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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1 - 3

461

 

 

 

천계는 어떻게든 회유를 했으니 상관은 없고 지금은 검은 높새바람의 공중요새에서 에밀리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주변에 토끼 인형으로 가득한 에밀리의 방은, 정말 살아 움직일 것 같은 토끼 인형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작은 무릎 위에서는 하얀 토끼 하나가 에밀리의 사랑을 받는 듯이 우월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인형주제에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하고 있다니.

 

그 옆에는 페트리가 차를 나에게 내밀면서 말을 걸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지금 에밀리 님께서는 철저하게 어떻게 하면 모든 지도자들을 자신의 밑으로 둘지, 생각을 하고 계시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는 아무리 말을 걸고 건드려도 응답을 하지 않으니까. 차라리 나중에 오시는 게 어떨까요?”

 

“얼마나 걸릴 거라고 예상하는데?”

 

여전히 명상하고 있듯이 토끼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아무 말 없이 2시간이 지났다고 했지만, 페트리가 말한 정보로는 최소 30분에서 최대 6시간이나 걸린다고 했다. 그럼 내가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예민하게 구는 상황인 것 같은데. 그래도 조용하게 명상을 하듯이 있는 모습을 본다면, 별의 아이답게 천체를 돌려서 진리를 파악하듯이, 이 세계도 큐브퍼즐처럼 끼워서 돌리고 맞추고 있었다.

 

“카일 씨. 예정대로 하멀 수사관에게 가는 건 어때요?”

 

“카일. 졸려.”

 

정령계로 역소환 된 이프리트와 윈디 메르아를 다시 소환했지만, 이런 선택이 잘못 되었다는 생각을 좀 많이 들게 했다. 당연히 나와 계약을 맺어서 내가 부르면 오는 것이 정령들이지만, 이 정령왕들은 자기 멋대로 밖에서 뛰어 놀 수 있으니, 여전히 잡화점에서 지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에밀리의 무릎에 하얀 토끼인형이 있다면, 내 무릎 위에는 이프리트가 베개로 삼아 누워있는 모습.

 

내 뒤에서 윈디는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주위를 산만하게 만드는 1등 공신의 역할을 맡았는지. 아니면 뭘 잘못 먹었길래 에너지가 넘치는 바람으로 가만히 있지 못하고 토끼인형들을 이리저리 만지고 보면서 나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윈디. 너 그것만 59번 말한 거 알고 있어?”

 

“그럼 60번을 채우도록 하죠. 예정대로 하멀 수사관에게 가는...으읍 으으읍읍!”

 

결국 아이언 클로가 참지 못하고 튀어나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양손을 사용했는데, 하나는 윈디의 입을 가리고 다른 하나는 정상적인 압박용이라고 해야 하는 게 좋겠지. 적당하게 1분동안 압박을 주자 축 늘어진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건어물...아니. 윈디를 무시하고 이프리트의 머리를 빗으로 천천히 쓸어 넘기기 시작했다.

 

레시아와 시나의 경우에는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잡화점을 지킨다고 했지만, 레시아의 경우에는 마계에 있는 군대를 소집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리라.

 

“아무래도 윈디의 말처럼 하멀 씨부터 찾아가는 것이 맞을까?”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이제 다 해결했거든.”

 

토끼안대에 가려져있으니 전혀 눈치를 못 챘지만, 지금 퍼즐을 다 풀었는지 토끼인형을 무릎 옆에 내려놓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제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나 봐? 하늘에서 뭐라도 쏟아져 내려온 거야?”

 

“무시무시한 일이 있었지. 그건 둘째치고 곧바로 본론으론 넘어가서, 우리들은 지금 여신으로부터 한 지역을 몰살시켜도 눈감아준다는 물품을 얻어놓은 상태야. 다만 귀속이 되어있기 때문에 너희들이 가장 은밀하게 움직여줘야 할지도 모르고.”

 

“그래? 그거 정말 다행이네. 하지만 곧 필요 없어질 것 같은데?”

 

에밀리의 말에 내 귀가 살짝 움찔거린 것 같았다. 곧 필요 없어진다는 말을 해석하자면, 우리 누구나 다 알 수 있듯이 켈모리아가 아리엘을 마신으로 각성시킨다면, 모든 천계와 마계가 파멸을 막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니까. 굳이 카멜롯을 지금 당장 지도밖에 지워버리려는 나의 의도라면, 초기진압이라는 말이 더욱 더 큰 의미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필요 없어질 거라는 말은 내가 실패한다는 소리인가?

 

“내가 초기진압에 실패한다라는 소리야? 아니면 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아리엘이 각성을 한다는 소리야?”

 

“둘 다 아냐. 아리엘은 이미 각성한지 오래였고, 카멜롯 전체는 그 사실에 대해서도 모르지. 애초에 이 허무맹랑한 상황에서 진실을 똑바로 마주볼 수 있는 사람은 하멀과 나 밖에 없어.”

 

하멀 씨와 에밀리 밖에 없다는 말이라면? 진실과 똑바로 마주할 수 없다는 소리인가?

 

“레이베리아의 힘을 이어받았으면 지금 초기 진압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너무 늦어버린 뒤라서 말이지. 이런 아슬아슬한 경계를 만약 카일이 스스로 깨어날 수 있다면, 그때는 카일이야 말로 영웅이 되는 거지. 우리는 위험하니까 깨어나지 않는 척. 인지하지 않는 척을 하고 있어도. 카일은 그런 참혹한 현실을 받아드릴 이유는 없잖아?”

 

무슨 소리인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뭔가 뒤틀려 있는 장소에 있다는 소리일까? 아리엘이 각성한지 이미 오래라면 지금 당장 막아야 할 텐데. 무의미할 정도로 너무 평화로운 세상이었다.

 

“이게 가상의 세계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

 

“바보 같은. 그럴 리가 없잖아? 현실인지 꿈인지 확인하고 싶으면, 동전이라도 돌려보던가?”

 

그럼 대체 뭘 대한 인지라는 걸까? 뭘 깨어나야 한다는 소리지? 나는 머리가 답답해지기 시작했는데, 에밀리는 개의치 않고 여유롭게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확실히 별의 아이가 유별나다고 하는 이유라고 한다면, 어린애는 주스를 마셔야 하는 나이인데, 차를 마시면서 즐기고 있는 모습에 이질적인 기분이 내 등을 타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선문답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당장 뭘 조심하라는 거야? 뭘 인지하고 뭘 깨어나야 한다는 건데?”

 

“공포야.”

 

공포?

 

“카일은 공포에 대해서 똑바로 마주봐야 제대로 된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지금 당장 켈모리아를 처단해야 할지. 아니면 카멜롯 그 자체를 날려야 할지. 선택은 카일의 몫이지만 이번엔 제대로 해결해주길 바래.”

 

“이번엔?”

 

에밀리가 말하는 것은 하나하나 숨겨진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일반인의 청각으로 받아들이면서 뇌에서 아무리 집어봐도, 그에 근접한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별의 아이라서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 짧은 시간 안에 세상의 모든 이치를 보게 되는 것일까?

 

내가 답답해 하는 것은 이프리트를 통해 할 수 있었는데.

 

“카일? 무릎 떨지마. 자는데 방해돼.”

 

“이제 낮이니까 좀 일어나요. 이프리트. 언제까지 자고 있을 거에요?”

 

“하지만 나의 일생에 있어서 잠은 중요해.”

 

여전히 오랜지 빛의 몽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 중 하나인 내 무릎을 베고 다시 자려고 했지만….

 

“이프리트. 동화할 준비나 하세요. 이 장소에서 곧 나가야 하니까.”

 

“알았어. 대신 5시간만 더.”

 

“놓고 가기 전에 당장 안 일어나!”

 

소리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본 에밀리는 휘파람으로 분위기를 쓸어 내렸다. 그 휘파람에 멈춘 나는 서서히 에밀리를 올려다 보았고, 언제부터인가 내 앞에 서있는 에밀리는 조용히 이프리트에게 손을 뻗어내면서, 다음과 같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 아이는 다른 정령왕에 비해서는 너무 어리니까. 카일이 잘 보듬어 줘야 한다고? 이렇게 귀여운 애들을 카일이 혼자 독점하는 것은 너무하지만, 그래도 엘티노스 잡화점을 이어받겠다는 의지로 엘티노스의 이름을 이어받겠다면, 카일 옆에 붙어있는 모든 사람들을 굽어살펴야 한다고? 그러니 이프리트가 응석을 부린다면 받아줘야 하고, 마왕과 빛의 여신이 밤자리를 요청한다면 그걸 피하지 말라고? 그 외에도 주변 여성들에게 좀 자비를 준다면, 이번 일은 매우 쉽게 진행이 될 거라 생각해.”

 

“느닷없이 내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할 줄은 몰랐는데? 어린아이가 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발언 아냐?”

 

“그것도 다 필요한 수단이야. 카일 씨는 일이 유연하고도 빠르게 진행되면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나는 그에 대한 제시를 한 것뿐이지. 여전히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약하다고 생각한다면, 카일 씨의 옆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부탁을 하면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에밀리의 말이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이유라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나보다 강하기 때문이겠지.

 

“유연하게 일이 진행되면 좋아하지만, 너도 아직까지 어리다고 생각해.”

 

이프리트와 윈디를 동화시키면서 천천히 일어났다. 내가 앉아있을 때는 에밀리와 비슷비슷한 키로 있었지만, 역시 일어나보면 나의 키가 더 컸다.

 

“작전이 잘 먹히는 것은 매복이 있다는 거야. 내가 안심하기 위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움직이기 전에, 차라리 내가 고생을 하고 말지. 그리고 비장의 카드는 항상 마지막까지 남겨놓은 사람이 이기는 거야.”

 

어린애에게 충고를 하는 심정으로 말했지만, 에밀리가 말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긴 했다.

 

“그러면 카일 씨가 항상 바라는 이상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야. 그래도 괜찮으면 알아서 하도록 해. 확실히 어린애의 충고를 듣는 것은 어른으로서 할 게 못 되지?”

 

그 말을 뒤로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기 시작했다. 나보다 강한 사람들은 사방에 널려있으니, 힘 차이로 인한 무력함으로 내 발이 무거워진 것은 아니고, 차라리 에밀리를 만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휘어잡았다.

 

공포와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부터, 아리엘은 이미 각성한지 오래라는 말. 차라리 모르고 진행했으면 좀 더 좋았을 것 같은 말밖에 없었다.

 

“하긴, 켈모리아가 내가 간 이후에는 곧바로 아리엘을 각성시킬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평화롭게 지내고 있단 말이야? 뭐 부셔지는 일도 없고, 잡화점에는 공격도 들어오지 않았지. 오히려 천계에서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여신들을 진정시킨 것밖에 없어.”

 

“그게 뭐가 이상한 건가요? 카일 씨?”

 

윈디의 질문에 대답이라고 한다면...

 

“나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면서 움직이는 사람이야. 마신을 각성시켰다면 이곳이 먼저 난장판이 되어야겠지. 그런데 지금은 너무 조용하니까. 그게 더 어처구니 없다는 소리가 되는 거야.”

 

아니면 지금 아리엘을 통제하지 못하는 켈모리아가 일시적으로 봉인한 상태라던가. 머릿속에서 모든 에너지를 활용해서 추측이란 추측은 다 뽑아내고 있었다.

 

“너무 미래에 있는 일을 걱정하는 건 아니에요? 아까 전에 그 별의 아이가 하는 말도 그렇고, 그냥 잡화점 안에 있는 다른 분들에게 부탁해보는 것이 어때요?”

 

“내가 부탁할 일은 따로 있어.”

 

“좀 더 중요한 일을 부탁하라는 소리에요. 예를 들어서 적진 한가운데에 정보를 꺼내오거나,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1성구부터 7성구까지 다 모아서 신룡을 부른다거나.”

 

“그 사람들이 다른 차원에 가면 난장판이 될 것 같으니, 그런 일은 시키면 안 돼. 아무래도 하멀 씨가 좀 더 쉽게 알려줄지도 모르니까. 이번에는 프리트론으로 가야 할 것 같으니 부탁할게 윈디.”

 

 

천칭들의 모임에 모여드는 지도자들을 규합하고 통제하는 일은, 에밀리가 알아서 해줄 것이니. 에밀리와 하멀 씨가 인지하고 있는 위협에 대해 묻기 위해, 떨어지는 빗물과 함께 땅으로 떨어져 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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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서 그나마 덥지 않은 듯한...아 에어컨을 틀었구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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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1 - 2

460

 

 

 

아우리스와 비니스는 잡화점 안에서 느긋하게 앉아있는 데모르테를 바라보며 한숨이 나오기 시작했다. 본래 데모르테를 붙잡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내가 한 말 때문에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또 어떻게 흘러갈지 알아내기 위해 자문을 구하는 것인데. 금기를 어겼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뻔뻔하게 있는 데모르테는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에 대해 예지를 해달라고? 아까 전에는 잡화점을 부셔가면서까지 난동을 부리더니, 이번에는 너무 어처구니 없는 거 아냐?”

 

“시끄럽다. 우리도 지금 귀중한 것이 걸려있기 때문에, 앞으로 마신이 깨어나고 벌어질 일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것일 뿐이야.”

 

“귀중한 것은 카일의 싸인이 담긴 백장미 최신화인 거야?”

 

“이번에 카일의 간곡한 부탁과 공물로 너의 죄를 감형하는 것이니까, 마신이 깨어났을 때 무슨 일이 터지는지 알려주기만 한다면, 앞으로 300년간 지상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봐주지. 그러니 운명의 여신인 데모르테여. 미래를 밝혀보아라.”

 

비니스가 아우리스를 대신하여 데모르테에게 재촉하듯 입을 열었지만, 여전히 300년씩이나 지상에 내려가지 못하는 것은 너무한지 자연스럽게 제안을 하기 시작하고….

 

“300시간. 300시간이면 가능할 것 같아. 300년은 너무 하잖아? 카일의 자손의 자손의 자손을 보게 될 거라고?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손자를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말이지?”

 

“왜 저를 보면서 그런 소리를 내뱉는 거에요. 우선 저는 관여하지 마시고 세분께서 알아서 맞춰주세요. 밖에 나가서 무너진 잔해나 쓸어 담아야 하니까. 시나와 레시아는 잠깐 저와 같이 이야기 좀 하죠.”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는 총총 걸음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뒤에서 들려오는 루니아 누나의 목소리로는“별거 아니지만 쿠키를 만들어보았어요오~”라는 말이 들려왔다. 저게 말로만 듣던 죽음의 협상인가.

 

“주인이 루니아에게 요리를 시킬 줄은 몰랐노라.”

 

“정확하게는 데모르테가 이 일을 전부 예지를 하고 루니아 누나에게 시킨 거겠죠. 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른 방향으로 해결할 문제가 또 하나 있어요.”

 

3명의 상위 여신이 잡화점에서 비밀리에 회의를 하는 동안, 무너진 잔해와 땅은 천천히 복구해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새벽의 달밤이 아직까지 떠오르고 있는 시점에, 밖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한 명의 여신이 안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사실 후드에 가려져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는데, 모습으로부터 안쓰러울 정도로 뚫어져라 보고 있다는 걸 추측했다.

 

“거기서 뭐해요?”

 

“데모르테가 무사히 천계로 올라가주기만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카일이 보여준 협상은 저에게 꽤나 흥미를 가져다 준 요소이기도 하며, 이후 천계에는 더욱더 밝은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다만, 인간계에서는 아리엘이라는 소녀가 마신의 그릇이 되어 마신이 깨어난다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의문이군요? 어째서 당신은 아리엘을 직접적으로 보호하지 않았던 거죠?”

 

2쌍의 날개를 지닌 여신은‘어째서’라는 말을 사용하여, 아리엘을 직접적으로 보호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강조를 했다. 그 외에도 어차피 천계는 상관이 없지만 인간들은 모조리 혼돈의 도가니로 가도 내 알 바는 아니라는 뉘앙스까지 말하는 것으로 보아. 인간과 절대 친하지 않은 여신이라는 것까지 알 수 있는데.

 

아리엘을 왜 보호하지 않은 가에 대해 물어봤으니, 내 나름대로의 대답을 꺼낼 수 밖에 없었다.

 

“아리엘을 우리가 보호하고 있는 와중에, 마신이 되어 잡화점부터 날아가면 안 되기 때문이니까요. 마신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영혼으로 그릇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건 이미 시체협회에 있는 집단자살의식으로 거의 맞춰진 상태였고 1개의 영혼만 남았어요. 지금쯤이면 켈모리아가 그 사람까지 죽였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아직 깨져나가지 않는 이유라면...글쎄요. 뭔가 더 필요하다는 소리인 거 같은데.”

 

그보다 켈모리아가 도망칠 장소를 제거하는 것이 1순위다. 아리엘을 데리고 와서 보호를 한다면 우리가 오히려 발을 묶이는 형태가 된다. 언제 각성할지 모르는데 각성하는 순간 무슨 일이 터지기도 전에 잡화점이 날아갈지도 모르니까. 혹은 파이론이 지도에서 지워지는 끔찍한 순간을 한번 더 맞이하면 안 되니까.

 

“마신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마도서가 필요하지. 마침 별의 아이가 잘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그걸 어떻게 알아요? 혹시 데모르테 대신 운명의 여신으로 된 거에요?”

 

“아니. 카일이 하멀을 알고 있고 에밀리를 알고 있다면, 과거에 카일이 얻었던 금단의 마도서를 둘 중 한 명에게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하멀을 자주 만나지 않고 에밀리를 만나는 것으로 보면, 에밀리에게 마도서를 줬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리고 나는 운명의 여신이 아니라 레이비스 가문이 숭배하는 여신이야. 이름은 들어봤겠지?”

 

레이베리아가 이곳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너는 내 힘을 받는 걸 거부했다고 들었어. 아무리 루니아가 양녀라고 해도 그녀는 레이비스 가문이니. 평민인 너는 귀족의 이름을 따는 것이 좋다고 보는데?”

 

“저는 어처구니 없게도 잡화점에 귀속된 몸이거든요.‘카일 레이비스’라기보단...제가 네이밍 센스가 없어도 아마‘카일 엘티노스’로 되야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위대한 영웅은 천계로 가서 신이 되어있고, 그의 이름을 널리 기리기 위해 성을 꼭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엘티노스라는 성을 사용할 거에요. 그러니 루니아 누나의 경우에는‘루니아 엘티노스’가 되는 경우겠죠.”

 

“흠~ 잘 빠져나가는구나. 확실히 엘티노스의 말대로 너에게는 진실을 꿰뚫어보는 눈은 필요 없을 것 같아. 그런데 엘티노스가 자신의 이름을 너의 성으로 쓰는 것은 반대할 것 같은데?”

 

“그건 제가 어떻게든 납득시켜봐야죠.”

 

검은 고양이는 앞발로 내 볼을 툭툭 건드렸다. 건드릴 때마다 숨겨진 손톱이 살살 긁고 있었는데...

 

“주인. 그러면 짐은 레프리시아 엘티노스가 되는 것인가? 주인은 성이 없어서 간편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뒤에 글자가 달리는 것도 숙명인가 보군?”

 

“아니. 레시아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럼 마스터. 저는 람파시나 엘티노스로 호적에 써놓으면 되는 것인지요?”

 

“어째서 이럴 때만 둘이 호흡이 잘 맞는 건데. 서로 싸우면서 말이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할 때. 천천히 밖으로 나오고 있는 아우리스와 비니스는 내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데모르테와 회의를 했는데. 우리는 카일이 이번 한번은 다른 구역에서 난동을 부려도 눈을 감아 줄 것이다. 다만, 딱 한번뿐이고 그 이상은 인간들의 불만이 이곳까지 오기 때문이니, 실수 없이 일을 진행해야만 한다. 그러니 이 팔찌를 받고 우리들과의 언약을 어기지 말아다오.”

 

“그런데 이 팔찌는 뭐에요? 매우 위험해 보이는데?”

 

아우리스가 말을 끝마치고 내가 질문을 했을 무렵. 비니스 여신이 차근차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레테의 단검과 교환할 물건입니다. 딱 한번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그 팔찌 안에 모두 담아놨으니까요. 저의 권능이 담겨있는 팔찌이며, 그 팔찌를 착용하고만 있어도 신벌의 대행자라는 뜻이 됩니다.”

 

팔랑크스는 이 팔찌를 착용한 적이 없었는데. 신벌의 대행자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었지만, 아무튼 내가 받은 팔찌는 본격적으로 다른 대륙에 공격을 나가거나 침략할 때, 단 한번만 천계에서 개입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뭐라 할 수 없다는 소리라면.

 

“고맙습니다. 성원에 힘입어서 꼭 성공하도록 하죠.”

 

“당연히 성공해야 할 겁니다. 안 그러면 이 세계는 파멸을 맞이할 테니까요.”

 

아우리스와 비니스, 레이베리아가 순서대로 천계에 올라가는지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 심판자와 발키리가 모조리 사라지듯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한숨이 한 가득 몰려오고 여신들에게 받은 팔찌를 아공간 속에 넣어 보관을 한 뒤에서야. 일단락 마무리가 되어가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주인은 뒤에 엘티노스라는 성을 붙이고 싶은 건가?”

 

“그럼 어떻게 해요? 딱히 좋은 성도 생각나지 않는데.”

 

여전히 이름에 관련된 이야기로 물고 늘어지는 레시아와 시나는 나를 따라 잡화점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정문을 열었을 무렵. 쓰러져 있는 데모르테와 왼손에 들려있는 것은 무시무시하게 요염한 빛을 띠고 있는 무지개 색의 쿠키였다.

 

“그러니까 대체 이걸 먹는 이유가 뭐냐고...”

 

아직까지 산처럼 쌓여있는 무지개 빛 쿠키를 베어 물고 있는 루니아 누나는, 나에게 권유하듯 한 손으로 쿠키를 들면서 오른손가락으로 가리켰고, 나는 배고프지 않아서 먹지 않겠다고 자연스럽게 후퇴했다.

 

“그런데 루니아 누나. 데모르테가 왜 그 쿠키를 만들어 달라고 한 거에요?”

 

“그거는요오. 데모르테의 예지를 발현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으로 만들 것이 필요하다고 했어요오.”

 

“무슨 수면침에 맞아야 추리를 푸는 탐정도 아니고, 의식을 잃어야 예지를 발현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무시무시한 거 아니에요? 그 전에 지금 의식을 잃은 건지, 아니면 스틱스 강에서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요.”

 

당연히 천계의 존재는 불멸의 존재라서 어떻게든 돌아오겠지만, 여신마저 날려버리는 루니아 누나의 요리실력은 매번 무섭기만 했다.

 

“그런데 카일은 단 한번의 기회를 어떻게 사용할 거에요오?”

 

“그걸 좀 생각해봐야죠. 어떻게 해야 이 일을 단 한번에 끝낼 수 있는지. 우선 팔찌를 받아서 막말로 카멜롯 그 자체를 지워버려도 상관은 없지만, 지금 잘못한 것은 켈모리아 하나뿐이니까. 켈모리아에게 항복을 받아내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제거를 하기 위해서, 검은 높새바람의 힘이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엘티노스도 만나러 가야하고요.”

 

엘티노스를 내가 스스로 만나러 간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내일 당장 최후의 결전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문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저 위에 가지런히 놓여진 무지개 빛의 쿠키를 먹고 싶지는 않으니. 직접 천계로 가거나 이곳에 엘티노스를 불러야 하는 것이 옳은 방법.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찾아갈 수 없는 이유라면 잡화점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며, 내일 아침에 천천히 알아보도록 하자. 켈모리아의 입장에서는 내가 급하게 뛰어가다가 넘어지길 바라는 상황이니까.

 

“생각을 해보니까. 2층과 3층에 있는 물품도 전부 확인해봐야겠네요. 이 상황에서 좋은 물품이 존재할지도 모르고, 어쩌면 안 좋은 상황을 전부 역전시켜줄 수 있는 물품도 있을 거에요.”

 

엘티노스 잡화점에 있는 모든 물건은 위험하기도 하고,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이곳에서 보관을 하고 봉인을 하는 거지만, 이것들을 적절하게 사용만 할 수 있다면 저주받은 물품에서, 유능한 물건으로 바뀌기도 하니까.

 

 

제발 내일 별일 없이 아침 해를 맞이하기를 바라며, 조용히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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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은 엔비디아 지포스 데이에 가게 되어서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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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1 - 1

459

 

지금 당장 부수러 가야 하지만 절차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그 절차를 밟는다면 공식적으로 나에게 검이 쥐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절차고 나발이고 지금 당장 부수러 가야 하지 않을까?

-잡화점 안에서 시나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카일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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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모리아가 다른 일을 꾸미기 전에 카멜롯을 공격하고 싶은 것은 맞지만, 지금 당장 공격하기에는 많은 장해물이 존재했다. 내가 멋대로 가서 때려부수면 세상으로부터 적이 되어버리기에, 머리 위에 슬라임 비슷한 베니를 올려놓으면서 천천히 정신을 가다듬고 있어야 했다. 여전히 공격적인 분노는 가라앉았지만 불안감은 계속되었으니까.

 

“주인은 탈출할 구멍은 남겨놓고 있는 건가?”

 

“탈출할 구멍이라뇨?”

 

“주인이 새벽에 말한 것처럼 켈모리아의 자작극으로 인해 세계가 망해버린다면, 주인은 탈출할 구멍이 있느냐는 소리다.”

 

“그때는 잡화점이 알아서 하겠죠. 아니면 마리아가 다른 차원으로 인도할 거에요. 하지만 저는 탈출하는 것보단 지금 이 곳을 정상적으로 막아내는 것이 좋다고 봐요. 만약 아리엘이 마신이 되는 그릇이라면, 분명 마신이 되어서 켈모리아가 자멸하게 만들어야 하겠지만, 땅의 정령왕까지 저주로 속박해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걸 보면, 켈모리아가 강한 이유는 모든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의 힘을 흡수한 것이겠죠.”

 

베니는 머리 위에서 기이한 마찰소리를 냈다. 켈모리아가 나에게 보낸 기괴하면서도 익숙한 광기는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항상 이상한 말만 늘어놓고 이 세상의 균형이 잘못 되었다는 말을 하는 바보 같은 천사가 있었는데.

 

“레시아가 봤을 때는 이 세상의 균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짐의 선생님은 다른 관점에서 보라는 말을 이어받아 노력하고 있노라, 따라서 지금 주인의 질문을 대답하자고 하면, 아주 기본적인 생태계와는 전혀 다르긴 하지. 본래 짐과 같은 마왕이 인간계와 전쟁을 벌이고, 인간은 단합되어 상부상조하는 경제순환을 돌려야 하는 것이...”

 

“아니. 경제구조까지 들어가면 더 복잡해지니까. 지금은 단순히 잘못됐냐고 묻잖아요?”

 

“잘못되었다. 그렇지만...”

 

검은 고양이는 즉답을 하며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짐은 이렇게 잘못된 세계가 오히려 가망이 더 높다고 보고 있노라. 천계와 마계가 인간계에 조금씩만 간섭하고, 마계와 인간이 서로 친하게 지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여전히 마계로 오고 있는 인간은 마족의 지식을 배우기 위해, 마계에서 인간계로 떠난 이들은 인간의 기술을 배우러 가지. 언젠가는 마족이 잠재적인 적이 아니라, 단순한 종족으로 분류되는 것을 바라고 있다. 그걸 위해서라도 짐은 꾸준히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고 있노라.”

 

레시아가 선생님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바늘이 내 심장을 찌르고 양심을 찌르고 있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지금 그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옆에 있는데 말이지만, 아무래도 레시아가 제대로 성장한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무심코 나는 검은 고양이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주인? 갑자기 왜?”

 

“아뇨. 그냥 무심결에 쓰다듬어보고 싶었어요. 좋은 사람이었나 보네요.”

 

“물론 추억 속에 있는 사람이니라. 지금은 약속을 저버리고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그렇고 남자들은 한번 약속을 하면 죽어도 지키지 않는 것이 남자인가? 짐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뭐라 말도 안되지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공식이 그때 성립되었노라.”

 

무의식적으로 레시아와 눈이 마주치기 힘들어서 다른 방향을 억지로 보고 있었다. 다음부터는 레시아와 같이 있을 때, 그 바보 같은 선생님을 두 번 다시 거론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과거에 있으면서 어린 레프리시아에게 좋은 경험뿐만이 아니라, 나쁜 경험까지 한 가득 얹어버렸다.

 

“그래도 주인은 그 선생님보다는 약속을 잘 지키니 좋은 사람이니라.”

 

제발 그런 말 나에게 하지마. 죄책감이 올라오다 못해 저 하늘의 별 중 하나가 될 것 같으니까. 아무튼 다른 주제의 돌려야 하니...

 

“그런데 주인. 나중에 짐이 개인적으로 의뢰를 할 것인데 부탁해도 되겠는가?”

 

“설마 그 선생님을 찾는다는 의뢰는 아니겠죠?”

 

“어떻게 알았는가?”

 

“아니 대체 왜 그 사람을 찾으려고 하는 거에요? 지금으로부터 얼마나 지났는데요? 거의 50년정도 지났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레시아는 앞발을 핥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도 찾고 싶다. 적어도 선생님의 묘라도 찾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노라. 그러니 이 일이 끝나도 주인은 절대로 쉴 생각하지 말거라, 사람을 찾는 일은 어느 한 장소를 지도에서 지우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니 말이다.”

 

“알았어요. 찾는데 도와드리죠. 설마 잡화점 멤버가 의뢰를 할 줄은 몰랐지만, 최대한 도와드리긴 할게요.”

 

이 일이 끝나고 당장 어디론가 적당한 곳에 찾아가서 이름없는 묘를 만들어야겠다. 돌무덤을 놓고 그냥 대충 여기라고 말하면 되지 않을까? 그보다 내가 내 무덤을 만들겠다는 생각부터 잘못된 거 아냐?

 

“오랜만에 선생님의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주인과 선생님을 비교하면 닮은 구석보다는 다른 구석이 너무 많다.”

 

“다르다고요?”

 

과거에서는 나보다 강한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한 건 둘째치고, 남들에게는 강하다는 인상을 남겨야 하는 것도 있고, 그때 당시에는 정말 마음먹는 것에 달렸다는 말이 통한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않고 내 멋대로 움직이는 바람에 아무래도 다르게 보일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선생님은 항상 자신감이 넘치셨지만, 철저하게 움직이는 계획을 순식간에 생각해냈다. 그러니 지금 선생님과 주인을 두고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분명 짐은 선생님을 따라갈 정도로 카리스마 있는 남자다.”

 

레시아도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건가.

뭐 그건 상관없지만 지금 나에게 부족한 것은 자신감이라는 걸지도 몰라. 게다가 지금 당장 켈모리아로부터 공격이 올 수 있는 이 상황이라면, 내가 자신감을 가지고 대처하는 것이 맞을까?

 

과거로 시간여행 할 때의 나를 되찾아야 하는 걸까?

 

“마스터. 돌아왔습니다.”

 

언제 나타났는지 내 어깨 위에 하얀 올빼미가 올라왔고, 흥미로운 대답을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천천히 시나에게 질문을 했다.

 

“수고했어. 시나. 그래서 아우리스 여신은 뭐라고?”

 

“우선. 우리가 데모르테를 숨겼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중죄라면서, 천계가 이곳을 향해 공격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군.

켈모리아가 왜 그렇게 자신만만했는지 이제 좀 알 것 같네.

 

“그래서 그 공격은?”

 

“지금입니다.”

 

“아직 저녁도 못 먹었는데 정말 갑작스러워서 손님도 맞이 못하겠...”

 

-콰아아앙!

 

집 전체가 폭음과 동시에 지진이 울려 퍼졌다. 위에서는 검은 날개를 펼친 데모르테가 “음, 벌써 들켰나? 예정보다 좀 빠른데?”말을 뱉었는데, 검은 드레스를 입은 상태로 여유롭게 나왔다면, 지금 이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을 한 것 아닐까?

 

“뭐. 천계의 법에서는 지금 당장 데모르테를 잡아놓는 게 중요할 테니까요. 그런데 사키엘은 대체 왜 만난 거에요?”

 

“영겁의 노래에 쓴 보석에 대해 물어보려고 한 것뿐이지. 그런데 그거 알아? 사키엘이 말하기를 마신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이미 여신들 사이에서 입이 오르고 내리고 있었다는 것. 당연히 아우리스와 비니스 여신은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그걸 주도한 것은 당연히 켈모리아라는 말이었지. 그만큼 과거와 현재에 영향이 너무 많아.”

 

“아니 무슨 그림자 분신술 쓰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현재에 있는 사람이 동시에 과거에도 영향을 끼치는 거에요? 트리니티처럼 분신을 하면 모를까...아, 이런. 그렇구나.”

 

이제서야 내 기억 속에 잠깐 출타했던 그 천사의 이름이 생각났다. 트리니티는 3명의 분신을 나누지만 켈모리아의 성격이라던가 그게 매번 바뀐 이유라면, 지금 있는 켈모리아는 켈모리아 2라고 지칭하는 게 더 좋을 정도.

 

“트리니티라면 주인이 이미 죽인 자가 아니던가?”

 

“하지만 천계에 있는 존재는 불멸의 존재들이잖아요. 초월체로 변하기 전에 죽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영혼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다른 이에게 흡수 된 거에요. 거기에 켈모리아 특유의 정신이상증세와 같은 성격이 합쳐지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시간문제겠죠. 그런데 그건 또 의문이라면, 켈모리아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고 진행해온 걸까요?”

 

-콰아앙!

 

“밖에 있는 사람들부터 진정시켜야겠네. 이거 원...”

 

다시 진동이 울리고 흙먼지가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창밖에는 수많은 심판자와 발키리가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정문을 열고 나가면서 나 혼자 나갈 거라는 말과 함께, 문을 닫고 앞에 보이는 아우리스와 비니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잡화점에 공격을 하는 건 좀 아니라고 보는데요?”

 

부족한 자신감은 언제나 나를 나락으로 떠밀어야 생겨날 테니까, 지금 목숨을 걸고 협상을 하려면 나 혼자 나가는 것이 맞겠지.

 

성녀의 몸을 빌려오지 않았기에, 거대한 로브와 날개만 달린 모습으로 나타났다. 단지 아우리스와 비니스 여신을 분류하는 방법이라고는, 로브에 새겨진 문양이 새의 날개처럼 하나만 있는 것이 아우리스, 그리고 양쪽 날개 사이에 지팡이가 세워진 듯한 문양은 비니스의 표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가 담긴 음성이 아우리스의 후드 속에서 뿜어져 나왔으나.

 

 

“데모르테를 숨겨주는 중죄를 저질렀으니 이는 처벌받아야 마땅...”

 

“그 전에! 사키엘의 소식으로 듣자니 여러분들은 마신을 만들자는 말이 오고 갔다면서요? 그 바보 같은 보석 하나로 어떻게 마신을 만드는지 잘 모르겠지만, 사키엘을 지금 당장 풀어줄 것을 요구합니다.”

 

아우리스의 말을 끊어버리고 막 나가는 나를 막으려면, 옆에서 레시아와 시나의 중재가 필요하지만 지금은 나오지 말라고 했으니, 감속 없이 무한한 가속으로 나에게 유리한 상황을 계속 가져와야 했다.

 

“네가 지금...”

 

“알아요. 알고 있어요. 제가 무슨 짓을 하는지 정말 잘 알고 있으니까. 지금 당장 사키엘을 풀어줘야 지금 강림하려고 하는 마신을 제압할 수 있는 열쇠를 얻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아우리스 여신님께도 들어봐야 할 것이 있는데, 어째서 마신을 만들어내는 것에 찬성을 한 거죠?”

 

밖에서는 50명의 천계에서 파견 사람들 앞에서 아우리스 여신에게 당당히 질문했다. 그러자 들려오는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그건 켈모리아의 제안이지만 나는 허락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비니스도 그렇고 레이베리아도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도 그 말을 허락한 적이 없어.”

 

“그럼 아리엘의 등장은 여신님들도 다 몰랐다는 소리군요?”

 

“아리엘?”

 

“지금 그 켈모리아가 아리엘을 이용해서 마신을 부르려고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사실을 지우기 위해서 망각의 여신인 레테의 단검까지 사용하면서, 지금까지 오래된 계획을 숨겨오고 있었다는 거죠. 지금 당장 데모르테를 잡아서 봉인하려고 하기 전에, 진짜 적을 먼저 봐줬으면 좋겠습니다만?”

 

아우리스는 4쌍의 날개를 한 가득 펼치면서 입을 열었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성질을 건드리면 곧바로 포화마법을 사용하겠다는 위협이었지만, 모습에도 굴하지 않고 똑바로 들었다.

 

“인간이여. 그대는 무엇을 걸고 그 말에 책임을 지겠는가?”

 

“백장미를 걸죠.”

 

아우리스는 잠깐 고민을 하더니 비니스 여신을 향해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백장미를 걸겠다는데 어쩌지? 이번 신작은 천계에서 찍으라고 할까?”

 

“아우리스...”

 

비니스 여신이 한숨 가득한 말로 아우리스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지만, 나는 그 상황에서 또 다른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비니스 여신님. 트리니티에 대한 불명예를 씻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사실 저는 여신님을 많이...그것도 아주 많이 의심을 해왔습니다. 혹시나 하는 흑막이 비니스 여신님이라는 생각에 말이죠.”

 

“그래서 지금은 어떻습니까?”

 

담담하게 나에게 물었으니 대답하면 될 뿐이었다.

 

“지금은 켈모리아를 공격하는 것에 있어서, 아주 조금만 도움을 준다면 비니스 여신님을 믿을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기리라 봅니다. 한 때, 제가 비니스 여신님의 봉인을 풀어주고, 비니스 여신님은 죽어가는 저를 도와줬으니, 지금이야 말로 인간인 제가 여신님께 부탁을 들여도 되겠지요?”

 

비니스 여신은 잠깐 아무런 말 없이 나에게 다가가더니.

 

“레테의 단검을 주신다면 제가 그 도움에 응하겠습니다.”

 

 

거침없이 아공간 손을 넣어 레테의 단검을 꺼내고, 천천히 비니스 여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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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워서...죽을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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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0 - 8

458

 

 

 

옛말에는 이런 말이 있는데 곱게 정신이 나가면 괴짜고, 나쁘게 정신이 나가면 정신병이라는 진단을 받는다는 소리가 있다. 당연히 이건 내가 2분전에 생각을 했으니 옛말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노아스를 앞에 두고 윈디와 이프리트가 애먹고 있었다. 땅과는 상성이 그리 좋지 못한 건가? 아니면 이 도서관의 구조가 켈모리아에게 유리한 지형이라서 그런 걸까?

 

“정령들은 정령들끼리 놀아야지. 안 그러겠어?”

 

“노아스에게 저주까지 걸을 정도라면 켈모리아 씨가 시체협회의 회장자리에 있는 건가요?”

 

“이 정도의 저주술사라면 가능하지. 그런데 의외인걸? 어째서 지금의 카일에게는 저주가 걸리지 않는 걸까? 지금도 계속 시도를 하고 있지만 걸리지 않네. 이번에는 어떤 무시무시한 물품을 가져온 걸까?”

 

“어릿광대의 가면이에요.”

 

“그래서 옷이 바뀌지 않았구나. 이번에는 인어공주 복장으로 바꾸려고 했는데.”

 

“인어공주든 인어왕자든 우선 제가 말한 질문에 충족하지 않은 답변을 하셨어요. 지금 시체협회회장의 자리는 켈모리아 씨가 가지고 있는 거죠?”

 

켈모리아 씨는 여전히 느긋하게 가만히 서있을 뿐. 그 이유라면 내가 티르빙을 무기로 변환시키지 않은 이유일까? 그저 이게 대화로 해결될 문제였으면 나도 이렇게 긴장하지는 않았을 텐데.

 

“당연하지. 엘티노스가 이루지 못한 업적 중에선 남을 가르치기 싫어하기 때문에, 어느 협회든 들어가지 않았다는 거니까. 그걸 정복하기만 한다면 나는 엘티노스의 모든 업적보다 더 위대해질 수 있어. 하지만 정말 어처구니 없게도 내가 저주술도 사용할 줄 아는 마법사라 그런지, 사람들은 나를 우러러보지 않아. 오히려 겁을 먹고 벌벌 떨고 있지. 나의 분위기에 맞추려고 열심히 아양 떠는 사람들을 보면 한숨밖에 안 나와. 그래도 카일과 아리엘은 나를 제대로 봐주니까 좋아해♥”

 

이 정도면 정말 병이라고 생각하고 싶은데.

 

“그러면 슬슬 칼을 뽑아줄래? 아니면 질문이 더 남아있는 걸까?”

 

“이프리트! 실피드! 돌아와!”

 

이프리트와 실피드를 내 옆으로 다시 두면서, 의아해하는 켈모리아의 표정을 바라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 되었어요. 켈모리아 씨가 어디서부터 이렇게 비틀린 길을 걷고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고요?”

 

“내 길은 전혀 비틀리지 않았어. 카일. 너의 관점을 적용해서 나에게 잘못 되었다는 하지 말아줘. 적어도 나의 관점에서 생각을 좀 해보고 나서 입을 열어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좀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거나, 내가 조금 더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걸? 아리엘은 그걸 위한 제물일 뿐. 마신의 힘을 봉인하고 소란을 끝낸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더욱 더 올라갈 수 있어.”

 

대체 이 바보 같은 말은 어떻게 들어야 잘 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

 

“켈모리아 씨. 지금 아리엘의 잠재능력을 얕보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 애는 이곳으로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마법 무투회까지 나갈 정도로 바보 같은 괴물이라고요. 거기에 마족으로 만들고 이제 모든 것을 다 파괴하는 마신이 된다면, 아주 그냥 세상을 다 날리고 싶다고 하지 그러세요? 정말 켈모리아가 마신이 된 아리엘을 이길 수나 있겠어요?”

 

“괜찮아. 내가 아니면 검은 높새바람이 알아서 해주겠지? 아니면 잡화점의 해결사라고 불리는 카일. 네가 보여줄 수 있잖아? 당연히 지금은 나를 뛰어넘어가야 아리엘을 막을 수 있을 걸?”

 

“엘티노스 때문에! 그딴 업적 때문에! 차원 하나가 박살 날 위험이 있는 그 바보 같은 일을 실행하겠다고!”

 

결국 머리에 분노만 가득 차버린 목소리가 전부 가라앉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티르빙을 귀걸이에서 빼낸 뒤에 롱소드로 변환시키기 시작했다.

 

“켈모리아 씨를 보니 한 가지 말은 맞는 것 같네요.”

 

“어느 거?”

 

“바보는 죽어야 낫는다는 거요!”

 

내 목소리가 주변을 울려 퍼지기 시작했을 때, 이프리트와 윈디. 진명을 말하자면 실피드가 나의 감정에 호응을 해주듯이 거대한 불길과 강한 태풍으로 주변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여전히 카일의 고유마법은 무서워. 다른 이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마나를 산화시키는 마법. 그래도 지금 당장은 나에게 위협이 아주 조금은 되는 거 같아. 그래도 그건 잘 알아야 해. 카일은 검사의 길 최상급이 아니라는 것과 최상급으로 올라갈 수 있었는데, 마왕이 잠재되어있던 마나를 깨워버리는 바람에 그 기회가 영원히 날아갔다는 것.”

 

“그러면 켈모리아는 검을 쓸 줄 알아요?”

 

“그야 못하지. 엘티노스도 검은 다루지 못했다고 나왔거든.”

 

그런 세심한 것도 따라 하는 건가?

 

“그래도 모든 길은 하나로 이루어져있다는 말을 들은 나는, 검사의 길 최상급 혹은 달인의 경지로 올라가기 전에, 마법사의 길을 모두 돌파한다면 모두 똑같아진다고 생각해. 예를 들어 권법을 수련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 중에 하나는 육체만 단련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하나는 내공심법이라고 불리는 마나연공법을 수행하기도 하지.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하나는 상처가 많고, 다른 하나는 상처가 적은 거요?”

 

“땡! 육체만 단련한 사람은 전사, 내공심법을 단련한 사람은 마법사로 치부할 수 있다는 거야. 내공심법을 연마하면 어느 사이에 속성이 붙지. 빙백신장은 하란국에서 무공으로 보고 있지만, 우리 눈에는 마나를 이용한 마법일 뿐이야. 엘라임의 주인인 해연의 경우도 같은 것이지. 전사의 길을 걷고 있다가 정령사로 변환된 경우지만, 조금이라도 마법이 들어간다면 우리는 전부 마법사 종류로 치부하고 있어.”

 

“느닷없이 그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뭔데요?”

 

켈모리아는 천천히 손을 내뻗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나를 자각한 순간부터 우리는 모두 마법사라는 거야.”

 

-파아앙!

 

거대한 마나의 폭풍이 내 앞을 몰아치면서 온 몸을 뒤흔들었다. 마나를 산화시키는 새벽<Daybreak>이 켈모리아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와 내 마나를 모조리 고갈시켰고, 이프리트와 실피드는 내 마나가 사라지는 바람에 정령계로 날아가버렸다.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티르빙은 귀걸이 형태로 강제 귀환을 당한 상태에서, 겨우 벽을 등지고 넘어지지 않은 나는, 속이 뒤틀려서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고통을 꾹 눌러 참고 말했다.

 

“제길...! 어떻게!”

 

“당연하지. 나는 마법의 지배자거든. 모든 마법을 보고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참된 마법사라고 해야 할까? 마법 무투제에 억지로 널 끌어드린 이유라고 한다면, 너의 마법을 찾아보기 위해서였지. 특이한 체질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너의 체질은 주변 마나를 모으는 거야. 사방팔방에 퍼트리고 산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터져 나온 마나들이 내 몸을 집어 던지듯 저 멀리 날려버렸다. 유리창이 깨져나가도 상관없을 법한 무시무시한 속도인데, 정작 유리에 부딪쳤을 때는 흠집도 없이 멀쩡했고, 오히려 충격으로 몸을 보호해줄 마나도 없어서 뼈가 으깨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도서관 안에서 싸우는 그 자체가, 켈모리아의 손바닥에서 놀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으니, 지금 이곳을 당장 탈출하고 싶어도 긴급귀환까지는 좀 오래 걸린다.

 

“마나가 다 없어진 마법사들은 그저 일반인에 불과하지. 너의 경우는 조금 더 단련한 일반인일까?”

 

“제길!”

 

주변에 있는 연필이라도 거꾸로 잡아서 오른팔로 휘둘렀지만, 켈모리아의 왼팔이 내 팔꿈치를 쳐내고 정권이 내 가슴을 강하게 가격했다. 숨도 못 쉬고 다시 날아가는 내 몸은 처절하게 바닥을 구르며 다시 자세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 시간도 주지 않고 켈모리아의 매끈한 다리가 내 얼굴로 날아왔다. 보나마나 마나를 힘껏 담아 파괴력을 올린 돌려차기인데, 마나로 보호받지 않는 팔로 방어하다가 내 오른팔이 기괴한 방향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듣기 좋은 비명이야. 조금 더 울어볼래? 에잇!”

 

팔이 내려간 것과 동시에 얼굴에 다시 날아드는 발차기를 맞고 내 머리가 부디 제대로 목 위에 붙어있길 빌며 눈이 번쩍한 사이에 쓰러져 있는 나를, 광택이 나도록 잘 닦여있는 바닥을 통해 볼 수 있었다.

 

“팔이 부러져서 어떻게 하지? 우리 카일?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 이상 마법사로 익숙해진 카일이라면 대비책이 없을 것 같은데? 그 잘난 탈출은 어떻게 할거지?”

 

“괜히 이사벨 씨가 당신을 보며 분노하는 것이 아니었어. 지금 이렇게 보니까 에밀리의 말도 맞았고! 다만, 그 잘난 탈출은 지금 보여주지.”

 

으름장을 하게 만드는 타 들어가는 듯한 목을 겨우 뱉으며 피까지 쏟아냈다. 입에 비릿한 향이 나고 의식이 점점 깨어나가는 기분. 남은 마나를 사용해서 내 신체를 24시간 전 멀쩡한 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여유를 너무 부려도 좋지 않죠. 안 그래요?”

 

품속에 있는 가면을 의식하면서 천천히 오른손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결국 제 형태를 갖춘 가면은 눈, 코, 입이 기괴하게 비틀린 형태였고, 나에게 딱 맞는 가면을 쓰면서 천천히 귀환하기 시작했다.

 

“켈모리아!”

 

뒤에 아리엘의 눈망울로 알 수 있는 것이라곤, 이상한 괴한이 침입한 것과 그걸 막는 켈모리아가 멀쩡하게 있는 것뿐이겠지.

 

“내일은 당신의 야망도 끝이야. 이걸로 완벽하게 적으로 돌아섰어. 언젠가는 카멜롯에 있는 모든 이들이 당신을 도와주기 위해 움직이기 전에, 내가 모든 것을 전부 박살낼 테니 각오해둬.”

 

“그거 기대하고 있을게. 지루했던 쾌락주의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크리스마스인걸?”

 

“켈모리아? 이게 무슨 소리에요? 그리고 저 가면 쓴 남자는 카일 씨 맞죠? 왜 둘이서 싸우고 있는 거에요?”

 

혼란을 겪고 있는 아리엘의 모습을 뒤로하고 잡화점에서 나를 소환하는 소환진이, 내 발밑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시야가 다시 반전이 되기 시작하면서 잡화점에서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바닥에 손을 뻗어 지탱하고 순서대로 왼발부터 다리를 바닥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주인?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지금까지 볼 수 없는 분노가 느껴지고 있노라.”

 

검은 고양이 하나가 내 표정을 살펴보고 싶었지만, 하얀 가면에 가려져 있으니 일그러진 내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내가 지금 내뿜고 있는 분위기가 주변에게 퍼지고 있는 모양.

 

“진짜 적은 켈모리아로 고정하고 지금부터 계획을 짤 겁니다. 그러니 레시아, 시나 모두 잡화점 멤버 전원 오늘 새벽에 소집해주세요.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들어야 할 것이며, 이 날 이후로 잡화점이 모든 사람의 적이 될 각오까지 해야 할 겁니다. 검은 높새바람 중에 아무나 한 명도 불러주시고요. 아니, 멜로디 씨를 잡화점에 초대하세요.”

 

“주인은 카멜롯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생각인가?”

 

“마스터. 조금 더 냉철한 사고로 진행하길 부탁합니다. 지금의 방식은 마스터가 완전히 악역으로 몰리는 길입니다.”

 

“악역이고 나발이고 상관 없어! 지금 당장 그 광기를 끝내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죽어갈 거야!”

 

“적어도 여신을 설득하는 건 어떠신지요? 지금 마스터가 수정구에 녹화한 것들을 모두 보여주는 겁니다.”

 

 

시나의 말을 듣고 잠깐 머리를 식혔다. 그리고 그 의견에 동의를 하듯 하얀 올빼미에게 보라는 듯이 내 손 위에 수정구를 올려놓자. 천장에서 날아와 수정구를 낚아채고는 빛을 내뿜으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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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바로 다음이 최종화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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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0 - 7

457

 

 

 

카멜롯에 있는 마법학원장인 켈모리아 마그누스. 이사벨 씨의 여동생이기도 하고, 지금은 마법사들 중에서도 모든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지배자이기도 한다. 마나의 양은 상상을 못할 정도로 많고, 마력은 그 누구보다 강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금껏 켈모리아 씨가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멜롯에 머물고 있었지만, 이 사람이 진정으로 숨기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오늘 나를 찾아온 이유는 매우 심각한 문제야. 너무 심각해서 우리 둘 다 고민으로 1주일을 보내야 할 정도지. 그렇지 않아?”

 

“켈모리아 씨는 계속 시간여행을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시공간마법마저 사용할 줄 아는 켈모리아라면, 분명 과거와 미래를 오고 갈 수 있지만, 내가 보았을 때는 꽤 많은 시간이 켈모리아의 몸에 새겨졌다. 신체적인 나이야 계속 백업을 해서 그 전에 있던 시간으로 맞추면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동안 경험으로 누적된 시간은 계속 쌓이기 마련.

 

“카일은 이 대륙에서 단 2명밖에 없는 유일한 시공간술사였지. 모두가 술을 마시러 나가거나, 약속이 있어서 나간다고 생각하겠지만, 카일의 눈은 역시 속이지 못하겠네.”

 

여전히 웃으면서 나와 마주하고 있는 켈모리아 씨는, 알 수 없는 위화감을 품기 시작하며 도서관에 앉아 서류에 도장을 찍고 있었다. 마법학원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서 준비된 커피와 서류의 산을 보고 노선을 약간 이탈하도록 하자.

 

“그래서 아리엘은 어디 있죠?”

 

“그 애는 마법기동반들과 같이 야외에서 바비큐파티라도 하고 있을 꺼야. 고기를 먹고 싶으면 그쪽으로 가도 상관은 없지만, 지금은 나에게 볼일이 있던 거 아냐? 아리엘에게 볼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요염하게 살기를 품으며 웃고 있는 켈모리아 씨에게 느끼는 공포감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차라리 살인마에게 쫓기는 쪽이 조금이라도 덜할 정도. 마치 독사 앞에 있는 쥐마냥 나도 모르게 몸이 수축되려고 했지만, 이성이 곧바로 바로 잡으면서 다시 마주했다.

 

“당신은 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죠? 과거와 미래를 다녀오면서 계속해서 수정해야 할 것이 있던가요? 마치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처럼?”

 

“그러면 시간의 파수꾼들이 찾아와서 존재를 소멸시키려고 할 거야. 아무리 나라도 그런 배짱은 부리지 못해. 하지만 시간여행을 함으로 나의 예지가 맞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있지. 어쩌면 지금이 시간에서 또 다른 나는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몰라.”

 

“준비?”

 

켈모리아는 천천히 일어나며 어깨가 파인 하얀 드레스를 이끌고 다리를 움직였다. 거리는 나와 정반대로 멀어지기 시작하면서 창문에 시선을 돌리고 입을 열기를...

 

“지금은 내가 숨겨놨던 레테의 단검을 찾았겠지? 다만, 그 날은 널 보호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역시 제가 기억을 잃은 이유는 켈모리아가...”

 

“착각을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내용 중에서,‘나는 딱히 너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었다.’그리고‘네가 다시 찾아간 집단자살의식에 휘말렸다는 것’이지. 내가 파릇파릇한 용병이었던 시절에, 레테의 단검인지도 모르고 상자 하나를 들고, 옛 시체협회 건물에 찾아갈 무렵, 나는 이미 그 안에서 저주를 걸고 있었어. 당연히 과거로 시간을 여행했던 시절이니까.”

 

“그럼 아까 봤던 죽지도 못하는 그 사람은?”

 

“어라? 만난 거야? 시체협회장을? 그들이 이상한 의식을 하려는 이유가 마신을 소환하기 위함이었지만, 아직은 내 힘으로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반만 성공하게 만든 거야.”

 

창문 밖에서 비춰지는 켈모리아 씨의 얼굴에는, 붉은 입술이 서서히 호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리엘이 말했던가? 켈모리아 씨는 쾌락주의자라고.

 

“꼭 그럴 이유라도 있는 거에요?”

 

“당연하지. 몰래 천계로 들어가서 영겁의 노래까지 훔치고, 상급신인 엘티노스의 눈을 피해서 은밀하게 움직였어야 하니까. 아무튼 그런 집단자살의식은 한 명만 죽지 못한 체, 겨우겨우 자신의 자아를 유지해 나아가며 살아가는 마신 후보.”

 

“아리엘이군요. 그 아이가.”

 

그 집단자살의식은 강력한 존재를 부르기 위한 것. 희생을 한 고귀한 영혼들이 하나로 뭉쳐서 강력한 영혼으로 다시 탄생을 한다. 만일 그 의식에 영겁의 노래까지 사용했다면 신적인 존재로도 만들 수 있겠지.

 

어쩌면 에밀리가 나에게 미끼역할이 나와 아리엘이라는 이유도, 지금은 켈모리아가 저지르고 있는 알 수 없는 일에 일부러 휘둘리는 미끼역할인 걸까?

 

“그러면 마신 아르트리옴은 대체 누구죠?”

 

“그거야 당연히 아리엘이 만들어낸 환상의 존재지. 레이나 때문에 억지로 폭주를 해서 느닷없이 다른 세계와 충돌할 뻔한 대재앙 이후로 나타났는데, 사실은 마신이 아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엘의 힘이 너무 강해서 계속 존재하려고 하는 걸 보면, 아리엘의 또 다른 인격체 중 하나. 그게 아니라면, 초기에는 가족에 대한 열망이 컸던 아리엘이, 적어도 자신을 위로해줄 상냥한 오빠를 원했을지도 모르지. 아리엘이 아르트리옴을 보는 조건은 좀 우울하고 슬픈 기분일 때만 나오니까.”

 

“허구의 존재를 현실로 불러온다니? 그게 말이 되는 일이에요? 그 정도면 창조신과 비등비등한 수준이잖아요!”

 

“창조신과 비등비등한 수준이 아냐. 지금 지하에 있던 그 남자가 죽으면 창조신의 자리를 갈아치워도 될 정도지. 그런데 한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켈모리아에게 살기와 적의가 가득 느껴지지만 공격을 하지 않고 계속 질문만 해왔다.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무엇을 또 꾸미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켈모리아가 질문한 다음 내용으로 대부분이 해소 되었으니까.

 

“엘티노스는 기괴한 존재도 쓰러뜨렸다고 했어. 그걸 뛰어넘으려면 내가 마신을 쓰러뜨려야 하겠지? 아니면 봉인이라도 시키던가 말이야. 하지만 그 전에 뛰어넘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너를 먼저 제거해야겠지?”

 

켈모리아의 눈이 살짝 번뜩이자마자 내 다리가 자동으로 옆으로 뛰게 만들었다. 내가 있었던 자리는 염동파가 한번 휘저어버린 이후로, 어마어마한 홈이 생겨버렸을 때도 아주 여유롭게 말하고 있었다.

 

“언니를 뛰어넘은 것까지는 확실하게 했으니까. 다만, 패배의 낙인으로 침묵의 저주를 걸었는데, 어느 사이에 풀려서 당황하고 있었거든 그래서‘누가 이런 일을 한 걸까?’라고 생각을 했는데 역시 카일이라는 생각을 했어.”

 

어느 사이에 다가와 주먹을 휘두르는 켈모리아. 주먹에 담긴 마나와 속도 그리고 모습을 보아하니 이사벨 씨의 마법과 같았다. 공간을 접어도 켈모리아는 같이 접어서 따라오고, 시공의 눈을 개안해도 켈모리아 또한 똑같이 대응을 할 수 있다.

 

그럴 바에는.

 

-팍!

 

“어라?”

 

“마나를 제거해도 아픈 건 여전하네!”

 

-파앙!

 

새벽<Daybreak>을 내 온 몸에 두르며 보호막처럼 씌우고, 켈모리아의 마나가 주먹에서 흩어지는 틈으로 나 또한 주먹에 마나를 한 가득 담고 턱을 올려 쳤다. 레시아에게 항상 맞아온 어퍼를 날리다 보니, 깔끔한 타격과 함께 공중으로 붕 떠버린 켈모리아는 이윽고 서류가 가득 쌓인 책상 위로 추락했다.

 

켈모리아가 당황한 사이에 꽂아 넣은 카운터라 정신을 못 차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멀쩡하게 일어나 먼지를 털고 있었으니 이프리트와 윈디에게 슬슬 말을 걸었다.

 

“애석하게도 항마의 축복은 너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냐. 게다가 그런 저출력으로는 상처도 입히지 못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싫구나? 티르빙으로 무기를 변환하지 않은 것이 그 이유니까. 정말 재미없는 남자야.”

 

“우리 둘만 아는 비밀로 가면 되잖아요. 이런 일을 왜 하려는 거에요? 도대체 엘티노스가 켈모리아의 인생에서 뭐길래? 그 사람을 뛰어넘기 위해서 억지로 마신까지 만들어가면서 싸우려는 이유가 뭔데요!”

 

“그거야 말로 진짜 쾌락이 아니겠어? 육체적인 관계는 일시적인 쾌락일 뿐이지만, 성취감이라던가 정신적인 쾌감은 육체보다 수십, 수백에 가까운 배율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열심히 마법에 대해 공부를 해왔던 거고, 언젠가는 내가 짜놓은 연극의 끝으로 나를 영웅이라 칭송할 사람들에게 받는 그 눈빛과 환호성으로 마무리가 될 거야. 내가 모든 마법을 지배했다는 그 이유로 두려움과 공포심으로 날 보는 것이 아니라. 그런데, 카일도 내가 무서운 거야? 언니는 내가 무섭다고 하던데?”

 

“무섭다면 어쩔 건데요? 그보다 그게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거 맞아요? 그냥 어린아이가 삐뚤어져서 자신에게 관심을 돌리려는 거잖아요? 그런 일을 해서 꼭 다른 이들에게 칭송을 받아야만 하겠어요? 엘티노스라는 자를 뛰어넘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면서, 여러 가지 바보 같은 일을 일부러 벌이면서까지?”

 

광소에 젖은 듯한 켈모리아는 웃음 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만 표정이 더욱 괴기하게 바뀌면서 이윽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당연하지! 그거야 말로 내가 여태까지 살아온 의미가 되는데! 오늘 카일은 머리가 너무 잘 돌아가는 걸? 레이나 남편에게 레이베리아의 힘을 받지 않았으면서도, 통찰력이 너무 뛰어나는 거 아냐?”

 

윈디와 이프리트에게 힘을 빌리기 시작한 이후, 모든 방향에서 떠돌고 있는 무시무시한 손들이 나를 노리고 있을 때. 불의 갑옷은 내 몸을 휘감고, 바람의 장화는 나의 발을 가볍게 만들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항복을 한다면 평생 여자로 살게 되는 저주를 걸고 끝내줄게. 어여쁜 아이를 수집하는 것도 하나의 취미니까.”

 

“평생? 미쳤어요? 차라리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말지.”

 

허공에 떠 있는 손들이 천천히 포위망을 좁히다가, 나를 향해 손바닥을 활짝 펴더니 느닷없이 날아오는 것은 마나를 한 가득 품은 광선이었다.

 

아무리 봐도 반지름이 5cm정도 되어 보이는 포격마법이 내 주위를 휘몰아치기 전에, 바람의 장막이 굴절시켜서 모조리 빗나가게 만들었다.

 

“정말이지 특종이야. 그렇지 않아? 이프리트?”

 

“그러게. 실피드. 설마 노아스의 계약자가 이렇게 악심을 품을 줄은 몰랐어. 이 일을 어떻게 해명할거지?”

 

노아스라면 땅의 정령왕인데?

그 계약자가 켈모리아라고?

 

한편으로는 켈모리아의 옆에서 바닥이 올라오기 시작했을 무렵. 고운 인상의 여성체로 보이는 사람이 서 있었다. 땅에 있는 모든 것을 품은 듯한 온화하고 조용한 모습. 말을 거의 안 하는 성격인지 아무런 말도 없이, 이프리트와 윈디를 바라보며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너의 주인이 이런 길에 빠지는 것을 마냥 지켜볼 것도 아니잖아? 뭐? 계약은 이행되는 거라고? 이 바보 같은 정령왕이 이상한 곳에 성실해가지고!”

 

“노아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계약은 파기해줘.”

 

뭐 정령들만 알아듣는 그런 텔레파시든 광선이든 뭐든 이야기 하라고 하고, 소환자가 악한마음을 품었을 때, 정령왕이 그걸 묵인하는 일은 없을 텐데. 아냐...혹시?

 

“켈모리아. 당신. 노아스에게 무슨 저주를 심어놓은 거죠?”

 

저주술사인 켈모리아가 무슨 일을 벌인 것이 분명했다. 이미 시공간을 초월하면서 모든 마법에 능통하기에, 정령왕은커녕 신에게도 저주를 걸 수 있을법한 존재일 테니까.

 

“마음을 허락할 때야말로 사용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저주야. 노아스는 영원히 나의 노예와 같은 거라고? 그렇지? 노아스.”

 

 

인간형으로 된 노아스의 볼을 어루만지는 손길을 보자마자, 이 사람은 절대로 살려놔선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저주술사에게 관심을 끌면 안 된다는 말부터, 켈모리아에게 살아서 돌아오라고 당부까지 한 에밀리의 말은, 지금까지 모두 나에게 잘 맞는 조언임과 동시에, 그 조언을 모두 무시를 하자마자 이런 상황까지 나온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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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아리엘은 밖에서 놀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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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0 - 6

456

 

 

 

집단자살로 이루어낸 의식은 영적인 에너지를 뭉쳐서 영웅을 만들기 위함. 그렇다면 지금 그 에너지는 누구에게 들어가서 영향을 주고 있을까? 아니, 후보라면 이미 하나가 있던가? 또 여김 없이 카멜롯에 가야 하겠군.

 

“주인? 어제는 많이 피곤했는가?”

“마스터는 지금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니 건들이면 안 됩니다. 냥캣. 저번에 상이라고 저희들에게 귀 마사지와 귀청소를 풀코스로 해주시고, 고생한 페트리에게도 해주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무리가 있는 것은 당연...”

 

“아니. 제가 멍하니 생각만 한다고 해서 무조건 피곤한 거는 아니에요. 뇌는 오히려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으니 괜찮아요. 그리고...”

 

레시아와 시나는 여전히 고개를 들어올리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지만, 이제 슬슬 임계점이 다가오기 시작했으니 고백하려고 한다.

 

“제 팔을 억지로 팔베개로 쓰는 거 슬슬 그만두지 않을래요? 다 자란 모습으로 팔 하나씩 피가 통하지 않게 저려오는 고문이라면 완벽하게 성공했으니까. 이제 슬슬 동물의 형태로 돌아가세요.”

 

“짐은 그냥 고양이 귀만 사용해도 좋은 건가?”

 

“수인 말고! 검은 고양이로 돌아가라고요! 지금 팔이 숨을 못 쉬어서 죽으려고 하잖아요!”

 

“마스터. 저는 그럼 양팔을 날개로 변환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내 팔이 편해지는 게 아니잖아!”

 

사역마와 주인의 관계는 원래 척하면 척하는 관계가 아닌가? 좀 쉽게 말하자면 같이 지내온 세월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한다는 소리인데, 이 두 사람은 그냥 자신의 욕구만 충족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크다. 모두가 일어나서 이미 일하고 있는 시간에, 팔이 저려서 양쪽에 있는 사역마들을 모조리 일으켜 세우고, 서서히 더워지는 날씨를 의식해서 반팔로 된 셔츠를 입었다. 무난하게 검은색으로 된 옷을 입은 이후에, 아주 천천히 상황에 대해 예상을 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은 400번 이상 빛의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주인이 그렇게 고민하는 것은 처음 본다.”

 

“오늘은 이프리트와 윈디하고 다녀올 테니 두 사람은 집을 지켜요. 페트리는 검은 높새바람으로 제 말을 전하러 갔으니 나중에 돌아올 거에요.”

 

윈디와 이프리트는 이름을 거론할 때부터 동화하고 있었다. 더위와는 어울리지 않는 긴 바지와 부츠를 천천히 옮기면서 프리트론으로 이동했다. 바람의 정령왕인 윈디...진명으로는 실피드라고 하는 것이 좋지만, 어쨌든 내 시야는 단숨에 좁혀오기 시작하면서 20초정도 기다리니 아테리카 학원 앞에 서 있었다.

 

“내가 두 발로 이곳에 찾아올 줄은 몰랐지만 지금은 손을 빌릴 수 밖에 없겠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올라가고 있지만...

 

[카일. 많이 조초해 보여.]

 

[초조해 보이는 거겠죠. 레테의 단검을 습득하고 돌아온 기억의 일부 중에 한가지 거슬리는 기억이 떠올라서요. 그래서 사실 확인을 위해 이사벨 씨에게 가는 겁니다.]

 

“선생님?”

 

학원장실로 올라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는 도중, 위쪽 계단에서 의외로 잘 어울리는 청녹의 오드아이를 지닌 남학생이 나를 내려다 보았다.

 

“오랜만이야. 그 동안 키가 커지긴 했구나.”

 

“선생님이 작아진 거 아니에요?”

 

“이 자식을 그냥...아니, 지금 이사벨 씨는 어디에 계신지 알아?”

 

말을 들은 루크는 즉답을 하지 못하고 뜸을 들였다.

 

“지금은 휴식을 하고 계시니 나중에 다시 찾아오시는 게 좋을 것 같...아니! 선생님! 올라가면 안 된다니까요!”

 

루크가 뜸을 들인 것이 이상해서 계단을 올라가고, 위에는 학원장실이라고 크게 적혀있는 문 앞에 노크를 했다. 무겁게 3번을 두드려 내가 왔다는 것을 알렸지만, 아무런 말이 없어서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실례할게요. 이사벨 씨.”

 

“......”

 

손님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뚫어져라 보고만 있는 이사벨 씨의 행동이 이상해서, 뒤늦게 나를 따라온 루크에게 물어봤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어째서 “아! 카일 선생이군! 오늘 연봉협상 하러 온 건가! 기대하고 있었다고!”라며 밝게 골치 아픈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이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거야? 제갈량이 아니라면 자신의 수명을 더 늘리겠다는 의식을 하지 않을 사람인데 말이야?”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저번에 급하게 외출을 하는 것 같더니, 저렇게 된 상태로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안에만 계세요.”

 

“그래? 그거 좀 이상하네. 이사벨 씨가 저주를 걸릴 사람이 아닌데. 가장 다행인 것은 이사벨 씨가 영창이나 입력대사를 넣지 않아도 되는 마법사인 것뿐인가?”

 

모든 저주가 시전자에게로 반사가 되는 어릿광대의 가면을 건네주고 말해보라고 했다.

 

“아아. 오! 이제서야 목소리가 나오는 군! 고맙네 카일 선생.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에 휘말렸는데...”

 

“켈모리아 씨가 공격한 거죠?”

 

“그건 어찌?”

 

“뭐, 평상시에 켈모리아 씨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서로 싸우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이렇게 보니 전혀 다른 경우인가 보네요.”

 

말을 들은 이사벨 씨는 루크에게는 나가 있으라고 했다. 소년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학원장실에서 나갔고, 주변에 침묵마법을 깔아서 혹시 몰라 루크나 다른 이가 듣는 것을 방지한 이사벨 씨는 나에게 가면을 돌려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켈모리아라고 단정을 짓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 애석하게도 마법사들의 세계에서는 이런 결투장을 받으면 언제든지 나와야 하는 것이라네. 당연히 카일 선생도 받아봤겠지?”

 

“아뇨. 그 종이가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는데요?”

 

“기묘하군. 분명 켈모리아는 카일 선생에게도 보냈을 거라 생각을 했는데 말이지?”

 

“저희 잡화점은 스팸편지를 안받거든요.”

 

“스팸?”

 

“아뇨. 그런 게 있어요. 마리아가 진짜 나에게 쓸 때 없는 말을 알려줘서, 그걸 이곳에서 쓰게 만들다니...”

 

나도 모르게 다른 차원에 있는 단어를 말했지만, 확실히 말해서 그 편지는 스팸편지라고 분류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잡화점에도 편지를 받는 편지함이 있지만, 매번 확인을 해도 최근에는 채워지지 않고 계속 비어있는 상태.

 

“아무튼 지금은 위급한 상황이에요. 이 이야기를 발설하지 않겠다면 제가 지금 시체협회 건물에 다녀온 일화를 말씀드릴 텐데. 들으시겠어요?”

 

이사벨 씨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곧은 갈색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고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으니, 어떠한 말이 자신의 귀에 들려와도 충격을 받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 성원에 힘입어 집단자살의식을 시작으로 아직 제물 하나가 죽지도 못하고 살아있어서, 아직까지 의식을 끝마치기 위해 난동을 부리고 있는 것.

 

다만, 레테의 단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말해줘도 나중에 다시 까먹어버릴 것 같으니까. 물론 레테의 단검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는 싶은데, 그걸 또 보여달라고 말하면 보여주다가 기억을 잃고, 다시 레테의 단검을 보여달라는 무한반복은 하기 싫었다. 대신 물품이라고만 말했다.

 

“따라서 지금 켈모리아 씨에게 가보려고 합니다.”

 

“어째서?”

 

“과거에 물품을 주문한 사람이 켈모리아 씨니까요.”

 

***

 

내 돌아온 기억이 자연스럽게 켈모리아 씨를 저격하듯 떠나지 않았다. 내가 용병을 뛰고 있던 시절에 분명 만난 적도 있었고, 내 등에 단검을 찍어버린 것도 켈모리아 씨였다. 카멜롯 마법학원에 찾아가려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와중에...

 

“카일 씨는 이럴 때만큼은 정말 생각도 안하고 돌격하는 거 아냐?”

 

“토끼 잠옷을 입고 밖에 나오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 에밀리. 아니면 뭐냐. 너도 달에 가서 아이돌이라도 하고 싶은 거냐?”

 

“그럴 리가 없잖아? 나처럼 귀여운 소녀가 아이돌을 한다면, 모두의 마음을 현혹해서 어쩔 수 없이 나를 여신처럼 신봉하게 되거든.”

 

“아니. 그럴 일은 절대로 없는 것 같은데, 그리고 너는 외모에 대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 거야?”

 

도중에 에밀리가 창을 겨누며 길을 막고 서 있었다. 어디서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고 있는 별의 아이에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지금 나를 막는 거야? 아니면 조언을 해주러 온 거야?”

 

“둘 다. 레테의 단검을 소지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가냘픈 내가 두 다리를 땅에 맞대고 있는 거잖아?”

 

“그럼 너의 목적은 나를 막는 거나 조언이 아니라, 그냥 레테의 단검을 회수하러 온 것뿐이잖아. 하지만 이건 네가 브류나크로 날 찌르던 지지던 볶던 줄 수가 없어. 이제서야 잃어버렸던 기억이 조금씩 수복하고 있는데. 지금 당장이라도 켈모리아에게 찾아가서 이게 무슨 일인지 따져야 할 것 같거든.”

 

“그래? 그럼 거기서 죽나 지금 죽나 별 상관은 없겠네?”

 

강한 벼락이 경고라도 주는 듯 내 바로 앞에서 떨어졌다.

 

“마지막 기회야. 카일 씨. 이 벼락을 맞고 여태까지 기절하지 않은 생물은 없어. 그만큼 내가 위력을 관리하고 있을 때. 순순히 꺼내는 것이 좋을 걸?”

 

“아까와도 말했듯이 지지던 볶던 못 준다고 했어. 그리고 이건 잡화점에서 봉인해야 할 물건이야. 너희들이 무슨 꿍꿍이로 레테의 단검을 노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날벼락을 맞아도 켈모리아와 무슨 말이라도 섞어야겠어.”

 

“그래? 그럼 어쩔 수 없네. 카일 씨는 고집이 너무 강해서 지금 죽을지도 모르니까. 힌트를 주면 좀 이해하기 쉬울까?”

 

“힌트?”

 

힌트를 준다는 것은 마지막 기회를 준다는 의미.

 

“의식을 부수려면 아직 살아있는 그 사람을 정화하면 그만이야. 카일 씨의 친구인 베가프 추기경에게 부탁하는 것이 어때? 레테의 단검이 없는 시체협회...정확하게는 시체협회의 건물은 아니었지. 그래 마신을 모시는 건물 안에서 정화를 한다면 좋은 결과를 맞이할 거야. 그럼 이제 보상으로 레테의 단검을 줄래?”

 

“역시 레테의 단검은 안 되겠어. 대신 마도서를 주도록 할게.”

 

나의 제안에 “마도서?”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라졌다는 금단의 책이잖아! 으음~ 어쩔 수 없네! 그걸로 봐줄게. 그런데 그게 왜 카일 씨의 손에 들어온 거야? 심연의 도서관에도 없는 물품인데?”

 

“뭐. 어쩌다 보니.”

 

마도서를 넘겨주고 겨우겨우 한숨을 돌리고 있었는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내가 상대하는 소녀는 오라클의 최고봉인 별의 아이였다. 그러니까. 내가 레테의 단검 대신 이걸 줄 것이라는 예지를 보고?

 

“너 설마! 이걸 노리고 일부러!”

 

“아하하! 이미 마도서는 내가 가져갔지롱~ 카일 씨? 살을 주고 뼈를 깎는 식으로 나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별의 아이를 상대로 너무 식상하게 대하는 거 아냐? 레테의 단검을 줬다면 의아했겠지만, 다행히 예상대로 마도서를 얻었으니 이만 비켜줄게~ 그런데 내가 말한 경고에 위반된다고?”

 

“저주술사에게 눈에 띄지 말라는 거지? 그건 솔직히 나와 상관없는 말이야. 지금은 가면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럼 켈모리아로부터 살아 돌아와!”

 

 

한 손에는 백은의 창과 다른 손에는 과거에서 아스모데우스의 보물창고로부터 꺼내온 금기가 가득 적혀있는 책을 작은 손으로 들고 있는 어린 소녀를 보고, 나도 내 갈 길을 가기 위해 윈디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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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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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0 - 5

455

 

 

 

잡화점에 돌아오지 않고 여전히 건물 안에서 떠돌아다니는 이유라면, 이곳에 유물이 더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지만, 모든 층을 전부 둘러보아도 유물은커녕, 네크로맨서에게 잘 어울리는 마도서 하나 찾아볼 수도 없었다. 유적탐사를 나온 것도 아니지만 이사라도 갔는지 협회 건물 안에는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는데, 야외의 환경을 생각하자면 사람이 살 곳은 아니지만, 이곳은 철저한 방어술식으로 다양하게 밀봉을 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최소 간부들이 이곳에 있어야 하는 것이 맞다.

 

맞는데...

왜 지금은 아무도 없는 걸까? 깊게 파고들면 위험하다 생각했지만, 지금 당장 함정이라던가 그런 것도 없어 보여서, 이곳에 조금 더 머물다가 갈 생각이었다. 모든 층을 둘러보아도 없다면 이곳에 지하로 이어진 비밀장소를 찾을 수 밖에.

 

“청사진도 없는데 지하에 비밀장소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확신하는가?”

 

검은 고양이는 여전히 페트리 품 안에서 얌전히 질문을 했고, 나는 그 누구도 인정할만한 이유를 꺼냈다.

 

“그야 이렇게 수상해 보이면 비밀장소가 하나씩은 있을 것 같잖아요?”

 

“아까 위에 있는 독백은 분명 그 누구도 인정할만한 이유를 꺼낸다고 했었는데, 그것만으로는 짐을 납득시킬 수 없으며, 그런 말을 하는 사람 때문에 일이 틀어지는 전개가 너무 많이 있노라. 주인과 비둘기는...”

 

“올빼미 입니다.”

 

“어쨌든 잡화점으로 신속하게 돌아가서 루니아가 요리를 하는지 안 하는지 감시를 맡을지어다.”

 

지금은 루시피나와 루니아가 전부 외출 중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돌아가서 요리를 감시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레시아의 걱정은 내가 또 무슨 일을 벌일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나는 일을 수습하는 사람이지 벌리는 사람이 아니다. 여태까지 대부분의 사건은 내가 휘말려서 해결해온 것이 많기에, 이번 일이 터져도 내가 사고를 터트린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휘말리는 것뿐. 좋아. 이렇게 가자.

 

“설마 저 멀리 먼 세계관에 있는 천사석상이 찾아와서 눈을 깜빡일 때마다 꺼림칙한 모습으로 다가오겠어요? 지하를 잘 살펴본다면 그리...”

 

/조용하게만 있으면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거야. 저주를 감행하는 저주술사들에게 관심을 띄고 싶지는 않겠지?/

 

“카일 씨! 찾았어요! 정말 지하에 비밀장소가 있어요!”

 

페트리가 지하에 비밀장소가 있다는 사실은 말에 내가 이긴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에밀리의 경고 때문에 그리 좋은 얼굴로 마주보기 힘들었다. 나는 억지로 웃으면서 페트리에게 칭찬을 해야 했지만, 아까 기묘한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도 어떤 건지 모르겠고, 게다가 이 장소를 전체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비워버리면서, 시체협회 안에 있는 네크로맨서들도 전부 이사라도 갔는지 없고.

 

심지어 이곳에 남아 연구라도 해야 하는 고위 간부라는 것도 없다.

 

“그럼 그 지하에 있는 비밀의 방 같은 장소는, 무언가가 봉인 되어있다는 징조가 보이네.”

 

“마스터? 지하에 무언가가 봉인 되어있다니? 그건 무슨 소리입니까?”

 

“말 그대로 지금 이곳은 뭘 했는지 모르겠지만, 의식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알 수 없어도, 봉인이 되어있는 장소라는 건 확실해. 그러니 우리에게 선택지가 있다면 가거나, 아니면 영원히 이 공간을 봉인시켜야 해.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 적어도 이곳에 있는 사람에게 말이지.”

 

페트리는 “그럼 너무 위험한 거 아닐까요? 저 슬슬 집에 가고 싶은데...”라며 약한 소리를 내뱉었고, 레시아와 시나의 경우에는‘까짓 것 그냥 가자.’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페트리는 그 공간으로 어떻게 들어가는지 알려줘.”

 

“으에? 정말로 들어가실 생각이에요? 거기서 뭐가 나올지 모른다고요?”

 

“레시아와 시나가 알아서 할 거야.”

 

“주인도 같이 책임을 지는 거다만?”

 

아무튼 지금은 모 아니면 도라는 형식에 맞게, 페트리가 이어준 연결통로 끝에는 참혹한 참상이 눈에 들어왔다.

 

“이 사람들 전부 죽어있어?”

 

시나와 동화를 한 나는 그 밑으로 빠르게 내려가서 붉은 로브와 금색으로 치장되어있는 시체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내가 내려간 것을 확인하고 레시아에게 끌려가서 강제로 이곳 밑으로 내려온 페트리는 울상이 되어버렸고, 시나가 주변을 확인했는지 나에게 입을 열었다.

 

“모두 죽어있습니다. 다만, 그들의 의지로 집단자살을 한 겁니다.”

 

“집단 자살을 했다고?

 

“기, 기록에는 봄으로 넘어가기 전에 의식을 실행해야 한다고 쓰여져 있어요. 으아앙! 여기 있기 싫어! 너무 무서워! 카일 씨! 당장 돌아가요! 제바아아알!”

 

내 바지까지 붙잡고 흔들며 눈을 가린 앞머리 밑으로 눈물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레시아에게 어떻게든 진정시키라고 말하고 싶지만, 지금은 페트리에게 철저한 정신교육을 시켜야 할 차례인가?

 

“페트리. 이들의 희생에 대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그렇게 울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날리지마.”

 

“그래도...”

 

페트리의 고개가 잠깐 시체를 보더니.

 

“으아아앙! 역시 너무 무서워!”

 

나중에 유령이나 귀신이라도 나오면 기절하는 거 아냐? 어쨌든 달라붙은 페트리를 억지로 끌고 가서 백골이 되기 직전인 시체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봄이 오기 전에 끝내야 한다고 기록된 일지를 한 손으로 넘겨보고 있었는데.

 

“이들은 벌써부터 신인류가 실패할 것을 알고, 트리니티의 명을 따라 준비하고 있었던 거네. 세상을 어지럽히고 싶으면 길가에 쓰레기 하나 버리는 것도 어지럽히는 건데. 어째서 이렇게 복잡하고 위험한 일을 감행하는 지 모르겠어.”

 

“마스터. 그런데 이들의 집단자살은 의식과 무슨 관계입니까?”

 

나는 잠깐 생각하고 있었으나, 레시아는 시나의 말에 즉답을 했다.

 

“영혼이다. 그들의 영혼을 하나로 규합하면 초월적인 사람이 태어나지. 이건 네크로맨서 뿐만이 아니라 신성한 사제들도 매우 위급할 때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이니라. 집단으로 자살을 하게 되면 모든 영혼들이 하나로 뭉치는 의식이 되고, 짧은 기간 안에 초월적인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지. 주로 영웅들을 만든 방식이 희생과 관련이 있노라.”

 

“그렇다고 멍청한 귀족처럼 지금 태어난 아이들을 다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애초에 응집된 초월적인 영혼들은 모든 사람들 속에 들어갈 수 있고, 시공간도 뚫어서 적합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니 이 의식으로 인해 다른 이의 몸 속으로 이미 들어갔다면, 가장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겠지. 아마 이걸로 존재하지 않는 마신 아르트리옴을 이곳에 강림시킬 수 있다는 것이...”

 

“그러니까 세상을 파괴하려는 순수한 목적을 지닌 마신을 불러오기 위함이네요? 그보다 존재하지 않는 마신이라니? 처음부터 없었던 마신이에요?”

 

“그게 아니다. 마신 아르트리옴의 육체가 봉인을 당했는데, 그 위치를 몰라서 영혼상태로 떠돌아다니고 있기에 ‘존재하지 않는 마신’이라는 이명이 붙는 것이니라. 완전히 없었다면 주인의 꿈에서 바보 같은 양과 함께 나타날 리가 없노라.”

 

“그렇...잠깐?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요?”

 

“기억을 몰래 들췄다. 불만이 있는가? 원래 부부는 비밀이 없어야 하느니라.”

 

완전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레시아의 말에 큰 불편함이 없었지만, 다음부터는 내 허락을 맞고 기억을 들추라고 해야겠다. 사생활적인 요소들이 나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것은 기분 좋지 않으니까.

 

“꺄아악! 카일 씨! 살려줘요! 시체가!”

 

뒤를 돌아보니 꿈틀거리며 페트리에게 다가오는 시체가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미 성대가 없으니 가래가 끓는듯한 소리를 냈는데, 페트리가 있는 위치까지 공간을 접어서 이동하고, 마법방패를 쌓아서 상항을 좀 지켜봤다.

 

“레시아? 저거 사념으로 해독할 수 있어요?”

 

“운이 좋게도 짐은 마왕이니라. 지금 사념으로 들려오는 것으로 보면 의식은 실패했다고 하더군.”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요?”

 

“짐이 보기에는 반 정도는 성공했는데, 남은 반이 실패했다고 했으니 지금 당장 죽을 수도 없는 저 몸으로 의식을 끝마치려고 하는 것이다. 애초에 누가 저주를 걸었는지 몰라도, 꼭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해야만 죽는 저주이니라.”

 

앙상하게 썩어가는 손이 마법방패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부식되기 시작했다. 이미 기능을 잃어버린 마법방패는 깨져버리고 티르빙을 꺼내 검면으로 쳐서 날렸다. 저 멀리 벽에 날아갔지만 다시 오뚜기처럼 일어난 시체를 보며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면 지금 저 사람을 제가 죽이면 의식이 완료 된다는 소리잖아요? 페트리! 공간을 닫고 레시아는 잡화점으로 긴급귀환 해주세요!”

 

뒤틀린 발을 이리저리 강하게 굴러서 우리에게 다가왔지만, 타이밍이 좋게도 레시아가 잡화점으로 긴급귀환을 하면서, 검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을 우연히 거울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이제 그 지역은 더 이상 가지 말죠.”

 

“너무 무서웠어요...훌쩍!”

 

자신의 손으로 눈물을 이리저리 닦으면서 바닥에 주저앉았을 때. 검은 고양이는 내 바지를 붙잡고 올라와서 입을 열었다.

 

“주인. 짐은 열심히 주인의 부탁을 들어줬노라. 그러니 이제 짐에게 보상을 줄 시간이 아닌가?”

 

“망할...아니, 그, 그래야죠. 일단 저는 밖에 나가서 남은 일 처리를 해야 하니까. 그 전에 이 나무상자부터 한번 풀어보죠.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꽤 중요한 물품이니까.”

 

“좋다. 짐은 느긋하게 기다리도록 하지. 오늘은 루시피나가 가져온 드라고니스 특제 입욕제를 사용해야 하겠노라. 비둘기도 따라 오거라 짐을 씻어줄 사람이 필요하니라.”

 

내 몸에서 뛰쳐나온 시나는 “저는 올빼미 입니다. 그리고 씻어줄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요.”라면서 검은 고양이의 뒤를 따라가는 하얀 올빼미의 모습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을 때. 붉은 줄로 묶인 상자를 보며 잠깐 생각을 했다.

 

분명 붉은 줄은 나무 상자 안에 있는 것을 봉인하기 위함이지만,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경우에는 사브누아가 자신의 연인을 자동인형 안으로 넣기 위해, 영혼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했으니 판도라의 상자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붉은 줄에 손을 가져가자마자 건드린 것만으로도 모조리 풀려버린 줄에 당황했다.

 

“이건 마치 빨리 꺼내달라는 것 같네요.”

 

페트리가 옆에서 상자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지 쓸 때 없는 소리였지만, 의외로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지금 이 안에 있는 물품은 무엇인지 꺼내보았는데, 순식간에 일부의 없어야 했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흘러 들어왔다.

 

“맞아. 이건‘레테의 단검’이야. 잠깐만? 어떻게 내가 이걸 잊을 수 있었지? 내가 이걸 잊어야 할만한 이유라도 있나?”

 

“혹시 기억을 잃기 전에 있었던 장면이 충격적이어서 스스로 찌른 것이 아닐까요?”

 

“스스로 찔러? 그럼 내가 뭘 본 건데?”

 

조금이라도 보면 죽거나 미치거나 심하면 침을 너무 많이 흘리는 존재라면, 이 단검을 찔러서 망각을 하는 것이 좋지만, 내가 용병활동을 하고 있을 당시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게다가 레테의 단검의 경우에는 찌르는 것 말고도 빛을 반사시켜 상대의 눈을 어지럽히기만 해도 일부의 기억을 날릴 수 있는데. 은색의 번개모양처럼 각이 지며 내려오는 레테의 단검이 너무 강력해서, 소유자를 제외하고 모든 이들의 기억을 지울 수 있다.

 

“제가 뭐라 했나요?”

 

페트리는 레테의 단검의 검면을 보다가 반사되는 빛에 기억을 잃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냐. 아무것도 아냐.”

 

 

레테의 단검도 아공간에 집어넣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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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너무 바빠서 이틀에 한번씩 써야 일정을 다 소화할 수 있더군요.

새벽에 아버지가 끌고 나와서 적당한 곳에 내려주고, 걷기 운동이든 달리기 운동이든 하고 있습니다.

집에 너무 있는다고 강제로 밖에다 투척하시고 있거든요.

그래서 집에 오면 지쳐서 쓰러질 것 같아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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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0 - 4

454

 

 

 

시나가 내 몸 속에 동화를 하고 대기가 아니라 활성화가 되는 순간, 강제로 내 성별을 바꾸려고 했으나 어떻게든 저항을 해서 겨우겨우 남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어쩌다 보니 머리카락이 길어지는 바람에 거울만 봐도 한숨만 나오기 시작했다. 눈보다 하얀 백발은 분명 시나의 트레이드 마크인데, 지금은 내 머리카락이 시나와 같은 색상을 띄고 있었다. 페트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나에게 물어보는 질문은 다음과 같았으니...

 

“그럼 카일 씨는 신격화가 된 상태에요? 지금 신이에요? 크리스마스 선물로 머리핀을 가지고 싶긴 한데. 그렇게 해줄 수 있나요?”

 

“신격화는 아냐. 반정도 신격화가 되기 위해서는 시나의 성별을 맞출 필요가 있어. 그러니까 내가 여자가 되야 한다는 뜻인데, 지금은 그냥 보호를 받기 위해 동화한 것뿐이야. 따라서 신은 아니고, 크리스마스 선물은 제발 부탁인데 나에게 하지 말고 산타 씨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라. 그게 더 알차고 뜻 깊은 순간이 될 거니까.”

 

비록 나의 산타는 레시아 때문에 가루로 되어버려서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겠지만, 다른 이의 동심을 내가 억지로 부술 이유는 없으니까. 기묘한 마법진이 주변에서 발동하고 있고, 주기적으로 빛이 이리저리 눈을 어지럽히고 있지만, 시나의 권능이 천천히 그 빛을 붙잡아 거둬가면서 내가 기억 잃는 것을 보호하고 있었고, 페트리 옆에 있는 레시아의 경우에는, 아예...잠깐만 그거 그 시대의 물건이 아니잖아?

 

“레시아? 그거 뭐에요?”

 

“음? 썬글라스다. 이것만 있으면 강한 빛은 흡수되고, 짐에게 있어선 시야가 보이는 마법의 물건이니라. 마리아가 저번에 바닷가에 놀러 가자고 했던 날에 준 물건이며, 주인에게 보여주려고 했으나, 주인은 아웃사이더마냥 혼자 잡화점 정리를 하겠다며 짐과 놀지 않던 그날에 받았노라.”

 

선글라스에 대해 묻지만 않았다면 내가 다음에 내딛는 발자국이 휘청거리지 않았을 거다. 레시아는 마음속으로 나와 같이 바닷가에 가지 못한 것을 한으로 품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쓰디 쓴 소리를 이제서야 하는 거였고, 페트리는 나를 보면서 호들갑떨기 시작했다.

 

“어째서 바다에 안 가나요? 바다에 가면 얼마나 좋은 일이 많은데! 낚시도 할 수 있고 곧바로 회를 만들어서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요?”

 

페트리의 취미는 낚시인가.

의외로 느긋하고 시간을 잘 보내는 취미를 가지고 있구나.

아무튼 낚시건 수영이건 바다에서 노는 것은 같으니까, 뭐라 할 말은 없지만 내가 바다에 가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때만큼은 잡화점의 일이 바빠서가 아닌, 혼자 있고 싶은 순간이 와서 집을 보겠다는 것뿐이었는데 말이지.

 

여러 사람들에게 항상 둘러 쌓이는 것이 좋은 거지만, 그런 일이 지속될수록 사람은 반동을 가지고 행동하게 된다. 나도 사람이니까 당연히 반동이 와서 혼자 있겠다고 하는 거였고...아니지. 그 이전부터 원래 혼자서 행동해온 결과가 혼자 있게 만들어준 건가?

 

그래도 낚시라면 요란하게 물장구를 하는 것보단 좋을 것 같다. 당연히 나는 낚시하는 방법을 모르지만...

 

“그런데 마스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내 머리는 올빼미 깃털로 되어있는 머리핀으로 긴 앞머리를 옆으로 고정을 했는데, 그 머리핀에서 시나의 질문이 나오는 것도 의외로 이상하다 생각했다.

 

“저번에 돌아다닌 그 사람들은 기억소거의 영향을 받는 것일까요?”

 

“그러게. 두 명이 짝을 지어서 천천히 걸어 다녔지. 그때는 레시아의 장막으로 몸을 가려서 눈치를 못 챘지만, 생각을 해보니 지금 레시아의 장막은 페트리를 감싸고 있잖아?”

 

“그러면 그 파수꾼과 같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달려오는 것이 아닙니까?”

 

시나의 말에 일리가 있어서 내 뇌는 자동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언제나 시나의 지식과 기교가 늘어나는 것을 생각하면 자랑스럽다고 생각했...

 

“잠깐? 우리에게 달려온다고?”

 

말 그대로 목표물을 포착한 마냥 나에게 달려오고 있는 추격자들 앞에서, 허둥지둥 티르빙을 타도로 바꿔서 휘둘렀다. 깔끔하게 잘려나가는 상반신과 하반신 사이에는 썩어버린 검은 피가 튀어나왔으니...

 

“페트리! 지금 당장 시체협회 건물로 뛰어가서 출입구를 만들어!”

 

내 다급한 목소리에 급하게 뛰어가는 페트리는 검은 고양이를 품에 안고 뛰고 있었고, 나는 시나의 권능을 이용해서 죽지 않는 언데드들을 빛으로 강타하고 있었다.

 

“마스터. 그럴 때는 데마시...”

 

“아냐. 그건 너무 멀리간 개그라고 생각해.”

 

“마스터도 무리수 던졌습니다.”

 

“지금은 사는 게 문제니까 뭐라 하지는 않을게!”

 

타도에서 늑대의 송곳니와 같은 쌍단도를 양손에 힘껏 쥐고, 백색의 빛이 날카로운 날을 타고 번쩍이기 시작했을 때. 어디서 몰려왔는지 사방에서 쏟아져 나온 언데드의 군세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어처구니 없네. 빛에 내성이 생긴 언데드라도 되는 건가?”

 

이 곳을 밝게 비추는 빛이라고 할지라도 언데드는 들어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마물의 왕인 레시아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빛은 언데드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정공법으로 들어가는 약점일 텐데.

 

“언데드의 약점은 빛이라는 공식은 없지만, 제가 보기에는 너무 많이 개조되어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개조? 막말로 저 녀석들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는 건 아니잖아?”

 

-삐용!

 

“봐! 적어도 팔에서 레이저가 나가...네?”

 

더 자세한 것은 팔에서 마법화살<Magic Arrow>이 너무 빠르게 나가서 한 순간의 빛처럼 보인 것뿐. 어쨌든 초급 마법까지 사용할 정도로 개조가 되어있는 언데드라면 이야기가 아주 약간 달라지기 시작한다.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은데 수가 많고, 의외로 성가시게 마법까지 사용할 줄 안다면, 결국에는 이들을 모조리 날려버리기 위해선 이 땅 자체를 정화해야 할 것 같아. 하지만 내가 사제가 아니라서 정화 같은 건 할 수 없지.”

 

“저의 권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시려면 결국 성별을 바꿔야 하겠지만 말이죠. 마스터는 그걸 원하지 않으시니 다른 방법을 모색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다른 방법을 모색하지 않아도 되고, 내 성별을 굳이 바꿔서 적합도를 더 늘린다는 행동은 하지 않아도 돼. 이미 페트리가 탈출하는 장소를 마련해줬으니까.”

 

날아오는 언데드를 오른발로 차버리고 마법방패를 고정좌표로 소환해서, 올라가는 계단처럼 만들기 시작했다. 방금 전에 내가 페트리에게 말을 걸었던 장소로 뛰어올라가, 시공의 눈으로 개안을 한 뒤에 주변을 훑어보자. 땅 밑에 거대한 구멍이 다양한 빛으로 휘몰아치기 시작했고, 그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바로 앞에 페트리가 시체협회 건물을 들어가고 있었다.

 

“세상이 이렇게 살기 힘든 곳이라니.”

 

페트리는 곧 이어 내가 들어오자마자 벽의 입구를 막아버리고,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카일 씨. 여기가 시체협회 건물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우선 물품이나 찾고 돈이 될 만한 것은 전부 가져가자고.”

 

“주인? 어째서 목표가 좀도둑질로 바뀐 것인가?”

 

“그래야 육포를 사니까요.”

 

“음. 주인. 아무래도 저 물건이 값이 좀 나갈 것 같노라.”

 

사실 물품을 챙길 여력은 없지만 내가 예전에 시체협회에서 가지고 온 물품을 떠올리지 못하기에, 아무거나 막 가져가서 분석을 하든 기억을 떠올리든 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곳은 지하로 가는 문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야 할까? 그나마 시체협회의 건물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서, 쭉 훑어보는 것에는 별 무리가 없어 보였다.

 

조금 귀찮은 수색이 될 것 같지만 이 안에 들어온 것만으로 사키엘의 문을 이용해서, 언제든지 침입이 가능하다는 뜻이니 오늘 하루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배가 고프면 점심을 먹고 다시 이곳에 찾아와서 물품을 가져가도 상관 없다.

 

“페트리가 위험하다 싶으면 레시아는 귀환마법을 이용해서 꼭 돌아가야 해요?”

 

“알았다. 그러니 주인은 짐에게 줄 상이나 잘 기억하고 있거라.”

 

아. 맞다. 제길! 잊고 있었는데.

어쩌지? 오늘 하루는 밖에서 노숙이라도 할까?

 

“그, 그렇군요. 아무튼 페트리의 안전이 우선이니까. 그 이야기는 나중에 둘만 있을 때 하도록 하죠.”

 

잔뜩 기대한 레시아의 눈빛을 마주볼 수 없어서, 조용히 고개를 돌리고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럴 때야 말로 좀 더 편안한 방법을 이용해서 넘어가도록 할까.

 

“마스터. 저도 최근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으니까. 상이 필요합니다. 저 냥캣에 뒤쳐지지 않을 상을 말하는 겁니다.”

 

“너는 잠깐 나중에 다시 이야기를 좀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어차피 지금 당장은 내가 가지고 가야 할 물품을 챙기는 것이 급선무니까.”

 

나의 기대심이 부풀어오른 이유는 시나의 동화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시나의 감정이 멋대로 내 몸 안에 그대로 들어오고 있는 것뿐이다. 언제나 레시아와 시나는 서로 지지 않으려고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기억은 없지만...

 

“그런데 저도 상이 있나요? 카일 씨?”

 

“너도 나에게 뭘 원하는 것이 있더냐?”

 

“착한 일을 하면 상을 받는 게 당연하잖아요! 산타 할아버지도 제가 착한 일을 할 때마다 항상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셨다고요!”

 

“...너 부모님과 같이 살았었어?”

 

“네.”

 

참혹한 진실은 내가 알려주기 싫으니 내가 먼저 이야기를 끊어버렸다. 그 대신에 나는...머리를 잠깐 긁어서 침묵의 시간을 짧게 잡고 입을 열었다.

 

“아. 그래 알았어. 좋아. 상을 주도록 하지. 그래서 뭘 원하는데?”

 

“다른 남자들을 봐도 공포증이 생기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그건 상이 아니라 부탁이잖아.”

 

“어쨌든 저는 카일 씨와 친해지고 나서 남자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어요. 그러니까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약한 존재라고 바뀌고 있어요.”

 

명백하게 틀린 말을 내 두 눈으로 그리고 두 귀로 직격타를 맞자, 머리가 멍해지면서 페트리마저 잘못된 길을 걸어갈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 너는 잡화점에만 있어서 나의 인간관계만 면밀하게 관찰한 것처럼 보이는데, 절대로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약하지 않아. 만약 내가 레시아와 시나보다 약했으면 저 둘의 주인으로 있지 않았다고? 내가 역으로 노예처럼 생활을 했겠지. 그렇지 않아?”

 

“주인은 짐의 신부이니라.”

“마스터는 제 신부입니다.”

 

“사제계열의 신부라고 말하는 거라 제발 말해줄래. 남자는 신랑이라고 부르던가! 남편이라고 부르던가! 제발 나를 보면서 신부라고 말하지 말란 말이야!”

 

“그럼 사실 마왕님과 빛의 여신님은 남자인가요? 원래 카일 씨는 여성이었고, 그럼 저도 남자?”

 

“둘이서 쓸 때 없는 소리를 하니까 페트리마저 쓸 때 없는 소리를 하잖아요! 이 전염병들아! 어떻게 할 거야! 이제 백신도 못 구할 텐데!”

 

지금 너무 여유롭게 이곳에 있는 것은 아닌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 안에는 언데드가 없다고 판단하고 페트리와 레시아를 위층에 올려 보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으면 내 쪽으로 빨리 내려오라고 말했는데, 페트리는 웃는 얼굴로 검은 고양이를 자신의 품 안에 안고 “알겠습니다!”라고 말한 뒤에 올라갔다.

 

그렇게 내가 1층을

 

“꺄아아아아악! 카일 씨! 카일 씨!”

 

아직 올라간 지 20초도 되지 않은 시간에 비명소리를 듣자마자 뛰어올라갔더니...

 

“모, 몽골리안 벌레에요! 저를 잡아 먹으러 왔나 봐요! 어떻게 해요!”

 

바닥에 있는 지렁이는 페트리에게 몽골리안 벌레라는 취급을 받으며, 자신이 가야 하는 길을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지렁이?

 

“원래 지렁이는 땅바닥 속에서 살 텐데? 이런 곳에 왜 기어 다니고 있는 거지?”

 

게다가 이곳은 2층이기도 하고 진흙이 있는 위치도 아니니까. 지렁이가 나오는 이유는 흙 속에서 살다가 빗물이 들어가기 시작할 때 물이 가득 고여서 나오는 것.

 

“묘하네.”

 

나는 지렁이를 집어 들고 손바닥 위로 올려놔 자세하게 관찰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지렁이. 그냥 꿈틀거리면서 몸이 건조하지도 않고 축축하게 윤기가 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돌연변이라던가 개조를 당한 것도 아니었고, 단순히 이곳을 기어서 어디로 가는지 알기 위해 바닥에 놓자. 일정한 장소에 계속 머물고 있었다.

 

“주인?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페트리가 얼마나 강하게 끌어안고 휘둘러졌는지 레시아의 귀가 내려가 있는 상태로, 어마어마한 분노를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튼 다시 지렁이에 시선을 주자 땅바닥 속에 들어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고, 나는 그 자리를 마나로 응축시켜서 터트렸다.

 

그 안에는 붉은 끝으로 묶여있는 나무상자가 붉은 흙에 덮여있는 모습.

 

“지렁이가 흙에 들어가려고 맨땅에 헤딩하는 일 따윈 벌이지 않는다. 주인은 이게 무슨 일인지 아는가?”

 

“무슨 일인데요?”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을 언제라도 꺼내기 위해 증거를 남겨놨다는 거지. 이걸 누가 덮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레시아의 말을 끝으로 나무상자를 챙겨서 아공간 속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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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는 지렁지ㄹ...이건 환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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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0 - 3

453

 

 

 

새벽에 그나마 지친 몸을 이끌고 무거운 몸이 평소보다 중력의 영향을 더 받아서, 더욱 더 무거운 몸으로 진화를 끝마치고 있을 때. 페트리는 나 대신 카운터 앞에 서서 멍하니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높새바람에게 돌아가지 않아도 되냐고 물어봐도, “하지만 몽골리안 벌레가 언제 습격할지 몰라요!”라는 바보 같은 소리를 듣고 나서 포기했다. 아직까지 남자에 대한 공포증이 남아있어서, 아무리 나라도 평상시에 거리를 좀 떨어뜨리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최근엔...아니, 페트리에게 이상한 거짓말을 하고 나서, 페트리가 내 쪽으로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으니까.

 

“생각을 해보니까 페트리에게 질문할 게 좀 있었어.”

 

“네? 뭔가요? 요즘 취미는 목욕하는 건데요?”

 

“너의 취미를 물어보려고 한 게 아냐! 이름없는 마을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건물 자체가 밀봉이 되었을 때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려는 것뿐이야!”

 

여전히 페트리의 눈을 가린 앞머리 때문에 생각을 읽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뛰어난 공간술사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든 뚫고 들어갈 수 있겠지. 마법의 지배자라고 불리는 켈모리아의 대결계도 뚫었으니까.

 

“밀봉이 되어있으면 밀봉을 풀면 되요!”

 

마치‘1+1은 뭐야?’라고 물어봤는데‘1+1이야!’라고 대답을 들은 것 같았다. 구체적인 것을 전부 생략을 해버리고‘밀봉이 되어있으면 풀면 그만이다.’라는 해답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 다른 관점에서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어떻게 침투를 하는 건데? 굳게 닫힌 문이나 벽은 물리적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면 말이야. 공간이동을 하기에는 그 안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아무도 모르잖아?”

 

“알 수 있어요.”

 

“창문으로 보는 건 금지거든?”

 

“그래도 알 수 있어요.”

 

아무래도 이번 일에는 페트리를 데리고 가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저렇게 자신 있는 대답을 하면 누구라도 신뢰가 가기 시작하니까. 어떻게든 알 수 있다는 그 말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지만...

 

“어떻게 아는 거야?”

 

“그건...소녀의 비밀이에요! 맞아요! 비밀 많은 소녀는 더 아름답다고 했어요! 그러니 저는 아름다움을 남긴 체 잡화점의 카운터를 보겠습니다.”

 

이 녀석이 가진 트라우마가 아무래도 남성공포증 말고 여러 가지 더 있어 보였지만, 즉흥으로 페트리까지 데리고 가는 걸로 생각했다.

 

“너는 이제 자고 있어. 내일 아침에 너도 데려갈 거니까.”

 

“네? 어디를요?”

 

“이름없는 마을이지. 정확히는 이름이 너무 많아서 기억도 나지 않는 마을이겠지만, 그래도 너를 데려가면 확실하게 시체협회 안으로 들어갈 것 같아서 말이야. 너도 모험 좋아하지?”

 

“아뇨...”

 

“아냐. 넌 모험 좋아해. 내가 그렇게 정했어.”

 

“어째서...”

 

강제로 참석하게 만들고 페트리에게 억지로 자라는 명령까지 하는 나를 보며, 레시아는 고양이 귀를 살짝 움직이고 한마디를 꺼냈다.

 

“주인이 그렇게 밝게 이야기 하는 건 처음 봤노라. 당연히 어린아이처럼 누구를 괴롭힐 때만 그리 밝아지는 것 같지만, 그래서 진정으로 가기 싫어하는 사람을 끌고 갈 생각이더냐? 어쩌면 주인 안에 숨겨진 가학성에 대해 참고를 좀 해야겠노라.”

 

“숨겨진 가학성은 또 뭐에요? 제가 나쁜 사람인 것 같잖아요.”

 

“주인이야 말로 원래 자야 할 시간이 아닌가? 저녁에 그 난리를 치고 무리를 하지 말지어다.”

 

“그런데 레시아? 어째서 본 모습에 고양이 귀를 달고 있는지 그것부터 물어볼 건데. 적절하게 대답할 자신 있으신가요?”

 

검은 고양이 귀가 움직였다고 해서 검은 고양이의 모습이 아니라, 연보라 빛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내 목을 스카프처럼 감싸고 있는 상태였다. 둘이 있을 때는 달라붙어 있어도 괜찮다고는 했으니, 아마 페트리가 가고 나서 본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겠지만...

 

“란제리를 입었으면 다른 곳으로 자러 가라고요. 레시아도 여태 안자고 뭐 하는 거에요?”

 

“주인을 유혹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등 뒤에서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괜찮을 터인데. 주인의 금강불괴와 같은 그런 정신력은 어디서 나타난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언데드인가?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는 그런?”

 

“자극하면 생물은 반응하기 마련이지만, 제가 용병을 하면서 숨죽여서 기다리는 일은 엄청 많이 했거든요. 물품을 운반하는데 몬스터를 피하기 위해서 말이죠. 마음을 굳게 먹으면 신체적인 변화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요.”

 

“칫! 주인은 왜 이렇게 난이도가 높은지 모르겠다. 그 비둘기가 없을 때 빨리빨리 진도를 나아가서, 짐과 주인의 2세를 봐야 차기 마왕으로 삼을 수 있는데 말이다.”

 

“차기 마왕이라니...”

 

“아들과 딸 하나씩 나으면 된다. 아니 아들만 나아야 하는 건가? 딸을 낳는다면 분명 주인에게 작업을 걸게 분명하니까.”

 

레시아가 자신의 미래를 멋대로 설계를 하는 동안, 내 머리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주기적으로 오는 기억소거는 레시아와 시나가 이제 알아차렸으니 해소할 수 있다고 하지만, 페트리의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주기적으로 기억소거 되면 가장 골치 아파지는 것이 페트리인데.

 

“레시아가 페트리를 보호해주실 수 있나요? 페트리가 우리들을 시체협회 안에 들어가게 해줄 수 있는 열쇠와 같은 존재이긴 한데.”

 

“주인의 부탁이라면 해줄 수 있지만, 어째서 그 여자는 검은 높새바람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주인에 대한 연모도 들어가지 않아있고, 그저 자신이 원하는 장소가 따로 정해진 것처럼 말이지.”

 

“페트리는 안전제일인 성향이니까요. 검은 높새바람보다 이것이 자신에게 있어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몰라요. 베니와 쉽게 친해져서 평상시에는 저보다 페트리가 베니를 자주 데리고 다니는 것도 있고, 당연히 내일...정확히는 오늘 아침에 시나가 저에게 빙의를 하고, 레시아가 페트리를 지켜주면 될 것 같아요.”

 

“그렇군. 보상은 무엇인가?”

 

“보상이요?”

 

가장 뜬금없는 소리에 레시아를 올려다봤다. 레시아는 심술이 난 표정으로 내 양쪽 볼을 어루만지면서 천천히 말하기를...

 

“그렇다. 보상이다. 무언가 부탁을 받고 성과를 냈을 때는 보상이 필요하다. 짐과 주인은 사역의 관계로 묶여있기 때문에, 주인이 명령을 하면 당연한 거지만, 남을 도와줄 때는 주인은 항상 짐에게 부탁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야 말로 그에 합당한 보상을 내려줘야 앞으로 주인이 부탁을 할 때...으웁!”

 

레시아의 뒷머리를 끌어당겨서 짧은 입맞춤을 나눴다.

 

“이건 선불로 하죠. 나중에 제대로 페트리와 같이 귀환을 했을 때. 나머지 보상을 다 주는 걸로. 그거라면 괜찮은 거죠?”

 

“어, 어째서 주인은 그런 말을 아무런 부끄럼도 없이...치사함에 극이 달했노라!”

 

어째서 치사한 건지 모르겠지만, 얼굴이 붉게 물들이며 소리치고 있는 레시아를 보고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다시 고개를 앞에 있는 잡화점의 문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레시아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내 목을 잘근잘근 물어서 간지럽히고 있었고, 무료한 시간에 읽을 책은 오늘 피지 못했다.

 

***

 

“마스터. 그래서 지금 냥캣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일단락 마무리를 짓고 아침에 일어났다고 하실 겁니까?”

 

백은의 눈빛이 어마어마한 분노를 품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분명 시나는 먼저 내 몸 속으로 동화해서 쉬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나와 레시아가 같이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며 지금 당장이라도 날 제거하겠다는 듯이 점점 빛이 나기 시작했다.

 

“아니! 아무 일도 없었어! 항상 다른 사람들은 여자와 남자가 한 이불에서 자고 있으면 그런 생각부터 하더라? 의외로 아무런 일도 없는데 그런 오해를 먼저 하는 건 그만해!”

 

시나는 나와 레시아의 주변을 확인하고는“확실히 마스터의 말씀대로 아무 일은 없었군요.”라고 말했다. 겨우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살해당할 위험에서 벗어날 줄 알았...

 

“하지만 냥캣에게 보상을 하겠다는 말부터 잘못 되었군요. 선불로 짤막한 입맞춤을 하신 것 같은데 진짜 보상은 무엇인가요?”

 

이 녀석 내 몸에 동화만 한 상태로 가만히 있기만 한 건가? 안 잔 거야?

 

“그, 뭐냐. 아니 그래도 페트리가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내가 부탁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서 그래. 사역마는 오직 주인을 위해서 움직이는 존재인데, 타인을 절대로 신경 쓰지 않겠다는 레시아 특유의 마왕이라는 자존심이 먼저 나와서, 그게 이런 식으로 꼬여버리긴 했네.”

 

“거짓말을 잘 하시는 걸로 보아. 오늘은 벌이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나? 무슨 벌을 내릴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한번만 봐주면 안 될까?”

 

너무 단호한 말과 표정에 기세가 눌려 나도 모르게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면 시나가 좀 더 크게 보였다던가.

 

“그렇군요. 제가 마스터에게 동화를 하면서 보호를 할 때는 여성의 모습으로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스터가 가장 싫어하는 상황 중에 하나니까요.”

 

“제발 그러지마. 내가 잘못했으니까. 이번 한번만 넘어가주면 안 될까?”

 

“그러면 저도 입맞춤을...”

 

레시아는 20대 초반의 모습을 해서 괜찮지만, 여전히 얼굴이 동글동글하고 작은 체구를 가진 시나의 경우에는 매우 위험한 처사가 아닐까?

 

“네가 최소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의 모습을 했어도 쉽게 되었을 텐데. 어째서 너는 항상 본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고 나이를 더 젊게 변신하는 거야? 그거 하나 때문에 지금 이거 쓰는 글쓴이가 국적에 상관없이 열도 변태 작가로 찍혔잖아.”

 

“그건 글쓴이가 여러 가지 실험을 하다가 벌어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사방팔방에 있는 거 없는 거 다 주워서 쓰다 보니 일어난 결과니까 상관하지 마시고, 어서 저에게도 입맞춤을 주시죠? 안 그러면 오늘 하루는 상당히 힘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예 하루를 고통 받으며 지내라는 건가.

 

“짧은 입맞춤 한번뿐인데도 이렇게 망설이시다니. 저보다 역시 냥캣을 더 좋아하는 군요?”

 

요즘 들어 질투를 하지 않았던 시나의 가슴속에 수많은 분노가 쌓여있었는지, 점점 냉혹해지고 차가워지는 말투에 불안함이 엄습했지만, 언제나 머릿속에서는 매크로마냥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아니. 당연히 시나도 좋아하지. 물론 인도적인 관점에서 말이야.”

 

“좋습니다. 오늘 하루는 제가 있는 이상 마스터는 반강제로 여성이 되겠군요. 인도고 카레고 뭐고 저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하루가 정말 재미있을 것 같군요.”

 

“잠깐! 그만둬!”

 

시나가 예정대로 내 몸 속으로 동화하는 모습은 좋았지만, 막대한 페널티를 입게 되었고 20분 정도 시간이 지날 무렵. 페트리는 외출하기 좋은 분홍색 짧은 스커트와,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상태로 나타났다. 어깨가 트여서‘이 시대에 정말 어울리는 옷이 맞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날려봤지만, 그건 쓸모가 없는 일이니까 다시 현실로 되돌아가서...

 

“카일 씨? 어디 있어요? 어라? 누구세요? 카일 씨의 숨겨진 여자친구?”

 

“내가 그 카일이야. 숨겨진 여자친구는 또 뭐야? 이미 결혼한 사람에게 여자친구가 있겠냐!”

 

최근 변동이 없어서 좋았는데.

 

어째서 또 다시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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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뭐 페이데이2 약속이 잡혀서 다른 글을 빨리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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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0 - 2

452

 

 

 

어설프게 침입했다가 내 팔만 빗금으로 새까매진 이후, 기억소거를 방지하려면 특수한 물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잡화점 2층과 3층을 오르고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정신방어든 뭐든 상관없이 일정 기억을 지운다는 그 자체만으로 골치가 아프지만, 다행인 것은 영향력이 그렇게 높지 않아서 조금씩 조금씩 전진했다. 3번 앞으로 가면 2번 후퇴하는 식이라고 해야 할까?

 

사소한 변화를 알아차리고 갈 수 있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인데, 오른팔을 깨끗하게 닦아내고 나서 다른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데, 과거로 가서 그 물품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방법이 있지만, 티아가 언급한 시간의 파수꾼이라는 존재는 매우 강력하다고 말했으니, 어쩔 수 없이 현실의 문제는 현실에서 해결해야 했다. 혹시 모를 위험이라던가 변수에 대한 존재는 확실히 배제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안전이기 때문에, 2층과 3층에서 쓸만한 물건을 찾으려고 했지만, 결국 40분째 허탕만치고 감옥에서 노인이 줬던 그 보석이 내 눈길을 끌어당겼다.

 

“생각을 해보면 이곳의 물품이 죄다 뭐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는데, 엘티노스는 이것들에 대해 설명이라도 하지 않았구나.”

 

애초에 정신오염에 영향을 받지 않아서 내가 잡화점의 주인으로 된 것 같지만, 어째서인지 시체협회 근처에 가려고만 하면 정신방어와는 상관없이 기억이 지워진다. 최면과 세뇌에 효과가 없는 나에게조차, 기억소거가 가능하다고 한다면 이것은 신보다 더한 존재가 만든 것이 아닐까?

 

“그 독백이 진실이라면 참으로 기대가 되는 군. 주인은 창조신보다 위에 있는 존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불가능했다면 트리니티가 억지로 자신을 초월체로 만들어서, 창조신을 제거하려고 들지 않았겠죠. 그 초월체야 말로 창조신을 잡아먹고 더 위에 있는 상위 존재가 되기 위함일지도 몰라요. 예를 들어서 젤나가들도 결국 자신의 피조물들에 의해 죽고 그러잖아요?”

 

“그 예를 꼭 들어야 하는지 짐은 묻고 싶지만, 지금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마침 고양이 꼬리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노라. 고양이 꼬리는 개처럼 살랑거리지 않지만 짐의 경우에는 한 가지의 징조를 감지하고 움직이지.”

 

뒤를 보며 레시아를 보았을 꼬리가 그렇게 많이는 아니고, 아주 조용하게 좌우로 바람에 흩날리듯 움직였다. 우선 나는 징조에 대해 묻지 않고 근본적인 문제부터 다가가기로 하자.

 

“대체 그 고양이 꼬리가 움직이는 설정은 어디다가 집어 넣으신 거에요?”

 

“오늘 집어넣었다. 어떤가? 잘 어울리는가?”

 

“아뇨. 전혀.”

 

“역시 주인은 부끄럼쟁이니라. 항상 좋다고 말하고 싶지만 부끄러워서 아니라고 말하는...”

 

“아뇨. 전혀 안 어울린다니까요?”

 

침묵의 바람이 나와 레시아 사이를 가로지르고 나서, 검은 고양이 귀가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작은 체구와 달리 잡화점을 뒤덮는 어마어마한 살기를 내뿜으며 레시아는 당돌하게 입을 열기 시작했으니.

 

“오호. 주인. 아무래도 짐이 잘못 들은 것 같노라. 애석하게도 짐은 마왕이기에 무엇이든 하면 잘 어울리고 귀여우니, 이걸 하면 인기가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을 하며 고안해낸 것이다. 다만, 아무래도 짐의 고상한 성격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위기에 잘 안 어울린다고 그리 상세하게 말하려는 것을 함축적인 의미로 표현하려는 의도는 잘 알았지만, 짐은 그래도 주인의 사역마이자 신랑이다. 신부 앞에서는 언제나 재롱을 떨고 싶어하는 이 소녀의 마음을 어떻게 그리 무참히 짓밟는다는 말인가?”

 

“이렇게요. 전혀 안 어울려...우아악!”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자마자 섬광 하나가 내 머리 위를 지나갔다. 2층에 있는 빈 서랍장이 버터가 잘려나가듯 깨끗한 단층을 그리며 떨어져 나갔고, 단숨에 하나의 서랍으로 이루었던 목재는 이제 목재조각이 되어버렸으니, 겨우 살았다는 안도감보단 아직 포식자 앞에 있는 초식동물마냥 덜덜 떨 수 밖에 없었다.

 

“주인은 한가지 실수하는 것이 있군. 자신의 여자를 위해서라면 가치관을 바꿔서라도 달콤한 말을 속삭일 줄 알아야 하느니라. 주인에게 이런 소리를 하는 이유라고 한다면, 오직 주인만 그런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따라서 짐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는 짐과 단 둘이 있을 때 꼭 붙어있을 것, 두 번째로는 짐과 단 둘이 있을 때는 주인의 몸을 만지는 것에 있어서 제한을 두지 말 것. 세 번째는 늘 짐을 기쁘게 하는 말만 골라서 사용할 것.”

 

“자, 잠깐만요.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허용할 수 없거든요? 그리고 뒤늦게 따지는 거지만 남자가 신랑이지 왜 신부에요?”

 

“달라붙는 건 되는 거였구나!”

 

“어째서 그거에 놀라는 거야!”

 

물건 정리를 하면서 소리치고 있을 때. 나는 정신방어 쪽이 아니라 육체에 직접간섭을 해서 기억상실을 일으키는 거라고 생각했다. 마법적인 세뇌는 정신방어에 영향을 끼치지만, 직접적인 육체적 세뇌는 자연스럽게 따라오도록 유도하는 것뿐. 대표적으로 동전과 실만 있으면 최면을 빠뜨릴 수 있는 경우가 그것. 전혀 마법과 마나가 관련이 없어도 쉽게 지배당한다.

 

“잠깐만...레시아. 우리가 그 주변에서 봐왔던 것 모두 알려줄 수 있어요? 아니, 3층에 있는 시나도 불러와보세요. 우리가 뭔가 놓친 것이 하나 있으니까.”

 

시나까지 내려오면서 “마스터. 저도 단 둘이 있을 때 달라붙어도 됩니까?”라는 질문을 받아서 당황스럽지만, 가볍게 무시를 하고 천천히 그 주변을 짚어보기 위해 안리아스의 수정구를 내 이마와 접촉했다.

 

안리아스 수정구가 빛을 발하기 시작하면서, 잡화점 2층을 시체협회가 있는 이름없는 도시로 비추기 시작했다.

 

“그렇군. 이곳 풍경은 수많은 마법진이 띄고 있었지, 그런데 이게 무슨 의미라도 있는 건가?”

 

레시아의 질문에 나는 시나에게 고개를 돌려서 입을 열었다.

 

“우리가 기억을 잃고 있는 동안, 너만큼은 기억을 유지하고 있었지? 우리가 계속 반복해서 말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야.”

 

“그렇습니다.”

 

시나가 들지 않는 이유라면 우리는 마법진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부터 집고 넘어가야 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빛에 의한 최면을 당한 것 같아요. 강한 빛으로 기억을 일부 잃고 다시 우리는 똑같은 말을 반복한 거죠. 하지만 시나는 창세의 여신과 더불어 침식하는 빛인 만큼, 물리적인 빛에도 면역력이 있어서 우리와는 다르게 기억을 잃지 않은 거에요. 설령 잃었다고 말했어도 잃은 척만한 것뿐이죠.”

 

레시아는 하얀 올빼미를 보며 경악했다.

 

“그럼 저 비둘기가...”

 

“올빼미라고요. 냥캣.”

 

“아무튼! 저 비둘기가 우리를 보호한다면 시체협회까지는 쉽게 돌파할 수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다만...저는 마스터에게 빙의를 해서 마스터를 보호해줄 수 있어도, 냥캣과 성질이 상극이라서 지켜드릴 수 없습니다. 유감이지만 말이죠.”

 

유감이라고 말해놓고 매우 기뻐 보이는 듯한 어조로 내 오른쪽 어깨에 날아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레시아는 그런 올빼미에게 코웃음을 치더니, “단순이 물리적인 빛에 의한 공격이었다면, 오히려 돌파하기 쉬우니 신경 쓰지 말거라.”라고 큰 소리쳤다.

 

“그러면 다시 갈 생각입니까?”

 

“아니. 또 다른 것도 찾아야지. 빛뿐만이 아니라 소리, 향에 대해서도 쉽게 기억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까. 심지어는 기억을 지우는 약물까지 있으니 그 주변에 공기까지 신경을 써야겠네요. 아니면 지상 말고 지하로 가는 통로가 분명 있을 거에요. 시체협회의 건물은 밀봉상태라고 봐도 적절할 테니까요.”

 

아무도 살지 않는 여러 집들 사이에서는 6층 높이의 거대한 건물이 자리잡았다. 검붉은 빛을 띄는 뾰족한 깃털이 장식 되어있는 탑. 층마다 각각 다른 넓이를 가지고 있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넓어지다가, 3층 미만부터는 같은 넓이가 유지 되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그 지역 전체를 전부 기억소거 하는 것인가? 마법진도 정상적으로 기억소거만을 위해 작동하고 있다면, 제가 전해준 물품과 관련이 있다는 거에요. 아니면 엄숙한 봉인을 위해서라도 그 지역을 전부...”

 

내가 말을 하는 도중에 끊어진 이유라고 한다면 모순점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 이건 마치 옛날부터 시체협회가 몰락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인데, 예전에는 시체협회의 회장이 나와 루니아 누나를 시기해서 저주를 내리다가 역으로 난장판이 되었다는 신문기사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왜 지금에 와서 이 사실을 깨달은 거지?”

 

“혹시 그 봉인을 하는 이유가 아르트리옴이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 아닌가? 예로부터 신들은 숭배를 하는 신도를 모으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니라. 자신을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돌아오기 시작하니까. 우리가 지금 이렇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마신이라는 존재는 계속해서 힘을 키워 나아가고 있노라.”

 

그렇다면 언젠가는 아르트리옴이 부활할 것을 깨닫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잊어버리도록, 한 도시를 희생시켜서 아르트리옴의 부활을 늦추고 있는 것인가?

 

“그렇게 따지면 가봐야 할 이유가 좀 더 생기는데...”

 

보통 다른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냐고 물어본들, 나에게는 지금 이유가 생겼다. 스스로 위험에 빠져서라도 가야 할 이유라고 한다면, 아르트리옴이 봉인 되어있는 장소에 롱기누스를 꽂아버리면 모든 일이 한방에 해결...

 

“그 독백은 짐은 윤허하지 않는다. 너무 단순한 생각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저도 마스터에게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기 밑에 아르트리옴이 있든 뭐가 있든 저는 일단 확인을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고요? 두 사람 다 제 말에 따르시죠. 사역마가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반론을 제시하다니!”

 

이렇게 말은 했지만, 내 머릿속에 그나마 정상적으로 남아있는 이성은 “그래도 몸이 고생할 건데 꼭 가야 하겠냐?”라는 말만 돌고 있었다. 그래서 추가적으로 나온 나의 말은 다음과 같았으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시체협회에서 숨겨놓았던 비밀이 무엇인지 그건 확인만하고 나올 거에요. 따로 해가 될만한 일은 하지 않을 테니 걱정은 하지 마시죠?”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동시에 크나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가는 것은 아니니까. 물품을 찾는 것은 그만두고 1층으로 내려가서...

 

“아~ 카일! 오늘 저녁 완료되었어요오.”

 

“제길! 도망가!”

 

생각을 해보니 잊고 있었는데 루니아 누나도 잡화점에 살고 있었구나. 2층의 방문을 걸어 잠가놓고 천천히 한숨을 돌리고 있을 무렵.

 

-파직!

 

“카일~? 오늘은 누나가 직접 만든 양고기 구이를 먹어야죠오?”

 

“그거 재료가 무지개 빛의 양이던가요?”

 

“아니요오? 정상적인 양인데요오?”

 

“그럼 왜 양고기가 무지개 빛으로 빛나고 있냐고요!”

 

 

그날 이후 잡화점이 또 다시 폭주를 하면서 파이론에는 10분간 재앙이 찾아왔다고 한다. 그 이유라면 결국 2층의 문을 국자 하나로 깨부수고 와서, 우리에게 형용할 수 없는 양고기인지 무지개인지를 억지로 집어넣었으니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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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럼프는 힘든 시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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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50 - 1

451

 

아르트리옴의 움직임은 별의 아이라고 해도 포착하기 힘들다고 하지만,

마신을 끌어내는 방법이라면 시체협회를 찾아가는 일 밖에 없었다.

네크로맨서들과 연관되기는 싫지만,

그들이 모시고 있는 신이 아르트리옴이기 때문에 나아가야만 했다.

-검은 높새바람 안에서 에밀리와 대화를 한 후에 카일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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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토끼 잠옷을 입고 안대는 토끼 얼굴이 그려져서, 순진무구한 소녀의 귀여움을 표출하고 싶은 것일까? 하지만 자신의 키보다 몇 배는 큰 브류나크를 한 손으로 이리저리 들고 있는 모습은 보기와 다르게…….

 

“카일 씨는 시체협회에 몰래 잠입해야 한다고? 근데 그런 얼굴로 인사를 하면 모두가 다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몰래 잠입해서 아르트리옴을 부르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거잖아? 그런데 어째서 내가 여장을 한 다음에 잠입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이유가 뭐야? 어? 너도 설마 백장미 구독자냐?”

 

에밀리는 조용히 자신의 품 안에서 하얀 잡지 몰래 비춰줬다. 빌어먹을 잡지는 왜 항상 내 눈에 비춰지는지 모르겠군.

 

“이거? 재미있던데?”

 

흥미로운 어조로 말하고 있었지만 이 어린아이의 페이스에 휘말리면 안 되니, 이번엔 다른 걸 트집잡도록 해보자.

 

“조용히 안 해? 그리고 이 동상은 왜 여기에 있냐고!”

 

“그거야 사실 엘티노스가 만들어낸 아이언 메이든과 비슷하거든, 카일 씨도 생각이 있다면 도플갱어라는 존재는 절대적으로 상급신의 흉내를 낼 수 없지. 그렇다면 엘티노스의 행방은 어디 있을까? 당연히 천계에서 여전히 상급신의 존재를 뽐내며 일만하고 있어. 그렇다면 이 아이언 메이든은 왜 만들었느냐? 그건 엘티노스만 알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왜 저 이상한 동상은 여김 없이 텔레파시로 노래를 부르고 난리야. 자세한 제목은 잘 모르겠지만...아냐 노래 가사도 그냥 신경 끄도록 하자. 어쨌든 저 안에 가둬놓고 엘티노스가 부르는 노래를 직접 들을 수 있다면 무시무시한 고문도 가능할 것 같았다.

 

-파앙!

 

“악! 내 머리! 대체 어디서 날아온 거야!”

 

“엘티노스가 머리를 한방 때렸나 보네.”

 

엘티노스는 보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머리를 때리지? 저 동상은 가만히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고, 어느 순간 손바닥으로 내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친 고통만, 내가 공격받았던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거 참 신기하네. 힘세고 강한 무언가가 내 머리를 때릴 수 있다는 게.

 

“바보 같은 독백은 그만두고 이제 슬슬 마왕님과 빛의 여신님께서 분노하실 시간이니까. 슬슬 돌아가보는 게 어때? 최근 여난 때문에 카일 씨도 힘들잖아? 그 많은 부인들을 하나 같이 밤마다 놀아줘야...”

 

“시끄러워! 어린애가 그런 말 하지마!”

 

“별의 아이가 되고 나면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정신적으로는 모든 만물의 이치를 다 알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어린아이가 습득하기 쉽지 않은 지식마저 전부 얻게 된다고? 당연히 별의 아이로 되기 전까지는 나도 순진무구하고 아리따운 소녀였지만.”

 

“순진무구가 다 죽었군. 그런데 아리엘에게는 어떻게 이야기를 할 거야? 아르트리옴이 마신답게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소리를?”

 

“뭐. 그 소녀 근처에는 아르트리옴이 항상 존재하겠지만, 일시적으로 그 접촉을 끊을 수 있기도 해. 그리고 아리엘에게는 되도록이면 진실을 말하지 않는 편도 좋긴 하지. 왜냐하면...그래, 맞아. 그거야. 그거라면 되겠어.”

 

“타당한 이유를 말하라고! 그거라고만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어!”

 

답답해서 목소리를 나도 모르게 올렸지만, 에밀리는 여전히 싱글벙글한 웃음으로 한 마디 했다.

 

“비밀이야. 이건 카일 씨에게 알려주지 않겠어. 켈모리아 학원장이 말하지 않는 이상 내가 알려줄 이유는 1%도 없고 카일 씨가 0.001%의 수치도 믿는다면, 더더욱 알려줘서는 안 되는 무시무시한 비밀. 마치 7개의 구슬을 모으면 신룡이 나타나는 것과 같아.”

 

에밀리를 상대하자면 헛소리를 너무 시원시원하게 해서, 사방팔방 트집을 잡을 요소가 가득했지만, 시간이 지체되어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레시아와 시나에게 걸어갔다.

 

“시체협회는 하나만 조심하면 뭐든 게 편해.”

 

아직도 할 말이 남았는지 에밀리에게 돌아봤을 무렵. 다음과 같은 말이 내 머리에 박혀버렸다.

 

“조용하게만 있으면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거야. 저주를 감행하는 저주술사들에게 관심을 띄고 싶지는 않겠지?”

 

저수술사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면 당연히 저주는 한 가득 받겠지만, 잡화점에서 돌아온 나는 루시피나에게 빌려준 가면을 다시 찾아왔다. 어릿광대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알려주고, 모든 저주를 전부 반사해준다고 한다면, 저주술사들에게 관심을 얻어도 모두 반사되어 자멸하겠지.

 

시체협회는 정말 의외라고 말할 정도로 신성 아우리온에 위치하고 있는데, 예전 칸포리우스 제국이 있었을 때. 시체협회는 칸포리우스 국경에서 최고 남쪽에 위치하는 도시에 자리잡고 있다. 신성 아우리온이 들어서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도 하고, 아우리스 신도들의 눈을 피해서 지하로 숨어들어갔다고 하지만, 그 사람들의 말은 전부 다 틀렸고 그때 그자리 그곳에 잘 있다.

 

너무 비밀리에 움직이는 시체협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남에게 저주를 해주는 것으로 먹고 산다기 보단, 이들도 정의감이 넘쳐서 저주를 해주하는 방향으로 좋은 이미지였다가, 이번에 시체협회장이 바뀌고 나서부터 어디가 정신이 나갔는지, 지금은 마신을 숭배하면서 자신들의 기술을 갈고 닦고 있었다.

 

“그런데 주인은 그런 곳에 들어가고 싶은가?”

 

“당연히 아니지만, 지금은 아르트리옴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불러와야 하지 않겠어요? 슬슬 그 마신과 대면을 좀 하고 싶은데.”

 

대면을 한다고 해서 만나줄 상대가 아니란 것도 알지만, 그들이 마신을 어떻게 숭배하는 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마스터는 마신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건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롱기누스의 창이 있으니까. 일격필살이라면 나는 항상 자신 있거든.”

 

티르빙 하나만 믿고 이렇게 자신이 있는 건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한방이면 모든 것이 평등해지는 신을 죽이는 창이 있으니까. 아우리온 남부에 있는 도시이름은 애석하게도 신성모독이라면서 가려져 있었다.

 

“이래선 여기가 어떤 이름인지 알려줄 수도 없잖아?”

 

이름이 계속 바뀌고 있다는 것으로 보면, 이곳에는 시체협회장의 이름을 따서 도시의 이름이 바뀌는 것도 있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이곳 지역 자체를 거론하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여행자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아무 말 대잔치가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그 지역에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하는데 그래도 간다고 하면, 그 즉시 이단으로 찍어버린다.

 

나의 경우에는 레시아가 마법으로 가려주고, 가는 길은 전부 다 알고 있으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방법은 마법을 전혀 이용하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긴 했다.

 

“마스터는 어째서 이런 길을 잘 아시는 건가요?”

 

“용병 뛰었을 때 외워뒀거든. 그 안에서 내가 뭘 했더라? 분명 어떤 물품을 가져다 주는 거였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걸로 보면 어느 사이에 내가 기억소거를 당했다는 소리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 물건은 그냥 생각하지 말자.

 

“그런데 루시피나와 루니아에게 잡화점을 맡겨도 괜찮은가? 주인이 말한 대로 지금은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그래도 뭉쳐서 다니는 것이 더 안전하지 않는가?”

 

“그 둘은 오히려 따로 떨어진 쪽이 더 좋을 거에요.”

 

마을로 들어서면 아무도 없는 이 폐허 같은 도시에 종종 볼 수 있는 건, 검붉은 후드로 뒤집어쓴 사람들이 조용히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애석하게도 이곳 사람들은 신성 아우리온에서 이단으로 찍혀있기 때문에, 칙칙한 슬럼가 분위기를 계속해서 내뿜고 있는 이곳은, 주변에 마법진을 확인하는데 실시간으로 기억을 지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기억을 주기적으로 지워주는 마법진이 이곳에 필요한가?”

 

“저나 레시아, 시나 같은 경우는 정신방어가 너무 강해서 걸리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지속적으로 기억 소거를 해줘야, 이단으로 찍히지 않고 평범한 생활이 가능할 거에요. 이곳을 알고 있다는 것을 몰라야 신성 아우리온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죠. 그건 그렇고 시체협회는 저기 커다란 건물이니까.”

 

그런데 내가 이 길을 알고 있다면 난 이것에 의해서 기억소거가 되지 않았다는 건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나도 모르게 시체협회로 가고 있는 지름길을 이용해, 좁은 길목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도 그렇고. 내가 과거에 어떤 물건을 운반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거 묘하네.”

 

여전히 몸에서 동화하고 있던 레시아는 나를 보며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주인은 여전히 쓸 때 없는 것에 목을 매는 건 버릇인 건가?”

 

“쓸 때 없다니...그래도 저에겐 중요한 문제였다고요? 그 물품이 왜 기억에 안 나는지는 의문이지만, 잠깐만? 제가 지금 이걸 몇 번이나 이야기했죠?”

 

“벌써 63번이다. 언제까지 그 말만 계속할 작정인가?”

 

63번?

이런! 기억소거마법이 듣고 있잖아!

 

“어째서 기억소거마법이 듣고 있는 거지?”

 

어쩐지 계속 목이 아프다고 했는데 계속해서 기억소거마법이 작용하면서 이상한 말을 벌써 63번이나 반복하고 있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는데?

 

“마스터. 이 일대에 있는 기억소거마법을 전부 제거합니까?”

 

“아니. 마법 때문은 아닌 것 같아. 분명 내가 전해준 물품은 이와 같은 작용을 하고 있었어. 대상의 기억을 일부 지우는 능력 말이야. 맞아. 이 안에 이상한 큐브 하나를 전달했고, 그걸 지금 촉매로 이 도시 모든 범위로 기억소거가 되는 거네요. 아무래도 그 물건을 회수하는 것까지 같이 해야겠어요.”

 

너무 위험하니까.

악용이 되면 큰일이지.

 

“그래도 주인이라서 쓸 때 없는 소리를 자주 반복해서 할 정도로, 짧은 시간대만 지워지는 걸로 보아 정신방어가 강하다는 걸 잘 알았노라. 시공의 눈으로 관측하는 것이 어떤가?”

 

“그런 방법도 있긴 하네요.”

 

시공의 눈을 개안해서 뒤를 봤을 땐. 똑같이 시공의 눈을 개안해서 뒤를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이 관찰되었다.

 

“레시아? 아무래도 이거 레시아도 듣고 있는 거 같은데요?”

 

“무엇을 말인가?”

 

“기억소거요.”

 

“그럴 리가 없노라. 짐은 마왕이다. 마왕은 오히려 상대방을 세뇌시켜서 부하로 만들지, 짐이 세뇌를 당해서 당할 일은 없노라.”

 

“하지만 아까 전에도 시공의 눈을 개안해서 주변을 바라보라고 하지 않았어요?”

 

레시아는 멍하니 있다가 나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어째서인가? 설마 과거의 주인도 똑같이 바라보고 있는 건가?”

 

갈수록 답이 없는 이 도시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반복할 때마다 표시를 남기죠. 오른팔에 표시를 남기면...”

 

 

표시를 남기기 위해서 팔을 걷으려고 했는데, 내 팔에는 이미 한 가득 검은 색의 빗금이 촘촘히 남겨 있었다. 확인을 해봐도 이미 100회는 넘어가고 있었고, 당장 이 도시에 벗어나서 해결책을 세우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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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50번째...

이거 대체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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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49 - 8

450

 

 

 

잡화점에 돌아오고 나서 내가 보고 들었던 것을 토대로 이야기를 했다. 모두를 모아서“우리는 더 이상 검은 높새바람과 비니스 여신을 추격하지 않을 겁니다.”라는 소리를 하자마자 레시아와 시나는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고, 데모르테는 “아 그래?”라는 말을 남겼으며, 루시피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2층에서는 이프리트와 윈디가 자고 있으니까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팔랑크스는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가 다시 말했다.

 

“갑자기 다른 결정을 내리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이야기 해주길 바람.”

 

“말 그대로. 검은 높새바람을 찾으러 가다가, 우연히 그 안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사람들을 보아하니 전부 아군이었다는 소리야. 그리고 대단한 오라클이 있다고 말했는데 별의 아이가 개입하고 있었어. 지금은 마신 아르트리옴을 잡기 위해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고 있다고 하더라.”

 

“너무 갑작스럽군. 주인은 그 이야기를 믿도록 하겠다는 건가?”

 

검은 고양이는 나와 눈을 마주하고 질문을 던졌다. 레시아마저 혼란스럽게 하는 나의 결정에 대해 자신이 있냐고 물어보는 것 같지만, 지금 당장 고쳐서 수정해야 할 점은 많이 있다. 검은 높새바람에게 습격을 받았을 때도 비니스 여신을 향해 외치고 죽은 사람이라던가, 지금 비니스 여신의 힘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

 

어쩌면 비니스 여신의 힘을 최대한 올라갔을 때. 아르트리옴은 그 힘을 흡수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시나는 샤이어에게 무슨 말 듣지 못했어?”

 

“천계 상황이 좋지 않아서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데모르테가 사키엘과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 중죄를 지어 봉인을 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우리스와 비니스를 중심으로 파벌이 나뉘어지고 있으니까요.”

 

천계가 분열하기 시작했다면 마계의 상황은 왜 이리 조용한 걸까?

 

“역시 천계는 틈나면 질투하는 녀석들 밖에 없군. 짐은 상당히 유능한 마왕이기에 내 부하들은 이간계가 통하지 않게 되어있거늘.”

 

검은 고양이는 꼬리를 천장위로 쭉 펴면서 자신감을 표출했다.

 

“그러면 지금 당장은 그리 큰 위험이라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네요오?”

 

“아니. 지금 당장 크나큰 위험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마신 아르트리옴이니까요. 어떻게든 이 마신을 불러서 적당하게 때려서 성격을 고치거나, 봉인을 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소멸을 시켜야 할 정도로 매우 위험하니까요. 기묘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제 앞에 나타나서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지 말아줄래요?”

 

“그래도 지금이야 말로 시간이 나는 것이 아니에요오?”

 

지금 루니아가 내 앞에서 웨딩드레스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고 시선을 보내고 있으나, 최대한 무시를 하고 내 의견을 말하기 위해 고개를 다른 쪽으로 빼내서 입을 열었다.

 

“지금이야 말로 바쁘게 움직여서 예방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 때죠. 아르트리옴의 본체가 있는 위치부터 찾아 다녀야 하고, 지금 당장 어디서 노래 자랑하고 있는 그 바보 같은 동상을 찾아야겠네요.”

 

“그 동상은 왜? 신랑에게 중요한 거야?”

 

“당연히. 그 사람이 엘티노스인지 아닌지를 판독하기 위해서죠. 아무리 생각해도 도플갱어가 무엇이든 흉내 낼 수 있다고 하지만, 상급신인 엘티노스의 권능이나 힘마저 흉내 낼 수 있는 생각은 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아버렸거든요. 유니콘이 얼룩말 사이에 자라났다고 해서 얼룩말의 얼룩을 따라 할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누나는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일이 결혼인 걸요오?”

 

아무래도 회의는 이 이상 무리인 것 같군. 지금 루니아 누나를 끼고 회의하는 것은 멍청하거나, 위험할 정도로 멍청하거나, 멍청할 정도로 위험하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폭주를 하면 어마어마해질 여파를 생각하고, 내가 먼저 원형 책상에 일어나서 회의를 마친다는 것을 무언의 행동으로 전파한 뒤에, 루니아 누나가 커다란 웨딩드레스를 입고 내 옆으로 뛰어왔을 무렵.

 

“카일은 지금 당장 마주해야 하는 일부터 해결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오? 누나는 결혼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답니다아?”

 

“마신 아르트리옴에게 주먹 한방 날리기 전까지 보류로 해두면 안 되요오?”

 

“당연히 안 되죠오. 오늘 오후 4시에 결혼식인데에?”

 

오늘 오후?

왜 나는 그 소식에 대해 들은 기억이 없지?

 

“대체 누가 오늘 오후 4시에 결혼식을 연다고 했나요?”

 

“누나가요오.”

 

“그냥 멋대로 열어버린 거잖아!”

 

“잡화점에서 열거에요오. 모의전투를 할 수 있는 그 방안에서 결혼식장으로 설정하면, 의외로 멋진 분위기에서 결혼식을 열 수 있으니까요오.”

 

그렇군. 잡화점은 가상의 환경에서 모의전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방이지만, 부수적인 면에서는 잘 수 있는 아득한 공간이 될 수 있고, 원한다면 저렇게 결혼식장으로 바뀔 수 있으니까.

 

“그러니 여기다 싸인을...”

 

“그건 노예 계약서라니까요! 혼인신청서가 아니라!”

 

결혼식은 조용히 잡화점 안에서만 조용히 진행하려는 것은, 루니아 누나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배려 넘치는 모습일 지라도 지금 당장은 이런 시간이 없을 터인데.

 

***

 

하객은 잡화점에 있는 멤버들뿐이기 때문에 결혼식을 하는 절차는 매우 간단하게 했다.

 

...라고 하려고 했는데.

 

“카일! 어서 웃어요오!”

 

“이 드레스 입고 저번에도 찍었잖아요! 결혼식이 메인이 아니라 백장미가 메인이였냐!”

 

어처구니 없게도 지금 백장미 19호에 덧붙일 사진이 필요하다면서 찍어야 한다고 말한 시점으로부터, 지금 이 장소는 혼돈의 도가니로 들어가고 있을 때였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누군가로 인해 세상이 멸망해도, 루니아 누나는 잠깐만 멈춰보라면서 백장미를 찍기 위해 나를 여장시킬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일을 하겠지. 그 정도로 고집불통에 독선적인 사람과 결혼을 한다는 그 말은, 스스로 자살하겠다는 소리와 뭐가 다르냐는 소리다.

 

정신적으로 자살을 하든 육체적으로 자살을 하든 루니아 누나에게 걸렸다면, 둘 다 시도를 해볼만한 가치가 있을지도 몰라.

 

“그 전에 누가 신부에게 수갑을 채워서 사진을 찍게 만드냐고요?”

 

“그야 당연히 카일이 도망가니까요오.”

 

“도망가게 만드니까 도망가는 거 아니에요!”

 

덩달아 퀸 사이즈에 해당하는 침대에 양손이 구속당했으니 이 촬영이 끝나고, 내 주변에서 눈을 번쩍이는 레시아라던가 시나, 루시피나의 시선을 받으면서, 불안감이 산불 번지듯이 번져나가고 있을 무렵. 페트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눈빛을 보냈지만,“카일 씨 정말 예뻐요. 흑흑! 이렇게 아름다운 결혼식은 처음이야.”라며 울고 있었다.

 

내가 왜 저 녀석을 잡화점 멤버로 받아줬을까?

지금 당장 검은 높새바람으로 되돌아가라고 하고 싶어지는군.

 

“대체 이 결혼식에 신랑이 없어서 어쩌자고! 당장 내 옷이나 되돌려주고 다시 시작이라도 해요!”

 

“하지만 주인. 원래 결혼식에는 신랑과 신부가 있는 것이 정석이고, 신부만 찍혀있는 결혼식은 허상에 가깝지만, 인간은 현실에 지친 나머지 허상을 쫓기 마련이다. 주인이 이렇게 여장을 하고 우리와 같이 사진을 찌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모든 우주에 떠돌아다니는 원소는 이와 같은 운명을 만들기 위해, 행성과 항성을 만들고 진화하는 동물을 만들었으며...”

 

“이상한 헛소리 한 번 할 때마다 아이언 클로가 나갈 테니 조심하시죠!”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풀리지 않는 수갑부터 어떻게 해야겠지만, 침대 위에 있는 기둥에 고정을 당한 터라 자연스럽게 한숨만 한 가득하게 나왔다.

 

“그럼 단체사진으로 우리 모두 카일 옆에 붙어볼까요오?”

 

레시아와 시나도 언제 본 모습으로 되돌아갔는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내 옆에 달라붙기 시작했을 때. 루시피나와 루니아가 외각을 장식하고 있었으니, 이 바보 같은 기념사진을 다 찍으려면 20분 정도 소비한 결혼식 절차의 10배는 더 걸릴 것 같았다.

 

“주인. 좀 더 웃어보거라? 아니면 주인을 웃게 만들 수도 있는데 간지럼을 태운다면 말이지?”

 

“잠깐만요. 이 상태에서 간지럼을 태운다면 그거 장난이 아니라 고문이 되어버리거든요?”

 

“마스터는 어느 부위가 가장 민감하십니까? 역시 발바닥?”

 

“시나? 내가 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니?”

 

루니아 누나는 커다란 새의 깃털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정말 모르겠는데, 이리저리 내 눈동자를 움직이면서 조용히 말했다.

 

“그거 의외로 재미있겠네요오. 카일을 한계까지 간지럽히면 좋은 사진이 나올지도 몰라요오.”

 

각자 깃털 하나씩 받아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띄고 다가오는 4명과 팔랑크스와 베니는 참혹한 모습은 도저히 못 보겠다며 뒤를 돌아 벽을 보고 있었고, 페트리는 오른손에 들고 있는 깃털을 그냥 흔들기만 할 뿐이었다.

 

“미, 미쳤어요? 정말 한다고? 아냐. 그러지마. 그만해! 그런다고 해서 제가 행복해 한다면 큰 오산이에요! 안 돼! 제발! 살려줘! 페트리! 루나! 카렌! 마리아! 대체 이 사람들은 얼마나 바쁘길래 이런 중요한 순간에 구해주지 않아!”

 

-잠깐 작업중입니다.

 

내가 가쁜 숨을 고르고 눈물로 인해 흐려진 시야가 서서히 되돌아왔을 땐, 모두가 행복한 얼굴로 만족이라는 단어를 숨기지 못하며 만끽을 하고 있었다. 온 몸이 신경이라도 벗겨져버렸는지 아직까지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모습에 한숨만 나왔지만, 부작용으로 발바닥이나 옆구리라던가 목 부위가 따가운 통증으로 화끈거리고 있을 때였다.

 

“마왕님! 여전히 카일이 비밀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아!”

 

“그렇군. 주인은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고 가만히 있는 것을 보아, 이번 고문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노라.”

 

대체 이건 또 무슨 상황극이야.

내가 무슨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건데?

 

“자. 주인? 이번에야 말로 저번에 아이니스가 왔을 무렵, 육포를 받아놓고 어디에 숨겼는지 그 진실을 고할 시간이니라. 쉬는 시간은 그리 많이 주지 않는다고? 비둘기 또한...”

 

“올빼미 입니다. 냥캣.”

 

여전히 눈보다 더 하얀 백발과 백은의 눈동자를 가진 소녀의 태클에 걸린 레시아는, 고개가 얼마나 빠르게 돌아갔는지 연보라 빛의 긴 머리가 뒤늦게 따라 움직이며 소리쳤다.

 

“어쨌든! 그대도 육포가 오는 줄 알고 행복해하지 않았던가!”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이니스에게 준 돈은 신문보다 더 많은 가격이었습니다. 그래서 틀림없이 육포를 샀을 거라고 확신했으니까요.”

 

그 놈의 육포는 대체 무슨 마력을 가지고 있길래, 내가 고생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육포라는 존재가 끼어있는 걸까. 지금 당장이라도 인생에 대해 되돌아 볼 시간을 가져야 했지만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깃털을 들고 있는 레시아와 시나는 나를 내려다 보면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잔인하고 사악해서 지금 이 곳이 악몽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자. 어서 말하지 않으면 깃털과 손으로 직접 고문을 해주도록 하지.”

 

“마스터.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알았어요! 제가 따로 아공간에 모아놓고 있었어요! 이제 됐죠!”

 

두 번 다시 이와 같은 고문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

 

“으음? 주인. 이건 그저 상황극일 뿐이니라. 거기에 맞는 대사는 “차라리 날 죽여라!”라는 비장한 소리이지 않는가?”

 

도 실토를 한 것뿐인데 유도심문에 걸려버린 꼴이 되었다.

 

“마스터가 육포를 따로 보관하고 있었다니, 제 마음속에는 마스터가 일방적으로 보낸 배신감으로 가득 차버렸습니다.”

 

“따라서 이후에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겠지? 주인? 루시피나! 루니아! 공격하라!”

 

““와아아~””

 

 

한편의 지옥도가 펼쳐지고 내 온 몸이 살려달라고 꿈틀거렸지만, 결국에는 수용할 수 있는 자극의 한계를 뛰어넘어버린 터라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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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 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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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49 - 7

449

 

 

 

엘븐 포레스트로 향한 발걸음은 그리 서두르지도, 그렇게까지 느리지도 않았다. 요정들의 구역인 몽환의 숲을 지나야 하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은...

 

“카일은 나를 만나러 온 거야.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지금 구속한 걸 풀어주지 않겠어.”

 

“티아. 네가 날 잡은 이유부터 설명해주면 정말 고맙...아니. 설명 하지 않아도 잘 알겠으니까. 널 만나러 온 것도 있으니 풀어줬으면 좋겠다.”

 

지금 이 검은 구역은 어디일까? 실시간으로 위치가 변하는 듯한 이 감각은 너무나도 생소해서, 유니콘이 무지개 빛의 잔상을 그리며 뛰어가는 것 같았다.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구나. 티아의 구속이 풀려서 드디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감사를 느꼈지만, 그보다 우선 이 공간 자체가 신기했으니까.

 

“티아. 이 공간은 나를 보여주기 위해서 만든 거야?”

 

“당연하지. 안이 매우 넓어 보이는 그 공간에서 카일을 가둬놓고, 오직 나만이 지켜볼 수 있는 새장과 같은 곳이지. 카일의 수명이나 노화 같은 건 매 하루마다 리셋이 되어서, 영원히 이 안에 살아갈 수 있게 해주기도 해.”

 

시공간술사는 등급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자신이 원하는 시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마저 사용할 수 있는 거라면, 티아야 말로 신과 비슷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봐야 맞다. 이제 한가지 문제가 남아있다면 대체 이 공간에서의 탈출이겠지. 여전히 여유롭게 내 어깨 위에 앉은 티아가, 아직 아침이라고 알리듯이 금빛의 긴 머리카락을 반짝이며 떠들고 있을 때.

 

“페어리는 원래 인간의 크기로 변할 수 있다고 했던가?”

 

“그것도 가능해. 원래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다녔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가면서 이렇게 작은 모습으로 살아가야 공격을 덜 받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카일과 데이트를 하니까 정말 좋다.”

 

데이트라기보단 네가 날 잡아서 이곳에 가둬버렸잖아.

 

“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과거에 그 어린 아이에게 이불이라도 발로 찰만한 말을 아무런 표정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뱉는 거라던가, 밤마다 릴리스에게 습격을 받아서 아침에는 초췌한 모습으로 발견이 되던가. 그리고 지금 엘프의 여왕을 찾아서 검은 높새바람의 위치를 들으러 가려는 것도.”

 

“너도 몬스터가 파이론을 침공했을 때 있었구나.”

 

“당연하지. 그 이상한 무지개 빛 떡을 누군가가 가져와서 단체로 쓰러져버렸는데! 만약 그 여기사가 해임이라도 당하지 않았다면, 그 공간 일대를 전부 요그 소토스에게 보내버릴 뻔했다고!”

 

그보다 그거 실존하고 있던 신이던가?

보통 이곳에 실존하면 안 되는 신이잖아?

 

티아가 매번 화풀이로 내 옷을 잡고 흔들고 있을 때도,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감옥을 매번 걸어가고 있었다. 시공간의 눈을 개안하면서 보고 걸으면, 그나마 탈출구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사용하고 있었지만, 현실시간이 전혀 가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 힘으로는 풀려날 수 없는 그런 감옥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를 독점하겠다고 이런 귀찮은 일을 할 리가 없다.

 

“티아. 오늘은 무슨 일 있던 거야? 네가 나를 다짜고짜 가둘 이유는 많이 있을지는 몰라도...”

 

“많이 있어!”

 

“많이 있어도 이렇게 가두는 이유는 진짜 그것뿐만은 아니겠지?”

 

티아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다음과 같은 말을 시작했다.

 

“카일은 여전히 검은 높새바람과 비니스 여신이 가장 큰 적이라고 생각해?”

 

“뭐. 아직까지는?”

 

“그래서 가둔 거야. 지금 카일이 하려는 일은 너무 무모해. 아무리 잡화점에 있는 멤버가 강하다고 해도, 너무 잘못된 길에 빠지고 있는 거야.”

 

티아의 눈에서는 확신이라는 단어가 한 가득 담겨있었다. 다른 시간선상의 티아들과 유일하게 대화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내가 이대로 계속 움직이게 된다면 그 다음 미래가 엉망이 될 거라는 결과를 먼저 봐버렸겠지.

 

“미래에서 무엇을 본 거야?”

 

“그야 당연히 멸망이지. 세계와 세계가 겹쳐져서 세상에 오류가 일어나고, 천계와 마계 그리고 인간과 몬스터가 공존하는 이 중간계마저, 전부 혼돈에 휩싸이는 무시무시한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으니까. 게다가 비니스 여신이 만약 적이라면 그때 카일을 살려두지 않았을 거야. 그것만큼은 알아줬으면 좋겠어.”

 

“너는 지금 내가 완전히 헛다리를 짚고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 다가온 거지?”

 

“지금은 마왕이 인간과 공존을 선포하면서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가 되어가고 있어. 하지만 그런 마왕의 그림자 속에 가려진 진짜 적은, 여전히 세상을 뒤흔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중이야. 이간질을 하면서 말이지.”

 

“레시아가 착하다고 할지라도 그 상위개념인 마신. 아르트리옴마저 착할 리가 없다는 거지?”

 

티아는 조용히 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검은 높새바람의 정보도 많지 않지만, 사실상 아르트리옴에 대한 정보도 없는 것이 사실. 게다가 비니스의 움직임도 모두 아르트리옴의 이간계로 통한 행동이라면, 그 자가 이 세상을 멸망시킬 장본인이란 소리다.

 

신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아르트리옴이 곧바로 세계를 전이시켜서 멸망까지 몰아가지 못하는 이유라고 한다면, 숭배하고 있는 사람이 너무 적은 것도 있지만, 지금은 아우리스와 비니스의 힘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발각될 가능성이 높은 것뿐.

 

“그래서 숨어있는 적은 아르트리옴이라는 것?”

 

“그런 거지. 그 이상은 스포일러라서 말해주지 않겠지만,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검은 높새바람이 아냐. 그들은 애초에 우호적인 단체라고? 세계의 균형을 위해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 칙칙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낸다고 해서 나쁘다고 생각하지마.”

 

여태까지 끌고 온 것이 아르트리옴 하나 때문에 반전을 낳아버렸다. 그러면 켈모리아 학원장은 이 사실에 대해서 전부 알고 있는 걸까? 아니, 이걸 이미 알고 있기에 지금은 흐름대로 움직이는 걸지도 몰라.

 

적절한 순간 마신에게 한방 먹이기 위해서.

 

“그러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그야. 비밀리에 검은 높새바람과 접촉해서, 간섭하지 않겠다고 말을 한다면 될 거야. 그러면 그들에게 있어서 단 2명의 적중에 하나는 사라지게 되고, 그 다음 화살은 카멜롯으로 집중하게 되는 거겠지. 이제 알려줄 것도 다 알려줬으니 나랑 이렇게 데이트 하는 것도 끝이네.”

 

아쉬운 듯이 한숨을 내쉬는 티아의 말에 물음을 보냈다.

 

“끝?”

 

“지금 엘븐 포레스트에 다 왔거든. 멜로디 여왕을 찾으러 온 거 아니었어?”

 

“당연히 검은 높새바람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그렇다면 잘 찾아왔네.”

 

그리고 내 눈앞에 펼쳐진 곳은 공중을 날고 있는 배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내 목에 검과 마법을 겨누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 중에 검은 로브를 쓰고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다가오더니, 후드를 거두며 천천히 반겨줬다.

 

화사한 태양빛과 같은 금발과 새벽과 같은 벽안. 사람의 고개를 저절로 돌리게 만드는 청명하고 은은한 목소리. 그리고 뾰족하고 살짝 기다란 귀까지.

 

“어서 오세요. 검은 높새바람의 공중요새에.”

 

멜로디 씨는 검은 높새바람 안에서 고위간부를 맡고 있는지, 멜로디의 말을 듣자마자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경계를 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형씨. 어쩌면 형씨가 이곳을 이끌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검은 까마귀 깃털이 한 가득한 망토를 입고 있는 크로우는, 여전히 실실 웃어대기 시작했다. 어쩐지 나는 검은 높새바람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데, 그 안에서는 실베스 씨마저 성큼성큼 걸어 다니고 있었고...

 

“여전히 귀여운 얼굴이네. 이제서야 그 진실과 마주하니 행복하겠어?”

 

“레이나 씨도 이곳에 있었어요?”

 

점점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가관이었다. 하얀 백색의 가운을 입은 레이나 씨는 지금 카멜롯에 있는 마법학원은 어디다 버리고, 이곳에서 간부 노릇을 하고 있는 걸까?

 

“이게 무슨 생일파티도 아니고 너무 놀래서 기절할 것 같은데, 이 일이 대체 무슨 난장판인지 설명해주시겠어요?”

 

“말 그대로야. 검은 높새바람은 네가 생각한 진짜 적도 아니고, 이걸 이끌고 있는 비니스 여신님도 진짜 적이 아니라는 것. 게다가 아르트리옴의 이간질 덕분에 천계는 내부분열이 일어나버려서, 운명을 관측해야 하는 데모르테가 없어졌으니, 그 운명을 아르트리옴이 자기 멋대로 비틀고 있어.”

 

천에 가뜩 쌓여진 창을 들고 있는 소녀의 눈에는 어두운 밤하늘의 별을 모두 담고 있는 듯이, 찬란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루멘에 이어 별의 아이로 선정된 소녀는 가장 자랑스러운 웃음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어 말하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당신만이 나의 예지를 피해서 움직일 수 있다면, 아르트리옴이 레이베리아의 눈을 피해 자기 멋대로 설정한 시나리오도 다시 써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분명 이름이 에밀리라고 했던가요?”

 

루멘의 장례식에 다녀온 적이 있으니 다음 별의 아이의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었다만,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르는 분홍색의 토끼가 그려진 눈가리개를 이마에 올리고 있었다.

 

“그래. 에밀리야. 지금은 브류나크의 주인이고.”

 

어린 아이가 한 손으로 창을 들고 있다는 것은 어려울 텐데.

 

“하지만 분명 다른 대륙으로 비공정을 타고 넘어갔다고 했는데?”

 

“당연히 타고 넘어가려고 했지만, 그 즉시 예지를 본 것으로는 온 세계가 지옥으로 변하는 예지였거든. 그래서 넘어가는 것을 중지하고 인재를 모아서 검은 높새바람을 만든 거야. 검은 산들바람을 쓰려고 했는데, 이미 존재하는 이름이라고 해서 높새바람으로 했지.”

 

이미 있는 거라도 사용할 수 있을 텐데.

어쨌든 지금 이렇게라도 진실을 마주했으니 더 늦기 전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왜 검은 높새바람이 출몰할 때마다 이상한 산적아저씨나? 그런 사람이 보이는 이유는 뭐에요?”

 

“그건 제가 목소리로 지배를 해서 그렇거든요. 자금들은 전부 기부를 하느라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범죄자들을 세뇌해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답니다.”

 

웃으면서 말하는 멜로디 씨에게 살짝 소름이 돋았다. 세뇌를 해서 유용하게 쓰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엘프들도 결국 멜로디 씨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세뇌를 당한 것이 아닐까?

 

우선 그건 둘째치고...

 

“그렇다면 왜 저에게 이걸 미리 말하지 않은 거에요? 그보다 엘티노스는 왜 저곳에서 석상인 상태로 발견 된 거고요!”

 

요즘 엘티노스로 이루어진 석상이 어디로 사라지나 했더니, 검은 높새바람의 공중요새 한 가운데에서 노래 연습이나 하고 있었다니. 내가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 끝에는 거대한 석상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었다.

 

“왜? 어째서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를 저에게 단 한마디도 안 한 거에요?”

 

그러자 에밀리는 아주 당당하게 외쳤다.

 

“그거야 당연히 잡화점과 카멜롯은 미끼를 담당하는 역할이니까. 자신의 육체를 이탈한 상태로 영혼만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는 아르트리옴을 끌어낼 수 있는 존재는 필요하거든.”

 

“그럼 그 미끼역할은 저하고 또 누가 하는데요?”

 

질문을 들은 에밀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거야 당연히 아리엘이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유일하게 아르트리옴의 힘을 이어받은 그녀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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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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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49 - 6

448

 

 

 

루니아 누나가 기사에서 해임되고 귀족 영애의 운명은 과연 결혼을 하는 것만 있을까? 내 생각에는 그건 아닌 것 같고 가장 무시무시한 일이 하나 남았는데, 백장미의 시초는 루니아 누나가 저지른 장난에 의해 생겨났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검은 높새바람과 비니스 여신인지, 만약 아니라면 다른 흑막에 의해 난장판이 될 세계를 조기에 구해내야 하는 일보다, 지금은 내가 여장을 안 하는 것이 1순위로 될 줄은 몰랐다.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더 심해질지도 모르니까. 백장미에 관련된 일 말고 다른 일을 부여하는 것이 더 편하겠지.

 

여전히 명치 맞고 쓰러진 하멀 씨에게 시선을 둔 상태로, 카운터 책상 위에서 앞발이나 핥고 있는 레시아에게 말을 걸었다.

 

“레시아. 루니아 누나는 결국 마왕군 소속으로 가게 되면 마왕군의 기사 아니에요?”

 

“아. 생각을 해보니 잊고 있었군. 루니아가 인간 소속의 기사를 그만두면 짐의 밑에서 일하는 걸로 되어있었노라. 역시 주인은 그런 쓸 때 없는 것까지 제대로 기억해서 짐을 항상 놀랍게 만든다. 그 경이로움에 주인의 머리 안에 커스타드 소스라도 바르고 싶을 지경이로군.”

 

레시아의 붉은 눈에서는 “왜 그런 쓸 때 없는 말을 해서 나를 귀찮게 만드냐?”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결혼을 강요 받아서 하는 것보다 괜찮겠지. 루니아 누나는 느긋한 얼굴로 나의 어깨를 붙잡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결혼은 할 거죠오?”

 

어깨를 잡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감자를 으스러뜨리는 수준이네. 4초라도 빨리 말하지 않으면 어깨가 탈골 될 것만 같았다.

 

“우선. 우리는 아직까지 처리해야 할 일이 좀 많다고...아아아아악!”

 

“결혼식장은 어디로 하죠오?”

 

말을 돌리려고 해도 루니아 누나의 고집은 언제나 남을 무시하고 일방통행이 강하다. 장해물로 앞을 막아놔도 그 장해물을 강제로 부수고 나아가는 고집을 생각하면, 이 말을 돌리기 위해선 다른 것이 필요하다.

 

“우선 검은 높새바람이나 세계와 세계가 충돌하는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결혼이나 그런 건 좀 나중에...”

 

“여기에 싸인만 해주시면 되요오.”

 

“그거 언제부터 작성했길래 종이 자체가 너덜너덜해진 거죠?”

 

그보다 그건 혼인신청서가 아니라 계약서잖아. 덤으로 정교하게 마법처리까지 되어있는 함정카드 같은 무언가가...

 

“1년 전쯤에?”

 

1년 전에 내 이름을 신랑측에다 적어놓고 싸인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을 들으면, 뭐라고 반응하는 것이 좀 더 현명하고 좋을까? 돌아가지 않는 나의 머리로는 한계가 곧바로 올라와서 잘 모르겠다. 하멀 씨는 그 와중에 명치를 너무 강하게 맞았는지 여전히 바닥에 엎드려있는 상태였...는데? 어째 그 위치가 아닌 것 같다. 문 밖으로 약간 가까워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그래도 카일의 성격으로는 귀빈들 없이 조용하게 결혼식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지요오? 신부의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이 좋지만~”

 

“그 건에 대해서는 저도 다시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습니다. 마스터.”

“짐도 결혼식장의 분위기를 알고 싶노라.”

 

루니아의 말에 자연스레 따라붙는 두 사역마의 말을 듣고, 한숨이 내 입에서 뽑아지기 일보직전이다. 대체 어느 누가 결혼하는 게 좋다고 말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선 그리 좋은 경험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한들 저들의 마음을 짓밟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니까.

 

“검은 높새바람을 분쇄하든 우리편으로 만들든 해서 해결을 하고, 만약 세계끼리 부딪치는 대재앙이 마주했을 때는, 그 대재앙까지 제거해야만 결혼하는 걸로 하죠. 당연히 루시피나까지 웨딩드레스 입히고, 결혼식장에서 제가 아는 사람 전부 다 불러모아서 우주규모로 열어버릴 테니까! 우선 저는 지금 당장 찾아온 일부터 해결하고 싶어요. 늘 생각하지만 저는 우리 주변이라도 안전해야, 행복한 일을 찾을 수 있는 여유가 나온다고 생각하니까요.”

 

“음. 카일이 그렇게 생각한다면야...결혼식은 아주 잠깐 뒤로 미루도록 할까요오? 그래도 누나 빨리 결혼하고 싶으니까 열심히 일해야겠네요오.”

 

“하멀 씨도 그것에는 찬성하죠?”

 

내가 하멀 씨에게 시선을 올렸을 때는 기절한 듯이 미동도 하지 않고, 바로 문 앞에 웅크린 상태 그대로 가만히 있었...

 

“하멀 씨! 어딜 도망가는 거에요!”

 

“하하하! 이것이 나의 도주경로다!”

 

갑자기 일어난 하멀 씨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마자, 좌표마법으로 내 앞에 다시 불러왔다.

 

“어라? 나는 분명 밖으로 나갔을 텐데?”

 

그리고 다시...

 

-파앙!

 

“아오! 루니아! 대체 나에게 왜 그래!”

 

루니아 누나의 주먹이 하멀 씨의 명치를 또 가격했다. 얼마나 강하게 때렸는지 주변에 울리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었고, 저걸 2번이나 맞고 살아있는 하멀 씨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을 무렵. 루니아 누나는 하멀 씨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하멀 오빠? 카일이 레이비스 가문으로 가는 건 원하지 않는데 말이지?”

 

“뭐? 그러면 평민에게 귀족의 이름을 주지 않겠다는 소리야? 오히려 공작가문의 일원이 되는 것만으로도 가장 중요한 일을 행할 수 있다고? 지금까지는 신분 때문에 섣불리 해결하지도 못하고 나서지 못하는 일을 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 뭐가 나쁜 건데?”

 

“그렇게 되면 카일도 결국 그 여신의 노예로 잡혀 살 거 아냐?”

 

이 둘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애초에 평민은 자신의 그릇을 측정하고 움직이는 녀석이라고, 섣부르게 왕이나 큰 인물이 되지 못하는 것도 알고 있을 텐데. 그럴 바에는 레이베리아 여신의 힘을 이어받아서 평민의 말대로 검은 높새바람이라던가, 세계가 겹치는 대재앙을 조기에 막는 방법이 가장 빨라.”

 

“저기. 두 분의 가문의 문제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왜 거기에 일원이 된다고 하멀 씨는 생각을 하는 거죠?”

 

“너도 신기해 했잖아? 보기만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꿰뚫어보는 눈 말이야. 레이비스 가문 남자들만 대대적으로 황금색의 눈을 갖게 되는 이유 같은 것도.”

 

“그게 레이베리아라는 여신과 관련이 있긴 해요?”

 

“당연하지. 우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눈인데.”

 

우주의 본질을 꿰뚫어본다고? 비욘드가 이곳 우주에 나타나기라도 했나? 혹시라도 생각을 했는데...

 

“설마...어제 루니아 누나의 요리를 몬스터들의 숲에 몰래 버리라고 시킨 것은 하멀 씨였나요? 루니아 누나와 저를 어떻게든 이어주게 하기 위해서?”

 

“그만큼 상황이 좀 심각하다는 소리야.”

 

“그럼 오빠 때문에 내가 기사에서 해임된 거야?”

 

“언제나 5수 앞을 내다보고 움직이는 것이 내 철학이니까. 궁극적인 목표를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이익이 있어야 움직이지 않겠어? 원래는 결혼식을 열고 일이 다 끝나면 이야기해주려고 했는데. 평민이 눈치가 너무 빨라서 이걸 하나하나 다 설명해주고 있어야 될 판이네.”

 

하멀 씨는 악역을 자처해서 희생까지 치르더라도, 결국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전부 가리지 않았다. 예전에는 달 토끼들의 위치를 알아내려고 나를 미끼로 쓴 것도 있고, 하란국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나를 제물로 보내는 그런 일까지 했으니까. 희생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많은 목숨이 살아남았다.

 

게다가 이번엔 나에게 레이베리아의 힘을 이어주기 위해, 레이비스 가문으로 들어오라는 하멀 씨의 권유는 거절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레이베리아의 힘을 이어받기 싫은 것도, 평민이 주제도 모르고 공작가문의 귀족으로 점핑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도 아니고, 하멀 씨의 말대로 내가 내 그릇을 잘 파악하고 있어서, 높은 위치에 올라설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가 아니다.

 

“방금. 우리 카일을 이상한 여신의 밑으로 놓겠다고 한 것 같은데?”

 

잡화점 3층에서는 무서운 여신이 살고 있으니까. 비록 아우리스에게 쫓기고 있는 몸이기도 하고, 비니스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적이라고 볼 수 있는 운명의 여신. 데모르테가 1층에서 검은 날개를 피며 하멀 씨를 노려보고 있었다.

 

“애초에 운명의 여신이 직접 도와줄 수 없으니 다른 여신의 힘을 빌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것뿐입니다.”

 

“하지만. 카일은 나와 계약을 한 것이 있다고? 운명의 연속성을 모두 걸고 말하는데, 카일은 그 제안 어떻게 해서든 거절하게 될 거야. 내가 괜히 운명의 여신이겠어?”

 

“음. 이건 내 시나리오에 없었는데. 꽤나 골치 아프게 생겼군.”

 

“게다가.”

 

내 뒤에서 데모르테가 살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리지 못하게, 저 수사관의 기억을 잠깐 소거해도 되겠지? 루니아라면 어차피 우리 잡화점에서 살 거니까 상관은 없겠지만, 이 수사관은 당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알 수 없는 타입이거든. 겉으로는 남을 위해서 일을 하려고 해도, 레이베리아에게 전부 일러바칠 수 있으니까.”

 

하멀 씨는 그 살기에 마주하면서도 당당히 말을 올렸다.

 

“아뇨. 레이베리아님은 이미 잡화점에 숨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카일과 계약을 맺는 것도 이미 꿰뚫어보고 있죠. 운명의 여신은 운명과 예지를 자신의 뜻대로 바꾸는 능력이 있다고 하지만, 레이베리아님은 그 모순의 본질을 비추고 수정하기 때문에 밸런스가 맞는 거라면서요?”

 

“쓸 때 없는 건 잘 알고 있군. 그래서 기억은 얼마나 소거 당할래?”

 

“잠깐만요! 두분 싸우지 마세요!”

 

결국 둘 사이에 끼어들어서 상호간의 신경전을 막아야 했다. 데모르테는 “흥!”하면서 긴 흑발이 고개에 맞춰서 저절로 따라 돌아갔고, 하멀 씨는 한숨을 내쉬면서 그나마 큰 위험을 넘겼다는 생각을 했겠지.

 

“내 시나리오에는 이런 게 없었는데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시나리오요?”

 

“계획 말이야. 꼭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해야 되냐?”

 

“아니.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본 줄 알아요? 그보다 하멀 씨는 의도적으로 루니아 누나를 이곳에 보내기 위해 움직인 거죠?”

 

하멀 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히 네가 더 자유자재로 써먹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우리 레이비스 가문이 살아남은 이유 또한 본질을 꿰뚫어보고 그에 맞춰서 움직이기 때문이야.”

 

“하지만 제 눈은 이미 용량이 가득 찼거든요. 시공간을 꿰뚫어보는 눈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여신에 관련되면 좋아하지 않을 사람들이 2명 더 있어요.”

 

레시아와 시나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만, 그리 달가운 소리가 아니었는지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았다.

 

“뭐. 나는 어차피 또 다른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해주기 위해 계획을 한 거니까. 어차피 사건을 해결하는 건 단일적인 구조가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 있겠지. 선택하는 건 네 몫이야. 내 말에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나는 화내거나 억지부리지도 않을 거고, 네 생각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존중해줄게. 대신...”

 

하멀 씨가 유독 진지하게 띈 금색의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했을 무렵 다음과 같은 말을 했는데.

 

“결혼식장 음식에 굴요리는 꼭 빼놔라. 그거 먹기 싫다.”

 

 

하멀 씨는 해산물에는 그닥 좋지 않는 경험이 있었는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천천히 잡화점 밖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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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요리는 저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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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이야기

금요일.

그 녀석이다. 그 녀석이 틀림없다.
유치하리만큼 조잡한 그의 복수에 헛웃음이 나왔다. 고작 이 정도니?

 금요일이라 그런지 아침부터 바쁜 하루였다. 오전 내내 거래처의 독촉 전화에 시달려야 했고 과장의 입에선 적당히 둘러대라는 말만 나왔다. 이리저리 둘러대는 말을 하다 보니 배가 엄청 고팠고, 점심으로 게 눈 감추듯 국밥 한 그릇을 뚝딱하고 돌아온 사무실엔 여전히 할 일이 쌓여있었다. 전화 세례에 미뤄뒀던 서류작업 사이에서 허덕이며 불금은 무슨, 집에 가서 이 한몸 늬이고 싶다는 생각만 하며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아메리카노 덕분에 쌉살해진 입맛을 다시며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저녁 7시가 되었다. 그리고 주말에 부산 여행을 갈 거라던 부장이 퇴근을 하는 것으로 오늘 일과가 끝났다. 차장, 과장, 대리 순으로 퇴근을 했고 막내인 나는 사무실 불을 끄고 드디어 침대 품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기분이 이상하긴 했다. 사무실을 나서면서 창문을 안 닫은 것 같아 다시 들어가고, 복사기 전원을 안 끈 것 같아 다시 들어가고, 열쇠를 숨겨놓는 소화전을 제대로 안 닫은 것 같아 다시 들어가고 세 번을 들락거린 후에야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 안 라디오에서는 한창 야구 경기 중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퇴근 후 축 늘어진 채 의자에 기대어 퇴근하는 나와 방금 안타를 치고 2루까지 노리고 있는 테이블세터가 너무 비교된다고 생각하려다가 아니지, 자리를 고쳐 앉으며 업무 집중 시간이 다를 뿐이라며 푹 꺼질뻔한 마음을 가까스로 끌어올렸다. 주택가로 향하는 버스여서 그런가 불금을 즐기기보단 쉬러 가는 사람들이었고 다들 축 처진 어깨에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늘 고단하면서도 설렌다. 헨젤과 그레텔처럼 조약돌을 하나씩 놓으며 집을 향하고 더불어 돌의 무게만큼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는 마침내 짐들을 내려놓고 집의 품 안에 안겨 쉬는 것이다.
 그래, 내가 기대했던 것은 그것들이었다. 지금의 이 난장판이 아니라...

 

 신발장까진 아무렇지 않았지만 거실로 들어서자 어지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TV 장식장의 서랍은 다 혀를 내밀고 있고 해피 트리는 엎어져 흙이 온 거실을 뒤덮었다. 그와 같이 굴러다니는 소파의 쿠션에 뜯겨진 커튼까지 보니 요 며칠 케이블 채널에서 하는 수사물로 밤을 새운 내 촉으로 이건 단순 도둑이 아니라 나를 열받게 하려는 행위임을 알 수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나지막한 신음이 나왔다. 이런 짓을 할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 나의 전 남자친구.
 

 누구에게나 좋은 이별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뜨겁게 사랑했고 차갑게 식어 헤어졌다. 물론 식은 건 내 쪽만 이지만 그의 온도와 나의 온도의 평균은 헤어짐 아래에서 서늘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도 있다. 데이트 때마다 눈에 띄게 무기력해지는 내 모습을 보며 고급 레스토랑이며 이벤트며 언젠가 가고 싶다던 여행지로 데려가 주는 노력에 나는 한숨만 쉬었다. 미안한 마음에 이별의 시간이 미뤄지긴 했지만 그런 식으로 계속 그를 만나는 건 나나 그에게나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두 손이 마주쳐야 박수 소리가 나듯 우리 두 마음은 연애를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 내가 좀 너무하긴 했지. 그래도 이건 아니지. 진작 집 비밀번호를 바꿨어야 되는데. 늦은 퇴근에 집에 오면 누울 생각부터 하니까 그럴 수밖에. 이거 치우고 생각난 김에 번호도 바꿔야겠다. 내 생일은 너무 뻔하긴 했어. 근데 생판 모르는 번호로 바꿨다가 내가 잊어버리면 어떡해? 엄마 생일로 할까? 엄마 생일로 한 사실까지 까먹으면? 풉 나도 참.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그런 것까지 잊어버리기야 하겠어? 그러면 비밀번호를 휴대폰에 저장해 놓으면 될 텐데. 휴대폰에 저장했다는 것까지 까먹지는 않겠지?

 휴... 겨우 화분에 흙이나 치웠다. 방안은 더 가관이었다. 베개커버는 찢어져 베갯솜이 까꿍을 하고 있지 않나, 화장대에 화장품은 깨져있고 속옷도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이 변태 새끼. 대만에 다녀오며 면세점에서 장만한 명품 에센스까지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꼴을 보자니 비싼 것들만 골라 깬 것 같아 분하다. 아직 반도 안 썼는데...

 처음 이 광경을 봤을 땐 얘가 얼마나 화가 났으면 이럴까, 아직도 날 미워하는구나 했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지가 이제 와서 나를 화나게 하면 어떻게 할 건데? 나더러 무서워서 무릎 꿇고 용서라도 빌라고? 아니면 뺨이라도 한대 올려주려 저를 다시 만날까 봐? 웃기고 있네 정말. 나도 똑같이 해주고 싶지만 그는 아직도 부모의 집에 얹혀산다. 직장생활 5년차에 돈을 꽤 모았지만 어머니가 차려주는 아침밥을 포기 못한다고 한다. 그의 마마보이 성향은 데이트할 때도 드러났다. 하루는 기념일도 아닌데 꽃을 사 왔길래 내심 기분이 좋으면서도 튕기며 한소리 했다.

 “뭘 이런 걸 사 와. 그냥 맛있는 밥이나 같이 먹으러 가면 되는데.”

그러자 돌아온 소름 돋는 한마디

 “엄마가 여자들은 이런 거 좋아한대. 새빨간 장미도 엄마가 고른 거야”

사랑이 팍 식어버리는 한순간이었다. 긴 말 없이 ‘그냥’이었으면 그날 밤 우리는 연애의 육체적인 국면에 들어설 수도 있었겠지만 ‘엄마’라는 단어가 31살 먹은 남자의 입에서 나오리라 전혀 예상도 못했던 나는 밥만 먹고 집으로 갔다. 그 좋아하는 커피도 생략하고.

 복수하는 건 나도 똑같은 인간이 되는 거다. 이게 내가 청소를 하며 맞이한 결론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에센스는 너무 아깝다. 다행히 원목 화장대에는 아직 스며들지 않았지만 그 말은 그 녀석이 다녀간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 칼퇴를 하고 2차까지 뛰고 가셨다 보다. 어제 자기전 침대에서 책을 읽다 옆 테이블에 있던 머그컵을 쏟아 걸레로 훔쳤는데 그게 그대로 말라있다. 물만 살짝 적셔 에센스를 닦아봐야겠다. 걸레를 주워 화장실로 가려는데.

 

 화장실 불이 켜져 있다.

 

 늦게까지 책을 읽은 탓에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나긴 했지만 집을 급하게 나서진 않았다. 근데 뭐 화장실 불 끄는 것쯤이야 깜빡할 수도 있지. 그렇지. 근데 저 그림자는 그 가설을 뒷받침하지 않지. 발바닥이 바닥에 붙어버렸다. 걸레를 들고 꼼짝할 수 없는 상황에 빠르게 생각했다. 걸레가 무기가 될 수 있나? 쟤는 내가 오길 기다린 걸까 아님 내가 생각보다 빨리 퇴근해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걸까. 저기 에센스 통의 깨진 조각 저걸 짚어야 되는데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조각을 오른손에 넣었다. 그리고 화장실로 반걸음씩 향한다. 두피에서 열이 난다. 어느새 구레나룻을 타고 흘렀다. 5걸음도 안되는 거리지만 가는 길이 너무 험난하다. 그리고 왼손으로 화장실 문 손잡이를 잡고, 드디어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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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49 - 5

447

 

 

 

그날 이후.

파이론에서 없어야 할 일이 생기고야 말았으니.

 

“전군 진격!”

“와아아아아아아악!”

 

몬스터들이 단합을 하여 파이론에 침공하는 상황이 일어났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무차별로 죽이거나 약탈하는 것은 아니지만, 릴리 기사단장에게 책임을 묻게 하기 위해 마을은 한 차례 쉬어가는 거고, 진짜 목적은 프리트론으로 쳐들어가기 위함. 덕분에 마을사람들은 오늘의 할 일도 잊어버리고 각자 집에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당연히 그 편이 현명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무작정 나오다가 저 농부처럼 기차놀이에 강제 참석하는 일이 없어야지.

 

“안돼! 나는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다고!”

“순순히 기차놀이에 참석하지 않으면 어깨춤을 추게 만들 테다!”

“안 돼애애애!”

 

비통한 남자의 외침에 한숨이 저절로 나와 입으로 막아야 할 처지까지 왔다. 검은 고양이가 내 배위에 올라오면서 말을 했는데.

 

“이대로 방치할 셈인가?”

 

“레시아야 말로 이대로 방치할 셈이에요?”

 

나도 파이론에 몬스터가 침공하고 프리트론까지 올라가서 전쟁이 나는 건 원하지 않았다. 그건 마왕인 레시아도 마찬가지겠지. 분명 타협점이 보여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릴리 기사단 쪽에서 사과를 해야 하는 내용이다. 가장 커다란 문제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루니아 누나의 무지개 빛 요리를 몬스터들의 숲으로 투척한 것이 잘못 된 거지. 하멀 씨는 자고 일어났더니 파이론이 몬스터들에게 침공 받았다는 소식에, 텔레파시로 상황을 설명하라고 소리까지 질렀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내가 밖으로 나가서 싹 쓸어야 하는 상황까지 나오겠지만, 그리티스 씨의 밑에 있는 몬스터들이라서 섣부르게 건들이면 사이가 틀어지게 된다. 잡화점이 그리티스 씨의 뱃속에서 움직이는 걸 보고 싶지 않기에 다른 걸 생각했다.

 

릴리 기사단 측에서 루니아 누나의 독극물...아니, 음식물을 접시에 가지런히 담아 숲에다 버린 사람들을 찾아서, 사과문이나 징계를 부여한다면 그거야 말로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릴리 기사단의 설립목적은 몬스터들을 효율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사단이다. 여성으로만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루니아 누나를 필두로, 최정예만 모인 기사단인만큼 단결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리라.

 

그래도 지금은 마계공작이 다스리는 숲에 몬스터들이 난장판이 되었고, 레시아는 나에게 나지막히 말하고 있었다.

 

“저번에 그리티스가 짐에게 찾아와서 상담할 것이 있다고 했는데, 릴리 기사단 전체를 먹어 치워도 되냐고 묻더군. 아무리 점잖고 신사답게 움직인다고 해도 그리티스가 한번 화내기 시작하면 아군이나 적군도 가릴 것 없이 모조리 뱃속으로 집어 넣고 보는 녀석이니라. 짐의 얼굴을 봐서라도 그만두라고 하자마자 바로 폭주해서 달려가려고 했으나, 백장미를 보여주면서 “그럼 주인의 얼굴을 봐서라도 그만 두거라.”라고 하니 조용히 백장미만 가지고 되돌아갔노라.”

 

“왜 거기서 백장미가 활약했다는 말이 나온 거에요?”

 

뭐 그래도 평화가 깨져서 전쟁을 하는 것보단 좋지. 지금은 깨지기 직전이지만...

 

“그래도 지금 이렇게 파이론을 점거하고 있는 편이 좋으리라고는 볼 수 없는데 말이죠. 우선 뭐라도 나서서 해야 할 것 같네요.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우리가 대신 협상을 하러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죠. 우선 레시아와 시나는 따라오세요. 나머지는 잡화점에 단 1명도 들여보내지 마시고...그 전에 루시피나와 마리아는 또 외출했지. 윈디와 이프리트는 다른 곳으로 놀러 가고...

 

루나와 카렌은 달에서 살고 있으니까 남은 건 베니와 팔랑크스, 페트리 뿐인가.

 

“제가 잡화점을 꼭 막아내겠습니다!”

 

아무래도 나와 레시아, 시나가 처음으로 생각이 통한 것은‘제 말을 믿어도 될까?’라는 생각이겠지. 삐걱거리는 고개를 겨우겨우 끄덕이고 나서 눈을 가린 페트리의 시선보다는 짙은 보라색 앞머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팔랑크스의 말을 잘 따르면서 방어해주길 바랄게.”

 

“네!”

 

잡화점 밖으로 나갈 무렵. 레시아와 시나는 내 몸 속으로 동화를 시킨 사이에, 모든 몬스터들이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오크와 고블린은 나에게 구해졌으니 친근하게 무기를 들어서 인사를 하고, 오우거와 사이클롭스, 미노타우르스...잠깐? 저런 커다란 애들은 어떻게 숨어서 다녔길래 난 본적이 없는 거야? 그 외에도 그렘린과 엘프들이...???

 

“어째서 엘븐 포레스트에 있어야 하는 엘프들이 여기에 다 있는 거야?”

 

청동색의 중갑을 입은 세실리아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검을 휘두른 것도 장난스럽게 휘두른 것이라서, 살짝 옆으로 빠지고는 “안녕하세요. 세실리아.”라고 말을 했고, 세실리아는 웃는 얼굴로 “움직임이 많이 능숙해졌군.”이라고 칭찬해줬다.

 

“그런데 세실리아가 왜 엘프 병사들을 이끌고 이곳에 온 거에요?”

 

“멜로디 여왕님의 명령이야. 파이론은 비교적으로 경비병의 수가 적기 때문에, 불한당같이 잘못을 저지르는 몬스터들은 제압해서 몬스터들의 숲으로 끌고 내려오라는 명령을 받았거든. 저기 여왕님께서 손 흔들고 계시네.”

 

저 뒤에서 에메랄드 색상의 거대한 드레스를 입은 엘프는 머리 위에 금색의 티아라를 쓰고 있었다. 엘프들은 대부분 금발에 벽안을 끼고 있지만, 세실리아 씨는 근접 전투로 눈매가 날카로워 상대를 제압하지만, 멜로디 씨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인상이라 차이가 너무 심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카일 씨. 그 동안 백장미 잘 읽고 있답니다.”

 

“오랜만에 뵙네요. 멜로디 씨. 제가 처음부터 들어야 할 말이 백장미에 관련된 말일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이미 우주에 진출하고 있을 법한 그 바보 같은 잡지 하나 때문에, 나는 몬스터들에게도 인기가 많나 보다.

 

“그럼 여기서 다과라도 하실 건가요?”

 

“아뇨. 저는 이런 대치가 오래 지속 되지 않도록 직접 나서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마왕님은요?”

 

“지금은 저와 동화하고 있어요.”

 

당연히 머릿속에서는“저 요망한 엘프가 주인에게 꼬리치고 있노라!”출격명령을 내려라 주인!”이라고 소리치는 레시아 때문에 두통이 점점 생겨나려고 하고 있는 사이에, 멜로디 씨의 손이 내 얼굴에 서서히 뻗어나가더니.

 

“그러지 말고‘이리와 앉아요.’”

 

“아악! 내 머리!”

 

특정 단어를 듣자마자 두통 때문에 머리가 아픈 것이 아닌, 바늘 하나가 머릿속으로 직접 찌르는 날카로운 고통이 온 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뒤로 빠져서 고통을 수습하는 동안 멜로디 씨가 미안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역시 카일 씨는 제 목소리에 대한 지배가 되지 않네요.”

 

“역시라고 말한걸 보면 알고 있었다는 소리잖아요.”

 

“그래도 조금은 같이 있을 수 있잖아요? 네?”

 

“주인에게 꼬리치지 말거라! 주인의 하렘 컬렉션에는 엘프가 들어있지 않노라!”

 

레시아가 언제 빠져 나왔는지 과자가 있는 책상에서 검은 고양이가 과자를 들고 입을 열고 있었다. 그런데 과자는 맛있나 보네. 계속 먹는 것으로 보아하니.

 

“이 쬐끄만 고양이가! 무슨 하렘 컬렉션이야!”

 

“냐아아아아아!”

 

레시아에게 무의식적으로 아이언 클로를 맞추고 난 뒤에, 잠깐 진정하기 위해 멜로디 씨 앞에 있는 의자에 마주 앉았다. 홍차가 아닌 레몬차가 내 앞에 나오면서 상큼한 향이 저절로 퍼져나갔는데, 이렇게 여유로워도 되는 이유라면 멜로디 씨는 목소리로 지배를 할 수 있는 불가사의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

 

“요즘은 어떻게 지내신 거에요?”

 

오랫동안 안 보면 근황이 궁금하기 마련. 멜로디 씨는 웃는 얼굴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검은 높새바람의 위치를 알아냈지요.”

 

“그렇구나.”

 

???

 

“방금 뭐라고?”

 

“검은 높새바람의 공중요새의 위치 말이에요. 저번에 엘븐 포레스트에 쳐들어온 사람들은 카일 씨와는 다르게 제 목소리에 저항할 수 없어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말했거든요. 그런데 거짓없이 말하는 그들의 말을 듣자 하니, 우리가 진짜 쫓아야 하는 적은 따로 있다는 걸 알았지만요.”

 

“따로 있다니?”

 

멜로디 씨가 나의 대답에 입을 열려고 했지만, 엘프 병사 하나가 멜로디 씨에게 급하게 찾아와 무릎을 꿇고 입을 열었다.

 

“여왕님! 프리트론 쪽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릴리 기사단장인 루니아 경이 이번 일로 인해 해임되었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어처구니 없는 소식은 늘 그랬듯이 쏟아져버렸다.

 

***

 

파이론에서 다양한 몬스터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 오후 1시쯤에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무렵. 하얀 제복이 아닌 평상시에 입을 듯한 여성용 복장으로 잡화점에 찾아온 루니아 누나는 기사에서 해임된 상태였다.

 

“카일! 놀러왔...어라?”

 

“루니아.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하멀 씨는 루니아 누나가 이곳에 올 줄 알고 먼저 이곳에 오고 있었다. 내 옆에 그을린 구멍은 당연히 인사대용으로 마탄을 쏴버렸기 때문. 하멀 씨는 가문에 관련된 일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너무 진지하게 변했다.

 

“어라아?”

 

“지금 기사에서 해임된 너라면 특수한 일이 아닌 이상 법률로 따지면, 지금 당장 네가 할 일은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해. 그렇다고 공작가문의 영애가 용병을 뛰는 일은 절대로 볼 수 없고.”

 

“하멀 오빠는 나에게 결혼이라도 하라는 건가요오?”

 

“애초에 기사라는 이유로 결혼을 계속 미뤄왔잖아. 지금이야 말로 제대로 된 사람과 만나서 약혼이라도 하라고. 평민도 지금 결혼해서 매일 밤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잖아.”

 

“잠깐? 어디서 약을 팔아! 누가 밤마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

 

-타앙!

 

“네. 보냅니다. 그렇죠. 암.”

 

제길. 없는 일을 마탄 하나에 인정을 해야 하다니.

 

“우리 가문에 중대한 문제니까...”

 

“싫어! 가문에 관련된 일은 로이드에게 시키면 되잖아!”

 

180도 돌아버린 루니아 누나의 성격에 하멀 씨 빼고 전부 놀라버렸다. 항상 느긋하게 말을 걸어오고 포근한 인상을 주는 사람은 어디 가고, 날카롭게 소리치면서 공기마저 숨쉬지 못하도록 거북한 분위기를 만들어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비유는 너무 적절하지 못한 것 같지만...

 

“근데 로이드가 누구에요?”

 

“내 아들. 이제 14살이야.”

 

20대 중반의 외모로 멈춰서 몰랐지만 하멀 씨는 30대 중반의 나이를 가지고 있었지. 어쨌든 하멀 씨는 다시 루니아 누나를 보면서 말했다.

 

“그러면 평생 혼자 살 생각이야? 아버지가 억지로 결혼 상대를 맞추려고 할 텐데?”

 

성큼성큼 걸어가는 루니아 누나의 종착지는 내 앞이었다.

 

“난 카일과 결혼할 거야.”

 

“어린애 같은 생각 집어치워. 평민은 안 돼.”

 

“웃기지마! 차라리 날 쓰러뜨리고 그런 소리나 하시지!”

 

“검도 없는 기사가 무슨 수로 덤비겠다고?”

 

-잠시 후.

 

“평민...루니아하고 결혼해라.”

 

“저기요. 하멀 씨.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르잖아요. 그보다 마법공학 권총으로도 루니아 누나를 제압할 수 없는 거에요?”

 

“생각을 해봐라. 어떻게 사람이 괴물하고 싸워서 이기냐?”

 

정말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탄을 뽑아서 겨누고 쏘는 속도가 0.3초도 걸리지 않는 하멀 씨의 속도를 뛰어넘어, 0.2초만에 하멀 씨에게 다가가서 주먹으로 하멀 씨의 명치를 한방 날리자마자, 지금 하멀 씨는 바닥에 몸을 웅크린 상태로 나에게 부탁하는 말을 걸고 있었다.

 

 

나에게 웃음을 펼치고 있는 루니아 누나는 간접적인 협박으로 한쪽 어깨를 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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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존쎄의 위력은 수사관의 생각도 바꾸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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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49 - 4

446

 

 

 

루니아 누나에게 요리가 가능하단 정보는 우선 비밀로 해야만 했다. 루니아 누나가 평정심을 유지하고 요리를 한다면 정상적인 요리가 나오지만, 문제는 루니아 누나가 평정심을 유지한다는 그 자체는 뭔가 불안했다. 내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루니아 누나는 본 적이 없으니까. 게다가 문제점은 이 사실을 받아드린 루니아 누나가 곧바로 다른 요리를 하려고 하는 것. 잡화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말려야만 했다. 그런데 확실하게 말해서 말리는 것은 좀 무리였고, 결국 내 앞에는 무지개 빛의 결과물이 보여지고 말았는데...

 

“요리대회는 나가지 마요.”

 

루니아 누나에게 딱 잘라서 말했다.

 

“나갈거에요오.”

 

“나가지 말라니까요!”

 

“너무해애...”

 

요리대회에 나가서 긴장한 나머지 그 혼돈의 카오스를 보고 싶지 않았다. 아직 확실하지 않은 정보로 섣부르게 행동을 하면 위험하기에 적극적으로 말리는 것이 최우선이다.

 

“봐요오. 차기작도 잘 되잖아요오.”

 

“레시아가 우주에서 날아다니고 있을 때, 뒤에서 그거 뿌려주면 제대로 냥캣이 되거든요?”

 

“주인!”

 

“여전히 무지개로 변해서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 음식이 있잖아요! 루시피나가 옆에서 어떻게 도와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건 외계인이 출몰할 법한 대재앙이라고요!”

 

한 순간의 기적을 만들어준 루시피나가 정말 대단했다. 어떻게 하면 루니아 누나가 정상적인 음식을 만들어서 내놓을 수 있었는지 알고 싶었지만, 물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신랑...나의...쿨럭! 마지막은...언제나 우리가 가던...크욱! 꽃밭으로...끄윽...”

 

“루시피나아아아아!!!”

 

루시피나는 차기작이라고 선보인 루니아 누나의 무지개 빛 치킨 샐러드를 먹고...사실상 루니아 누나가 억지로 먹였지만 어쨌든 유언을 남기고 있는 중이었다. 경련을 일으키고 눈의 초점이 서서히 풀리면서 결국 고개를 힘없이 떨어졌을 무렵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 기억에서는...루시피나와 꽃밭에 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 혹시 드라고니스의 평원을 말하는 걸까?

 

생각을 해봐도 잘 모르겠으니 잡화점에 있는 엘릭서를 하나를 열어 입에 부어주면서 응급처치를 완료하고, 내가 무시무시한 눈초리로 루니아 누나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식은땀을 흘리며 양손 검지 손가락을 마주하고 돌리며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요리에는 애정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돼요오. 루시피나도 행복한 얼굴로 저의 요리를 먹고 자고 있잖아요오.”

 

“그 요리로 영원히 재우고 싶은 거에요?”

 

“아이 칼람바!”

 

“시끄러워!”

 

조금이라도 감정이 들어나는 순간 무지개 빛으로 변모하는 요리를 보고 나서, 이번 일에 대해...솔직히 말해서 의뢰를 받은 적도 없으니까. 지금은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고 영원히 요리를 하지 않게 만드는 걸로 해야지.

 

아니면 루시피나가 옆에서 도와줄 때만 아주 조금 연습하는 걸로.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일이 벌어진다고는 하지만, 요리에 대해 진지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또한 정중히 생각해 본적은 내 생에 처음이라 생각한다. 다른 요리사들은 요리를 개발할 때. 재료의 선택과 조미료의 조합 그리고 조리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 가지각색의 요리를 개발하면서도 이들의 공통점은 딱 하나가 있으니. 자신의 요리에 애정을 쏟아내도 무지개 빛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점.

 

“어떻게 사람이 요리를 하면서 애정이 들어가지 않는 요리를 만들 수 있나요오? 그건 누나가 걷고 있는 요리사의 길에 어긋납니다아.”

 

“요리사의 길이 아니라 독극물의 길이겠죠. 하멀 씨도 아까 말했잖아요. 가문이 역적으로 찍히기 싫으면 요리대회는 나가지 말라고.”

 

“그래도 여자라면 한번쯤은 요리를 잘 하는 꿈을 꾸지 않나요오? 카일은 여자의 마음을 몰라서 탈이에요오!”

 

아니. 여자의 마음을 알기 전에 이미 여자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만? 게다가 그 상태로 흑심을 품고 접근한 사람도 루니아 누나잖아요?

 

“마스터는 남성이라서 여성의 마음을 아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경우가 많은 것뿐입니다.”

 

하얀 올빼미가 정정하려고 날아와서 입을 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허공에 화살을 날린 듯한 허탈감이 잡화점 내부를 지나갈 무렵에, 루니아 누나의 감정을 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말도 안 되는 일이고, 루니아 누나의 어린애 같은 고집을 꺾을 없어 협상도 불가능하다면.

 

“루니아 누나. 우리 요리 쪽으로 말고 새로운 독을 탐방하거나, 아니면 그 무지개 빛 약을 만들어서 파는 건 어떨까요? 솔직히 루니아 누나의 그 약은 효과가 대단하잖아요. 물론 상처부위에 바르면 명계는 한번 다녀와야 하지만, 잘려나간 팔도 붙을 정도로 좋다면서요?”

 

“약이요오?”

 

관심분야를 자연스럽게 돌리는 방법이

 

“그래도 전 요리가 좋아요오...”

 

썩을!...아니 그러니까. 여기서 적절한 단어 선택이...

아. 그렇지.

 

오! 이런! 독백을 하기도 전에 요리가 좋다는 소리를 들어버려서 상당히 놀랬지만, 자연스럽게 관심분야를 돌리는 방법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사실상 실패라기보단 지금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뿐이지. 계속해서 내가 설득을 한다면 좋은 무지개 약을 파는 약사로 갈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로 잘려나간 팔이 다시 붙을까? 나중에 기회가 되면 확인을 해보도록 하자.

 

“그런데 오늘은 기사단에서 일은 안 할건가요?”

 

“할거에요오. 다만, 요리를 할 거면 제발 다른 곳에서 해달라고 해서...”

 

아무래도 릴리 기사단원들이 루니아 누나가 요리를 한다고 하자마자, 제발 자신들에게 음식을 먹이지 말라고 간청한 것 같다. 루시피나가 빠른 회복속도를 보이며 “어라? 내가 왜 이곳에 누워있지?”라고 말하며 일어났고, 낮잠을 잘 시간을 놓친 나는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

 

저녁에 엘티노스 잡화점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고, 아공간을 열어서 조각상으로 된 엘티노스가 얼마나 커졌나 관찰하려고 봤을 땐. 이미 그 자리에는 없고 어디로 갔는지 모를 때였다. 노래 연습을 하기 위해서 다른 곳에 갔으리라고 생각을 했을 무렵. 잡화점에 손님이 오랜만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우리들의 염원을 이루어다오...”

 

“여긴 소원을 들어주는 곳이 아니라 잡화점인데? 잠깐만? 너 입가에 그 무지개 빛은 뭐야?”

 

오크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다가오더니 내 옷을 온 힘을 다해 붙잡고 입을 열었다.

 

“마, 마녀가 우리를 전부 이렇게...만들었다...그러니 제발! 그 마녀를 막아! 크우우욱!”

 

커다란 덩치를 가진 오크가 쓰러짐과 동시에 내가 밖을 나가봤을 땐, 수많은 오크가 잡화점 밖에서 쓰러지거나 의식을 제대로 못 차리고 있었다. 어째서 이런 끔찍한 대참사가 나왔는지 알 수 없을 무렵. 검은 고양이인 레시아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건 루니아의 소행이로군. 돌아간 뒤에 요리를 계속 한 모양이지만, 어째서 오크들이 이런 야심한 밤에 습격을 맞은 건지 모르겠다.”

 

“조만간 루시피나에게 어떻게 루니아 누나가 스스로 감정을 절제하도록 만들었는지 알아봐야겠네요. 우선 이 녀석들은 응급처치로 엘릭서를 사용하죠.”

 

“엘릭서를 쓰기에는 너무 많은 수가 아닌가? 어차피 루니아의 요리를 먹고 응급처치로 엘릭서를 가하는 것은 정신을 빨리 회복하기 위함이다. 오크는 드래곤보다는 아니지만 자연 회복속도가 빠르니 6시간 뒤에는 알아서 일어날 거다.”

 

내가 그걸 먹고 얼마나 오래 잠들었더라.

적어도 하루가 바뀌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하지만 이 상태로 공간전이 시켜서 몬스터들의 숲으로 돌려보내면, 다른 몬스터에게 잡혀먹거나 난리 날 가능성이 높아요. 게다가 저는 아직도 배회할 지 모르는 루니아 누나를 찾아서 가야죠.”

 

“마스터. 이런 밤에 루니아를 만나는 것은 위험합니다.”

 

하얀 올빼미가 날아와서 충고를 했다.

 

“하지만 시나. 저들이 나에게 부탁을 했어. 루니아 누나를 막아달라고.”

 

“하지만 저는 마스터를 위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앞길을 막은 하얀 올빼미를 바라보며 생각을 다르게 해야 했다. 지금은 오크들을 몬스터들의 숲으로 보내버리고, 루니아 누나는 나중에 이곳으로 불러야 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될 때. 이번엔 고블린 무리가 입가에 무지개 빛 무언가를 띄며 잡화점으로 힘없이 기어오고 있었다.

 

“우리들을! 살려달...크엑!”

 

이건 대체 무슨 대재앙이냐...

 

“아무래도 가봐야 할 것 같아. 시나. 나를 막지 말아줘!”

 

“하지만 마스터가 그 곳에서 저들과 똑같이 당할 수 있습니다!”

 

“내 안전은 무시해! 지금은 한 녀석이라도 더 살려야...!”

 

-쿠우웅!

 

폭발하는 소리가 아니라 뭔가 거대한 게 이곳으로 추락했다. 레시아와 시나가 나와 함께 밖으로 나가 확인했을 무렵. 3개의 머리를 가진 삼두룡이 입가에 무지개 빛을 띄며 신음을 앓고 있었다.

 

“이, 인간이...최악의 독극물을...개발하다니...크윽!”

 

“제길! 아지다하카마저! 지금 당장 막아야 한다고 내가 몇 번 말했어!”

 

역시 지금은 몬스터의 숲으로 찾아가서 루니아 누나를 막는 것이 옳았다. 그렇게 발 걸음을 옮겼을 때 몸이 무지개 빛으로 빛나는 보라색의 슬라임이 이곳으로 “오호호!”하며 나타났다. 푸딩처럼 탄력 있는 점프로 나에게 다가가고 있을 때. 나는 심히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어라? 그리티스 씨? 아무렇지도 않아요?”

 

“음? 뭐가 말인가?”

 

“무지개 빛으로 빛나고 있잖아요. 안에서...”

 

“나는 폭식의 공작. 내가 먹는 것은 모든 것을 가리지 않지. 지금은 몬스터들의 숲에서 릴리 기사단장이 만든 요리를 처리한다고, 몇몇 단원들이 그곳에 단체로 버리고 있다네. 처음에는 신기해서 그걸 먹으려고 하던 모든 무리가, 지금은 기절하게 되어버려서 내가 직접 자네에게 요청을 하려고 했던 걸세. 그나저나 자네는 어디 외출 나갈 준비를 하는 건가?”

 

“그야 당연히 몬스터들의 숲으로 가서 함부로 자연을 훼손하지 말라고 경고를 주기 위해서죠.”

 

“그렇군. 나는 잠깐 마왕님과 이야기 할 것이 있어서 먼저 실례하겠네. 오호호!”

 

역시 마계공작. 그걸 먹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닐 수 있다니. 아무튼 잠깐 내가 자리를 비우며 시나와 같이 몬스터들의 숲으로 이동했을 때. 밤이라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하는 숲임에도 불구하고, 길바닥이 하얀 접시와 더불어 조심스럽게 놓여있는 무지개 빛의 음식물들이 별 대신 비춰지고 있었다.

 

“대다수의 생명감지가 되고 있지만 대부분 의식을 잃은 상태입니다.”

 

얼마나 많은 식재료가 사용되었길래 이런 모습이 나오는 거냐.

 

“시나. 빛으로 이 무지개 빛의 음식들을 다 지울 수 있겠어?”

 

“소각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마스터의 몸을 잠시 빌려야 합니다.”

 

“부탁해.”

 

 

시나가 내 몸을 빌려 몬스터들의 숲에 존재한, 모든 무지개 빛 독극물을 모조리 지우는데 걸리는 시간은 3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다시 어두워진 숲에는 공허한 바람소리만 내 귓가에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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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공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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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49 - 3

445

 

 

 

하멀 씨의 호통과 루니아 누나의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져서, 다른 사람들이 그 싸움을 계속 보고 있었고, 결국에는 하멀 씨가 잡화점을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루니아 누나는 계속 내 옷을 붙잡고 울고 있었다. 눈물이 얼마나 많은지 잘 모르겠지만 내 옷이 바닷물에 직격타라도 맞은 마냥 흥건하게 젖어있었고, 티셔츠가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슬슬 갈아입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강하게 잡고 울고 있는지, 티셔츠가 늘어지다 못해 찢어졌다.

 

어마어마한 한숨은 아직까지 울고 있는 루니아 누나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슬슬 울음을 그쳐야 할 시간이 다가왔고 루니아 누나도 어느 정도 진정된 상태였다. 훌쩍거리고 있는 루니아 누나에게 차가운 물을 줘서 진정을 시킨 이후. 충혈된 루니아 누나의 눈은 내 모습을 보고 입을 열었다.

 

“카일...훌쩍. 왜 윗옷은 벗고 있어요오...?”

 

“그거야 댁이 찢어놨잖아.”라고 말하면 다시 울음이 터져서 이번엔 이곳이 바다가 되기 전에 다른 말을 하도록 하자.

 

“그거야 지금 목욕하려고요. 요즘은 덥잖아요.”

 

“그렇다고 여자가 많은 이곳에서 벗고 다니면 안 돼요오...훌쩍...”

 

“알았으니 우선 진정 좀 하세요.”

 

결국 나는 다른 옷으로 갈아입기 전에 목욕탕에 들어갈 운명이었고, 루시피나가 루니아 누나의 옆에서 친근하게 달래주는 동안, 커다란 목욕탕에 들어와서 몸을 담그고 있었다. 하멀 씨는 끝내 루니아 누나를 강제로 끌고 가지 않은 이유라면, 내가 어떻게든 달래줘서 요리를 하지 않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여전히 생각해도 모르겠군.

 

“그러면 주인은 루니아에게 요리를 알려줄 생각인가? 그간 옆에서 보았을 때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마음을 먹지 않았는가?”

 

검은 고양이가 따듯한 온탕에서 떠다니는 배처럼 유유자적하게 말을 걸어왔다. 레시아의 말대로 루니아 누나에게 요리를 가르친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 비교를 하자면, 내가 질 것을 알면서도 레시아와 가위바위보를 해서 계속 고양이 어퍼컷을 맞는 것과 같은 경우라고 보면 된다.

 

“확실히 지금은 루니아 누나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건 힘들죠.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알아야 하니까요. 무시무시한 무지개 빛의 음식이 나오는 그 손에 얽힌 저주를 풀어줘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혹시 몰라요? 나중에 루니아 누나가 블랙펄의 저주를 받아서 무지개 음식이 나타난 걸지도?”

 

“아무리 생각해도 캐리비안의 해적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마스터.”

 

그런가? 음식이 무지개화 된 것도 분명 데비존스의 계약으로 이루어진 줄 알았는데.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하니 해결책 중에 하나는 없어졌다.

 

“그 전에 이 대륙은 해적질을 하기에는 아르칸 제국에게 모두 불타서 없어지지 않는가? 과학이 진보되어있는 도시의 배는 항상 철로 무장되고, 어마어마한 화력이 자신의 배보다 더 작은 배를 먼지도 없이 태우니까 말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도적질을 하려면 들이나 산으로 가라’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해적을 하기에는 너무 어처구니 없는 환경이라, 해상은 아르칸 제국이 꽉 쥐고 있으면서, 여전히 나무배를 무역을 하는 다른 곳과는 달리, 그들은 철로 무장되어있는 배와 더불어 바다 속에서 다른 배들을 공격할 수 있는 특수한 배까지 존재하고 있으니까.

 

“하긴 요즘에는 음파로 주변을 밝히는 기술로 해적이 있는 장소까지 전부 격퇴하고 다니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적이 자주 나타나는 이유라도 있을까요?”

 

“해적의 이점은 언제나 그렇듯 배를 뺏는 것이 아닌가? 좋은 배를 뺏고 각 섬에 있는 보물을 노리는 것이 남자들의 로망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짐의 생각으로는 주인은 바다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왜요?”

 

“주인은 바다사나이하고는 전혀 맞지 않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체격도 크지 않고 바다에 나가면 그냥 망보는 사람이 되겠지. 그러다 상어 밥으로 되는 것이니라.”

 

왜 마무리가 상어 밥이야.

 

“어쩌다가 다른 주제로 새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루니아 누나의 손은 무엇으로 이루어져있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죠?”

 

“다른 주제로 새어버린 이유는 주인이 이상한 말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실수를 절대로 덮어주지 않은 이 무자비한 사역마에게 아이언 클로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내가 한 실수를 남에게 화풀이 하는 것은 좋지 못한 행동이다. 자비롭고 인내심이 많은 내가 참아야지. 그래도 나는 솔직히 말해서 루니아 누나가 적어도 정상적인 요리 1개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노력하면 개선이 될 거라고 전 생각해요. 루니아 누나가 검의 달인을 뛰어넘어 신급으로 올라선 것도 알게 모르게 꾸준히 노력한 루니아 누나의 모습 때문이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요리도 그만큼 노력을 한다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요. 요리 경연대회에서도 그냥 우승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나마 사람이 먹고 “나쁘지 않은 맛이네.”라고 평가를 듣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발전이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그런 평가를 듣기가 너무 어렵다는 거지. 어디선가는 달리 루니아 누나는 그냥 식재료를 통해서 요리를 완성하면 어느 사이에 무지개 빛으로 변해버리니까.

 

“하지만 저는 모험을 좋아하지 않으니, 저는 루니아의 요리는 영구적으로 봉인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맞다. 루니아의 요리는 봉인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레시아와 시나도 요리하면 안 되요. 이상한 암흑물질하고 수은을 끼얹은 요리는 확실하게 사람이 죽을 지도 모르니까. 어째서 루니아 누나하고 공통점이 이렇게 많을 수 있는지.”

 

레시아와 시나는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겁을 먹을 내가 아니지만 말 조심은 하도록 하자.

 

“그래서 루니아 누나에게 요리를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저 밖에 없는 건가요?”

 

“그렇다. 민주주의 방식으로 카일의 의견은 중요하지만, 우리 둘은 루니아가 더 이상 요리의 앞치마도 두르지 않았으면 좋겠군.”

 

레시아와 시나는 오늘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과거에 있었던 일을 되풀이하며 더 이상 자신들에게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하지만 그럴수록 루니아 누나가 제대로 된 요리를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루니아 누나에게 있는 그 무지개 빛의 저주는 어떻게 풀어나갈지 해결해보죠.”

 

요리만 하면 무지개 빛으로 변해버리는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만 했다. 목욕을 끝내고 1층 거실로 나왔을 때. 팔랑크스와 베니가 주방에서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안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미래에서 남을 학살하러 온 것처럼 생긴 주제에 팔랑크스가 겁을 먹고 있다면, 그건 나름대로 진귀한 광경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 주방에서는 무지막지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지.

 

“팔랑크스? 베니? 뭐하고 있어?”

 

“지금 루시피나의 희생으로 루니아가 요리를 배움. 또 다시 무지개 색상의 총공격이 시작되는 것을 감지. 팔랑크스는 오늘 부로 잡화점을 떠남. 남미에 가서 열매 먹고 살 거임.”

 

“무슨 헛소리야. 남미가 어디 있어? 남쪽에 가면 카멜롯이 있다고.”

 

벌써부터 잡화점을 버리고 도피처를 지정할 만큼 강렬했구나. 내가 팔랑크스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지만 저렇게 불안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그런데 윈디와 이프리트는 어디에 있는 걸까? 루니아 누나의 요리를 먹고 정령계로 돌아가버렸나?

 

“현현해라. 실피드. 이프리트.”

 

“그런 꼴사나운 주문을 외치지 않아도 우리들은 자율적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요? 그보다 정말 큰일날 뻔했어요.”

 

“카일. 그런 건 따라 하면 안 돼.

 

나도 멋지게 주문을 외워서 정령왕을 불러오고 싶었지만, 잡화점 문을 열고 자율적으로 찾아온 두 정령왕이 나에게 한마디씩 했다.

 

“그런데 주방에는 대체 무슨 일이에요, 카일씨?”

 

“그거야. 루시피나가 주방에서 요리를 알려주고 있으니까.”

 

“루시피나에게 요리를 배워? 아하! 베가프 씨가 이곳에 또 놀러 왔군요! 조만간 베가프 씨도 어디서부터 씻는지 알 수 있을까요? 요즘 아우리온에서 베가프 씨의 대한 정보가 너무 비싸게 팔려서 말이죠!”

 

호박 빛의 눈을 반짝이는 바람의 정령왕에게 아이언 클로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앞으로의 말이 얼마나 큰 충격으로 변할 것인가에 대해 예상을 하고 잠잠하게 있었다.

 

“너는 아랑에게 물려봐야 정신을 차릴래? 그리고 저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루니아 누나라고.”

 

“뭐, 뭐라고요! 지금 제정신이에요! 주방에 들어 보내면 안 되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을! 세상의 종말이 올지도 몰라요! 지금 당장 멈춰야 해요!”

 

주방으로 빠르게 들어가려는 윈디의 뒷목을 잡아서 멈춰 세웠다.

 

“지금 세상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검은 높새바람보다 우리가 먼저 팀킬을 당하게 생겼는데 말리는 게 우선 아닌가요!”

 

“기다려봐 좀! 루시피나가 알아서 해주겠지!”

 

지금은 루시피나를 믿고 기다리면서 15분 정도 흘렀을 때. 루시피나의 양손으로부터 크림스튜가 담긴 접시들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어라? 정상적이잖아요?”

 

“생긴 것으로 보면 루시피나가 만든 거임. 스캔 결과 먹어도 되는 물질임.”

 

벌써부터 베니가 흡수를 하듯이 음식을 먹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특유의 고무 마찰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믿기가 어려워서 나도 한 입을 먹었을 때는 그냥 평소에 알던 크림 스튜였다.

 

“루시피나. 이걸 루니아 누나가 만들었다고요?”

 

루시피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여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입을 열기 시작했다.

 

“루니아 언니의 요리는 가장 큰 문제점이 애정이 한 가득 담겨있다는 소리야.”

 

애정이 한 가득 담겨있다고? 그게 무슨 연관이라도 있나? 애정이 레시피에 담겨야 한다는 말이 있긴 해도,‘그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제대로 만들어라.’라는 소리일 뿐인데? 주방 안에서는 “해냈어요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애정이 너무 강해서 그게 요리에 영향이라도 끼친다는 거에요?”

 

“루니아 언니의 검은 자신의 감정을 중심으로 구사한다고 하거든, 문제는 그게 요리에도 영향을 끼치는 바람에 국자를 휘젓거나, 뒤집개를 이용할 때는 무지개 빛으로 변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어. 자신은 최선을 다해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누구나 기절할 만큼 맛이 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말이지.”

 

분홍색 앞치마를 두른 루시피나는 “따라서.”라고 말하면서 검지손가락을 올리고 말을 이어 나아갔다.

 

“루니아 언니가 음식의 맛에 집착만 가지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정상적인 요리가 나올 수 있다는 거야.”

 

“그렇군. 짐도 주인에 대해서 요리에 애정을 한 가득 담았기 때문에 암흑물질이...”

 

“레시아는 할 줄 아는 게 암흑물질 밖에 없잖아요!”

 

과거에도 멧돼지에 무슨 짓을 했길래 암흑물질로 변한 건지.

 

“저는 마스터가 언제나 극상의 음식을 드시기 위해선 수은이 필요하다고...”

 

“그거 먹으면 사람은 죽거든!”

 

 

그러니까 레시아와 시나는 근본적인 문제를 앓고 있다면, 루니아 누나는 그냥 마음만 잘 다스리면 알아서 된다는 소리잖아? 이 정도라면 요리 대회에서 심사위원들이 기절하는 사고가 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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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니아가 지닌 요리에 대한 열망 = 무지개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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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49 - 2

444

 

 

 

여전히 내가 보고 있는 건 이브센티아의 악몽일 뿐인데, 아무리 내가 정신을 집중해서 현실로 돌아가려고 해도, 꿈에서는 깨어나기는커녕 이곳에서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하도록 잠겨버린 것 같았다. 루니아 누나의 요리가 날로 갈수록 생화학 병기가 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내 옆에 있던 아리엘조차 돌아가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전혀 돌아가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기만 했다.

 

“아무래도 이게 사경을 헤매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하고, 대체 이게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네.”

 

아무리 루니아 누나의 요리가 사람이 먹고 쓰러진다고 해도, 기절을 했으면 일어나야 하는 것이 맞을 텐데.

 

“추가적으로 우리 입에다 그 이상한 스프를 붓고 있는 거 아니에요? 아니면 루니아 씨의 요리 중에 수면제라도 첨가 되어있을지도 모르죠.”

 

“루니아 누나는 요리에 약 같은 거 넣지 않아. 내가 옆에서 요리하는 것을 지켜봤는데, 순수하게 재료를 다듬는 것까지는 완벽했으니까. 당연히 그걸 지지고 볶고 할 때 이상하리만큼 이상한 물건이 나타나서 문제였지.”

 

야채볶음을 하라고 했더니 무지개 빛 야채가 되어 돌아오는 끔찍한 경우를 두 눈으로 보고 온 나의 말을 믿으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어째서 무지개와 연관이 깊은지 자세하게는 모르겠다만, 지금은 이런 정신세계에서 헤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향해 눈을 떠야 한다.

 

“어째서 눈이 제대로 안 떠지나 했더니 네가 침입해서 그렇나 보네.”

 

기본적인 경우는 몽마가 꿈속으로 침입했을 때. 주도권이 빼앗기면서 돌아갈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아리엘이 내 꿈에 침입한 형태로 되는 바람에 내가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오히려 내가 이익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

 

“그러면 카일 씨의 꿈에서 나가드릴까요? 그 이상한 스프를 마시고 레지던트 이블이라도 찍으실 거에요?”

 

“네가 버틸 수 있을 때까지만 버티고 그냥 나가. 꿈에 침입한다는 그 자체는 정기를 소모해야 하잖아.”

 

“그럼 카일 씨에게 채취하면 되요.”

 

“내가 무슨 광산이냐? 채취를 한다는 말을 쓰는 게 아냐. 그러고 보니 너는 남자친구도 많아 보이는데 최근에는 누구와 얼마나 관계가 진전된 거야?”

 

아리엘은 나의 기습질문에 잠깐 멍하니 있다가 “남자친구가 아니에요! 모두 일단 썸을 타는 관계라고요!”라고 소리쳤다. 내가 너무 포괄적인 범위로 준 것 같아서 딱 잘라 말했다.

 

“그럼 빅터와 관계는 얼마나 나아갔지?”

 

“어...그러니까...”

 

“요즘 어린 애들은 빠르네. 그보다 빅터 이 녀석은 무슨 생각으로 어린 애를...”

 

“시끄러워요! 꿈속에서는 제 몸의 성장을 조절할 수 있으니 괜찮은 거라고요!”

 

아리엘의 목소리가 내 고막을 뚫고 뇌에 직접 박히기 전에 한 마디는 해야 했다.

 

“아무리 꿈속에서 어른의 모습으로 되었다고 해도 어린애는 어린애야. 하긴, 너의 경우에는 어른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아이라고 해야 하나. 너만 보면 코난이 생각나서 자꾸 만화책을 들춰보게 돼.”

 

“수면침이나 맞아서 다시 잠들고 싶어요?”

 

꿈속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현실에서 깨어난다는 것이 아닐까? 아직까지 정신세계에 대해 잘 모르는 내 입장에서는 아리엘의 권유를 고개를 돌려 거절하는 것이 답이었다. 여전히 이브센티아의 돌무덤들을 덤덤하게 바라보고 있을 무렵. 아리엘에게 질문이 하나 날아들어오기 시작했다.

 

“카일 씨는 이 많은 사람들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꿈에서 항상 봐오고 있으니까. 기억할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어. 애석하게도 지금은 6번째 양과 만나고 있는 터라 자주 들릴 틈도 없지.”

 

“월식에 지배되면 이렇게 되는 건가요?”

 

“월식에 지배가 되면 이렇게 되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해야 해. 보통은 한 차원을 다 먹어 치울 때까지 막지 못하면 큰일이 나니까. 덤으로 내 사역마중에 시나는 다른 차원에서 온 창세의 여신이지만, 애석하게도 자신이 있는 차원에서 잠들고 일어나보니까 월식에 당해버린 것 같다고 생각할 거야.”

 

생각을 해보니 이번 검은 높새바람은 다른 차원의 존재를 부를 가능성이 있는데, 그게 전부 월식이 가득한 차원이라면 이번 일은 꽤나 귀찮아 질 것 같았다. 세상에는 역시 이상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이상한 정신으로 세상을 멸망에 몰고 가려는 사람이 존재하기 마련.

 

“그런데 여기에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 거야?”

 

“그거야. 하멀 아저씨가 루니아 씨를 끌고 갈 때까지죠. 이곳 잡화점은 무슨 일이 생기면 난동을 부린다면서요? 그걸 알아채고 달려오는 수사관들이 진압을 했을 때 일어나는 것이 더 올바를 거라 생각해요.”

 

“다만, 지금은 잡화점이 난동부리는 범위가 더 커지기 전에 진정을 좀 시켜야겠어. 덤으로 팔랑크스와 베니도 제정신으로 돌려보내야 가능할 거라고 보니까. 슬슬 깨워줘.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그러다가 루니아 씨에게 잡혀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 마시고요.”

 

어쩔 수 없이 작게 한숨을 내쉰 아리엘은 작은 손가락으로 튕겨서 소리를 내자마자, 잡화점의 검은색 나무바닥이 나를 반겨줬다. 천천히 고개를 들고 있을 무렵. 루니아 누나는 아직까지 요리를 만들고 있는지, 잡화점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묶은 상태로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마나를 이용해서 작은 단검을 만들고 밧줄을 풀고 있었다. 가장 다행인 것은 마법사들을 붙잡기 위해 마나를 차단하는 팔찌를 나에게 달지 않았다는 건데, 지금 그 팔찌는 나보다 마법을 더 잘 사용하는 루시피나에게 달려있었다.

 

“어라아? 카일? 지금 누나의 신작이 하나 더 완성되어가는데 탈출하려고 하시나요오?”

 

앞에 불길한 붉은 색 오러가 가시화가 되기 시작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귀신이 따로 없을 지경. 느긋하지만 음산하게 흘러나오는 루니아 누나의 목소리를 듣고 티르빙을 뽑아서 사브르로 변형시켰다.

 

“탈출보단 우선 잡화점을 정상화하고 그 바보 같은걸 멈춰야 하니까요. 게다가 제대로 된 무기가 없는 루니아 누나를 상대하기에는 지금 안성맞춤.”

 

-파아앙!

 

방금 건 검기가 내 옆을 지나갔는데? 설마 국자로 그런 짓을 한 거야?

 

“어라라? 빗나갔네에? 그래도 카일. 누나는 딱히 검이 없다고 해서 싸울 수 없다고 한 적은 없는데요오?”

 

부유하듯 살짝 떠오르다가 마는 금빛의 머리카락과 나를 장난감처럼 보는 맹수와 같은 붉은 눈을 마주했을 때. 내 심정은 13일의 금요일에서 나왔던 살인마를 본 생존자의 심정과 100%싱크로율을 자랑하는 상태가 되었다.

 

“난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순식간에 날아온 국자를 가까스로 막아내고, 어마어마한 힘과 불꽃이 튀어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국자는 흠집마저 나지 않고 다시 연계공격을 들어가기 시작했다. 잡화점에 있는 국자는 15강 집행검이라도 되는 건가? 아니면 루니아 누나가 집은 생활도구가 전부 무기로 변하는 건가?

 

설마 요리도 무기로 변해서 독극물로 바뀌는 기적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잠깐만요! 누나! 멈춰요!”

 

“네에? 무슨 일이에요오?”

 

“누나가 잡은 것들은 대부분 무기가 되지 않아요? 생각을 해보면 말이죠.”

 

“그런가요오?”

 

나의 의문으로 루니아 누나는 하얀 검지 손가락을 자신의 턱에 대고 차분하게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내가 살아있을 시간을 2초정도 더 벌었고 대답이 나오기 전에 다른 이야기를 할 준비를 했는데.

 

“카일의 말대로 무기가 되어버리네요오. 제가 집었던 것 모든 것이.”

 

뭐야? 그럼 대충 살기 위해 찍은 것이 맞았단 말이야?

 

“이 국자도 카일의 검과 몇 번을 부딪쳤는데도 멀쩡하고 말이죠오. 저는 애초에 종이 한 장을 이용해서 짚단도 베어낼 수 있거든요오.”

 

“일상생활 가능하십니까?”

 

아무래도 루니아 누나가 붙잡은 것마다 무기화가 되는 이유라면, 체내에 흐르고 있는 거대한 오러가 일시적으로 모든 것을 무기처럼 변질시키는 것이 아닐까? 덤으로 루니아 누나의 머리카락으로 기절 당한 적도 있으니까. 마나를 어떻게 운영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루니아 누나는 그게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거라 문제라는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 루니아 누나의 요리에서 기상천외한 독극물이 나온다는 연관성은 전혀 없으니. 이건 이거 나름대로 미스터리. 요리를 할 때만큼은 마나를 사용하려고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루시피나가 요리를 했을 때 이상한 괴생명체라도 나온다면 마나와 요리에 관한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좋지만, 루시피나는 요리를 무척이나 잘하기 때문에 애석하게도 이건 관계가 없고...

 

“그래도 누나의 요리는 사람이 먹을 수 있다고요오!”

 

“아니. 사람은 둘째치고 마왕하고 여신마저 기절시키는 그런 독극물을 제조하는 것은 루니아 누나가 처음이거든요? 초량도 그거 하기 힘들다고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독공을 연구하고 있는 초량에게 있어선 루니아 누나야 말로 자신의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추세였다. 저번에 초량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도중, 루니아 누나의 치명적인 유해물질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눈을 반짝이면서 자신의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고 했었으니까.

 

여전히 하얀 제복에 앞치마를 두른 루니아 누나가 어떤 반응을 할지 살펴보고 있는 도중. 잡화점 안에서 커다란 진동이 울리기 시작하더니, 그 상태로 주저 앉아 쓰러지는 듯했다. 겨우겨우 중심을 잡아서 넘어지지 않고 일어선 후에, 잡화점 문이 활짝 열리기 시작하더니, 루니아 누나와는 상반된 검은색 제복을 입고 있는, 금색의 살벌한 눈동자가 나를 1초정도 바라보더니.

 

-타앙!

 

내 머리 위를 질주하는 금색의 탄환이...

 

“아니! 독백을 할 타이밍이 아니지! 대체 왜 쏘는 거에요!”

 

“반갑다는 인사야. 그리고 루니아! 또 그 바보 같은 음식이나 만들면서 아르페 공주님을 기절시켰겠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

 

“하지만! 우리 가문에서 요리 경연대회에 나갈 사람이 없다고 하잖아!”

 

“우리 가문은 요리 대회 안 나가! 독살미수로 가문 전체가 사형당하고 싶어! 그 바보같이 이상한 요리를 만들기 전에, 제발 기사단에서 제대로 일이나 하란 말이야!”

 

하멀 씨가 제대로 화를 낸 적은 얼마 없지만, 어마어마한 고함이 잡화점 내부에 울리면서 이 대륙에서 괴물에 속한 루니아 누나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루니아 누나는 화가 난 듯한 눈으로 하멀 씨와 마주하고, 또 다시 이곳이 전쟁터로 변할 것 같아서 불안감이 증폭되던 찰나.

 

“흐윽...! 으아아아아앙! 카일! 하멀 오빠가 화를 내요오오!”

 

어린애처럼 울기 시작한 루니아 누나가 나에게 붙으면서 서러움을 풀기 시작했다. 루니아 누나의 커다란 울음소리에도, 확연하게 들리는 하멀 씨의 커다란 한숨 소리와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황금색의 총구를 금색의 모발로 뒤덮인 머리를 긁고 있었으니.

 

“제길! 이래서 내가 너를 항상 껄끄러워 하는 거라고!”

 

“으아아아아앙!”

 

 

하멀 씨가 뭐라 한 소리를 할 때마다 내 귀에서 고막이 파괴되지 않을지 의심될만한 울음소리가 루니아 누나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제발 가족끼리 싸우는데 이곳에서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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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글을 써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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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49 - 1

443

 

누군가에게 불행이 남들에겐 행복이 된다.

항상 이 세상은 불행과 행복이 교차하는 순간이 많은데.

남이 행복하다고 해서 내가 불행해지면 안 된다.

그래. 지금 바로 이 순간처럼...

-레시아와 가위바위보를 한 뒤에 천장으로 날아가고 있는 카일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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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다 알아. ‘용기 안에 뭐가 들었을까?’

너한테 말해줄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널...

 

“어이. 주인. 정신차리거라. 다른 곳의 대사를 여기로 가져와서 독백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독백에 대한 내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얼마 없으리라.”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작은 앞발로 내 뺨을 툭툭 건들이면서 깨우기 시작했다. 애석하게도 방독면을 쓴 6번째 양 앞에서 독백을 하다가 다시 의식이 깨어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는 적어도 잡화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었더라? 고양이 어퍼컷과 함께 천장으로 날아갔다 온 뒤에 그 이후로 기억에 공백이 생겨버렸다.

 

내 옷이 정상인 것으로 보아 백장미를 촬영하는 그런 것은 아닐 것이고, 어두침침한 공간 안에서 내 어깨위로 날아온 하얀 올빼미가, 이 상황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에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시나. 이게 무슨 상황이야? 내가 기절하고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애석하게도 지금은 긴급상황입니다.”

 

지금은 6월의 첫 번째 주. 여름의 문턱을 앞서 진입한 시간에 잡화점이 아닌 다른 곳으로 피신이라도 온 듯했다.

 

“긴급상황이라니?”

 

“어쩔 수 없이 잡화점에 침입한 외부인 때문에 저와 냥캣. 그리고 마스터를 신속하게 옮겼지만, 남은 사람들은 끝내 대피하지 못하고 모두 당했습니다.”

 

모두 당했다고?

 

“설마 지금 잡화점 안에 루니아 누나가 있는 거야?”

 

검은 고양이는 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번에는 의리 있게 나를 버리고 가지 않아서 다행이네. 상황이 진정되기 전까지는 잡화점에 돌아가면 안 될 것 같고, 잡화점 내부 곳곳에 설치를 해놓은 안리아스의 수정구를 이용해서, 화면을 보고 있는 결과로는 우선 잡화점이 한차례 더 날뛰기 시작했다는 것과, 그 안에는 모두가 무지개 빛의 무언가를 먹고 기절했다는 것.

 

“레시아의 다크메터는 적어도 한번 버티기라도 했을 텐데. 역시 루니아 누나의 요리는 가차없구나. 모든 사람들을 한입만으로 보내버리다니. 그보다...”

 

익숙한 교복이 눈에 들어온 가 싶었더니, 켈모리아 학원장의 비서인 아리엘까지 잡화점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단세포 생명체인 베니도 독극물에 중독 되었는지 무지개 빛을 발광하면서 이곳 저곳을 부수고 있었고, 팔랑크스는 기계에 오작동을 일으켰는지 바닥에서 허우적거리고만 있었다.

 

“차라리 검은 높새바람이 잡화점으로 쳐들어온 게 더 편하게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대체 루니아 누나는 어디에 있는 거야?”

 

1층의 주방으로 옮겼을 때는 주방이 온통 무지개 빛으로 물들고 있는 무시무시한 장면이 나타났다. 물 흐르는 듯이 흥겹게 흘러가는 콧노래와 천천히 국자를 휘저어가며 치명적인 유해물질을 만들고 있는 루니아 누나의 짙은 붉은 눈이, 서서히 내 쪽으로 바라보면서 입을 움직였는데. 입술 모양으로 보아하니 “기다려요오. 카일.”이란 말이 된다.

 

“으아아아!”

 

온 몸에 소름이 내 손에 발작을 일으켜서 수정구를 땅에 떨어뜨렸다. 수정구로 보는 나와 정확하게 두 눈이 마주치면서 혼잣말이 아닌, 진짜로 나를 향해 말하는 그 메시지는 어느 누가 봐도 공포가 따로 없다.

 

“그렇다면 우선...잡화점부터 막아야 하네요? 지금 날 뛰고 있으니까 파이론 전역으로 난리 칠 것이 뻔할 테고.”

 

“그거라면 걱정 없다. 아직 짐의 대결계 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이리저리 날 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긴 대체 어디에요?”

 

이제 좀 근본적인 것으로 넘어가서 내가 있는 위치에 대해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마왕성이다.”

 

마왕성?

 

“꼭 마왕성까지 대피할 필요가 있던가요?”

 

“그럼 주인은 잡화점에서 숨을 것인가?”

 

“생각해보니 마왕성도 아늑해서 좋네요. 네.”

 

마기로 가득 차서 사람이 제대로 살지 못하는 환경만 뺀다면야. 마왕성에 위치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루니아 누나 또한 레시아의 대결계를 깨뜨리지 못하면 그곳에서 국자를 휘젓고 있겠지만, 아쉽게도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한 입장은 바로 나. 잡화점의 규칙으로 저녁 8시마다 운영하는 것도 있고, 지금 잡화점을 진정시키지 않으면 마을에 큰 피해가 가기 때문.

 

“이거 정말 큰일이네. 이리가나 저리가나 루니아 누나의 독극물을 피할 길이 없는 건가?”

 

“그냥 자처해서 백장미를 찍겠다고 하면 되지 않는가?”

 

“그러면 또 영양식이라고 저걸 먹일 거 아니에요! 누가 고생하는 걸 2배로 보고 싶어서 그래요!”

 

“마스터께서 충격적인 발언을 하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서 결혼하자는 말이라던가?”

 

“그런 말을 꺼내는 순간 나는 평생 저걸 먹어야 하는 지옥의 나날을 겪는다고.”

 

뭐라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마왕성에서 이리저리 발을 움직이며 생각하고 있는 나는, 여전히 뾰족한 수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 공간 한쪽에서 흐느적거리며 나오고 있는 여성이 약간 높은 위치에서 떨어졌다.

 

“꺄악! 아우우...”

 

“페트리? 넌 살아있었구나?”

 

짙은 보라색 앞머리가 눈을 가린 상태로 나에게 뛰어와서 울기 시작했다.

 

“으아앙! 무서웠어요! 카일 씨! 이상한 사람이 음식을 먹으라고 달려왔지만, 그건 절대적으로 음식이 아니었어요!”

 

“알았어. 진정해. 그보다 여기에는 어떻게 온 거야?”

 

페트리는 훌쩍거리면서 “카일 씨가 사라진 장소에 공간이동 흔적을 보고, 그걸 수복해서 따라왔어요.”라며 담담하게 말했다.

 

“무시무시하군. 그 찰나의 흔적을 바라보고 마왕성까지 따라왔다는 소리인가?”

 

“네? 마왕성? 으아아앙! 카일 씨! 우리 이제 어떻게 되는 거에요!”

 

“그만 붙어! 마왕성은 무서운 곳이 아니니까!”

 

페트리를 진정시키는데 10분정도 투자를 하고, 겨우겨우 울음이 그친 페트리는 검은 고양이인 레시아를 안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안고 있는 것이 마왕이라고 말하면, 또 다시 울음이 터져서 난리 칠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 이상 불필요한 사족은 덧붙이지 않았지만...

 

“그렇군. 또 한차례 전멸을 당한 건가.”

 

바쁘게 일을 나간 마리아와 달에 있는 루나와 카렌을 제외하고, 모조리 잡화점 안에서 정체불명의 유해물질을 먹고 기절했다고 페트리가 전했다. 문제는 루니아 누나는 그 독극물에 면역이 되어있다는 소리.

 

“저 괴물은 대체 누가 막아야 하지?”

 

“저기. 잡화점은 어째서 다리가 생겨나고 팔이 생겨난 거에요?”

 

“잡화점의 미스터리는 아직 다 밝히지 못했어. 엘티노스가 잡화점에 뭘 추가했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이상한 것만 집어넣었다니까?”

 

어쩔 수 없이 정공법을 쓰기로 하자.

 

“레시아와 시나. 그리고 페트리는 제가 루니아 누나를 유인하는 동안, 잡화점을 진정시키고 안에 있는 사람들도 구출해주세요. 다만, 베니 같은 경우에는 확실하게 유해물질을 모조리 제거해야 하니까. 좀 성가신 상대가 될 수 있을 거에요.”

 

“주인이 루니아를 상대로 유인을 하겠다고? 3초정도 버티면 오래 버텼다고 해야 하는 건가?”

 

3초라니. 아무리 루니아 누나가 강하다고 할지라도 3초이상은 버티겠지.

 

***

 

“싫어! 먹지 않을 거야!”

 

“카일은 정말 편식이 심하네요오? 누나가 애써 만들어온 특제 영양식인데, 빨리 먹지 않으면 누나가 억지로 먹일 거에요오?”

 

살인마중에는 정말 효율적으로 죽이는 살인마도 있고, 비효율적으로 숟가락으로만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가 있다. 그렇다면 루니아 누나는 효율적인 것과 비효율적인 것 중에서 어디에 속하는 살인마일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3초 이상을 버텼다는 것과 불행하게도 잡혀버렸다는 것.

 

“카일은 정말 응석꾸러기네요오. 누나가 떠먹여줘야 먹을 건가요?”

 

“미쳤다고 그걸 먹어요? 그 전에 절대로 요리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은 어디다 버리고 온 거에요!”

 

“스틱스 강?”

 

“당장 거기서 찾아오란 말이야!”

 

스틱스 강에 약속과 양심을 자연에다 쓰레기를 버리듯이 투척해버리고, 정체불명의 스프가 작은 숟가락 위에서 “나를 삼키면 너는 신세계로 떠나는 거다!”라고 암시하듯이 햇빛에 반짝이며 비추고 있었다.

 

“사실은 프리트론 왕국에서 요리대회가 열리거든요오. 거기서 1등을 가져가면 카일도 누나의 요리를 인정하고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저의 자신 있는 작품을 만들었어요오~”

 

“그거 먹으면 루니아 누나는 프리트론의 반역자로 2초 안에 찍혀서...크웁!”

 

혀끝에 닿는 순간 어마어마한 고통을 지르지도 못하고, 온 몸이 들썩거리면서 식도와 모든 내장이 녹아 내리는 듯한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대로 나는 죽어가는 것일까? 그 전에 이걸 요리대회에 선보이는 순간, 심사위원들은 무슨 죄이며 프리트론의 왕은 어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지.

 

“일어나요. 카일 씨.”

 

주홍빛의 두 눈이 나를 태양처럼 비추고 있을 때. 그 아이의 무릎 위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카멜롯 마법학원 복장을 하고 있으며, 달빛을 머금은 듯한 긴 은발을 가진 소녀. 내 주변에 은발을 가진 사람은 어느 정도 있지만, 주홍빛의 눈을 가졌다고 한다면...

 

“아리엘?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여기는 내 의식세계라고?”

 

“저는 몽마라서 침입이 가능하니까요. 그보다 저도 이상한 스프를 먹고 기절한지 오래되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꿈속으로 그냥 놀러 간 것뿐이에요.”

 

그리고 내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는 사방이 돌로 이루어진 이름없는 무덤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태껏 잊고 살아왔는데 하필 내가 기절할 때 본 것이 이런 풍경이라니.

 

“여긴 이브센티아죠?”

 

“맞아. 이브센티아에 가본적이 있어?”

 

“거기서 로버트 씨에게 격투라던가 검술을 배웠으니까요. 덤으로 저는 이브센티아 민간학교에서 켈모리아 대신 선생으로도 활동하고 있고요.”

 

“어린 나이에 정말 대단하네. 나는 그 나이 때에는 용병을 뛰고 있을 시절인데.”

 

여전히 꿈을 꾸면 6번째 양이 반겨주지 않는 이상, 이브센티아에서 벌어졌던 악몽을 떠올리고는 한다. 수도 없이 내 손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또 다시 나의 자만으로 일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서.

 

“지금은 이 악몽이 괴롭지 않나요?”

 

“내 기억을 엿보았다면 알겠지만 상당히 괴로운 악몽이야. 한동안 돌무덤만 봐도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많이 힘들었으니까. 그런데 다르게 생각을 해보면 지금 루니아 누나의 요리를 떠올렸을 때. 오히려 이쪽이 덜 아프긴 하더라.”

 

“그래도 아픈 건 아픈 거에요. 저에게 부탁을 한다면 이 꿈을 영원히 안보게 지워줄 수도 있는데요?”

 

“아냐. 그런 짓은 하지마. 나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을 모두 기억하기 위해 남겨놔.”

 

 

아리엘은 나에게 시선을 두다가, 수많은 돌무덤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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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 루니아의 습격 - 레인보우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