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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서린 창가 뒷편 희끄무레한 당신의 모습

 

도시를 빽빽이 메운 건물들이 모조리 무너지고

잿빛 아스팔트는 녹아내려 땅 아래 스며들면

가려졌던 하늘도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겠지

 

찢겨졌던 조각의 틈새를 맞추려하지 말기를

죽죽 그어진 검은 선들은 걷어내면 그만이다

만져지지 않는 대기 속으로 새들이 흩어지면

 

태초의 지평선도 서서히 눈 앞을 때리겠지

병들지 않은 사회는 한 번도 없었어

병든 사회의 병든 체제 속 병든 인간들

 

사람은 단 한 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기이하고 이상한 것들로 묶어놓았다

홀린 채, 들린 채, 중독된 채 살아왔다

 

동굴 속 밝게 빛나는 금색 램프를 꺼내

머리 위로 흔들면 보랏빛 기운이 흘러

집착하고 강박하고 놓지 못하며 살도록

 

머릿속을 지배한다 

들리고 홀리고 중독되어 살아왔다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검은 선을 걷어내면

 

실체가 뚜렷히 와닿을까

자신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

자기가 너무 중요한 사람들

 

극빈과 공포 아래 그들은 하나로 묶여

그것만이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살아남으려면 구덩이 끝까지 내몰아야 했다

 

밋밋한 얼굴, 정돈되지 않아 어색한 몸

고작해야 어린 애들이었는데

새장 없이 자유를 인지할 수는 없어

 

김 서린 창가 뒷편

희끄무레한 당신의 모습

밖에는 눈송이가 내리고

 

너무 늦어버린 상처는 서서히

조용히 아물고 살이 돋아나겠지만

그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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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눈

거대한 나무 하나

박히고 치솟은 채

담담했던 나무가 있었는데

조용한 파동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아

잎새 하나가 뚝 떨어졌다

 

예상하지 못했지만

늘 준비하고 있었던

내색하지 않았지만

늘 예견하고 있었던

그런 결말이었다

단절되어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당신이 떠난 후

같은 세상만이 맴돈다

둘러싼 경계선을 넘어보려하면

번개가 내리쳐 발목을 잡는다

익숙해 그 안쪽을 돌고 돈다

그들이 겹겹이 씌운 베일은 아늑하다

 

당신이 떠난 후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작은 보석들은 나날이 늘어

어느덧 방 하나를 가득 채웠고

치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빙 둘러 다른 방으로 향한다

 

나는 바다였다

물안개 자욱한 어둠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별빛도 달빛도 없어

그 아래 무엇이 깔려 있는지

알지 못했고 찾지 않았다

 

그러나 바다가 있었다

건들지 않았다

결코 요동치는 법이 없다

 폭풍이 몰아치는 날

소용돌이 한가운데

가만히 선 당신을 보았다

 

우리는 맞지 않았다

그 뿐이었다

적당하지 않았던 시간

적절하지 않았던 때

다시는 마주치지 않기를

이유를 알고 싶었다

 

당신이 떠난 후

세상을 감싸던 한 거풀이 벗겨졌고

새로운 환상이 씌워졌다

폭풍의 눈 

당신은 거기에 있었다

바람을 뚫고 나는 찾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