은 발로 차이자마자 거대한 울음소리와 함께 죽기살기로 도망치면서 울타리를 뛰어넘었다.

 

“어라? 뛰어넘었다.”

 

“메에.”

 

저 안에 다른 양들이 나와서 6번째 양을 맞이해주고 있는 모습을 보자. 아리엘은 허탈한 웃음소리와 함께 말하기를...

 

“카일 씨. 의외로 난폭하네요.”

 

“조용히 해.”

 

“그래도 조금만 뒤에서 밀어주면 저 멀리 도약할 수 있다는 건 좋은 게 정답인가 봐요.”

 

조금만 밀어준다는 그 말에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양을 보고 있자니 내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것 같아, 다시 뒤를 돌면서 탈출할 궁리를 위해 바닥에 누웠다.

 

“뭐하세요?”

 

“혹시 몰라? 이러고 자고 있으면 현실에서는 봉인이 풀린 상태로 깨어날지?”

 

“방금 전까지 제가 방해가 되어서 꿈에 못 깨어난다는 말은 누가 했던가요?”

 

“그러니 내 말은 혹시 모르냐는 말이야. 세상에는 조금만 밀어줘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천지야.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알아서 하겠지.”라고 방치를 한다면, 그 순간부터 저 6번째 양처럼 멀리 떨어지고 도태되는 존재로 전락하지.”

 

아리엘의 말이 사라진 것으로 보면 켈모리아에게 많이 밀려졌을 것이다. 학원의 비서가 되어가고 마족이 되어가면서, 그리고 얼떨결에 미스 카멜롯까지 되어가면서, 혼자인 줄 알았던 사람이 쭉 둘러본다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것.

 

당연히 나도 똑같다.

너무 밀려서 절벽으로 떨어질 뻔했다만 그 경험이 양식이 되었다.

그러니...

 

“지금은 내가 널 밀어줄 테니 이곳에서 빨리 나가자.”

 

“네? 밀어준다니?”

 

“내가 이곳에서 잠이 들 때 키스만 하도록 해. 다른 거 하면 정말로 때린다?”

 

“푸훗! 보통 그런 상황은 반대 아닌가요?”

 

“시끄러워. 이건 어쩔 수 없는 협력일 뿐이니. 나도 머릿속에서 거대한 내적 갈등과 지금 당장이라도 내 초자아가 당장 그 말을 철회하라고 울부짖고 있단 말이야. 제길...아리엘은 대체 얼마나 어장을 부풀려야 만족하는 거냐.”

 

“카일 씨야 말로 얼마나 많은 하렘인원을 만들어야 만족할 건가요?”

 

음...아리엘에게 이렇게 들어서 할 말이 없지만, 내 경우에는 의도한 것이 아니라 사고로 인해 어쩌다 보니 생성되었다고 해야 하나. 생각을 해보면 정상적인 만남이 없다고 생각했다.

 

“싫으면 안 해도 돼. 아니 다시 생각을 해보니 좋아도 하지 않는 게 좋겠다. 뭔가 부작용이 가장 크게 일어날 거 같으니까.”

 

“부작용이 뭔가요? 사람을 약물 취급하지 말아줄래요?”

 

내 오른쪽 귀에 걸린 티르빙을 만지작거리며 잠깐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티르빙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야! 안본 사이에 대체 얼마나 많은 여자를 꼬신 거야? 형씨는 정말 능력자구나?”

 

아마 이런 말을 했겠...

 

“잠깐?! 티르빙 너 지금 말했냐!”

 

귀걸이에서 오랜만에 불빛이 들어오면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호쾌하게 들려오는 어린 음성은 지금 당장 들려오고 있었다.

 

“이 공간은 영적인 에너지까지 모아주고 있으니까, 지금 당장 갈기갈기 찢어진 내 영혼을 일시적으로 용접했다는 의미겠지.”

 

“그보다! 그 동안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대체 뭐야?”

 

“그야 내 영혼은 네가 힘을 사용할 때마다 갈기갈기 찢어지거든. 어느 순간 형씨와 이야기 하지 못하고 사라져서 많이 놀랐다고 생각하는데?”

 

1년간의 공백으로 지금 티르빙이 말하는 사실에 매우 놀라고 있었으니까. 그보다 티르빙을 내가 사용할수록 영혼이 찢겨진다는 소식은 몰랐는데, 그걸 왜 먼저 말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묻고 싶었다.

 

“어째서 그걸 먼저 이야기 하지 않았던 거야?”

 

“그야. 형씨는 항상 사건과 사고가 터졌으니까, 주춤할 시간도 없는데 그런 말을 해서 성장을 멈추게 할 수는 없지. 안 그래?”

 

내 얼굴은 어처구니 없는 표정이 어울릴까? 아니면 오랜만에 만났으니 반가운 얼굴이 어울릴까?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만 선택해야 할 테니, 티르빙을 붙잡고 입을 열었다.

 

“지금은 내가 이곳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 없으니까, 내 마나를 흡수하고 이곳에서 본 모습으로 돌아와봐.”

 

“지금? 오랜만에 해볼까나?”

 

흔쾌히 납득하면서 마나를 흡수하고 사람의 모습으로 성장한 티르빙이, 옷을 입지 않은 상태로 7세 남자아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외투를 벗어서 티르빙에게 입혀주고 자신의 팔과 다리를 오랜만에 확인하고 있는 티르빙은, 기쁜 듯이 이리저리 점프를 하고 있었다.

 

“이야! 마지막 한 조각까지 흩어졌을 때는 두 번 다시는 이런 모습으로 될 줄은 몰랐는데, 지금은 이렇게 살아 움직이니까 인생을 다시 살고 싶어진다는 생각이 들어.”

 

“그럼 넌 그 안에서 계속 살면 되잖아. 어차피 나는 이제 마법을 사용할 수 없어서 다루지 못하거든.”

 

“그런데 형씨. 궁금한 게 하나가 있는데? 잠깐 말해도 될까?”

 

“뭔데?”

 

오랜만에 나타나더니 궁금한 것은 많은지 질문을 마구자비로 하기 시작했다.

 

“저 뒤에 있는 어린애에게 손대는 건 범죄라고?”

 

“안 댔어! 그리고 진짜 궁금한 것은 그게 아니잖아!”

 

티르빙도 아리엘을 의식했는지 대화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아리엘을 잠깐 부를 겸. 다른 말을 하기 시작하고 본래 말하고 싶었던 것을 내뱉었다.

 

“지금 형씨 몸 안에 있는 거. 마나가 맞는 거야?”

 

“마나가 맞냐고 물어봐도 지금 내가 어떻게 들춰낼 수 없다만?”

 

“마나라고 보기에는 거대한 에너지가 담겨있는 거 같은데? 0.1%만 흡수해도 내가 붕괴될 뻔했다고?”

 

아리엘에게 물어볼 수 밖에 없던가?

 

“아리엘. 지금 눈을 강화해서 내가 어떤 마나를 지니고 있는지 알려주겠어? 마법을 사용할 수 없어도 티르빙이 내 마나를 흡수하고 변했으니까.”

 

내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구나. 이제 남에게 진단해달라고 할 정도로 낡은 건가?

 

“태양 빛처럼 백색광이네요. 조금만 쳐다봐도 실명이 될 것 같기도 하고, 신성력은 백색인데 지금 카일 씨의 몸 안에 있는 것은 너무 눈이 부셔요.”

 

“무슨 소리야. 설마. 지금 3개의 자원에 내 몸 속에서 융합한 거야? 내가 핵융합 발전기냐? 아니면 누군가가 마법카드로 융합을 사용한 거야?”

 

“하지만 제가 봐도 그렇게 보인다고요? 설마...신이 되어가는 거 아니에요?”

 

아니. 신이 되어가고 있는 현상으로 이런 경우는 없다. 천계는 신성력 하나로 이어져있으니까. 이렇게 융합이 된 경우는 창조신 이외에...시나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큰일이라면 이 몸으로는 그 거대한 에너지를 감당할 자신이 없고, 제대로만 사용할 줄 안다면 어마어마한 능력이 될지도 모른다.

 

당연히 지금 봉인이 풀려서 나가자마자 붕괴 당할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원래 이 안에 들어가 있으면 리셋이 되어야 하는 게 정상인데. 마법도 페어링마저 전부 다 끊어졌지만, 마나마저 본래 상태로 돌아올 수 없나 보다.

 

“파워 업이 파워 업이 아닌듯한 파워 업은 난생 처음 들어봤네. 이러다 온 몸이 파업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형씨. 예나 지금이나 말장난은 최악이구만...”

 

티르빙이 나를 보며 안쓰러워 하는 표정을 지을 줄 몰랐는데...

 

“시끄러워! 아무튼 지금 당장 이곳에서 나가자. 그리고 티르빙은 그 안에 있으면 초기상태로 그 안에 계속 있을 수 있잖아? 그러니 우리 따라 밖에 나오지 말고 그 안에서 살라고?”

 

“음. 뭐. 그것도 나쁘진 않지. 양들도 많이 있고. 그럼 길을 열어줄 테니 피를 줄래?”

 

티르빙은 활짝 웃으면서 백색의 단발이 어디서 불어오는지도 모르는 바람에 이끌리고 있을 때. 오른팔을 티르빙 쪽으로 건넸다. 어려 보여도 역시 물리는 건 상당히 아프고, 피를 목에 상쾌하게 넘겨가며 맛을 음미하는지 한동안 내 오른팔을 풀어주지 않았다. 강한 붉은 눈이 빛을 발하며 뜨자마자, 바닥에서 어마어마한 폭발과 함께 커다란 구멍이 나기 시작했고, 나와 아리엘은 멍하니 그 구멍 밑바닥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기 통과하면 체셔가 나오는 거냐?”

 

“엘리스와 더불어 이상한 나라에 빠지는 건 아닐까요?”

 

“둘 다 중얼거리지 말고 잘 가도록 해.”

 

 

나와 아리엘의 등을 살짝 떠미는 소리는 툭,하고 튀어나왔지만, 앞으로 떨어져야 할 깊이를 모르는 우리는 마음의 준비도 안 되었는데 떠밀어버린 티르빙을 저주하며, 거대한 비명소리와 함께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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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워프레임을 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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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2 - 9

477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지만, 시간은 열쇠가 아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이 석상 안에서 언제 나갈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나와 아리엘은 빨리 문을 열리길 기다리면서 방금 전에 들었던 사회자와 각본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 모든 것은 각본에 의해 지정된 전개라는 말을 켈모리아에게 들었다고 했다. 100번이상 회귀를 한 것도 결국 지루한 각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쾌락주의자의 이상행위라고 하지만, 결국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버리고 켈모리아는 이번 싸움을 포기하는 행동을 취했다는 것이, 머릿속에 나타날 수 있는 결론.

 

그러면 지금까지 이것만 100회이상 일어난 일인가? 세계가 부셔지고 만들어지는 것이 100회이상이 아니라면 지금은 어떤 결말을 향해 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켈모리아의 경우에는 엘티노스를 넘어 영웅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을 테니, 실질적으로 주 목표가 영웅을 뛰어넘는 것. 부 목표가 반복되는 회귀를 부수는 것이 되겠지.

 

“꽤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어. 이 정도로 내 머리가 돌아가본 적은 처음이야. 각본가와 사회자라...유랑극단의 인원은 어릿광대, 맹수 조련사, 각본가, 사회자. 이렇게 4명이 있었지.”

 

“어릿광대와 맹수 조련사가 저희를 도와주는 이유도, 그저 각본에 그렇게 적혀있기 때문이라고 켈모리아가 말했어요. 그러니 지금은 이 봉인에서 빨리 풀려서 카일 씨와 해결하지 않으면...”

 

“해결? 미안하게도 나는 이제 이곳에서 나가면, 마법을 못쓰는 민간인으로 완벽하게 전직하게 된다고?”

 

“네? 그건 또 무슨 자다가 트롤의 허파가 빠지는 소리에요?”

 

트롤도 허파가 빠지면 생명이 위급하다고...

터무니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상황설명을 요구하는 주홍빛의 눈이 나를 쏘아봤다. 빠르게 고개를 돌린 아리엘의 은색비단은 아름다운 곡예를 하듯이 따라왔고, 숨길게 없는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 이곳은 엘티노스 씨가 만든 봉인장치야. 네가 가진 마신의 힘을 봉인하고 본래 마족으로 되돌리는 것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먹는 일이라고, 원래는 너를 인간으로 만들려고 했던 속셈이었지만, 내가 이렇게 들어가면서 너는 마족으로 유지하며 위급상황에 곧바로 전투에 투입할 수 있도록 보존하는 것이며, 나의 경우에는 그 동안 잘 유지해왔던 모든 마법과 페어링, 어쩌면 모든 계약과 낙인이 사라지게 돼. 모든 것을 잃는다고 봐야 할 거야. 지금도 그 상태라서 이곳에서 탈출하는 것은 너에게 의존하는 거라고.”

 

“그런...말도 안 되는...그럼 내가 카일 씨를 지배해서 여장을 시킬 수 있다는 소리인가요?”

 

“눈을 반짝이며 무시무시한 소리 하지마. 아무리 여름이라고 하지만 더위를 날리기 위해서 그런 소리를 한다면, 정말 귀신이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아니, 솔직히 지금까지 만나온 것이 좀 많아서 귀신이 찾아와도 안부인사는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나를 여장시킨다는 말부터 계획, 행동, 범죄까지 모두 금지야.”

 

“칫!”

 

저런 고운 얼굴로 혀를 찰 줄이야.

그런데 의외로 잘 어울리는 건 뭘까? 귀엽다고 해야 하나?

무의식적으로 아리엘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면서 다시 허세가 2000%담긴 말을 내뱉었다.

 

“마법과 모든 계약을 잃었지만, 지금까지 겪어온 고생과 경험, 지식은 나의 가치가 되어주고 있어. 그러니까 네가 나중에 모든 것을 잃어도 그리 걱정하지는 말아라. 살아갈 길은 궁리만 하면 어떻게든 나오니까. 지금 켈모리아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숨어있겠지.”

 

“숨어요?”

 

아리엘은 나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귀엽게 반응을 하고 있지만 그 눈에서는 분노가 아니라 슬퍼하는 눈을 하고 있었으니.

 

“나에게 묻지 말고 좀 머리 속으로 생각해. 켈모리아는 이번 카멜롯에서 어마어마한 일을 저질렀어. 그리고 이 사건은 검은 높새바람에 의해 천칭들의 모임이 주목을 하게 되면서, 지금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켈모리아를 당장이라도 화형을 시키지 못해 안달이 나겠지. 신인류에 이어서 유난히 세계의 평화가 자주 흔들리니 상당히 예민할거라고?”

 

비록 내가 엘티노스에게 한 소리 들었을 때의 첫 부분을 응용했지만, 아리엘은 그래도 자신을 받아줬던 켈모리아의 따듯한 모습에 더욱 마음이 끌리고 있나 보다. 이런 세계로 와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시원할 정도로 받아주고, 힘의 사용방법을 알려줬으니 부모를 생각하는 아이의 모습인 걸까.

 

“너도 아직 어리네. 빅터와 같이 다니려면 10년은 더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전 이미 어른이라고요. 머릿속에서는 이미 세상물정에 대해 다 알고 있고, 아직까지 지식이 쌓이고 있어요.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카일 씨를 습격할 수 있으니 잘 때 조심하시죠?”

 

“잡화점을 안 열어주면 되지.”

 

“릴리스와 같이 갈 건데요?”

 

결계 그리는 방법이 뭐였더라?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마법을 쉽게 포기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머리와 몸은 기억하고 있지만 정작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이 결계를 그리기 위해선, 중급 이상의 마법석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여전히 강한 정신방어네요. 카일 씨는 저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야 당연하지. 네가 비록 몽마라서 남을 홀린다고 할지라도, 내 체질은 월식 때문에 뒤틀려버렸으니까. 뻔해 보이는 유혹이나 함정 같은 건 걸리지 않는다는 거야.”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기습을 받거나 습격을 받죠. 그것도 밤에.”

 

“마지막 단어를 강조해서 안 좋은 기억을 들쑤시지마.”

 

지금까지 당해왔던 것을 생각하기 싫으니, 빠르게 빠르게 기억을 덮어 눌렀다.

 

“그리고 너는 빅터와 잘 지내고 있는데 다른 남자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나의 경우에는 기혼자라고? 여자가 여러 남자에게 손을 뻗는 거 아냐.”

 

“그래도 그 발언 좀 이상하지 않아요?”

 

뜬금없이 날아온 아리엘의 발언에 한숨을 내쉬며 “뭐가?”라고 대답해줬다. 그래도 지금은 흥미진진하니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는데.

 

“카일 씨는 모두의 카일 씨잖아요? 그‘모두’에 저도 포함되어있는 거 아닌가요?”

 

“그럼 너는‘모두’의 아리엘이냐? 이상한 모두 다 같이 하는 마블을 할 거면 다른 곳으로 날아가버려.”

 

“제가 모아온 백장미에 싸인이나 하시죠?”

 

말뚝이 심장에 박힌 것같이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저 말뿐인데 몸이 진짜로 아프고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만 같았다.

 

“너도 그 이상한 흑장미인지 뭔지 찍고도 아무렇지 않는 거냐?”

 

“카일 씨가 백장미를 찍도록 협력하는 것뿐이니까요. 빅터는 이미 탄탄한 근육과 훈훈한 이미지를 띈 얼굴이 여장에 방해되지만, 카일 씨는 트릭스 씨와 비슷하게 최소한의 근육만으로 어마어마한 힘을 내면서도, 중성적인 외모에 의외로 여장이 잘 어울리는 몸을 지니셨으니까요. 만약 맨 처음에 카일 씨에게 구조가 되었다면, 저는 잡화점에 눌러 살면서 여장을 시킬 기회를 모색했겠죠.”

 

“너를 맨 처음에 구조한 것이 빅터라서 정말 다행이군.”

 

아리엘이 어설프게 남장해서 찍는 그 이상한 잡지는, 나를 백장미 찍게 만드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소리인가. 루니아 누나와 레이나 씨가 어떻게 애를 버려놨길래, 순수하고 착했던 시절의 아리엘이 그립기까지 하네. 어라? 손수건이 어디 있더라? 눈물이 나오려고 해.

 

“농담은 이 정도로 끝낼까요?”라고 자신의 치마를 툭툭 털어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묻는 곳이 아니니 상관은 없지만, 이곳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도 찾은 것일까? 아리엘의 작은 고개는 나를 내려다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6번째 양이 있는 장소라면 꿈의 세계라고 보면 편하겠네요. 어째서 엘티노스 씨가 카일 씨의 마법과 페어링을 모조리 소비시키면서, 저를 몽마로 남겨두려고 한 이유를 이제야 알았어요.”

 

이제야 알았다는 소리는 지금까지 나와 대화를 하면서, 이곳을 어떻게 나가야 할지 궁리를 하고 있었다는 건가? 그냥 포기하고 시간이나 때울 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리엘은 서서히 자신의 명치부근에 손을 올리기 시작하더니, 천천히 옷이 바뀌기 시작했다.

 

마법학원의 교복이 아니라, 움직이기 편한 활동복.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나와 비슷하게 검은 바지와 회색으로 된 가죽외투. 외투 안에는 검은 블라우스가 자리잡고 있었다. 민무늬이기 때문에 아무런 특징도 없고, 수수한 모습의 차림으로 바꿨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저기. 아무리 옷이 없다고 해도, 나처럼 스타일 없이 입으면 안 돼. 나의 경우에는 언제나 실용성을 우선시로 하기 때문에...”

 

“저도 실용성 우선인데요? 카일 씨의 옷을 복사하듯이 바꾼 이유라고 한다면, 마법학원의 복장은 치마가 짧아서 아슬아슬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증명을 하기 위해서 일부러 바꿔버린 것도 있어요.”

 

아리엘은 몽마니까 꿈의 세계에서는 힘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면 강한 의지로 이곳에서 깨어나고 싶다는 염원을 이루는 것이, 가장 유효한 방법이라는 건가?

 

“제 힘은 아직까지 작용하니까. 카일 씨와 저는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을 거에요. 다만, 부작용이 있으니 미리 방지를 할까요? 아니면 부작용을 나중에 해소할까요?”

 

뭘지? 뭘 골라도 내가 손해인 것 같은 제안은?

 

“그 부작용이 무엇인지 알려줘야 그 둘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지 않을까?”

 

대답을 들은 아리엘은 순간 눈빛이 요망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이미 느낌이 오기 시작했고, 어설픈 계략에 너무 어설프게 말려 들어가버린 나를 내가 저주하기 시작하며 귀는 마저 내용을 들었다.

 

“그것도 그렇네요. 우선 둘 중에 하나를 고른다고 하셨으니, 설마 카일 씨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리는 없고. 제 생각에는 이공간에서 깨어나려면 상당한 양의 정기가 필요한데? 어떻게 지불하실 건가요?”

 

정기를 어떻게 지불하냐고 물어봐도, 화폐처럼 꺼내서 줄 수도 없는 노릇인데,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면 어쩌잔 걸까? 치켜 뜨는 눈과 살짝 올라간 입꼬리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낳았다.

 

“좋아. 다른 해결방안을 생각하자. 아무리 꿈속이라고 해도 너의 도움 말고 다른 방법으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네가 무리해서 힘을 사용해 이곳에서 꺼내준다는 말은 없는 걸로 하고, 나의 명석한 두뇌가 제대로 일하길 기대하면서 귀엽게 바라보는 포즈는 그만둬.”

 

합리적인 판단은 이쪽이 더 빨랐...

 

“30분이에요. 30분동안 못나가면 강제로 카일 씨의 정기를 흡수하고 밖으로 나갈 거에요. 게다가 지금은 약간 춥기도 하고, 릴리스가 눈에 불을 키고 카일 씨를 원하는 이유도 알고 싶고...”

 

다고 생각을 했는데, 느닷없이 떨어진 선전포고 때문에, 생각의 속도는 시공간을 뚫어버릴 정도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채찍질을 해봐도 제대로 된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리엘마저 나를 가볍게 여기면, 유일한 도피처인 꿈에서마저 6번째 양과 이별하고, 정기 공급소가 될 것만 같은 불안한 미래를 만들지 않기 위해...

 

이미 무시무시할 정도로 처참한 이명이 붙었는데, 창고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난잡한 별명이 붙었는데, 내가 그 흔한 감자도 아니고!

 

“우선 실험을 하자. 30분동안 할 게 많으니 좀 기다려.”

 

 

기발하지 않지만 아주 간단한 것부터 실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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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보다가 잠을 못자서 지금 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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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2 - 8

476

 

 

 

경우에는 이 싸움은 오래 끌고 최후의 최후까지 끌려갈지도 모르는 순간이지만, 켈모리아의 잘못된 판단으로 100배는 더 가까이 빠르게 단축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다만, 내 수명도 왠지 모르게 100배 더 단축이 된 기분이 들었는데, 무시무시할 정도로 허약해진 몸에 어떤 보양식을 집어넣어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잘난 엘티노스와 전설의 영웅을 넘겠다는 켈모리아가 3개의 자원을 합치는 일을 하지 않는 이유라면, 내가 몸으로 철저하게 체험중인 부작용 때문이겠지.

 

“신랑! 방금 그건 뭐야!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고!”

 

루시피나는 경악해서 달려오고 침착함을 어디다 버리고 왔는지, 다짜고짜 나를 붙잡아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24시간 전의 내 신체로 되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신과 밀접한 힘의 대가는 의외로 작았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형체가 사라져버린다거나, 몸이 붕괴해서 절명을 맞이한다거나, 젤나가가 되어 온 우주의 생명을 퍼트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잠깐? 마지막은 생각해보니 의외로 할만한 일 같은데?

 

“뭐. 지금이라도 쉬어두면 대략 2주 정도는 살 수 있을 것 같네요. 루시피나.”

 

“불길한 소리 하지 말고! 어째서 그런 무모한 일을 아무런 상의도 없이 하는 건데!”

 

“아니. 그야 느닷없이 떠올랐으니 상의할 틈도 없이 도박을 걸은 거죠. 우선 켈모리아의 존재를 지우기는 했는데 이로 인해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존재를 지운다는 것은 그에 합당한 대타가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의 기억에서도 남아있지 않으며, 이사벨 씨에게 물어보면 여동생에 대한 추억이 없어져 있다.

 

“그런데 묘하네요. 분명 켈모리아에 대한 존재를 지웠는데, 어째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거지?”

 

당연히 제거를 담당한 내 기억에서도 지워져야 할 텐데. 어째서 지금 내 머릿속에 떠나가지 않는 것일까? 덤으로 어처구니 없게 일어서는 켈모리아의 몸은 주변을 둘러보며 상쾌하게 말했다.

 

“이야~ 정말 다행이야.”

 

“뭐가 다행이야! 방금 전까지 사라지기 위해서 입자화로 날아가고 있었는데!”

 

“응? 아. 그거? 다행히도 내 안에 있는 다른 존재만 날아간 것 같은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롱기누스의 창은 육체가 아닌 영혼을 파괴하는 힘. 그럼 잠깐 동안 다른 인격을 불러오면 되는 일이지 않을까? 유체이탈이라는 마법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니까.”

 

다른 인격?

아까부터 무슨 소리지?

 

“음. 확실히 기억이 안 나네? 분명 누군가가 날아간 것 같은데. 지금 당장 내 안에 어떤 마법이 사라졌느냐 하면, 그것도 기억이 안 나네?”

 

내가 롱기누스의 창으로 마법을 발동하기 전에, 켈모리아를 흉내 내는 누군가로 바꾼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 켈모리아 안에 받쳐주고 있는 어떠한 것은 사라졌지만, 대체 내가 뭘 지워버린 거지? 기억이 나지 않고 서야 궁금증은 풀리지 않는다.

 

그런데 궁금증을 풀려면 기억을 해야 하지만 전혀 나지 않는다.

 

“뭔지 몰라도 비열한 수를 써서 잠깐 동안 피했다는 건가.”

 

자세히 켈모리아의 몸을 살펴봐도 여전히 입자가 하늘 위로 승화하듯 올라가고 있지만, 실제로 몸에는 어떠한 이상현상도 보이지 않았다. 흙먼지로 더럽혀진 드레스를 가볍게 손으로 털면서 다음 마법을 준비하려고 할 때.

 

“음? 마법이 나오지 않아? 그렇구나! 근본적인 걸 부수고 지나가서 어쩔 수 없네. 이제 나는 마법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으로 되어버린 거구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켈모리아의 손 앞에는 어떠한 마법진도 나타나지 않았고, 마나 또한 뭉쳐지지 않았다. 황혼<Dusk>을 맞은 이후로 모든 마법이 사라진 켈모리아는 잠깐 고민하듯이 고개를 올려서 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만지작거렸고, 짧은 시간 안에 결론을 내렸는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삶의 낙이 사라져버렸네. 이제 마법의 지배자라는 칭호도 없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거잖아?”

 

말은 저렇게 부정적으로 해도 켈모리아의 표정에서는 해방감을 찾아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마법에 관한 모든 것들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 소유하는 것을 버리는 것으로 자신이 자유가 되었다는 소리일까?

 

아니면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는 허탈감일까?

 

그래도 확실한 것은 아리엘에게 속박되었던 저주가 없어졌다는 소리이고, 노아스에게 걸려있던 저주도 풀렸는지 정령왕들이 있는 지역은 잠잠해졌다.

 

“신랑. 우선 돌아가자.”

 

루시피나의 품이 오늘따라 따듯하고 포근해서 의식을 잃어버릴 뻔했지만, 아직 내 일정은 끝나지 않았으니, 지금 저 멀리서 다가오는 아리엘을 보자마자, 루시피나에게 할 말이 머릿속에서 저절로 떠올랐다.

 

“루시피나. 엘티노스가 만든 석상...지금 제 뒤에 소환해줄 수 있나요?”

 

“그 몸으로는 무리야! 차라리 내가 같이 봉인될게! 그러니 신랑은 내가 봉인에서 풀렸을 때만이라도 나를 맞이해줬으면 좋겠어.”

 

급하게 내 뒤에서 떠나는 루시피나의 어깨를 붙잡고 다시 앉혔다.

 

“지금 그 석상이 수명이 얼마 안 남은 저에게 최고의 변수가 될 수 있는 거에요. 봉인에서 풀려나면 제 몸은 마법을 사용하기 전으로 리셋이 될 테니까. 수명이 단축되어버린 이 기이한 부작용도 같이 나아지겠죠.”

 

“신랑은 그걸 계산하고 그 바보 같은 자폭을 한 거야?”

 

“자폭이라니. 제대로 한방 먹였는데...”

 

루시피나의 눈동자가 오늘따라 크다고 생각했는데, 뺨에서 흐르는 눈물을 살짝 닦아줬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서는 나를 보고 안심을 한 건지. 아니면 나의 의지에 체념을 해버린 건지. 손바닥으로 자신의 남은 눈물을 훔쳐낸 루시피나의 얼굴은 나를 강하게 바라봤다.

 

울지 않으려는 거겠지만...

 

“그럼 잘 다녀와야 해.”

 

“잘 다녀올게요. 루시피나. 잡화점 멤버에게는 대신 전해주세요. 당분간 여행 좀 떠나고 온다고요. 그리고 카멜롯에서 벗어날 때 켈모리아도 같이...”

 

“알았어. 대신 꼭 돌아오는 거다?”

 

죽어야만 낫는 켈모리아의 쾌락주의는 마법이 사라지는 것으로 해결이 되었으니, 분노에 휘말려서 막말했던 그때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건 둘째치고 내 등 뒤에 석상이 열리면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는데, 검은 날개를 가진 아리엘은 노을을 연상하게 만드는 눈동자에선 여전히 나를 재우기 위해 다가가는 모습이었다.

 

양손을 뻗어서 나에게 다가오는 아리엘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어마어마한 압박감에 한숨으로 푹푹 나오기 시작했는데, 내 뒤에 있는 석상에 아리엘과 같이 봉인이 된 이후에도, 밖에 있는 레시아와 시나가 잘 해줄지 의문이다.

 

“자. 낮잠시간이다.”

 

아리엘이 자각하지 않고 계속 나에게 다가왔을 무렵. 아리엘을 끌어당기면서 석상을 향해 몸을 뒤로 날렸다. 밖의 풍경은 그대로 닫혀나가면서 좋은 꿈을 꾸는 걸까?

 

“메~”

 

눈을 깜빡였더니 6번째 양이 내 앞에서 울타리를 넘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넘어가려고 했는데 무시무시할 정도로 잘 안 넘어간다고 해야 할까? 내 옆에는 오랜만에 키가 작은 아리엘이 누워있었다.

 

마신이 되어 난장판이 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 밖에는 아리엘의 다른 인격을 제압하느라 고군분투를 하고 있겠지. 그래도 엘티노스가 직접 천계에서 내려왔으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켈모리아는 나 때문에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봉인을 당하는 것뿐이니까. 나중에 레시아에게 다시 마법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하면 되겠지. 게다가 체질은 변하는 것이 아니니까, 마나는 금방금방 다시 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라? 카일 씨?”

 

“잘 잤어? 아리엘? 아니. 지금은 자고 있는 상태니까. 잘 자는 중이냐고 물어봐야 했나?”

 

“여긴 어디에요?”

 

“엘티노스가 만든 석상 안이야. 강제로 마신이 된 너를 되돌리고 있는 작업 중이지. 나의 경우에는 3개의 자원을 합친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들어온 거고.”

 

여전히 사태파악이 안 되어 주변을 둘러보는 소녀는 이윽고...

 

“그럼 현실은 카일 씨와 밀실 플레이를?”

 

“아냐.”

 

정색하면서까지 부정하게 만드는 건 아리엘을 상대하면서 처음이다.

 

“그나저나 켈모리아는 어떻게 됐죠? 분명 저는 켈모리아 때문에 폭주를 하긴 했지만...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누군가에 의해 단순히 농락당한 것뿐이지!”

 

흥분하면서 소리치고 있는 아리엘의 어깨를 억눌러가며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막았다. 그 이유라고 한다면 무섭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켈모리아는 살아있어. 그보다 농락이라고? 100번 이상 윤회를 거듭한 것과 지금까지 벌여온 일을 생각하면 혼자서 행한 것처럼 보이는데?”

 

“유랑극단이 남아있어요.”

 

유랑극단은 해체된 걸로 알고 있는데?

어릿광대와 맹수 조련사가 직접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유랑극단은...”

 

“아직 각본가와 사회자가 남아있어요. 어릿광대와 맹수 조련사는 각본에 따라 움직이면서 방황하는 것뿐이지. 사실은 그 모든 게 계획된 거라고요!”

 

“설마 이렇게까지 오는데 각본대로라면, 지금 이렇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도 각본에 쓰여있다는 소리인가?”

 

아리엘의 굳은 표정을 보자마자, 나 또한 등 한줄기에 얼음 꽃이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전부 각본대로 움직이고 있는 거라면, 이 다음이 또 있다는 소리인가? 아니면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일이 뭔가 잘못된다는 소리일까?

 

“봉인이 빨리 풀려야 밖의 상황을 볼 수 있는데, 지금은 눈을 감고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다니.”

 

“그보다. 이곳에서 빨리 탈출해야죠!”

 

“탈출은 불가능해. 게다가 나가면 나는 마법을 전혀 못쓰는 사람으로 되돌아가.”

 

“네?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그러니까 아까 켈모리아와 싸운 내용을 더욱 상세하게 알려준 결과로, 아리엘의 고운 입에서 튀어나온 한마디는 이러했다.

 

“미쳤어요! 신랄하게 자살을 택하는 경우는 또 뭐에요!”

 

“아니. 그래도 결과는 모두 좋았으니까. 살아있는...”

 

“카일 씨는 잡화점의 멤버들이 모두 기다리잖아요! 모든 것을 잃은 저와는 다르게!”

 

모든 것을 잃었다?

 

“혹시 네가 폭주를 해서 마법학원에 있는 사람들이라던가, 빅터 등. 다른 사람들을 말하는 거야?”

 

“네...제 부주의로 모두 사라졌을 거에요. 마법 기동반은 저와 엇갈렸으니까 안전하다고 해도, 밀리아나 다른 사람들은...”

 

“그거라면 걱정하지마. 지금 밖에서는 너의 다른 인격...아르트리옴이라고 하는 게 더 빠른가? 그 녀석만 잘 해결되면 모두가 잠에서 깨어날 거야. 마법 기동반은 지금쯤 널 되돌리기 위해서, 잡화점 멤버와 합심해서 싸우고 있을 거고.”

 

“그럼 다시 만날 수 있는 건가요?”

 

“확실히 전부 죽지 않았어. 아니 죽었다는 것도 이상하지. 검은 존재에게 침식당하고 있지만 되돌아올 수 있는 상태라고 봐. 적어도 내가 마법을 버리기 이전에 봐왔던 상황이니까.”

 

“그럼 다행이네요.”

 

 

안도의 한숨이 이곳까지 울려 퍼졌다. 모든 것을 잃은 줄만 알았던 사람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가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쌓여있는 문제는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이곳에서 얼마 동안 있어야 해방이 될 수 있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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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때리다 늦었어요.

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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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2 - 7

475

 

 

 

숨을 고를 필요도 없다. 마법에 영창을 시작하지도 않는 마법의 지배자라는 이명. 그 이름에 걸맞게 켈모리아의 손 끝에서는 마법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빛에 눈을 빼앗긴 다면 곧이어 찾아올 화염으로 뒤섞인 창에 맞는 것이고, 서투르게 움직이면 다른 마법이 몸을 덮치겠지. 나를 상대할 때는 그런 잔재주는 통하지 않았으니.

 

볼펜처럼 보이는 특이한 기구로 뒷부분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Oh Yeeeeees!

 

언젠가 이것도 음성을 좀 바꿔줘야 할 텐데.

 

“마법이 전혀 통하지 않아. 기초마법이라던가 그런 건 카일에게 전혀 닿질 않네. 설령 맞는다고 해도 항마의 축복이 지켜줄 테니까. 이런 마법은 가장 비효율적이라는 걸까?”

 

지루한 표정의 켈모리아의 몸에서 바다 빛의 파도가 몰아치기 시작했고, 나도 바다 빛의 파도를 허공에서 만들어냈다. 서로 새벽<Daybreak>을 사용하면서 어느 쪽의 마나가 더 빨리 소비되는지 자웅을 겨루는 것은 결코 아니며...

 

-파앙!

 

내 볼을 스쳐나간 마탄이 순수한 힘겨루기에 방해를 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더러운 짓도 할 수 있는 것은 쾌락주의자의 특권이 아니다. 본래 켈모리아의 성격이 좀 비정상적으로 현실적인 시각인 것뿐. 곧 죽게 생겼는데 이기려면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맞다.

 

나도 용병시절에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꾀를 꾸민 것처럼...평범하게 이기는 것이 지루하거나 볼품 없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발상부터 기발하지 않으면 저쪽에게 밀린다.

 

“그러면 죽지 않게 조심하라고?”

 

“보통 촌각을 다투는 싸움에서 목숨을 소중하게 여기지는 않을 텐데!”

 

급격한 파동을 쏘아 보내는 켈모리아의 손을 피하면서 생각을 했지만, 켈모리아의 새벽을 상쇄하는 걸로 마나를 전부 소진하고 있는 반면, 나와 다르게 다른 마법을 사용할 정도로 여유가 넘쳐난다는 소리.

 

켈모리아의 경우에는 마나도 그렇고 마법도 그렇고 역시 정면대결은 위험하구나. 그렇다면 나는 좀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이야! 루시피나!”

 

“대화재의 시!”

 

거대한 불길이 나와 켈모리아를 뒤덮기 시작했다. 나 혼자의 마나로 켈모리아의 새벽을 견뎌낼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의 마나를 빌리는 것이 유효한 방법. 당황한 표정으로 대부분의 마나가 소비 되면서, 켈모리아 근처의 마나가 대폭 감소했다.

 

““대화재의 시는 카멜롯 전역을 태워도 이상할 리가 없는 광역마법. 그 마법을 켈모리아 혼자 집중해서 막아낸다면, 상대적으로 이쪽이 우위를 점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은 최악의 악수를 꺼냈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뒤에서 불길을 조종하는 루시피나에게 이상이 생긴 듯이 식은 땀을 흘리며 동요했다. 붉은 두 눈빛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다급하게 외치기를...

 

“신랑! 도망쳐!”

 

“블랙홀!”

 

우주에 있어야 할 것이 왜 내 앞에 있는 거냐! 시공간 마법으로 조종해낸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염력으로 압축해서 제어하는 거라면, 내가 손을 댈 수 없는 노릇인데. 어마어마한 속도로 흡입하는 검은 구멍은, 중앙에서 뻥 뚫린 체 희생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공기, 흙, 나뭇잎을 먹으며 점점 몸을 키워나가고, 곧이어 돌을 들어서 삼키는 만행까지 보여주고 있으니, 기프트피어스를 들고 블랙홀을 향해 눌렀다.

 

-Oh Yeaaaaaaah!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목소리를 빨리 바꾸고 싶은 마음에, 버튼을 강하게 짓누르며 블랙홀의 크기를 줄였다. 새벽을 전개하면서도 블랙홀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넘칠 정도면 지금쯤 강물에 흘러내려와 바다를 이루고 있겠지.

 

마법사를 마법으로 이기려고 하는 내 잘못인가?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이상할 게 없으니 검을 들고 돌격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에 대한 대비는 이미 끝났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 다른 방법은 어디에 있는 걸까?

 

방금 전에 우주에서 날아왔던 거대한 괴수를 찢어놓았던 그 빛이 켈모리아에게 떨어졌으면 좋겠는데. 지금 당장 루나와 이야기 할 방법이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잠깐?

그걸 왜 남에게 부탁을 하는 거지?

오히려 내가 새로 만들면 되는 것을?

 

“그럼 계속해서 가볼까?”

 

전방에서 모습이 사라졌다. 옆과 뒤쪽에서 소름 치는 것과 동시에 티르빙을 검으로 만들어서 방어했다. 방어자세에서도 거대한 충격이 오고 갔는데, 새벽<Daybreak>이 여전히 출렁이며 다가왔고, 켈모리아의 신체에서 푸른 전류가 튀기 시작한 것을 눈으로 직접 보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걸 실감했다.

 

“터치!”

 

장난스럽게 나를 살짝 치고 갔지만 비스듬하게 몸을 틀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바보 같은 마법소녀 옷 앞에 포인트로 달려있던 거대한 리본이 까맣게 그을리며 날아가버렸다.

 

“어라? 왜 변신이 풀리지 않는 거지?”

 

“그야 저는 마법소녀가 아니라 다른 이들 때문에 불행하게 여장을 당한 거니까. 여전히 내 성별에 대해 헷갈린다고 한다면, 지금 당장 외우는 게 좋을 거야. 잡화점의 주인은 남자라고.”

 

“어머나? 몰랐어. 너무 잘 어울려서 말이지.”

 

“그래서 잠깐 부탁인데 새벽을 꺼줄 수는 없을까? 옷을 좀 갈아입고 싶거든.”

 

켈모리아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여장한 옷으로는 너무 하늘하늘 거리기도 하고, 너무 예쁜 것을 치중했는지 굽이 살짝 높은 신발이니 힘들었다. 서로 바다 빛의 마나가 허공으로 사라지고, 잠깐 동안 옷을 갈아입었는데 검은 면바지와 검은 가죽외투를 입었다.

 

“여전히 검은 거 좋아하네? 집에 그거 밖에 없는 거 아냐?”

 

“그나마 검은 색이 무난하거든.”

 

다른 곳에 공간이동을 하면서 켈모리아는 말을 걸어오는 여유를 보였지만, 지금 구두나 부츠가 아니라 가벼운 신발을 신었으니, 근접전에서도 어느 정도 보안이 되겠지.

 

“아리엘을 되돌린다면 어떻게 할 거야?”

 

왜 느닷없이 저런 질문을 하는 거지?

 

“글쎄. 적어도 다른 사람이 보호해줄 때까지는 데리고 있는 것이 맞지만, 이미 적임자를 찾아서 내가 데리고 있을 필요는 없어 보여. 그러니 이제 질문이 끝났다면 그 이상한 번개마법을 사용해도 괜찮아.”

 

“그래? 너무 여유가 넘치는데?”

 

다시 빛의 속도처럼 움직이는 푸른 스파크가 켈모리아가 지나간 길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흔적과 자취를 남기는 것을 확인하기 전에, 벌써부터 손바닥이 날아왔지만 시공의 눈을 개안한 뒤에, 날아오는 손바닥의 팔을 옆으로 빗겨 쳤다.

 

“빛의 속도로 움직여도 프레임단위로 늘려버린다면, 사람의 눈으로 직시할 수 있을 만큼 느려진다고!”

 

새벽을 휘두른 주먹이 켈모리아의 복부를 강타했고, 주먹에 남아있는 미약한 힘의 반동으로 자연스럽게 왼쪽 주먹으로 이동하며 정권을 내질렀다. 오른손으로 막아내기 위해 얼굴을 가린 켈모리아는 어마어마한 충격에 저 뒤로 날아가고 나서, 붉은 구두의 굽이 날아가면서 바닥을 스크래치 냈다.

 

“시공간술사에 대한 개념은 아무래도 카일 쪽이 제대로 잡고 있는 것 같아.”

 

“좋은 스승 때문이지.”

 

그리고 서서히 자세를 고쳐 잡았다. 시공의 눈을 개안하는 시간에 비례해서 내 몸은 안 좋아지니. 시공의 눈을 닫고 상황을 살펴봤지만 내가 주먹을 강타하는 동안, 켈모리아에겐 그 어떠한 치명타도 되지 않았다.

 

“복부는 바람마법을 이용해서 쿠션을 만들어 닿지 않게 하고, 정권을 막았던 손바닥에는 이미 새벽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마법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거군.”

 

“정답. 나는 육체강화마법이 특기인 언니하고 옛날부터 많이 싸웠거든. 근접전에는 오히려 이쪽이 환영하고 있지.”

 

켈모리아는 나의 해답에 빨간펜으로 “참! 잘했어요!”라고 써주고 싶은 모양인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전투시에 마법을 만드는 행위는 제대로 미친 행위 중에 하나지만, 지금은 미친척하고 마나를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어라? 마나를 그렇게 많이 사용해도 되는 거야? 마법사들은 단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작지만 효율을 중시하는데?”

 

“때로는 도박이 필요한 법이지. 요즘 인생에 도박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겠어?”

 

“그래도 지금 사용할 마법은 마나가 너무 많이 들겠네? 시전하다가 쓰러질 것 같은데?”

 

그건 사용하려는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마나와 더불어 내 안에 있는 신성력과 마기마저 모조리 섞을 거니까.

 

“신랑! 그러면 안 돼! 마법에 기초되는 자원은 한가지씩이라고! 그렇게 마구자비로 넣으면 폭주가 일어날 거야!”

 

루시피나가 저 뒤에서 소리치며 말리려고 했지만, 켈모리아의 사심이 가득한 결계가 루시피나의 앞길을 막았다.

 

“그러면 도박을 해보도록 해?”

 

“오히려 이 시간을 준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모든 자원을 하나로 융합시키는 것은 엘티노스의 자서전에도 쓰여져 있는데, 손쉽게 말해 마법사, 사제, 흑마법사 세 명이 모이면 가능한 자살행위라고 했다. 폭주로 인한 거대한 폭발은 피아를 구별하지 않고 모조리 태워나가고, 소멸시키면서 지도를 바꿀 정도이지만, 성공적으로 융합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버틸만한 마법을 만들거나, 신적인 보물들을 소지하고 있어야 한다.

 

나의 경우에는 3가지의 자원을 중재하기 위해, 티르빙을 롱기누스의 창으로 변형시키면서, 내 앞에 태양보다 밝은 듯한 거대한 빛의 구체를 내리 찍었다. 티르빙으로 인해 검은 색으로 물들었던 창은, 빛의 구체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하얗게 탈색하기 시작했고, 그걸 잡고 있던 내 몸마저 빛이 나기 시작했다.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될 줄이야. 3개의 자원이 섞여 조화를 이루면, 빛도 아니고 어둠도 아니게 되는 독자적인 에너지라니.”

 

황홀하게 보고 있는 켈모리아 앞에 창 끝을 겨누며 발동언어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황혼<Dusk>”

 

거대한 빛은 창 끝에서 순식간에 뿜어져 나와, 켈모리아의 마법방패와 복부, 그 뒤에 있는 결계와 저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검은 거대괴수의 몸까지 뚫어내면서,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켈모리아는 자신의 복부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라? 분명 막았을...”

 

“새벽으로 몸을 두르면서 막아내도 소용 없어. 이미 신을 뛰어넘는 에너지니까. 엘티노스 자서전에도 없던 정보야. 3가지의 자원이 뭉치면 이런 일이 되는 거지. 과거로 회귀마법을 사용할 거면, 내가 롱기누스로 흡수하기 전에 갔어야지.”

 

힘 없이 축 늘어진 켈모리아는 외견상 아무런 상처가 없지만, 롱기누스는 상대의 영혼을 꿰뚫고 부수는 힘. 지금은 황혼의 힘을 이어받아 상대의 본질마저 부순 것이다.

 

“더 이상의 회귀는 없어. 그 지루한 일생에서 쾌락주의자밖에 될 수 없었던 저주받은 나날도 이제 끝이야. 이제 환생 같은 건 불가능 할 테니까.”

 

본래의 모습으로 천천히 돌아오는 것과 동시에 숨이 막히는 듯한 감각이 내 몸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윽! 쿠학! 콜록! 콜록!”

 

입에 비릿하면서도 끈적이는 짠맛. 이미 유혈을 토해내고 주위를 둘러볼 틈도 없이 시야가 흐려지고, 온 몸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위험하다며 생각하지도 않았던 행동을 인간이 해냈다.

 

다만, 그 대가는 톡톡히 치르고 있는데.

몸이 많이 피폐해진 터라, 지금 당장 안정을 취하고 쉬어도 얼마 못살 것 같았다.

 

“두 번 다시 이런 거 사용하지 말아야지...”

 

온 몸의 마나가 제대로 모이지 않고, 롱기누스의 창은 다시 귀걸이 형태로 바뀌어 버렸다. 정말 한 순간. 3개의 자원이 합쳐져서 새로운 자원을 만들고, 롱기누스로 그 힘을 흡수했을 때. 지식과 이해가 초월범위까지 닿아있었고, 한정적으로 창조신과 버금가는 힘을 얻었다.

 

태초에는 마나와 신성력, 마기가 모두 합쳐졌다는 최초의 발상이, 나를 이 지경까지 몰아가버렸다. 그리고 켈모리아를 공격했던 그 순간, 그녀의 과거 회귀는 100번 이상 이루어낸 업적이야 말로 아리엘의 탄생이었으며, 아리엘을 자신의 밑으로 두고 싶은 이유라면 단순한 변덕이었겠지.

 

서서히 싸늘해지는 켈모리아의 얼굴에서는 오히려 웃음이 피어 올랐다.

 

“회귀도 못하고 환생도 불가능하다. 그럼 이 지루한 저주에서 겨우 해방될 수 있는 거구나.”

 

 

존재가 소멸한다는 의미는 죽어서 가죽을 남고,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다른 이들에게 잊혀져 버린다는 소리. 그런 잔혹한 죽음 앞에서도 서서히 사라지는 자신의 손을 보며, 웃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내 머릿속은 수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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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일격필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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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2 - 6

474

 

 

 

거대한 충격으로 인해 내 뼈가 부러졌는지 확인하기 전에, 남자로 다시 되돌아갔으니 확인할 방도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바보 같은 마법소녀 옷은 왜 남자일 때 입어야 하는 가?’에 대해선 양피지 80장 분량의 논문이 필요할 정도로 고찰을 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간단한 티셔츠와 바지 위에, 뼈로 이루어진 경갑을 입고 있는 상태. 그런데 나더러 프릴이 바보같이 달린 저 옷을 입으라고?

 

절대로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을 할 수 없어요. 엘티노스 씨도 그렇고 이걸 입는 건 루니아 누나가 입어야 할 정도로 기묘한 옷이니까요. 어째서 제가 이걸 입어야 하는지 타당한 이유를 말하면 생각만 해보도록 하죠.”

 

“그야. 아리엘의 정신을 번쩍 차리기 위해서는 네가 여장을 하고 있어야 하거든.”

 

“무슨 근거에요!”

 

내 여장과 아리엘이 제정신으로 되돌아오는 거와 무슨 상관이길래?

 

“뭐. 애석하게도 아리엘의 생각으로는 네가 평상시에 있는 모습보다는, 여장한 모습이 가장 반응을 이끌어내기 쉽기도 하고, 그때마다 폭주해서 너를 인형이라던가 애완동물로 만들려고 했던 거 기억 안 나냐?”

 

“아니. 폭주한 사실까지는 알고 있는데...잠깐만? 생각해보니 아리엘은 루니아 누나보다 더 한 애였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롱기누스로 제거할까요?”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살려서 지금 아리엘을 살려놓는다면, 언젠가 나의 평화와 평온을 단숨에 때려부수는 위험인물로 머리에서 지정했지만, 엘티노스의 일리 있는 말과 나를 썩어버린 사과를 보듯이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찌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저 애를 살리는 게 목적이라며? 그런데 롱기누스로 대뜸 죽이면 되겠냐? 그리고 아리엘은 살아있는 편이 가장 좋다면서, 저 안에 있는 세피르라던가 저 뒤에 있는 신수에게 미안하지도 않냐?”

 

“그렇긴 하죠...잠깐? 신수요?”

 

“삑삑!”

 

“으아악! 젤나가 맙소사! 엘티노스 씨! 혼종이에요! 혼종이 나타났어요! 지금 당장 아둔의 창에 연락해서 첫 번째 자손을 이쪽으로 좀 불러주세요! 아니면 그냥 아몬이라도 괜찮으니까 제발 저 존재를 공허속으로...잠깐? 저게 신수라고요?”

 

아까 전의 공격적인 성향과는 달리 느긋하게 엘티노스 어깨에 올라오면서,“삑삑!”하고 울기 시작했다. 그 뒤에 하얀 뱀이 따라오면서 의기양양한 어조로 내 귀를 때렸다.

 

“어떻습니까? 카일 씨. 제가 저 기이한 뱁새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하하하!”

 

“자, 잘했어. 그런데 어떻게 친구가 된 거야?”

 

“아. 그건 말이죠. 저번에 잡화점에 갔을 때 기괴한 하얀 책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불쏘시개로 사용할까? 생각해서 미리 삼켜놨었는데, 때 마침 저 뱁새가 절 추격해와서 그 책들로 공격하기 위해 뱉었는데, 알고 보니 카일 씨가 여장해서 찍혀있는 백장미라는 책이...으아아아아악!”

 

머리와 꼬리를 붙잡고 이제 찢어져라 늘리고 있었다. 나의 분노로는 하얀 뱀을 찢을 수 없는 걸까? 고무처럼 쭉쭉 늘어나는 기괴한 느낌에, 땅바닥에 냅다 던져버리고는 왼발을 빠르게 움직여서 뱀의 머리를 밟고 천천히 생각했다.

이 녀석을 대체 어떻게 제거해야 하지?

 

“아, 아무튼! 그 책 때문에 제정신을 찾았는지 도와주겠다고 따라온 거에요!”

 

백장미 때문에 정신을 차렸다는 말이 내 귀에 흘러 들어왔고, 허탈한 감각이 머리에서 한숨으로 치환해버리는 놀라운 기적이 시행되는 순간, 내가 여장을 하면 아리엘의 정신이 되돌아온다는 그 말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렇다기 보단 저 신수는 맨 정신인 것 같던데?”

 

“삑삑!”

 

“이건 대체 뭐라는 거냐?”

 

하얀 뱁새가 울고 있어서 하얀 뱀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빨리 여장을 하지 않으면 근육질 몸매로 코브라 트위스트를 걸어버리겠다고 하는데요?”

 

그게 신수가 할 소리냐?

 

“사건이 이렇게 심각한데 제가 여장을 한다는 그런 여유가 어디에 있나요?”

 

천천히 저 옷으로부터 떨어지는 거다. 머리에서는 타당할 정도로 당연한 말을 잡아 늘려서 시간을 최대한 벌고, 말과는 다르게 행동으로는 점점 아무도 모르게 멀리 멀리 떨어지는 것.

 

“게다가 저는 잡화점의 주인으로 조만간 잡화점을 열어야 할지도 모른다고요? 그렇게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이런 바보 같은 일 때문에, 지금 해야 하는 아리엘의 구출작전을 이렇게 소홀히 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 지금은 모두가...”

 

“주인. 그 뒤로 도망간다면 루시피나와 루니아가 제압을 하고 옷을 갈아 입힐 것을 명하겠노라.

 

제길. 레시아가 벌써 눈치를 챈 건가?

 

“하하핫! 제가 왜 도망을 간다고 생각하나요?”

 

태연하게...모두를 속이는 행동과 여유로...1초라도 긴장이 늦춰지면 그때가 찬스다.

 

“저는 잠깐 물을 마시기 위해 잡화점으로 돌아가려는 것뿐이에요.”

 

“물통은 마스터의 허리 쪽에 있지 않습니까?”

 

“내 물통은 비어있...”

 

“마스터의 물통은 아직까지 70%용량이 저장되어있습니다.”

 

...이거 어쩔 수 없겠는데?

 

“크하핫! 이것이 나의 도주경로...”

 

***

 

무시무시할 정도로 빠른 반사속도와 타이밍 때문에 결국 붙잡히고 말았다. 지금은 세상이 멸망할 것 같은 분위기에도 꼭 그렇게 여장을 시켜야만 했을까? 지금 내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루니아 누나 때문에 신경이 날카롭게 서 있지만, 이 분노를 과연 누구에게 풀어야만 할까?

 

지금 이 분노는 천 개의 태양보다 더 뜨겁고 맹렬하게 타오르는 것 같은...

 

“역시 주인이로군. 그 전에 이 고양이 귀도 착용한다면...냐아아아앗!”

 

순식간에 검은 고양이의 귀를 낚아채서 잡아 늘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비명과 앞발로 이리저리 휘둘러 할퀴려고 했지만, 이리저리 울리는 레시아의 비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천천히 그리고 터져나올 것만 같은 분노를 짓누르며 소리를 냈다.

 

“무슨 고양이 귀를 착용해요? 절 여기서 얼마나 더 비참한 꼴로 만드시려고? 나중에 돌아오게 된다면 레시아를 교육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주인은 그렇게 안 봤는데 짐을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다니.”

 

“네? 느닷없이 짜증나게 무슨 소리죠?”

 

“짐을 교육한다면 그래도 단 둘만 있을 때 느긋한 밤이 좋...냐아아아앗!”

 

뭘 착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교육이라고 말하는 것은, 과거에 레프리시아를 교육할 때처럼 훈계를 하겠다는 소리다. 지금에 와서 그게 통할지 잘 모르겠지만...

 

“마스터. 냥캣 말고 저를 먼저 교육시켜주시죠. 가급적이면 상냥하게...”

 

-덥썩! 꽈아아아악!

 

“너도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너희들이 생각하는 교육과는 거리가 좀 머니까 조용히 해.”

 

“마스터. 여전히 아이언 클로는 아픕니다. 그러니 좀 풀어주시죠.”

 

세상의 멸망이 눈 앞에 찾아와도 농담을 할 줄은...

 

“그런데 지금 이 모습으로 아리엘에게 붙잡힌다면, 무시무시한 일을 당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오?”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루니아 누나가 입을 열자. 천천히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으로는 역시 지금 당장 롱기누스를 사용해서...

 

“아니. 내가 만든 봉인 장치에 들어가면 어차피 둘 다 의식을 잃게 될 거야. 그 안에서 제 2차 창작물이 나올법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아. 그런데 공간이 협소한 곳에서 여장한 남자와 여자 둘만 있다니. 의외로 부럽네.”

 

“뭐가 부러워요? 저는 재능을 다 포기하는데.”

 

“재능이 아니라 마법만 포기하겠지. 그래도 마나를 끌어 모으는 체질은 변하는 것이 아니니까. 언제라도 마왕에게 부탁하면 다시 마나의 활로를 열 수 있을 거야.”

 

“그 전에 페어링이 끊어지게 되면 레시아와 시나는...”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를 바라보며 걱정하는 것이 있었으니.

 

“걱정 말거라 주인. 짐과 비둘기는...”

 

“올빼미 입니다.”

 

“그거나 그거나 다 똑같지 않는가?”

 

“다릅니다.”

 

이래서 내가 걱정한다는 거야. 내가 없으면 죽어라 싸울 것 같으니까. 지금 하얀 올빼미와 검은 고양이가 서로 파문의 호흡을 하고 있는데, 내가 없으면 이제 누가 말리냔 말이지...

 

“모두 싸우면 안 돼요오. 사이 좋게 지내셔야죠오? 화해의 기념으로 제가 만든 쿠키를...”

 

“아니다! 루니아! 우린 배도 고프지 않고 싸우지도 않았노라!”

“그 기괴한 무지개 빛 음식은 머나먼 시공 속으로 던져버리시길 바랍니다.”

 

당분간은 나 없이도 잘 지낼 것 같지만, 사역마가 아니게 되면 레시아는 다시 마계로 가야하고, 시나의 경우에는 본래의 차원으로 되돌아가거나, 천계에서 머물고 있겠지만...지금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할까?

 

아무래도 저 둘 때문에 느긋함이 옮았는지, 별 쓸 때 없는 생각을 하게 되어버렸는데,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본래의 일에 집중을 하자면, 핑크 빛의 바보 같은 마법소녀 복장으로 여장을 해서, 아리엘의 의식을 차리냐 마느냐 실험을 좀 하다가, 엘티노스가 만든 석상으로 유인해서 같이 들어간다.

 

“누가 보면 무식한 자폭공격을 그대로 실현하는 줄 알겠네요.”

 

“그런 자폭공격을 먼저 생각한 게 너야.”

 

지금쯤이면 카멜롯에 있는 모든 괴수들이 자고 있을까? 슬슬 시간이 되었으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티노스 씨. 행운 좀 빌어줘요. 신이잖아요.”

 

“얼마나 많은 여자에게 둘러 쌓이려고 내가 행운을 빌어주냐? 시끄럽고 빨리 해결이나 하러 가.”

 

엘티노스의 어처구니 없는 대답을 듣고 한숨을 내쉬며, 카멜롯으로 다시 향하고 있을 무렵.

 

“마법학원 쪽으로 이동하는 걸 보니, 결계가 해제 된 건가?”

 

작은 뱁새는 조그마한 몸집으로 내 주변을 계속 날아다니면서, 길을 알려주고는 있었는데 마법학원 방향으로 나를 계속 이끌면서, 정신 사나울 정도로 “삑삑!”이라는 소리만 계속 울려 퍼졌다.

 

“알았어. 지금 가고 있잖아. 대체 뭐가 그리 바쁘길래?”

 

“어서 와. 카일. 어라? 지금은 마법소녀 복장이네? 나를 위한 걸까?”

 

생글생글하게 웃고 있는 켈모리아가 정면에 서서 맞이해주고 있었다. 붉은 색 드레스는 흠집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결계 안에서 잘 지냈으리라 생각했지만, 왜 지금 결계에서 나왔을까?

 

“반 강제로 입혀진 것뿐이지 너를 위한 건 아냐.”

 

“그래? 그래서 지금은 아리엘을 봉인하러 온 건가? 그거 정말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감동의 장면인걸?”

 

지금은 켈모리아를 먼저 처리하지 않으면 다른 계획이 무산이 되는 걸까?

 

“그보다 괜찮을까? 아리엘은 마신이 되어서 그나마 저주가 발동하지 않고 있지만, 마족이 되면 곧바로 저주가 발동할 거야?”

 

“저주라고? 정말 쓸 때 없이 저주를 잘 사용하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저주인데? 아니면 내가 직접 포장까지 뜯어야 확인이 가능하던가?”

 

켈모리아의 저주마법은 어처구니 없게도 너무 강한 건 사실. 아리엘을 봉인시키는 것과 동시에 죽거나 내 목숨을 위협하는 저주를 걸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아리엘을 봉인하기 전에 새벽<Daybreak>으로 정화하고 난 다음인가?

 

엘티노스가 만들어준 석상 안에서도 발동되는 저주라면 귀찮아지니까.

그걸 알고 켈모리아는 지금...

 

“그렇네. 날 죽이기 위해 나타난 거군.”

 

“카일의 새벽은 모든 것을 해제해버리는 무자비한 능력이잖아? 의도적으로 응집된 마나를 해제한다면, 당연히 내가 걸어놓은 저주마법까지 해제하겠지. 하지만 아리엘은 마신에서 되돌아오면 저주가 발동되어야 내가 좀 더 편해지거든?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죽일 수 밖에 없지. 노아스!”

 

“이프리트! 실피드!”

 

땅의 정령왕을 소환하자마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프리트와 실피드를 불렀다.

 

“이프리트. 실피드. 정령왕의 일은 너희들끼리 해결하도록 해. 나는 저 앞에 있는 이상한 쾌락주의자에게 한방 먹이고 와야 하니까.”

 

“한방 먹이고 오다니? 카일 씨도 정말 대담하시...아야야야야!”

 

 

전투 전에 실피드가 쓸 때 없는 농담을 하자마자, 아이언 클로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는데, 되도록이면 진지한 부분에서 농담으로 무마시키려는 행동은 눈치껏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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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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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2 - 5

473

 

 

 

사람의 한마디로 많은 것이 엇갈리기 시작한다면, 지금의 상황도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이유. 그 이유야 말로 나와 아리엘이 같이 봉인 된다는 말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휘두른 검은 고양이가 큰 소리로 내 머리 위에서 외쳤다.

 

“혼자서 들여보내면 되는 것 아닌가? 차라리 시공의 눈을 개안해서 아리엘을 유인한 다음에...”

 

“그걸 시도하려고 했는데, 시공간의 흐름을 볼 수 있어도 그건 신들에게는 무시할 수 있는 분야겠죠. 그 전에 아리엘에게 붙잡히면 모든지 끝날 테니, 제가 아리엘에게 붙잡히는 미끼로 그 안에 들어간다면, 제가 없는 동안 밑에 있는 검은 존재...아마도 세피르가 폭주를 할 것 같으니, 그것만이라도 제대로 막아낸다면 그 다음은 알아서 풀릴 거에요.”

 

확신까지는 아니지만 지금은 겨우 하루를 벌었다고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모든 곳에서 기습적으로 공격이 들어온 몬스터들을 다시 카멜롯에 귀환시켜버렸고, 저곳은 정말로 괴물들의 본거지가 되어버린 이상, 마법학원에 있는 결계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으니까. 지금은 무너지지 않기를 원하고 있지만, 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켈모리아가 고생을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마스터.”

 

하얀 올빼미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내 시선을 옮겼다.

 

“그 봉인하는 곳에 들어가면 마스터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야. 뭐...똑같이 봉인 되는 거지. 아리엘이 각성하기 전으로 돌아가는 모습으로 가니까, 나도 아마 마법을 발현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해. 사역마에 대한 링크도 전부 다 잘려나갈 거고, 시공간 마법까지 열어놨던 저의 마법들은 모조리 봉인 되겠죠. 아니면 두 번 다시 사용하지 못하거나.”

 

이런 충격적인 말을 담담하게 해서 좋지 않은 이유라면, 주변에서 충격을 너무 크게 받는 것일까? 내 입장에서는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준 거지만, 검은 고양이는 나를 바라만 보면서 아무런 말도 못했고, 시나야 말로 충격의 늪에 빠졌다고 볼 정도로 뚫어져라 응시만 할 뿐이었다.

 

“어. 그러니까...그렇게 충격 받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요. 제가 그럴 줄 알고 사역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연이 닿을 수 있게, 이런 반지들을 모조리 선물했다는 그 사실은 잊으면 안 되죠.”

 

“그래도 지금까지의 주인의 재능과 잠재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높았노라! 신의 영역에 가까운 한계까지 인간의 몸으로 제대로 잘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마신 하나를 봉인하기 위해서는 크나큰 위험이 따르잖아요. 세상이 쑥대밭으로 되기 전에 사람 하나로 바꿀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거에요. 게다가 제가 언제 죽는다고 했어요? 지금까지 쌓여있던 마법을 모두 포기하고 평화로운 삶을 되찾는 게 중요하죠.”

 

지금 생각한 것 중에서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소한의 피해를 입으면서, 최고의 효율을 자랑할 수 있는 작전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죽는 것도 아니고 엘티노스의 말처럼 돌아갈 수 있으니까. 이 일이 완전하게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가면 되는 일.

 

이거야 말로 베스트 아닌가?

다른 사람이 보면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겠네.

...물론 100%확률로 감동하지 않겠지만.

 

“주인. 다시 생각해보거라. 짐이라면 주인이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노라. 오히려 지금 아리엘을 살리기 위해 주인이 이렇게 고군분투를 할 이유가 있는가?”

 

“만일 봉인이 풀려서 본연의 아리엘로 되돌아간다면, 켈모리아가 기습을 해도 가볍게 받아 칠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영혼부터 이미 다른 아이라서 봉인에서 막 깨어나도 힘이 없는 저와 달리, 아리엘은 마신이기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올 거에요.”

 

그러면 이제 슬슬 엘티노스 씨에게 연락할 차례인가.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너희들은 아침드라마 찍기 바쁜 거냐? 그보다 남자가 한번 마음을 먹었다는데 그 주변에 있는 여자들은 밀어줘야지.”

 

연락하기도 전에 뒤편에서 심드렁한 소리와 함께, 심판자와 발키리의 호위를 받고 하늘에서 강림하는 상급신...이라기 보단 그냥 아저씨처럼 옷을 입은 엘티노스 씨를 볼 수 있었다. 적어도 천계에서 성녀의 그릇에 담겨 우아하게 강림하는 여신들과는 달리, 정말 자유로운 신이 아닐 수 없었다.

 

“엘티노스 씨.”

 

“어째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상에 내려올 수 있는 것인가?”

 

반가운 나의 어조와는 정 반대로 경계하면서 따지는 듯한 어조로 레시아가 입을 열자. 엘티노스는 머리를 긁으면서 한탄하고 있었다.

 

“그야. 허락 받았으니까.“마신 때문에 난장판 될 것 같으니 제가 잠깐 내려가서 확인 좀 하겠습니다.”라고 창조주님께 간청해서 이곳까지 내려왔다. 꼬마 마왕.”

 

“짐은 꼬마 마왕이 아니니라! 이 대륙에서 가장 잘 나가는...”

 

“시끄러워. 지금의 카일...아니, 지금은 카린으로 말해줘야 하나? 아무튼 카린이 마음이 넓어서 계속 설득하고 있었지, 나 같았으면 때려서라도 말을 듣게 만들었어.”

 

“저기. 엘티노스 씨. 그래도 여자를 때린다는 거는...”

 

“입술로 때렸지.”

 

아. 그렇군. 깊게 파고 들지 말자.

은근슬쩍 내 볼에 자신의 입술을 들이 밀려고 하는 엘티노스 씨의 얼굴을 붙잡고, 연락하기도 전에 나에게 먼저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제가 연락할 때 봉인할 물건만 내려 보내주시면 될 텐데, 지금 이곳에 온 이유는...?”

 

“네가 아리엘과 동귀어진으로 봉인되면 그 밑에 폭주하는 애를 내가 막아야 하니까. 켈모리아인지 뭔지 하는 녀석이 영웅행세를 하기 전에, 내가 직접 막아내야 하지 않겠냐? 게다가 저 밑에는 세피르라는 녀석과 더불어 아르트리옴도 같이 있으니까. 정확하게 보자면 저 검은 존재가 아르트리옴이야.”

 

“그 마신 아르트리옴이요?”

 

“정확하게는 아리엘의 다른 인격. 창조된 마신이라고도 하지만, 실제 모습은 아리엘의 부정적인 인격이 저곳에 다 보였다고 생각하면 돼. 지금은 겉으로 날아다니며 모두를 재우는 아리엘이 통솔하고 있지만, 여기서 문제로 모든 감정을 제어하는 이성이 사라지면, 사람은 어떻게 될까?”

 

“본능에 몸을 맡겨서 미쳐 날뛰겠죠. 아! 그래서 폭주를 하게 되는구나! 그런데 세피르는 왜 저 안에 융합한 거에요?”

 

엘티노스는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안보고도, 모든 이들의 생각을 모조리 읽어내어 단서를 찾는 기묘한 행위를 했고, 명확한 해답을 전수해주는 것이야 말로 방정식에 대입하듯 쉽게 알려주고 이해를 시켜줬다.

 

지금이 전쟁 중인 줄도 모르고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여서 엘티노스에게 질문을 하자. 가여운 얼굴을 하면서 카멜롯을 바라보더니 한마디를 했다.

 

“그야 아리엘이 좋아서 구해주려고 한 거 아니냐. 그러다가 잘못 되어서 부정적인 감정에 먹혀버린 거지. 너도 뇌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굴려서 제대로 된 대답을 알아내려고 고민 좀 해봐라.”

 

엘티노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굵은 손가락이 내 이마를 살짝 밀치면서 한심한 눈으로 쳐다봤다. 확실하게 모든 것을 상황정리를 하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는 엘티노스의 모습을 보자, 그의 전성기 시절에 어떻게 세상의 멸망으로부터 지켜냈는지, 그의 일면을 아주 조금 엿본 것처럼 가슴 한편에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자신감이 솟구쳤다.

 

“어차피 아리엘은 네가 끌고 들어가서 봉인한다는 건 변하지 않지만, 이제부터 그 주변에 대해 제대로 된 명령을 내리도록 하지. 모두 전선에서 전부 물러나게 해. 아니, 차라리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으라고 전해줘. 검은 높새바람도 듣고 있지? 내가 있는 지점에 동상도 떨어뜨리면서 전선에서 이탈하라는 방송과 텔레파시를 부탁해. 아마 내 이름으로 말을 하면 좀 이상하니까. 지금 잡화점의 주인인 카일의 이름을 대면서 모두 철수시켜.”

 

“잠깐만요! 제 이름을 대면서 철수를 시키다니!”

 

“그럼 영희를 시킬까?”

 

“그건 또 무슨 말...아니, 잠깐 그 시답지 않는 개그로 댁이 먼저 죽을래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나의 자신감과 감동을 물어내!

 

“너도 이제 슬슬 카린의 모습에서 되돌아와. 아리엘과 정면에서 대결하려면 거대한 마나를 품는 여성의 몸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날렵하고 빠른 움직임을 할 수 있는 남자의 몸으로 싸워야 할 거야. 어차피 마나라고는 람파시나가 모조리 다 사용하는 바람에, 거덜나버렸으니까 슬슬 그 모습으로 이루어내야 할 목표를 완료했다고 생각해.”

 

시나가 카멜롯 일대의 과거를 안리아스의 수정구로 녹화하면서, 나의 마나를 거의 다 사용했다는 것까지 말하지 않고 다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영웅이라는 이름은 어딜 가서도 적용되는 모양이다.

 

“대신. 남자로 돌아갈 때 이 옷이나 입어라.”

 

“이게 무슨 옷인데요?”

 

“그야 당연히 마법소녀의 옷이지.”

 

“남자가 여성용 옷을 입고 뭐하라고!!!”

 

엘티노스는 능글맞게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에게 다가가더니, 조용한 말로 속삭이고 있었는데, 나의 강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청력으로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아낼 수 없었다.

 

“그렇군. 일리가 있는 말이로다.”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면 되겠군요.”

 

음흉하게 웃는 듯한 고양이의 얼굴. 그리고 뭔가 납득을 해버린 듯한 시나의 대답에 불길함을 한 가득 껴안고 있었다.

 

“주인. 남자의 모습으로 입기 싫으면 지금의 모습으로 입어도 상관이 없다.”

 

“어째서 제가 그 옷을 입는다는 전재로 되는 건데요?”

 

“다만, 마스터가 여성의 모습으로 봉인이 된다면, 봉인이 풀렸을 때는 남은 일생을 그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이걸 지금 당장 마스터에게 입힐 것이며, 남자로 입을 것이지 여자로 입을 것인지 결정해주시길 바랍니다.”

 

이건 또 무슨 협박이야?

지금 전쟁하고 있는 중 맞지?

그런데 나는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 여장을 할지, 여성으로 살지에 대한 선택지를 해야 하냐고? 도대체 어떤 사람이 싸우기 전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먼저 걱정해야 하냐고!

 

...나밖에 없나?

 

“왜 이게 이렇게 된 거에요?”

 

정확한 이유는 엘티노스가 잘 알고 있을 테니, 혹시라도 이게 다른 작전의 개요라고 생각되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어보았다. 그러면 내가 어느 정도 납득을 하고 사약 먹는 기분으로 여장이라도 할 수 있을지. 아니면, “이것은 모두 작전이니까.”라는 마음으로 합리화를 하면서 나를 자살 직전으로 내몰지 않기 위해서...

 

“전쟁 중에 찍는 카일의 여장이라고 한다면, 백장미에서도 베스트니까. 백장미의 모토는 언제나‘자연스러움에서 묻어 나오는 리얼리티.’라고 하잖아? 그래서 어떤 녀석이 계속 도촬을 하는 거고.”

 

“그 빌어먹을 잡지 하나 때문에 나를 망칠 셈이야! 그리고 누구야! 도촬하는 녀석!”

 

“자자. 시끄럽고 여자로 살기 싫다면 여장을 하면 되잖아. 빨리 옷이나 갈아입고 나를 찾아오도록 해. 당연히 사역마와 더불어 지금 저 위에서 떨어지고 있는 레드 드래곤과 여기사도 포함하고.”

 

저 위에서 떨어지고 있는 레드 드래곤과 여기사?”

 

“신라아아아앙!”

“카리이이이인!”

 

“망할!”

 

이미 속도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떨어지고 있는 여자 둘을 받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빨리 명계로 가는 방법 중 하나일 터. 나는 몇 번이나 이런 불행을 맞이해야 하는 걸까? 다음에는 어디서? 언제?

 

“나에게 다가오지 말란 말이야!!!”

 

 

정말적인 외침을 무시하고 어마어마한 충격이 내 온몸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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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사 엘티노스가 등장했다.

효과는 미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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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2 - 4

472

 

 

 

작전상 후퇴라는 단어가 내 입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상대해야 하는 적이 미지의 생물인 뱁새인간이었으니까. 지금은 3명도 제대로 제압할 수 없는 가운데에 내가 돌아가보니, 거대한 T-렉스가 검은색 그림자에 뒤집어 씌워진 체 난동을 부렸다. 여기에는 분명 공룡이 멸종한 걸 뛰어 넘어서 보이지도 않는 생물인데, 한쪽 전선은 거의 쥬라기인지 백악기인지처럼 되어버렸고, 다른 한 곳은 몬스터들이 모두 그림자에 잠식이 되어 붉은 눈만 살벌하게 띄고 있었다.

 

마왕군의 30만과 바퀴벌레보다 많은 용사들이 합쳐져서 그 군세를 막아내고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처치를 해도 그림자 속에서 다시 튀어나온다는 소리였다. 이렇게 장기전으로 가면 불리한데, 밤이라도 되는 순간 끔찍한 악몽을 맛볼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전선에는 시나가 필요할 지경이고, 검은 존재는 전선을 넘어 계속 세계 각국으로 뻗어나가고 있었으니...

 

“그렇다고 사람의 그림자를 지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대로 가면 하루도 못 버틸 거야. 생각보다 가장 극단적인 해결방법이 필요할지도 몰라.”

 

말하자마자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서 바라보니, 시나의 올빼미 눈이 무언의 압박을 담으며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말만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내가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는 말은 안 했잖아.”

 

“아뇨. 마스터라면 결국 저희들과의 약속을 어기고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마리아와 릴리스를 찾아가는 거겠죠.”

 

“마리아와 릴리스를 찾는다는 건 또 어떻게 안 거야?”

 

“아리엘의 의식세계로 가서 침식되지 않게 하려는 속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스터의 극단적인 상황이라면, 지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다른 이들을 재워서 검은 존재의 먹이를 제공하고 있는 행동부터 막으실 거니까요.”

 

시나마저 생각하고 있는 방법이라면 소용없겠구나. 잘못되면 개죽음을 당할 수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켈모리아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상황에서 아리엘을 봉인하지 못했다는 소리라면, 어디선가 기회를 엿보고 있거나 자신마저 당했다는 소리일 텐데. 시나가 안리아스의 수정구로 과거를 녹화했으니, 저곳이 싸우던 말던 잠깐 동안 휴식을 취하도록 하자.

 

“어이. 주인. 지금 전투하고 있는데 그걸 보고 있는 여유가 있는가?”

 

레시아가 붉은 말 위에서 검은 고양이의 모습으로 지휘를 하고 있었다. 정말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뭐라 하려다가, 상황이 급박하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대신 가슴을 태워가는 어처구니 없는 기분은 한숨으로 승화하겠지.

 

“명확하게 알아야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붉은 말은 어디서 구한 거에요? 만약 그게 여포가 그토록 찾고 있던 적토마라면 정말 가만 안 둬요?”

 

“묵시록의 기사 중 전쟁<War>에게 빌린 거다. 안심하거라.”

 

“전쟁의 기사? 그 4명의 기사요?”

 

7개의 죄악과 묵시록의 기사. 그리고 때에 따라 칭하는 번외적인 직위가 1개이니까, 12마계공작이 전부 참여한 건가? 자세히 보면 적토마가 아니라 피로 칠한듯한 가죽과, 탄탄한 근육 위에 판금으로 된 갑옷을 입혀준 상태. 눈에서는 살의가 가득 차고 이 말은 왠지 사람을 뜯어 먹을 것 같은 공포심을 유발했다.

 

“어...그렇군요. 뭐 어쨌든 지금은 레시아도 같이 이걸 보도록 하죠.”

 

마법학원 안에는 찍히지 않았으니 그 주변에 있는 환경은, 아무런 일 없이 잘 지내고 있는 모습. 그 이후에는 아리엘이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검은 날개가 펼쳐지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아리엘이 각성하기 전에는 마법학교 쪽에 결계가 펼쳐지지 않는 것을 보아, 지금은 켈모리아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상황.

 

“지금 의식을 잃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올빼미가...아니, 비둘기가 말한 것처럼.”

 

“잠깐만요. 냥캣. 제대로 부르다가 일부러 틀리게 부르는 이유는 뭡니까?”

 

방금 전에 제대로 시나의 모습에 대해 맞췄지만, 정정을 하면서 다시 비둘기로 말한 레시아는 시나의 항의를 무시하고 질문에 답했다.

 

“검은 존재 밖으로 벗어났을 때는 침식이 진행되지 않고, 오히려 회복하고 있었으니 마법 기동반에 있는 자들은 모두 안전하다. 하지만 퍼지는 속도를 보아하니 이곳 전체를 뒤엎는 것은 앞으로 하루 정도 남은 것 갔노라.”

 

“그래도 켈모리아가 펼친 그 결계 안에는 검은 존재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고 있어요. 그러니 켈모리아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고 보면 되죠. 어쩌면 애석하게도 켈모리아를 살려놔야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거나. 생각을 해보니 그녀는 엘티노스를 뛰어넘는 영웅이 되고 싶어했으니, 지금 이 상황에서도 영웅놀이를 할지도 모르겠네요.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고 싶어 할 테니, 세피르로 추정되는 검은 존재가 이 세계를 모두 뒤엎는다면 해결하러 나설지도?”

 

“하지만 이 검은 존재에서 태어난 괴물들은?”

 

“그건 아리엘이 생각으로 창조해낸 괴물들이겠죠. 정확히는 생각 속에 있어야 했던 괴물들이 다른 차원에서 뽑혀 나왔지만, 이 세계로 강제소환 된 터라 형체가 아직까지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걸 거에요. 마침 저기에 몽골리안 데스웜처럼 보이는 거대한 지렁이가 땅 밑에서도 나오고 있으나,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서 전부 검은 그림자로 덥혀있는 상태에요.”

 

검은 고양이가 저 멀리 둘러보고는 다시 한번 이야기를 했다.

 

“그럼 저들은 아직까지 짐이 통솔할 수 있다는 소리로군?”

 

“네?”

 

아. 마왕은 마물들의 왕이라서?

 

“냐아아아아아아앙!”

 

고양이 목소리에서 울려 퍼지는 충격파를 0.2초간 듣고 곧바로 귀를 막기 위해 손이 올라갔다. 어처구니 없게도 지금은 마신이 있어도 검은 존재 안에서만 통제가 가능한지, 살아 움직이는 그림자의 경우에는 모두 카멜롯으로 사라지듯 되돌아가고 있었다.

 

“역시나 짐의 예상대로다. 이 세계에 넘어오면서 모든 몬스터들의 통솔은 짐이 붙잡고 있으니 말이지. 하지만 카멜롯으로 가면 짐보다는 더 위에 있는 존재가 통제권을 붙잡는 모양이다.”

 

“그럼 레시아는 저 안에 들어가면 마신의 부하로 들어가게 되는 건가요?”

 

“짐과 주인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데, 저런 마신의 밑에 들어갈 것 같은가? 이미 짐은 주인의 남편이자...”

 

“아내겠죠...”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나와 이미 사역마로 계약 되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마신이 레시아를 통솔할 수 없고 나만 할 수 있다는 거니까. 페어링이 이어져있는 동안에는 마신과 더불어 레시아까지 난동을 부리지 않는다는 소리.

 

계속해서 안리아스 수정구를 보고 있는 동안, 다른 지역에서 거대한 흙먼지와 함께 검은 괴수들이 모조리 카멜롯으로 향했고, 안리아스 수정구를 해독한 결과는 전혀 좋지 않았다.

 

“결국 마법학원 안으로 들어가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 거 같네요. 아리엘이 카멜롯으로 돌아오고 있는 모든 괴수를 재우길 바라면서, 마리아와 릴리스에게 꿈의 미로로 사람들을 전부 집어넣으라고 해주세요.”

 

“하지만 그곳은 서큐버스들이 사람들의 의식을 납치하는 곳이 아닌가?”

 

“생명체들이 잠에 빠져들면 검은 존재는 그 생명체의 몸을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갉아먹는 거라고 보고 있으니까요.”

 

“증거는?”

 

“제가 멀쩡하게 깨어있었을 때는 침식을 안 당했잖아요.”

 

결국 몸이 검은 색으로 물들이는 그 작업은, 사람들의 의식이라고 해야 할지, 영혼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영적인 에너지가 약해지면서 침식한다.

 

“주인의 안일한 생각 때문에 상상하지도 못하는 변수에 당하는 경우도 있지 않는가?”

 

“그럼 그때 생각하는 걸로 하죠. 살아있는 한 언제든지 변수는 만들어지니까.”

 

“그 변수에 죽으면 어찌할 것인가? 주인은 아직 짐의 의뢰를 받아야 하지 않는가! 같이 짐의 선생님을 찾기로 한 그 일 말이다.”

 

“그 사람 할아버지 되어있어서 죽어있을 지도 모르는데, 굳이 찾을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그야 당연하지 않는가. 짐과 주인의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단 말이다.”

 

과거에서 내가 레프리시아에게 너무 강한 이미지를 보여준 부작용이, 현재에 이르러서 나타나게 된 것일까?

 

-구그그그그그...

 

“레시아. 묘한 울림이 하늘에서 들리지 않아요? 마치 대기가 울고 있는 소리인데?”

 

“주인이 카린으로 변하니 그런 쓸 때 없는 소녀감성적인 말이 나오는 건가?”

 

“제가 말하는 게 다 쓸 때 없다고 하기 전에 좀 들어보기나 하세요.”

 

설마 레시아의 목소리가 저 우주 밖에 나가는 경우는 없겠...

 

“주인? 저 하늘에 있는 커다란 눈은 무엇인가?”

 

“아. 잊고 있었는데 아마 달에서 대치하고 있었던 괴수인가 보네요. 이제 저게 추락이라도 하게 된다면, 어디서 많이 보았을 법한 멸망시나리오를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 그대로 운석이 이곳으로 충돌하는 기괴한 장면임과 동시에, 마신이고 뭐고 초고속으로 모든 생명체가 종말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진귀한 장면 말이지.

 

“저거라면 루나가 알아서 해줄 것이니라.”

 

“알아서 해준다고요? 저 운석처럼 떨어지는 괴수를 무슨 수로 격퇴할 생각이에요? 하늘에서 빛 줄기라도 내리지 않는 한 저건...”

 

-콰아아아아아앙!

 

오늘 정말이지 바보 같은 소리를 한 가득했음에도 불구하고, 괴수의 중앙을 뚫고 갈갈이 찢어버리는 광선 하나가 지상으로 내리 찍히자 마자, 거대한 폭발과 함께 카멜롯의 일부 땅덩어리를 등분시켜버리는 파괴력을 보여줬다. 완전히 땅이 녹아 내리면서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는 붉은 땅을 보며, 저 하늘 위를 바라보았지만 저 멀리서는 루나가 미소를 짓고 있을 거란 모습에 소름 끼치기 시작했다.

 

달 토끼의 기술력은 대체 어디까지일지.

 

“하늘에서 광선이 내려온 것을 어떻게 알아낸 겁니까? 마스터.”

 

“헛소리였는데 그게 진짜로 되어버린 거야. 생각만 하면 이루어지는 그런 편리한 것이 아니니 그렇게 우러러보면 안 돼.”

 

하얀 올빼미가 내 왼쪽 어깨에서 점점 얼굴을 들이밀며 부담감을 주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올빼미의 이마를 살짝 두드려서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그 거대한 괴물이 깨져나간 후유증으로 작은 별똥별이 되어 사방에 흩어지고 말았으니, 나중에 저 조각을 모아서 구슬로 완전히 완성시키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 당사자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 내리 찍어버려야지.

 

아니! 바보 같은 일은 이제 그만 생각해!

현실이 되면 어떻게 하려는 거냐! 카일!...지금은 카린을 외쳤어야 했던가?

 

“그래도 한시름을 놨으니 다행인가...가장 커다란 적을 격퇴했으니까요.”

 

“격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일시적인 조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그림자 괴수들은 어디선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나타나니, 짐이 가장 골치 아픈 이유 중에 하나이니라. 그러니 엘티노스가 말한 그 아이언 메이든인지 동상인지 하는 것을 직접 받아온 뒤에, 아리엘을 가둬놓는 것이 현명한 방법인데...주인은 설마 그것에 대한 작전을 안 세웠다고 하지는 않겠지?”

 

의심의 눈초리로 붉은 눈을 지닌 고양이가 쏘아봤지만, 거기에 위축되지 않고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당연히 다 세웠죠. 제가 미끼가 되어서 아리엘과 같이 그 동상에 들어가면 될 겁니다. 다만, 제가 없을 때 폭주해버리는 검은 존재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달렸죠.”

 

 

그 태연한 말 한마디에 레시아와 시나의 눈초리가 더더욱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시나의 작은 목소리로는 “결국...마스터는 무리를 하는 제안을 생각하신 건가...”라며 한탄해 하고, 검은 고양이는 말 없이 나에게 어퍼컷을 휘두르기 위해, 마기를 오른손 고양이 앞발에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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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그라운드 하느라 늦었어요.

...데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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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소설

사랑

“일종의 편린이지, 인생 자체가. 무엇 하나 완성된 게 없이.”

 

2년 만에 만난 그녀는 눈에 띄게 수척해 있었다. 몇 년의 시간이 얼굴에 사정없이 폭격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것 같았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언니, 동생으로, 같은 과 동기로서 친하게 지내다가, 대학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서로를 잊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연락이 온 그녀는 퇴근 시간에 맞춰 내가 다니는 회사 앞으로 나오겠다고 했다. 회사를 나서다가, 하마터면 그녀를 못 알아볼 뻔 했다. 수척해진 모습에, 그녀답지 않은 회색 빛 촌스러운 의상까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녀는 항상 밝고 자신감에 넘치고 아름다워, ‘태양의 여자’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연신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자니, 나까지도 불안해졌다. 대체 그녀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야. 내 인생은 아이러니야.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 너도 들으면 웃을 거야.”

 

그녀는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더니, 맥주 한잔을 거침없이 들이켰다. 언니가 이렇게 술을 잘 마셨나. 전화 벨소리가 울리는 데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다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우리 출판사에 삽화를 그리기로 새로 계약한 사람이 있어서 환영의 의미로 팀 사람들과 조촐하게 회식을 했어. 미대생이라 그런지, 얼굴도 말끔하게 생긴 게 진짜 예쁘장하더라고. 근데 그 꼬마가 무슨 얘기를 하다가 로르까 시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로르까를 말이야. …아, 잠깐만.”

 

그녀는 계속되는 벨소리에 핸드폰을 집어 들어, 대충 ‘알았어, 신경 쓰지 마’등 무미건조한 말투로 몇 마디를 하더니,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안, 짜증나는 전화가 계속 오네. 암튼, 아니 글쎄, 그 꼬마가 로르까 시를 읽고 그림 그린 것도 있다는 거야. 그러다가 어느 새 다들 집에 갔는지 우리 둘만 남게 됐어. 그래서 술도 취했겠다, ‘로르까풍 회화 작품’을 보여 달라고 했지. 그렇게 그날 그 애네 집에 가서 자게 됐어. 작품이 어땠는지는 기억도 안 나. 근데 아침에 일어났는데 뭔가 이상한 거야. 한번 와본 곳 같은 거야. 문에 달린 장식이며, 천장 등이며…, 언젠가 본 것 같은. 그래서 꼬마한테 장난스레 물어봤지. 꿈속에서 한번 와본 것 같다고. 그랬더니, 그 애 표정이 약간 이상해지는 거야. 그러더니, ‘저 기억 안 나요?’ 이러는 거 있지. 그제야 그 애를 만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게 생각이 났어. 웃기지 않냐?”

 

그녀가 말하고 있는 사이에 채워 놓은 맥주잔을 그녀는 다시 단숨에 들이켰다. 별로 웃기진 않았다. 대학 다닐 때도 워낙 인기가 좋았던 그녀는 많은 남자와 교제했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교제했던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과 잠자리를 했던 것 같다. 그런 그녀가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혐오스러웠고, 아름다운 그녀가 자신의 진가를 모르는 것 같기도 해서 일정부분은 통쾌했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같이 잤던 남자들 이마에 표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잤던 사람과 안 잤던 사람을 구별하고 그게 몇 번을 잤는지도 알 수 있게끔 하는 거야. 아니다, 차라리 남자들 가슴에 내 이름을 문신해놨으면 좋겠다. 그럼 그 사람의 셔츠 속 가슴을 들여다보며, ‘아, 네가 잃어버린 과거의 나를 아는 구나’하는 거지.”

 

그 순간 내 핸드폰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손으로 집으며 그녀를 얼핏 보자, 받으면 서운해 할 것 같았다. 나는 벨소리가 안 나게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다시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나에게 사랑은 제로 칼로리 콜라와 같은 거야. 강렬한 느낌에 끌려 마시고 또 마시지만, 그건 나에게 절대 아무것도 채워주지 않아. 제로 칼로리인 걸 알고, 그렇기 때문에 마시려고 했던 건데, 나는 그게 기적처럼 날 풍성하게 채워줄 듯 계속 마셔. 그렇게 배는 부르고 점점 목은 따가워지는데, 나는 콜라를 마시기 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아. 이 콜라만 마시면 될 것 같았는데. 그런 느낌 이해하겠니? 끊임없이 갈망하는데, 절대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는. 말하자면, 제로 칼로리의 비애지, 내 사랑은. 잉여쾌락일 수도 있고, 잉여가치, 잉여환상…….”

 

자기 연민에 가득 찬 그녀의 연애 이야기가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시켜놓은 풍성한 안주는 우리 둘 다 별로 손을 대지 않은 관계로 풍성한 그대로였다. 그렇게 속을 채우고 싶다면, 안주라도 먹지.

 

우리가 있는 호프집에선 금방이라도 천장에서 바퀴벌레가 스스로 자신의 몸을 날려도 전혀 놀라지 않을 만큼 허름하고 어두운 데다가 습기가 가득 차 있는 불쾌한 환경이었다. 회사 앞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 아니, 지구상에 이런 곳이 존재하는 지도 몰랐다. 나는 안주에도, 그렇다고 술에도 손이 안 가고 그나마 물만 괜찮게 여겨, 물만 마셨다. 그녀는 열심히 말하면서도 틈틈이 술을 들이켰다. 그녀 혼자 술잔을 비워댔고, 술을 잘 하진 못하는지 눈에 띄게 취해가고 있었다. 난 그저 그녀의 얘기를 대강 듣고 술잔이 비지 않게끔 채워주면서, 부재중으로 택배기사가 앞집에 대신 맡겨놓았을 카메라를 빨리 찾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생리할 때가 됐는데, 계속 안 하더라고. 임신했구나 하고, 누가 애 아빠일까 생각해봤는데, 딱히 적당한 사람이 없더라고. 그래도 별로 상관없었어. 왠지 내가 무언가 해냈다는 느낌, 내 안이 따뜻하게 가득 채워졌다는 느낌이 드는 거야. 신성한 느낌마저 들더라고. 그래서 일부러 병원을 가지 않고 한 달을 더 넘기고 또 한 달을 넘기고……, 그렇게 반년을 넘겼어. 병원에 가면 현실을 직시하고 수술을 감행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배가 별로 불러오질 않는 거야. 한참을 고민하다가 산부인과를 갔지. …아씨, 이거 진짜 시끄럽게 하네!”

 

그녀는 벨소리 나는 핸드폰을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팽개쳤다. 오늘 처음 만났을 때 불안하게 떨리던 그녀의 눈동자는 이제 술에 취해 초점을 잃어가고 있었다.

 

“근데 말이야, 병원에서 뭐라는 줄 알아? 내가……, 글쎄, 폐경이라는 거야. 스물아홉 밖에 안 됐는데.”

 

그녀는 애초에 울음을 참을 생각도 없었는지, 그때부터 격렬하게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아들, 딸 다 낳고 기른 오십 살 중년부인도 아니고 스물아홉에 무슨 폐경이냐고 물었더니, 의사는 담담하게 ‘요즘 뉴스에도 간혹 나오고 하는데, 환경 호르몬 영향 때문, 어쩌고’하는 거야. 약으로 치유가 될 확률이 50%이상인데, 문제는 내가 너무 늦게 왔다는 거야. 잘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약을 먹어보자고 하더라.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칼슘제도 먹자고 하더라고. 혹시 올지 모를 골다공증 때문에. 이게 말이나 되니? 진이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게 많아서 이렇게 벌을 받은 걸까?”

 

그녀는 마치 상처 받은 들짐승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다소 충격적이고 그녀가 받았을 고통이 상당했을 것으로 보이나, 내가 뭘 어떻게 해줘야하는지 모르겠다. 그녀의 표현대로 정말 벌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에겐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아 생경하게만 느껴졌다.

 

“헛것을 가졌던 거지, 나를 갉아먹은. 누군가와 살을 부빈 시간이 많을수록 나는 점점 없어지고, 마침내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숨 사이사이 먼지가 되어버린거야.”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저 그녀의 다분히 문학적인 발언에 감탄하고 있었다.

 

“정말, 이제는, 내가, 사라져, 버린 거야.”

 

 

 

아마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나는 얼마간 멍하니 그녀가 있었던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던히 놀랐지만, 나는 오래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 술값을 계산하고 나왔다. 어떻게 그 곳을 빠져나와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히 기억나는 건, 다음 날 아침, 전날의 일이 몇 년의 일처럼 낯설게 느껴졌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고 그녀에게서도 그 후로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퇴근 후에 호프집을 다시 찾아보려고 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시간이 1년 정도 흐른 뒤였다. 학교 후배에게서 들은 얘기로는, 그녀가 독일로 가서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마 다시는 한국에 오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후배는 그 독일인이 호모 같은데다가, 그녀 또한 예전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이 살이 많이 찌고 여러모로 굉장히 상했다고 했다. 대학 때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그녀를 알아볼 수 없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제야 궁금해졌다. 그때 그녀는 어디로 사라졌던 걸까? 그럼, 나는 예전 모습이 남았던 그녀를 본 마지막 증인인 걸까? 대체 나는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 듣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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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소설

철봉을 해야 해

 

며칠 전부터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들렀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목도 일자형으로 변형되었고 허리도 요추가 약간 디스크라고, 의사가 말했다. 오래 한 자리에 앉아있는 사무직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그런 거라고 했다. 어깨 활짝 피고, 허리 곧추 세우고, 다리 꼬지 말고 바르게 앉으면, 괜찮을 거라 했다. 나는 의사에게 몸의 오른편이 특히나 아프다고 했다. 목부터 허리, 심할 땐 발목까지. 의사는 내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어깨를 펴고 두 팔을 내리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의사는 내 오른 팔을 들어 살펴보더니, 이게 다 편 거냐고 물었다. 그제야 내 오른 팔이 굽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알고는 있었는데 그러려니 했다. 팔을 활짝 펴야 되는 일이라는 걸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불편하진 않았다. 아니, 불편했던 적이 한번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체육시간에 배구로 시험을 볼 때였다. 토스를 할 때 팔이 펴지지 않아 엉뚱한 방향으로 자꾸 공이 날아갔다. 연습해도 잘 되지 않아 성적도 B를 받았던 것 같다. 그때 말고는 별로 생각나는 게 없다. 옷 살 때 내 팔이 유독 짧은 것 같이 느껴질 때가 간혹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체구가 작아 팔도 그런가보다 했다.

 

의사는 도수치료와 운동을 권했다. 엑스레이를 봐도 뼈에는 이상이 없었고, 팔이 안 펴지는 건 어릴 적 자기도 모르게 다친 이후에 팔을 안쪽으로 굽히다보니 힘줄이 짧아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목과 어깨로 이어지는 근육에 긴장을 더하고 몸의 균형이 깨졌을 가능성이 있었다.

 

도수 치료 내내 나는 고통스러웠고 평소에 아파야 했던 걸 짧은 시간에 몰아서 아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치료가 통증의 집합인가, 여길 정도로 시원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치료사는 도수 치료 후 나에게 적합한 운동으로 아령을 좌우 교대로 한쪽씩 들면서 곧게 걸으라 했다. 왼손으로 아령을 들 때는 아픈 줄 몰랐는데, 오른 손으로 아령을 들고 걸을 때는 팔꿈치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내 팔 안에 탄력성 없는 고무줄 하나가 힘겹게 늘어나는 것 같았다. 치료사는 내 오른 팔이 치료 이후에도 완벽하게 펴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신 허리 근육을 단련시키면 굽어진 팔로 인해 몸의 균형이 깨지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물론 오른 팔에 대한 스트레칭도 적절히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팔이 펴지지 않는다니. 어제까지만 해도 전혀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오른 팔이, 치료사의 말을 들은 뒤로 불편하게 느껴지면서 슬프기도 했다. 어제와 같은 팔인데, 절망스럽기까지 했다. 마치 ‘당신은 언젠가는 죽습니다’라는 당연한 말을 들었는데, 문득 내가 죽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닫고 슬픈 것처럼. 이제 오른 팔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되었다. 영생을 꿈 꿨던 진시황처럼 오른 팔, 너를 펴보리라.

 

어떻게 하면 팔을 펼 수 있을까. 우선 치료사가 알려준 아령을 들고 걷는 연습을 했다. 남동생 아령 3kg를 집 안에서 좌우 교대로 들고 걸어 다녔다. 한 10분쯤 했을까, 아랫집 아줌마가 엄마 핸드폰으로 쿵쾅거린다고 무슨 일 있냐고 문자를 보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집 근처 놀이터의 철봉이었다. 철봉에 매달린다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일은 없을 테니깐. 그렇게 나는 철봉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다음 날 낮에 방문한 놀이터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몇몇이 뛰어다녔다. 내가 놀이터로 진입하자 아이들 보호자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날 흘끔 쳐다봤다. 내가 여자라 그런지 한번 쳐다봤을 뿐 별 반응은 없었다. 나는 곧장 철봉 쪽으로 갔다. 내 키에 적정한 철봉 바에 매달렸다. 매달리자마자 팔이 끊어질 것 같았다. 그렇게 3초, 5초 정도 짧게나마 철봉에 매달리기를 10회 했다. 매달릴 때마다 오른 팔꿈치의 힘줄 하나가 늘어나면서 팔 전체에 날카로운 통증을 남겼다. 10회를 하고 쉬고 있는데, 양쪽 손바닥도 아려왔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하다가 한번만 더 해보기로 했다. 철봉에 매달리자마자 손바닥이 아려서 도로 내려왔다. 팔에 근력이 없다보니 벌써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죽지 마!”

 

갑자기 등 뒤로 누가 소리치는 게 들려,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서 어떤 검은 옷을 입은 아저씨 한 사람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나한테 얘기한 건가? 그리고 아이들하고 아줌마들은 언제 사라진 거지? 아저씨는 다시 한 번 소리쳤다.

 

“학생, 죽지 마!”

 

나한테 하는 말이 맞았다. 내가 죽으려는 것처럼 보였나? 아저씨가 술을 마셨나? 뭔진 모르겠지만, 저 아저씨 이상해! 나는  아저씨가 쫓아올까봐 미친 듯이 뛰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을 열기 직전 뒤를 돌아봤지만 아저씨는 전혀 쫓아오지 않았다. 엄마는 나의 극적인 등장에 놀라, 무슨 일이 있냐고 했다.

 

“아니, 어떤 아저씨가, 나는 죽으려는 게 아닌데, 죽지 말라고, 막 소리를 지르더라고.”

 

거친 숨을 그대로 내뱉으며 대답했다. 엄마는 뭔 말이냐고 다시 한 번 말해보라고 했다. 그 순간 나는 내 팔이 나도 모르게 구부러져서는 안 펴지는 게, 내가 죽으려는 생각이 없는데 죽으려는 절망적인 사람으로 보였다는 게 서글퍼졌다.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어.”

 

누군가 나를 꿇어앉히기라도 하듯 엄청난 무게에 눌려, 대문 앞에 그대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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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소설

아직은,

그녀에게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남자는 잠든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창백한 새벽빛이 여자의 얼굴을 더욱 하얗게 만들어, 기력이 쇠한 환자처럼 보였다. 입가에 생긴 주름은 언제부터였을까.

지난 밤 저녁 식사를 하고, 매번 그러던 대로, 자주 들르던 모텔을 찾았다. 방에 들어오고 얼마 안 있어 침대 맡에 앉은 여자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남자의 움직임을 쫓으며 노려보았다.

“나를 무시하는 거니?”

등 뒤에서 들리는 여자의 말에 남자는 뒤를 돌아봤다.

“뭐라고?”

“아니, 어떻게 내가 경쟁 PT에서 떨어졌다는데, 위로 한 마디 안 해줄 수가 있어? 내가 그 PT 때문에 한 달을 꼬박 고생한 걸 잘 알면서.”

남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뭘 놓친 거지? 식사하면서 경쟁 PT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도 함께 안타까워한 것 같은데. 뭘 더 했어야 했나?

“미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마음과는 다르게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여자가 화가 나서 내뱉는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여자의 이야기 속 다양한 화제가 다 남자와 상관있는 것 같진 않았다. 한참동안 말을 하던 여자는 그 사이에 스스로 화가 누그러져, 평소의 나긋한 어조로 “당신이 나를 존중했으면 해.”라고 했다. 남자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여자를 걱정하는 마음은 저녁 식사를 할 때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자는 남자의 목을 끌어안았다. 연인들의 익숙한 행동 패턴. 우리는 이렇게 별 거 아닌 일로 날 세우고 화해하고 잠드는 건가. 언제부터? 개별성을 가졌던 우리가 언제부터 이름이 필요 없는 흔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게 된 것일까.

오년 전 처음 만난 여자는 생명력 그 자체였다. 살아갈 날을 많이 가진 사람이 온 몸으로 여과 없이 품어내는 싱그러운 생기, 남자는 여자의 생기에 끌렸다. 자신의 기억으로 오년 전의 남자 또한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때 여자는 남자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남자는 그게 자신의 매력을 한층 높이는 것 같이 들리곤 했다. 남자가 여자에게 알려줄 것들이 더 많았고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사랑 받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여자는 남자를 선생님으로 부르지 않았고, 사랑 받기보다는 존중 받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와 결혼했다면 어땠을까. 그녀는 좋은 아내가 되었을 테지만, 아이를 원치 않는 나와 결국 헤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어둡고 나약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실망했을 수도, 지금도 이렇게 나에게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는 것처럼.

그녀의 생기에 반했던 나는? 그녀 가까이에서, 지금보다 더 강렬하게 그녀의 생기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겠지. 지난 날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어디 있는 걸까, 한숨을 내쉬면서. 지금 우리는? 이제 한계에 다다른 거 아닐까?

먼 데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사이렌 소리가 서서히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다시 멀어진다. 여자가 뒤척이다가 남자에게 다가와 남자를 품에 안는다. 여자의 체온이 남자에게 전해져온다. 햇빛이 좀 더 밝아져 여자를 환하게 비춘다. 그래,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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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2 - 3

471

 

 

 

잠을 자면 죽는다는 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니지만, 몽마라는 존재가 이곳에 위치하면서 잠을 자다가 죽는 경우는 있긴 했다. 그래도 자다가 죽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생을 거의 마감하기 직전의 노인이라던가, 병으로 죽기 직전에 데려가는 사신대행이긴 하나...지금 이 경우에는 존재 자체를 물들이는 것이기에, 내 앞에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우기 위해서 흔들고 때리고 던져봐도, 그냥 죽은 사람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완전 골아 떨어졌네. 카멜롯이라는 땅 그 자체가 자면 존재가 뒤틀려버리는 공간으로 변했다면...”

 

시공의 눈을 개안하며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검은 액체 같은 것이 땅 밑바닥을 흐르고, 자고 있는 사람들을 뒤덮는 거대한 존재가 확인되었다. 저 밑바닥에 있는 녀석을 롱기누스로 찌를 수 없으니, 지금은 아리엘을 막는 게 시급할 지경.

 

“저게 아리엘의 사역마라면 제발 다른 걸로 바꿔달라고 부탁해야겠네...”

 

긴장감이 혼잣말을 만들고 조용하게 집안으로 퍼져나가며 어느 정도 진정을 할 수 있었다. 언제나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싸우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은 강제로라도 진정을 시켜야 앞으로 나올 깜짝 놀라는 일이 없으니까.

 

창문의 커튼을 살짝 들추면서 내 눈동자는 풍경을 이리저리 휩쓸고 지나갔다. 적어도 내 정면에 아리엘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슬그머니 문을 열고 천천히 밖으로 나아갔...

 

“어디에 있을까~”

 

다면 100%의 확률로 걸릴 뻔했다. 어쩌다가 이런 곳에 갇혀버렸고, 어차피 마신으로 각성한 아리엘에게 바리게이트를 쌓아봤자 별 의미는 없을 것 같고, 다행이 2층 집이라는 점을 이용해, 2층으로 올라가 정확하게 거리를 재고 아리엘의 위치를 보도록 하자.

 

주변의 창문으로 둘러보니 아까 그 거대한 괴수는 다시 누워서 자고 있고, 시나는 날아다니면서 이곳에 있었던 과거의 기록을 훑어보고 있는 중이다. 하얀 뱀은 이미 어디로 도망갔는지 모르겠지만, 안전하게 도망갔으리라고 판단을 하고 나서 2층에 있는 쇼파에 앉았다.

 

“부드러운 죽음<Soft Death>인가...그래도 이 모든 사람들은 무슨 죄인지...”

 

밑에 있는 검은 존재는 카멜롯에 있는 생물들을 침식할수록 점점 규모가 커지는 것 같은데, 만약에 이 일이 계속 지속이 된다면 모든 대륙을 집어 삼키게 된다면, 자다가 침식당하고 다른 존재로 뒤틀려버리는 경우가 된다.

 

[시나. 얼마나 더 있어야 완료가 되는 거야?]

 

[카멜롯의 땅 크기가 넓어서 의외로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마스터. 게다가 마법학원 구역에 결계로 인해 제대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럼 마법학원의 결계를 부셔야 한다는 소리인가? 생존자가 그 안에 다 몰려있거나 지금의 상황을 더욱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존재가 강림했을지도 모르지만, 왼쪽에 있는 창문을 부수고 2층에서 뛰어내렸다.

 

[마법학원으로 갈 테니까 그 주변에서 숨어있어.]

 

[알겠습니다.]

 

사무적인 어조의 대답이 내 머릿속에 울려 퍼지자 마자, 신체를 가속시켜 질주하기 시작했다. 공간마법을 잘 다루는 페트리가 있다면 해결책을 열 수 있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내 독자적으로 해결해야...

 

“꺄아아악! 몽골리안 웜이다!”

 

...어디서 많이 들었는데. 이 소리...

 

“저리가! 카일 씨를 빨리 만나야 한단 말이야!”

 

“아니. 나는 몽골리안 웜이 아니라 뱀이라고! 그리고 몽골리안 데스웜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기...아팟! 돌을 왜 던지는 거야!”

 

하얀 뱀과 페트리가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내 발은 천천히 멈춰버렸다. 발이 멈춘 이유야 지금 당장 내 몸 속에서 생성된 한숨 패키지 리마스터를 풀기 위해서였고, 곧 이어 입 밖으로 내뱉는 커다란 한숨 때문에, 페트리와 하얀 뱀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어라? 어딜 갔다 온...케헥!”

 

“으앙! 카일 씨! 무서웠어...어라? 누구세요?”

 

이 모습으로는 만나는 건 처음이었던가?

 

“소개를 하지! 잡화점에서 그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여자로 변하면, 절세미녀가 되...아파! 그만 늘려! 그 꼬리는 아까 밟힌 쪽이라고!”

 

“너는 분명 도망가라고 했는데 여기서 설명을 하고 있는 이유는 뭐야. 도움이 되고 싶으면 다른 사람에게 알리라고 몇 번을 말했어?”

 

“설마? 카일 씨에요?”

 

“이 모습에는 슬픈 전설이 있어. 당연히 페트리는 그런 전설 믿지 않겠지? 일단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하도록 하고, 우선 뱀을 이용해서 이번 초복에 좋은 영양가가 될 수 있는지 실험이나 해볼까?”

 

“살려주세요...자비로운 카린이시여...”

 

하얀 뱀이 부들부들 덜면서 자비를 구하고 있을 무렵. 페트리는 내 옷을 붙잡으면서 신기해 했다.

 

“우와. 여자 옷이야. 게다가 가죽옷이라서 스타일이 다 들어나잖아요?”

 

페트리가 천진난만할수록 내가 심적으로 입는 데미지가 증가하는 기적의 현상을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페트리가 찾아온 이유를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하자. 지금 검은 높새바람의 우두머리인 별의 아이, 에밀리가 페트리를 이곳에 보낸 이유라면 2가지 경우가 있는데, 하나는 마법학원에 있는 결계를 부수기 위함과 또 다른 하나는 그와 반대로 마법학원의 결계를 더욱더 강화해서 보호를 하거나, 혹시 모르는 괴물을 풀어놓지 않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슨 일로 내려온 거야? 마법학원의 결계와 관련이 있는 거지?”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지금 밑에 있는 검은 존재가 더 거슬린 모양이다.

 

“이번 에밀리 님께서는 땅 밑에 있는 검은 존재에 대해 확인을 하고, 카일...카린...?”

 

“이 모습으로는 카린으로 불러줘. 왠지 카일로 부르면 내 정신이 머리에서 가출을 한 뒤에,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할 것만 같은 심정이거든. 차라리 다른 이름으로 불려야 정신적인 데미지가 좀 더 줄어들 것 같아.”

 

“네...어쨌든 카린 씨의 도움을 받아서 그 존재부터 퇴치하라는 말을 들었어요. 아니면 두 번째 방법으로 마신 아리엘과 이어져 있으니 봉인 조치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만약 아리엘을 봉인하면 매우 적은 확률로 폭주를 한다고 해요.”

 

“매우 적은 확률?”

 

10%인가? 5%인가? 1%인가?

아무튼 어떤 확률인지 몰라도 폭주를 하게 된다면 위험하지.

 

“얼마나 낮은 확률인데?”

 

“아마 100분의 99로 폭주한다고...”

 

“그건 낮은 확률이 아니라 거의 폭주라고 봐도 돼!”

 

그러면 둘 중 하나는 해결을 해야 하지만, 밑에 있는 검은 존재를 먼저 제거하기엔 알고 있는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롱기누스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지금은 너무 넓어진 상태라서 잘못 찌르면 화가 될 것 같아. 밑에 있는 검은 존재를 강제로 잡기 전에 아리엘이 먼저 찾아올지도 모르고, 지금은 마법학원에 있는 결계가 더 시급하지 않을까?”

 

“에밀리 님께서 마법학원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저와 카일...아니, 카린 씨는 지금 당장 눈 앞에 있는 존재를 소멸시킬지, 아니면 아리엘을 봉인시킬지 결정하라고 하셨어요.”

 

그럼 밑바닥에 있는 존재를 먼저 죽이도록 할까? 폭주를 해서 난장판이 되는 것보단 좋겠지?

 

“그나저나 아까 주변에 거대한 군대가 밀집해있던데 무슨 일이에요?”

 

“아. 그건 혹시나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서 안에 있던 카멜롯의 괴물들이라던가, 다른 세계에서 놀러 온 사악한 무리들을 막기 위해...”

 

잠깐? 아리엘이 마신으로 강림하면서 다른 세계의 존재들을 불러들이고, 애초에 그 거대한 괴수는 결계가 아니었다. 어쩐지 아까부터 뭔가 다른 존재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는 조용하게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한다면...

 

“아. 이런...벌써 세상 밖으로 다 뛰어나간 건가. 아니면 이미 전투중이라는 걸지도 모르겠네.”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였다면 지금은 모든 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거나, 때를 기다리며 숨어있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지금 검은 높새바람은 어디로 가고 있어?”

 

“지금 공중요새를 이끌고 하란국부터 지원해주고 있어요. 대부분의 병력이 이곳 카멜롯을 막고 있으니까, 지금 찾아온 검은 괴물들을 막을 수가 없다면서...”

 

“그러면 지금은 전부?”

 

“각자의 영토에서 다 모두 싸우고 있어요.”

 

지금 달에서도 싸우고 있는 건가? 반투명한 무언가가 저 하늘 넘어 우주에서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차라리 이곳에 떨어지는 운석이라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점점 눈에 띌 정도로 작아지는 걸로 보아,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겠지.

 

루시피나와 루니아 누나가 잘 격퇴했으면 좋겠지만...

 

“그러니 세상에서 지금 기괴한 괴물이 하나씩 침공했다는 소리가 되겠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사방팔방에 돌아다니지 않고 이곳에 집중할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나라를 지킬 수 있겠지. 지금 당장이라도 이 밑에 있는 존재를 빨리 지워버리자고.”

 

“그런데. 지금은 할 수 없어요.”

 

페트리의 의외의 답변이 내 귀를 때리면서 온 몸을 경직시켰다.

 

“지금은 할 수 없다니?”

 

“지금 이대로 검은 존재를 죽인다면 아리엘이 사라지게 될 테니까요.”

 

“어...그러니까 아리엘은 결국 봉인시켜야 하는 거고, 폭주하게 놔둬야 한다는 소리잖아?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마법 기동반에게 부탁해서 아리엘이 봉인을 함과 동시에, 우리는 대기를 하고 있다가 롱기누스의 창으로 내리찍으면 될 것 같네.”

 

그렇다면 가장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지만...

 

“저기. 카린 씨? 송구한 말이지만 마법 기동반은 지금...아리엘에게 전멸한 상태에요.”

 

세상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은 항상 경험으로 깨닫게 된다.

 

“전멸했다고?”

 

“네. 지금 모두 잠들어있는 상태여서 제가 모두 대피를 시켰지만, 부분적으로는 검은 존재들 때문에 침식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래도 내가 맡고 있는 녀석이 가장 힘들고 이상한 녀석이로군. 어쩌다가 아리엘과 페어링이 되어서......

 

어라? 분명 아리엘의 사역마 또한 몽마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 저거...

 

“세피르란 녀석인가!? 이게 대체 뭔 난장판이야!”

 

몽마가 어떻게 하면 저렇게 변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아리엘에게 감겨있던 검은 뱀이 움직이지 않은 이유가, 저 밑바닥에 있는 검은 존재야 말로 아리엘의 사역마, 세피르가 아리엘을 도와주기 때문이지만, 마신이 되어버린 아리엘이 이런 현실에 모습을 유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세피르가 검은 존재로 변해 그 범위만큼 아리엘이 돌아다닐 수 있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고, 아리엘이 봉인이 되면 그 페어링이 끊어지기 때문에 아리엘을 찾기 위한 폭주로 설명할 수 있겠지.

 

“그럼 결국 둘 다 죽이면 안 되잖아. 정말 골치 아프네. 그보다 어쩌다가 세피르는 저렇게 녹아서 검은 스프처럼 되어버린 거야?”

 

“삑삑!”

 

“아니. 네가 그렇게 알려줘도 나는 모른다고 페트리.”

 

“네? 저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페트리의 말에 잠깐 멈추고 조용히 뒤를 돌아봤더니, 이번엔 하얀 근육질로 덮여있는 거구의 남자로 변해있었다. 당연히 얼굴은 이상하게도 뱁새의 얼굴 그대로 하고 있었지만...

 

“하아. 아리엘이 또 다른 사역마인가...? 그럼 이 근처에 아리엘이 있다는 소리잖아.”

 

“삑삑!”

 

“그러니까 너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근육이 가득한 주먹을 휘두르는 이상한 생명체의 공격을 피하면서, 페트리를 보호하면서 시나를 텔레파시로 부르기 시작했다. 시나가 페트리를 지키게 하고, 지금 당장 내 앞에 있는 근육질의 뱁새인간을 무력화하기 위해, 티르빙을 붙잡아 검으로 바꿔나가면서 숨을 천천히 고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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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복잡해진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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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2 - 2

470

 

 

 

아무리 나라도 어릴 적에는 부모님께 자장가를 들으며 잠을 잔 기억이 있다. 하지만 어머니가 자장가를 부르면 아버지가 거기서 코러스를 넣는 바람에, 귀에 기묘한 선율로 가득 차게 되어 제대로 못 자고 자는 척을 해야만 했다. 어릴 때부터 단련해온 자는 척으로 아리엘의 눈을 피하는데 성공을 했는데,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면 다른 존재들을 재우기 위해 검은 날개를 활짝 피며 날아다니는 아리엘의 모습에, 하얀 뱀은 멍하니 바라봤고, 시나의 경우에는 나에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

 

“죽은 척 하는 것은 곰이 아니면 통하지 않는 방법 아닙니까?”

 

“곰 앞에서 죽은 척하면 진짜 죽으니까 하지마. 동화니까 그렇게 넘어가는 거지. 그리고 지금은 죽은 척이 아니라 자는 척이야. 무엇보다 지금 아리엘은 다른 세계의 존재들까지 관여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억지로 재우려는 의도는 뭣 때문인지 아직까지 감이 잡히질 않아.”

 

“본래 해가 되는 존재들을 재우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크툴루 신화에서도 아우터 갓이라던가 그레이트 올드원의 대부분이 다 자고 있지 않습니까? 아리엘은 다른 세계의 존재가 우리와 같은 생명체들을 보며, 나쁜 마음을 먹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일 겁니다. 마스터를 재우려는 의도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당장 아리엘을 봉인하거나 제거하면 안 된다는 소리. 그러면 뭔가 좀 더 다른 방향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그게 빨리빨리 생각났다면 내가 이런 고생을 할 필요도 없지. 어쨌든 조금 더 둘러보고 이곳에서 빠져나가도록 하자.”

 

켈모리아가 보이지 않는 걸로 보면 죽었거나, 다른 차원에 휘말렸거나, 어딘가에 숨어서 음침한 계획을 준비하고 있는 건가?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세상의 답답함으로 머리를 잠깐 쥐어뜯으려고 하기 전에, 안리아스의 수정구를 시나에게 주면서 과거의 일을 기록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제가 힘을 쓴다면 분명 아리엘의 시선에 이끌리게 됩니다.”

 

“괜찮아. 그때 동안 내가 알아서 미끼역할을 해야지. 정 아니면 이 뱀이라도 풀어놓던가...”

 

“저기. 나를 보고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보면 안 된다고? 생각을 조금만 더 자비롭게 해주겠어?”

 

태초의 뱀이라고는 하지만 거창한 이름에 맞게 별다른 능력이 없다.

 

“너의 그 말솜씨로 이브를 낚듯이 지금 저기서 떠돌아다니고 있는 아리엘도 낚아보던가? 오히려 사기꾼 같은 뇌세포가 작용해서 많은 여자들을 홀리고 다닐 수 있잖아?”

 

“이브를 속일 수 있었던 것은 그때 당시 인류에게는 지혜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지. 지금은 모든 인류가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진화해버렸으니, 고작 힘없는 뱀이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이라고?”

 

“시도도 하지 않고 어떻게 알아? 빨리 가서 하기나 해. 안 그러면 불로초를 뺏어간 뱀이라고 길가메시에게 던져버린다?”

 

“여긴 대체 무슨 세계이길래 이곳의 역사에도 없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왕조까지 알고 있는 거냐.”

 

기본적으로는 마리아가 다른 세계에서 책을 가져다 주는 덕에 이상한 지식이 늘어났다는 거지만, 그걸 알 리가 없는 하얀 뱀은 허탈한 어조로 나를 바라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그건 그렇다고 해도 정신방어가 온전하지 않는 내가 미끼를 끈다면, 오히려 다가가기도 전에 잠이 들 것 같은데? 역시 이 일은 절세 미소녀 카린이 해야...아니. 잠깐만? 잠깐만요? 늘리지마! 아아아아악!”

 

“네 녀석 일단 몇 번 죽어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볼에 홍조 띄우고 열 받는 얼굴을 하면 더 귀여워지잖아! 아아아아악! 알았어! 잘못했어! 그만해! 분할 된다고!”

 

“시끄러워!”

 

그런 만화 속에서나 나올법한 표정을 할까 보냐! 현실은 그렇지 않는다는 걸 확실하게...

 

“찾았다...아직까지 안자고 있는 나쁜 아이...”

 

내 뒤에서 음산하게 들려오는 청명한 음색이, 고개를 붙잡아서 뒤로 획 돌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검은 뱀과 하얀 뱁새 그리고 노을이 바라보는 듯한 주홍빛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만연의 미소를 띄고 있는 아리엘의 손길이, 천천히 내 쪽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자아. 어서 착한 아이는 자야지?”

 

그 말 듣고 자다간 1000일동안 자겠다.

 

“제길 너 때문에 결국 내가 미끼가 되어버렸잖아!”

 

“그게 왜 내 탓이야? 네가 나를 비명 지르게 만든 게 문제지.”

 

발에 마나를 담아 폭발적으로 솟구쳐 올라가며, 아리엘과 거리를 한 가득 벌리기 시작했다.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아리엘이지만, 환영체를 조종할 수 있으니까. 느닷없이 내 뒤에 나타난다고 한들 놀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의식 없이 자신의 사명만 행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인형 같은데, 나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마신이 되기 위해 대체 무엇을 대가로 지불하게 만든 걸까?

 

게다가 하얀 뱁새는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우리를 맹렬하게 추격하고 있었는데, 저 작은 뱁새로 대체 뭘 할 수 있겠나?

 

-꾸드득! 우드드드득! 꾸득! 꾸득!

 

어. 방금 내 뒤에 맹렬하게 추격하는 것이 뱁새 아니었나? 지금은 드래곤이 나를 쫓아 날아다니고 있는데? 문제는 얼굴이 멋지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용의 얼굴이 아니라, 뱁새의 얼굴 그대로였지만...

 

“삑삑!”

 

“드래곤으로 변했다면 얼굴도 바뀌란 말이야!”

 

하지만 저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되었다고 해도, 나에게 날아오는 불꽃들은 진짜다. 마나를 오른손에 담아 마법방패를 성벽처럼 쌓는다고 해도, 거대한 열기에 전부 깨져나갈 뿐.

 

“삑삑!”

 

-쿠우웅!

 

원래 드래곤이 괴성을 지르면서 발로 밟아 뭉개는 멋진 장면은, 모든 이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웃어야 할지, 피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야. 하얀 뱀. 너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거냐?”

 

“그야 도망가지.”

 

“그러겠지?”

 

티르빙을 꺼내 사브르를 들고 오른손에 가볍게 쥐었다.

 

“도망가는 거 맞아? 아니면 저것과 싸우려고? 저런 괴물은 나도 처음 봤는데?”

 

하얀 뱀이 뭐라고 하던 말던 바닥에 숨어있는 녀석에게 말했다.

 

“너는 최대한 다른 곳으로 수색해줘. 이 녀석의 발목을 잡고 있는 동안 말이지. 내키지 않으면 그냥 여기서 도망가도 상관 없고.”

 

“네 말을 듣고 정말 도망가버리면 어떻게 하려고? 오히려 네가 손해가 되는 게 아닐까?”

 

“그래도 나를 따라다니는 바람에 개죽음을 당할 위기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도망가는 게 더 좋은 방법이지. 너의 입장에서는...그러니 도와준다면 이 주변을 네가 대신 탐사를 해주고, 도망간다면 지금부터 뒤도 돌아보면 안 돼. 내가 소란을 피우는 동안 아리엘이 나에게 관심이 쏠려있을 테니 말이야.”

 

“정말 이상한 녀석이네. 오히려 나에게 매달리는 듯한 어조로 “제발 좀 도와줘!”라는 말을 해야...아! 그렇군. 이게 다른 차원에서 말하는 츤데레라는 녀석인...”

 

“나에게 죽기 싫으면 당장 이동해! 그리고 한가지 말해주지. 나는 츤데레가 아니라 태클을 거는 캐릭터야. 좋고 싫음을 떠나서 허무맹랑한 소리를 할 때마다 태클을 걸어야 하는 바보 같은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자연에서 살아남는 특수부대원에게 일용할 양식이 되고 싶지 않으면 당장 떠나!”

 

그런 말을 듣고 하얀 뱀은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몸을 감추기 시작했다. 서서히 멀어지다가 내가 두 번 다시는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까지 이동한 하얀 뱀이야 말로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지금 당장 내 앞에 있는 기괴한 혼종을 따돌려야만 했다.

 

“젤나가 맙소사. 누가 이런 끔찍한 혼종을...”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몸을 짓누르고 있는 중압감에서 그나마 벗어나고, 다시 마나를 내 몸에 휘어 감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날아드는 발톱과 내 검이 마주했을 때, 거대한 불꽃이 튀어 올랐고 내 온 몸을 짓누르는 무게를 견디면서, 기합과 함께 거대한 몸을 뒤집으려고 하는 일은 정말 미친 짓이고...솔직히 그건 건 다른 영웅에게 찾아서 볼만한 연출이니까. 나의 경우에는 옆으로 구르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도 한번의 도약을 통해 거리를 좁히면서 거대한 날개를 베어내려고 했지만, 검이 날개를 닿는 순간 뭉툭한 젤리를 배어내는 기분 나쁜 감각이, 양손을 따라 온 몸으로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뒤를 바라보며 날개가 잘렸는지 확인을 해보면, 어처구니 없게도 다시 자라나고 있는 기괴한 현상을 보았을 때. 뱁새의 얼굴을 하면서 귀엽다는 것과는 달리, 의외로 끔찍하고 악랄한 생명체에게 정공법이 먹히지 않는다면...

 

“다른 곳으로 보내버릴 수 밖에 없나?”

 

어떻게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하지?

 

“이거 정말 무시무시하네.”

 

시나가 이곳의 과거를 담는 동안 버터야 하는데.

 

“뀨우우우~”

 

“너는 그렇게 울지 말라고!!!”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거대한 괴수까지 같이 지켜보면서 울고 있는 모습에, 이런 이질적이 환경에서 나 홀로 진지한 전투를 이어갈 수 없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이 어딜 봐서 이 세계가 멸망할거라 볼 수 있을까?

 

그래도 위협이 되는 것은 사실이니까 우선 마음을 고쳐 잡기로 할까?

 

-쉬이익! 착!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로 돌려 검을 내려찍었지만, 연약한 손이 한 손으로 가볍게 받아내고 있었다. 아리엘은 은빛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여전히 같은 말만 하고 있었으니...

 

“착한 아이는 잘 시간이에요.”

 

“나는 착한 아이가 아니거든? 착한 어른이야!”

 

저기? 읽고 있는 사람? 그런 어처구니 없는 얼굴 하지 말아주겠어? 아니...알았어. 이건 내가 잘못한 걸로 하자. 지금은 다 전략적인 생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 것뿐이니까!

 

보통 정상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어처구니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맞을 텐데. 아리엘은 별 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고 그저 웃으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칼을 굳게 잡고 있었지만 피가 나지 않고 티르빙을 귀걸이 형태로 바꿔버렸다. 인간이 신에게 도전하지 않는 이유라면, 인간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권한이 부여되어있기 때문인가? 위험한 순간에 나를 천천히 붙잡으려고 양팔을 벌려서 안으려고 했지만...

 

“지금 낮잠 자는 건 사양이야!”

 

공간을 접어서 저 멀리 이동을 했지만 어째서인지 아리엘과의 거리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급하게 이동해서 모든 것이 다 읽히는 것일까? 아니면 지금 나를 재운다는 일념으로 따라오는 것일까?

 

가장 큰 문제는 잠에 들면 그 꿈속의 세계는 어떤 일이 터지는지 알 수 없다는 건데,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릴리스가 필요할 것 같지만, 지금은 이 상황부터 벗어나야 할 것 같은데?

 

“자. 착하지?”

 

무슨 애완동물도 아니고! 5초만이라도 좋으니까 대체 아리엘의 눈에서는 내가 어떻게 비춰지는지 알아보고 싶다! 그나마 강인했던 정신방어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 거리를 매우 멀리 떨어뜨려서 생각해보도록 하자.

 

도망가기 위해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한쪽 건물 안에 숨어 있을 때였고, 그 안에서 잠깐 숨을 돌리고 있었을 무렵. 어째 사람들이 밖에 돌아다니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쓰러져 자고 있는 사람들의 몸이 서서히 그림자처럼 변하기 시작하면서, 흡수당하고 있었으니 그 주변에 있는 그림자들은 모두, 다른 세계로 전이되어가고 있는 이전의 생명체였다는 사실.

 

 

그러면 그 동글동글하고 커다란 괴수는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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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프지만...돈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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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2 - 1

469

 

멸망이라는 것은 다양한 각도로 다가온다.

느닷없이 생겨날 수도 있고,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돌 하나 던졌는데 멸망을 당한다는 건 좀 그렇지 않아?

-카멜롯에서 터져 나오는 괴물들을 본 카일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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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마리아가 만들어놓은 대결계 밖에 있다고는 하지만, 드디어 괴물들의 모습을 관측할 수 있다는 생각보단, 지금 당장 이 괴물들을 막기 위해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데, 어처구니 없게도 괴물들의 모든 모습이, 이쪽 세계에서는 허락을 받지 않았는지 그림자처럼 검은색으로만 형태를 띄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까 그 거대한 괴물도 검은색인 이유가, 아직까지는 세계의 허락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라면, 분명 약점을 쉽게 찾을 수 있겠지?

 

결계가 깨지기 전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야 하니, 마리아의 대결계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잠깐만! 카일의 모습으로는 상관 없지만, 카린의 모습으로 저곳에 들어가는 건 그만두거라!”

 

마리아가 나를 붙잡고 소리쳤다. 내가 여성의 모습으로 변했다고 해서 전투력이 약화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마나의 친화력과 담을 수 있는 양이 많아졌다면, 오히려 저 안에서는 죽을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애초에 카멜롯 안에 마나가 제대로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는 것도 있어야 하고, 저런 괴물들을 품었던 무시무시한 거대괴수도 약점을 찾아야 하니까.

 

그런데...

 

“뀨우우우~”

 

“네가 그렇게 울면 이미지가 다 망가지잖아!”

 

결계 안에서 귀엽게 울고 있는 거대괴수에게 소리쳐버리고 있었다. 거대한 검은 구체에 짧은 다리와 짧은 팔만 다린 괴물이라니. 거대한 눈동자와 그 위에 있는 뾰족한 고양이 귀만 없었어도 최악의 생물이 되지 않았을까?

 

“뭔가 사악하게 보여야 하는데, 사악하지 않아서 정말 애매한 생물체잖아. 그냥 검은색으로 물들은 동물들 퍼레이드를 보는 기분이라고, 그렇게까지는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들어갔다 나올 거야.”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카린의 모습으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 겉보기에는 온순한 척을 해도 그 속은 무시무시한 짐승들의 본성이 자리잡을 수 있노라!”

 

대체 마리아는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눈을 반짝이며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때릴까?

 

“원래 사지로 가는 사람에게 웃는 얼굴이 아니라, 울먹거리는 얼굴로 보내줘야 하는 것이 도리 아니에요? 뭘 기대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별 일 없이 지나갈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무슨 소리인가! 첩은 카린을 걱정하는 얼굴을 하고 있노라!”

 

“아니! 웃고 있잖아요!”

 

“원래 첩은 슬플 때 이런 얼굴을 한다. 슬플 때도 항상 밝고 건강하게! 이게 첩의 신조...끼야아아아악!”

 

“어디. 이런 상태에서도 웃어보시죠?”

 

작은 얼굴이 아이언 클로에 갇혀서 비명을 지르는 동안, 웃는 얼굴을 하는지 안 하는지 지켜보려고 했지만, 애써 웃으려는 노력이 가상했기에 20초정도만 하고 놔줬다. 사역마중에 하나인 레시아는 마왕으로서 마계의 군세를 이끌어 오고 있는 중이고, 지금은 하얀 올빼미로 변하고 있는 시나와 하얀 뱀이 내 옆에 있었는데, 저 안에 마나가 존재한다면 이프리트와 윈디를 소환해서 카멜롯 전역을 수색할 예정이다.

 

“그럼 저는 저 안에 다녀올 테니, 레시아가 찾으면 알려주세요.”

 

시나와 하얀 뱀을 이끌고 결계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아까 전에도 귀엽게 울었던 거대괴수는 나를 바라봐도 멍하니 있었고, 그나마 밝아 보이는 그림자 괴물들이 내 주변에서, 포위를 하지도 않고 자연상태에 방목하는 그런 분위기. 우선 안에는 마나가 있는 걸로 보면 마법사들이 활동하기에는 충분하지만, 카멜롯에는 사람이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정말 다 죽었다고 보기에는 마을 안에는 시체 하나, 핏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으니까.

 

“가설을 내리면 지금 이 그림자들처럼 보이는 생물체들은, 카멜롯 안에 있던 희생자라고 생각할 수 있겠네. 시나는 어떻게 생각해?”

 

“그건 아닙니다. 저들에게 있어선 생명의 박동이 감지되지 않으니까요. 마스터의 가설과는 전혀 다르지만, 카멜롯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죽었거나, 다른 차원으로 보내진 것 같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흡수했는지 몰라도, 몸이 흡수당한 것을 모르는 그림자들은 평상시와 똑같이 행동하는 것뿐이니까요.”

 

“공기 중에 전파되거나 질병으로 된 가능성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 안에 있던 질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라던가 바이러스마저 전부 흡수당했습니다.”

 

그러면 이 안에는 발효를 시킬 수 없다는 소리인가. 마치 이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한 도약을 꿈꾸는 것 같잖아?

 

“재창세인가...아리엘의 의도인지 아니면 다른 외부인의 의도인지는 모르겠네. 우선 마법학교부터 가서 켈모리아가 살아있는지 찾아보도록 하자.”

 

“그 마녀는 왜 찾으려고 합니까?”

 

이젠 마법사가 아니라 마녀로 취급 받고 있는 켈모리아를 찾아가는 이유라면, 이 안에서 켈모리아라도 찾아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들을 수 있으니까. 만약 말을 안 하겠다고 버티면 마리아에게 부탁해서 기억을 들춰낼 수 밖에 없다.

 

“질문은 언제나 위험을 감수하는 거니까. 학교에 다녔을 때도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하려면, 수치를 감수하고 물어봐야 하잖아? 아니면 어린아이들의 시기나 질투를 마음속에 담아둬야 했지. 질문은 언제나 위험하지만 그에 맞는 해답은 대부분 위험을 감수할만한 가치는 있어.”

 

지금 나의 위치는 어디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나 같이 건물은 멀쩡하고 그 안에서 붉은 안광을 띈 그림자들이 계속해서 나를 비췄다. 오히려 온순하게 나를 봐도 도망가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하는 그림자들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확실한 실체를 가졌다는 것은 그 거대괴수 하나뿐.

 

인형으로 만들어야 할 것만 같은 짧은 다리와 짧은 팔을 가진 거대괴수야 말로, 붉은 안광이 아니라 사람처럼 검은 눈동자까지 비춰지니까. 허리가 없을 것 같은 동그란 체구를 어떻게든 숙여서,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했다. 저 애는 단순히 마리아가 던진 돌을 맞고 깨어난 것뿐이지만.

 

하지만 아직까지 실체화가 되지 않았는지, 이 녀석이 밟고 있는 건물은 무너지지 않고 관통한 것처럼 보였다.

 

“아직까지 실체화가 되지 않았으니 나를 건드리지 않은 거였구나.”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는 사이에 검은 늑대들이 나를 향해 달려왔고, 내가 보이지 않았는지 스쳐 지나갔다. 정확하게 내 뒤에 있는 검은 사슴인지 노루인지 뭔가 하는 걸 잡아 먹기 위한 모양.

 

지금은 세계와 세계가 충돌하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알아낼 것은 빨리 알아내고 가자.

 

마법학교에 찾아가는 것은 먼 거리였지만 시나가 나의 날개가 되어준 덕분에, 빠르게 날아갈 수 있었다. 여전히 카멜롯에 불어오는 바람은 현실세계에 대한 것이고, 날아가면서 내 시야를 채운 것은 그림자의 모습과 붉은 안광을 하고 있는 생명체들이지만, 여전히 궁금한 것은 이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전부 어디로 갔는가에 대해,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여부.

 

두 가지의 궁금증은 언제나 내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었다. 하늘을 날고 있는 동안 차가운 강풍이 긴 머리카락을 흩뿌리고 있어도 신경 쓸 겨를이 없고, 언제나 무표정으로 말없이 생각만하니 시나가 질문을 했다.

 

“마스터. 다른 사람들이 걱정되는 겁니까?”

 

“그야 걱정되지. 카멜롯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비정상적으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야. 지금 그런 사람들을 잃어버리는 것은 세계적인 입장으로 보았을 때 손실이 너무 커.”

 

“마스터의 입장에서는 이브센티아를 보는 듯한 광경이라서 그런 거 아닙니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시나만큼은 내 마음을 정확하게 꿰뚫었으니까.

 

“이브센티아?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이 세계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뱀이기 때문에, 나는 좀 더 많은 이야깃거리와 흥미로운 재미가 필요하다고?”

 

“넌 조용히 해. 기껏 그 기묘한 구슬에서 풀어줬으면, 너도 일단 나를 위해 도와달란 말이야.”

 

“그럼 선악과라도 줄까?”

 

“그걸 왜 가지고 있냐!”

 

지금의 인간이 선악과를 먹어봤자 무슨 소용이라고, 선악과로 주스를 해먹을 지도 모르는데?

 

“지혜가 늘어나니까 괜찮아. 그러니 먹어도 괜찮아.”

 

“네 뱃속에 들어있는 선악과를 먹으라는 것은 사양하겠어. 차라리 위액이 붙어있지 않은 싱싱한 선악과를 나무에서 따서 주란 말이야.”

 

검은 가죽 재킷에 서리가 끼는 바보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금은 여름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무더운 날에 마법학교 근처에는 주변이 빙결마법으로 덥혀있는 대결계를 볼 수 있었는데, 이게 발동하고 있다는 거라면 분명 켈모리아가 살아있다는 소리.

 

“역시 켈모리아는 이런 지옥 속에서 살아남는 지혜를 갖췄군. 어쩌면 아리엘이 이 안에 들어있을지도 모르니까 해제를 해야겠지.”

 

“그러기에는 결계의 강도가 너무 강합니다. 오히려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닐까요?”

 

시나는 다른 관점에서 나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언제나 다른 시점으로 관찰하라는 나의 말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으니, 시나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결계를 해제하려던 오른손을 내렸다.

 

“그렇네. 아직까지는 확실하지 않으니까. 섣부르게 행동하는 건 옳지 못하지.”

 

“남자가 여자로 되면 조심성이 많아지는 건가. 확실히 흥미로운 현상이긴...으아아아악!”

 

“이 뱀이 대체 무슨 헛소리를 난발하는 건지 모르겠네. 지금 당장 뱀술로 담가줘?”

 

내 성격은 본래부터 조심스러운 성격이다. 성별에는 관계 없이 정신은 일치하기 때문. 남자일 때는 잘 몰랐지만 여자로 변하고 나니, 손가락이 살짝 가늘어지고 약간 작은 손바닥이 하얀 뱀의 머리와 꼬리를 붙잡고 쭉쭉 늘리고 있었다.

 

“너무 아프잖아. 정말 뱀을 다루는데 험악하다니까? 아니면 성격이 사디스트라던ㄱ...켁! 잘못했어! 안 그럴게!”

 

다시 징벌을 내리고 다른 곳을 바라보았을 때. 검은 날개를 펴고 천천히 나아가는 아리엘이 내 눈에 비춰지기 시작했다. 잠들어 있는 듯한 검은 뱀이 아리엘의 오른팔에 감겨있고, 하얀 뱁새가 그 주변을 날아다니면서 호위를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무턱대고 아리엘의 이름을 부르면서 나아가기보단, 무슨 상황인지 자세히 알기 위해 숨어서 지켜보는 선택지를 택했다.

 

-선택해라!

 

“뭘 선택해! 이건 또 무슨 패러디야!”

 

그래도 절망적인 선택지를 받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만약 받았으면 지금 당장 창조신에게 롱기누스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통시켰을 테니까.

 

“마스터. 왜 숨는 겁니까?”

 

“지금 아리엘의 눈에 걸리면 좀 골치 아파 질 것 같거든, 게다가 왜 몸이 성장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몸이 성장했다면 싸웠을 때 오히려 질 수도 있어.”

 

“역시 마스터보다 몸매가 더 좋은 걸 확인하고 아리엘에게 쉽사리...”

 

“그게 아냐! 엄밀히 말하면 나는 본래 남자니까, 지금의 모습으로 외형이 어쩌고 저쩌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는다고! 전투능력이 올라갔을지도 모르고 지금 아리엘은 마신으로 각성했으니, 저 거대한 덩치가 깨어나서 덩달아 일어난 거라고!”

 

소리를 죽이면서 소리치는 게 힘든 일이지만, 내 예상대로 아리엘은 깨어나 있는 모든 그림자 괴물들에게 하나하나 찾아가서 잠을 재웠다. 아리엘이 마신으로 각성하기 전까지는 몽마였으니까.

 

“아리엘이 모든 걸 다시 재우고 있네. 잠깐만? 이 안에 있으면 나도 해당되는 거 아냐?”

 

 

내가 말을 하고도 내가 놀란 것은 둘째치고, 아리엘은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듯이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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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은 역시 많이 자야죠!

[많이 자서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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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1 - 10

468

 

 

 

아리엘을 구할 방법이 있다면 엘티노스가 만든 그 석상 안으로 집어넣는 거지만, 말이 쉽지 그 과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그 중심부에서 괴물들이나 켈모리아가 방해할 거라는 가능성을 잡고 움직인다면, 나 홀로 카멜롯의 중심부로 가는 것이 아닌, 마법 기동반과 같이 내려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안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중인지 모르니까. 어쨌든 지금은 마법 기동반의 담임선생을 맡고 있는 탈로스 씨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그렇군요. 미스 아리엘이 마신으로 변해서 카멜롯이...그런데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멀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죽었을 거라고 단정짓고 있어요.”

 

너무 무거운 이야기지만 어린애들 앞에서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세상이 살기 좀 힘들다고 해서, 이런 아이들에게 우울하고 무시무시한 사실을 알려줘야 하다니.

 

“아리엘.”

 

“아 글쎄! 나는 아리엘이 아니라고!”

 

덤으로 리첼이라는 애는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 궁금했다. 아리엘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만, 고작 뱀이 말 실수한 것을 훈계했다고 아리엘과 똑같이 보고 있다니. 리첼이 정신차리길 빌며 소리를 쳤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응석을 받아줘야 하는 어린아이의 행동이었다.

 

“카를로스와 엘리온도 아리엘이 돌아오는 게 더 좋아?”

 

화살을 바꿔서 이야기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까지 강제로 끌고 다니기 위해 말을 걸었는데, 두 남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표시를 했지만, 입을 열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것으로 보아.

 

“이번 아리엘을 구출하면 나의 명성은 엘리온보다 올라가겠지. 그렇다면 이 몸도 영웅으로 칭송을 받을 수 있으며, 마계에서는...”

 

“자, 잠깐! 고양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레시아에게 읽힌 카를로스는 얼굴을 붉히며 손을 먼저 움직이려고 했지만, 카를로스는 그 다음에 올빼미가 말하는 것을 보며 “어라? 어디서 봤는데?”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카를로스보다 내가 리더를 빨리 구출한다면, 적의 중심에서 싸워왔다는 것을 어필한다면 천계에도 나의 위상이 퍼져서...”

 

“거기까지. 남의 생각을 읽는 것은 그만해줬으면 좋겠군. 올빼미가 남의 생각을 읽지 마라.”

 

지금 너희들의 생각을 읽는 동물들이 각각 마왕과 여신님이라고...어쨌든 카를로스는 그제서야 생각이 났는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분명 이 동물들은 카일 씨의 사역마라고 했는데, 카린 선생님이 어떻게 데리고 다닐 수 있는 거에요?”

 

“마법이야. 그거면 다 해결할 수 있지.”

 

“아무리 마법이라도 사역마는 공유할 수 없...설마...!”

 

카를로스는 충격 받은 듯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진실을 내뱉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말하자마자 이 녀석의 입을 막을 아이언 클로는 충분하지만, 지금 당장 맹수 조련사에게“내가 사실은 카일이었다.”라는 진실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일이 약간 시끄러워질 수 있...

 

“카일 씨의 숨겨진 애인!?”

 

었는데 대체 이 녀석은 나를 어떻게 보면 그렇게 볼 수 있는 거냐. 결국 카를로스의 발언에 분노에 지배당한 맹수 조련사가, 어느새 카를로스에게 다가와 날카로운 어퍼를 휘두른 장면까지 보였다가, 잠깐 눈을 깜빡였더니 남학생은 이미 천장에 박혀있는지 오래였다.

 

“나의 여신님께서 그런 멍청한 남자의 애인이 아니시란 말이다. 다음부터 그런 헛소리가 한번만 더 들려오게 된다면, 그 녀석을 고르곤 앞에 보내서 눈싸움을 하게 될 거야.”

 

그거 죽잖아.

그런데 고르곤을 어떻게 조련하길래 여태까지 돌이 안 된 걸까? 고르곤은 맹수에 들어가긴 하나? 아닌 거 같은데?

 

“엘리온과 룬은 카를로스를 내려주고, 리첼은 카린 씨가 곤란해 하니까 슬슬 삼촌 옆자리로 오렴.”

 

“아니. 아리엘이야.”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이 애를 어떻게 정신차리게 만드냐는 건가.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마리아가 찾아와서 정신상태를 복구시켜주는 것이지만, 지금 검은 달의 여왕의 소속인 사람들을 전부 이끌고 카멜롯 근처에 대결계를 구축하고 있으니, 이곳에 잠깐 시간을 내달라고 말하는 건 민폐라고 본다.

 

-짜악!

 

모두가 나의 행동을 바라보며 눈이 살짝 커지기 시작했다. 내 손바닥이 화끈거리고 있는 걸 알려주는 것은 붉게 피어 오르고 있던 리첼의 왼쪽 뺨이었다. 여전히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남의 발목을 붙잡기만 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교정을 하는 것이 맞는 일이고, 교정에 설령 실패한다고 해도 두고 가면 그만이다.

 

리첼 또한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한쪽 손으로 왼쪽 뺨을 가리면서, 눈물이 그렁그렁 나오기 시작했지만 내가 말해줄 것은 다음과 같았다.

 

“늘 말했지만 나는 아리엘이 아냐. 그리고 네가 정신차리지 않으면, 아리엘은 봉인이 아니라 소멸을 당해야 하겠지. 나와 같이 지옥으로 뛰어들 사람을 찾고 있지만, 너는 얌전히 이 별체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리기만 해.”

 

리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리엘의 친구들은 모두 하나같이 대단한 애들뿐이었어. 지금 너의 행동이 아리엘의 격을 낮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지금은 네가 좋아한 사람이 위기에 빠졌는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대신할 것을 찾고 있다니. 얼마나 사람이 간사하고 조잡하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지? 아리엘이 이 모습을 보면 너에 대해 어떻게...”

 

-타앙!

 

그 근접거리에서 마법공학 저격총을 꺼내고 발포하는 것의 시간이 0.1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마법방패를 생성해서 막아보려고 했지만 한쪽에 구멍이 나버린 모습을 보며, 속으로 벌벌 떨어야만 했다. 어마어마한 살기와 마나를 드러내기 시작한 리첼은 날카로운 갈색의 눈동자로 치켜 뜨며,“당신은 누구? 어째서 나에게 훈계를 하고 있는 거지?”라고 대답했다.

 

정신을 차린 것은 좋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내가 더 강하게 나아가야 했다.

 

“훈계를 할 수 있는 선생님이란 직업을 가진 사람이야. 그리고 마신이 된 아리엘을 내 손으로 죽게 하지 않으려면, 너의 그 총으로 많은 사람들을 지켜봐야 할 거다. 네가 제대로 움직여준다면 플랜A로 봉인조치를 할 수 있고, 잘 진행이 된다면 아리엘이 돌아올 수 있으니 그것만큼은 약속할게.”

 

“그렇군. 좋은 말이야. 감동했어.”

 

그렇게 리첼을 설득하고...

 

“허나 무의미야.”

 

잠깐 뭐?

 

-타탕!

 

이번에는 자리를 벗어나면서까지 도망가기 바빴는데, 나를 노려보는 눈은 이미 적대심을 품고 있었으니까, 지금 당장 내 미간에 구멍이 뚫리기라도 한다면, 이번이 마지막화가 되는 대참사를 맞이하리라.

 

“리첼! 그만둬!”

 

“아뇨! 모두 그냥 놔둬봐요!”

 

정신을 차렸다는 그 신고식이라면 항상 실력을 검증하는 거였던가? 아니면 내가 리첼을 처음 만났으니 실력검증을 해야만 하는 걸까? 서로 잘 모르니까 싸워보면 잘 알게 된다는 그런 바보 같은 논리는 소설이나 만화책에서만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수도 없이 뿜어져 나오는 마탄의 궤적을 피해 밖으로 뛰쳐나갔다. 해변이라서 파도소리에 맞춰 날아오는 마탄은 일직선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휘어서 나에게 날아왔는데, 하멀 씨가 권총으로 마탄을 쏴서 백발백중으로 세심하게 쏜다고 한다면, 리첼의 경우에는 먼저 상대를 제압하고 자신이 쏘기 좋은 위치를 잡기 위해 추격을 하는 느낌이었다. 쓸 때 없는 마나는 사용하지 않겠다는 하멀 씨의 성격과는 다르게, 마나를 좀 사용하더라도 유리한 위치를 만들겠다는 리첼의 모습에 보답을 할 수 밖에.

 

“좋은 움직임이야. 감동이야. 허나 무의미야.”

 

“너 그거 맛 들렸니? 도대체 다른 세계에서 튀어나오는 명대사를 어디서 그렇게 잘 알아오는 건지!”

 

섣부르게 피하면 당할 수 있으니 천천히 거리를 좁히려고 했지만, 리첼은 그만큼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도망을 가면 그만큼만 추격하면서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니, 장거리 저격에는 아직 자신이 없는 걸까?

 

“최근 장거리저격 신기록은 얼마나 되지?”

 

“1.2km”

 

“그래? 좀 더 노력해야겠네?”

 

나의 말에 다시 기분이 상한 리첼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지기 전에, 오른쪽으로 달리자마자, 땅 위에서 솟구치는 마탄이 내가 가야 하는 길을 가로막았다. 결국 내 머리를 노리는 총구에 불이 뿜어지기 전에, 시공의 눈을 개안하고 천천히 날아오는 마탄을 음속의 속도로 옆으로 빗겨 치려고 했지만, 그런 자살행위는 하기 싫고 새벽<Daybreak>을 손바닥에 담아 주위에 있는 마탄을 쳐냈다.

 

여성으로 변해서 그런지 오늘따라 여리고 가느다란 손바닥에는 거대한 바다 빛의 마나가 품어지면서, 리첼의 마탄과 닿는 그 즉시 흩어지는 마나들이 다시 나에게 모이기 시작했고, 리첼은 그런 모습을 보며 천천히 총구를 내리기 시작했다.

 

“내 마탄이 소멸했어?”

 

“소멸한 게 아니라 자연상태로 흩뿌린 거야. 어떻게 보면 나는 마법사들에게 있어서 최악의 상대라고도 하거든, 그건 둘째치고 이제 화풀이는 끝난 거야? 아니면 아직까지 남아있는 거야?”

 

“화는 이미 풀렸어. 그래도 분해.”

 

“분하면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아리엘이 돌아왔을 때 실컷 응석이나 부려. 그 대신 너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리첼의 작은 고개가 끄덕였을 때, 거대한 진동이 이곳까지 훑고 지나가며 모든 대기를 타고 뻗어 나아갔다. 여태까지 나와 리첼의 싸움을 지켜봤던 모든 사람들도, 지금의 관심사는 거대한 울림의 시작.

 

“설마...카멜롯에 있던 결계가 벌써 깨지려는 건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예정보다 빠른 상황에 모두 움직이지 못하고, 멍하니 한쪽 방향만 쳐다보고 있었고, 레시아와 시나를 찾는 나의 목소리로 인해, 모두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레시아! 지금 당장 루나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상황에 맞춰서 마계군을 통솔해주세요. 시나는 지금 당장 카멜롯 근처로 나와 같이 가고...넌 어쩔 거냐?”

 

하얀 뱀은 나의 물음에 “음. 나도 그냥 따라가지 뭐.”라고 말했다.

 

“맹수 조련사와 탈로스 씨는 결계가 풀리는 걸 확인하면 곧바로 카멜롯 중심부로 날아오면 되요.”

 

“뜻대로 하죠. 나의 여신님. 아니, 오히려 제가 리바이어선으로 태워드리면 어떨까요?”

 

“리바이어선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해줘. 그나저나 매번 베히모스를 만나게 해주는 거 맞지?”

 

“당연하죠. 다만, 최근에는 또 부부싸움을 하는 것 같아서.”

 

그 거대괴수들이 부부싸움을 한다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아니,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지금은 바쁘니까 저 먼저 가볼게요.”

 

사소한 거에 생각을 할 시간도 없다고 판단을 했으면 곧바로 행동에 옮길 차례. 레시아와 시나. 그리고 하얀 뱀을 이끌고 공간이동을 하면서, 내 시야에는 검은 거대한 결계가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마리아가 벌써부터 긴장한 모습으로 검은 성배를 꺼내기 시작했다.

 

“마리아.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연한 초콜릿 피부가 유난히 눈에 잘 띄는 마리아는, 나들이라도 온 마냥 하얀 원피스를 입고 샌들까지 신었는데, 예기치 못하는 상황에 크게 동요라도 했는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첩이 깨우지 않았다!”

 

“알고 있으니까 좀 진정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말해봐요.”

 

마리아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억지로 진정을 시키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금이 가면서 터져나가는 진동에 다급하게 놀란 소녀는 입을 열었다.

 

“우아아! 카린이여! 첩은 그저 저 결계에 돌을 던졌을 뿐이니라! 그렇다고 어떤 결계가 돌을 던지면 깨지겠는가!”

 

돌을 던지며 결계가 깨져나가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저 검은 것은 결계가 아니라...

 

“생명체였어!?”

 

 

불길한 감이 들어맞는 건 언제나 싫은 일이지만, 아리엘은 지금까지 카멜롯에 있던 괴물들을 전부 재우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멸망에 대비할 수 있는 날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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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 이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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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奇

내리는 날

끈적끈적, 온몸이 끈적거려 끈끈이 주걱이라도 된 기분이다. 아니, 끈끈이 주걱이라면 적어도 모기에게 시달리지는 않겠지. 팔이고 목이고 간지러워서 손이 절로 가는 상황, 모기향을 어디다 뒀더라. 물파스도 찾아야 할 것 같고, 하필이면 에어컨은 또 고장이 나서 말썽이고 정말 맘대로 되는 게 없다.

 

“하…짜증나 죽겠네.”

 

찬장 구석에 쳐박아둔 모기향을 겨우 꺼냈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이 주르륵 흘러 코끝을 간질인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씨, 이런 날 밖에 나간다면 열사병에 쓰러질지도 몰라.

 

“비라도 시원하게 와주면 좋으련만.”

 

해가 저물어도 식지 않은 더위에 시원스레 쏟아지는 빗줄기가 그립다. 창문을 활짝 열어 창가에 모기향을 피워두고 물파스를 찾아보려는데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 뭐야?”

 

갑자기 어두워진 방안에 창밖을 바라보니 맞은편 아파트에도 불이 켜진 곳이 없다.

 

“정전인가?”

 

- 쏴~아아아…

 

“비다!”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가 어둠속에서도 또렷하게 보였다. 시원하게 내리는 빗소리에 좀 전까지의 짜증도 식어버리는 기분이다. 그대로 주저앉아 활짝 열린 베란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비냄새를 즐겼다.

 

- 쏴아- 우르르릉- 콰르르릉-

 

요란한 천둥소리가 울리고 번쩍- 번개가 내려친다. 맞은편 아파트 옥상에 무언가 움직였다.

 

“어?”

 

소름이 살짝 일어난 왼팔을 문지르며 베란다로 나가 맞은편 아파트 옥상을 바라보았다.

 

“잘못 본거겠지?”

 

그에 화답하듯 다시 내려치는 번개, 그리고 아까보다 늘어난 인영(人影).

 

“저기서 뭐하려는 거지?”

 

어둠속에서 빗소리에 묻혀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퍽- … 퍽- …

 

“무, 무슨, 무…어…”

 

가닥가닥 어둠을 가르고 내려치는 번개 사이로 옥상에서 줄지어 뛰어내리는 광경이 보인다.

따닥따닥,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힘이 들어가 굳어버린 손이 양어깨를 꽉 조인다.

 

쏴아 … 퍽- 쏴아 … 퍽- 쏴아 … 퍽- ……

 

왜 아무도 내다보지 않는 거지? 빗소리에 묻혀서 안 들리나? 그럴 리가!

나도 듣는 것을 아무도 못 들을 리가 없다.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까 고개 좀 내밀어보란 말이야-!

 

일정하고 규칙적으로 박자를 맞춰서 들려오는 소리에 정신이 나갈 것 같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비명도 나오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 심정이 뼈저리게 실감난다.

 

비명을 지르고 싶어도 혀가 움직여야 지를 수 있는 것이다.

 

도망가고 싶어도 발이 움직여야 한다.

 

눈을 감고 싶어도 눈꺼풀이 움직여야 한다.

 

귀를 막으려면 손이 움직여야 한다.

 

정신은 또렷한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마치 그대로 가위에 눌린 것처럼 꼼짝도 할 수가 없다.

끈적한 목덜미로 식은땀이 비처럼 흐르고 등골이 쭈뼛하게 굳어서 얼어버린 것 같다.

 

저 사람들 단체로 미치기라도 한 걸까? 저런 걸 집단자살이라고 하던가?

그래, 단체로 뭐에 홀린 걸 테다. 환각이든 환청이든 뭐에 홀렸으니 저러는 걸 테다.

 

귀도 막지 못하고 눈도 감지 못하고 도망도 가지 못한 채 촉각이 곤두선 사이.

어느 순간 소리가 멎었다. 가만히 서서 귀로 신경을 모아도 빗소리만 들린다.

 

그만 둔 건가? 내려다볼까?

 

내가 들은 것만 해도 족히 20명은 떨어졌다. 빗물이 고인 땅은 핏물이 흐르고 있을 테다.

20구의 시신도 쌓여있을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런데도 발은 움직인다. 아까까지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 거짓이었던 마냥 그렇게 움직인다.

난간에 바짝 다가가 손을 올리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시뻘건 핏물에 차곡차곡 쌓여있을 시신을 떠올리며 어두운 땅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무것도 없다. 분명히 뛰어내리는 걸 봤고 떨어지는 걸 봤다.

 

“소리까지 들었는데?”

 

멍하게 중얼거리는 머리위로 요란한 천둥소리가 울리고 다시 한 번 번개가 번쩍인다.

뒷목이 쭈뼛하니 솜털이 곤두선다. 미약하게 빗소리 사이로 쉬익-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떨어지는 것이 나를 지나치며 시선이 마주쳤다.

새하얀 눈동자, 미친 듯이 말려 올라간 입술. 붉다. 새빨갛다.

 

“으, 어…아아아아아악-!!!”

 

퍽-…

 

귓가에 나직하게 울리는 둔탁한 충돌음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

.

.

- Rrrrr…

 

“으, 음. 음음.”

 

핸드폰 벨소리가 머리를 때리는 것 같다. 간신히 눈을 떠보니 쨍쨍한 햇볕이 뜨겁다.

간밤의 일이 생각나 벌떡 일어나 베란다로 나갔다.

 

난간에 기대어 맞은편 아파트 옥상을 한번, 저만치 아래 땅바닥을 한번.

아무것도 없다. 열 번도 더 위아래를 둘러보아도 마찬가지.

.

.

.

그날 이후 비가 오는 날이면 창밖을 보기가 무섭다.

간간이 그때와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헤드셋을 끼고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대체 그건 무엇이었을까?

 

2년이 지나 이사를 갈 때까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한가지, 그날 이후 아파트에는 빈집이 늘어났다.

내가 이사할 때까지 절반 가까이 비었으며, 그 이후 1년도 되지 않아 철거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 일기예보에서는 내일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내가 헤드셋을 어디다 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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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1 - 9

467

 

 

 

천천히 몸을 맡기고 흐르듯이 손을 휘두르면 무심결에 마법이 나갈 정도로 친화력이 높아진 상황이라면, 어처구니 없게도 내가 여성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지금은 전략상으로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지금 이 결정은 혹시 잘못된 것이 아닐까? 여성의 모습으로 마나의 친화력을 더욱 더 올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해결방법이 있는 것이 아닐까?

 

막상 변하고나니 전신거울에 비추어진 연약한 모습을 보며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코발트블루의 색상과 함께, 눈은 그나마 검은 색이긴 한데, 머리색상이 바뀌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눈의 색상이 그냥 랜덤으로 이리저리 바뀌니까. 최근에는 검은색으로 정착한 것 같지만, 예전에는 검은색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주인. 전투복이니라.”

 

“고마...가 아니라! 웨딩드레스잖아!”

 

“이 지팡이를 들고 변신을 하면 웨딩피치가 되어...냐아아아아!”

 

내가 굳이 아이언 클로를 사용하려고 하지 않고, 허공에 떠다니는 마나가 거대한 손으로 응집되기 시작하면서, 의지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작은 머리가 거대한 손에 압박을 받아서 괴로워하고 있는 사이에, 하얀 올빼미는 내 어깨로 날아와서 잠깐 앉았다.

 

“마스터. 정찰을 끝마쳤는데 결계가 굳건하게 미치는 공간이, 카멜롯 말고 다른 섬 지역에 또 하나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곳에 마스터와 아테리카 학원측에서 지금까지도 찾지 못한 마법 기동반이 있으리라 봅니다.”

 

“그래? 그러면 다행이네. 그럼 그쪽으로 이동해야겠지. 레시아. 거기서 자고 있으면 버리고 갈 거에요?”

 

“짐을 버리다니. 주인의 사랑도 이제 식었군. 사람이 변하면 이렇게 매정하게 변할 수 있는 것인가!”

 

“진짜 버리기 전에 당장 안 일어나?”

 

레시아는 벌떡 일어나더니 내 어깨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따끔거리는 손톱이 복부와 등으로 등반하는 동안, 사키엘의 문을 이용하게 위해 잡화점 안으로 들어갔고, 지금은 달에서 대기중인 루니아 누나와 루시피나가 없기 때문에, 식사는 내가 직접 차려서 먹어야 했다.

 

그래도 시나와 레시아에게 요리를 만들게 해서, 사람이 먹지 못하는 최악의 물질이 탄생하는 것보단 괜찮으니까. 의외로 혼자 살기 위해 요리를 연마해온 사람으로서,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만들 생각으로 식빵의 겉면을 자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간단한 샌드위치인가? 하지만 겉면을 자르는 건 좀 아깝군. 냠냠.”

“그래도 마스터는 먹기 더 편하기 위해 배려하고 있는 겁니다. 아까워도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합니다. 냠냠.”

 

아니. 너희들이 다 먹고 있잖아.

 

“버려지는 것은 아까워서 이거라도 먹고 있는 거에요?”

 

그래도 평화가 오게 된다면 이런 삶이 계속 이어지는 건가? 일단 내가 남자로 제때 돌아와야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게 가능할 텐데. 문제라고 한다면 일이 다 끝나고 다시 남자로 돌아가는 걸 도와줄지...

 

그건 나중에 생각을 하고 10개의 샌드위치를 만들었지만, 삶은 계란을 자른 것과 베이컨이 들어있는 샌드위치는 6개정도. 나머지는 시나와 레시아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이미 변종을 만들어버려서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수준까지 나오고 있었다. 남은 4개를 만들기 귀찮다고 해서 맡기는 것이 이렇게 뼈아픈 실수가 될 줄은 몰랐지만, 10개씩이나 만든 이유라면 각자 2개씩 먹기 위함. 이프리트와 윈디는 지금 정령계로 돌아가 힘을 축적하고 있는 중.

 

시끄럽고 북적거리던 잡화점에서 지금 이렇게 조용한 잡화점을 보니. 예전과는 다르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니 지금도 시끄럽긴 하지만 사람이 적으니까, 눈을 돌리면 비어있는 공간이 내 시선을 붙잡고 있었다.

 

“빨리 마법 기동반을 만나러 가죠.”

 

배를 어느 정도만 채우고 사키엘의 문을 이용하기 위해 3층에 올라가기 전. 잡화점에 있는 베니와 팔랑크스에게 말해두기로 했다.

 

“혹시나 이곳에 하멀 씨나 다른 사람이 왔다면 나중에 다시 오라고 전해줘. 그리고 문도 열어주지 말고.”

 

“이해불능. 잡화점은 카일...수정. 카린이 아는 사람이라면 멋대로 들여보냄. 정문을 열고 닫는 것은 우리에게 자율적인 권한이 존재하지 않음.”

 

“그러면 그냥 돌아가라고만 해. 베니도 팔랑크스와 잘 지키고 있어야 한다?”

 

연노랑 빛의 슬라임처럼 생긴 베니는 안에 샌드위치가 둥둥 떠다닌 체 특유의 마찰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러니까...이건 긍정의 의미로 봐도 괜찮은 거겠지? 그나마 불안한 마음이 걸음거리를 느리게 만들었지만, 착실하게 3층으로 올라가고 있는 내 몸은 사키엘의 문 앞에 멈추고 시나에게 문고리를 돌리게 만들었다.

 

문고리를 돌리자마자 강한 바람이 나를 날려버리듯 뿜어져 나왔고, 푸른 바다 한 가운데에 섬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곳에서, 리바이어선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괴수가 그 주변을 뒤덮었다.

 

“맹수 조련사가 있는 건가? 귀찮아지겠는데.”

 

귀찮은 이유를 읊진 않겠지만 레시아가 먼저 뛰어내리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레시아를 쫓아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시나가 내 몸에 동화하면서 거대한 날개가 등 뒤에서 돋아나고, 천천히 리바이어선의 등으로 내려와 등 뒤에 있는 거대한 괴물들 사이에 안착했다.

 

“얼마나 많은 괴수들을 수용하고 있는 거야? 이 토끼는 또 뭐고?”

 

괴수들 사이에 영락없이 귀엽게 뛰고 있는 토끼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다리에 얼굴을 문지르고 있었다. 다만, 이게 정상적인 토끼라고 생각하지 않는 나의 뇌는, 일처리를 똑바로 했는지 답변이 금방 나왔다.

 

“보팔래빗이잖아...이런 애까지 있는 건가.”

 

그러자 토끼의 얼굴이 위 아래로 쩍 갈라지더니, 거대한 이빨과 바로 내 앞까지 튀어나온 거대한 턱과 얼굴. 그런 와중에도 기다란 혀로 내 볼을 핥아서 애정표현을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애가 애정표현을 하고 있다는 뜻이라면, 지금 이 괴수들은 전부...

 

-꺄우우우웅!

-크르르르릉!

 

맹수 조련사가 쓸 때 없는 내용으로 조련한 거 아냐? 아무튼 내 주변에서는 나에게 1초라도 예쁨을 받기 위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고, 내 눈에서도 전부 채워지지 않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압박이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크라켄의 기다란 다리가 내 어깨를 톡톡 건드리면서 봐달라고 요청한다면, 드레이크가 자신의 등에 올라타라고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내 말이 통할 것 같기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맹수 조련사는 어디에 있어?”

 

그러자 모두가 밑에 있는 조그마한 섬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려줘서 고마워. 그러면 나는 밑으로 내려갈 테니까. 나중에 만날 수 있으면 다시 만나자.”

 

다시 뛰어내리는 레시아의 뒤를 쫓아 리바이어선의 등에서 도약했다. 떨어지는 동안 레시아가 내 앞에서 입을 열었는데.

 

“주인은 괴수들에게 면역이 강한가 보다. 보통 여자애라면“꺄악!”이라던가 “오...오지마!”라는 비명을 먼저 지를 것 같은데...”

 

“레시아. 내 본래 성별은 남자라는 거 잊었어요?”

 

“...아. 그렇지.”

 

이 고양이가 진짜...

우주로 올려 보내서 냥캣으로 만들어버릴라.

 

서서히 지상이 보이고 별채로 추정되는 집을 발견함에 따라, 거대한 날개가 천천히 접히기 시작하면서, 땅에 발을 대고 마법 기동반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맹수 조련사를 공격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죽기 살기로 공격한 나머지 맹수 조련사의 로브가 찢기고 팔이 잘려나가도, 로브까지 재생시켜버리는 괴물 같은 능력은 보고 있는 사람에게도 공포에 가까웠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거에요?”

 

등 뒤에서 말을 걸자마자 모두가 멈추고 맹수 조련사의 고개가 돌아가기 시작했는데...그거 180도로 돌고 있잖아!

 

“오오! 나의 여신이시여! 그 동안 카린 님께서 저를 보살펴주시지 않아 외로웠습니다!”

 

내가 댁을 왜 보살펴야 하는데?

아무튼 언제나 그렇듯 맹수 조련사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숭배하려는 듯 절을 하기 시작했고, 저 앞에서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마법 기동반은 한숨을 내쉬면서 주저앉기 시작했다.

 

“지금 뭐하고 있던 거에요?”

 

“이들에게 진실을 말해주고 지옥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훈련 중에 실제로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을 했으니 봐주지 않았던 것이죠. 그나저나 이런 누추한 곳에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서 집안으로 들어가셔서 뜨거운 태양을 피하시길 바랍니다.”

 

“저기. 맹수 조련사. 그건 내 집인데?”

 

“시끄럽군. 지금 이런 비상사태에 니 꺼, 내 꺼가 어디 있나?”

 

두 남자가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싸우는 동안, 한 명 빼고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3명이 있었으니. 마법 무투제에서 내 제자들과 호각을 다퉜던 아이들이었다.

 

“카린 선생님? 오랜만에 뵙네요? 찾으려고 하면 없길래 죽은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봐서 정말 기뻐요.”

 

그거 기쁜 거냐? 아니면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나선력에 맞춰서 회전시킨 거냐?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한 인사는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월식의 파편에 물들은 검은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를 보며 말했다.

 

“아테리카 학원에서 너희들을 찾고 있을 텐데. 맹수 조련사를 상대로 특훈을 하고 있다는 말은 처음 봤어.”

 

“그러고 보면 맹수 조련사는 카린 선생님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던데, 둘이 어떤 사이에요? 혹시 사귀는 사이라도 되나요?”

 

요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가까이 다가오는 소녀에게 답했다.

 

“처음으로 널 때리고 싶은데 허락해주겠니?”

 

“웃으면서 그런 잔혹한 말씀을 하시다니. 여신의 귀감이 되지 않는답니다?”

 

“첫 번째로 말하지만 나는 사람이야. 그리고 월식의 파편에게 침식을 당하는 몸으로 아직까지 살아있는 건 기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언젠가 그 안에 있는 파편을 정화해야 할 날이 올 거고. 만약 위험해지는 나를 찾아오도록 해.”

 

“아뇨. 저는 언젠가 월식의 파편을 제 것으로 만들어서, 모두가 선망하는 마법사로 재탄생 할 거에요.”

 

월식의 파편만으로도 괴로울 텐데? 의외로 강인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까?

 

“그런데. 팔에 감겨있는 하얀 뱀은 뭔가요? 키우는 건가요?”

 

잠깐 고개를 돌려 확인을 하자 하얀 뱀이“안뇽. 난 뱀이얌.”이란 말과 함께 인사했다. 생각을 해보면 요즘 인사법과는 전혀 다른 방향인데, 왜 이런 일이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걸까?

 

“너 대체 언제 따라 온 거야? 생각을 해보니 너에게 줄 샌드위치는 없는데?”

 

“샌드위치를 먹으면 본격적인 사망루트라고? 그런 무시무시한 음식을 내가 먹을 이유는 없잖아? 오히려 팬케이크가 그 다음을 진행하기에는 좋은...”

 

“조용히 해. 그 소재는 예전에 써버렸으니까. 그리고 다시 말하는데 내 앞에서 샌드위치가 어쩌고 저쩌고를 말한다면, 네 가죽을 벗겨서 그물망으로 만들어주지. 알아들어?”

 

두 번 다시는 거론되면 안 되는 말이 하얀 뱀에게 입에서 튀어나와 주의를 주는 동안, 한쪽 구석에서 힘없이 걸어오는 소녀가 내 몸을 무작정 끌어 안았다.

 

“아리엘...돌아와서 다행이야...”

 

“잠깐만. 나는 아리엘이 아냐. 아리엘은 나보다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다고? 그보다 너는 처음 보는데 마법 기동반의 신 멤버니?”

 

“아리엘. 장난이 심해. 나는 언제나 너의 뒤를 지켜주는 리첼13이야.”

 

“넘버 안 붙여도 되니까!”

 

이 애가 어쩌다가 이런 식으로 망가진 거지?

 

“아무래도 카린 선생님께서 뱀에게 헐뜯는걸 보고 아리엘이라고 착각한 모양이지만, 지금 리첼의 마음은 산산이 조각난 상태라고 봐도 되요. 친한 친구를 잃게 되면 모두 이렇게 되는 건 당연하잖아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리첼을 안쓰럽다는 눈을 하고 있지만, 리첼이라는 소녀의 마음을 다시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아니. 아리엘을 완전히 잃은 건 아냐. 되돌릴 방법은 있어.”

 

“네? 카린 선생님. 그게 정말이에요? 아리엘을 되돌릴 수 있다니?”

 

“그건 안에 들어가도록 하자. 그리고 리첼이라고 했던가? 나는 카린이라고 하고 예전에는 아리엘과 마법 무투제에서 같이 춤을 췄던 사람 중 하나란다. 그러니 네가 나를 도와줘야 해.”

 

나는 눈빛이 거의 죽어가는 리첼의 대답을 기다렸고...

 

“알았어. 아리엘.”

 

“아리엘 아니라고!!!”

 

 

소녀의 마음은 소년보다 복잡하고 섬세하기 때문에, 간단하게 다시 살려낼 수 있다는 나의 바보 같은 발언에 급히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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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얼마 안남았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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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1 - 8

466

 

 

 

검은 고양이인 레시아가 하얀 뱀을 가지고 놀고 있고, 하얀 올빼미인 시나도 같이 끼어서 가지고 놀고 있는 사이에, 카멜롯의 상태를 보고 왔는지 하멀 씨가 밤 늦게 찾아와 다짜고짜 총성을 울린 것만 생각한다면, 동네에 민폐를 끼치는 것은 탁월하다고 생각했지만, 평상시의 하멀 씨는 남이 어떻게 되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맞긴 했다.

 

“결계가 꿈틀거리고 있다고요? 태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소리에요?”

 

“단순한 결계가 아니니까 당연한 거지. 그 안에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환경적인 요소를 결합시키는 작업을 하는 거니까. 그 중에서 빠르게 익숙해진 괴물들이 뛰쳐나오기 위해 난장판을 부리고 있다는 소리야.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아직도 할 일이 남아있냐?”

 

“마법 기동반을 만나지 못했어요. 이 상황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게 좋다고 보거든요.”

 

그래야 나중에 아리엘에 대한 고질적인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하멀 씨는 내 생각에 못마땅하듯이 고개를 휘휘 저어 거친 입을 다시 열었는데.

 

“꼭 그런 녀석들에게 도움을 바래야 하는 거냐? 지금 카멜롯 주변에 마왕군도 그렇고, 검은 높새바람이 시켜서 뛰쳐나온 기사라던가, 거액의 돈을 받기 위해 목숨을 팔러 온 용병들이 캠핑하면서 지키고 있는데? 어느 왕실이든 마법사들이 찾아와서 훌륭한 연구소재를 가져가기 위해 쟁탈전도 벌일 기세라고. 어차피 그 결계가 깨지면 순식간에 지옥이 되는 건 변함이 없어도...”

 

“그 사람들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인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아리엘을 어느 정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쪽 담당선생은 잘 모르겠지만 어린 애들은 아리엘을 되돌릴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아리엘이 돌아오길 빌고 있는 염원을 담아 획기적인 봉인 방법을 알고 있을 거에요.”

 

하멀 씨는 나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천천히 질린듯한 어조로 내 귀를 공격했다.

 

“너는 좀 더 현명한 녀석이잖아. 지금 네가 하는 소리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 지금 대재앙을 불러오는 그 여자애 하나를 구하겠다는 소리야? 내가 알기로는 그 애는 너에게 있어서 중요하지 않아.”

 

그런 하멀 씨에게 나는 입을 열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것도 있고, 얼굴을 알고 있고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다면 도와주는 것이 맞는 거에요. 하멀 씨는 주변에 아는 사람이 곤란해 하고 있으면 적어도 말은 잘 들어주잖아요?”

 

“그저 얼굴만 안다고 해서 또 다른 자살행위를 네가 할 필요는 없어!”

 

“루비아 씨는 그저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희생했다고요!”

 

나와 하멀 씨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모두가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느껴졌다. 적막이 그 뒤를 지나가고 무거운 분위기가 그 앞을 추월하고 있다. 하멀 씨는 잠깐 화를 삭이기 위해 듯 담뱃갑에서 사탕을 꺼내고 입에 넣었다.

 

“어떻게 된 게 그런 고집스러운 부분은 루니아와 닮은 거냐...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진짜인가?”

 

“무슨 그런 무서운 소리를 하는 거에요? 그렇다면 제 요리가 무지개 요리가 되잖아요. 그리고 제 성격은 루비아 씨를 만나고 나서 이런 성격이 된 거에요. 루니아 누나를 보며 본받은 것이 아니라.”

 

지금은 달의 기술을 바탕으로 호문쿨루스로 다시 탄생한 루비아 씨가 살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주인의 말이 맞다. 주인은 장래에 뛰어난 모델로 성장해야 할 사람으로, 흑장미를 찍고 있는 아리엘이 있어야지만, 콜라보를 내거나 이벤트를 할 때도 더 많은 행사를 기획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의외로 주인과 아리엘의 갭이 잘 맞아서 다양한 독자층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러니 아리엘을 되도록이면 다시 되돌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냐아아아앗!”

 

여전히 암묵적으로 레시아의 머리를 붙잡아 허공에 들어올리며, 손가락에 힘이 서서히 들어가기 시작했고, 내 손을 뿌리치기 위해 앞다리를 계속 허우적거리고 있었지만, 점점 강해지는 힘 앞에서 비명을 지르고만 있었다.

 

“죽음으로 가는 현명한 선택을 지금 레시아가 했다는 거 알고 있죠?”

 

“아프다! 아프다고 주인! 비, 비둘기! 도움! 도움!”

 

“인과응보입니다. 냥캣. 그리고 저는 올빼미입니다.”

 

검은 고양이가 축 늘어져서 카운터 위에 누워있는 동안, 하얀 뱀은 그런 레시아를 툭툭 건들이면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살아있으니까 그 이상 건들이면 고양이 어퍼컷이 날아올 것 같은데?

 

“그래서 언제 만나러 가려고? 마법 기동반인지 뭔지 하는 녀석들 말이야.”

 

“아마 아케리카 학원에서 찾고 있을 테니. 찾아내고 나서 말을 좀 해봐야죠. 지금은 위치를 알 수 없는 지역에 들어가있다고 하니까.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고, 어쩌면 자기들끼리 카멜롯에 먼저 들어갔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루크와 카를로스가 서로 텔레파시를 사용하고 있다는 말은 들었어요.”

 

“그런 말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는데. 너는 어떻게 그걸 잘 아냐?”

 

“전 그 녀석들의 선생님이니까요. 그래도 최근에는 조용히 잡화점을 운영하나 싶었는데 조만간 다시 만나게 생겼네요.”

 

-콰아앙!

 

“그만 건드리거라! 이 나약한 뱀 주제에!”

 

결국 하늘로 승천하다 잡화점의 천장에 박혀버린 하얀 뱀은, 의식을 잃어버렸는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있는 레시아에게 다시 시선을 돌리자. 하멀 씨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금색의 사자갈기 같은 머리카락을 긁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구나. 나는 왕궁에 일이 좀 남아있으니까. 이제 돌아가본다.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할 테니. 혹시 다른 일이 생기면 나에게 알려주도록 해.”

 

결계가 태동한다는 소리를 남긴 체 그래도 공간이동 해버리는 하멀 씨의 뒤를 보며, 태동에 대한 이야기를 천천히 생각했다. 결계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소리라면 서서히 모든 깨져나간다는 소리인데, 그 중에서도 아리엘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도 슬슬 준비할 때이긴 하네요. 루니아 누나와 루시피나는 달에 올라가서 준비하고 있는 중이고. 잡화점도 슬슬 안전상태로 만들어야 하니까. 베니와 팔랑크스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이 잡화점을 안전한 곳으로 숨길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고. 레시아와 시나는 저에게 잠깐 오세요.”

 

잡화점의 밖으로 걸어나가면서 천장에 여전히 매달려있는 하얀 뱀을 놔두고,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를 이끌고 밖으로 나아갔다.

 

“이런 야외에서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마스터?”

 

밤공기가 여름이라서 습기를 약간 담고 있었다.

 

“레시아와 시나는 상황이 악화되어 밀리게 된다면, 끝까지 전선을 유지할 생각하지 말고 모두 후퇴를 시킨 뒤에 바로 저에게 오세요.”

 

“그건 무슨 소리인가?”

 

레시아가 먼저 나에게 물었다.

 

“저는 전선이 아니라 카멜롯의 중심부에 있을 거니까요.”

 

“하지만 그건 자살행위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곳에서, 적진의 한 가운데로 간다는 것은!”

 

시나가 하는 말도 일리가 있지만 말을 끊어야만 했다.

 

“우선 아리엘을 통해 창조되는 괴물들부터 충원되면 안 되니까. 지금 당장 어떤 괴물이 나올지는 몰라도 분명 전황은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레시아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과 같이 질문을 하고...

 

“그러니까. 밖에서 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자들은 최대한 죽지 않게 퇴각전술을 펼치라는 건가?”

 

나 또한 레시아처럼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금은 사람 하나하나가 중요하니까요. 지금 용사들은 커다란 희생을 치른 기억이 없을 거에요. 동료가 죽어나가고, 어제까지 말을 나눴던 사람이 없어지고, 자신을 따라온 친한 친구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기 전에, 속전속결로 이 상황을 끝내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당연히 지금은 이프리트와 윈디가 제 옆에서 보조를 해주겠지만, 땅의 정령왕이 발견되자마자 이프리트와 윈디를 독자적으로 내보내고, 저 혼자 있는 시간대가 많아질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면 짐과 비둘기...”

 

“올빼미입니다.”

 

“아무튼 우리들은 힘을 최대한 아껴놓으라는 소리로군. 잘 알아들었다. 다만, 궁금증이 한가지 있는데 우리를 왜 이곳에 부른 것인가? 그런 말은 잡화점에서 하면 되지 않는가?”

 

하멀 씨도 없으니까 잡화점 안에서 말하는 것이 더 좋긴 하겠지만, 지금부터 말을 하려는 것은 레시아와 시나만 알고 있어야 한다.

 

“지금의 모습으로 침투를 한다면 100%로 제가 죽을 수 있기 때문에, 1%의 생존가능성을 올리기 위해서 카린으로 좀 바꿔주세요.”

 

“......”

“......”

 

얼어붙은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가 순식간에 인간형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나에게 사브르와 롱소드를 겨누며 입을 열었다. 너무 어처구니 없는 나머지 나는 두 손을 들며 저항할 의사가 없다는 것까지 표현하지 않았다면, 일격에 나를 3조각으로 나줬겠지.

 

“네 녀석 주인이 아니로군! 짐의 주인은 그런 바보 같은 말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어디서 온 도플갱어인지 몰라도 여태까지 우리들을 속이다니. 정말 뛰어난 변장이군요.”

 

“아니! 잠깐만! 이건 내가 좋아서 하려는 게 아냐! 아까와도 말했듯이 1%라도 생존율을 올리기 위해서 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단 말이야!”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나를 지금 당장 죽여버리겠다는 기세를 거둔 레시아와 시나. 연보라 빛의 마왕은 커다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의 외침이 너무 절박해서 그녀들의 검을 겨우겨우 멈췄으니까.

 

“알았다. 듣도록 하지. 게다가 주인에게 있어서는 카린으로 변하는 것은 오히려 전투력을 상승시키는 요인이긴 하니까.”

 

“마스터는 혹시 그 안에 마나가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준비를 하시는 겁니까?”

 

레시아와 시나 중에 내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차린 것은 시나였다. 그러니 정답을 맞춘 시나에게 고개를 돌려서 내 추측을 들려줬으니.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대기에 마나가 없으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해. 하지만 이곳에는 마나를 이용하는 물품이 너무 많아. 그렇다면 모든지 할 수 있게 각성한 마신 아리엘이, 손쉽게 세계를 정복하려면 당연히 마나를 제거하는 편이 좋겠지. 내 예상이지만 카멜롯 안에서는 마나를 지우려는 기상한 건축물까지 나타날 거야. 당연히 마기와 신성력도 해당이 안 된다는 보장도 없어. 그러니까 마나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연공법으로 저장한 마나로 마법을 사용하는 건 한계가 있는 법.

 

“그러니까. 내가 안에서 해야 할 일은 3가지. 최우선으로는 마나를 제거하거나, 방해하는 건축물을 찾아서 부수는 거하고, 아리엘을 봉인하거나 죽이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켈모리아를 끝장내는 일이겠지.”

 

“주인은 그 지옥에서 켈모리아가 살아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괴물보다 더 심한 인간인데 당연히 살아있겠죠. 지금도 최후의 순간이 얼마 안 남았다면서 기뻐하고 있을 거에요. 차라리 카멜롯이 지옥으로 변했을 때 켈모리아가 죽어버렸다면, 제가 이런 부탁을 하지 않았겠죠.”

 

“써먹을 수 있는 모든 수단은 다 쓰겠다는 소리로군. 알겠다. 주인. 대신 한 적진 한 가운데에서 죽을 위기에 처하기라도 한다면 꼭 짐을 꼭 부르도록 하거라. 물론 비둘기 하나만으로 무리라고 생각할 때 말이지.”

 

“올빼미 입니다. 그리고 제가 같이 동행하면 그렇게 위험한 일은 없을 겁니다.”

 

레시아와 시나는 서로 눈을 마주하며 묘한 경쟁심을 불태우고 있었지만, 지금 당장 마법을 사용해서 내가 날아가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

 

“한번 해보겠다는 것이냐!”

“각오하세요. 냥캣!”

 

-파아앙!

 

 

...했는데 이게 대체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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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가 재미있어서 끊을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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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1 - 7

465

 

 

 

재앙을 담는 구슬을 사용함에 있어서 그 원리는 과연 무엇일까? 엘티노스가 구슬에 새겨진 마법식을 하나하나 수정하고 있을 무렵. 옆에서 청소를 끝마친 지상의 시간과 천계의 시간이 어긋났다는 걸 깨닫고 있을 때였다. 이곳에 오래 있으면 오래 있을수록 시간감각이 사라지는데, 이곳에 온지 3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잡화점을 열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천계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느려터진 것일까?

 

“느려터지다니. 너무 심한 말 하는 거 아냐?”

 

“잠깐? 제가 지금 독백을 내뱉었나요?”

 

“아니. 훔쳐봤는데?”

 

다음에 태어나면 사생활이 제대로 잡혀있는 세상에서 태어나고 싶다. 엘티노스가 무덤덤하게 훔쳐봤다는 말을 하고 있을 정도니까...대체 마법식을 하나하나 수정하면서 내 생각을 어떻게 읽는 것이 가능한지.

 

“이제 네 의지대로 이 구슬은 발동하게 될 거야. 기동식을 일부 수정했는데 그 안에 있던 녀석이 나오고 싶어서 아주 안달이 났더군. 이야기라도 시켜줄까?”

 

“그럴 수 있어요?”

 

“어차피 이곳은 천계야. 게다가 완전히 해방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이곳에 목줄을 묶어놓듯이 묶어놨거든. 아주 잠깐만 열면 가능할지도 몰라.”

 

아주 잠깐 열어서 확인만 한다면 괜찮다고 생각을 하자마자, 구슬에서 그윽한 자색을 띤 빛이 이리저리 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월식과는 거리가 먼 하얀 뱀이 고개를 드러내며, 나를 물기 위에 달려왔지만 구슬의 힘에 입이 자동으로 묶이기 시작했다.

 

“월식보다는 꽤 이상한 모습이네요. 하얀 뱀이라니 일식이라고는 하지 않을 테고, 너의 정체부터 일단 말하시지?”

 

[멍청한 인간! 나를 이곳에 풀어 넣다니! 이제 이곳에서도 재앙이 내리겠군! 우선 너희들부터 먹어 치우고 시작하겠다!]

 

기세 좋은 모습은 언제나 좋았지만, 그래도 상황을 좀 파악하고 입을 열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입을 열기 위해 꿈틀거리며 발버둥을 치는 뱀은, 점점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서 비굴하게 빌기 시작했고...

 

[저기요? 인간 님? 여기서 풀어주면 안 될까요? 저는 보시다시피 그냥 하얀 뱀이라고요? 저는 무해한 생물이지 어디 약주에 사용할 재료가 아니랍니다? 그러니 제발 좀 풀어주세요! 풀어 달라고!]

 

“뭘 하러 나왔는지 몰라도, 네가 이 구슬 안에 있으면 위험한 녀석이라는 것은 다름이 없으니까. 너를 풀어주는 것만으로도 이익이 된다면 바로 풀어줬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해.”

 

“참나.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보려고 했더니, 에덴동산에 있던 뱀이잖아?”

 

엘티노스의 말에 나와 뱀은 서로 눈을 마주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뱀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는데.

 

“그 뱀이 하얀색이에요?”

 

“아니. 자세한 색상은 태초에 기제되지도 않았어. 어린 아이가 쉽게 볼 수 있도록 동화책이나 그림에서는 검은색이나 좀 더 사악한 느낌으로 다가왔겠지. 하지만 본래 뱀은 다른 차원의 신이 흉물스럽게 바꾸기 전까지는 오히려 긍정적인 느낌이 강했다고 해. 당연히 사람의 인식에 따라서 다르긴 하겠지만, 이래나 저래나 최초의 뱀이라고 볼 수 있어.”

 

최초의 뱀이 이 안에 들어가서 무슨 일을 한 건지 몰라도, 이곳의 창조주는 무슨 이유 때문에 다른 차원의 괴물들이 날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막지 않는 것일까? 내가 계속 눈을 마주치자 한 때 사람을 처음 낚아 올린 낚시꾼의 실력을 여김 없이 뽐내기 위해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크흐흐. 인간이여. 나를 이곳에 풀어준다면 금은보화가 있는 곳으로 알려주겠다.]

 

“아무튼 엘티노스. 이 뱀은 어떻게 할까요? 건강한 뱀주로 만들어서 평생을 먹어도 줄어들지 않을 것 같은데?”

 

[자, 잠깐만! 그, 그러면 나의 특제 비술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지도록 만들어주지! 남자의 로망은 많은 여자들이...]

 

“아니면 그냥 지금 당장 목을 날려서 석쇠에 구울까요?”

 

[그만둬! 너는 남자면서 꿈과 희망을 품지 않는 거냐!]

 

뱀의 머리를 강하게 쥐어 잡아 지그시 눈을 마주하면서, 속으로부터 화가 나 불이 뿜어지기 전에, 내 이성이 허락하는 지금 이 짧은 순간이라도 조용히 말을 해야 했다.

 

“만약 지금 이 상황에서 인기가 많아지는 비술을 사용한다면, 나는 인간계로 돌아갔을 때 살아남지 못한다고...그리고 지금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창세의 여신이 듣고 있는데, 시나가 너를 소멸시키지 못하도록 막는 것도 한계가 있어.”

 

“여전히 네 부인들은 얀데레 밖에 없는 거냐? 나처럼 다양한 성격의 여자들과 같이 지내야지.”

 

“댁은 상급신이면서 천사를 꼬시고 다니지 말라고요.”

 

뱀은 불사의 동물이라고 기록하는 책이 많은데, 태초의 뱀이라고 한들 뱀은 그냥 뱀이었다. 아니, 그냥 뱀은 아니고 말하는 뱀이니까. 어린애들의 돈을 뜯어먹기에는 안성맞춤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말하는 뱀이 신기해서 보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면 그거야 말로 좋은 돈벌이게 되겠지.

 

그래도 재앙을 담는 구슬에 있는 존재를 섣부르게 깨워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하얗게 질린 건지 본래 색상인지 전혀 갈피가 안 잡히는 하얀 뱀을 보며 조용히 읊었다.

 

“아무튼 네 친구들도 이 안에 한 가득 들어올 테니까 맞이할 준비나 해둬. 후한이 두려운 일은 하지 않으니까.”

 

[아냐! 인간! 나라면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다고! 제발 나를 여기서 풀어줘!]

 

엘티노스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하얀 뱀을 내려보았다. 어디가 마음에 안 드는지 눈빛만으로도 버터를 잘라버릴 정도로 날카롭게 변하며, 나에게 충고를 해줄 심산으로 내 어깨 위에 두터운 손을 올려놓았다.

 

“다른 차원에서는 최초의 인류를 낚아 올린 녀석이니까. 저 녀석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 좋아. 아니면, 네 머리에는 또 이상한 일을 꾸미고 있는 거냐?”

 

“이 뱀에게 뭐가 있는지 자세히 알아봐야 하니까요. 애초에 이 녀석이 저에게 거짓말을 한 것과는 상관 없이. 다른 존재가 이 세계를 다 때려부수기 위해 준비하고 있고, 협력을 하지 않는다면 창세기에 이어져온 그 목숨도 여기서 작별하겠죠.”

 

아직까지 상황을 모르는 뱀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고 있는 나는, 슬슬 잡화점을 영업해야 하는 시간 때문에 천계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내 안에서 시나가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마스터. 정말 불경스러운 저 생물을 잡화점까지 가져갈 생각입니까? 제가 단숨에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불경스러운 생물이라도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해. 지금은 악마라도 내 편으로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기가 다가올 거야. 게다가 다른 차원에서 넘어오는 이유를 잘 모르겠으니, 이 녀석에게 질문을 함으로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시나는 안에서 거대한 한숨을 내쉬고는 [알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시나는 뱀이라는 생물 그 자체를 싫어하기보단, 뱀 안에 있는 사악한 무언가를 감지했기 때문에 경계를 하는 거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위험한 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

 

“그래서 낙원에서 추방을 당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이었다? 여기서는 대체 무슨 일을 했는데 그 구슬 안에 들어가 있는 거야?”

 

누가 보면 취조를 하는 줄 알겠지만 구슬 하나를 가운데에 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 당연히 레시아와 시나는 멀리서 나를 무서운 눈으로 지켜보고만 있었고, 왜 문틈 사이로 공허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무시무시한 시선을 어떻게든 견디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특별한 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삼키려고 했는데 역으로 삼켜질 줄은 몰랐지. 그나저나 창조주도 어떻게 보면 정신 나간 거 아냐? 인간에게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지도 않고, 그저 인형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려고 하는 거 말이지. 나는 그런 인간들이 불쌍해서 열매를 먹으라고 유혹한 것뿐이야. 그렇게 보면 나야 말로 인류를 탄생시킨 일등공신이지? 그렇지?”

 

“시끄럽고. 결국 너도 어처구니 없이 여기에 왔다는 소리잖아.”

 

“나는 나쁘지 않아. 인간이여. 오히려 뱀은 죄악의 동물이 아닌 지식과 지혜. 불멸의 상징인 동물. 간사하고 소심하고 겁이 많기에, 모든지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확실한 기회를 잘 노리는 동물이지. 다른 신화에서 말하자면 그래. 나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동격이라고?”

 

완전히 자기 멋대로 해석을 하고 있군. 그래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면 저런 뱀 하나 때문에, 인간은 결국 널리 퍼지고 살아남기 위한 잠재능력이 깨어나, 뛰어난 지혜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게다가 신도 인간들을 사랑했기에 많은 지식을 알려주고,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게 한 다음, 사악한 인간들을 깨끗이 청소하는 클린한...잠깐? 내가 대체 무슨 말 하고 있는 거야.

 

어쨌든 다른 차원에서는 그랬다고 한다.

 

“그래도 운이 좋은 거라면 여기는 다른 세계고, 너를 저주하고 있는 창조주는 없다는 거겠군?”

 

“그런 거지. 어쨌든 지금 상황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은데? 이곳의 정보도 얻고 싶으니 이야기를 해주겠어?”

 

아직까지 따듯하게 김이 나고 있는 허브티를 다 마시고 난 뒤에, 데워진 목으로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다른 차원의 간섭을 많이 받기 때문에, 카멜롯이라는 거대한 땅에서는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존재하고 있어. 아마 내가 못 본 괴물들까지 저 안에 다 있을 거야. 그래서 나는 네가 들어있는 구슬을 이용해서 모조리 봉인할 생각이야.”

 

그러자 하얀 뱀은 고개를 까딱이면서 눈을 반짝이고 내 얼굴 바로 앞까지 찾아왔다.

 

“그렇다면 이 몸의 지혜와 지식이 필요한 타이ㅁ...”

 

“아냐.”

 

“아직 끝까지 말도 안 했는데 나의 본심을 모르네.”

 

“거기서 꺼내달라고?”

 

“잘 아네.”

 

이곳을 항상 나가고 싶어하는 하얀 뱀의 기분은 잘 알겠지만, 봉인을 풀어줄 마음은 아직까지 없었다. 기분을 읽는 뱀은 다른 제안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곳에 있으니 몰려오는 정보와 지식이 내 안에 깃들고 있군. 그러므로 한가지 말할 것이 있는데, 너는 마신이 된 소녀를 살리고 싶은 것인가?”

 

“너에게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 거야?”

 

“당연히 알고 있지. 나는 태초의 뱀이니까 그 옆에 있던 뱀의 정보까지 다 알 수 있다고? 진짜 뱀이든, 아니면 의태를 한 뱀이든, 혹은 뱀으로 의태를 한 모든 생명에게 말이지. 파충류 중에서도 뱀이라는 말이 들어간다면 절대적으로 나에게 감지가 되니까 말이야.”

 

이 녀석 다른 세계에서 너무 빠르게 적응하고 있잖아? 당황하는 내 눈을 보며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크흐흐!”하고 낮게 웃으며 음침함을 첨가하고 있는 하얀 뱀.

 

“뱀은 탈피를 함으로써 매번 적응을 하게 되지. 창조주도 나를 보며 말했다고? 나의 적응은 빛보다 빠르다. 이 공간 안에 있는 어떤 생명체들보다도 빠르다는 말.”

 

“그거 진화 아냐?”

 

“거참 패러디 하는데 좀 놔두지?”

 

너무 적응이 빨라서 다른 세계의 생물로 보이지 않았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허탈함을 머리에서 내보내기 위해, 자동으로 오른쪽으로 돌아가버린 고개를 다시 하얀 뱀에게 꺾어 시선을 마주했는데, 혀를 날름거리며 내가 묻기도 전에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그 구슬을 담을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서 휘두르기만 하면 되겠군. 그렇게 봉인을 하면서 수 많은 재앙을 담아낼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좋은 거 아닐까?”

 

“나는 말해달라고 한 적 없는데?”

 

“그거야 선심을 먼저 쓴 거지. 다른 곳에서는 이걸 선입금이라고 하더군. 그러니 이제 내 부탁을 좀 들어줄래?”

 

“그건 선입금이 아냐. 하지만 먼저 정보를 제공해줄 테니, 나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태도는 대단하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고 하지만 뱀은 간사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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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튜브! 손가락이여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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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1 - 6

464

 

 

 

느긋하게 천계에 올라가서 이야기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엘티노스보다 나를 먼저 부른 것은 레이베리아였다. 내가 천계에 올라가겠다는 말을 샤이어에게 전해달라고 했지만, 천계에 당도하자마자 끌려갈 줄은 몰랐는데.

 

“인간의 몸으로 올 수 있다니. 천계는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닌데 말이에요.”

 

“어쩌다 보니 신성력도 품을 수 있게 되었거든요. 만약 잘못될 것을 대비해서 시나가 동화한 상태로 항시 대기를 하고 있지만, 그런데 저를 기다린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설마 그 묘한 잡지에 싸인을 해달라는 말은 아니겠...

 

-척!

 

맞네. 망할...

혹시라도 아니길 빌었던 내 헛된 희망이 과녁을 빗나갔다. 적중률이 99%였는데 남은 1%때문에 빗나간듯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지...

 

“그런데 이거 말고 또 다른 건 뭔가요? 저는 엘티노스를 만나러 천계에 왔으니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은데?”

 

“그거야 당연히 이곳에 오래 붙잡아놓으라는 엘티노스 님의 명령이 있기 때문이에요.”

 

레이베리아는 계속 눈을 감은 상태로 나에게 고개를 향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엘티노스가 나를 이곳에 오래 붙잡으라는 이유라고 한다면...

 

“이번엔 대체 누구와 같이 집안에 있는 거에요?”

 

“모르겠네요. 분명 예쁜 천사 중에 하나였는데.”

 

이건 대체 무슨 난장판인지. 분명 내가 오늘 온다고 샤이어에게 말해두라고 했을 텐데, 이 사람은 샤이어의 말을 듣고 나서 잊어버린 건가? 상급신이라는 존재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대다수인 걸까. 아니면 시간대가 잘 맞물리지 않아서 일찍 온 것일까?

 

“제가 일찍 온 건가요? 약속시간까지 얼마나 오래 남은 거죠?”

 

“대략 30분정도 남았을 거에요. 그 전에 천계도 지금 술렁이고 있는 소문에 의하면, 카멜롯에 있는 거대한 대결계 안에 거대한 괴수들이 가득 차있다는데 사실인가요?”

 

나는 레이베리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본질을 꿰뚫으실 수 있으니 한번 해보시는 게 좋지 않나요? 그 안이 얼마나 지옥이 되었는지, 아니면 의외로 깨끗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에요.”

 

“능력을 마구 남발하면 안 되는 몸이라서 말이죠. 아! 카일. 손을 한번 줘보세요.”

 

뭔가 좋은 생각이 나와서 손을 달라는 권유까지 한 레이베리아의 말과 동시에 부드러워 보이는 손을 내밀었고, 내 손이 옮겨지기 전에 하얀 올빼미가 느닷없이 뛰쳐나와 날개로 레이베리아의 손바닥을 때렸다. 그러고는 다시 내 몸 속으로 들어가서 가만히 동화하고 있는 상태처럼 보였다.

 

“아프네요. 제 손이 그렇게도 싫은가요?”

 

“아니. 이건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시나가 느닷없이 튀어나와서 때리고 갔길래.”

 

“그런가요? 어차피 신성력을 나눠 받았으니 괜찮겠죠.”

 

신성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왜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이유는 체면 때문이겠지? 지금은 인간이 여신의 말 상대가 되어주고 있는 셈이기도 하니까. 여신이 인간에게 부탁을 하는 경우라고 한다면, 내가 개인적으로 보았을 땐 그 죽일 놈의 잡지를 싸인 해달라는 것 말고는 듣지 못했다.

 

아니면 용사에게 “마왕 좀 막아주세요.”라는 요청과 비슷한 노예계약을 맺을 때?

 

“그렇네요.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저 안에 다 모여있어요. 가장 큰 문제라면 다른 차원에 있던 재앙들이 몰려왔다는 소리가 되겠네요.”

 

“재앙이요? 월식 이외에 또 다른 재앙이 있나요?”

 

“이곳을 오염시키려는 존재들이 많기 때문이죠. 예전에는 마왕이 그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마왕이 없으니 대신 그 역할을 해줄 사람들을 불러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공석을 차지하기 위해 후보자들이 많이 온 것 같다. 조만간 대결계가 풀리고 나면 무시무시한 일이 일상처럼 벌어지겠네. 그 전에 선수를 치고 들어갈 것이 따로 있지 않을까?

 

“그럼 그 안에 있는 존재들을 어떻게 돌려보내는 게 좋을까요? 마이클 잭슨을 아냐고 물어봐야 하나요?”

 

“네? 그게 누구인가요?”

 

“아뇨. 다른 세계에서는 이것만 물어봐도 전세계적으로 말이 트일 정도로 유명한 단어라고 하더라고요. 다른 세계의 문화니까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는 게 맞으려나?”

 

이미 이곳을 난장판으로 만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넘어온 괴물들에게, 이거 유명하다고 문화교류를 시도하다 몸이 녹거나, 영혼이 흡수당할지도 모를 테니 최악의 경우에는, 대결계가 깨지고 2차로 설치한 결계가 깨지자마자 공격을 할 준비를 해야겠지. 그래도 내 마음속 한편에서는 적어도 말이 통했으면 좋겠는데.

 

무의미한 희생을 내지 않고 끝나는 이상향을 바라는 것이 큰 문제겠지? 이야기 거리가 다 떨어진 틈을 타서 무언의 명상이라도 해야 할지. 아니면 생각을 다듬어야 했는데 레이베리아는 다른 이야기의 주제로 입을 열었다.

 

“카일은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희생할 수 있나요?”

 

“아뇨. 사는 게 먼저 아니에요? 그런 이상한 영웅심리 같은 걸로 전 희생할 생각은 없어요. 예전에는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에요. 꼭 살아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중요하긴 하더라고요.”

 

내 말에 웃음을 짓고 있는 레이베리아의 생각은 전혀 읽지 못하겠지만,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엘티노스가 이상한 아저씨 옷차림이 아니라, 군청색의 로브를 쓰고 뒤에서 걸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얼굴은 역시 중년 특유의 중후함이 느껴진 상태. 훈훈함을 찾아볼 수 있는 얼굴이라면 아마 여자와 같이 있을 때뿐이겠지만, 나를 보자마자 썩어 들어가는 듯한 얼굴을 하며, 발걸음이 더욱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 인상은 뭐에요? 오랜만에 보는데 누굴 구더기처럼 보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 엘티노스 씨.”

 

“시끄럽고 당장 따라와.”

 

레이베리아와 사이가 안 좋은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지 묵묵히 엘티노스의 등 뒤를 따라다니면서 다른 말을 하기까지 기다렸다. 앉아있는 레이베리아는 나에게 조용히 손만 흔들어줬고, 엘티노스는 자신의 집까지 도달하기 전에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집안에 도착을 했을 무렵.

 

“청소해.”

 

한마디를 내뱉고는 쇼파에 누워있었으니, 최소한의 항의를 내뱉기 위해 내 머리는 충분히 움직였다.

 

“지금은 촌각을 다퉈야 하는 상황에서 저더러 이곳을 청소하라니? 엘티노스는 세상이 멸망해도 가정부 하나는 같이 데리고 와서 멸망해야 할 것 같네요. 아니면 불멸자라서 불멸의 가정부가 필요하시던가요?”

 

“불멸의 가정부도 좋긴 하지. 하지만 너보다 청소를 잘하는 녀석은 천계에 없거든, 너도 나에게 볼일이 있는 이유라면, 카멜롯 전체를 물집처럼 보이게 하는 검은 결계 때문에 나의 자문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잖아. 그럴 거면 그거라도 하고 가란 말이야. 공짜로 해주기에는 눈치가 보이니까.”

 

제대로 자문을 해준다는 전제가 붙는데...

 

“이번 일에 대해서는 엘티노스도 많이 당황스러웠나 보네요? 저번에는 비니스 여신이 적이라고 했다가, 석상에 봉인 되었다고 했다거나?”

 

“그건 켈모리아라는 이상한 여자에게 위치를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지,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라고 했잖아? 네가 저번에 죽인 그 가짜 사제도 사실상 자동인형이었을 뿐이야. 그 외에 다른 사람들도 말이지. 그걸 알아챈 그 루니아라는 여검사는 무차별적으로 베어버리는 바람에, 다시는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이 되어서, 이 집이 이렇게 더러워진 거라고.”

 

“그거 엘티노스가 청소하면 되잖아요. 잠깐만? 그럼 예전에 카멜롯에 침략한 그 이상한 사람들 전부 자동인형이에요?”

 

“어. 맞아. 그것도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지. 대부분은 카멜롯을 정찰하기 위해 몰래 숨겨 보냈었거든. 흔히 우리들이 아는 산적이라던가, 상인, 시민 등. 여러 가지. 사람들의 패턴을 어떻게 맞추냐고 물어봐도, 나는 이미 의식과 무의식을 다스리는 슈퍼 상급신이란 소리야. 의식은 불어넣어줄 수 있으니 남은 것은 몸만 있으면 끝이지.”

 

문제는 정말 실제 인간하고 다를 바가 없었는데...

 

“티르가 남긴 호문쿨루스의 제조법을 응용했나 보네요?”

 

“여전히 눈치는 빠르군. 하지만 이번 일은 내가 봉인할 물품도 만들고, 여러 가지 할 일이 바빴기에 방해를 받으면 안 되니까, 나는 거짓정보로 봉인을 당했고 미래의 시간대에서 온 초월적인 도플갱어가 나의 역할을 대신 수행하고 있다는 소리. 당연히 철썩 같이 네가 믿고 있었기 때문에, 켈모리아가 나를 방해하러 직접적으로 오지 않았다는 게 한 수가 되었다는 거야. 하지만 아쉽게도 플랜B를 준비하고 있었나 보네.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야.”

 

미리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게 가능한 건가? 아무래도 즉흥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아무튼 지금은 카멜롯 안에 있는 괴물들을 막는 게 답인가요?”

 

“아니. 도망가는 게 더 적절한 선택지야. 아리엘이 마신이 되고 나서부터 좀 기묘한 것들이 섞여버렸거든, 다른 차원에 있는 재앙조차 아리엘을 따라 이곳으로 도착한 모양이야.”

 

“설마 뭐 우주적인 존재라던가 그런 거에요?”

 

“월식 말고 다른 재앙들이지. 내가 봐온 것 중에 좀 말이 안 될 정도로 끔찍한 것이 몇 개 있더라. 그래도 가장 빠른 해결방법이 한가지 있어.”

 

왠지 내가 앞으로 들을 이야기 중에 정말 터무니 없을 것 같은데? 그런 불안감을 한 가득 안고 움직이던 빗자루를 멈추며 “뭔데요?”라고 말했다.

 

“당연히 우리가 세상을 멸망시키면, 저쪽에서 멸망시킬 세상이 없어지잖아? 그러면 저기도 허탈해서 다시 본래에 있던 곳으로 돌아갈 거야. 정말 꿈에 그리던 전개로군 안 그래?”

 

굉장히 허탈한 헛소리에 빗자루가 기겁하고 내 손을 떠나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재앙을 막을 수 없으니 우리 손으로 박살을 내자 이거잖아? 쇼파에 있던 엘티노스에게 다가가서 거침없이 쓰레받기로 내려쳤다.

 

“아주 그냥 댁은 불멸자라고 막 죽여도 된다 이거지? 어? 우리같이 필멸의 존재는 언제든지 다시 만들면 된다는 거잖아 이 정신 나간 신아! 아무리 농담이 할게 있어도 그딴 말을 내 앞에서 하면 안 되지!”

 

“야! 잠깐만! 알았어! 내가 미안하다! 그러니까 그만 때려! 다른 방법이 있긴 해!”

 

다른 방법이라는 말 때문에 내 손에 있는 쓰레받기가 허공에서 멈췄다. 내 말뜻은 진짜 허공에서 정지된 상태로 존재한다는 소리.

 

“네가 저번에 죽어가는 노인에게 받은 구슬 있지? 그걸 이용하면 될 거야.”

 

“엘티노스 씨가 말하기 전에 태초부터 그럴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었어요. 재앙을 옮긴다는 구슬이라서 담을 수 있지 않을까 했거든요.”

 

그런데 구슬 받은 사실은 어디서 안 거지?

 

“엘티노스 씨는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에요? 이 구슬을 받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요?”

 

“그 노인은 천계에 머물고 있어. 적어도 잡화점을 하면서 억울하게 죽어버린 사람들은, 내가 하나하나 기억하고 거둬주고 있다는 소리야. 그런데 너는 이미 검은 달의 여왕과 계약이 되어버린 터라. 네가 죽은 뒤에 영혼은 어쩔 수 없이 내가 거둬줄 수 없구나. 그래도 좋겠네. 그 여왕에게 무한적인 전생을 약속 받아서.”

 

“좋은 거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아무튼 본래 할 이야기를 좀 하도록 하죠. 제가 이야기 할 거리는 아직 남아있으니까요.”

 

 

의외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엘티노스의 표정을 읽고, 반대편에 있는 의자를 위치변환 마법으로 가져와 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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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유튜브 나의 손을 멈추게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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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1 - 5

463

 

 

 

지금 당장 회의를 열어서 내가 말한 것은 카멜롯이 지옥으로 변했다는 소식과 하멀 씨에게 들은 아리엘의 상태를 전해주는 것뿐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물집이 부풀어올라 터지기 직전인 상태라고 하자마자, 내 주변에 앉은 잡화점 멤버들은 가만히 앉아있을 뿐. 그 어떤 이야기를 하지 않고...

 

-Yee~

 

그 빌어먹을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저기요. 제 말은 듣고 있나요...”

 

“신랑의 말은 잘 듣고 있어! 그렇구나. 카멜롯이 단숨에 먹혀버리다니. 그거 좀 이상한 일이네. 아! 마왕님! 염력으로 주사위를 굴리지 말라고요!”

 

전혀 안 듣고 있잖아.

위기의식이 너무 없는 거 아냐?

 

“대체 이번엔 무슨 일이길래 보드게임이 세계의 멸망보다 더 중요하게 되어있는 건데요?”

 

“릴리스가 느닷없이 짐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았는가! 따라서 짐은 지금 당장 주인을 빼앗기지 않게 열심히 노력해야 한단 말이다!”

 

“잠깐만? 뭐라고요!?”

 

“짐의 말은 짐의 권위에 도전하는 색욕의 공작이, 짐의 소유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을 강탈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니라. 당연히 중요한 소유물은 3만개나 있으니 주인은 3만분의 1확률로 걱정해도 된다는 소리다.”

 

“그렇겠죠? 전에 있던 말은 제가 잘못 들은 거겠죠? 하하! 하하하...”

 

방금 내가 정말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무슨 날벼락이지? 오늘 날에도 나도 모르게 이리저리 내기에 걸리고 있는 품목과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건가? 그냥 이 세상이 다 망해버렸으면 좋겠군. 다른 차원에서는 마법의 소라고동이 모든 일을 해결해준다고 했는데, 그거라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차라리 회의를 하지 않고 마법의 소라고동으로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줄지도 몰라. 지금은 이런 나침반역할을 해주는 소라고동이 없으니, 내 마음은 항상 먹구름으로 가득해 한숨으로 내뱉기만 했다.

 

누군가는 흐린 날 뒤에는 꼭 맑은 날만 온다고 했던가?

지금은 그게 아닌 것 같지만...

 

“그래서 모든 재앙을 그 구슬에 담은 다음, 마신으로 각성한 아리엘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게 문제이지 않는가?”

 

“그거야 당연히 롱기누스로 일단락 마무리를 하거나, 엘티노스가 만든 그 봉인 장치에 같이 넣어놔야죠. 당연히 잘 풀렸을 거라는 전제조건이 붙지만, 지금 당장 아리엘이 우리를 적으로 인식해서 공격할 수도 있으니 대비할 것이 필요합니다.”

 

공중에서 내 볼을 스쳐 지나간 시나는, 정확하게 보드게임 안으로 주사위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다시 활공을 하면서 천천히 내려오는 시나는, 다시 말을 붙잡으며 12칸 앞으로 보내기 시작했고, 회의를 하는 의미가 거의 없어진 이 상황에서 루니아 누나는 내 옆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베니는 가져가도 되나요오?”

 

“지금 베니가 없으면 제가 화병으로 죽기 일보직전이니까, 나중에 가져가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당장 저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루니아 누나는 이길 수 있겠어요?”

 

“그럼요오. 카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싸울 수 있으니까요오.”

 

장난 같은 웃음으로 대답하는 모습을 보며, 몸 안에 있는 한숨을 담당하는 공장이 포화상태로 이르렀음을 짐작하고 있었다. 어처구니 없는 DLC로 한숨 패키지를 내뱉기 전에, 그나마 홀로그램으로 달에서 나와 마주하고 있는 달 토끼. 루나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달에서 바라본 지상은 한 곳에만 검은 색으로 물들인 것 같아요. 이곳에서 포격을 가하면 어마어마한 피해도 나오겠지만, 문제는 그 주변에 있는 파이론이나 신성 아우리온에도 나올 것 같아요. 이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서 사용하는 걸로 한다면, 주인님께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면 사용해야겠죠?”

 

“아니면, 내가 사용하라고 할 때 사용해. 그런데 파이론은 물론이고 아우리온까지 모두 불타 없어질 정도면 아예 쓰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완전히 행성을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박살내는 거와 뭐가 달라?

 

“대부분은 최악의 경우에 달로 피신하고, 마리아의 인도에 따라 다른 차원으로 도망가면 되겠네요. 이렇게 보면 도망가는 것은 확실하게 보험을 들어놓은 것 같아서 좋지만, 지금은 보험을 바로 이용하기보단,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이 최소한 살 수 있도록 구해내고 싶으니까. 네 손으로 수십억의 사람들이 모조리 몰살당하는 건 원하지 않을 테니까.”

 

“그건 그래요...”

 

말만 쉽게 정화한다고 하지만, 사람은 하나만 죽여도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실제로 경험한 나는 루나까지 그런 비극을 맛보는 것이 싫었다. 이곳에는 여전히 가능성이 많으니까 분명 구해내면 더욱 더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카렌은 계속 달에 있는 거지?”

 

“네. 주인님. 바꿔드릴까요?”

 

“아니. 카렌은 절대로 지상에 내려오지 말라고 해. 카렌을 보호하려는 목적도 있고, 혹시나 달에 추가적으로 공격이 가할지도 모르니까. 루시피나와 루니아 누나도 달로 보낼 거야.”

 

내 말에 느닷없이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소리치는 루시피나와, 똑같이 하다가 책상을 박살낸 루니아 누나는 각각 비슷한 색상의 붉은 눈으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만 통일하면 사이 좋은 자매인줄 알겠네.

 

“어째서야! 신랑! 내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누나는 슬프답니다아~! 저는 카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매지컬 루니아라고요오!”

 

“제가 바라는 건 달에 지금 지원병력이 없게 때문에, 지상에서 저희들이 일을 해결하고 있는 사이에, 달이나 그 외부로 침입하거나, 이 행성 밖에 분명 궤도를 돌면서 일을 꼬이게 만드는 녀석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가지고, 달에 잠깐 지원을 가달라는 거에요. 거기서는 언제든지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으니까, 상황에 따라서 제 쪽으로 오면 되잖아요!”

 

“아하! 그렇구나! 나는 신랑이 버리려는 줄 알고...헤헷!”

“카일은 정말 심술쟁이라니까요오?”

 

내 말을 끝까지 안 듣고 멋대로 탁자를 부수는 바람에, Yee.T 보드게임이 바닥에 이리저리 흩어졌지만, 레시아와 시나의 흩어져버린 보드게임의 조각들을 모조리 붙여서 복구 시켜놓고, 부러진 탁자는 잡화점의 물품이기 때문에 자동으로 복구가 되었다.

 

“팔랑크스는 잡화점에 대결계를 보수하고 강화해줘. 민간인을 수용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카일의 의견과 의도 잘 알았음. 카일의 마음에 들만한 여성들로 이루어진 민간인들로 채워 넣겠음.”

 

순간‘내 귀가 잘못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귀는 매우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결과로 비참함과 쓸쓸함을 뒤로한 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의 이미지를 왜곡시켜버린 팔랑크스에게 소리쳤다.

 

“야! 잠깐만! 내 의도를 완전히 왜곡해버렸잖아! 내가 말한 민간인은 남녀노소가 다 들어간 민간인이란 말이야! 주변에 있는 이웃이라도 구출해야 할 거 아니냐!”

 

“카일답지 않는 포괄적인 보호를 뜻하는 의견을 제시함.”

 

“너 저번에 먹은 무지개 빛의 쿠키의 후유증이 아직 완치되지 않았지.”

 

잡화점은 신인류가 난리 쳤을 때. 임시로 보호장소로 사용할 목적이고, 전투능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최후의 카드로 사용할 목적도 가지고 있다. 그걸 위해서 팔랑크스에게 부탁을 했지만, 잠깐 손을 좀 봐줘야 할 정도로 망가진 상태라 의심되었다.

 

“카멜롯으로부터 공격이 시작되었을 때. 달에서 잘 알려줘야 할 거야. 분명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는 괴물들이 모든 것을 갈아치워버릴 테니까.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남김없이 전부 찾아서 말살해야 해. 아리엘이 마신으로 되면서 자신의 생각을 구현화하는 능력이 펼쳐지고, 누군가에게 조종을 받던 아니면 자신의 의지로 세상을 갈아버리던, 무시무시한 참상이 나올 테니까. 루나가 정기적으로 관측해서 보고하도록 해.”

 

“알았어요. 주인님. 그럼 저는 이만 통화를 종료해볼게요. 만화를 그릴 시간이라서...”

 

홀로그램을 끄자 루나의 모습이 사라지며 한줄기의 빛도 남기지 않았다. 이제 레시아와 시나에게 지령을 내릴 차례인데, 그녀들은 아마 세상이 무너져도 보드게임먼저 끝내고 봐야 할 것 같으니 루니아 누나에게 입을 열었다.

 

“루니아 누나는 마리아에게 찾아가서 카멜롯 근처에 대결계 작업을 해달라고 하고, 달로 올라가시면 될 거에요.”

 

“마리아에게요오?”

 

고개를 갸웃거리며 느릿느릿 말하는 루니아 누나의 얼굴표정을 보아, 설명을 요구하는 방향이 왜 대결계를 작업하냐는 소리가 되겠지.

 

“첫 번째는 우리가 괴물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얼마나 강한지 등. 상세정보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그걸 확인하기 위해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대결계를 작동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숫자에 상관없이 제가 가지고 있는 구슬로 모조리 담아놓기 위해서. 세 번째는 의외의 경우인데 가장 최고로 선호하는 경우로는, 안에 괴물들이 모두 아리엘에게 흡수되어 응축되는 경우. 힘은 그만큼 강해지겠지만 저에게는 일격필살이 남아있으니, 적절한 위치에서 기습할 수 있을 거에요.”

 

“아리엘은 결국 죽여야 하는 건가요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쩔 수 없을 때는 제가 끝을 내야겠죠.”

 

아리엘이 나타나고 나서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 하나가 느닷없이 재앙이 되어 죽여야 할 대상으로 올라간 건 내 인생에서 처음이다. 분명 이야기도 잘 통해서 좋은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켈모리아가 아무래도 아리엘의 인생을 죄다 망쳐놓은 것 같아 마음이 찝찝했다.

 

“그리고 네 번째는 아직까지 켈모리아의 생사유무를 따져야 할 것이 있어요. 켈모리아가 살아있는 것만으로 상당한 변수를 제공하기 때문에, 켈모리아부터 제거해야 아리엘을 해방시켜주던지, 봉인을 하던지, 죽이던지. 여러 선택의 기로에 설 수 있으니까요.”

 

“그 주변에 있는 괴물들은 딱히 걱정할 것이 없다는 건가아?”

 

이미 이 대륙에서는 수많은 용사들이 존재하고,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보다 강한 사람이니까.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문제는 확실하다.

 

“저희들 이외에도 여러 강한 인력이 존재하니까요. 게다가 내일은 마법 기동반을 이곳으로 불러서 아테리카 학원으로 보낼 거에요. 이사벨 씨가 제 의견을 받아들인다면, 그들은 아리엘을 탈환하기 위해 움직이겠죠. 다만, 공상 속의 존재는 실체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제거하려면 일일이 전부 없애야겠지만...”

 

가장 귀찮은 것은 역시 저 안에 있는 괴물이 무슨 종류인지 모른다는 건가.

 

“그리고 루시피나는 달에 올라가기 전에 모든 드래곤에게 전해서, 드라고니스를 모조리 떠나라고 전해주세요. 드라고니스 이외에도 하피의 언덕에 있는 모든 하피들에게도, 비행할 수 있는 모든 생명체들은 느닷없이 닥쳐오는 바람에 갈피를 못 잡듯이. 안전한 곳에 미리 대기하고 있어야 살 수 있어요.”

 

“알았어. 신랑. 내가 말해볼게.”

 

이제 레시아와 시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어야 하는데, 검은 고양이는 말을 움직이면서 입을 열었다.

 

“짐은 12마계공작에게 전부 정보를 퍼트리고, 몬스터를 가꾸고 있는 마계공작들은 인간들과 일시적인 동맹상태에 돌입시켰다. 이미 짐은 10만의 대군을 징집하고 있으며 모든 징집이 완료된다면 대략 30만으로 늘어나겠지. 물론 이들은 선발대일 뿐이지만 짐의 계획은 최소한의 인력으로 끝을 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노라.”

 

“30만? 대체 그게 무슨 숫자에요? 그렇게 많은 숫자가 존재하긴 해요?”

 

“짐은 마왕이니라. 마계는 인간계와 다른 차원이며 포탈로 인간의 땅과 이어졌기 때문에, 마음대로 진입하고 퇴장할 수 있게 만든 것뿐. 실제 마계는 인간계보다 훨씬 넓고 인간에게 배운 기술로 어마어마하게 진보와 성장을 한 결과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체 뭘 해야 선발대가 30만이라는 거지? 아무튼 레시아의 생각으로는 30만 대군인데 선발대라고 했으니 선발대를 이끌고 카멜롯을 맨 처음 막아낼 생각인가 보다.

 

“짐은 항상 준비를 다하고 쉬는 것이니라. 그러니 주인은 짐에게 상을 꼭 줘야 하노라.”

 

“일이 잘 끝난다면 줄게요. 아직까지 알려주지 않은 것이 있는데, 지금 땅의 정령왕은 적의 손에 있기 때문에 땅을 너무 신용하면 안 됩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프리트와 윈디가 이미 해결하러 정령계로 떠났으니, 결과가 나온다면 저에게 돌아올 거에요.”

 

하얀 올빼미는 내 옷깃을 물면서 잡아당겼다. 내가 그쪽을 돌아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꺼낸 말은...

 

“마스터. 저는 뭘 하면 됩니까?”

 

“시나는...나와 동화한 상태로 대기. 맨 처음에 공세가 얼마나 심각하냐에 따라 힘을 사용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샤이어에게 미리 연락해 발키리와 심판자들을 지상으로 내려보낼까요?”

 

“아니. 샤이어에게는 우리의 계획을 아우리스 여신이나 다른 여신들에게 알리라고 해주고, 조만간 천계에 올라가서 엘티노스를 만나야 하니까. 엘티노스에게 찾아가서 알려주라고 해.”

 

 

회의는 이렇게 끝이 났지만 레시아와 시나의 보드게임은 잡화점이 문 닫을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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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보면서 글을 쓰는데.

손이 자꾸 멈추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