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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어떤 여행

[안녕,어떤여행] D+05 반짝반짝 빛나는

 

믿을 수 없지만, 오늘이 라파즈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내일 아침 일찍 대망의 우유니로 떠나는데, 기분이 왜 이렇지? 첫 정이 무섭다고, 라파즈에 정이 듬뿍 들어버렸다. 가이드북에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 후기에도 그렇고 라파즈는 치안이 나빠서 우유니로 가기 위한 관문에 지나지 않지만, 내가 이틀 동안 겪은 라파즈는 그야말로 매혹적인 도시였다. 이 도시의 혼잡함과 소란스러움 마저 참 좋다.

 

오늘은 일찍 일어난 김에 8시 전에 아침을 먹고 엄빠와 페이스톡을 하고 S와 오랜만에 카톡도 했다. 내가 오기 직전에 남미를 여행한 전혜빈은 또 다른 오혜영인 서현진과 여행을 했다고 한다. 도밍고 아저씨에게 세탁할 옷들을 맡기고 (짐이 터질 것 같은데도 왜 입을 옷이 없을까) 영어를 잘하는 아마도 주인인 언니에게 왜 나를 픽업하러 나오지 않았는지 물어봤다. 언니는 처음 듣는 얘기라며 당황하더니, 확인을 해보곤 내가 탄 비행기가 일찍 도착해서라고 한다. 아, 드디어 궁금증이 풀렸다. 그래서 별 문제는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라고 했다. (근데 분명히 나는 제대로 된 시간을 알려준 것 같은데)

 

산프란시스코 성당을 향하는 길, 마스크를 꺼낸 후 자물쇠가 잘못 잠기게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1분 정도 후에 깨닫고 바로 돌아갔지만 그새 자물쇠는 사라지고 없었다. 떨어뜨린 게 자물쇠라서 다행이다, 정말. 산프란시스코 성당 앞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데 (완만한 경사지만 지이이이인짜 숨이 찬다) 인디오 여자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물론, Si! 알고 보니 그녀는 촐리타 (여자 레슬러... 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유명인) 글로리아였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서정적인 하엔 거리를 찾아 육교를 건너니 계단이, 계단이! 라파즈, 이러기냐! 무리하지 않도록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데 그런다고 무리가 되지 않을 리가 없다. 어쨌든 하엔 거리는 꼭 독일 퓌센 같은 느낌의 짧은 골목이었고 비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곧 해가 나와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메 뽀드리아 또마르 우나 뽀또? 이걸 달달 외워서 한 번 써먹어 봤다, 히히.

 

아침을 거하게 먹은 탓에 아직 배가 고프진 않아 다시 육교를 지나 이번엔 빨간 케이블카를 타러 가기로 했다. 오렌지 주스 한 잔을 사 먹고, 자, 또 등산이다! 하하! 그래도 어제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오랜만에 한국인 여자들을 만났다. 첫날 한국인 남자 둘을 만난 이후로 처음 보는 한국인이다. 물론 인사는 하지 못했다. 미국인들처럼 스몰토크를 하는 문화면 모를까, 이상한 여자 취급을 당할 게 뻔하니까. 빨간 케이블카는 노란 케이블카와는 또 다른 느낌인데, 둘 중 한 개만 탈 수 있다면 빨간 케이블카를 조금 더 추천한다. 정상에 오르면 엘 알토 해발 4,095m다. 하하. 스케일 한 번 대단하다.

 

내려오는 케이블카를 타는데, 한 아저씨와 자꾸 동선이 겹치는데 아저씨가 자꾸 양보를 해주셨다. 아저씨는 주황색 작업복을 입고 계셨는데, 케이블카 안에서 신나게 촬영을 하다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는데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얌전히 앉아있었다. 함부로 동정하는 건 나쁜 일이다. 하지만 예의를 지키는 건 중요한 일이다. 케이블카는 관광용이기 이전에 그들의 교통수단이다. 아침에 나오면서 이세타졸을 먹는 걸 잊어버려서인지 손과 발이 내내 저리더니 이제 얼굴까지 저리고 얼얼했다. 마침 눈 앞에 약국이 보여서 소로체를 한 알 샀다. 라파즈 때문이냐고 묻길래, Si. 신기하게도 약을 먹고 나니 저린 증상이 싹 가셨다.  저림도 고산병 증상이었나 보다.

 

올라갈 땐 힘들었는데 내려가는 건 금방이다. 이제 배가 고파서 현대화된 재래시장 렌자에 갔다. 현지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다. 마침 사람들이 엄-청 많은 피데오 식당이 있어서 줄을 섰다. 피데오는 뭐랄까, 쇼트 파스타 같은 느낌의 면 요리 위에 달걀이나 소시지, 실판초 같은 걸 올려 먹는 건데, 실판초는 어제 먹어서 소시지로 주문했다. 20여 명의 현지인 사이 유일한 외국인 나! 똑같이 소스를 뿌려서 벤치에 앉아서 먹었다. 기대했던 팟타이 류의 볶음면 맛은 아니었지만, 나름 먹을만했다. 가격은 단 돈 3볼! 오렌지주스보다 싸다! 약 540원 정도! 너무 좋다.

 

마녀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보라색 판초를 샀다. 왠지 더 깎아야 했을 것 같지만 나는 흥정에는 영 재능이 없다. 비가 뚝뚝 떨어져서 카메라는 백팩에 넣고 우산과 고프로만 꺼냈다. 환전을 백불 더 하고 암푸 거리를 끝에서 끝까지 걸었다. 라파즈를 떠나는 게 왠지 아쉬웠다. 사가르나가 거리를 내려가다 목도 마르고 비도 많이 와서 카페로 몸을 피신했다. 유창한 영어를 하는 직원이 있는, 전형적인 서양 백패커스들의 아지트 같은 느낌의. 그래도 3층 창가에 앉아 비 오는 거리를 내려다보며 마신 스타후르츠 주스는 맛있었다. 다시 비 오는 거리로 나와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쉬운 마음에 고프로를 손에 꽉 쥐고, 그 혼잡함 속을 뚫고 걸었다. 나를 놀라게 했던 총성의 정체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위 한 번 과격하다, 이 동네. 우리나라 촛불 좀 가르쳐주고 싶네.

 

숙소에 들어가 계속 쉬다 해가 지면 나갈 생각이었는데 배가 고픈 건지 아픈 건지 모르는 상태라, 숙소 앞 모퉁이에 파는 빵 같은 걸 좀 사다 놓을 생각으로 밖으로 나갔더니 문을 안 열었다. 이 아줌마들은 통 나랑 타이밍이 안 맞다니까! 근처에 큰 재래시장이 있다고 해서 주머니에 열쇠랑 휴대폰, 고프로만 넣고 길을 나섰다. 어느새 다시 해가 떴고 시장은 별 거 없었다. 허탕만 치고 대학교 쪽 노점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마땅한 음식을 찾지 못한 오르막길 끝에서 중국 음식점을 발견했다. 아, 쌀밥이 먹고 싶었다. 내내 밀가루나 고기만 먹은 터라 속이 불편한 거 아닐까? 좋아, 선택했어! 노점 음식을 살 생각이었던 터라 주머니엔 20볼만 있었고 14볼짜리 후라이드 치킨 한 조각이 올라간 볶음밥을 시켰다. 그리고 나는 정신없이, 그야말로 푸드 파이터처럼 밥을 먹었다. 음, 배가 고팠던 거구나. 그리고 늘 생각하지만 중국인에게선 상냥함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도 맛있는 쌀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늦은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7월 16일 대로는 그야말로 불금 직전이었고, 나는 들어가는 길에 물 한 통을 샀다. 그리고 모퉁이 노점이 문을 연 것을 발견했다. 이런 타이밍! 대체 뭘 파는 것인가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니 두 분 중 한 분이 내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하셨다. "살테냐?" 살 거냐고 묻는 게 아니고, 살테냐라는 볼리비아 음식이냐고 물은 거다. "노, 블라블라"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아직 얼마냐고 묻는 걸 못 외워서 영어로 얼마냐고 묻지 못 알아들으시길래 주머니에 있던 동전을 꺼내 보여주더니 용케 알아듣고 "꽈트로" 라며 손가락 네 개를 펼쳐 보이신다. 잔돈이 모자라 얼른 방으로 뛰어들어가 동전을 가지고 나와 빵을 하나 샀다. 방금 먹방을 제대로 찍고 난 터라 야식으로 먹을 생각이었다.

 

밤에 혼자 다니지 않는 것은 여자 혼자 다니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 중 하나다. 그것이 설사 매우 안전한 도시라고 하더라도. 나는 라파즈가 그리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외진 킬리킬리 전망대에 가기 위해 숙소 리셉션에 택시를 불러 달라고 했다. 전망대까지 왕복하는데 35볼, 그렇게 저렴하진 않지만 또 그렇게 비싸진 않은 가격. 한참 기다려 택시를 타는데 모퉁이 노점 아줌마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준다. 나도 안녕! 하고 손을 흔들었다.

 

킬리킬리 전망대는 기대 이상이었다. 별들이 점점이 박힌 것 같은 꿈같은 세상! 이렇게 아름다운 야경이라니! 말도 안 된다. 도저히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아름다운 야경, 내가 본 야경 베스트 안에 들 법했다. 10분 정도만 보고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20분 넘게 머물렀고 드라이버에겐 3볼을 더 챙겨줬다. 내려오는 택시 안에서 정말 부끄럽지만 괜히 울컥하는 기분이 들어 눈물이 찔끔 났다. 파묵칼레의 선셋 이후 두 번째다, 이런 감정은. 그냥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느껴졌을 보석 같은 도시, 라파즈! 안녕, 차오! 야식으로 사다 놓은 빵은 그야말로 우리로 치면 왕만두 같은 것이었는데 배가 꺼지질 않아 반 정도밖에 못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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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이야기들이 모이다_

힘들때면, 꿈이 나를 일으켰다.

 

 

희망이 없다고 느꼈을 때, 나는 가능성이 없다고 느껴졌을 때,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을 때.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나를 일으켜 세워준 건 다름아닌

늘 희망을 이야기하고 꿈을 꾸며 늘 당차게 살았던 나의 지난날의 일기들이었다. 

 

일기장을 펼쳐 부지런히 그동안 나의 희망적인 이야기들을 읽어내려갔고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을 때. 

갑자기 머리가 맑아지면서 몸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늦은 밤, 나는 글이 쓰고 싶어졌고 바로 노트북을 켜,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무엇인지 적어내려가기 시작했고 그 글은 나에게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다시 희망을 갖고 꿈을 꾸기 시작한다. 

비록,

늦었다고 생각했었던 지난날의 불완전한 생각들과 마주할 나에게 두렵다고 포기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넌 할 수 있다고 희망을 가져도 된다고

노력하면 반드시 너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그 날이 올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자신을 믿고 굳건하게 너의 그 길을 걸어가라고 응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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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어떤 여행

[안녕,어떤여행] D+03 해발 3,700m에서

 

새벽 5시에 도착해놓고는 그래도 아침은 먹겠다고 또 꾸역꾸역 8시 즈음 일어난다. 아침 식사는 따뜻한 빵과 진짜 맛있는 버터와 수제 오렌지 마멀레이드, 요거트, 치즈, 햄, 과일, 스크램블에그 등이 푸짐하게 제공되고 커피나 코카티 중 선택할 수 있는데 나는 주저 없이 코카티를 외쳤다. 아침을 먹은 후엔 다시 기절. 사실 첫날은 계속 자려고 했는데,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새어들어오는 빛 때문에 도저히 몸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뜨거운 물로 씻으면 산소를 더 필요로 하게 해서 고산병을 악화시킨다고 하는데, 한여름에도 뜨거운 물로 씻는 나는 감기 걸리는 게 더 무서워 그냥 원래 씻는 온도로 씻었다. (나는 감기 예방에는 뜨거운 물로 하는 샤워와 프로폴리스가 최고라고 맹신한다) 어차피 온도도 내 맘대로 맞춰지지 않았다.

 

오후 2시 즈음, 산프란시스코 성당으로 가보기로 한다. 원래 사가르나가 거리 쪽 숙소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지금 묵는 호텔에 꽂히는 바람에... 뭐 그래도 덕분에 그 근처에서만 있었음 못 봤을 풍경들을 많이 봤으니 됐다. 거리는 무척 번잡했고 소란했다. 이 익숙한 느낌은 뭐지? 필리핀, 딱 그쯤 되겠다. 참을성 없이 울려대는 클락션 소리, 코를 찌르는 매연, 아무데서나 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 그들의 피부색, 식민지풍의 건물들. 인디오 아줌마들의 패션만 아니라면, 여기가 동남아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슬프게도 생각보다 새롭지 않았고 기쁘게도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산프란시스코 성당 앞 광장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여행자 거리라는 사가르나가 거리를 향해 올라갔다. 일단 환전을 좀 해야 했는데, 으잉, 환전소가 눈에 보이질 않는다. 헤매고 다니며 마녀시장까지 다 구경하고, 결국 여행사에 들어가 환전소를 물어보니 "바로 옆에" 라고. 아, 민망해라. 환전은 1달러에 695볼리비아노. 100달러를 환전했다. 아직 물가에 대한 감이 없어서 얼마나 쓸 수 있는 건진 모르겠다. 슬슬 배가 고파오는데 내가 마침 암푸 거리에 있길래(?) 가이드북에 나온 모짜렐라 피자라는 식당을 가볼까 하는데, 또 마침 바로 눈앞에 그 식당 2호점이 보였다. 피자는 댈러스에서 바로 직전에 먹은 터라, 로제 파스타와 딸기주스를 시켰다. 토핑이라곤 아무것도 없이 소스와 면만 있는데, 이게 뭐라고 또 이렇게 맛있냐.

 

슬슬 체력이 고갈되고(뭐 했다고?) 해도 지려고 해서 숙소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마침 네일샵이 보였다. 비행기 몇 번 탔다고 악건성 중에서도 악건성인 내 피부는 난리가 났는데, 특히 손가락의 큐티클은 난리법석이었다. 기세 좋게 네일샵에 들어갔는데, 아차, 나는 스페인어를 1도 못했다. 번역기를 돌려도 의사소통이 안 되고. 결국 5볼짜리 매니큐어만 바르고 끝났다... 그 마저도 다 까짐. 천원도 안 하는 거였으니까 맘 쓰지 말자, 헷! 숙소로 돌아오니 미친 듯이 잠이 쏟아져 대강 얼굴만 씻고 잠이 들었는데 밤 12시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잠이 깬 뒤로 두통이 시작됐다. 시간마다 타이레놀도 먹고 고산병약도 먹었지만 결국 새벽 4시까지 편두통은 계속 되었다. 그래도 소화계통으로 탈이 안 난 게 다행이랄까. 그래도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겨우 다시 잠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