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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63 - 1

584

 

언제나 사람은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라면 매우 간단하다.

내가 나를 챙겨야 하는데 남을 생각할 시간이 있을까?

언제나 나 자신에 대한 여유를 찾아야, 오지랖 넓게 남을 생각해주는 척을 할 수 있지.

-맹렬한 추격전을 끝마치고 결국 붙잡힌 카일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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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제로트 처리 여부는 레인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장 우려한 것은 조용히 일을 처리하기 싫어하는 성격을 지녔기 때문. 보통 고위급의 간부나 귀족, 대상인 등. 세상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암살자들을 고용하여 조용하게 처리하는 것이 일반상식이다. 다만, 레인의 경우에는 일반상식을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분명 개인방송국을 열어서 “저! 오늘! 살인합니다!”라고 경찰서 앞에서 신나게 떠벌릴게 분명하니까.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언제나 자극적이지 않으면 만족을 못하는 부류에, 켈모리아 마그누스가 있었고 레인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은 보기 좋게 틀려버렸다. 레인의 성격을 고찰하면 고찰할수록, 이 녀석은 자극적이지 않으면 만족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인생 살아가는 동안 자극적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내가 마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태클을 거는 것과 마찬가지.

 

레인은 1분 1초라도 지루할 틈이 없다.

 

위험천만한 것을 더 위험하게 만드는 초능력도 레인의 성격과 매우 흡사한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 따라서 지금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자. 이른 아침에 나는 무슨 일인지 몰라도 눈을 떴는데, 거기에는 백장미를 못 찍게 하는 나에게 반기를 들어버린 루니아 누나를 필두로, 모든 잡화점 멤버가 기습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빠르게 도망쳐 나왔고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모든 도로와 모든 건물들을 통해서 달리고, 뛰고, 부수고, 날리고를 반복. 그 일대에 피해는 없다고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20분 뒤에 치열하고 처절했던 아침운동은 막을 내렸다. 루비아의 글레이프니르 앞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하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아무런 힘도 못쓰고 그대로 붙잡혀야만 하는 사기적인 아이템.

 

매번 나를 죽이라는 말을 해도, 되돌아오는 것은 자비가 아닌 비웃음과 더불어 빌어먹게도...

 

“카일 씨는 보면 볼수록 여장이 진화하네요?”

 

“닥쳐.”

 

레인이 내 신경을 긁다 못해 삽으로 파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살인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는 분노를 천천히 조절하면서 제거하고 있는 나의 모습. 마음속에서 심호흡을 1시간 전부터 120번 내쉬고, 한번의 한숨으로 내 입밖에 튀어나왔다.

 

심호흡을 마음속으로 내쉬는 것도 좀 이상하지만, 현 상황이 더 이상하니까 빨리 여장을 풀기 위해 노력을 하자. 어처구니 없게도 옷 하나하나가 모두 기괴한 저주덩어리들이라, 물품을 이용하여 해주를 하거나 고위 프리스트를 찾아 나서야 하는 상황. 레인에게 찾아간 이유는 레인의 능력을 이용해서, 저주를 해제하려고 했으나 위험한 건 하나같이 다 들어가있는 잡화점 물품의 특정상, 지금 해주 할 수 있는 물품을 찾으러 떠나고 있다.

 

지금은 천계가 모조리 비어있는 상황에서 대주교를 찾아가던 성녀를 찾아가던 권능을 빌릴 수 없는 상황이다. 물품을 빨리 찾고 이 바보 같은 옷에서 벗어나도록 하자.

 

“그래서 이번엔 검은 고양이인가요?”

 

“닥치라고 했지.”

 

“마왕님과 커플룩이네. 아니, 커플 종족인가?”

 

“분자단위로 해체해버리기 전에 닥쳐.”

 

“닭을 때리라뇨. 카일 씨는 잔인한 사람...아! 아파! 알았어요! 잘못했다니까요!”

 

커플 종족이라는 어감이 굉장히 이상해서, 본래 때리려는 힘보다 1.2배정도 강하게 때렸다. 내가 여장을 함에 따라 사회가 무너지고 가정이 황폐화되기는커녕, 잡화점 멤버들은 좋아하고 있고, 히드라는 계속해서 “풋!”하고 짧은 웃음을 스타카토로 연주했다. 조만간 불러내서 중모리장단으로 때려야지.

 

“이걸 도와주면 리제로트를 제거하는 것에 동참하겠다는 소리죠?”

 

“애석하게도 죽이는 게 목적은 아니지, 하지만 내가 죽이라고 하면 죽여도 상관 없어. 대신 멋대로 먼저 죽이지는 마라. 물어볼 건 물어보고 죽일지 살릴지 결정해야 하니까.”

 

“역시 어린애를 좋아해서 그런가?”

 

“은팔찌를 찰만한 발언은 그만둬라. 그리고 나에 대한 오해가 너무 많은 거 같은데, 어린애를 좋아하는 건 너잖아. 이 범죄자야.”

 

“범죄자라뇨. 고성능 싸이코라고 해주세요.”

 

“어째서 너는 그런 대답이 나오는 거냐?”

 

사람들이 자신에게 싸이코라고 하는 경우는 친한 친구들의 대화 중에선 나올 수 있지만, 정상인과 비정상인들의 대화에서 비정상인이 싸이코라고 한다면, 그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당장 피하자.

 

“그런데 리제로트를 끌어 내려면...”

 

“무슨 소리하려는지 알고 있으니 제발 좀 조용히 해.”

 

“정말요?”

 

“아니. 사실 모르는데 짜증나니까 조용히 하라고.”

 

레인은 시큰둥한 얼굴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너무 과민반응을 한 터라 혹시나 마음이 상했을까? 그나마 미안함이라는 감각이 내 이성을 정상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지금은 조용히 있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어디 폐가에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카메라들이 사방팔방에 있는 거야.”

 

기존에 찍었던 백장미와는 다르게 생동감을 주기 위함이라고, 내 주변에 카메라처럼 생긴 물체들이 이곳 저곳에 날아다니고 있었다. 뭐, 어디에 묶여서 강제로 촬영을 당하는 것도 나쁜 거지만, 이건 뭐...대놓고 도찰하겠다는 거잖아?

 

“조만간 가지 말아야 할 폐가에 찾아가서 기이한 현상을 카메라에 담는 건가요?”

 

“이 세상에 폐가에 찾아갈 생각을 왜 하는 거야? 애초에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가면 안 되지.”

 

무엇이든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아무튼 가장 큰 목적은 유랑극단도 아니고, 리제로트를 찾는 것도 아니고, 옷에 걸려있는 저주를 풀어서 자연스러운 나를 찾기 위함이니, 오늘 하루는 이 일에 집중을 하도록 하자.

 

“카일 씨는 여장을 가장 싫어하네요?”

 

“그야 하기 싫은데 억지로 입히니까 그렇지. 잡화점 멤버는 기본적으로 내 의견은 묵살하고 입히거든. 카메라에 녹화가 되니까 그 이상 말은 하지 않겠지만, 이렇게 보여도 나는 꽤 복잡한 삶을 살고 있다고 봐.”

 

그 어떤 인간도 성별이 바뀌는 경험을 체험하는 건 쉽지 않는 일이지만, 잡화점 안에 있으면 방심하는 순간 바뀌는 터라, 전생에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갑갑한 내 상황에 한숨을 내쉬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고정이 되었는데, 제길 한숨을 쉬는 것조차 반응하도록 내 존재감을 높여버렸나?

 

“뜬금없이 말하는 거지만 시선이 너무 많이 쏠리는데요?”

 

“아까와도 말했듯이 이 옷들은 저주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레시아와 시나가 같이 다니지 않는 게 가장 크겠지만, 지금 내 존재는 일이 너무 바빠 죽을듯한 사람도 나를 무시 못하게 되어있어. 이래선 차량을 운전하는 사람들이 사고가 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일부러 차가 적은 구역을 돌아다니고 있는 건데, 여기도 사람이 너무 밀집된 구역이라 무슨 일이 터져도 이상할 게 없네.”

 

주변에서 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내 몸에서 타고 흐르는 싸늘한 소름은 내 생각을 거부하기 마련. 보고도 못 본척하며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사람부터, 그냥 대놓고 보면서 내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까지 가지각색이다. 또 다른 경우라고 한다면...

 

“헤? 고양이 꼬리는 진짜 같구나.”

 

뒤에서 뜬금없이 목소리를 낸 릴리스가 말을 걸어왔다. 겨울이 지나갔다고 해서 그 추위는 전부 사라진 것이 아니기에, 꽃샘추위를 견디기 위한 흰색의 시스루 블라우스에 베이지색 스커트와 연분홍색의 연분홍 빛이 스며든 세미 자켓을 입고 있었다.

 

“대체 고양이가 뭐길래 계속해서 고양이 귀와 꼬리를 다는지 그 이유부터 묻고 싶지만, 지금은 매우 바쁘니 그 일에 대해 나중에 말하도록 하지.”

 

사실상 여장을 당하는 와중에도, 릴리스가 “그럼 고양이 귀와 꼬리를 다는 건 어떨까?”라는 말 한마디에 고양이 귀와 꼬리가 최적화된 코디로 바뀌어버렸다. 불 나는 집에 기름을 더 부어버린 릴리스는 옷을 입고 있어도, 감각적인 몸과 다른 이들을 홀려서 녹일 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이유라면 내 환각에만 보이기 때문.

 

아무리 환각을 이용하더라도 적절하게 쓰면 그거야 말로 좋은 정보원이 될 수 있는데, 지금의 경우에는 릴리스가 길잡이를 해주고 있는 역할이다. 여태까지 나는 목적이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니까, 릴리스에게 책임을 묻고 저주를 풀기 전까지 길잡이를 하라고 했다.

 

“아무튼 지금 거의 다 온 거야?”

 

“아니~ 아직 한~참 남았어.”

 

아직 한참 남았으면 지금 빨리 가야 할 텐데, 매번 미소를 짓고 여유가 있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데이트 했으면 좋겠다~ 이런 봄 날에~”

 

“그거 협박이지?”

 

“글쎄? 나는 협박 같은 거 모르는데?”

 

천진난만하게 나를 보고 있는 릴리스의 말과 의도를 번역하자면, “데이트 해주기 전까지 그 옷의 저주를 풀 수 있는 장소를 가르쳐주지 않을 거야.”라고 들리게 되었다. 기이하게도 분명 피해 받은 사람은 나고, 이런 꼴로 만든 공범은 릴리스인데도, 갑과 을의 관계는 릴리스가 더 높았다.

 

“하아...지금은 레인도 동참하고 있으니까 데이트는 나중에...”

 

“응? 그러고 보니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해주를 할 수 있는 물품을 파는 곳이 떠오르지가 않네?”

 

“아! 진짜! 알았어! 하면 되잖아!”

 

이 모습을 입고 데이트를 한다고? 나를 죽이다 못해 무덤에서 꺼낸 뒤에, 5개로 분해하고 5대륙에 파묻는 것과 같다. 소리질러서 이곳으로 다시 시선집중이 되었는데, 주변 반응에 아랑곳 하지 않고 성큼성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뜬 건가? 자기가 데이트를 해준다니 따라갈 수 밖에 없잖아?”

 

“내가 어쩌다 이런 모습으로 환각과 같이 데이트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환각이라고는 해도, 나와 적절하게 링크가 되어있으니 잘 대해줘야 해?”

 

그리고는 나와 레인의 사이를 뛰어들어 내 팔을 붙잡았다. 그 사람에게만 보이는 환각은 그 감각까지 혼란을 일으키지만, 레인의 경우에는 릴리스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접촉자체를 할 수 없으니 아무일 없는 듯이 걸어갔다.

 

“릴리스라는 분은 어디에 있는 거에요?”

 

“지금은 꿈의 미로에서 자기 할 일을 하고 있겠지.”

 

“몽마들의 여왕이기 때문인가요?”

 

“기이하게도 꿈은 모든 차원과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공간이니까. 꿈에 한정을 짓자면 릴리스가 잡화점에서 최강자에 속해. 레시아도 릴리스가 꿈에서 추방시키면 꿈의 미로로 들어가지 못하거든.”

 

세계를 창조하고 강력한 마왕이 되고 최고의 여기사로 명성을 떨쳐도, 현재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공간의 규칙에 대해 얽매이기 마련. 그 시공간의 규칙을 깨고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릴리스야 말로, 어찌 생각을 해보면 최강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존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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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일하기 싫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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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62 - 10

583

 

 

 

사실상 방법이라면 미래에 대한 걸 알아버렸으니 과거로 돌아가서 바꾸는 것이 있다. 그러나, 멋대로 과거를 바꿔서 난장판이 된 이야기가 있지 않는가? 그러므로 과거를 바꾸지 않고 미래에서 해결만 하려는 선택지를 골랐다. 그런데 내가 미래에 오래 있어도 상황은 악화되고, 무분별하게 과거를 바꾸려고 시도하면 시간의 파수꾼들이 찾아오리라. 시간의 파수꾼 중 유랑극단과 손을 잡은 자가 존재한다면, 과거로 가든 미래에 있든 나에게 불리하다는 것만큼은 별만 다를 바가 없지. 잡화점에서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멤버들은 하나 같이 침묵을 유지할 뿐이다.

 

분명 내 앞에 있는 멤버들은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를 생각하는 거라면 정말 좋겠지만...

 

“그래서 주인. 언제쯤 촬영을 시작할 건가?”

 

난 분명 찍는다는 말도 없었는데 검은 고양이가 판을 깔아놓고 있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요?”

 

“하지만 카일? 누나 생각으로는 백장미를 찍는 것도 중요해요오.”

 

파도가 치는듯한 금발의 여성은 레시아의 말에 동조했다.

 

“루니아 누나. 제 말을 다 듣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요?”

 

“기왕 이 세상이 언젠가 사라진다면, 어쩔 수 없이 카일의 귀여운 모습을 최대한 많이 남겨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오?”

 

“안 좋아요.”

 

찍히는 당사자가 안 좋아.

 

“그래도 어릿광대가 신이 되었다라아? 결국 미래에 오래 있어봤자 다른 평행차원의 설정들이 이곳까지 섞여 녹아 들고 누군가는 기괴한 설정에 오염된다는 소리군요오?”

 

기괴한 설정에 오염이 되어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4차원을 뛰어넘은 대재앙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으리라. 만약 다른 세상의 설정이 오염된다면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 사각형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나무젓가락과 공하나 올려놓는 듯한 모습으로 오염될지 모른다.

 

심지어 세계관까지 오염된다면 오메가버스인지 스쿨버스인지까지 되어버리면, 그 즉시 총채적 난국으로 변하는 건 시간문제. 그리고 몇몇 평행차원은 “우린 멸망했어요.”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이곳을 오염시킨다면, 모든 평행차원 자체가 멸망 당하는 것뿐이다. 그 이후엔 아무것도 남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게 되겠지.

 

따라서, 지금 가장 커다란 문제는 수 많은 평행차원 중. 분명 멸망하여 사라진 우주가 존재하리라 예상하고, 그걸 방지하면서도 유랑극단을 부셔야 하지만...

 

생각해보니 미래까지 유랑극단이 있다는 소리는,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유랑극단을 모조리 제거하는데 실패했다는 소리가 된다. 따라서, 미래에서 해결을 보고 과거로 돌아가서 유유자적하게 준비만 하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역시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기에, 머릿속은 매우 복잡하고 정리하려고 하니 너무 꼬여버렸다.

어쨌든...

 

지금은 생각하지도 못한 재앙을 통해 우리가 살아갈 길을 알아보도록 하자. 늘 계속 생각해왔던 거지만, 내가 잡화점을 처음 접하기 전부터 300년 뒤에 나는 이런 바보 같은 일을 꾸준하게 진행했다는 증거야말로, 이곳에는 존재하지도, 알지도 못하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태클을 걸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이 미래를 제대로 매듭짓지 못하면, 결국 과거의 나는 알지도 못하는 기괴한 지식을 자연스럽게 받아 치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 행동하게 되리라.

 

물론 그건 재앙이 아니다.

진짜 재앙은 아까 전에 말했듯이, 설정이나 세계관이 오염되는 경우일 뿐. 어쩌면 레이베리아의 진짜 목표라면, 평행차원이 융합되기 전에 일어나는 혼돈을 막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세계의 설정이 침범한다면, 꿈과 희망이 없는 이야기의 설정도 이곳에 찾아올 수도 있죠. 예를 들어 마법소녀가 사람을 죽이고, 그 사람이 부활해서 “매지컬~”이라는 기묘한 말과 함께 온 세상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거요.”

 

“그럼 저도 매지컬 루니아로 활동할 수 있으니 좋은 거네요오?”

 

“매지컬에 대한 단어가 무조건 좋다는 게 아니잖아요! 아까 제가 뭐라고 했어요!”

 

“으음. 백장미 찍고 싶다고 했었죠오.”

 

“제멋대로 말하지마! 그런 단어는 단 한마디도 안 했어!”

 

아직까지도 백장미타령을 신나게 하고 있는 루니아 누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소리친 것에 대해 뭐라 할 줄 알았더니. “귀여워라아~”라고 말하는 게 더 무서웠으니, 가급적이면 백장미를 찍자는 말이 나옴과 동시에 도망가도록 하자.

 

검은 고양이는 내 다리 위에서 앞발을 핥았다.

 

“그렇군. 주인의 말대로 확실히 이 재앙은 성가신 것이니라. 마왕이라는 존재는 분명 대중적인 눈으로 볼 때, 대부분 다 악인이 틀림없노라. 그런 설정이 짐에게 오염되기라도 한다면, 그거야 말로 무시무시한 일이 되어버리니. 지금 당장이라도 과거로 돌아가서 평행차원이 합쳐지는 것을 막는 일 밖에 없다.”

 

“잡화점이 하나의 시공간에 2개가 되지 않으면 될 일이기 때문이니까요?”

 

“그렇다.”

 

매우 확실하고 간단한 방법이다.

본래 시간대로 되돌아가는 건 오래 전에도 했으니까.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은요?”

 

“없다.”

 

없구나.

 

“그런 생각을 한 이유는요?”

 

“당연히 본래 시간대로 되돌아가서 ‘그것’을 하려고 할 뿐이다.”

 

“세상에~”

 

그것은 또 뭔데? 광대가 나와서 어린애들을 실종시키는 영화인가?

 

“마왕님도 대담하시군요. 그런 계획이라면 첩은 지금 당장 본래 시간대로 이동시킬 준비를...”

 

연한 초콜릿 피부를 지닌 마리아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체격은 어린애지만 검은 달의 여왕으로서, 저래 보여도 대재앙의 증거이며 새로운 시작의 알림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뭘 생각하는지 몰라도, 슬슬 아이니스에게 받아놨던 육포가 다 떨어졌으니 충전해야 한다.”

 

“결국 육포냐!”

 

나름 진지하게 생각하길래 그래도 레시아만큼은 다르다고 생각을 했더니. 결국 육포가 더 소중하기 때문에 우리가 있어야 할 시간으로 돌아간다니. 육포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선 다음에 고찰하자.

 

“그래도 지금까지 들어본 바로는 상당히 위험한 상태라는 거죠?”

 

황혼을 담은 듯한 눈빛이 번뜩였다. 1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매력이 베어 나오고 있는 소녀는 은빛의 비단과 같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푸른 차이나 드레스를 입고 앉아있는데, 조만간 길거리 싸움터에 나갈 준비라도 하는 걸까?

 

아무튼 나는 아리엘의 질문에 대답하기로 했다.

 

“맞아. 지금 이대로라면 몽마의 설정도 막 바뀌기 시작해서, 네가 한쪽 손에 시퍼런 칼날이 손톱처럼 자라나있는 장갑을 끼고, 엽기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을 죽일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양호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일은 어느 시간대를 가든 다 똑같이 일어날 꺼야. 그 증거로 우리는 미래에 오기도 전에 알지도 못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고 농담과 태클에 써먹고 있지. 이건 마치 성경책을 펼치고 반야심경에 대한 내용을 확인하는 것과 똑같다는 거야.”

 

“예시마저 저희가 원래 몰라야 하는 거잖아요.”

 

허탈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리엘의 말을 들어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그러면 나의 순수했던 과거부터 지금까지 평행차원들은 이쪽 차원으로 응집되고 있었다는 모양인데, 지금은 설정이 뒤틀려서 니알라토텝이 되어버린 어릿광대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어릿광대가 뭘 하는지 중요한 이유라도 알 수 있습니까? 마스터?”

 

“그 무지막지한 혼종이 다른 곳에서 난리를 치면 안 되거든...”

 

하얀 올빼미가 내 어깨에 붙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상 갸웃이라기엔 기이하게 꺾여버렸지만, 신경 쓰지 않고 다음 내용을 덧붙였다.

 

“시나는 그나마 다른 평행차원에서 넘어온 케이스라서 면역이 되어있는 희망 가득한 캐릭터인가?”

 

“그건 확실히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희망이 가득한 캐릭터는 아닙니다. 마스터에게 예쁨과 사랑을 항시 받아야 하는 가련한 캐릭터죠.”

 

“비둘기가 가련하다는 말은...”

 

“올빼미입니다. 냥캣.”

 

“시끄럽다! 내려와라! 싸우자!”

 

또 서로 경쟁심에 불붙기 시작했구나. 사소한 싸움은 좋지 않다만 지금 이런 모습을 보니, 저 둘에게 기이한 세계의 설정이 오염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당연히 안도하고 있는 와중에 거대한 마력폭발에 휩쓸렸다고 해서 안 아픈 건 아니다.

 

잠깐 정신을 잃는 동안에도 나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 정신을 잃었는데 생각을 어떻게 해?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살짝 검게 그을린 상태로 기침하는 것도 아니고, 각자 결계와 방어를 했는지 멀쩡히 일어서있을 뿐이었다. 물론 최고의 중심부에 맞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모두 나만 바라보면서 멍하니 있을 뿐.

 

“왜요? 또 뭐가 문제에요?”

 

“기괴하군. 평상시의 흐름이라면 주인은 마력폭발에 기절하고, 그 사이에 백장미를 찍을 옷을 입힌다는 정상적인 진행이 되어야 하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의 주인은 쓰러지지 않고 멀쩡하게 서 있지 않는가?”

 

“그게 왜 평상시의 흐름이고 정상적인 진행입니까? 그리고 중복된 말을 사용해서 강조하지 마시죠?”

 

평상시의 흐름은 잡화점에 사건이 들어오면 그걸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거다.

생각을 해보니 잡화점에서 사건을 받고 그걸 해결하는 것 또한 이상한데? 다시 생각을 해보면 잡화점 안에 있는 위험한 물품이 2층과 3층에 있는데, 그걸 지키는 역할이 더 비중이 크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기괴한 잡지를 찍기 위해 잡화점의 주인이 된 건 아니란 말이지.

 

“그러면 일단 투표를 하죠.”

 

“투표내용이라면 여기서 백장미를 찍는가? 아니면 본래 시간대로 돌아가서 찍는가에 대한 거죠?”

 

“아니에요. 루비아 씨.”

 

루니아 누나의 여동생인 루비아마저 기괴한 밧줄형태의 무언가를 손에 감싸며 입을 열었다.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사람의 부정하는 사람의 심정을 잘 모르는 거 같은데?

 

“그렇게 정색을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만, 루비아 상처받았습니다. 에엥. 에엥.”

 

“영혼마저 없는 울음소리라니. 그보다 신사에서 입었던 그 무녀복장 말고 좀 더 편한 옷이 있잖아요?”

 

“이것마저 입지 못하면 저의 캐릭터를 지킬 수 없습니다.”

 

“왜 캐릭터를 지키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건 개인의 자유니까 제가 뭐라 할 처지는 아니네요.”

 

“그럼 제 개인의 자유로 지금 백장미 찍을 것을...”

 

“사람의 말을 듣고 멋대로 해석하지 내뱉지 말아주실래요?”

 

잠깐 숨을 돌릴 시간이 필요했다.

 

“우선 리제로트를 처리해야 할 건도 있으니. 본래 시간대로 돌아가는 건 잠깐 미루도록 하죠. 그나마 시간이 덜 걸리는 이유라면, 레인의 성격상 자기가 공격할 시간을 멋대로 골라서 통보할 성격이니까요.”

 

아직은 돌아갈 시간은 아니다.

 

“리제로트는 굳이 죽이지 않으시다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거 같은데 말이죠?”

 

윈디는 내 옆에서 그리 말했다. 나는 분명 꼭 죽일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결국 레인을 돕는 건 나고, 죽일지 살릴지 결정하는 것에 대해 내 의견을 살짝 얹었을 뿐. 레인이 리제로트를 먼저 발견하여 죽인다면, 그건 어쩔 수 없이 레인의 선택일 뿐이다.

 

“아무리 강대한 적이라도 피를 흘려서 해결하는 방법은 옳지 못하지만, 레인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사실상 나도 그 녀석만큼은 막지 못할 거야.”

 

솔직히 말하면 레인을 막기가 싫다.

어차피 레인은 또 다시 자기 멋대로 일을 저지르고 수습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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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내내 일하면 죽어가는 것도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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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타

발레타 2-7

하늘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는 깊은 어둠 속, 트리폴리 해안에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그들은 빠르면서도 조심스럽게 해안 근처 마을로 들어가 집집마다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지고 잠을 자다 놀란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때를 기다린듯이 해적들은 정신없이 나오는 사람들에게 마구잡이로 칼을 휘둘렀다. 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보이는 대로 짓밟고 죽였다.
"해적이다! 해적이 나타났다!"
잠결에 들리는 시끄러운 바깥 소리에 발레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곧바로 칼을 들고 방문을 열어젖혔다. 병사 한 명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고 있었다.
"해적입니다! 급습이에요!"
발레트는 성벽 위로 단숨에 올라갔다. 이미 마을은 불에 타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고 짐승들이 시체 위를 날뛰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듯 했다. 발레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병사들은 두려움으로 가득차 주저앉아 있었다.
"각자 위치로!"
발레트는 중얼중얼거리는 병사를 일으켜 세웠다. 로메가스가 성벽 위로 뛰어 올라왔다.
"이미 마을은 초토화됐어요! 수비대는 전의를 상실했습니다."
물자 조달이 되지 않아 이미 창고에 화약은 동이 난 터였다. 병사들은 제대로 먹지 못해 집결할 여력도 없었다. 연병장에는 수비대장 멘데스가 병사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요새를 사수해야 한다. 각자 자리로 돌아가라!"
"화승총이 부족합니다. 대포를 쏠 화약도 없습니다."
지휘관 한 명이 고개를 떨군 채 멘데스에게 보고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싸워야 한다!"
멘데스는 칼을 뽑아 들며 단상에서 내려갔다. 성벽 위에서는 병사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추락했다. 공포스러운 괴성과 함께 요새를 뚫을 듯한 총소리가 들렸다. 총탄은 빗발치듯 성벽에 난사되었다. 수비대는 하나 둘 쓰러졌다.
"방어선이 뚫렸습니다! 누군가 성문을 열어준 듯 합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알 수 없는 함성과 함께 터번을 두른 해적들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수비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병사들은 모두 겁에 질려 있었고 성벽 아래로 뛰어내려 스스로 죽음을 택한 자들도 있었다.
"항복해라! 목숨은 살려주겠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해적이 앞으로 걸어 나오며 거만하게 소리쳤다.
"살고 싶으면 항복해라!"
병사들이 부들부들 떨며 하나 둘 칼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버틸 힘도 의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항복! 항복이요!"
멘데스가 칼을 버리고 손을 들었다. 발레트와 로메가스도 칼을 버렸다.
"누가 책임자냐? 너냐?"
우두머리 해적의 칼끝이 멘데스의 목에 닿았다. 멘데스는 해적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적은 알 듯 모를 듯한 웃음을 지으며 칼에 힘을 주었다.
"이슬람교로 개종을 할 건가?"
"그럴 일은 없소."
멘데스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말을 뱉었다. 우두머리 해적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치켜 올라가더니 뒤를 보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다른 해적이 배시시 웃으며 멘데스의 무릎을 꿇려 앉혔다. 멘데스의 눈이 질끈 감기는 것과 동시에 해적이 칼을 내리쳤다.
"살아남은 자들은 전부 배에 태워라!"
해적들은 소리를 지르며 기사단의 십자가 망토를 벗겼다. 발레트의 손목에 굵은 밧줄이 동여졌다. 기사단원과 수비대, 마을 주민들은 모두 한데 묶여 해안으로 떠밀려갔다. 마을은 연기로 자욱해 눈을 뜰 수 없었고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사람들만 흐릿하게 보였다. 평온했던 마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 이곳은 죽은 자의 땅이었다. 뒤를 돌아보는 발레트의 등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앞만 보고 걸어."
해적은 꼬질꼬질한 얼굴을 들이밀며 비열하게 웃었다. 발레트는 이를 악 물었다. 트리폴리의 기나긴 밤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