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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아이

뒷모습

현관을 나서는 당신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
괜시리 눈시울이 붉어진다

 

철모르던 어린 아이 시절에는
함께 더 있지 못하고
떨어져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쉬워

 

문을 나서는 당신의 바지자락을 붙잡고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참 서럽게도 울었었다

 

그러면 당신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
앞으로

 

한 발
한 발

걸어 나가면서도
내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연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흘러
부모님인 당신보다
친구들이 더 좋아졌을 무렵에는

 

더 이상
당신의 멀어지는 뒷모습에
세상이 떠나가라 울지 않았다

 

당신은 그저
나가는 길목에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을 뿐이다

 

이제 내게
매일 아침 홀로 현관을 나서는 그 뒷모습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고

 

우리가 떨어져 있는 시간만큼
서로 나누는 말도
적어져만 갔다

 

그렇게 당신과 나는
그 옛날이 무색할 만큼
많이도 달라져 있었다

 

그러다 언젠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나 또한
그동안의 당신처럼

 

매일 같은 목적지를 향해
매일 같은 시간에
현관을 나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마다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
이제는 피곤함과 하나가 되어버린 천근만근한 몸을
겨우 일으켜 하루를 시작한다

 

더 쉬고 싶은 마음에
도무지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않는
무거운 두 발을

 

현관 밖으로 겨우 내쫓고
만원 지하철에 두 발을 올려놓으면

 

훅 끼쳐오는 텁텁한 공기에
작게 한숨 짓는다

 

나는 떠올려본다

 

오랜 세월
단 한 번의 힘든 내색도 않고
떠지지 않는 눈을 부비며 일어났을 당신과

 

출근길의 길모퉁이에서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바라보며
또 하나의 힘찬 하루를 무수히 다짐했을 당신과

 

고단한 하루 끝에 겨우 마주앉은 저녁 식탁에서
아무도 모르게
홀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당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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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

이름 사진사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나는 언제나 사진작가가 되어 이 하늘의 찰나를 기록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밤하늘, 별 그리고 어둠.

 

 

나는 너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너는 내 이름을 잊을 터였다. 나는 더 이상 너를 위한 명왕성이 될 수 없을 터였다. 

 

미안해요. 너는 전에도 그랬듯이 나를 탓할 것이고 나는 무릎을 꿇을 터였다. 너는 나의 말에 눈물을 흘리고 나는 그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낄 터였다. 무한히 반복되는 이 청백색의 윤회 끝에 내 이름은 흐릿해져 잊혀질 터였다. 그 때는 그들처럼 내 이름이 아닌 나의 이름으로 불리어질 터였다. 나는 변한 내 이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내 이름을 혼자 나지막히 되뇌다 눈물을 흘릴 터였다. 이 밤하늘은 네가 나에게 쏘아올린 미사일의 수만큼, 딱 그만큼의 노란색 크레이터로 물들게 될 터였다. 우리의 눈에 들어온 저 섬광은 결국 이름 없는 티끌에 불과한 것이었다.

 

 

아름다운 밤하늘, 별 그리고 카메라.

 

 

필름은 잘못 현상되어 검은 색이 아닌 노란 빛의 명왕성만이 드러날 터였다. 없다는 것은 검은 색도 흰색도 하물며 회색도 아니다. 없다는 것은 노랑. 표지판과 신호등 사이에서 으깨어진 노란색이다. 나는 저 노란 점이 별이 될 때까지. 아홉 번째 행성이 될 때까지. 끝내 그 별이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출 때까지 밤하늘을 찍을 터였다. 저 이름 없는 고로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천체는 결국 거울 속 너의 모습이 되어 나와 몸을 섞을 터였다. 나는 새 카메라로 그 모습을 찍을 터였다. 미안해요. 그때면 필름이 바닥났을 것이다.

 

하지만 볼 것이다. 보고 마리라.

아니다.

차라리 다행이다. 보이지 말아라. 보이지 말라. 사라져라. 저 은하 너머로.

이상한 나라에서는 앨리스도 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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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집

확률통계와 이과생 Y씨, 그리고 칠월칠석의 오늘

확률통계와 이과생 Y씨, 그리고 칠월칠석의 오늘

정녕 네가 나와 같은 마음인가,
하는 것을 가지고 내 이불 조아려질 때에

 

그 시간에, 너는 이것이
같은 상자냐 같은 사탕이냐를 가지고
수십 번 머리채를 붙잡았느냐.

 

네 앞에서 미적분을 잘한다고 우쭐댄 적이 있었다.

그래놓고 언제는 수화기 너머로 보고 싶다고,
그때 네 책상엔 확률과 통계 문제지가
벽처럼 너를 가로막고 있었을까.

 

미안하다, 너의 반쪽이라 믿었던 마음은 너의 반밖에 알지 못했다.
문과생 M씨는 이제야 확률과 통계를 공부한다.
오늘 합의 법칙을 배웠고, 곱의 법칙을 배웠고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항상 누군가가 더뎌지고 만다는 걸 배웠다.

 

어디서 잘 살고 있나, 칠월칠석이다.
자취를 그리기엔 이만한 게 없는 저녁하늘이다.
너는 어디서 M씨도 P씨도 K씨도 만나지 못하고
머리엔 기하 씨와 벡터 씨만 가득하느냐.

 

먼 허공엔, 새내기의 꿈처럼 커다랗고,
마치 만남 뒤에 이별이 있듯, 이분법을 경계하며,
그리운 이가 떠올릴 법한, 흐릿한 미소 같은,
오작교의 점이 찍혀, 천천히― 그어진다.

 

고작 1년에 한 번을,
몇백 년이나 지나버린
저 인연을, 나는 왜 부러워해야 하나.

 

견우여!
당신은 직녀를 만났는가,
그사람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