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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산책

Salvete! Vos noscere gaudeo!

Salvete. Vos noscere gaudeo!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의 첫 번째 라틴어 산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산책이고 하니, 간단한 인사와 자기소개에 필요한 문장들을 배워보고, 그것들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살펴볼 거예요. 마지막으로는 오늘 배운 단어들을 어원으로 삼는 영어 단어들 또한 소개해드릴게요.

 

오늘의 표현

 

어느 나라 말을 배워도, 처음 배워야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인사하고 자기소개겠죠? 물론 이 인사를 알아듣고 화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은 조금 안타까운 일이지만요. 먼저 인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Salve! 

 

만약 인사를 받는 상대방이 여럿인 경우에는 뒤에 -te만 붙이면 됩니다.
 

Salvete!

 

인사를 한 다음에는 자기 이름을 소개해야겠죠?

 

Ioannes vocor.

 

Ioannes는 제 이름 John의 라틴어로 바꾼 것이고요, 여기서 vocor는 ~라고 불리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나는 요아네스라고 불려"이고, 조금 더 정중하고 올바른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Nomen mihi est Ioannes.

 

Nomen은 이름, mihi는 for me, 나를 위한 이란 뜻입니다. est는 be동사에 해당하며, 마지막으로 이름이 붙습니다. 번역하면, "나를 위한 이름은 요아네스 야"라는 아주 이상한 문장이 되지만, 실제로 라틴어에서는 이게 더 자주 쓰이는 표현이라고 하네요.

 

이번에는 자신의 직업을 소개하는 법을 배워볼까요? 저는 학생입니다 를 한 번 배워볼게요.

 

discipulus sum. 혹은 discipula sum. 

 

만약 남성분이 시라면 discipulus, 여성분이 시라면 discipula라고 하면 돼요. 둘 다 각각 학생을 의미하는 라틴어입니다. sum은 여기서 be 동사에 해당하고요. 왜 앞에서 be 동사는 est 였는데 지금은 sum이었냐고요? 그건 다음 시간에 자세히 소개해드릴게요.

 

인사도 하고 자기 이름도 말했으면, 이제 "만나서 반가워"하고 이야기해야겠죠? 그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Te noscere gaudeo!

 

반면 상대가 여럿인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Vos noscere gaudeo!

 

뜻은 Te/Vos은 당신 혹은 당신들을, noscere는 알게 되다, 알게 되는 것. 마지막으로 gaudeo는 나를 기쁘게 하다. 당신을 알게 되어서 나는 기쁘다. 그러므로 만나서 반갑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번에는 상대방의 이름을 물어보는 법을 배워볼까요?

 

Quod nomen tibi est?

 

nomen은 내 이름을 소개할 때, 이름이라고 얘기했었죠? Quod는 which 혹은 who 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mihi가 나를 위한 이었던 것처럼, tibi는 for you, 너를 위한 이란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est는 be동사에 해당하죠. 즉, "너를 위한 이름은 무엇이야?"가 바로 네 이름은 뭐니?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 역시 한국어로 번역하면 조금 이상하지만, 이 표현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표현이라고 해요.

 

마지막으로 작별할 때의 인사는 무엇일까요?

 

Vale!

 

Salve와 마찬가지로, 여럿에게 건네는 작별에는 -te만 붙이면 됩니다.

 

Valete!

 

마지막으로 그러면 오늘 배운 표현들을 다 복습해볼까요?

 

Salve/Salvete!                              안녕하세요(단수/복수)

Ioannes vocor.                             요아네스라고 합니다.

Nomen mihi est Ioannes.           제 이름은 요아네스입니다.

Discipulus/Discipula sum.          저는 학생입니다.(남/녀)

Quod nomen tibi est?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Te/Vos noscere gaudeo.            만나서 반갑습니다.

Vale/Valete!                               다음에 봐요(단수/복수)

 

그럼 이 표현들을 어떻게 발음할까요?

 

일단 라틴어의 V는 U나 W로 발음합니다. 뒤에 자음이 오면 U로, 모음이 오면 W로 발음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R 같은 경우는 마치 개가 으르렁하듯 혀를 떨어주어야 하는데, 이게 익숙해지는 데는 조금 노력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으르르 으르르 하면서 연습해보세요. 아무도 없을 때요. 좀 많이 부끄러워요.

그 외의 대부분의 라틴어는 알파벳이 쓰여있는 대로 읽습니다. 영어에 비해서 발음을 배우기가 정말 쉬운 언어가 아닐 수 없지요.

 

오늘의 표현들을 발음으로 써보면 다음과 같아요.

 

Salve/Salvete!                              살웨/살웨테

Ioannes vocor.                             요아네스 워코르

Nomen mihi est Ioannes.           노멘 미히 에스트 요아네스

Discipulus/Discipula sum.          디스키풀루스/디스키풀라 숨

Quod nomen tibi est?                쿼드 노멘 티비 에스트?

Te/Vos noscere gaudeo.            테/워스 노스케레 가우데오.

Vale/Valete!                               왈레/왈레테

 

단어의 숲

 

마지막으로 영어 단어들 중 오늘 배운 어휘를 뿌리로 삼는 단어들을 몇 개 소개해볼게요.

 

Salve 가 인사말인걸 보면 , salv- 로 시작하는 많은 영어 단어들이 평안, 안녕 등의 의미를 담는 것이 이해가 갑니다. 대표적으로 salvation (구원), salve (연고), salvage(인양)등이 있죠.

 

불리다 vocor의 경우도 부르다 voco에서 파생된 말인데, 역시 이에서 기원한 영어 단어들이 많죠. vocabulary(어휘), convocate(소집하다), vocation 같은 말은 부름 받음, 즉 천직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요.

 

이름인 Nomen 은 화학을 하는 분들이라면 분자식의 이름을 정하는 방법으로 Nomenclature라는 단어를 보셨을 거예요. 작명법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또한 noun(명사)도 이 단어에서 파생되었다고 해요.

 

discipulus/discipula는 딱 보면 disciple(제자/사도)와 discipline(규율/훈육)의 어원이 어디서 근거했는지 알 수 있죠?

 

알게 되다 noscere. 이걸 보면 영어 단어들 중 알다, 깨우치다의 의미를 담은 많은 단어들이 no-라는 어근을 공유하는 게 결코 우연이 아니란 걸 눈치챌 수 있을 겁니다. notion(생각), notice(알아차리다), ignorant(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notorious 같은 경우도 원래 의미는 '잘 알려진'인데, 지금은 나쁜 의미로 잘 알려진, 즉 악명 높은 이란 의미를 갖게 되었죠.

 

마지막으로 작별인사인 vale는 valere라는 라틴어에서 나왔는데 이는 강하다는 뜻입니다. 마치 작별이 건강해야 돼 하는 느낌 같죠? 여기서도 참 많은 단어가 파생됩니다. value(가치)라는 단어도, 더불어 evaluation(평가)도 이와 뿌리가 같으며, equivalent는 같은(equal)과 강한이 합쳐져 동등한 이라는 의미를, ambivalent는 양쪽/둘(ambi-)과 가치가 합쳐져, 양면가치의 라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자 오늘의 라틴어 산책 즐거우셨나요? 다음엔 왜 be동사가 어쩔 땐 est이고, 어쩔 땐 sum 인지. 왜 학생은 남성이냐 여성이냐 따라 다른지. 라틴어의 복잡한 문법 체계를 하나하나 차근차근 소개해드릴게요. 그럼 모두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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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산책

Cur Linguam Latinam?

        간혹 영어로 적힌 글들을 읽다 보면, 같은 알파벳이지만 생소한 단어들이 눈에 띕니다. '오늘을 즐겨라!'라는 뜻의 Carpe Diem. 현상 유지를 의미하는 Status Quo. 생물학적으로 사람을 의미하는 Homo Sapiens. 모 대학교의 로고에 조그마하게 박힌 Veritas Lux Mea도 있군요.

 

        교과서를 살펴보면 이런 생소한 말들이 더 자주 나옵니다. "예를 들어"를 의미하는 e.g. 는 exempli gratia의 줄임말이며, "다시 말하면"을 의미하는 i.e. 는 id est의 약자입니다. "잘 알아두어라"를 의미하는 n.b. 도 "기타 등등"을 의미하는 etc. 도 모두 nota bene와 et cetera의 줄임말입니다. 이런 말들은 어떤 언어이며, 어쩌다 영어에 이렇게 깊게 뿌리 박혀 있어 가뜩이나 어려운 영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일까요?

 

콜로세움에서 발견된 라틴어 비석. 지금 널리 사용되는 알파벳은
사실 영어 문자 체계가 아니라 라틴어 문자 체계, 즉 로마자다.

   

        이 언어의 정체는 바로 라틴어. 이제는 역사의 발자취로 사라진 고대 로마의 모국어입니다. 안타깝게도 라틴어를 공식적인 국어로 삼는 국가는 이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나마 바티칸 시국에서는 중요한 가톨릭 의례에서 여전히 라틴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만, 다른 나라의 일상어처럼 자주 사용되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되면 조금 의문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도대체 왜 이젠 사용하는 나라도 없는 언어를 왜 배워야 하나요?

 

        어리석게도 저는 이 질문에 대해 굉장히 설득력이 떨어지는 답을 붙잡고, 덜컥 라틴어 공부를 시작해버렸습니다. 예전에 Sogno di volare라는 곡을 접하고 가사가 너무 멋있게 느껴져서 이 언어를 배워야겠다는 열망이 막연하게 생겨났습니다. 마침 그 가사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글에서 나왔다는 얘기를 접하고, '르네상스 시대라면 라틴어겠지, 다빈치도 라틴어를 했었다잖아'라는 매우 빈약하고 어설픈 역사관으로 라틴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곡이 이탈리아어였음을 알게 된 것은 라틴어 공부를 시작하고 3일이 지났을 무렵. 하지만 라틴어 교재도 구매한 뒤라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계속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라면 로마의 직계 후손과 같은 존재니까 언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라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가슴 속에 품은 채로요.

 

        물론 저처럼 충동적으로 언어를 시작하시는 분들은 적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저 같은 바보가 세상에 여럿이 있으면 큰 일 날거에요.)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언제 꽃을 틔울지 모르는 나무를 키우는 것 같아 오랜 시간 꾸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인풋에 비해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아웃풋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특히나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처럼 큰 시장을 가진 언어도 아닌, 사어가 되어버린 라틴어는 노력 대비 결과가 영 시원치 않아 보입니다.

 

        사실 누구나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스피킹을 더듬는 분들이라면, 조금 더 유창하게 영어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스피킹에 문제가 없으신 이들은, 이젠 작문도 독해도 더 잘하고 싶다는 열망이. 어느 정도 영어에 자신감이 붙더라도, 더 잘하고 싶다는 욕구는 계속해서 피어납니다. 왠지 지금 자신의 수준보다 더 높은 경지가 있는 것 같고, 그 경지로 온 몸을 부딪쳐보고 싶은 마음은 아마 영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친구부터, 미국에서 평생을 지낸 사람들까지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밟고 계시다면, 언젠가 부딪쳐야 할 관문은 라틴어라고 저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습니다.

 

        제 주변에는 원어민 수준으로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외국인 친구들이 몇 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중 대부분은 자신의 실력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탄합니다. "한국어를 더 잘하고 싶어. 신문이나 뉴스,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러면 저는 조언합니다. 저는 그러면 한국어를 넘어서 한자를 공부해야 할 때라고. 영어, 더 나아가서 서구 언어에 라틴어의 위치가 그렇습니다. 정말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언젠가는 라틴어를 배워야한다는 것이, 라틴어를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의 답변입니다.

 

        언어를 논하는데 문화를 배제할 수 없겠지요. 특히나 문화교류가 활발한 국가들일수록, 언어도 서로를 닮아갑니다. 중국과 오랜 시간 영향을 주고받은 한국과 일본도, 한자는 더 이상 필수 불가분한 언어가 되었습니다. 한자가 불편하다, 외울 것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문화라는 것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오늘부터 이전 문화로부터 독립이야! 이제 한자는 폐지하고 순우리말만 쓸 거야!"라고 할 수 없듯, 문화는 연속체이며 언어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라틴어 역시 이제는 2000여 년의 시간 동안 변화를 축적해 각기 다른 언어로 변모했지만,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영어 등 다양한 서구 언어들이 여전히 눈에 띄게 공통점이 많은 이유는, 결국 이 언어를 쓰는 국가들이 로마 문화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라틴어를 알아두면 유럽의 다양한 언어들을 배우는데 용이합니다.

 

카이사르의 마지막 단말마, "Et tu, Brute?"
여기서 Brutus가 아니라 Brute인 이유는 문장 안에서 호칭으로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라틴어를 배워야 되는 이유는, 라틴어는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장구하고 찬란했던 역사를 품었던 로마제국은 동과 서로 분열되었고, 서로마는 게르만족의 손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으며, 동로마, 이른바 비잔티움은 오스만 제국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됩니다. (사실: 비잔티움 몰락 당시에는 라틴어를 사용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대 라틴어는, 서로마제국의 몰락 이후에 평민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로망스어로 분화되었으나, 여전히 가톨릭 문화에는 라틴어의 입지가 굳건했었습니다. 중세시대가 끝나고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가면서, 인문학과 인본주의로 회귀하는 문화가 전 유럽에 퍼졌습니다. 이 때 라틴어는 다시 한번 크게 각광을 받았으며, 그렇게 명맥을 이어 내려오며 발전된 라틴어는 이제는 수학, 과학, 신학, 법학, 철학 등 다양한 학문 전반에 걸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미적분을 소개하는 뉴턴의 프린키피아(Principia) 역시 라틴어로 적혔으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의 기원이 되는 르네 데카르트의 철학 원리(Principle of Philosophy)또한 마찬가집니다. 생물 분류법을 창시한 칼 폰 린네는 라틴어를 사용해 분류했고, 지금까지도 생물 분류법에 사용되는 역, 계, 문, 강, 목, 과, 속, 종은 대개 라틴어를 기반으로 두고 있습니다. 해부학에서 소개되는 다양한 명칭들도 라틴어에서 기반했고, 법조계에서도 라틴어로 된 표현들은 여전히 즐비합니다. 이렇게 라틴어는 수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 문화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라틴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로 충분했나요? 그래 라틴어가 참 흥미가 가는 언어야, 근데 영 배울 자신은 안나. 굳이 배워야 할까?라는 의문이 드시나요? 부담 갖지 마세요. 저 역시 이제 겨우 라틴어를 배우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배우면서,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복습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저는 지금까지 배운 걸 포스팅으로 정리해보자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께선 제 복습을 보시면서 공부하시고, 저는 여러분들께 더 정확한 설명을 드리고자 복습하는, 그런 선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라 작은 기대를 가져봅니다.

 

        이만하면 개관으로 충분할 것 같군요.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으로 여러분에게 건네는 라틴어로의 초대장을 마무리해볼까 합니다.

 

        "나의 언어의 한계가, 나의 세상의 한계다." -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 5.6번 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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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및 소식

[옴니글로]매거진 3호 출간 취소 관련 안내

안녕하세요

옴니글로 서비스 운영자 이진희입니다.

 

3호 매거진 '나날' 출간 취소에 관련하여 안타까운 소식을 전합니다.

 

운영자로써, 어려운 결정이었기에 꽤 오랜 기간 신중하게 고심하고
본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아마 출간 소식을 기다리고 계셨을 몇 몇 회원님께서는
공지가 없어 답답한 마음이 많으셨을거라 짐작됩니다.
 
지난 겨울 3호 프로젝트에 참여해 주신 작가님 그리고 오랜시간 옴니글로와 함께 해 주신 작가님들께
진심으로 죄송한 말씀 전합니다.

 

정기적인 매거진 출간 프로젝트는 잠정적으로 보류하기로 최종 결정하였습니다.
지속적인 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해 다시 한번 깊은 사과의 말씀전합니다. 

 

옴니글로는 2016년 3월 오픈하여 지금까지 운영되어 오고 있습니다.
그 사이 2회에 걸쳐 옴니글로 매거진을 출간하였고,
전국의 독립출판서점 및 까페를 통해 작가님들의 작품을 홍보해 왔습니다.

 

서비스 운영 책임자로써, 개인적인 소견을 말씀드리자면
약 2년 간 운영하면서 많은 부분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작가님들과 이렇게 인연이 되어 매거진 출간을 경험해 본 것은

매우 큰 기쁨이자 보람이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적, 글을 쓰시는 아버지의 뒷 모습을 보면서
나란히 앉아 글쓰는 흉내도 내고 책을 펼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늘 가정의 형편을 책임지시면서도 글쓰는 재미를 잃지 않으셨던 당신의 정서가
자연스럽게 전이해졌고, 지금의 옴니글로 정신의 뿌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몇 개월간 여러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잠시 표류 상태에 있었으나
글쓰는 사람들의 일상을 소박하게 담아내고 싶었던 그 초심은 잊지 않을 생각입니다.

 

앞으로 작가님들의 글을 담아 출간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조금 더 깊이 고민해 보겠습니다.
기존의 정기적인 출간과 원고 수집 방식이 아닌, 다른 형태로 서비스의 본질을 지켜나가고자 합니다. 

 

다시한번 안타까운 소식으로 인사드리게 되어 죄송하고,
좀 더 나은 서비스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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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 빠진 뇌 : 시간 기록

현재 좌표 : 스물다섯, 여자, 학생

시간이 지나, 아 내가 스물다섯 젊은 시절에 이런 글도 썼었지, 하며 되돌아볼 수 있기를. 이 글들은 내 타임 캡슐이다.

 

Song for A by Charlie Key (Piano) 듣고 있다.

 

가끔씩 밀려오는 감성 파도가 있다.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때마다 듣고 싶은 음악이 다르다. 현재 내 감성에 어떤 음악이 맞을까? 하고 대충 머릿속에서 듣고 싶은 소리와 음악의 공격성을 가늠한다. 그리고 '좋아요' 눌러놓은 목록에서 그 조건과 감성의 결에 들어맞는 음악을 찾는다.

 

들은 음악은 모두 기억한다. 자주 들은 음악은 세세한 배경음을 다 기억한다. 따라 부를 때 문제가 생긴다. 동시에 울리는 배경음까지 목소리로 흉내내려 하니까.

 

음악의 중간 부분부터 갑자기 기억하는 것은 잘 안된다. 노력해도 안된다. 앞부분이 기억나면 거기에 이은 뒷부분이 따라서 기억난다. 따라부르다 보면 머릿속에서 뭘 재생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린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음악은 따라부를 수 없다.

 

감성 폭발한다는 표현을 쓰지, 세상 내 혼자인 것같고 내가 살아온 과거가 슬프고 미래도 결국 죽어 없어질 것이라 슬프다. 긴 선의 한 점인 현재에 의미를 느낄 수 없다. 다른 선을 살고 있는 타인을 붙잡고 싶어진다.

 

감정이 적으면 살기 편할 것 같다. 아예 없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고, 또 인간 문명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니, 약간은 있는 편이 낫다.

 

반대인 경우도 많았다. 사람들이 감성적으로 굴 때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한 후 휙 지나가버린 적도 많았다. 의욕에 넘쳐 앞으로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제외한 주변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시간도 많다. 친구가 외로워서 징징거리는 걸 귀찮아서 느리게 답하고 열심히 인강을 듣다보면 친구 일을 잊고 있다.

 

눈앞에 처한 상황을 보고 내가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힘이 났다. 인강을 들으면서 무의식적으로 느꼈던 것이 그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배워가고 있고, 그에 따라 나와 내 현실도 바뀐다'는 것. 현실 요소(상황이든, 내 자신이든)와 관계할 때 느껴지는 파워....?랄까. 그 생기.

 

내 모든 잠재 능력을 발견하고 완전히 키우는데 집착한다. 애니 볼 때 주인공이 성장형 먼치킨인 게 좋다. 그게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잠재력을 쓰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천년을 산다면 느긋한 마음으로 차근히 자기 계발을 하련만.

 

새로운 분야를 접하게 되면 내가 그것에 얼마만큼의 재능이 있는지부터 생각한다. ‘그걸 시도했을 때 내가 얼마나 잘할 수 있는가'.

 

대부분의 경우,

재능이 있으면 그 자체 때문에 흥미가 생긴다. 이 분야는 나의 어떤 사고방식과 관련되어 있길래 내가 강점을 보이는 걸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재능이 없으면 흥미를 잃는다. 그건 이번 생에선 내 역할이 아닌가봐, 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되는 상황들은, 재능도 흥미도 없는데 상황 상 필요한 경우이다. 일단 하지말고 맴돈다. 예를 들면, 코딩 같은 것?

 

재능이 없어보이지만 흥미가 식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럼 재능을 만들어서라도 한다. 못하면 잘하게 하라. 잘하고 싶은데 못하는 건 견딜 수 없다.

 

그 외 대부분의 것들에는 재능과 흥미가 일치한다.

 

한동안 그라임/위치하우스 위주로 듣다가 최근에 클래식으로 돌아왔다. 아냐, 그 전통 클래식이 아니라 요즘에 새로 나오는 곡들이다. 현대 이전 클래식 음악은 거의 싫어한다. 다음에 나올 음이 뻔해서 예측한대로 진행되는 게 으으싫다.

 

듣다보면 클래식 비스무리한 느낌을 주는 음악들은

뭐랄까.. 각 소리가 나오는 타이밍이 일정하지 않다. 비트에 맞춰 반복되는 게 아니라 감정 흐름에 따라 휩쓸리고, 연주자가 생각하기에 완벽한 타이밍에 뚝.. 하고 소리를 떨어뜨리는 느낌, 아니면 스치기도 하고...이걸 무작위스럽다고 불러야겠다.

 

그럼 왜 흑인 음악과 반복을 좋아하던 내 뇌는 무작위스러운 음악을 갑자기 선호하게 되었을까? 최근에 뇌에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 더 달콤하게 들리는 음악이 달라진 것이다.

 

몸에서 당분이 필요할 때 단게 땡기고, 또 다른 영양소가 부족할 땐 해당 맛과 음식이 땡기듯이, 뇌가 어떤 소리 패턴에 끌린다는 건.... 뭔가 이유가 없을 수없다.

 

작년에 심하게 감성적이었을 땐(2016 겨울-2017봄), 흐느적거리는 음악을 기피했다. 특히 보컬들어가고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류의 음악이 별로 좋게 들리지 않았다. 거의 잘게 반복되고 실험적인 전자 음악 위주로 들었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이렇게 멋진 사운드와 그 패턴을 들을 수 있어 좋다고 생각했다. 우울한 방.. 누워서.. 빛은 겨울이라 하얀 색이고..음악이 들리는 것 말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고.. 고요하고..손가락도 까딱하기 싫은..

 

지금, 반대다. 최근 몇 주는 어느 때보다도 감정 없이 앞을 향해 나가고 있다. 감성에 잠기는 시간은 아깝다. 인생을 그런 식으로 너무 많이 낭비해서, 더 이상은 싫다. 생산적이지 않다. 감정이 무뎌진 것 같아서 참 좋았는데,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할 기회니까....

 

무작위스럽고 감성을 자극하는 멜로디와 목소리를 찾고 있다 최근. 작년이랑 뒤바뀌었다.

The Dø - Dust it off 라는 보컬곡을..

나도 따라불러보고 싶다. 예쁘다..

 

슬프다..

보통은 이럴 때 나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날이 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친구가, 근데 사람은 그렇게 빨리 죽지 않으니 생활을 지탱할 일과 목표가 필요한 거겠지, 라고 답했다.

아 맞는 말이다아아...

 

금방 죽긴 죽는데, 그 죽기까지의 기간보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어줘야하고, 욕구와 욕망이 솟아나는 주기가 훠어얼씬 짧다. 오 컴퓨터에서 뭔가 밝은 느낌의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뭔가 해볼 의욕이 살아나는 듯하다.

나는 스스로를 지금보다 더 나은 위치에 올려놓고 싶다는 욕구에 휘둘려 굴러가는 기계같은..그런데 달리 붙잡을 것이 없으니 이 욕구를 따라간다.

 

나는 이 글을 2017년 12월 겨울, 수요일, 런던에서 쓰고 있다. 기숙사 방에 혼자다. 한국은 눈이 온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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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모음집:雜

사막의 나비

사막의 나비

 

태양이 내려쬐는 뜨거운 모래 바다 위에서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날개를 가진 나비가 팔랑인다.

위로 올라가면 햇살이 뜨겁고 아래로 내려앉기에는 데워진 모래가 뜨겁다.

 

꽃도 없고 가지도 없으며 작은 돌멩이 하나 보이지를 않는다.

쉬어갈 곳을 찾지 못하고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나비는 계속해서 허공을 헤엄친다.

 

수십, 수백, 수천…나비가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날개가 남긴 흔적이 이어지며 쌓인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얼마나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한번의 날갯짓이 수만번의 흔적을 남길 때까지 쉼 없이 날아도 멈출 수가 없다.

쉬지 못한 날개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푸른 나비는 비틀거린다.

 

마침내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고 너덜너덜해진 날개로 식어가는 모래 위에 내려앉았을 때

차가워지는 모래를 따라 나비의 열기도 식어가고 불어오는 바람에 서서히 가라앉는다.

 

사구 속에 가라앉은 나비는 흔적도 보이지 않지만 허공에 새겨진 날개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모래 파도 위로 불어오는 바람에 뒤섞이며 휘몰아치는 푸른 날개의 잔상.

 

작은 나비 한 마리가 허공에 남긴 수천, 수만의 발자국이 모여 거대한 태풍을 이룬다.

마치 수천, 수만의 모래 알갱이가 모여서 사막을 이루듯이…

 

인터넷이라는 사막, 네티즌이라는 나비

 

문명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전하며 쌓이고 쌓인 노력이 이루어낸 정보의 바다 인터넷.

하루 또는 1시간 만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정보가 쌓이고 쏟아진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마우스와 키보드를 타고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며 흔적을 남긴다.

공감, 좋아요, 댓글, 하트, 별…무수한 날갯짓을 남기는 수많은 나비 떼.

 

무심코 남긴 작은 흔적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괴로움을 선사하고

무심코 남긴 작은 흔적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감동이 되어 축복한다.

 

무수한 나비가 남기고 간 자리에서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린다.

때로는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생명을 죽이기도 하는 나비의 날갯짓.

 

의미 없이 흘린 한마디가 이리저리 휩쓸리며 부풀려지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뼈와 살이 붙어 진실이 되어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무수한 무관심이 쌓이고 덮여 알려져야 하는 것들이 묻히기도 하고

거짓이 진실의 가면을 쓰기도, 진실이 거짓이라는 무덤에 들어가기도 한다.

 

마치 뜨거운 아지랑이처럼 또는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날개의 잔상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신기루가 되어 눈을 어지럽힌다.

 

 

당신은 어떤 나비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