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어보기

숨을 쉰다의 의미

띄웁니다_엄마에게

안녕엄마

안녕을 고한게 어제 같은데,

멈춰버린 엄마의 시계와 함께 내 시계도 멈춘 줄 알았는데

흘러가더군요. 모든게.

 

시간이 약이라기에 시도 때도 없이 약을 먹었는데도

드문드문 올라오는 타는 듯한 통증에 힘이 들어요.

아직 멀었나봐요.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어요.

엄마의 딸들이 태어났던 곳,

우리 가족이 시작 된 그 곳에서 우리는 떠났어요.

 

엄마 막내 딸도

엄마 없는 고등학교 졸업식을 무사히 마쳤어요.

 

엄마가 걱정했던 회사일도

남은 분들이 엄마를 생각하며

열심히 해주시고 계세요.

 

엄마 마지막 길을 함께한

내 친구들, 엄마 친구들, 은사님들

다 감사를 전했으니 행여나 염려 마세요.

 

엄마,

엄마는 내가 늦게 결혼 했으면 좋겠다 그랬죠

오래오래 엄마 옆에 있어달라고.

엄마는 내가 아이를 늦게 낳았으면 좋겠다 그랬죠

벌써 할머니 되기 싫다고 소녀같이 투정하던 모습이 선해요.

 

근데요

그게 너무 힘드네요.

내가 결혼식장에서 인사드리는 순간에

엄마가 없을거라는게.

내가 엄마가 된 순간에

엄마가 없을거라는게.

영원히 엄마의 나이든 모습 조차 볼 수 없을 거라는게.

 

남들은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을 보는게 가슴 아프다던데

나는 나이 든 엄마를 보지 못하는 게 평생 한이 될 거 같네요.

그래도 내가 나이가 들고

엄마처럼 내 자식들 열심히 키우며 살다보면

거울속에서 엄마를 볼 수 있을거 같아요.

어릴 때부터 엄마랑 붕어빵이라는 소리 들었으니까.

 

엄마

당신처럼 살지 말고 훨훨 날아다니라는 말 기억해요?

채우지도 못하는

엄마의 빈자리에 감히 들어갔다가

엄마의 인생을 느꼈을 때 참 서글펐어요.

짧은 인생 한평생을 고생만 한 엄마.

내가 좀 더 어른이었다면

조금 덜 고생했을텐데

조금 더 좋은걸 했을텐데

 

사회생활 시작하고 모은 돈으로

여행을 보내주려 했을 때

병 때문에 멀리 다른 나라도 못 보내준다는 걸 알고

가슴이 미어졌어요.

 

그저 새해 일출을 보고싶다고

신혼여행지였던 제주도에 다시 가고 싶다고

가족끼리 예쁜 펜션에서 고기 구워 먹고 싶다고

그렇게 좋아했던 코스모스 보러 가고 싶다고

소박한 소원들이 이루어졌을 때

죽어가는 몸인데도 생생히 웃어준 엄마.

 

영원히 잠든 엄마를 마주했을 때도

웃어줘서 고마워요.

그 힘든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평온한 표정 지어줘서 고마워요.

 

너무 어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

미안했어요.

 

편안히 행복하게 쉬다가

다음 생에 다시 만나요.

 

그때는

내 엄마 하지말고

내 딸 해줘요.

 

너무 어린 딸이라 못해줬던거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서

다해줄게요.

 

언제나 '우리딸 언제와?'

메세지 보내며

기다렸던 엄마

다음 생에는

내가 기다릴게요.

 

엄마가 남겨준 내 삶,

열심히 살고 있을게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 엄마에게 띄웁니다.

 

 

 

글 이어보기

숨을 쉰다의 의미

못된 딸

영원한 이별. 내 피부에 닿아버린 죽음.

고작 20년 조금 넘은 내 삶이 이토록 무서웠던 적이 있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나는 사람이기에 죽는다.

참 언제보아도 공포스러운 명제다.

 

엄마의 꺼져가는 숨을 함께하며

나는 죽음을 경험했다.

 

흔히들 말하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

부인, 분노, 흥정, 공포, 체념.

 

나을 수 있을거라고 믿었던 부인.

왜 이렇게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는지에 대한 분노.

방사선이라도 해달라고, 혹시 모른다고 떼를 썼던 흥정.

새벽 늦은 시간 죽고 싶지 않다고 매달렸던 공포.

눈을 감고 감내했던 체념.

 

나의 엄마,

그리고 나.

그렇게 죽음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죽음 이후, 시작된 또다른 단계.

또다른 부인과, 분노, 흥정.

그러나 공포 앞에 멈춰 버렸다.

 

왜 사람은 이렇게 쉽게 죽을까.

뉴스와 신문에서 나오는 누군가의 사망.

그 자체는 공포였다.

 

밖이 무서웠고, 사람이 무서웠고, 삶이 무서웠다.

공포스러운 고뇌의 시간, 그 후 다가온 체념으로

난 못된 딸이 되었다.

 

내 숨을 엄마가 남긴 숨이라고 생각해버렸다.

내 남은 삶의 행복이 엄마의 행복일거라고 생각해버렸다.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마주 할 수 있다고 생각해버렸다.

엄마를 만날 수 있으니까.

 

홀로 길을 건넜을 엄마 앞에

나는 겁쟁이 못된 딸이다.
 

글 이어보기

숨을 쉰다의 의미

빈자리를 메운다는게

 아버지와 엄마, 나와 엄마, 동생과 엄마.

엄마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중심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떠나버렸다.

 

나는 아버지의 부정적인 말들을 이해 할 수 없었고, 아버지는 나의 세심한 면을 이해 할 수 없었다. 가족 중에 영원한 부재가 생기자 부재자에게 의지했던 구성원은 혼란스러워졌다.

 

'누구에게 그 역할을 부여 할 것인가'

 

엄마의 중재가 없자, 아버지와 나 사이 대화는 이상해졌다. 어느 순간 결국 화가 났고, 답답했다. 그러나 본질은 같았다. 내 반려자는, 내 엄마는 맞춰줬는데 왜 아버지는, 너는 안맞춰주는건가. 한쪽은 감정을 내려놓아야했다. 어릴 적부터 동생 앞에, 아픈 엄마 앞에 내려놓았던 내 감정들은 다시 한번 숨겨졌다. 모든 것이 그저 그래졌다.

아 그렇구나. 그렇게 하세요. 그게 맞아요. 네.

무미건조한 대답들의 연속. 아예 드러날 생각조차 안했던 내 감정들은 암 세포가 갉아먹었던 찢어진 가슴들을 더 짓눌렀다. 내 온몸을 내던져 채워나갔다. 빈자리를.

 

 그렇게 몇 개월. 채울 몸이 없어졌다. 희한하게 빈자리는 더 넓어졌다. 있는 힘을 다해 채워나갔지만 부족했다. 그 부족함은 견뎌내는 나에게로 활시위는 당겨졌다. 나에 대한 요구, 아버지와 동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주변인들의 우려, 내 삶의 의미는 화살이 되었다. 찢겨지고 짓눌린 내 가슴에 명중한 화살들로 피가 터졌다. 움켜쥐고 있던 고름들이 흘러나오면서 빈자리가 다시 비어버렸다.

 

 나도 아직 어리다고, 나도 엄마 필요하다고, 나도 아직 아프다고,

차라리 엄마한테 가겠다고 다 토해버린 나.

내 아버지의 가슴을 후벼팠다는 죄책감에 몸은 덜덜 떨렸는데, 내 아린 가슴은 후련해했다.

결국 서로의 포기로 빈자리는 그대로 비었다.

 

 빈자리를 메운다는게 꼭 필요했을까?

나는 무엇때문에 그리도 애썼을까.

가족의 평화? 예전같은 행복? 단란함?

아니다. 그냥 그리웠다. 엄마가 있었던 시간들이.

그러나 애쓰면 애쓸수록 그리움이 차올라서 빈자리는 넓어진다.

 

그대로 냅둘 수 밖에 없다.

 

원래 그 자리는 엄마만이 채울 수 있으니까.

 

그냥 적응하면 된다. 

앞으로 있을 셋만의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