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어보기

보안단상(斷想)

개와 늑대의 시간...해커

<필자의 보안단상(斷想)은 말 그대로 보안에 관한생각나는 대로의 단편적인 생각입니다. 보안에 관해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작업입니다> 

 

'해질 녘 모든 사물이 붉게 물들고,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 이때는 선도 악도 모두 붉을 뿐이다.’

 

2007년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개와 늑대의 시간」 마지막회에서 주인공 이수현(이준기 분)의 마지막 나래이션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낮도 밤도 아닌, 경계가 모호한 시간을 뜻한다. 해질 녘과 해뜰 녘 빛이 사라지는 황혼의 시간과 다시 빛이 스며들기 시작하는 박명(薄明)의 시간대를 말한다. 프랑스 남부 지역 양치기들이 해질 녘, 멀리 보이는 것이 기르는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하기 힘든 어둑어둑한 시간을 이르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친구인지 ,적인지, 진실인지, 위선인지 구별하기 힘든, 모호한 순간이라는 의미로 표현되기도 한다. 내가 기르는 개인지 나를 해치려 오는 늑대인지 구분이 어려운 모호함은 우리 살아가는 일상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선거철이면 정치인들이 남발하는 표심잡기용 공약에서 지역발전, 국가발전이라는 의미심장한 비전의 선포, 그 이면엔 오로지 당선만을 기대하는, 자기자신의 영달을 위한 욕망이 더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그들의 말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경계가 모호한 개와 늑대의 시간과 닮았다. 공감은 사람과 사람 사이, 행복을 잇는 디딤돌 같은 말이지만, 거짓 공감으로 사람을 유인해 속이고 갈취하는 사기꾼들의 접근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어스름이 완전히 걷혀야 기르던 개인지 늑대인지 드러나듯, 사기꾼들도 그 실체가 드러나야 모호함이 비로소 걷힌다. 걷힌 모호함 뒤엔 기르던 개는 처참히 죽어 있고, 늑대가 있을 뿐이겠지만

 

이론과 분석은 사후적 판단이고 두려움 속에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아닌 하나의 지점에 정지된 영역이다. 살아 숨쉬는 긴장감 넘치는 현실에선 매 순간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모호함의 연속이다. 특히, 수많은 거래와 투자결정을 해야 하는 사업가는 한 순간의 결정으로 회사와 개인의 삶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 사업가들은 수없이 맞닥뜨리는 ‘모호함들’을 극복하며 나아간다.

 

해커…일반인들에겐 아직도 그리 밝게 다가오는 단어는 아니다. IT의 어두운 이면에서 개인이나 기업, 더 나아가 국가기관을 침투, 비밀을 유출하고 악의적으로 이익을 좇는 이미지로 일반인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이런 이미지를 갖게 된 배경엔 사이버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해커라는 이름이 언론에 많이 노출된 탓도 있을 것이다.

 

사실 해커는 정보보호 분야의 전방위에 필요한 핵심 자원이다.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은 사이버세계를 장악하기 위해 해커를 양성하고 고도의 해킹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해커는 범죄의 유혹을 따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사회안전을 보호하는 수호자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렇게 빛과 어둠을 동시에 가진 해커가 세상을 안전하게 지키는 빛을 선택하게 하는 제도도 있다. 바로 ‘버그바운티(Bug bounty)’같은.

 

버그바운티는 내부 보안 전문가가 아닌 외부에서 소프트웨어나 서비스에 대한 취약점을 찾아낸 사람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은 버그바운티를 통해 자사 제품과 서비스의 취약성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보안위협에 대응한 능력 향상을 꾀하고, 보안 취약점을 개선하여 더 안전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아 이익창출의 기회로 삼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버그바운티가 아직 사회 전반으로 확산돼 있지 않다. 공기관과 일부 보안기업 그리고 대기업에서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다수 기업은 버그바운티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소프트웨어의 역설계 문제, 약관위반 문제 그리고 지나친 경쟁으로 불법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걱정으로 기업들이 내는 반대 목소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버그바운티를 통해 보안취약점 개선과 품질향상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순기능도 고려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누구나 자신의 재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해커들이 자유롭게 능력을 펼치고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지 못한다면, 자기가 설 무대를 잃은 그들은 방패가 아닌 창을 선택할 지도 모른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새벽녘과 해질녘의 시간이다. 태양을 기꺼이 맞이하는 새벽녘을 택할 것인지 어둠을 기다리는 황혼을 선택할 것인지는 기업과 정부의 몫이다.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시간, 나에게 다가오는 저 그림자가 나의 행복과 우리사회의 안전을 지켜 줄 충직한 파수견으로 다가올 것인지, 안녕과 질서를 해할 늑대로 다가올 것인지는 그 시간을 맞이 할 우리의 준비가 얼마나 성숙되어 있는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글 이어보기

서른.

전 직장상사를 저주하며

나에게 형이라 불리고 싶지만

깍듯한 예의를 중시하며

공과사를 구분하고 싶어하는

감정기복이 제멋대로인

전 회사, ​직장 상사 'ㅈ'

 

지난 30개월 간 나를 향해

날을 세운 그의 검은 채찍은

날이 흐리면 무릎이 쑤시듯

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다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

게으르다. 멍청하다. 모자르다. 능력이 그것밖에. 넌 안되겠다.

이런 말을 하기도 싫고, 내게 이득이 되는 것이 없음에도

널 자극해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하는 말이다.

모욕, 모멸감을 느껴 자존감이 무너진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말이다.

그러므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의 문제다.

욕설과 폭력은 목적에 따라, 원인에 따라, 정당화 될 수 있다.

(직장 내 선후배 관계에서 이러한 논리가 옳다고 내세우는건 이해하기 어렵다)

 

모름은 죄다. 발전해야한다.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휴일에도, 멈춰있어서는 안된다.

명절에 쉬는 동안 회사를 위해 어떤 생각을 하고, 공부를 했는지 궁금하다.

월급에는 휴일수당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고있나.

그 돈은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쉬면서도 회사 생각을 하라고 주는 것이다.

 

노력을 했더라도 결과물이 좋지 못하면 노력을 잘못한 것이다.

노력을 잘해야지 열심히해서는 소용이 없다.

노력을 했는데 결과가 없다는 것은 패배자들의 핑계와 변명이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도 좋았던 것이고,

결과가 나쁘면 과정도 나빴던 것이다.

 

저녁 6시에 일을 주더라도

내일 아침 9시에 보고하겠다는 말을 듣고 싶다.

내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하고 싶어서 해야 한다.

 

회사가 돈을 그냥 주는 게 아니다.

너가 돈을 받는 만큼 일을 한다고 생각하냐.

너가 받는 돈은 내가 주는 것이다.

 

네가 나가면 어디 갈 수 있을 것 같으냐

3년은 채워야 경력으로 받아주지

지금 그걸로는 어림도 없다.

 

못버티고 나가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다

그 사람들의 인성이 잘못되었다

저런 사람들은 어딜가서도 안될 것이다
왕따는 당하는 사람이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남의 물건을 뺴앗는 아이는 얼마나 갖고 싶어서 그랬겠어

(학창시절 자신이 왕따시키고, 갈취한 이야기를 영웅담처럼 이야기하며 미화시킨다)

 

점심시간에 밥먹으면서 왜 말을 안하는거야

점심먹고나서 혼자 있을 때 말안하고 쉬면되지

직원들이 다 모이는 게 점심시간밖에 없는데

굳이 꼭 이 시간에 말을 안해야겠냐

 

(문구점에서 업무에 필요한 포스트잇을 구매하려는데)

그거 네 돈으로 사는 건 아깝니?

 

여직원들에게 스킨쉽한 것은 의도한 것이 아니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으며, 앞으로 하지 않겠다.

 

목적에 따라 여러명의 여자를 몰래 만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예를들면 공부 잘하고 외모가 떨어지는 여자,

공부 못하고 외모가 이상형인 여자,

그럭저럭인데 돈이 많은 여자

세 여자를 만나면 각 사람마다 뛰어난 것에서 만족을 얻고,

부족한 것을 강요하지 않아도 되니 서로 스트레스 안받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팀장이 여직원을 포함해 모두 있는 자리에서

어떤 목적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했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

 

직장이 아닌 대학선후배로 만났으면 나와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며 착각하던 '그'는
'왜' 사람들이 떠나가는지 깨닫지 못하고 남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했다

 

이 글을 읽는다면 또 아니라고 하겠지. 양쪽 의견을 다 들어봐야 한다며 손바닥 뒤집듯 태세전환하겠지.

말과 행동이 모순으로 가득한 모습으로 사람이 먼저라고 하겠지.

하고 싶다던 입양은 그 아이가 더 큰 상처를 받지 않도록 제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속승진한 36살 젊은 팀장의 '능력'과 '간사함'은

회사의 성장을 바라는 대표의 눈만 가렸을 뿐

추악하고 역겨운 '인성'은 덮을 수 없었다


한 조직의 막내로

'그'와 30개월이란 시간을 보내며

보이지 않던 자본주의로 빚어진 사회를

온 몸으로 또렷히 보고, 느끼고, 배웠다.

 

 

사무치게 아팠고

아직 가슴이 미어온다

 

내가 그에게 내리는 벌은

그에게만은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던 것과

그보다 더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를 살며 행복하다.

 

인과응보.

달게 받기를.

불행하기를.

글 이어보기

보안단상(斷想)

그대의 죄는 사유(思惟) 불능

칼 아돌프 아이히만’ (Karl Adolf Eichmann).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스의 친위대 장교다. 2차 세계대전 중 유럽 각지에 있는 유대인 체포와 강제이주를 주도했으며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의 중심에 있었던 나치 전범이다.  패전 후 아르헨티나로 도주해 살아오다 1961년 5월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끈질긴 추격 끝에 체포되어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특별법정에 섰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손으로 단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으며, 지시받은 명령을 충실하게 잘 수행한 관리일였을뿐 이라고 항변한다. 아이히만 그는 실제 준법정신이 강한 모범시민이었고 맡은 바 임무를 잘 해 내는 성실하고 유능한 정부관리였으며, 가정에서는 따뜻하고 애정있는 남편이자 아이들에겐 자상한 건실한 가장이었다.  8개월 간의 지루한 재판 끝에 아이히만은 결국 사형 선고를 받았다.

재판을 지켜보던 독일 태생의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그의 죄는 ‘사유의 불능’, ‘생각의 무능’이라고 단정한다. 아이히만은 자기에게 주어진 직업적 사명을 다했다. 그러나 타인의 입장에서 사유하지 못했고 부당한 지시를 거부조차 할 줄 모르는 그저 기계 같은 사유불능의 직업인이었을 뿐이다.

악랄하기 짝이없는 학살을 주도한 전범 아이히만의 스케일에는 아쉽게도 못 미치지만,  사유불능의 공통점을 가진 범죄자들이 있다. 바로 산업기술 유출사범들이다.

작년 말 경찰청(외사국)은 전기전자·정보통신 등 국가핵심기술, 중요 산업기술유출 행위, 영업비밀 침해 행위 등 산업기술 유출범죄 기획수사를 추진한 결과, 총 90건 223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국내 산업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다 적발된 기술유출사범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산업기술 유출사범은 기업은 물론 국가의 이익을 해친 중대한 범죄자다.

 

이젠 ‘기술유출사범’이라는 직함을 가진 그들.

애초엔 그들도 정상적이며 유능한 직업인들이었을 게다. 적어도 돈과 그릇된 욕망을 위해 양심을 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착실한 가장이었을 것이고 사교모임에서는 인기 있는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재 받는 연봉의 2~5배를 제시하는 해외 기업의 유혹을 받을 정도면 꽤 괜찮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소위 말하는 스펙 좋은 인재들이다. 자기 자신의 욕망을 위해 열심히 일에 몰두하고 현재보다 더 나은 직위에 올라가고 더 좋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찾는 노력까지는 충분히 이해된다. 직업인으로서 당연히 현실적으로 그래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사고는 자기 욕망의 충족이라는 지점에서 불행하게도 멈춰 버렸고,  그렇게 악은 시작됐다.

그들의 행위가 자신을 신뢰하던 동료와 회사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사는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까지 사고하기엔 그들은 인간으로써 당연히 갖춰야 하는 교양이 부족했다.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너무 흔해, 진부해 보이기까지 하는 사자성어를 모를 리 없는 그들은 머리로만 알고 있었지 한 번도 그 말을 성찰해보지 못한 변변치 않은 고스펙 무뇌아들이다.

아무리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만큼 달콤한 유혹이 있더라도 국가든 회사든 가족이든 친구이든  피해를 줄 수 있다면  또는 신뢰를 저버림으로써 상처를 줄 수 있다면 용기있게 부정한 이익의 유혹을 떨치고 ‘옳음’을 선택하고 실천하지 못한 점   그리고 개인의 욕망이라는 협소함을 넘어 최소한의 공동체적 가치를 스스로 묻지 않은 점은 타인의 입장에서 사유하지 못했던 아이히만의 철저한 ‘생각하기의 무능성’, 즉 ‘사유의 불능’의 또 다른 이름이다.

기술유출범죄뿐 아니라 모든 범죄행위는 욕망을 가진 인간이 존재하는 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범죄박멸을 외치는 것보다 함께 공존하며 잘 관리하는 것이 현명하다.  공존하며 관리하는 책임. 그 끝에 바로 보안인들이 있다. 보안은 사회안녕을 보호하는 공공재로서의 성격도 가진다. 보안인들은 당신들의 일이 갖는 사회공동체적 의미를 스스로 끊임없이 물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무사유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보안인들이여 그대는 사유하고 있는가. 

글 이어보기

보안단상(斷想)

탐정과 클리셰

모처럼 각종 매체의 ‘탐정’ 또는 ‘민간조사’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보고 읽어봤다. 20년 가까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시중에 떠도는 탐정도입에 관한 글들을 보며 떠오른 단어 하나가 있다. 바로 클리셰(Cliché). 진부하거나 상투적인 표현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탐정제도 도입이 어려운 이유가 기관 간에 헤게모니 싸움 때문이라든지, 일반국민의 개인정보 침해가능성, 그리고 빈부격차에 따른 정보 편중, 우리 입법체계와 맞지 않는다는 등의 부정적 의견들도 이젠 ‘지루하다’ 치안서비스의 보완 기능을 함으로서 사회안전이 강화되고 더 나아가 국가안보의 한 축으로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찬란한 선언도 휘날리지만. 이 또한‘상투적이다.’

여러 자료에서 발견되는 탐정의 업무범위는 어마무시하다. 산업스파이 조사, 회계부정과 기업 내부 부정행위 감시 및 추적, 기업정보 수집과 글로벌 기업 간 거래 환경에서의 해외 리스크 조사, 기업 간 인수합병 지원과 해외도피자금 및 도피사범 추적 등등. 화려하고 눈부시다. 그런데 필자와 같은 일반인의 입장에선 권투선수가 유도·태권도 시합을 동시에 다 뛰는 모양으로 밖에 안 보인다.

이젠 다소 진부해 보이고 상투적인 이 같은 주장과 선언 그리고 도입도 되기 전에 저 높은 하늘을 나는 꿈은 잠시 가슴에 묻어두고, 사회 저변(低邊)과 일반대중에 시선을 두었으면 한다. 추상적이고 상식적인 탐정도입의 주장들과 찬란한 역할의 나열은 오히려 탐정제도 도입 홍보에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필자 같은 일반인들은 경제협력기구에 탐정이 없는 유일한 나라라든지 하는 것에 별 무관심이다. 탐정제도가 도입되면 ‘내가 얼마나 편할 것인가’ 같은 지극히 세속적인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제 탐정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입장에선 탐정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다른 전문조사 직역(職域)과 어떤 차별점이 있고, 어떤 편익이 구체적으로 우리네 삶에 다가오는지 같은 기본적 고민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위에 열거한 업무역할들은 그야말로 미국, 영국, 일본 등 탐정 선진국들의 내로라하는 기업들 이야기다. 물론 앞으로 우리나라도 그런 회사를 만들어야 하고 그럴 능력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미국·일본 같은 탐정이 정착된 나라에서도 사회 저변의 탐정업체들은 민·형사상 증거 수집 등 변호사 위탁업무와 더불어 현재 우리나라의 심부름센터에서 하는 불륜 조사서비스와 같은 업무도 대중적이라는 것은 인터넷 검색으로도 알 수 있다. 위에서 열거한 어마어마한 서비스들 중엔 외국의 경우에도 해당분야 전문가를 고용해 쓰는 업무이지, 그 전부가 탐정의 업무는 아닐 것이다. 물론 홍보하는 과정에서 그런 것이라 해도, 이미 전문분야로서 자리잡은 분야까지 탐정영역에 포함하는 것은, 탐정제도 도입 논의 과정에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말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그런 업무는 굳이 탐정제도 도입을 안 해도 각 분야의 조사전문가들이 충분히 더 잘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간 발의된 입법안에 제시된 업무영역은 비교적 현실적이다. 그간의 법안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미아·실종자 가출인 소재조사. 의뢰인의 권리보호와 피해사실과 관련한 사실조사, 변호사 의뢰사건의 자료수집 등이 탐정의 업무영역으로 제시되어 왔다. 법안을 살펴보면 결국탐정의 업무영역은 결국 사실조사 및 증거수집이다. 사실조사와 증거수집은 공기관의 정보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접근은 허용되어야 용이하다. 그러나 공기관이 가지는 개인정보를 비롯한 각종 정보는 일반인들의 제한없는 열람은 허용치 않는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정보 접근을 허용한다면 탐정업자에게 어떤 조건과 부담을 지움으로써 개인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불법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지 등의 구체적인 논의가 이젠 필요하다. 이미 진부해진 찬반론의 견고한 대립 이유들과 다른 나라는 이렇더라. 하는 한 걸음도 전진 못하는 논의로는 일반국민의 관심을 얻기 어렵다.

탐정제도가 도입되면 우리나라에도 셜록 홈즈가 탄생할 것이라고 언론매체에서 말한다. 셜록홈즈는 어떤 장애에도 핑계를 되지 않았다. 사실조사라는 임무에 충실했고 정확한 답을 냈을 뿐이다. 이론에 갇히지 않고 탐정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에 명탐정인 것이다. 탐정제도가 있든 없든 증거와 사실에 충실했을 뿐이다. 대중을 향해 탐정의 고유한 역할에 관한 세밀하고 진지한 제안을 기대해본다. 생뚱맞게 프랑스어 단어 ‘클리셰’가 떠오르지 않게 말이다.

글 이어보기

매일을 적다

즉흥과 책임 사이

자신의 의견을 참 명확하게 표현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나는 의견은 커녕 내가 진짜 이것을 왜 좋아하는지, 저건 어째서 내것이 된건지, 이 상황에 대한 내견해는 어떤지 항상 두루뭉실이다. 물론, 모르겠다는건 아니다. 말그대로 명확하지 않다는거다. 때에 따라서 바뀔 수도 있고, 무언가의 영향을 받을 때도 있다. 대부분은 내 앞에 앉아 이야기 나누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바뀐다. 한심한가?
예전에 봤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라는 오래된 영화를 보며 나와 너무 닮아,나같은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고 안심했던 기억이 난다. 오랜 친구인 핸리는 샐리에게 남자친구가 바뀔 때마다 샐리가 좋아하는 달걀요리 형태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그러면서 샐리가 진짜 좋아하는 달걀요리가 뭔지 묻는 장면이 있었다.
오마주일까? 몇년전 인기있던 '응답하라1988'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동룡이가 덕선이에게
고구마 취향은 그렇게 분명한데, 좋아하는 남자취향은 없는거냐'고.
덕선이와 비슷하고 샐리와 비슷한 명확하지않은 내 생각을 변명하느라, 난 굉장히 생각이 많고 감성적이기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사실은 묻는 사람도 없었기에 자문자답이었지만. 자문자답할 만큼이나 나의 우유부단함이 싫었다.
하지만, 엄연히 감성과 불명확함은 아주 다른 종류이다. 비슷하거나 가깝지도 않다.
불명확해서 즉흥적이다. 살아온 내내 즉흥적이라 후회도 즉흥적이었다. 즉흥적인 사건들의 결말은 늘 즉흥적인 후회와 함께 끝이 난다.
책임질 수 없는 불명확함. 어쩌면 즉흥적이란건 책임감이 없다는 말로 귀결될런지도 모르겠다. 어느 밤 하도 밤이 예뻐 그리운 사람도 없으면서 억지로 만들어낸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다. 단 한번의 망설임도 없이 마지막 인사까지 끝내고 내 정겨운 편지지를 고이 접고 잠이 들었다. 이른 아침 다시 본 편지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버렸다. 무슨 생각이었던걸까? 누구에게 하고싶은 말이었던걸까? 다만 다행인건 문자메세지나 SNS가 아닌 편지라서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때로는 내 아날로그식 사고방식이 고마운 면이 있다고.
하지만, 어쩌랴. 이게 나의 모습이고 역사속의 현자들은 그런 자신을 사랑하랬다. 어떤 방식으로 사랑해야하는게 있는것이 아니라 그냥 사랑하라고 했다. 사랑하자. 내 즉흥을. 그리고 후회하자. 늘 삶의 아름다운 장면들은 이 즉흥의 결과물들이었으니.
세상은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는 우연처럼 계획보다는 무작위적인 순간을 통해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있지않은가. 난 나대로 잘살아가는 것 그것이 날 사랑하는 것이라 믿으며 나아간다.

#책임감 #에세이 #일상 #느낌 #즉흥 #명확함

글 이어보기

보안단상(斷想)

직감(直感)과 보안경영

<필자의 보안단상(斷想)은 말 그대로 보안에 관한 생각나는 대로의 단편적인 생각입니다. 보안에 관해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 보려는 작업입니다.

 

경영의 세계는 엄혹하다. 합리와 비합리의 경계가 모호하다. 잔잔한 바다를 가르는 배는 '순항'을 희망하지만, 바다는 언제나 거친 비바람을 품고 있다. 경영의 바다도 그렇다. 경영은 혼자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예상치 못한 바깥 사정으로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교통사고로 죽는 것이 가장 ‘부조리’한 것이라고 했던 카뮈의 말처럼 이유도 모른 채 어느 순간 나락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위험에 빠진 경영은 판단의 시간이 부족하다. 막막하고 아연한 감정이 일렁인다. 경영자에겐 혼돈 속에 명운을 건 결단이 필요할 뿐이다.
 
실패한 경영의 배후에 관해 지식인들은, 폭풍에 맞선 어부들의 사투와 같았을, 위기에 빠진 경영자의 목숨을 건 숨가빴을 시간을 두고 철 지난 조언을 하기도 한다. 경영전문가들의 현명한 조언이 담긴 책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그러나 때때로 현실에 반영되지 못한 경영서적은 서점과 도서관의 가득 찬 책장 한 켠에서 언제 신간에 밀려 창고로 혹은 폐지로 나갈지 모르는 처지에 놓이곤 한다. 인간은 우매하다. 경영학을 십수 년을 공부하고도 자신이 실제 경영의 세계에 발딛여 놓으면 대부분 물속에 처음 들어간 것처럼 허우적거린다. 실제 경영의 세계는 위험투성이다.
 
경영의 현장에서 예기치 못하게 맞닥뜨린 생존의 갈림길에서 경영자의 직감은 성패를 좌우한다. 가만히 내면을 들여다보라. 쉴 새 없이 회의를 하고 차가운 이성을 가진 머리로 정확한 판단을 한다고 자부하지만, 의식의 배후엔 직감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눈치 채지 못한다.
 
경영은 분석과 같은 차가운 이성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가슴이 이끄는 감정의 세계이기도 하다. 과반수가 지배하는 국회가 아닌 이상, 치열한 경영현장에선 경영자의 직감과 통찰이 지배한다. 그 직감의 정확도가 경영의 백미(白眉)다. 경영을 잘하려면 결국 오답을 피해나갈 수 있는 본능적인 직감과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의 배양이 필수다. 그러므로 어쨌거나 직감의 정확도를 올려야 한다.

 직관은 '사물이나 현상을 접하였을 때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아니하고 진상을 곧바로 느껴 앎. 또는 그런 감각' 이다. '내 느낌은 이렇다', '내가 보기엔 그 사람의 의도는 이런 것 같아'  또 해야 할 일을 앞두고, 할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 우리들은 ‘감’에 의존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또 아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조언한대로 판단을 해 본 경험도 있을 것이다.  직감이란  곧 '감각'이다. 좋은 감각은 타고 난다. 결정의 망설임 앞에 성공의 가능성이 높은 직감적인 결정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 전에서 '직감적인 슛'을 성공시켜 승패를 가른 박지성 선수에게 물어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타고난 직감능력이 없다면 훈련하는 수밖에 없다. 훈련도 하나의 경험이고  오랜 경험은 습관이 된다. 그럼 어떤 훈련으로 좋은 직감을 가질 수 있을까. 탁월한 직감은 선입견이나 섣부른 예단이 아니다.좋은 직감을 가지려면 지금하는 자기 직감이 선입견이 아닌지 의심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같은 강이라도, 언제나 똑같은 물살을 가진 강물이 없듯이, 언제 어디서나 같은 결과를 내는 동일한 경험은 거의 없다. 사람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다. 지역이라면 기온도 다르고 풍습도 다르다.  사람이 가진 인식은 객관적이기 어렵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특정 상황의 조건에 자기가 가진 경험과 지식을 갖다 붙인다. 이런 마음이 일어난다면, 지금 일어난 '직감'을 잠시 멈추고 자기 경험이 상황에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확보돼 있는지 스스로 되물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생각과 반대인 의견을 배척하기 보다 수용하고 공부해야 한다. 자기 생각이 선입견이 아닌지 또는 경험을 과신하는 건 아닌지 살피고 다른 이가 가진 이견을 되짚어 보는 노력이 정확도 높은 탁월한 직감으로 이끄는 방편이다. '바다는 언제나 거친 비바람을 품고 있다.'  지금은 순항이지만, 언제 올 지 모를는 거친 비바람을 예비하며 엄혹한 경영 현장의 한 가운데 있어야 하는 보안전문가들에게 순도 높은 '직감'은 필수 요소다.

 

글 이어보기

안녕, 어떤 여행

[안녕,어떤여행] D+08 팀 로드리고 in 우유니

 

지난번보다는 나아진 컨디션으로 두 번째 선라이즈 투어를 나선다. 오아시스 여행사 앞에는 한국인들이 바글바글한데, 나는 호다카 앞에서 일본인들 사이에 조용히 서있었다. 오아시스와 달리 호다카는 장화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 보라색 헌트 부츠를 골랐다. 마리노와 아사코가 그나마 친근하게 말을 걸어주었는데, 이 친구들은 상태가 조금 독특(?)했다. 흥이 지나치게 넘친다고 할까, 아무튼 내가 알던 일본인들 특유의 분위기와는 상당히 달랐다. 그래도 아사코가 영어로 계속 통역을 해줘서 그 그룹에서 무사히 투어를 진행할 수 있었다.

 

스타라이트 동안 몇 장의 그룹 포토를 찍고 일출까지는 각자 시간을 보냈다. 사진을 찍어달란 말이 쉽게 나오질 않아 눈치를 보다 몇 장 찍고 너무 추워 차 안에 머물렀다. 그리고 호다카의 가이드(그의 이름도 모른다)는 아예 대놓고 내내 차 안에서 잠을 잤다. 어제 우리에게 항의를 당한(?) 가이드는 그래도 밖에서 서성이며 우리가 해달라는 건 거의 다 해주었는데, 좀 미안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별로 불만이 없는 것 같은 걸 보면, 우리가 너무 유별난 건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해가 떠올랐고, 가이드가 나와 드디어 몇 장의 그룹 포토를 찍어주었다. 어제와는 달리, 조금은 외로운 기분이었다. 여행지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건 썩 유쾌하지 않은 일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이곳, 우유니에서 만큼은 예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말이 통해야 합도 잘 맞고 예쁜 사진들과 즐거운 수다들이 오갈 수 있는 것 같다. 마지막 선셋 투어는 그냥 오아시스에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가이드보단 팀원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물론 6명의 일본인 친구들은 친절하고 상냥했지만, 어제처럼 즐겁지는 않았다. 그래도 외국인들과 다른 여행사의 투어를 해본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마지막으로 선셋 투어를 한 번 더 할 생각이었는데, 결국 오아시스 여행사로 돌아가게 되었다. 마침 선셋 투어 빈자리가 딱 1개 남아있어, 지나가던 한국인 여자 둘에게 펜 좀 빌려 달라니 뒤따라 오던 남자들에게 있을 거라고 가르쳐줬다. 펜을 빌려 이름을 적으니, 그녀들이 자기들도 그 투어를 한다고 해 오후에 만나자고 하고 헤어졌다. 9시에 찾으러 오라던 세탁물을 조금 일찍 찾으러 갔다. 한참 벨을 눌러도 나오지 않아 결국 2층까지 올라가 재촉해서 세탁물을 받았다. 조금 깨끗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소금물 흔적은 깨끗이 사라졌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나오니 아침이 준비되었다고 한다. 숙소의 아침 식사는 꽤 맛있다. 매번 싹싹 비우게 된다. 그러니까 고산병에는 과식이 금물인데...! 그리고 선셋 투어 전까지 뒤죽박죽이 된 잠을 청한다. 오후 1시쯤 일어나 씻고 오아시스 회사에 결제를 하러 갔다. 원래 빈칸에 이름을 적고 바로 결제를 해야 예약이 확정되는데, 아침엔 문을 열지 않아 이름만 적어둔 터였다. 혹시나 그 사이 예약이 취소되진 않았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여행사로 갔더니, 마침 한국인 세 명과 여행사의 남녀 사장, 그리고 가이드로 추정되는 인물이 한창 싸우고 있었다. (이제는 으레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가만히 듣다 보니, 내가 하려는 투어 얘긴 거 같았다. 원래 하기로 되어있던 인원 중 4명이 취소를 해서 우리 팀이 분해되었다고. 그래서 내가 바로 마지막 이름의 주인공이라고 했더니 그럼 두 명의 원래 우리 팀에 한 명의 한국인 여자, 그리고 나까지 해서 최소 2명만 더 구해오면 로드리고가 가이드를 해주느냐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한국인 커플(당시엔 커플임 줄 알았다)이 내게 가이드가 로드리고인 줄 알고 예약했냐고 묻길래, 그건 아니라고 했더니 무조건 로드리고로 알고 했다고 하라고 했다(!) 사실 아침에 펜을 빌려준 남자분들이 로메오라고 했지만, 일단 나도 로드리고로 우기고 본다. 그리고 나는 알 수 없는 대화들이 한참 오간 다음, 결론은 왜인지 알 수 없지만 나만 결제하면 원래 이름 적힌 대로 7명이 로드리고 팀으로 진행하는 것이었다. 로드리고는 이 여행사의 투톱으로 꼽히는 가이드인데, 그 자리에 있던 인물이 바로 로드리고였다. 나는 얼른 결제를 하고 예약을 확정했다. 와인과 치즈가 포함되어 다른 팀보다 비싼 1인 140볼. 하지만 가이드 로드리고가 확정이라면 노 프라블럼! 우리 팀에 합류하고 싶어 했던 다른 한 명의 여자분에겐 미안하지만, 어쨌든 아침에 펜을 빌려서라도 이름을 적길 잘했다. 한 번 가이드가 바뀐 적이 있기 때문에 몇 번이나 로드리고에게 "좀 있다 너랑 같이 가는 거 맞지?"라고 확인했다. 커플인 줄 알았던 한국인 남녀, 봉균과 혜인은 그냥 동행 중이었고 키친이 있는 숙소를 찾고 있었다. 내게 숙소가 어디냐고 물었지만, 우리 숙소는 아마 우유니에서 제일 비싼 숙소일 것이어서 얼른 키친이 없다고 했다. 봉균, 혜인과 헤어져 나는 점심을 먹기로 했다. 어제부터 먹고 싶었던 크림 파스타를 먹었다. 맛은, 없었다. 숙소에 들어 리모컨을 챙기고 감기약을 먹었다. 약을 먹지 않으면 콧물이 멈추질 않는다.

 

시간을 맞춰 오아시스 앞으로 가니 좀 전에 만났던 얼굴들이 다 모여있었다. 앳된 얼굴의 한국인 남자 둘과 아침에 만난 여자 둘, 봉균과 혜인, 그리고 나까지 일곱이다. 한국인 남자 둘은 부산에서 온 스물세 살 애기들이었는데 (사실 누나라기 보단 이모가 맞지 않을까 싶은) 정말로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아침에 내가 펜을 빌릴 수 있도록 도와준 여자들은 자매라고, 언니 선영은 나와 동갑이고 동생 난희는 서른 살. 이렇게 셋만 유일한 삼십대다. 두 사람은 회사를 휴직하고 여행을 왔다고 했다. (좋은 회사들이다! 참, 난희가 다니는 회사는 FNC였다) 우유니 첫째 날을 제외하곤 계속 이렇게 왕언니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귀여운 막내들, 상남과 도훈. (도훈은 카메라가 없고 상남은 휴대폰이 없었다, 사실 상남은 카메라도 잃어버려 여행자로부터 고프로를 하나 샀다) 우리는 유난히 금세 친해져서 첫 시작부터 왠지 느낌이 좋았다.

 

로드리고는 그나마 영어를 할 줄 아는 가이드라서 정말 좋았다! 스물여섯의 이 청년은 대학에서 투어리즘을 전공하고 있어서 데이투어는 할 수 없다고 했다. (뭔가 귀엽다) 우리가 로드리고! 로드리고! 를 외칠 때마다 부끄러워하는 게 얼마나 귀여운지, 누나는 너한테 완전 반했어...♥︎

 

사막에 접어들자 로드리고는 지프 지붕 위에 올라가 보겠냐고 물었다. 당연히 우리는 좋아서 냉큼 봉균, 혜인, 선영이 먼저 올라갔다. 그런데 한참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로드리고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저기, 지금 얘 조는 거 같은데...?"라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속도가 높아졌고 나는 얼른 로드리고를 깨웠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휴, 그런데 왜 화나거나 무섭지 않은지! 그저 신나기만 했다. 나도 지붕 위에 올라가 봤는데, 너무너무 신났다!

 

마른 우유니에서 로드리고는 열정을 다해 동영상을 찍어주었고 우리는 열심히 시키는 대로 했다. 다들 합이 척척 맞아서 엄청 신났다. 중간에 로드리고에게 고맙다고 팁을 모아서 줬다. 물 찬 우유니에서도 로드리고의 열정은 끝이 없어, 결국 우리가 지치고 말았다. 말이 필요 없는, 그저 사진이 모든 걸 말해주는 아름다운 순간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다시 마른 우유니에 멈춰, 별빛 아래서 와인과 치즈를 먹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밤이어도 되는 걸까! 내일 우유니를 떠나는데, 마지막 투어가 이렇게 만족스러워 정말 다행이었다.

 

로드리고가 또 졸지 않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로드리고는 나중에 대학을 졸업하면 호텔이나 투어 에이전시를 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나는 이미 너의 팬이 이렇게 많으니, 너는 뭘 하든 다 잘 될 거라고 말해줬다. 로드리고는 만약에 허니문으로 우유니에 오면 자기가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팀을 만나서 기쁘다고도 했다. 그는 우유니에서 나고 자랐는데, 가족들은 지금 다른 도시에 있고 우유니에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여자 친구는 없냐고 물으니, 너무 바빠서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차가 여자 친구라는 뻔한 멘트를 날려서, 그러지 말라고 말해줬다. 도로도 없고 불빛도 없는 사막에서 어떻게 길을 찾은 지 궁금했는데, 자 멀리 있는 도시의 불빛과 소금 호텔의 불빛을 등대 삼아 운전을 하는 거라고 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아쉽게도 도착하고 말았다. 우리는 조금 더 돈을 모아 팁을 더 줬다. 10볼이 전혀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아니, 우리가 느낀 기분에 비하면 모자랄 정도였다. 나는 일을 할 때, 저렇게 열심히 한 적이 있었을까? 내가 정말 하고 싶어서 일을 하면 주변에서도 분명 그걸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로드리고는 정말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게 절로 느껴져 왠지 자극이 되었다.

 

다시 선라이즈를 가야 한다는 로드리고와 헤어지고 우리끼리 술 한 잔 하기로 했다. 시계탑 근처 식당에 들어가 피자와 맥주를 시키고 상남과 도훈이 소주를 가지고 와, 우유니에서 소맥을 마셨다(!) 나는 먹고 있는 약이 한 보따리라서 술은 조금만 마셨다. 12시가 조금 넘어, 술이 약한 상남과 도훈이 얼른 자리를 떠나 나머지도 헤어졌다. 일정이 맞는다면, 산페드로 드 아타카마에서도 만나자고 했다. 오랜만에 정상적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글 이어보기

안녕, 어떤 여행

[안녕,어떤여행] D+07 우유니의 아버지?

 

2시간 남짓 자고 일어나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선라이즈 투어를 하러 뛰쳐나갔다. 고산병 증상인지 알 수 없지만 조금만 빨리 걸으면 오른쪽 옆구리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혹시 맹장염 같은 건 아니겠지?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든다. (다행히 고산지대에서 내려오니 괜찮다) 숙소는 컨디션이 매우 좋은데, 다만 투어 회사들이 있는 거리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서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3시를 1분 앞두고 도착해 겨우 지프에 올라탔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는데 아무도 반응이 없다. 시무룩한 채로 눈을 감고 있는다. 중간에 내려서 장화를 갈아 신는데, 그제야 다들 인사를 나눈다. 첫인상과는 달리 모두 좋은 사람들 같았다.

 

다소 무리한 일정임에도 이 투어를 신청한 건 가이드가 우유니의 아버지(?)라는 빅토르라고 해서인데, 나랑 같은 이유로 같이 신청한 정음은 가이드가 완전 1개월 차 비기너로 바뀌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다행히 정음이 우유니에서 벌써 4일이나 머문 터라 우리끼리 별 사진을 찍으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지만, 가이드는 딱히 한 게 없었다. 혜원과 서영이 선라이즈는 정말 춥다고 경고를 했었는데, 와! 정말로 추워서 죽을 것 같았다. 예진과 둘이 부둥켜안고 바들바들 떨었다. 팀원 중에 스페인어를 잘하는 친구가 있어서 좋았다. 유난히 언어의 벽을 절감하는 여행이다.

 

정말로 예쁜 우유니의 하늘을 봤고 기분 좋게 돌아오는 길, 재원이 SD카드를 좀 달라고 했다. 알다시피 SD카드란 친구들은 워낙 예민해서 잠시 망설였다. 순간 머리 속에 오류가 스쳐갔는데, 아마도 그게 내 예지력이 발동된 게 아니었을까? 케이스를 벗기고 있는데 "꺼내기 힘들어요?"라고 묻길래 "네, 좀" 하고 완곡한 거절을 했으나 결국 나는 그에게 SD카드를 건넸다. 그는 리더기로 자신의 휴대폰에 연결해보더니 "안 되네" 하고 내게 다시 돌려줬지만, 이미 그 카드는 포맷 오류가 생긴 후였다. 하........ 화내면 안 돼. 나는 여기서 유일한 30대니까. 우유니 사진은 다른 사람들도 찍었고 나는 선셋과 선라이즈를 한 번씩 더 할 생각이라 타격이 덜하지만 라파즈의 이틀 치가 그 안에 있었다. 처마 화는 못 내고 팀원들에게 애써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재원은 몹시 당황하며 미안해했다. (그래, 미안해야 마땅하다) 사진을 빨리 받고 싶었다면 와이파이로 연결해서 휴대폰으로 건네줄 수 있었는데, 하... 숙소에 돌아와 컴퓨터로 시도해도 마찬가지여서 여러 번 시도하면 복구가 더 어려워진다고 해서 고이 케이스에 담아 캐리어 깊숙이에 넣어두었다. 5월 중순까지 그 사진들의 운명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투어가 끝나고 가이드가 바뀐 것을 (또) 항의하러 갔다. 정음이 몹시 화를 냈고 스페인어를 잘하는 형근이 힘을 보탰다. 결국 가이드까지 불러와 삼자대면을 했으나, 나는 알아들을 수 없어서 답답했다.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예진에게 살짝 물어보니 가이드와 회사는 되려 큰 소리를 치고 있다고 했다. 나중에 들으니 정음이 빅토르나 로드리고 같은 가이드를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고 했더니 우리 가이드(난 이름도 모른다)는 자기가 그들만큼 일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쳤다고 했다. 결국 우리의 항의는 10볼씩 받고 마무리됐고 이틀 연속 '먹고 떨어져'를 경험하고 나니 정말 정이 떨어져 호다카 투어 회사에 가서 6명의 일본인과 투어를 신청했다.

 

일단은 졸려서 낮잠을 잤고 오후에 일어나 런드리를 맡기고 점심을 먹을 겸 밖으로 나갔다. 우유니는 보통 투어를 하기 위해 머무는 마을이라 마을 자체는 별로 볼 게 없다. 그래도 천천히 걸으며 둘러본 마을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맑고 건조한 날씨에 파란 하늘이 있어서 싫어할 수가 없는 마을이긴 했다. 다만, 과장 좀 해서 늑대 같은 길멍멍이들과 흙먼지, 고산 지대라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는 것만 빼면.

 

2박 3일 투어에서 첫째 날 일정은 덥다고 반바지를 입기를 권해서 반바지를 하나 사려고 했는데, 겨우 찾은 한 곳에선 정말 촌스러운 스팽글이 달린 반바지가 150볼이나 해서 포기했다. (그리고 첫째 날은 진짜 추웠다) 목이 말라 노점에서 주스를 한 잔 사 먹었다. 다른 사람들은 파르페를 주문했는데 얼마나 예쁘게 만들어 주던지! 내가 단 걸 좋아했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 같다. 지나가다 신라면을 파는 식당을 발견해 몸도 안 좋은 터라 보양식(?)으로 신라면을 먹었다. 어지간 해선 한국 음식을 찾지 않는데. 6시 조금 넘어 짧은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우유니에서는 모든 것이 투어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틈이 날 때마다 자 둬야만 한다. 다시 새벽 3시 선라이즈 투어를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글 이어보기

보안단상(斷想)

프런티어정신 그리고 보안

 

   "시선(視線)이 드리운 곳에 실체가 시작된다."

 

    프론티어의 사전적 의미는 변경 지대(개척 시대의 개척지와 미개척지의 경계 지방)로, '지금까지 인간의 발이 닿지 않은 미개척지'를 의미합니다. 이 개념은 특히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에 사용되면서 개척정신으로 탄생합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불확실한 것을 향한 모험이라 정의하면 될 듯 합니다.

 

    미국의 서부개척상은 음악, 그림, 소설, 영화 등을 통해 프론티어 정신이 무엇인지를, 과장의 우려는 있지만, 명료하게 보여줍니다. 그들이 떠나는 모험은 자신의 미래를 열어간다는 자유정신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그 탐험과정의 역동, 고난과 위기극복의 드라마는 부럽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이제 도전이라는 단어는 미적 낭만성을 부여받기에 이릅니다. 개척정신의 결과물로 얻게 되는 토지, 금 등의 부는 더 나은 미래를 약조하는 희망의 이정표입니다.

 

    그럼 무엇이 프론티어 정신의 본질일까요? 미지의 것에 끌리는 인간의 호기심? 알지 못한다는 것에서 오는 불안과 염려를 종식시키려하는 인간의 존재적 충동? 또는 도전의 결과물로 주어지는 승자의 전리품? 아니면 무엇을 얻을지 잃을지 모르는 것에서 오는 도박사의 흥분?

모두 맞는 말이지만, 저는 프론티어 정신의 본질을 '창조와 도약'이라 봅니다. 주어진 세계와 일상의 현상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과 의미를 갈구하는 것이 프론티어 정신이라 봅니다. 경계로 나뉘어져 분열되어있는 세계를 뛰어넘으려는 도약의 몸짓이 프론티어 정신이라 봅니다. 그러기 위해 제일 먼저 요구되는 것은 ‘시선’입니다.

 

    '자세히 보기', '다르게 보기' 등등 이 모든 것이 시선입니다. 그것이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에서 비롯된 시선이든, 불안과 염려를 없애려 하는 움직임에서 비롯된 시선이든, 최초의 시작은 우리의 일상과 우리를 둘러싼 주변과 세계를 새롭게 보는 것입니다. 이는 숨은 그림 찾기처럼 숨은 의미 찾기 이고 나아가 그 찾기를 넘어 우리의 삶과 세상을 더욱 풍성하게 할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내는 것입니다.

 

성경 창세기에는 창조의 본질이 들어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던 때에 빛이 있으라 라고 하자. 혼돈과 공허의 우주에 어둠을 몰아내며 최초의 광명이 쏟아집니다. 신의 시선은 혼돈과 공허의 한가운데를 직시하며 부재한 무엇을 탐구합니다. 그리고 그 부재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빛을 선언합니다.

이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부재는 부재함으로서 존재를 낳게 됩니다. 관심(볼관觀마음심心)은 그 응시의 힘으로 가려져 있던 세밀하고도 은밀한 존재의 비밀을 드러냅니다. 부재해 있던 곳이라면 응당 의미가 탄생합니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사물을 볼 때 그것은 의미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시선이 드리운 곳에 실체가 시작됩니다.

 

보안은 이 땅에서 우리 언어로 논의되기 시작한지 사실 얼마 안 된 분야입니다. 아직까지 말 그대로 변경(邊境)이며, 우리의 발이 닿지 않은 미개척지가 많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은 불확실한 것을 향한 모험입니다. 따라서 그 학문을 연구하거나 보안을 실천하는 모든 이들은 프론티어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 개척정신은 모든 훌륭한 도전이 그렇듯 드라마틱하게 역동적으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선진국들은 이미 보안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있으며 심도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그런 연구와 이론이 단순히 소개되어 지거나, 외국에서 건너온 그것을 온 힘으로 지탱하기 위하여 필요한 이상으로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그들의 언어 역사 문화 정치 관습이 모두 다른 환경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속한 우리가 사는 곳에서 우리주변에 펼쳐지는 보안현상들은 우리의 말과 우리의 시선으로 세밀히 탐구되어야 합니다. 우리주변의 일상세계는 우리의 관심으로만 발견되고 창조될 수 있습니다.

 

서구의 토양에서 자라난 security는 우리의 보안인식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의 이론의 도입은 그저 참고 되어야 하며, 우리는 우리가 서있는 바로 이 현장에서 우리의 말로 우리의 현실속에서 보안을 창조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프론티어에 서야 합니다.

글 이어보기

보안단상(斷想)

세잔의 화실에서 '보안'을 그리다

 

 

 

"과일들이 탁자에서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다."

 

화가 폴 세잔의 정물화는 이상했다. 미술에 전혀 아는 거라곤 1도 없는 나같은 사람에겐 더 그렇다. 내가 본 화가 세잔의 정물화는 원근법의 굴레를 벗어나 다른 시점으로 사물을 표현해서 그렇다나.....같이 그림을 본 친구가 답을 해줬다.

 

세잔은 그가 살았던 시대, 정물그림에 관한 지배적인 태도를 버리고 대상의 본질을 깊이 사유했다고 한다. 당시 주류 미술계의 거센 비난 속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으로, 사물의 변하지 않는 구조와 형상의 본질에 주목해 독자적인 화풍을 열었고 이후 수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보안을 주제로 하는 글에 왠 화가 세잔이냐고 물을 만하다. 각종 매체들에 넘쳐나는 보안담론의 지루함을 느낄 즈음, 사물 그 자체의 고유함과 진실에 천착한 세잔의 그림세계를 우연히 마주하며, 나는 보안에 관한, 그 근원에 대한 고민이, 보안을 업으로 하는 세계에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범람하는 보안기술도 결국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보안은 근원적으로, 본질적으로 두려움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두려움이라는 속성이 없다면 보안이란 말은 성립할 수 없다. 보안활동은 기술이기 이전에 어떤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우리네 삶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 말이다. 보안이 기업이나 조직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직업 세계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무슨 보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든, 인식하는 위협이 다르고 그 표현이 다를 뿐  결국 두려움의 처리방식에 관한 문제일 뿐이다. 물리적 보안이든 기술적 보안이든 관리적 보안이든 염려,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얻기 위한 장치들일 뿐이다.

 

보안은 추상이고 관념이고, 하나의 태도다. 보안기술은 추상이고 관념인 보안을, 구체화 시키는 도구일 따름이고, '보안한다'는 태도는 보안조직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개개 주체들의 문제다. 도구에 갇히지 말고, 그 본질과 우리의 일상을 주목해 보안의 외연을 넓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물화를 바라보는, 당대의 굳은 시선을 깨고 새로운 '바라보기'를 한 화가 세잔의 화실에서 보안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과 인식의 확장을 고민해본다.

 

글 이어보기

보안단상(斷想)

이제 우리 말로 보안하자

 

영어 시큐리티(security)의 어원은 라틴어 명사로 세쿠리타스(securitas),  형용사로는  '벗어나다' 라는 뜻의 세(se)와 염려 ∙ 불안 ∙ 근심을 뜻하는 쿠라(cura). 세쿠라(secura)라고 한다. 그런데 라틴어는 지금은 학술언어나 종교언어 외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언어이다. 기원전에  쓰이던 라틴어의 의미가 과연 오늘날과 같은 지키고 보호하는 우리가 말하는 보안과 같은 의미일까. 필자의 유치한 의심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보안이라는 말도 순수한 우리말은 아니다. 시큐리티(security)라는 외국어의 어원은 공부하는데, 보안의 순 우리말은 무엇이고 우리말이 있다면 우리말의 어원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말은 형용표현이 매우 발달한 언어다. 붉그레죽죽하다. 푸르딩딩하다. 누리끼리하다. 이런 표현을 외국어로 정확히 번역하기는 정말 어렵다. 이런 표현을 번역하려면 외국 사람들이 우리의 색감을 직접 ‘경험’한 후 그 느낌으로 외국어로 번역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말에 시티즌(citizen)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단어는 없다. 우리는 서구사회가 영주와 농노, 기사로 대표되는 중세봉건의 시대에 머물 때 이미 강력한 중앙집권의 발전된 국가체계를 만들었다. 우리에게는 왕의 신하로서 신민 또는 국가의 국민개념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서구사회에서는 아래로부터의 혁명, 도시의 인민들이 왕과 귀족들에 대항해 싸워 자유를 쟁취해낸 기억이 있다. 이 투쟁을 이끌었던 도시의 인민을 가리켜 시티즌(citizen)이라 한다. 시티즌은 자신의 주권을 자신의 힘으로 쟁취해낸 자랑스러운 이름이다. 우리는 시티즌을 시민이라 번역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시민은 ‘시에 속한 인민=시민’ 일 뿐이다. 우리가 시티즌을 정확히 번역하려면 프랑스 시민혁명의 역사와 그 가치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느낌을 오롯이 담을 수 있는 대체어를 찾아야 한다. 필요하면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그 뜻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언어를 만들었을 때에만 우리는 그 말과, 쓰임을 정확이 이해할 수 있다. 과연 시큐리티(Security)가 우리가 말하는 보안이라고 부르는 의미가 꼭 같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시큐리티와 우리의 ‘보안’은 비슷한 측면이 있을지 몰라도 시티즌과 시민처럼 뉘앙스는 분명 다를 것이다.

 

우리와 서구세계는  가치관, 세계관이 다르며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이 다르며 어떠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 대처하는 방식 또한 다르다. 그럼에도  수입한 개념은 별다른 반성적 사고 없이 우리의 삶 속으로 무비판적으로 들어온다. 문학영역에서 번역은 그냥 말하는번역이 아니라 제 2의 창작이라는 말이 있다. 외국문학의 제대로 된 소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창작되어야 한다. 시큐리티의 어원은 라틴어로 무엇이고 하는 건 알면 좋지만 몰라도 되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말로 사고하고 우리의 언어로 개념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기의 언어를 상실한 시대,  말 찾기에서 우리의 보안은 한 단계 성숙해 질 것이다. 영어와 일본어 등 외국어를 공부하는 이유는 정보의 축적량이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만큼 스스로 생산해 낸 지식이 많다는 소리다. 시큐리티와 보안 역시 우리가 생산해낸 말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지극히 한국적으로 보안의 개념을 사고해보자.  그래서 우리 문화의 맥락에서 우리의 보안을 생산해 보았으면 한다. 선진국이라는 것은 그 국가 스스로 생산한 지식이 많은 나라를 말한다. 우리 식으로 사고를 하고 지식을 생산할 수 있어야 우리도 선진이 되는 것이다.

 

필자는 지식인이 아니다 그래서 지식인들에게 묻고 싶다. 그리고 요구한다. 진짜 한국적 보안은 무엇인가.   글로벌 보안은 이런 것이니 그걸 배우고 빨리 습득했다고  자랑스러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앞서는 것은 무엇이고 우리가 생산할 보안지식은 무엇인가를 고민해 주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진짜 우리 땅에서 우리  생각으로 보안을 생산해 낼 수 있다.

개념까지도 수입해 쓰면 안 돼지 않는가.   아직까지도 우리는 기술만 난무할 뿐 통찰과 철학은 보이지 않는다  

글 이어보기

보안단상(斷想)

직감과 경영

경영의 세계는 엄혹하다. 합리와 비합리의 경계가 모호하다. 잔잔한 바다를 순항하는 듯 보이지만, 바다는 언제나 거친 비바람을 품고 있다. 경영은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예상치 못한 바깥사정으로 곤경에 빠지기도 한다. 교통사고로 죽는 것이 가장 ‘부조리’한 것이라고 했던 카뮈의 말처럼 이유도 모른 채 어느 순간 나락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위험에 빠진 경영은 판단의 시간이 부족하다. 막막하고 아연한 감정이 일렁인다. 경영자에겐 혼돈 속에 명운을 건 결단이 필요할 뿐이다.
 
실패한 경영의 배후에 대해 지식인들은, 폭풍에 맞선 어부들의 사투와 같았을, 위기에 빠진 경영자의 목숨을 건 숨가빴을 시간을 두고 철 지난 조언을 하기도 한다. 경영전문가들의 현명한 조언이 담긴 책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그러나 때때로 현실에 반영되지 못한 경영서적은 서점과 도서관의 가득 찬 책장 한 켠에서 언제 신간에 밀려 창고로 혹은 폐지로 나갈지 모르는 처지에 놓이곤 한다. 인간은 우매하다. 경영학을 십수 년을 공부하고도 자신이 실제 경영의 세계에 발딛여 놓으면 대부분 물속에 처음 들어간 것처럼 허우적거린다. 실제 경영의 세계는 위험투성이다.
 
경영의 현장에서 예기치 못하게 맞닥뜨린 생존의 갈림길에서 경영자의 직감은 성패를 좌우한다. 가만히 내면을 들여다보라. 쉴 새 없이 회의를 하고 차가운 이성을 가진 머리로 정확한 판단을 한다고 자부하지만, 의식의 배후엔 직감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경영은 분석과 같은 차가운 이성의 세계이기도 하지만, 가슴이 이끄는 감정의 세계이기도 하다. 과반수가 지배하는 국회가 아닌 이상, 치열한 경영현장에선 경영자의 직감과 통찰이 지배한다. 그 직감의 정확도가 경영의 백미(白眉)다. 경영을 잘하려면 결국 오답을 피해나갈 수 있는 본능적인 직감과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의 배양이 필수다. 그러므로 어쨌거나 직감의 정확도를 올려야 한다.

사물이나 현상을 접하였을 때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아니하고 진상을 곧바로 느껴 앎. 또는 그런 감각. '직감'에 관한 국어사전 설명이다. “내 느낌은 이렇다” “내가 보기엔 그 사람의 의도는 이런 것 같아” 또 어떤 사안을 두고, 할까 말까 망설이는 순간 우리들은 ‘감’에 의존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또 전문가라도 아는 사람이 있으면 “넌 어떻게 생각해”하며 물어보고 결국 전문가의 말대로 판단을 해 본 경험도 있을 것이다.직감이란 감각도 훈련이 필요하다. 왜냐면 오랜 경험의 축적으로 생긴 하나의 습관이기 때문이다. 결정의 망설임 앞에 성공의 가능성이 높은 직감적인 결정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 전에서 본능적인 슛을 성공시켜 승패를 가른 박지성 선수에게 물어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직감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먼저 내 경험을 검증해야 한다. 동일한 경험은 거의 없다. 사람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다. 지역이라면 기온도 다르고 풍습도 다르다. 사람의 인식은 객관적이기 어렵다. 사람의 감각은 자신이 들어야 하고, 봐야 하고, 기대하는 방향으로 발달한다. 부지불식 간에 특정 상황의 조건에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갖다 붙인다. 직감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내 경험이 건전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확보돼 있는지 스스로 되물어야 한다. 카트리나 태풍으로 루이지애나 대홍수라는 파국적 사태를 맞이한 당시 미국 국토안보부 통제국장 메튜 브로데릭의 실수는 정보의 편향된 취사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생각의 패턴이 문제였다.또한 불편하고 거북하지만 올바른 조언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의 취사는 이해관계에 얽매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목적에 부합되는 정보만을 선택한다는 건 자신에게도 독이 되고 조직에게도 독이 될 수 있다. 반대의견을 수용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그리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하되, 의심하고 검증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전문가는 존중해야 한다. 단 그들의 의견에 무조건 순종해서는 안 된다. 전문가의 권위에 주눅들지 말자는 얘기다. 다른 생각이 있으면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 한다. 그렇다고 전문가를 무시하란 말은 아니다. 조언에 대한 어설픈 배척은 자신에 대한 맹목적 믿음에 다름 아니다. 존중하되 그들의 의견을 그대로 믿어버리지는 말란 말이다. 만약 본인이 전문가라면 자신 스스로 전문가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현상에 대해 지금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오류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자세가 필요하다.경영의 핵은 의사결정이다. 갑자기 닥친 위험 앞에선 즉각적인 직감과 통찰은 대단히 중요하다. 자신의 경험이, 타인의 전문적 조언이 상황에 적절한 것인지 의심하고, 검증하는 습관의 형성이  직감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방편이다. 아울러 경영자만큼이나 위험의 한가운데 서있어야 하는 보안전문가들에게 정확도 높은 직감은 필수적인 소양이다.
글 이어보기

보안단상(斷想)

사기꾼의 미끼

      사람은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존중받고 싶은 인정욕구를 가지고 있다. 보란 듯 성공해서 이름을 날리고 싶어 한다. 건전한 인정욕구는 목표를 향한 험난한 도전의 여정에 힘을 보태는 보약이다. 그러나 지나친 인정욕구와 공명심은 경계해야 한다. 그런 심리를 악의적으로 악용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기는 사람의 감정을 흔듦으로서 시작한다. 지나친 인정욕구를 가진 이에겐 ‘존중하는’ 그 자체로 과시욕을 더욱 부추긴다.  때론 자존감을 의도적으로 훼손시킴으로써 스스로 과시욕을 일으키도록 유도한다. 고위 공직자 출신이나, 퇴직한 대기업 고위직 임원들의 심리적 상실감을 파고든다. 사회적 성공을 이룬 이들과 다른, 성공을 향한 꿈을 좆는 사람들에겐  그럴 듯한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여 접근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높은’ 사람과 만났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흥분된다. 어깨동무하고 사진이라고 한 장 찍으면 소셜미디어에 한껏  자랑하며 올려댄다. 그 ‘높은’ 양반들 덕분에 마치 자신의 인생이 바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그들은 표적이 된 대상에게 각종 모임과 만남의 기회를 계획적으로 만들고 때가 되면  달콤한 유혹의 손길을 뻗는다. 꾼들은 '근거없는 권위에 굴복'하는 자존감 약한 사람들에게,' 너의 인생을 바꿔 줄 거짓 희망' 이라는 미끼를 던졌고  나약한 표적은 불행히도 미끼를 물고 만다.

      사기는 사람의  욕망을 이용한다.  사기꾼들은 마치 악마처럼 애써 숨긴 욕망의 문을 두드려  수면위로 불러낸다. 그들은 그저 욕망을 불러냈을 뿐이다. 미끼를 문 건, 욕망을 들킨 이들이다. 악마에게 호출된 나약한 인간의 욕망은 강렬하게 질주한다. 소중한 가정도 친구도 허리케인처럼 날려버린다. 태풍이 멎은 후엔 날아가 버리고 부셔진 것들을 보고 후회하겠지만.....

      요즘 세상엔 나이든 어르신들이 아니라면 소셜미디어 한 두 개를 안 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소셜미디어 속엔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가 매일 매일 쏟아진다. 그 속엔 살아가는 데 유익한 이야기도 많고 피곤한 일상에 활력을 주는 재미있는 글과 그림도 많다. 그 많은 이야기 속에서 올린 이의 숨긴 속마음이 들릴 때도 심심찮게 있다. 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말하고자 하는 말은 단 한마디다. “나는 인정받고 싶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걸 탓할 마음은 없다. 단지 그 욕망을 ‘누군가’이용할까봐 두렵다. 지나친 인정욕구는 위험하다.

 

 

 

 

 

 

 

 

 

글 이어보기

보안단상(斷想)

편견

영화 『내부자』 속의 안상구(이병헌 분)는 깡패다. 대통령 후보와 재벌 회장 그리고 언론이 유착한 비리행위를 도왔던 깡패 안상구는 더 큰 꿈을 욕망하다 결국 버림받고 그들의 비리를 폭로한다. 그러나 정치권력과 재벌과 언론은 그가 깡패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순식간에 전세를 역전시킨다. 결국 깡패라는 선입견과 편견 덕에 그의 정의로운 고발은 오히려 그를 ‘희대의 사기꾼’으로, ‘파렴치한’으로 깊은 곤경에 빠뜨린다.


메시지가 맞다면 메신저를 공격하라. 만약 메신저가 믿을 만하다면 메시지를 혼탁하게 하라. 정치적인 공방에서 흔히 쓰는 수법이라고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다. 영화 속 장면과 딱 들어 맞는 말이다. 비리의 주인공들은 흠집많은 메신저를 공격함으로써 우리가 가진 ‘편견’이라는 정서를 잘 활용했고 대중은 진짜 읽어야 할 메시지에 집중하지 않는 대신 ‘안상구는 깡패다’ 라는 사실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사회생활을 겪으며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 자신에게 가지는 타인의 편견으로 불편했던 적이 있으리라. 학력이 이러니, 경력이 이러니, 어느 지역 출신이니, 등등. 사실 편견을 안 가진 사람은 없다.  우리는 크고 작은 편견을 가진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편견은 학습의 산물이다. 지연, 학연, 혈연과 사회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편견은 자연히 학습된다. 어느정도의 편견을 가지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다.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부정적이지 않다면 말이다.

 

편견은 어떤 대상이나 사태에 대해 어느 한편으로 깊게 뿌리박히고 고정된 생각의 경향을 가지는 정서적 태도라고 볼 수 있다.  편견의 형성은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겠다. 가정과 출신지역, 출신학교 등 어떤 형태의 사회에서든 어떤 대상이나 사태에 대한 일정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비교적 오랫동안 상호교감했거나, 비록 주관적인 감정이더라도, 자기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이 타인이나 타지역, 타집단에 비해 불공정한 대우를 받는 것과 같은 일종의 상대적 박탈감 또는 괴리감에 의해서도  형성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편견은 특정한 대상이나 사건에 대해서 대단히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일쑤며,  편견의 대상을 재평가할 만한 의미있는 의견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고 자기의 사고의 오류를 수정함에 인색하다.


이 편견이라는 정서는 어떤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동조될 때 위험하다. 즉 특정대상에  대해 가지는 영향력이 큰 집단이나 개인의 의견이  그와 다른 의견과 상충될 경우, 다른 의견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을, 다수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편견은 집단화되며 조직화될 수 있고, 그로인해  불안요인이 조성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편가르기'라고 해야 할까.


조직적이고 집단화된 편견은 위험하다. 어떤 현상에 대해 편견이란 정서가 뿌리박혀 있다면 경영이란 관점에선  사고의 유연성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경영현장에서 조직의 '편견'은 한번쯤은 짚어봐야 할 문제다.

경영은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의사결정을 함에 위험판단은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그래서 경영자는 항상 냉정하되 유연한 사고로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 최고 경영자든 일개 부서의 부서장이든 편견을 가지면 위험을 판단하는데 장애요인이 안게된다. 위험요인을 판단함에 있어 위험하지 않다는 의견에 ‘왜’라는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 편견은 학습의 산물이다. 편견은 하나의 감정이다.  그렇기에 편견의 극복은 훈련으로 학습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보안경영은 모든 경영행위의 전방에 '안전하고자 하는 인식'을 배치하는 것이다. 보안은 위험관리다.  위험관리는 검증된 것이라도 되새겨 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편견은 되새겨 보는 태도를 방해하는 감정이다. 위험을 다루는 보안인들에게 편견을 의심하는 태도는 두 번 말 할 필요없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