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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45 - 7

414

 

 

 

백장미로 인해 신도들의 인구밀도가 변화를 겪고 있는 신성 아우리온 제국의 두 집단. 빛의 대성당과 창세의 집회에 대해 나는 솔직히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서로에 대한 질투심 때문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함인지 잘 모르겠지만, 결국 그 둘은 서로 아우리스 여신을 믿고 있는 충실한 목자라는 소리.

 

어린 양 때들을 다스리고 올라가 최후에는 그 양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야 말로, 두 추기경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목자들이 서로 싸우면 양들은 하나 같이 불안에 떨기 마련. 게다가 양들을 서로 독차지하기 위해 공작을 펼치는 것이야 말로, 형편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으로 인해 내가 피해보는 것까지 감안하면 이건 이 상황대로 좋지 않다고 보기에, 전신거울 앞에서 청순하면서도 신비로운 여성이 크나큰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간 걸까.”

 

“그래도 카린 씨! 잘 어울리잖아요? 카렌과 같이 저를 매도해주세요!”

 

“시끄러워.”

 

짙으면서도 광택이 살짝 엿보이는 코발트 블루 색상의 긴 머리카락이, 내 눈 앞에서 이리저리 흔들고 있을 때야 말로 나는 직감했다. 평상시에 내가 실용성과 편의성을 따져서 입는 바지와 상의가 아닌, 극단적으로 몸매가 드러나는 하얀 수녀복을 입을 때야 말로, 저절로 한숨이 튀어나오기 위해 내 폐부터 입까지 전력질주를 하기 시작했고, 덤으로 검은 고양이는 내 머리 위에서 귀여운 울음과 더불어, 오른쪽 팔에는 하얀 올빼미가 “마스터. 잘 어울립니다.”라고 칭찬을 하며 내 심장에 쐐기를 꽂아 넣었다.

 

“나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성별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주인의 눈동자 색상을 바꿔보았노라. 역시 연한 보라 빛의 눈동자는 사람을 끌어오기 좋은 눈이지 않는가?”

 

머리카락의 색상을 따지지 않고 눈의 색상을 정해준다면, 오히려 그게 역효과가 날 수도 있기에 레시아가 수정해 놓은 눈동자를 본래 검은 색으로 되돌려놓았다. 페어링이 강화되어도 의외로 불편한 것까지 같이 늘어나버리는 바람에, 나에 대해 철저히 관리를 하고 있을 때쯤. 나와 비슷하게 생긴 소녀가 탈의실에서 나오며 입을 열었다.

 

“어머나? 어머니.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그 모습으로 성녀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전부 다 믿으실 정도로!”

 

카린의 2~3년전쯤의 모습이라면 정확히 카렌의 모습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는데, 똑같이 하얀 수녀복장으로 나란히 서 있으니, 실제로는 쌍둥이가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왜 이 녀석은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걸까?

 

“그 호칭은 절대적으로 미묘하니까 다른 걸로 불러달라고 했잖아.”

 

“마마.”

 

“너 맞는다?”

 

애석하게도 카렌은 호문쿨루스이기에 실제 나이로 따지자면 2살정도. 작년에 돌잔치를 했어야 할 정도로 매우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달의 기술력이 워낙 좋은 바람에 지금은 나의 체세포를 써서 자손이 있는 것보단, 동생 하나를 만들어 놓은 그런 기분이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신인류라는 단체가 깽판을 부리던 시절에, ‘호문쿨루스도 꿈을 꿀 수 있는 가?’에 대한 실험을 하려고 했고, 그것 때문에 태어난 것이 카렌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평화로운 시기가 아닌 이 상황에서 이런 모습으로 같이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또 다른 나와 이야기를 한다는 기분으로 말을 하고 있지만, 카렌 본인은 나를 아직까지 부모님으로 인식하고 있는 모양. 외형으로 따지자면 남매나, 자매와 같은 그런 개념인데...

 

“그럼 1주일간 저희는 베가프 오빠가 있는 곳에 다니면 된다는 거에요?”

 

“뭐, 그렇다고 하더라. 지금 이 작전은 내가 세우는 작전이 아니라, 베가프가 세우는 기묘한 작전이니까. 우리는 베가프의 지시대로 행하면 되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력질주를 마친 한숨이 입 밖으로 나왔다. 친구 하나를 도와주는 것이 이리도 부담이 가는 일이 될 줄이야.

 

“이거 종교에서 간판 얼굴 하는 거하고, 몽화관에서 간판얼굴 하는 거하고 뭐가 다른지 모르겠는데, 그보다 신도들을 많이 모으기 위해서 결국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상인들이 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잖아?”

 

“그래도 지금은 그런 부정적인 생각만 하지 말고, 가끔은 어머니도 자신에게 들어오는 부러움의 눈길을 긍정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면 “내가 너무 아름다워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빼앗는구나!”라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

 

언제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외면으로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항상 그래왔듯이 평화와 평온. 그 2개만 있으면 남들 사는 것은 부럽지 아니하며, 삶에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첫 번째다. 하지만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이미 평화와 평온은 내 마음에서부터 1억광년정도는 떨어져 있는 상황. 빛의 속도로 쫓아가도 얻지 못하는 2개의 단어들을 보면 지금 내가 왜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주인은 여전히 독백을 하면 늙은이 같노라.”

 

“그러니까 어째서 제 독백을 읽을 수 있는 거냐고요?”

 

“그냥 보이니 읽은 것뿐이다.”

 

오늘도 보안이 뚫린 걸까? 계속해서 개인의 생각이 외부로 노출되는 현상은 좋지 않은데. 이건 페어링의 강화고 뭐고 남들이 다 읽다 보니, 지금까지도 나의 독백이 노출되는 현상은 미스터리에 가까웠다.

 

아니면 그냥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전파를 받았거나.

 

“여전히 무시무시할 정도로 예쁘네. 지금은 카린이라고 불러야 할까?”

 

“카린은 애초에 죽은 사람인데, 왜 계속해서 불러오는지 여전히 모르겠어. 예전에는 레시아가 제대로 사기를 쳐서 지금은 한줌의 재로 멀리멀리 떠나고 있는 아이인데 말이지.”

 

나는 반 정도는 원망하는 눈으로 베가프를 쏘아봤지만, 베가프는 따듯한 미소를 띄며 내 말에 더 끼얹었다.

 

“그거라면 내가 부활을 시켰다고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만약에 대비해서 말이지.”

 

“너는 1년전에 죽어서 다 타버린 시신을 부활시킬 수 있는 슈퍼 사제라도 되는 거냐? 구슬 7개를 다 모아서 나타나는 신룡이 너를 보면, 분명히 기겁을 해서 어디론가 숨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구슬 7개를 모아서 나타나는 게 너라던가.”

 

“만약에 정말로 죽어서 다 타버렸다면, 나는 지금쯤 카일과 이야기를 하지 못했겠지. 그래도 지금은 친구 하나라도 살아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생각해.”

 

베가프의 말을 듣고 “그런 친구를 이런 일에 써먹으려고 하냐...”라며 중얼거린 나는, 고개를 숙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대해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마음의 준비를 끝낸 나는 고개를 들고 베가프의 눈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은 뭔데?”

 

“예배를 할 때 내가 서 있는 자리 옆에 의자가 있거든. 거기에 앉아서 예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돼.”

 

내 귀에서는 왠지 “1주일동안 조용히 예배나 들어보거라.”라는 소리로 해석이 되었다. 나는 제차 물었다.

 

“그것 뿐?”

 

“어. 그 외에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기도 하고, 네 성격으로 보면 성가를 시키거나 춤을 추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탈주할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래도 친구밖에 없다는 말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는지, 나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베가프가 그나마 쉬운 작업으로 생각해줬다. 그러면 밤을 제외한 아침과 낮에 예배를 하는 동안은, 도달하지 못했던 평화와 평온을 만끽할 수 있으니, 저절로 미소가 피어 오르면서 “그거라면 맡겨둬라!”라고 힘차게 답을 했다.

 

***

 

-찰칵! 찰칵!

 

“자아. 카린! 미소!”

 

“저기. 좀 궁금한 게 있으니까 그 자리에 잠깐 앉아보세요. 루니아 누나.”

 

“지금은 언니에요오?”

 

“알았으니까 좀 앉으라고요!”

 

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찾아와서 베가프의 예배를 듣는다고는 하지만, 지금 당장 하얀 기사단 제복을 입은 루니아 누나가 이곳에서 나를 찍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장면을 건너뛰었다고 할지라도 지금처럼 혼란스럽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루니아 누나는...”

 

“언니.”

 

“아무튼! 저를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에요? 독자 하나가 계속 이런 패턴으로 나아가니까 재미없다고 하잖아요! 이 장면도 그 독자 분이 본다면 스킵을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할 거에요!”

 

“그야 저의 역할이 이것밖에 없는 걸요오?”

 

나의 골머리가 썩어도 단단히 썩게 생겼다.

 

“차라리 이 기회에 루니아 누나의 포지션...”

 

“언니.”

 

“아 좀! 그냥 들어요! 아무튼 포지션 좀 바꿔보자 고요! 좀 신선하게 나타나서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그런 보람참 삶이 있잖아요! 매번 시작마다 억지로 자고 있는 사람을 끌고 가서 백장미나 촬영하지 말고!”

 

루니아 누나는 풍성한 블론드 빛의 머리카락을 검지 손가락으로 꼬면서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어떻게 하면 지금의 루니아 누나가 재미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지 고민을 하는 사이에, 루니아 누나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저는 카린을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는 걸요오?”

 

“사람이 태어나면 각자의 사명이 있지만, 저를 괴롭힌다는 사명은 없어요! 그보다 여전히 그렇게 나아가려고요? 차라리 검술 선생님이라도 해주던가!”

 

“그럴까요오?”

 

‘그럴까요.’라는 말이 왜 나오는 거야?

어째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거야?

 

지금 것 나를 괴롭히는 역할이 너무 익숙하다 못해 지금은 ‘루니아 누나=게릴라 케릭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갑자기 나타나서 일을 저지른 이후에 바람처럼 사라져, 다시 나타나기 전까지는 루니아 누나의 존재에 대해 아무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카린은 제가 검을 가르치기에는 너무 역부족인 걸요오?”

 

“제가 그만큼 약해요?”

 

“그보단 마법에 재능이 더 많으니까요오. 무엇이든지 재능이 있는 방향으로 실력을 갈고 닦는 것이 강해지는 법이잖아요오?”

 

“그거 마치...제가 검을 쓰는 게 재능이 없다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재능이 없다기보단 커다란 벽에 막혀있어요.”

 

“벽이요?”

 

루니아 누나는 검사의 길에서는 달인을 넘어선 신급의 경지니까. 평상시에 내가 싸워온 것을 어디선가 몰래 지켜보기라도 했다면. 혹은, 가끔가다 이루어지는 대련 속에서 내가 어떤 상태인지 확인을 했다면. 루니아 누나의 말은 지금 내가 경지를 넘어가기 위한 장벽에 가로막혀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소리다.

 

“카린도 검에 대해 재능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마법으로 인해 장벽이 더 커져버린 상태에요오. 저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기에 오히려 검강<Aura Blade>을 사용하게 되는 방법을 터득했지만, 카린은 마검사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검만 숙달하고, 대부분은 마법으로 부족한 능력을 메워버리는 형식이죠오.”

 

루니아 누나의 붉은 눈이 나의 상태를 그렇게 꿰뚫었다.

 

“그나저나 제가 카일을 괴롭히고 사라지는 이유야. 당연히 잡화점 멤버가 너무 많기 때문이거니와. 독점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그렇지요오. 생각을 하면 저는 그리 나올 수 없는 비중을 껴안고 태어난 비운의 캐릭터랍니다아?”

 

스스로 비운의 캐릭터라고 말하지마.

더 슬퍼지잖아.

 

“그래도 신선한 모습이라면 필요하겠네요오. 매지컬 루니아라던가아?”

 

“아뇨. 그냥 가끔가다 나오는 만담캐릭터로 합시다.”

 

 

루니아 누나의 포지션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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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늦게 감평보았습니다.

 

요약을 하자면...

문장에 대해 잘 쓰고 다듬어 달라와 루니아가 매력이 없다는 중심으로 생각을 해보니.

그 문제점은 제가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런 감평을 듣는 날에는 연습을 하고 의견을 수용해서,

다른 작품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낙서장처럼 쓰고 있는 이 글이 평소처럼 똑같이 갈겨써버리게 된다면,

저는 지금에서 발전을 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되겠죠.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글은 낙서처럼 쓰고 있지만, 뭔가 저도 진지하게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면서

방해받지 않고 천천히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시간 날때는 잡화점 리메이크에 대해 생각은 해보겠지만,

이미 400화가 넘어가버린 시점에서 지옥도가 따로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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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45 - 6

413

 

 

 

베가프는 추기경이 되고 나서 성격이 확실히 많이 죽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불미스러운 상황에서 나 같아도 주먹을 힘껏 휘두르고 싶은 상황에서, 이상한 말벌이 상대의 근처에 돌아다니는 걸 보고 그걸 잡았다고는 하지만, 베가프가 저런 행동을 보이는 거야 말로 지금 크리자리드를 이길 방법이 없다는 상황이다. 대체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르는 그 저주받아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잡지를 1년간 매번 신간호를 나눠준다는 공약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의 신도들에게 있어서는 ‘쿠쿠섬 치킨’과 같은 열렬한 효과를 볼 수 있었으니까. 베가프의 충실한 신도들마저 한 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흔들릴 정도라면.

 

그보다 내가 왜 ‘쿠쿠섬 치킨’이란 정체불명의 치킨으로 비유를 한 거지?

 

[오늘 저녁은 닭인가?]

 

[레시아는 왜 먹을 것 이야기만 나오면 저에게 말을 거는 건가요?]

 

[그야 먹는다는 것은 포만감을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마계를 뒤집어 엎으면서 마왕의 자리로 올라올 당시에, 폭식의 공작인 그리티스가 “마왕은 항상 산해진미를 적절하게 먹어가며 학살을 즐기는 것도 좋고, 고문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음식에 대한 맛을 제대로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니 짐의 입은 고급으로 될 수 밖에 없노라. 애초에 이번 디저트는 주인이 되는 것인가?]

 

[은근슬쩍 주제의 방향을 바꾸지 마시죠. 누가 디저트에요? 누가!]

 

레시아는 내 안에서 조용히 음흉하게 웃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생각을 하는 거지만, 아무래도 내가 사역마를 잘못 뽑은 것은 아니지만, 창조주가 잠수함 패치를 해버렸는지 성격이 기묘하게 글러먹기 시작해버려서 아무래도 교육이 필요할

 

[호오? 짐을 상대로 교육이라니?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조교라고 봐도 되는 건가?]

 

[교육은 교육이에요! 조교라고 말을 쓸 이유까지도 없어요!]

 

내 독백이 레시아에게 끊어져버렸다.

그보다 왜 단어를 바꿔서 말하는 건데?

그리고 교육과 조교는 절대로 같은 말이 아니다.

 

[저도 마스터에게 교육을 받고 싶습니다.]

 

[시나가? 시나는 착실한 아이니까 교육을 받을 필요 없어.]

 

시나는 잠깐 아무런 말도 없다가 약간 초조한 어조로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 보, 보건체육을 실기로...]

 

[그건 다른 곳에서 써먹는 주제잖아! 그리고 누가 보건체육을 실기로 가르치냐!]

 

베가프하고 이야기를 하기 전에 태클에 온 정신을 쏟아 부어버렸으니, 어느새 잠을 자다가 눈을 뜬 윈디는 “카일 씨? 왜 그렇게 식은 땀을 흘리고 계세요?”라고 물어볼 지경이었다. 안에서 동화하던 두 사역마가 [이번 주인을 데리고 보건체육을 하는 것은 바로 짐이다!]라고 주장하는 레시아. 그리고 [보건체육 필기를 만점 받기 위해선 마스터와의 실습이 필요하니 안됩니다.]라며 대항하는 시나가 있었다.

 

“보건체육에 대체 뭐가 실렸길래 실습이고 나발이고...”

 

내 기억상으로는 부목법이라던가 심폐소생술이외엔 다른 건 없었다. 하긴 그게 몇 년 전의 교과서인데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겠어. 나의 어린 시절에 교육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서 낮게 중얼거리자 윈디는 내 말을 들었는지 입을 열었다.

 

“아! 그거 있잖아요! 건전한 성교육이라던가 그런 거! 그 구간을 넘어가면 우리는 순수한 동심이 다 날아가고,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이론적으로 배우는 단계가 되는 거죠. 당연히 그만큼의 정신적인 성숙이 되었다는 가정하에 시행하는 거지만, 저도 예전에는 정말 놀랬어요. 저는 따지고 보면 정령왕이잖아요? 그래서 지금까지 저의 자손들은 알아서 생기는 건 줄 알았는데, 역시 생물의 진화방법이라던가 설마 자손을 남기기 위해...으우워어우어어!”

 

이야기를 듣고 그제서야 모든 것이 기억나서 양손으로 윈디의 볼을 잡고 늘렸다.

 

“그렇군. 이제 잘 알았어. 예전에도 나를 호시탐탐 노리는 이상한 여선생에게 큰일나지 않기 위해서 극악의 세월을 살아온 기억을 떠올려줘서 참으로 고맙구나? 응?”

 

“아아! 아프잖아요! 좀 더 해주세요!”

 

아프면 보통 그만둬야 정상이잖아.

나는 윈디의 말과는 반대로 그만두면서 골치가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카일은 말을 한마디라도 안 하면 살 수 없나 보네. 그래도 주변에 방음마법을 펼쳐서 방해는 안 되었으니 봐주도록 할게.”

 

베가프는 다른 신도들이 전부 밖으로 나가는 동안, 주먹을 휘둘렀을 때와는 전혀 다른 따듯한 인상으로 말을 걸었다.

 

“레시아와 시나, 윈디는 하루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린 진귀한 존재거든.”

 

“토끼도 아니고. 그보다 윈디 씨? 다른 신도들이 보는 눈 앞에서 졸아도 상관은 없지만, 편안하게 누워서 자는 건 안 되요.”

 

“아. 네. 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

 

수녀복장을 하고 내 무릎을 베개로 삼아 자고 있던 건 지적 받을 행동이 맞다. 어쨌든 후드를 쓴 상태로 베가프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슬슬 주제로 돌아가보자.

 

“크리자리드라는 사람하고는 꽤나 사이가 좋지 않나 보네. 아우리스 교단원들이 빛의 대성당 3층까지 빼곡하게 보인 것이 아니라, 창세의 집회라는 불가사의한 곳으로 가는 걸 보면?”

 

그러자 베가프의 고운 이마가 찌부러지면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크리자리드는 본래 귀족이니까. 자본으로 밀어붙여서 백장미 하나만으로 신도를 한 가득 빼앗겼어. 이 제국은 아우리스 여신님을 칭송하기 위해, 칸포리우스의 대륙반란을 잠재우고 새로 이름을 지은 것임에도 말이지. 하지만, 지금의 교황님께서는 이 상황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 그것은 내가 어떻게든 뛰어넘어야 하는 시련과 같은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 시련이 너무나도 강력하다는 소리였다.

너무나도 강력해서 베가프가 예배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대뜸 없이 나타나지 않았는가?

조만간 그 강력한 시련으로 인해 태양을 지워버리고, 너무 춥다는 이유로 태양을 2개나 만드는 바보 같은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 그 시련의 이름을 “더블 썬 파워.”라고 명명해볼까?

 

“카일? 이상한 독백은 그만둬줄래? 아랑마저 기겁을 하고 있잖아?”

 

“어째서 내 독백은 누구나 다 읽게 되냐고! 보안이 제대로 이루어졌는데 말이야!”

 

조만간 독백을 할 때는 모험가가 아니라 크롬을 사용해야겠다.

 

“아무튼 지금은 크리자리드를 이길 수 없어서 전전긍긍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거지? 자본력이라던가, 상대를 이끄는 카리스마라던가, 애초에 상대는 말만 했는데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건 안 좋은 습관이라고? 여전히 옛날 버릇은 고쳐지지도 않는구나?”

 

“어쩔 수 없어. 나는 말싸움을 하기에는 적절한 단어들이 생각나지 않거든.”

 

나는 이내 한숨을 내쉬면서 베가프라는 인간을 다시 한 번 고찰했다. 그러니까 베가프는 외적으로는 친근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할 것 같지만, 내면은 상당히 거칠고 잔인한 버서커가 존재한다.

 

어떻게 보면 루니아 누나와 비슷한 양면성을 띄고 있는데, 옛날에는 베가프가 화를 내기 시작하면 나와 마일론이 한동안 마을로 돌아오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만약 임무를 하다가 다치는 날이 있다면, 그 상처가 다 나아야 마을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네. 그렇다고 해도 지금은 내가 있어봤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으니. 이 건에 대해서는 잡화점에서 충분히 생각한 다음에...”

 

나는 윈디와 함께 일어나려고 하는데, 베가프는 나의 오른쪽 어깨를 살며시 잡으며 도로 앉혔다. 뭔가 엄청 기대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기를...

 

“내가 지금 없는 것은 크리자리드만큼의 자본력이라던가, 교단원들에게 해줄 수 있는 물질적 보상이 없다는 거야. 하지만 내가 가장 친한 친구가 백장미에 출현하는 사람이라면, 그 소문은 멀리 퍼져서 이쪽으로 돌아올 지도 모르겠어.”

 

베가프의 극단적인 선택이 나의 고생길을 훤히 열기 전에, 최대한 베가프를 설득한다는 입장으로 천천히 단어들을 내뱉었다.

 

“저기. 우리 이러지 말자. 나는 이런 곳에서까지 그런 바보 같은 마네킹이 되고 싶지 않아. 애초에 우리 둘은 친구잖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멋대로 친구를 희생시켜도 되는 것이 아니잖니?”

 

“하지만 친구가 곤란할 때는 도와줘야 하잖아? 그래서 뭐로 할 거야? 여장을 해서 싸인회를 열어줄래?”

 

“내가 너의 부탁을 승낙했다는 전제로 흐르고 있잖아! 너 누구야! 베가프 아니지! 당장 베가프 돌려줘!”

 

그러자 내 어깨에 있는 베가프의 손에 힘이 한 가득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어깨뼈와 근육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엄청난 고통에 내 입에서 순간 비명을 지를 뻔했으나, 다른 한 손으로는 베가프가 내 입을 막아 그나마 소리를 조금 막아냈다.

 

“지금껏 카일이 사용하는 아이언 클로의 출처를 생각을 잘 한다면, 지금은 나의 부탁을 따라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햇살 같은 부드러운 웃음으로 저렇게 잔인한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역시 이 녀석은 베가프가 아닌 건가!

 

“너 어릿광대지! 그렇지! 베가프 어디에...끄아아악!”

 

윈디와 레시아, 시나가 있는 장소에서 내가 아이언 클로로 고통 받을 줄은 몰랐는데. 아무튼 내 안면근육을 모조리 박살내겠다는 의지로 무장한 베가프의 왼손이, 천천히 나를 압박하고 있을 무렵. 레시아와 시나는 나의 비명소리를 듣고 나왔다. 본 모습이 아니라 검은 고양이와 하얀 올빼미가 그 자리에서 튀어나왔는데, 그 모습을 보며 레시아는 감탄하는 말이 이곳 저곳에서 튀어나왔다.

 

“좋다! 주인의 친구여! 우리가 여태까지 당해온 아이언 클로 mk.2를 이 자리에서 보여주거라!”

 

“마스터. 애도를...”

 

“너희들은 사역마이면서 왜 안 도와주는 건데! 알았어! 베가프! 도와줄게! 도와주면 되잖아!”

 

무식한 아이언 클로를 한 차례 당하고 나서는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 있는 동안, 레시아는 베가프에게 다가가 말을 했다.

 

“주인의 친구여. 짐이 생각을 해보니 백장미의 모델이라고 해서 이곳에 둔다면, 신도들에게는 그리 흥미를 가질 것이라고는 볼 수 있으나, 그리 제대로 된 효과는 받을 수가 없을 것 같노라. 평상시의 모습이건, 여장을 시키던 언젠가는 주인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아까와 같은 상황을 마주하기 마련이니까.”

 

“마왕님의 말도 일리는 있네요.”

 

아우리스 교단의 추기경과 마왕과의 대화라니.

누가 본다면 정말 신성모독이다.

 

“저에게 한가지 계획이 있습니다. 베가프 추기경.”

 

시나는 베가프의 어깨를 타고 올라가서 뭐라고 속삭이듯 조용히 말했다. 내가 들리지 않게 철저히 보안을 하는 걸로 봐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나를 어떻게 써먹는다는 소리인데.

 

“그러면 나는 이제 잡화점으로 가볼까? 윈디. 레시아와 시나는 챙기고 오세요.”

 

이럴 때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빠져나가는 것이 정공

 

-덥썩

 

...법인데......

 

“왜 그래? 베가프? 내 어깨를 잡고 말이야?”

 

“카일의 사역마가 나에게 친절하게 말해주기를 카린의 모습으로 변한 뒤에 달에 있는 카렌과 같이 이곳에서 방문한다는 목적으로 소문을 돌리면, 상당히 많은 신도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고 하던데? 애초에 카린의 모습으로 이미 아우리스와 친하다면서? 여신으로부터 축복받은 미녀가 온다는 타이틀로 걸어놓는다면 괜찮을 거라고 하는데?”

 

나는 믿을 수 없는 눈으로 시나를 바라봤고, 하얀 올빼미는 오른쪽 날개를 하나 들어올려 자신이 잘했다는 듯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넌 돌아가면 아이언 클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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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종교인들도 힘들어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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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45 - 5

412

 

 

 

윈디가 인형옷에서 다른 옷으로 갈아입기까지는 20분의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하지만 투자가치가 없어지는 듯한 이상한 수녀복을 또 입고 나온 윈디에게 뭐라 한 소리를 해주고 싶었으나, 이 이상 시간이 지체된다면 베가프를 오늘 안에 못 만날 것 같아서 아무런 말도 없이 사키엘의 문을 사용했다. 지금도 빛의 대성당이 존재한다면 그 앞에까지 데려다 줄 것이라고 믿고, 문고리를 잡아 비틀고 있는 그 순간에 모든 사람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며, 오랜만에 보는 아우리스 교단의 하얀 복장을 입은 베가프는 오늘도 일을 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주변 사람들을 둘러 보았을 때. 왠지 예배보다는 베가프를 보러 온 사람이 좀 있을 정도로, 다른 눈에서는 잡념이 들어간 듯이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은 이런 시간에 졸음을 못 이겨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처럼 자야 하니까.

 

“이래서 아랑이 베가프 옆에 있어도 괜찮다고 한 거였군. 신앙은 어느 정도 몰려오니까.”

 

윈디의 바람장막으로 가려진 나의 모습과 묻혀진 나의 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아마 투명인간이라던가 유령의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사람도 많은데 여기서 하면 될까요?”

 

따로 할 일이 있던가? 아니면 윈디는 몰래 예배를 받는 척 하면서 조사라도 하려던 참일까? 나의 궁금증을 유발한 윈디의 말로 인해 질문을 안 할 수 없었다.

 

“응? 뭘 해?”

 

“낑낑!”

 

“하지 말라고!”

 

내 신체마저 가속시켜서 아이언 클로를 하려고 했으나, 지금은 윈디가 장막을 펼쳤기 때문에 머리를 살짝 밀치면서 놔줬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윈디는 어느 순간 눈과 입이 웃으면서 “헤헷! 드디어 저의 가치를 알아보시는군요? 제가 그렇게 사랑스럽나요?”라고 기어오르고 옆에 붙어 있었다.

 

“너는 가만히만 있으면 정상적인데 말이야.”

 

“그때는 히로인의 마음에 들뜨도록 “너는 가만히만 있으면 예쁜데 말이야.”라고 말해줘야 정석이 아닙니까? 카일 씨.”

 

“나에게 정석이고 뭐고 따지지마. 그리고 나의 기준으로는 외모보다는 정신상태부터 판단하니까 그것부터 알아 둬.”

 

잡화점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개인의 개성이 너무 강력해서, 외모나 스타일에 대해서는 평범한 여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용모가 있으나, 그 이상한 사고방식이 그걸 다 씹어먹는 경우가 있다. 그 중 가장 뛰어나게 자신의 장점들을 단점이 다 갈아먹는 멤버를 뽑으라고 하자면 윈디라고 하겠지.

 

바람의 정령왕으로 실피드라는 이름이 본명이지만, 이곳에서는 계속 윈디 메르아라는 가명을 쓰고 있기에, 나는 항상 윈디라고 부르고 있을 뿐. 윈디에게 힘을 빌리고 싶다면 진명을 이야기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프리트처럼 그냥 동일하게 기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카일 씨는 너무 조심스럽네요. 사람을 대하는 게.”

 

“외견으로는 속지 않기 위해 수행해온 삶이 있었으니까. 물론 잡화점의 멤버들은 하나 같이 다 신뢰하고 있어. 문제가 있다면야 당연히 너희들은 나를 사냥감으로 인식한다는 거야.”

 

“그래도 그게 남자의 로망 아닐까요? 미인들 사이에서 노림을 받는 남자란...후후후.”

 

“침이나 닦고 이야기 해.”

 

음흉하게 웃으면서 침을 닦는 윈디는 나에게 아직 뭔가 이야기를 하려고 하듯 계속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이야기를 하라는 싸인으로 “왜?”라고 물어보자.

 

“카일 씨는 굳이 이 곳에 와서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거에요?”

 

“베가프가 잘 살고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이곳이 어떻게 난장판이 되었는지 보려고.”

 

“또 자신의 탓이라면서 수습하려 할거죠?”

 

“......”

 

그럴 마음은 2%정도 있었지만, 지금은 수습보다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온 것뿐이다. 집단으로 무언가에 매료되어 광신이 되었다면, 지금 이곳도 그렇게 안전한 곳은 아니니까.

 

-콰앙!

 

요즘은 다른 애들이 등장하려고 할 때마다 뭔가 부수고 와야 하는 규칙이라도 있나? 하긴, 노크를 하고 “실례합니다. 저희들은 악역인데요. 이제 슬슬 진행을 위해서 들어가도 될까요?”라는 악당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크하핫! 이곳이 빛의 대성당이란 곳이군!”

 

“크리자리드 추기경! 지금은 아우리스 여신님께 올리는 예배시간입니다!”

 

“아우리스 여신님께서는 공물을 좋아하신다! 그러니 오늘도 공물을 수거하러 왔다!”

 

분명 사제에서도 배가프의 계급은 추기경에 속할 텐데. 저 검은 사제복을 입은 녀석은 광신도의 수장이라도 되는 걸까?

 

“기적을 보여주도록 하지! 천상의 뿔피리여!”

 

거대한 고동을 들고 입을 불기 시작하자, 공기를 가로지르는 시끄러운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예배당 천장에서부터 웅장하고 부드러운 햇빛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신도들 앞에서 멋대로 신성력을 빌려 쓰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당황한 나머지 상대에게 소리를 치는 베가프와는 다르게 크리자리드라는 남성은 검은 후드 속에서 “후후후!”라고 낮게 흐느끼듯 웃으며 곧 목소리를 높였다.

 

“저기 베가프 추기경은 자신의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겁쟁이다! ‘빛의 대성당’이 아닌 ‘창세의 집회’로 들어오면, 매번 신간호로 들어오는 백장미를 공짜로 보급해주도록 하지! 1년동안 말이다!”

 

시즌패스로 백장미를 주는 거냐.

그런 무시무시한 잡지를?

 

그런데 백장미의 이름이 이곳에서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베가프 앞에 앉아있던 신도들은 곧 이어 동요하기 시작했다.

 

“야. 저기로 가면 백장미 신간호를 1년동안 무료로 준데.”

“저 사람은 돈이 많은 가봐.”

“밥도 많이 사줄 것 같지 않아?”

 

애석하게도 베가프는 내 친구답게 정신적인 면의 성숙을 주도하고 성실한 참된 목자라고 한다면, 크리자리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물질적으로 우선 신도들의 마음을 빼앗아, 최종적으로는 여신에게 예쁨을 받으려는 목자라고 보면 된다. 빛의 대성당과 더불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창세의 집회라는 단체는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베가프가 고민에 빠진 이유도 이해를 할 것 같았다.

 

거의 기울어졌다는 싸움을 역전시키는 것은 누구나가 예상하지도 못했던 베가프의 분노였다.

 

“거짓된 기적과 입발림으로 사람들을 매혹하려고 하다니! 너희들이 하는 것은 악행과 다를 바가 없다!”

 

연한 갈색의 새집머리가 하얀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면서, 베가프의 머리 위에는 여우귀가 자라났고 등 뒤에는 9개의 꼬리가 꽃처럼 만개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에 주변에 있던 수녀들은 “꺄아!”하고 환호성을 질렀고, 자리를 채웠던 신도들과 크리자리드를 따라온 남자들도 “오오오! 귀엽다!”라고 외쳤다.

 

저기? 남자들?

 

“흥. 그 구역질 나는 신령에게 몸을 빼앗기는 거야 말로 아우리스 여신님에 대한 모독 아니더냐! 여우에게 홀린 녀석이 잘났다고 추기경을...”

 

그 순간 베가프의 모습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을 무렵. 크리자리드의 바로 앞까지 이동한 청년은 크리자리드 얼굴 바로 옆으로 위협적인 스트레이트를 휘날렸다. 그 안에 담겨있는 어마어마한 신성력을 자랑하듯, 거대한 빛을 품고 있는 곧은 주먹으로 인해, 정작 베가프를 모욕했던 남자는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기 시작했다.

 

무서워서가 아닌 신성력을 담은 그릇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크리자리드. 아무리 성급하게 온다고 한들. 자신의 위험에는 항상 신경을 써야죠.”

 

추기경이라는 호칭을 뺀 베가프는 천천히 주먹을 내질렀던 손을 펼치자, 거대한 말벌이 하늘 위로 천천히 날아가서 모습을 숨겼고, 되려 자신을 구해준 베가프가 아무일 없다는 듯이 등을 돌며 돌아가자, 이내 분개한 얼굴인지 부끄러운 얼굴인지 미묘하게 섞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걸 빚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다. 베가프 추기경. 돌아가자!”

 

요란하게 등장했지만 크리자리드의 옆에 붙어있는 검은 신도들은, 고장 나버린 문을 어떻게든 수리하고 원래대로 복구 시켜놓고는 “실례했습니다.”라며 인사하고 돌아갔다. 베가프는 깊게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면 이 일은 여러 번 벌어지는 모양. 아직까지 불안정한 제국에서는 여러 광신들이 새로 생겨나서 신도가 이리저리 옮겨지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었나 보다.

 

“정말 요란하네요. 그보다 이곳에서도 백장미가 가장 인기가 높군요.”

 

“아우리스 여신이 좋아하거든...”

 

천상에는 인간의 물품을 들여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지만, 아우리스 여신이 백장미를 사기 위해 인간계에 몰래 내려온다는 소문도 있고, 실제로 천계에서 싸인회까지 열어본 나의 경험으로는, 지금도 몰래 어디선가 백장미를 보고 있는 아우리스 여신을 생각하니 참담함에 눈물이 앞을 가려서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요새는 데모르테가 잡화점에서 살고 있다 보니, 대신 구매를 해주는 모양이기도 하고...

 

“그런데 거기서 뭐해?”

 

바람장막으로 몸을 감싸서 보이지 않아야 할 윈디와 나를 알아차렸는지, 아직까지 아랑과 동화하고 있었던 베가프가 이곳을 보며 입을 열었다. 더군다나 후드와 로브로 온 몸을 가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알아보는 것은 역시 친구밖에 없었으니까.

 

“윈디. 장막을 해제해.”

 

“알았어요.”

 

강한 바람이 예배당을 가로지르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자, 모든 신도들이 나와 윈디에게 시선을 모조리 옮겼다. 모든 시선에는 동요와 당혹감, 경의, 황당 등. 여러 감정들을 표출하고 있는 눈이었으나, 베가프만큼은 오직 반가움의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알아차린 거야?”

 

“그야. 아랑과 동화를 했을 무렵이지. 빈자리에 앉아서 쉬고 있어. 예배가 끝날 때까지는 정숙 하는 거 있지 말고.”

 

유아하게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배가프의 말을 듣고는 나 또한 천천히 빈자리를 찾아 앉기 시작했다. 정숙을 하라고 해도 윈디는 정숙이라는 단어에 거리가 멀었으니, 이윽고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 주변에 마법으로 방음벽을 새워야만 했다.

 

“요즘 베가프라는 친구분도 점점 귀여워지고 있네요! 하지만 아까 화를 낼 때는 상당히 무서운데, 역시 친구는 끼리끼리 뭉치는 것 같아요.”

 

“마일론을 만나면 그 생각도 들지 않을 거야. 그리고, 베가프는 사제가 되기 전까지는 비유하는 말이 있다면 의무관이니까. 저 녀석이 수술용 칼 하나만 잡고 있으면 나와 마일론은 싸움을 멈춰야만 했지. 그래도 사람을 살리겠다는 소신과 기특한 생각이, 여신의 눈에 들어와서 신성력을 빌려주고 사제가 되었다는 소리도 있어.”

 

“하지만 초창기와는 다른 말이잖아요? 그냥 왕궁에서 사제교육을 받다가, 카일 씨가 잡화점의 주인이 된 계기로, 놀라울 만한 잠재능력으로 단기간 내에 부활까지 배우고 나서 파이론에 도착했다는 것이, 베가프 씨를 소개하는 말이 아니던가요?”

 

대체 그 머나먼 과거의 일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그때는 누락되어있는 부분이 있었어. 애초에 나와 마일론, 베가프는 서로 친구였으니까. 같이 활동한 것은 맞는데, 베가프는 용병생활이라기 보단 거의 자원봉사에 가까운 의료지원이었거든. 생각을 해보면 그때부터 여신의 눈에 들어온 것 같아. 몇 년을 해야 하는 교육을 몇 주로 줄여버린 베가프의 놀라운 재능에 꽃을 피우게 했으니까.”

 

 

잠깐의 혼란이 있었으나 천천히 분위기를 다시 잡아가는 베가프의 또렷한 목소리를 들으며, 윈디는 어느 사이에 내 무릎을 배게 삼아서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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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가프가 의료지원을 해주던 당시에,

다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카일과 마일론이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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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마녀

바다 마녀의 이야기

공주가 살아 돌아왔다. 


 칠 년 전, 왕국 인접한 바닷가에 자주 출몰하던 괴물은 인가를 박살내고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그는 또한 지능이 뛰어나 사람이 놓은 그물이나 속임수에 걸려들지 않았다. 괴물은 내키는대로 지냈다. 해안가는 그의 영토였다. 왕은 신전에서 기도하던 중 신탁을 받았다. 그것은 괴물의 목소리였다.

 

《너희 공주를 바쳐라. 그것을 받고 힘을 얻겠다.》

 

사뭇 명확했다. 신탁이기보다는 명령에 가까웠는데, 그렇지 않아도 쏟아지는 탄원에 머리를 싸쥐고 괴로워하던 왕은 그 길로 외동딸을 제물로 보내고 말았다. 백성들은 안타까워하며 공주의 행렬을 눈물로 따랐다. 몇몇은 그러지 않은 체 하며 은근히 속시원해 하는 한편 고소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공주는 그 용모와 자질로 이름이 높았던 것이다. 공주가 떠나던 날, 왕실 점성술사가 앞으로 나와 왕에게 고했다. 

 

"폐하, 왕국 곳곳에 공주를 구하고 괴물을 무찌르는 자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는 벽보를 써 붙이는 한편 소식 알리는 자들을 보내 널리 알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왕은 무표정하게 답했다.

 

"이미 보냈잖소. 너무 늦었소."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폐하. 일국의 왕녀십니다. 발 빠른 말을 탄 자들을 시켜 곳곳으로 전달만 하셔도, 아니, 단단히 무장한 병사들만 보내셔도...."

 

"끝났다니까."

 

점성술사는 왕에게는 딸을 구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전부터 의심해왔지만, 이제는 살아날 길이 없었다. 그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날 내내 술에 취해 지냈다. 공주는 죽겠구나, 공주는 살아남지 못하겠구나, 그는 졸음에 겨워 혼잣말처럼 그 말만 연신 반복했다. 공주의 행렬을 호위하던 병사들은 그를 바위에 꽁꽁 묶어둔 채 사라져 영영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그의 외침은 바닷가의 철썩대는 소리에 묻혀 덧없이 스러졌다. 몇 명이 안타까이 돌아보았으나 누구도 그를 구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말머리를 돌린 병사 하나가 하얀 물결과 함께 햇살을 받으며 하늘로 솟아오른 비늘과 아가미 달린 괴수가 바위를 덮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 후 바다는 평안했다. 괴물은 약속을 지켰다. 더는 출몰하지 않았다. 공주를 대가로 교환한 평화는 오래오래 지속되었다. 사람들은 왕을 소리 높여 찬양하고, 희생된 공주의 형상을 본 따 조각상을 제작하고, 그에 대한 전설을 만들었다. 예컨대 공주가 제물로 바쳐진 바다는 날마다 그가 부르짖던 소리로 구슬프게 운다던가, 그럴 때면 갈매기 떼 또한 화답하듯이 울부짖는다던가, 하는 것들. 공주가 희생된 때는 밤이 아닌 낮이었지만 달이 뜨는 날이면 공주의 영혼이 반사되는 빛 무리를 밟으며 바다 위를 배회한다는 말도 돌았다. 어부들은 공주의 영혼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 대한 노래를 지어 불렀다. 아주 구슬프고 낭만적인 음조였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리고 정확히 칠 년 뒤, 공주는 살아 돌아왔다. 온통 젖어 퉁퉁 부어오른 몸으로 비린내와 짠내를 풍기며 해안가로 걸어나온 그는 이전의 공주가 아니었다. 어촌의 사람들은 그가 바다 요정이거나 악귀인 줄 알았다. 그러자 공주는 픽 웃으며 물결 치는 바위 위를 가리켰고, 그제서야 사람들은 동상과 그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공주는 피곤한 눈으로 따가운 햇볕과, 질리도록 쓸리는 바닷소리를 듣다가, 어떤 묵직한 것을 내던졌다. 짐승의 잘린 머리였다. 잿빛 아가미와 균일하게 난 뾰죽한 이빨, 휘둥그런 눈. 분명한 바다 괴물이었다.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그 즉시 국왕이 거처하는 도시로 소식통을 보내 이 모든 사실을 알렸다. 그는 왕궁으로 돌아갔다. 조금이나마 이전의 형색과 가까워진 모습으로, 칠 년 전 살던 곳으로 향했다. 
그와 대면한 왕은 마주한 사람이 이전의 딸이 아님을 단번에 알았다.

 

"넌 누구냐."

 

공주는 흔들림 없는 음산한 시선으로 그 물음을 되받아쳤다. 그가 말했다.

 

"당신 딸입니다. 괴물을 처치하고 살아 돌아왔습니다."

 

왕은 두려움이 일었으나 내색하지 않고 공주의 생환을 자축하는 축제를 열었다. 형형색색의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았고 괴물을 죽인 공주의 업적을 찬양하는 공연이 열렸다. 어떤 용감한 용사가 그를 도와 괴물을 처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내용이었다. 다음 날, 공주는 백성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탑 발코니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손뼉을 치고 환호성을 질렀고 그는 아래를 향해 침을 뱉었다. 
공주가 잘라온 괴물의 머리는 높이 내걸렸다. 소금을 뿌려 보존해 더운 날씨인데도 상하지 않고 싱싱하게 유지되었다. 공주는 음습한 시선으로 그것을 가끔 바라보다가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했다. 그가 이상해졌다는 말이 돌기는 했으나 궁 밖을 나가지는 않았다.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인 일이었다. 그리고 본래 왕족들은 성격이 좀 괴팍했으므로 궁 내의 사람들은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랜 휴가 후 복귀한 점성술사는 공주에게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재차 캐묻고 싶어했다. 대개 시녀들이 그를 따돌렸으나 그는 집요했다. 공주가 혼자 있을 때를 어떻게든 잡아내 다가오곤 했다. 그러자 공주는,

 

"꺼져. 늙은이는 가서 일이나 해."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그렇게 말하고는 홱 돌아서 걸어가버렸다. 남겨진 그는 무연히 서 있다가 휘적휘적 돌아갔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 다시는 묻지 않았음은 물론, 나타나지도 않았다. 
공주를 모시는 시녀들은 저마다 입을 꾹 다물고 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일체 발설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들 모두는 그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쉽사리 알아차렸다. 왕이 말했다.

 

"좀 이상해지긴 했지. 하지만 죽은 과인의 왕비를 보라. 좀 이상한 여자라도 시집 가는 데는 무리가 없어."

 

그러나 누구도 그를 데려가려는 왕자가 없었다.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탓이었다. 대신 번쩍이는 선박들이 떠올라 영토를 침입해 왕국으로 쏟아져들어왔다. 왕이 보낸 군대는 패배를 거듭하기만 했다. 그 사이 적군은 수도로 계속 밀고 들어왔다. 궁지에 몰린 왕을 호위한 몇 되지 않는 군사들이 맞서 싸웠고, 쓰러져갔다. 헐레벌떡 달려온 사람들이 공주에게 도망가야한다고 일렀다. 그는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죽은 것 같은, 심연 같은 검은 동공으로 그들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식사를 계속했다. 가까운 시녀가 울며 그를 일으켰다. 시녀를 내려다보던 공주가 말했다.

 

"너는 모르는구나. 우리를 구해줄 용사는 어디에도 없단다."

 

말을 마친 그는 시녀를 발로 차 떨구어 낸 후 깊디 깊은 미궁 같은 지하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바삭거리는 해초의 감촉이 서서히 돌아왔고, 익숙한 소금기가 전신을 뒤덮었다. 사슴의 것과 같은 옥색 산호가 이마 위로 뻗어나갔다. 공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깊숙히 들어갔다가, 벽 틈으로 간신히 새어들어오는 한 줄기 빛에 비명을 지르며 웃음을 흘렸다. 마법의 주문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어와 시야를 채우고 가려, 그는 이전의 힘을 되찾았다. 
그가 돌아왔을 때 궁은 이방인들에게 점령된 지 오래였다. 찢겨나간 옷 사이로 왕의 살결이 언뜻 보였다. 공주는 고이 보관해두었던 바다 괴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미소를 흘리며 정제되지 않은, 괴물이 알려준 심연의 비밀을 쉴 틈 없이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목구멍 깊숙히 으르렁거리다가 쉰 목소리로 속삭이는 듯한 언어였다. 포위한 군사들은 눈을 홉뜨고 양 귀를 막았으나 소용 없었다. 어떤 공포심이 그들을 뒤흔들고 공명시켰다. 누군가 소리쳤다.

 

"마녀다!"

 

그 위로, 잿빛 피부와 죽은 것 같은 눈과 뾰죽한 이빨을 드러낸 공주가 있었다. 그는 마치 악령 같았고, 물 속을 헤엄쳐 다니는 무표정한 물고기 같았다. 그러나 그전까지는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이상한 노릇이었다.

이방의 적군들은 정박해 둔 배를 향해 달려갔다. 도망치던 중 다수가 서로에게 밟혀 목숨을 잃었다. 왕국은 살아남았다. 왕의 두번째 부인이 낳은 사내 아이가 명목상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와 공주 사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으며, 두번째 부인과도 마찬가지였다. 두 여인은 자주 만나 잡담을 나누었다. 공주는 정사에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조금의 기미라도 내비친다면 새어머니는 그를 가차없이 제거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왕은 시녀들 사이로 나비처럼 뛰놀다가,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지쳐 잠들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아이의 뺨은 장미처럼 건강해보였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찻잔을 기울이며 아이를 살펴보았다. 왕비는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그가 말했다.

 

"아주 건강하고 사랑스러운 사내 아입니다. 승하하신 폐하의 어렸을 때를 꼭 빼닮은 것 같습니다."

 

공주는 아버지의 아이 적 모습을 당연히 몰랐지만 그렇습니까, 라고 답한 뒤 차 한 모금을 입 안에 머금었다. 왕비가 말했다.

 

"한데 어떤 연유로 그리 많은 적군을 물리치실 수 있었던 겁니까. 사람들의 말로는 공주께서 희안한 요술로 그들을 혼비백산케 했다던데...."

 

"바다 괴물에게 얻었지요. 그리고나서 그를 죽였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지요."

 

왕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이 있은 후 영토를 침입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저는 저 자신을 심해의 주문과 맞바꾸었습니다. 처음에는 제 의지가 아니었으나 나중에는 자발적인 행위가 되었지요. 희생으로 끝마쳐질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대가를 지불하고 교환했습니다."

 

왕비는 그 말을 흘겨들었다. 어차피 공주는 이해하지 못할 말을 종종 했다. 그것을 새겨들을 의무도 필요도 그에게는 없었다. 그는 우아하게 미소 지으며 무릎을 살짝 굽혀 인사했다. 그렇게 그 둘은 헤어졌다. 돌아온 공주는 방 깊숙히 감춰둔 괴물의 머리를 꺼내어 방석에 둔 뒤 그가 은밀히 속삭이는 심해의 비밀을 귀기울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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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왕자의 외출일기

초식과 육식

초식과 육식

 

따스한 날씨의 나른한 오후, 에녹은 몸이 찌뿌둥하다는 핑계로 피쿠스와 라비에라를 끌고 북적거리는 시장통을 걷고 있었다. 찌뿌둥한 것보다는 오후 수업의 교사가 맘에 들지 않아 뛰쳐나온 게 훤히 보이지만, 덕분에 연구실에서 실험에 열중하다 끌려나온 피쿠스는 오만상을 찌푸린 채 툴툴 거리고 있었다.

 

“교사가 맘에 안 드시면 교사를 바꾸시란 말입니다. 매번 이렇게 수업을 빠지지 마시고요. 이러다 들키면 저까지 혼나잖습니까.”

 

“사과가 싱싱하군.”

 

피쿠스의 합당한 불평에 에녹은 과일가게 가판대에 있는 사과 한알을 집어 들었다. 에녹의 한손 가득 잡힌 새빨간 사과는 무척이나 탐스러웠다. 에녹은 주머니에서 동전을 하나 꺼내어 가게 주인장에게 던져주었고, 가게 주인은 아주 유연하게 동전을 받아 챙겼다. 시원스레 사과를 베어 물며 딴청을 피우는 에녹의 모습에 피쿠스는 들으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자네도 한입 먹을 텐가?”

 

“됐습니다. 혼자 다 드십시오.”

 

에녹은 싱긋 웃으며 입안의 사과를 우적우적 씹어 넘겼고, 라비에라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나직하게 키득거렸다.

 

“그만 기분 풀지 그래? 덕분에 외출도 하고 좋잖아. 에녹님 아니었으면 또 며칠 밤낮은 그 실험실에 박혀있었을 거면서 말이야.”

 

“아니, 그러니까. 나오려면 두 분이서 나오시면 되지 왜 절 끌고 오냔 말입니다.”

 

“자네도 햇빛 좀 봐야지. 그러다 흡혈귀가 친구하자고 하겠어.”

 

어느새 커다란 사과를 다 먹은 에녹은 안쪽 골목으로 걸음을 옮겨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피쿠스는 심호흡으로 약간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뒤따랐고, 라비에라는 경쾌한 걸음걸이로 두 남정네는 따라 식당으로 들어섰다. 푸근한 인상의 주인장이 단골손님을 알아보고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어째 요즘 자주 오십니다?”

 

굵직하니 넉살 좋은 목소리에는 은근한 묵직함이 느껴진다. 에녹은 싱긋 웃으며 안쪽 테이블로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 덩치 좋은 주인장이 다가오는 사이 피쿠스와 라비에라도 익숙하게 각자의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주인장은 형식적으로 메뉴판을 내밀며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여전히 드시던 걸로 드릴까요? 아니면 새로운 메뉴를 드릴까요?”

 

새로운 메뉴라는 단어에 제일 먼저 호기심을 보인 건 피쿠스였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에 억지로 끌려나온 불쾌감은 이미 저만치 잊어버리고서, 피쿠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인장을 올려다보았다.

 

“새로 나온 메뉴요?”

 

“예. 저 멀리 동방에서 건너온 거랍니다. 어찌, 내올까요?”

 

세 사람의 고개가 거의 동시에 끄덕거리고, 주인장은 거구와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멀어지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에녹은 들고 있는 메뉴판을 비어있는 옆 테이블에 내려두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앳된 소년이 커다란 쟁반을 가져와 작은 접시들에 담긴 음식을 내려놓았다.

 

“주문하신 메뉴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시간이 조금 걸릴 거예요. 우선은 먼저 드시고 계세요.”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은 세 사람의 앞으로 소년은 익숙한 듯이 손님들의 취향에 맞추어 접시를 내려놓았다. 고기가 들어간 걸쭉한 스프와 베이컨, 소시지가 담긴 접시는 피쿠스의 앞에, 야채가 들어간 담백한 스프와 샐러드는 에녹의 앞에, 부드러운 크림스프와 상큼한 과일이 담긴 접시는 라비에라 앞에 놓았다.

 

얼핏 본다면 근육질의 탄탄한 체형을 지닌 에녹과 마른 체형인 피큐스의 메뉴가 바뀐 것이 아니냐고 할 테다. 소년도 처음에 두 사람의 메뉴를 바꿔서 내려놓았던 적이 있는데, 의외로 에녹은 채식위주로 식사를 하는 편이고 피쿠스는 육식 위로 식사를 하는 편이라는 걸 알고 꽤나 놀랐었다.

 

“맛있게 드세요.”

 

“고마워. 릭.”

 

릭은 빈 쟁반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가면서 여전히 의문스러운 기색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 봐도 에녹 왕자님이 육식인데 말이야.’

 

선이 굵고 남자다운 미남형의 에녹이 채식주의자라는 것이 릭에게는 참으로 불가사의였다. 반면에 키만 크고 샌님처럼 생긴 피쿠스가 육식이라는 것도 아이러니하고 말이다.

 

‘뭐, 라비에라 누님이야 상큼한 과일을 좋아하실 것처럼 생기셨지만.’

 

곧 점심시간의 준비하고 있는 형과 에녹 일행이 주문한 음식을 만들고 있는 아버지를 번갈아보며, 릭은 누구를 도울지 고민했다. 그런 고민도 잠시, 릭은 아버지를 돕기로 했다. 아버지의 요리가 끝나면 셋이서 같이 점심 장사를 준비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채소는 다듬어서 잘게 썰고 살짝 데친다. 고기는 반쯤 익혀서 준비해두고, 릭이 양념을 만드는 동안 그의 부친은 잘 다듬은 재료를 크고 넓은 양철 팬에 순서대로 넣고 볶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호흡에 척척 진행된 요리는 모락모락 따끈한 김을 피워 올리며 넓은 접시에 담겼다.

 

“제가 갈게요.”

 

릭은 동그란 접시 모양에 맞춰 둥그런 나무쟁반에 올려서 양손으로 들고 주방을 나왔다. 릭이 다가가는 기척을 알아차린 라비에라는 테이블 중앙을 치웠고,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요리가 세 사람의 눈앞에 등장했다. 에릭은 미심쩍은 듯이 갸웃거렸고, 피쿠스는 포크를 집어 접시 위로 뻗었다.

 

“동방에서 건너온 요리로 잔치가 있는 날이나 특별한 날에 먹는 ‘잡채’라고 합니다. 들어간 재료는 양파와 당근, 어묵과 고사리, 시금치와 소고기, 그리고 당면입니다.”

 

피쿠스는 어느새 빈 접시에 덜어서 포크로 면을 말고 있었고, 에녹은 포크 끝으로 면을 몇 가닥 집어 올리며 릭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면은 무엇으로 만드는 거지?”

 

“감자와 고구마를 이용한 녹말가루로 만든 것입니다.”

 

라비에라는 반투명한 면발이 신기하다는 눈치였고 피쿠스는 입맛에 잘 맞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데요. 짭짤하니 싱겁지도 않고 씹히는 식감도 나쁘지 않아요.”

 

피쿠스의 평에 에녹과 라비에라도 접시에 덜어서 한입씩 시식했다. 그 와중에도 재주도 좋게 소고기와 당면만을 골라 덜어내는 피쿠스를 보며 릭은 자신도 모르게 힐끔거렸다. 그런 낌새를 눈치 챈 라비에라는 쿡- 웃으며 입안을 음식을 넘겼다.

 

“의외지?”

 

“네? 아, 네.”

 

에녹과 피쿠스는 어리둥절하게 라비에라와 릭을 바라보았다. 라비에라는 옅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도 처음에 꽤나 신기했거든요. 에녹님 식단은 전부 풀이고, 피쿠스는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게 말이죠. 뭐 지금이야 익숙해졌지만요.”

 

라비에라의 말에 릭은 격하게 공감하며 머리를 연신 끄덕거렸다. 에녹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었고, 피쿠스는 당면과 고기가 수북하게 담긴 접시를 앞에 놓으며 별것 아니라는 투로 대꾸했다.

 

“마법사라는 직업이 워낙에 에너지 소비가 많아서요. 흡수하는 에너지의 거의 대부분을 뇌에서 쓰니까요.”

 

가만히 앉아서 책만 들여다보고 실험만 하는 것 같아도 그게 은근히 고난이도의 노동이라는 소리다. 덕분에 릭은 마법사라는 생물은 심장이 뇌에 달리기라도 한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릭. 안 들어오고 뭐해?”

 

주방에서 릭과 닮은 청년이 머리를 내밀고 불렀다. 릭은 그제야 농땡이 부릴 때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주방으로 뛰어갔다. 릭이 자리를 뜨고 잡채를 먹는 동안 에녹은 주로 채소 위주로 접시 담았고, 피쿠스는 고기 위로 접시에 담았다. 극명하게 나뉘는 두 사람의 식성을 보며 라비에라는 토끼와 늑대를 떠올리며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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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말

내게 오겠다

가로등 불빛만 가득한 이 밤거리

세상과 단절되는 나만의 공간

그 속으로 한 걸음씩 걸어간다

 

익숙한 차가운 공기와

외로움이 나를 반겨주는 나만의 비원

 

이대로 어디론가로 사라진다면

그곳은 어떨까 여기보다는 괜찮을까

 

한줄기의 빛

날 숨쉬게 하는 작은 희망이

햇살처럼 내게 닿을까

 

 

사람들 발걸음 소리도 하나 없는

하늘 위 별님마저 잠자는 시간

그 속으로 한 걸음씩 걸어간다

 

달가운 적막한 바람과

괴로움이 나를 반겨주는 나만의 새벽

 

이제야 알았다 내가 하고싶은 건

남들 다 원하는 획일된 삶이 아니란 걸

 

투명한 염원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꿈들이

샘물처럼 솟아오른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것이 좋은 줄 알았다 

나를 희생하면서 

굳이 나를 버려가면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도 모르고

 

앞으로는 내가 남을 사랑하면서

나를 찾아가며 나만의 삶을 택하겠다 

 

나를 찾아가면서 내게 오겠다

 

 

#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벌써 4월 말인데 1월 이후로는 처음인 것 같네요ㅠㅠ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

개강이 이렇게 힘든 일인 지 몰랐네요...

 

돌아오자마자 말씀드리기엔 죄송한 게 하나 더 있는데요.

개강이란 말에서 예상하셨을 수 있지만

저도 제가 언제 글을 써서 올릴 지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대도록이면 5월에 최소 한 편의 글은 가져오도록

노력 중이지만 

생각보다 과제가 많아서

과제로 탑을 쌓는 중이라 될 지는 모르겠네요TT

 

쓸데없이 똑같은 말만 되풀이 했네요.

여름이 오기 전에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기다려준 분이 계시다면 감사드리고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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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45 - 4

411

 

 

 

따듯한 오후에 잡화점 문을 열고 들어온 소녀는 피부를 핥으면 달달한 초콜릿 맛이 날 정도로 부드러운 연갈색의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풍성하게 묶은 상태로,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를 가진 검은 달의 여왕. 마리아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카일이여? 고양이 서기를 하고 있는 듯한 포즈인데 왜 그런지 알 수 있을까?”

 

“지금 레시아가 은폐마법으로 숨었기 때문이죠. 그 덕에 저는 지금 긴장을 풀 수도 없고, 섣부르게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요.”

 

“마치 비누방울을 사용하는 파문술사가 생각나는 장면이긴 하지만, 첩이 사념으로 보거니와 마왕님께서 카일을 욕망대로 헤집어버리고 싶다고 느껴지는 구나.”

 

그러면 죽는 거 아냐?

 

“각오해라 주인...냐아아아아앗!”

 

내 위에서 급습을 해오는 레시아는 얼마 못 가서 비명을 지르게 되고, 그렇게 다시 아이언 클로를 집행하는 동안, 나는 마리아가 이곳에 온 이유를 어느 정도 추측해서 물어봤다.

 

“영겁의 노래에 대해 뭔가 더 알아낸 거라도 있어요?”

 

그러자 마리아는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대답했다.

 

“아니, 아무래도 본인을 찾아서 직접이야기를 들어야지만 가능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강력한 기억보안이 걸려있는 상태였노라. 역사학원장이 알아낸 것이 용하다고 보면 되겠지. 그래도 새로운 사실이라면 이 보석은 딱히 마신에게만 영향을 주던 보석이 아니라, 모든 신들에게 귀중한 가치가 있던 장신구 중에 하나라는 소리다.”

 

“모든 신들에게 영향을 주는 보석이란 소리죠?”

 

마리아의 말을 듣고 영겁의 노래의 가치가 폭등하는 내용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보석 하나로 산 제물의 의식을 사용하기보단, 신을 일시적으로 끌어들이는 미끼 역할을 제대로 해낸 거겠지.

 

“오직 신들에게만 영향이 있는 것인가?”

 

“애석하게도 이걸 만든 자는 천계에 있는 대장장이입니다. 마왕님. 한 때 아우리스가 천계를 평정했던 시절에 아우리스에게 선물로 주려고 했던 보석이었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자신이 몰래 가지고 있다가 악신에게 빼앗기고, 이 차원이 붕괴할 뻔한 사건이 있었지요.”

 

천계에 있는 대장장이가 만든 보석이라.

보석을 대장장이가 만들 일은 없잖아?

 

“마리아. 대장장이가 보석을 만들다니? 무슨 소리에요?”

 

“천계에는 세공사가 없다. 그리고 물품을 만드는 것도 모두 천계의 대장장이가 도맡아서 하고 있는데, 천계의 유명한 대장장이는 그렇게 이름이 퍼지지는 않았지만, 카일만큼은 알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제가 그걸 어떻게 알...”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물어보려고 했을 때. 3층에 있는 문짝 하나를 생각하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보석은 사키엘이 만든 보석이에요?”

 

그러자 마리아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 설마 이 보석의 실체를 듣기 위해 천계로 찾아가야 할 줄 알았는데, 문제는 그 천계에서 보석에 대한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도 잘 모르겠고, 사키엘만 따로 만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애석하게도 보석 하나 때문에 지상에 있는 고대 생명체들이 모두 전멸하고 나서, 악신은 봉인이 되어버리고 사키엘은 위험한 물품을 만들었다며 천상의 탑에 갇혀있는 상태이니라. 그것도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말이지. 천계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니니라. 아무튼 생명의 여신 비니스가 거대하고 힘만 추구했던 고대 생명체들이 아닌, 힘이 부족할지라도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 인간을 만들게 된 계기도 이러한 경우지.”

 

“그러고 보면 데모르테에게 들은 기억이 있다. 마족은 그때 당시 마계를 담당했던 마신이 막아줘서 전멸하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하더군. 그 후. 마신의 행방이 묘연해서 천계에는 사라졌는지 꽤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시나는 천장에서 내려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지금 여신들이 그 보석에 대해서는 세상의 멸망을 불러 일으키는 보석이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군요?”

 

“강력한 힘으로 고대 생명체가 싹 다 날아갔다고 하니까. 그런데 악신은 대체 뭐 하는 신이길래 모조리 다 없애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거지? 지우개인가?”

 

“첩도 정확한 악신의 정보는 찾고 있는 중이다.”

 

내 머릿속은 얼마 가지 않아 과부화가 되기 시작하면서 생각하는 것마저 귀찮아하고 있을 무렵. 몸을 꿰뚫는 상쾌한 허브향으로 어떻게든 진정시키기 위해 차를 마셨다.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고 있는 동안 베가프의 얼굴을 한 번 봐야 하는 것이 떠올랐고, 신성 아우리온으로 향할 계획으로 내 생각을 바꿨다.

 

“우선 베가프에게 가봐야겠어요.”

 

“주인의 친구에게 말인가?”

 

“그냥 기분 전환을 할 겸 말이죠. 얼마나 잘 살고 있나 보기 위해서도 있고, 여기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지금 마리아가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추측할 수가 없거든요. 외출준비 할 테니 레시아와 시나는 동화하세요.”

 

“동물형태가 아니라 동화를 하란 말인가?”

 

“거긴 아우리스 교인들의 제국이에요. 거기서 마왕과 다른 여신이 멋대로 걸어 다니면 그거 나름대로 신선한 충격을 먹기 때문에, 지금은 동화하는 것이 더 편하죠.”

 

레시아는 “그렇군. 이해했다.”라고 말하며 내 그림자로 스며들었고, 시나는 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몸 속으로 흡수되는 것처럼 사라졌다.

 

“마리아는 곧 돌아가봐야 하나요?”

 

“아니. 첩은 여기서 쉬려고 온 것이니라. 그리고 루시피나를 데리고 어디 가야 할 곳이 있기에, 카일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만, 첩의 입장은 한 단체의 수장이기에 시간을 비울 수 없노라.”

 

“마리아도 다른 곳에서는 열심히 일하고 있잖아요? 그것에 대해 마음을 쓰지는 말아주세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마리아에게 신경 쓸 필요 없다며 나는 대답했다.

 

“본래는 카일과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목표로 왔지만, 여전히 마왕님을 상대할 때의 높은 철벽을 뚫어낼 자신은 첩에게 아직 없노라.”

 

“대체 그 이상한 목표는 뭐에요.”

 

마리아가 쓸 때 없는 소리를 추가로 더 하고 있는 동안, 안쪽에서는 레시아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주인. 신성제국인 아우리온에 간다고 해도, 주인의 친구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오늘이 아니라면 내일이라도 상관 없어요. 그냥 얼굴 한번 보고 도와줄 일이 있으면 도와주고, 지금은 바빠서 나중에 만나자고 하면 베가프 쪽에서 연락을 하겠죠.]

 

[그게 아닙니다. 마스터.]

 

질문의 요지를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가? 시나는 나의 대답을 부정하고 다른 내용으로 나에게 질문을 했으니...

 

[그 신성 아우리온에는 마스터의 얼굴이 많이 퍼져있습니다. 아우리스 여신이 백장미를 좋아한다는 소식을 교단원들이 듣고 난 이후로, 요즘 아우리스 여신에 대한 공양을 백장미 신간호로 하고 있다는 소리와 더불어, 어쩌다 보니 그 제국에 있는 90%넘는 사람들이 전부 백장미를 보게 되었으며, 아우리스 교인들은 성서와 더불어 백장미를 구입해야 아우리스에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잠깐만 그 미쳐버린 신성제국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길래, 아직도 멸망을 하지 않고 살아있는 거야?]

 

한 마디로 그 안은 간접적이나마 나 때문에 엉망으로 되어버렸다는 소리니까. 내가 거기에 뛰어들어가는 것은 신성 아우리온 입장에선, 여신이 강림한다는 것과 거의 비슷한 혼돈을 볼 수 있다는 소리였다. 시끄러운 것은 피해가야 고요와 평화만이 기다린다는 인생의 진리를 알고 있던 나는 단지, 베가프를 만나는 것뿐인데 어쩌다가 스파이들처럼 몰래 숨어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하아~”

 

오늘의 나는 세상에 살아가는 생명체 중에서 정말 별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무시무시하게 커져버린 이 바보 같은 상황을 위해 한숨을 내쉬었다.

 

“아저씨? 왜 그렇게 한숨을 내쉬어요? 한숨을 쉬면 복이 달아난다는 것도 몰라요? 어떻게 어린애보다 지식이 이렇게 안 좋을 수 있죠?”

 

“내가 한숨 쉬는 것에 대해 네가 뭐라고 하지마. 그리고 한숨을 쉬면 복이 나간다는 건 그냥 보기 안 좋아서 하는 소리지 실제로 행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그거 하나로 지식에 운운하기에는 교과서에서도 나오지 않는 내용이니까 참조하고. 그리고,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라고 대체 몇 번이나 말해!”

 

아직까지 집에 안 갔는지 아이니스는 내 뒤에서 말을 거는 건지, 싸움을 거는 건지 알 수 없는 내용으로 다가왔고, 나의 대답이 다 끝나자 또 다른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보다 베가프 오빠라면 요즘 잘나가고 있는 추기경 말하는 거죠?”

 

“나는 베가프와 동갑인데 왜 나는 아저씨고, 베가프는 오빠야? 그것부터 말해.”

 

“어쨌든 그 안에 들어가기에는 아저씨의 얼굴이 너무 잘 알려져서 발에 내딛기도 전에 광신에 휩싸인 무리가 열렬하게 환영해줄 것 같아서 고민하는 거잖아요?”

 

어린애 주제에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많이 만나봐서 그런 건지 몰라도 아이니스의 두 눈에는 확신이 담겨있는 푸른 눈동자를 보며, 나는 “그래도 아저씨는 아냐.”라는 말만 대답했다.

 

“그러면 카린의 모습으로...”

 

“기각! 그건 아냐. 그 모습으로 변하는 순간 혼돈뿐인 그 곳에 정말로 광기를 내리게 될 거라고!”

 

사실상 성별이 이리저리 바뀌는 것은 내가 원하지 않았다. 카린이 대체 뭐라고 내가 고생을 하면서 성별이 바뀌어야 하나? 차라리 달에 있던 카렌을 불러서 다녀오라고 시키고 말지.

 

[오! 그렇군! 고양이 귀를 씌우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못 알아볼 것이다. 주인.]

 

[고양이 귀가 무슨 위장도구라도 되요? 고양이 귀를 씌웠는데 사람이 못 알아본다면 그건 투명인간이지!]

 

나는 옷장에서 내 몸을 둘러쓸 수 있는 하얀 로브를 미라처럼 봉인하듯이 뒤집어 써야 했다.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의 진가를 알아보고 다가온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지만, 그 바보 같은 잡지 때문에 내 진가가 왜곡되어 다가오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

 

“이 정도의 위장이면 될까?”

 

아이니스에게 물어봤는데 돌아오는 것은...

 

“그렇게 입으면 어디 바바리 맨이 생각나잖아요! 아저씨도 요즘 시대에 뒤떨어진 거 아니에요?”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그리고 바바리 맨은 또 뭐야.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라는 말을 몇 번을 반복해야, 네 입에서 아저씨라는 말이 안 나올까? 아니면 너도 결국 아이언 클로가 나와야지만 그 입을 다물래?”

 

아이니스가 조용해진 틈을 타서 나의 위장 능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된 내가, 좀 더 철저하기 위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윈디를 불러서 공기를 이용해 빛을 굴절시킨다면,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떠올리고는 급하게 윈디를 찾기 시작했다.

 

“도와줘! 윈디에몽!”

 

어디로 사라졌는지 잡화점 내부에서는 윈디를 찾아볼 수 없었지만, 2분 후에 어느 미래 고양이가 생각날만한 인형을 뒤집어 쓰고 온 체로 윈디가 나타났다.

 

그보다 윈디가 맞나?

 

“그 이상한 인형은 그만 뒤집어쓰고 나 좀 도와줘.”

 

“카일 씨가 저를 부를 줄은 몰랐네요. 이제 저에게 관심이 있는 차례인가요?”

 

“인형탈이 두꺼워서 아이언 클로가 안 들어갈 것 같다고 생각하고 날 도발한다면, 너 정말 큰 실수를 하는 거다?”

 

하지만 거대한 인형 손으로는 지퍼가 내려가지 않는지 바둥거리고 있는 윈디의 모습에, 오늘도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사용할 수 있는 한숨 정발판’을 사용하면서 윈디에게 걸어가 인형 옷의 지퍼를 내리자, 백옥 같은 등이...

 

-찌이이익!

 

지퍼를 다시 올리도록 하자.

그냥 평생 거기서 살라고 해.

 

“잠깐! 카일 씨! 방금 소녀의 백옥 같은 피부를 멋대로 봤죠!”

 

“아니. 안 봤어. 봤다고 해도 그건 이미 기억에서 지워질 거야. 그보다 너는 왜 인형옷으로 무장했으면서 정작 아무것도 안 입고 있는 거야?”

 

“역시 봤잖아요! 이 변태! 좀 더 보란 말이에요!”

 

“가끔 너를 상대하면서 생각하는 거지만, 그거 기뻐하는 건지 화를 내는 건지 알 수가 없거든!”

 

 

옆에서 보고 있던 아이니스와 마리아가 보다 못해 윈디의 옆에 붙어서 봐주기로 하고, 윈디가 정상적인 옷을 차려 입는 동안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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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마시고 썻습니다.

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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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거닐다

너 끌리는 대로

"쌤, 누가 그러길, 대학생이 되면 연애도 많이 해보고 여행도 많이 다녀봐야 된데요. 정말 그래요?"

 

중간고사 준비에 지쳤는지 고3학생이 수업시간에 물어봤다.

보통같았으면 
'응, 그런 경험 좋지. 많이 해봐~'
라고 대답했을 것 같은데, 왠지 그런 말이 안나왔다.

 

 

"
연애도 많이 해본 사람이 연애 해보라고 말하는것 아니겠어? 연애를 많이 안해본 99명은 조용히 있겠지.

 

여행도 많이 다녀본 사람이 여행다녀보라고 말하는 것 아니겠어? 여행을 별로 다녀보지 못한 99명은 조용히 있을거야.

 

무언가를 꼭 해야 하는 건 없어. 
끌리면 하고, 아니면 마는거고. 

 

사람들이 소리 높여서 얘기하는건 
결국엔 자신들이 해본 것, 특별히 그 중에 '자신에게 좋았던 것'을 얘기하게 되거든. 

 

그 행동이 그에게 좋았으니 나에게도 좋으리란 보장은 없어.

 

그러니까 누가 이거해봐라, 저거해봐라 조언을 하고 충고해도 그것에 이끌려갈 필요는 없어.

너 끌리는대로 해도되~

 

그거 안한 조용한 99명이 존재하고, 또 나름의 것을 하면서 잘 살고 있을테니까.

 

그렇지만 무언가에 느낌이 오고, 끌림이 올땐 아무리 99명이 하지 않더라도 기꺼이 그 경험에 뛰어들 수 있으면 좋겠다.
"

 

 

학생에게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 이음. 너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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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45 - 3

410

 

 

 

시공간술사의 길 중급에 올라선 이후로 잡화점 안에서는 수많은 물건이 느릿느릿하게 떠다니거나, 상당히 빠르게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화물 정리도 빨리 끝나고 유용하게 쓰고 있는 중이었다. 좌표마법이 있는데 어째서 화물을 정리할 때 유용하냐고 물어볼 수 있다면, 지금도 내 앞에서 바위덩어리를 들고 위협하고 있는 야생의 아이니스가 잡화점으로 찾아왔기 때문이리라. 아이니스가 바위를 내던질 때 감속을 시켜서 그나마 피해를 최소화 하고 있고, 떨어지는 물건도 감속을 걸어서 2차적인 손실을 방지하고 있으니까.

 

“어째서 아저씨는 지금까지 육포를 안 먹냐고요!”

 

“먹을 타이밍이 없어서 그랬다! 왜! 그리고 아저씨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아이니스가 준 육포는 전부 레시아가 뺏어갔는데 어떻게 먹으라는 소리일까? 그리고 정작 화를 내는 것은 육포뿐만이 아니었다.

 

“결혼식에도 부르지도 않고!”

 

“나도 몰랐지! 그게 결혼식으로 바로 이어질 줄을 누가 알았겠어!”

 

이 세상에서 본인도 모르는 결혼식을 끝내고 온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어느 사이에 아이니스 귀에 걸렸는지 귀신같이 잡화점에 찾아와서 농성을 하고 있다고 보면 편하다. 작은 몸으로 염력을 이용해 자신보다 수십 배의 무게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아이니스는, 곧 이어 모든 바위를 내려놓고 잡화점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태양에 반사되는 은발을 휘날리며 잡화점 안에 들어온 아이니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아저씨의 아이들은 어디 있죠?”

 

“결혼을 한다고 해서 애가 바로 나오는 건 아니거든! 그리고 아저씨도 아니거든!”

 

그보다 내 주변에서 애를 가졌다는 소리는 단 한번도 없었다. 레시아는 카운터 위에서 고양이마냥 올라가 붉은 눈으로 아이니스를 포착하고 입을 열었다.

 

“제자여. 이 곳에는 무슨 일인가?”

 

“어라? 스승님. 왜 고양이 모습이 아니라 사람으로 돌아갔어요? 드디어 저주가 풀린 건가요?”

 

저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크크큭! 짐은 주인의 키스를 받아 저주가 풀리고 아름다운 마왕이 되었노라. 덤으로 결혼까지 했으니까 지금은 완전히 주인의 것이지.”

 

그런 주제에 가위바위보 벌칙의 강도는 약해지기는커녕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고 하더라. 레시아는 아이니스 상대로 고양이 모습으로 있을 때만 만난 걸까? 그 전에 어느 이야기에서 고양이에게 키스를 했더니 마왕이 풀려나서 세상에 재앙이 내리는 꿈과 희망이 없는 이야기가 존재하던가? 두 사람의 기묘한 헛소리에 내 머릿속이 혼란으로 빚어지는 동안, 아이니스는 어느 사이에 레시아를 껴안고 눈을 감고 있었다.

 

“하긴 염력으로 나에게 난리를 친 것만 20분 가까이 했는데 지치는 건 당연하지.”

 

“주인은 어린 아이를 상대 할 때도 정도를 모르는 것 같노라.”

 

“저 녀석이 정도 것 해야죠.”

 

둥둥 떠있는 물건들은 다시 좌표마법으로 정리를 하는 동안, 레시아는 슬그머니 내 뒤로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뭐라도 할말 있던가요?”

 

“아니다. 계속 작업하거라. 그 동안 짐은 주인이 어떻게 일하는지 보고만 있을 것이다.”

 

“그거 의외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거 알고 있죠?”

 

“실례이지 않는가? 누가 보면 짐이 언제나 주인을 노리는 줄 알겠노라.”

 

그렇게 말하며 억울함을 해명하려고 해도, 뒤에 느껴지는 위화감이 나를 한층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아이니스는 어디에 잘 놔뒀는지 모르겠지만 카운터 뒤쪽에서 가는 숨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최근에 내가 이불을 펴고 자는 곳에 재운 상태로, 내 바로 뒤에서 도약하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어딜.”

 

공중에서 떨어져 내려온 시나가 레시아를 붙잡고 저지하면서 한 차례 소동은 끝이 나는 듯 했다.

 

“놔! 놔라! 비둘기! 지금부터 주인과 짐은 사랑에 대한 해부학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어째서 방해를 하는 것이더냐!”

 

“사랑에 대해 무슨 해부학을 한다는 겁니까? 냥캣. 그리고 저는 비둘기가 아니라 올빼미로 변신하는 겁니다.”

 

뒤에서는 바닥에서 서로 엉켜있는 레시아와 시나를 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는 나의 모습은, 우연히 왼쪽으로 돌아봤을 때 존재한 거울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사실상 레시아가 틈만 나면 나를 습격하려는 일이 많아졌다고 생각은 했는데, 어떻게 보면 이건 이거 나름대로 중증이라고 볼 수 있다.

 

“레시아. 요즘 따라 체통을 좀 지키지 못하는 거 아닌가요? 마왕이라면서 결혼식이 끝난 후에도 20분 간격으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잖아요?”

 

“요즘 봄이라서 그런걸 지도 모른다. 주인이 만약 카린으로 변해서 고양이 귀를 쓴다면, 어째서 20분 간격으로 폭주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니라. 그건 그렇고 정말 무심하지 않는가! 짐과 주인은 부부니까 밤이고 낮이고 같이 있어도 되고, 같이 자도 되고, 가위바위보도 이제 마음껏 할 수 있노라.”

 

가위바위보는 부부가 아니라도 마음껏 했잖아.

물론 승률은 내가 0%였지만.

 

“그렇게 따지면 저와 마스터도 언약을 맺었습니다.”

 

“시끄럽다! 짐이 주인을 맨 처음 만났으니까 짐이 본처이니라!”

 

내가 결혼을 계속 미루고, 미루고, 미루고, 미루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이렇게 복잡하게 될 것을 예상하고 계속해서 말을 꺼내지 않았던 것인데. 아무튼 봄이라고 해서 다른 동물들 마냥 마왕이 발정기에 들어서는 그런 경우는 전혀 없다. 나는 레시아에게 다가가서 조심이 물어봤다.

 

“어떻게 하면 조용히 있을 거에요?”

 

“짐을 안아줘라.”

 

“허그의 의미겠죠? 그건?”

 

“그럴 리가 있겠느냐! 당연히...냐아아아앗!!!”

 

쓸 때 없는 소리를 더 말하기 전에, 그 상태로 아이언 클로를 집행하고 나서야 겨우겨우 조용해진 레시아를 풀어준 시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면서 사무적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마스터. 아무래도 아침에 촬영장에 있었던 키스 때문에 그러는 것 같습니다. 분명 색욕의 공작이 반지에 어떤 사술을 걸었다고 했었죠?”

 

“그저 여성과 스킨쉽을 할 때. 좀 더 원활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거라고 설명했다고? 그렇게 위험한 것도 아니었어. 그보다 키스 하나로 20분 간격마다 습격하는 사역마가 세상에 어디있겠어?”

 

지금 관계로는 건전하게 교제하자는 자체가 오히려 더 이상하게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일상생활은 가능해야 하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대체 아저씨는 얼마나 가드가 튼튼한 거에요?”

 

“마나를 다 쓰고 혼절한 주제에 빨리도 일어나는구나. 그리고 아저씨 아니라고.”

 

“결혼하면 다 아저씨죠. 그리고 스승님과 결혼을 했으면서 첫날밤이 없다는 게 말이 되요? 대부분은 모두 결혼을 하고 나면 신혼여행도 가고, 낭만적인 첫날밤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그런 뜻 깊은 시간에, 이런 잡화점에서 시간이나 썩혀야 하다니.”

 

“오늘 아침에 영문도 모르고 결혼을 했거든.”

 

그리고 결혼을 하기도 전에 각자 한번 이상 습격을 해왔다고. 당한 내 입장에서는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말해줘도 모를 녀석이...

 

“크크큭! 주인. 오늘 오후에 짐에게 아이언 클로를 했던 몫까지 준비하고 있거라. 철저하게 복수를 해서 울면서 빌어도 용서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크흐흐!”

 

“체통을 좀 지키시죠. 레시아.”

 

기분 나쁜 웃음과 함께 천천히 몸을 일으킨 레시아에게 한 소리를 하고, 어지럽혀진 물품은 모두 정리가 되었으니 낮잠이라도 잘까 생각은 해봤지만, 여전히 그 봉인되어있던 정체불명의 조각상이 눈에 밟혔다. 마리아에게 맡긴 영겁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었지만, 창가에 있는 테이블 앞에 앉아 허브티를 마시면서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신랑은 여전히 일이 먼저겠지?”

 

“일이 먼저이기도 하지만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수위가 너무 높으면 안 되거든요. 그걸 지키지 않으면 다양한 곳에서 잘려나가는 기묘한 경험을 할 수 있으니...아니, 이건 그냥 넘어가고...”

 

마침 백은의 소녀인 시나도 내 옆에 다가와서 의자에 앉았으니, 다른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애석하게도 지금 상황으로는 검은 높새바람이 뭘 노리고 있는 건지, 대략적으로는 짐작이 가기는 해요. 분명 영겁의 노래를 노린다는 소리는 지금 봉인해둔 조각상을 노린다는 거니까요. 하지만, 무슨 목적으로 조각상을 가져가려고 하는 걸까요? 봉인을 풀어서 어디에 써먹으려고? 옛날에는 세상을 멸망시킨다는 목적을 가진 악들이 많이 존재했지만, 그 세상을 멸망시켜서 무슨 메리트가 있었을지 생각은 해본 적이 있나요?”

 

나의 질문에 저 멀리에 있던 레시아가 입을 열었다.

 

“그야 자신의 힘을 시험하는 것 아닌가? 멸망을 시킴으로써 갈 곳을 잃은 생명들을 모조리 흡수하고, 더욱 더 강해져서 다른 세계에 있는 인간들을 멸망시키러 가는 것이 마왕의 삶이자, 지루함에 죽고 싶지 않은 자의 저항일 뿐이다. 요즘은 용사가 너무 강한 차원이 많다 보니까. 자신이 죽기 싫어서 세상을 멸망시킨다는 마왕도 늘어나고 있노라.”

 

“마왕끼리 모여서 술이라도 먹나요?”

 

“어라? 어떻게 주인이 그걸 알고 있는 것인가?”

 

진짜냐.

그 소리는 마치...

 

“하아. 요즘 내 차원에 있는 용사가 전설의 검을 주웠다고 하더군, 난 이제 머지 않아 죽을 것 같아. 김마왕.”

 

“아니. 박마왕. 그럴 때야 말로 사람 하나 납치를 하거나, 함정을 파서 기다리라는 거야. 유능한 부하도 같이 있을 거 아냐? 사천왕이라던가 그런 거.”

 

“오늘 아침에 마왕군에서 점호를 하는데 이미 다 죽었더라고. 이제 난 글렀어. 내 인생도 여기서 끝이야. 크흡! 어제까지만 해도 옆에서 같이 술을 마시던 이마왕은 빌어먹을 여신이 용사에게 반한 뒤로, 여신이 직접 나서서 이마왕을 간단히 소멸시켜버렸다고! 제길! 마왕으로 살기 왜 이렇게 힘든 거야!”

 

“괜찮아. 언젠가 마왕도 살기 좋은 날이 있을 테니까.”

 

이런 식의 이야기가 오고 가는...

 

“주인? 그런 바보 같은 상상을 하는 것은 수준급이로구나.”

 

“누가 남의 기억을 엿보래요!”

 

“기억을 엿본 적도 없다만 페어링으로 이어진 짐과 주인은 공유가 쉽게 이루어진다는 것만 알아두거라.”

 

제길! 이래서 내가 요즘 이런 바보 같은 상상을 안 하는 건데!

 

“그런데. 레시아.”

 

“응? 무엇인가?”

 

“언제 제 무릎 위에 앉은 거에요?”

 

“아. 이마왕이 어쩌고 저쩌고 할 때부터 앉았노라. 아무리 마왕들이 서로 모여서 술자리를 한다고 해도, 이마왕이라던가 박마왕은 없으니 주의하도록 하거라.”

 

김마왕은 실존하는 거냐!

 

“그건 그렇고 주인.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은 딱히 마왕이 하는 일이 아니니라.”

 

나의 목을 감싼 레시아는 옆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달콤한 향과 함께 이야기를 늘어뜨렸다.

 

“성서에서도 자주 신들이 자신의 창조물을 멸망 끝까지 괴롭히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가? 그러니 딱히 악마나 마왕이 나서지 않아도 자신들의 손으로 무참히 부셔버리는 것 또한 신들이 하는 일이다. 저기 있는 비둘기는 다른 차원에서 빛만 밝히고 잠이 들은 터라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눈이라고 하지만, 세상을 멸망을 시키는 것은 신이 존재하는 이상 신이 되는 것이고, 신이 없는 세상에서 태어난 인간은 인간 스스로가 자멸을 하는 것뿐이다.”

 

어디서든지 일어나는 잔혹한 결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낭랑하게 입을 열은 레시아.

애초에 그녀 또한 마왕이지만,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고 공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자신마저 타락한 마왕이다.

 

“그보다 주인! 그거 하자! 그거!”

 

“무슨 헛소리에요. 남이 진지하게 독백을 하는데 방해하지 말라니까요!”

 

“낑낑!”

 

“하지 말라고!!!”

 

 

지금은 욕구가 너무 넘쳐서 아이언 클로를 집행해야 통제가 가능한 마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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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을 열면 엔딩이 보인다고 하는데...

왜 나는 안 보이죠? 완결 언제나는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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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의 것들

연장선

그 시간을 유일하게 아는 내가 그 시간을 악몽이라고 부른다면 스스로가 너무 불쌍해져.
그저 '난 그런 시간이 있었어' 라고, 담담하게 그냥 담담하게 말해야지.

- 오늘의 서로가

 

 

 

 


두 개의 상자를 준비한다. 상자의 반쪽은 전기가 통한다. 상자의 다른 반 쪽은 일반적이다. 두 마리의 쥐를 준비한다. 각각 상자에 넣되, 한 마리의 쥐는 전기가 통하는 부분에서 움직일 수 없도록 묶는다. 전기충격을 가한다. 한 마리의 쥐는 전기충격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다. 다른 한 마리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다른 반쪽으로 피한다. 누적된 시간이 지나고 쥐 두 마리를 한상자에 함께 넣되, 두 마리 모두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한다. 전기충격을 가한다. 다른 한 마리의 쥐는 전기를 피해 몸을 옮긴다. 한 마리의 쥐는 전기충격을 피하지 않고 구석에 웅크리고 앉는다. 전기 충격을 받아들인다.

 

 

쥐가 불쌍하다. 왜 전기를 맞고 있을까. 사람들은 왜 동물을 가지고 실험을 할까. 동물이 불쌍하지도 않을까. 만약 그렇게 실험이 필요하다면 자기 자신이 하면 되는 것을 왜 죄도 없는 불쌍한 동물들을 시킬까. EBS에서 짧게 틀어주는 영상이었다. 이전에 우주선을 타고 날아간 강아지도 그렇고 왜 그렇게 사람들은 동물들을 괴롭히는 걸까. 나는 괜히 사람이라는 존재가 경멸스러워졌다. 모두도 옆에 앉아 쥐가 불쌍하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 집에 있는 쥐는 불쌍하지 않다고도 말했다. 옆방인 우리 방에선 엄마,아빠의 싸움 소리가 너무 컸던 날이었다. 모두는 단팥빵을, 나는 소보루 빵을 먹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함께 닫혀있던 문이 열렸다. 높고 낮은 갈라진 목소리에선 갖은 욕설과 서로를 비하하는 말이 전부였다. 그런 것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문밖으로 굴러 나왔다. 아빠는 엄마를 밀었고 엄마는 넘어졌다. 아빠는 엄마 위로 올라탔고 엄마는 아빠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팔을 잡았다. 나와 모두는 그것을 지켜봤다. 엄마한테선 술 냄새가 났다. 화장이 지워져 있었고 코가 빨갛고 울고 있었다. 아빠가 엄마를 때릴까 봐 함부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기억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이 웅웅 오갔다. 아빠는 화를 주체하지 못했고 엄마는 모든 걸 아빠 탓을 했던 것 같다. 모두는 울음을 터트렸고 나도 눈물이 뚝뚝 났다. 언제봐도 아니 매일 봐도 무서운 일이었다.

 

 

그런 일이 지난 다음 날 아침이면 엄마가 없었다. 점심이 한참 지나 시간이 오후로 불릴 때쯤 엄마는 나타났다. 곱게 차려입고 영화를 보고 왔다고 말했다. 어느 날은 서울을 갔다 왔다고 했고, 어느 날은 멀리 떠났다 왔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사라지지 않을까 무서워했다. 엄마가 점심엔 아니 오후에 아니 저녁에 아니 밤에라도 올 것이지만 이러다 영영 오지 않는 날이 생길까 봐 무서웠다. 모두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엄마에게 어딘가 가지 말라고 하기엔 엄마, 아빠 사이에서 언제까지나 울고 있을 것이 무섭고 싫었다. 엄마, 아빠가 그만 싸우기 바랐지만 엄마, 아빠의 다툼은 내가 모두보다 더 어릴 적부터 솔직히는 더더 어렸던 다섯 살 무렵부터 기억이 시작된다. 10년이 다 되어가는 기억은 이제 엄마, 아빠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한다. 이런일들이 우리가 가족이라는 단어를 마지막으로 쓰게 된 날쯤의 일들이다.

 

 

모든 것들이 극단으로 치달았고 극단으로 치닫는 게 익숙해졌다. 그런데도 난 그 익숙함 속에 무서운 것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면 남을 찾게 된다. 남의 도움을 필요로하거나 남의 탓을 필요로하거나. 나는 후자였다. 그러니까 내가 후자였던 것이 아닌 후자의 대상이었다. 

 

 

엄마는 이런 게 나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모두처럼 말을 잘 듣지 않아서, 내가 제멋대로 행동해서, 내가 나의 몫을 똑바로 못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들이 온 것이라고 했다. 엄마는 저녁이 되면 항상 술에 취해있었다. 술 없이 잠에 드는 것을 힘들어했고, 항상 거울을 마주 보고 술을 마셨다. 나는 그래서 엄마를 이해했다. 술은 원래 사람을 저렇게 만든다고 하니까. 그래서 그런 말을 한 거니까. 엄마를 이해했다. 사람이 힘들면 남 탓을 하게 되니까.

 

 

모두가 그걸 배웠다. 모두는 어리고 착했다. 어른들의 말씀을 잘 들었고 어른을 위로할 줄 알았다. 그렇게 사랑받는 법을 배우던 애였다. 엄마는 기댈 사람이 없어서 모두에게 기댔다. 모두는 엄마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나빴다고 말했다. 그 애는 나와 다를 바가 없었다. 엄마가 떠날까 봐, 그게 무서워 엄마의 말을 수긍하는 그런 애였다. 하루는 그 애마 저 내 탓을 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게 다 언니 탓이라고 정확하게 말했다. 나는 그날 학교에 늦었고 학교에 늦기 전 정말 그 애가 내탓을 할만한 일이 일어났는데 나는 그 것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이 내 탓을 할만한 일인지 아니면 엄마를 따라 그 애가 그런 말을 한 것인지도 정확하지 않다. 중요한 건 모두는 어리기 때문에 나는 모두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빠는 술을 마시는 엄마를 싫어했다. 엄마와 싸움이 끝나고 나면 가끔 슈퍼 파라솔 아래 앉아있는 나에게 와서 하소연을 하곤 했다. 무슨 하소연이었냐면 엄마는 원래 저런 사람이었다는 것. 힘듦을 하나도 견디지 못한다는 것. 편한 것만 좋아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해가 가는 것을 싫어 한다는 것. 아빠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삶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아빠는 아빠의 무능력함 앞에서 눈을 가리고 나의 존재를 부정했다. 나는 그런 아빠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빠의 말은 나를 부정하려던 게 아니라 엄마를 원망하려던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이해했다.

 

 

나는 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머리로만. 나는 분명 이것들을 이해했다고 말하면서 어딘가에서 점점 불쑥 커지는 공포감과 죄책감을 떨치지 못했다. 처음엔 왜 내 탓이냐며 덤벼들었고 다음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고 그다음엔 맞다고 동조했다. 스스로조차 궁지로 몰아갔다. 그래서 무서워했다. '너'는 결국 '나'의 성질을 가지게 되었고 나는 내가 부정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

 

 

그 날을 기억한다. 우리 집은 집이 낡아 화장실이 밖에 있었는데, 내가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한바탕 싸움이 났다. 가게 너머로 뭔가 던져지는 소리가 났다. 엄마의 고함이 났고 아빠의 욕설이 들렸다. 그것보다 더 날 암담하게 만든 것은 그 안에 나는 없지만, 모두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애가 엄마 아빠의 싸움을 보며 울 때면 나는 가끔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는 몸을 하고서도 언니라고 그 애에게 이불을 덮어 씌우곤 했다. 그런 모두가 오늘 저 안에 내가 없이 혼자 있다. 엄마의 고함보다 아빠의 욕설보다 더 찢어져라 울고 있는 모두의 경기섞인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숨이 넘어가라 울어대는 저 아이. 커다란 막대기가 휙휙 소리를 내는 것을 보니 오늘은 기필코 아빠가 엄마를 때렸으려니. 회초리 같은 거로. 엄마가 나를 때려왔던 거로 아빠가 엄마를 때렸으려니. 나는 화장실 문 앞에 앉아 그런 것들을 다 듣고 있었다.

 

 

"중학교도 간신히 졸업한 등신 주제에!"


"말 다 했어!"

 

 

엄마는 그 사이에서도 지지 않고 아빠를 모독했고 아빠는 손에서 막대기를 놓지 않았으려니. 그들의 그런 말보다 행동보다 모두의 잊히지 않는 울음소리. 그것. 나는 모두의 언니인데. 모두를 저 안에서 데려와야 하는데. 하필 오늘. 다른 날도 아닌 정말로 정말로 아빠가 엄마를 때릴 때. 모두는 그걸 지켜봤고 거기에 나는 없었다. 나는 들어갈 수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말하자면 그것을 보기가 무섭고 겁이 난 것도 있었고 지긋지긋해서. 그래서 나는 화장실 앞에 쪼그려 그 애가 경기하는 것을 가만 듣고만 있었다.

 

 

난 울지도 않는다. 가만히 턱을 괴고 앉아있는다. 엄마, 아빠가 싸울 때 가만 앉아 티비를 보던 날들처럼. 이런 일들이 별일 아니라는 듯 나는 멍하니 턱을 괴고 바닥에 웅크려 앉는다.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눈물이 날 리가 없다. 서러울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다. 단지 이 시간이 지나면 이 찢어지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멈추게 하지 못한 것이 죄책감이 되겠지. 그건 분명 알고 있다. 

 


그 날을 기억한다. 어쩌면 잊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잊으려나. 나는 스스로 죄를 늘렸다. 이제 이 애가 그날 그 시간 혼자 지켜봐 온 것들로 인해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어떻게 자라게 될까. 나는 그날 엄마, 아빠의 싸움도 막지 못했고 그렇다고 모두를 구해내지도 못했다. 나는 정말로 나의 본분을 못했다. 정말로 이 모든 게 나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내 몫을 하지 못했다는 엄마의 취기 섞인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나는 잠들어 있는 모두를 바라보다 모두의 귀 뒤로 이 애의 짧은 머리를 넘긴다. 이제 이 아이의 얼굴만 봐도 그날이 생각날 텐데. 모두는 살아있는 나의 죄책감. 나의 우둔함. 바로 누워 야광별로 손을 뻗어 보았다. 저 별을 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별들이 내려다보는 침대는 어두울까. 같은 생각을 한다. 침대와 천장 사이는 너무 멀어 손이 닿지 않는다. 일어나면 닿을 높이. 하지만 일어나지 않는다. 너는 언제나 그곳의 별이고 나는 영원히 이곳에 머문다. 인생은 이보다 더 나아질 수 없다. 난 그런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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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45 - 2

409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깜짝 생일파티는 들어봤지만, 깜짝 결혼식이라는 정체불명의 이벤트는 못 들어본 것 같다. 그러면 적어도 내가 턱시도를 입어야지 어째서 웨딩드레스 하나를 입고 잡화점 멤버 사이에 서 있어야 하는 걸까? 뭔가 잘못 되어도 한 참 잘못 되어서 차라리 미래의 나가 “어째서 이 지경이 된 거냐!”라고 찾아와서 뺨이라고 후려칠 기세였다. 원래 다른 이야기에서는 모든 여성들이 웨딩드레스던 뭐던 아무튼 턱시도는 아닐 텐데.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결혼식을 치르지도 않을 것이고.

 

“뭔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니까요. 이 상황.”

 

“주인은 좀 더 기뻐하거라. 오늘은 신부에게 있어서 행복한 날이지 않는가?”

 

“나는 남자라고!”

 

턱시도를 입은 레시아가 볼륨감 넘치는 몸매가 다 드러난 상태로, 자신 있게 나를 신부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면, 지금 이 상황이 싫지는 않는다고 추측할 수 있다. 나중에 시기가 정해지면 내 쪽에서 결혼하자고 말을 할 준비는 해뒀을 터. 하지만 루니아 누나의 어처구니 없는 발언으로 모두 하얗게 산화되어버렸다.

 

“그보다 왜 나를 자꾸 신부라고 부르는 거에요? 내가 여장해서 그런가? 아니면 이곳 세계관은 정조가 역전 되었다는 잠수함패치라도 했나요? 적어도 시공간술사인 저에게 있어선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죠? 아무리 창조주라고 할 지라도 제멋대로 이 세상의 규칙이나 진리는 바꾸지 않아요.”

 

혹시나 해서 이 세상에 어떤 진리나 자연적인 면이 바뀌었는지, 한 번 쭉 훑어보았지만 전혀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시공간술사의 길을 걸어오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조금 늘어났으니 이럴 때라도 한 번 써먹어봐야지.

 

“아서라. 어떤 형식이든 주인은 짐의 신부가 되면 그만인 일이었다.”

 

“아 글쎄! 남자는 신랑이라고 몇 번을 말해!”

 

“허나, 짐은 마왕이니라. 짐 보다 위에 있을 수 있는 자는 없노라. 그것이 설령 짐을 사역하고 있는 주인일지라도, 왠지 주인이 신랑이라고 부르게 된다면 형식상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암묵적으로 짐이 주인을 따라야 할 것 같지 않은가?”

 

“사역마가 주인을 따르지 않아서 뭘 하려고요? 하긴 사역마로 소환했을 때는 수평관계로 소환을 했지만 결혼도 수평적인 관계에요. 가부장제는 옛날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뭔가 달라요!”

 

레시아는 나의 얼굴을 보면서 “대체 뭐가 불만인 것인가? 주인은?”이라고 답답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마스터는 어째서 지금 결혼 하는 것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인가요?”

 

하얀 턱시도를 입은 시나가 걸어와서 이야기를 했고, 혼란스러워진 내 머리를 억지로 정리하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야 당연히 지금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위험이 되는 존재가 나타나면, 그것부터 해결 하...으웁!”

 

시나의 입으로 인해 순식간에 입막음을 당했고 그에 맞춰 루니아 누나는 이와 같이 말했다.

 

“자. 신랑과 신부는 키스...어라? 벌써 여신님께서 하고 계시네요오. 아무리 신부가 예쁘고 참기 힘들어도 카메라를 찍을 각도는 줘야죠오!”

 

“이 비둘기 녀석! 당장 그만두지 못할까! 주인 조금만 기다리거라! 짐이 뇌가 녹아서 없어질만한 키스를 선사할 테니까!”

 

레시아의 키스는 올드 스파이스에서 나오는 거와 같은 건가? 뇌를 없애버리겠다니.

 

“파하아...마스터의 쓸 때 없는 입을 일시적이나마 막았습니다.”

 

“막는다는 행동에 있어서 전형적인 다른 방법도 있을 거 아니냐.”

 

“내 신랑인데...”

 

뒤에서 울적해진 루시피나의 모습은 안 봐도 눈에 선명하게 그려질 정도였다. 마리아와 카렌, 루나는 그저 관전만 하고 있었는데, 루나는 아이돌의 신분이기 때문에 참여할 수 없는 거고, 카렌은 내 세포로 만들어진 호문쿨루스이기 때문에. 마리아의 경우에는 은팔찌를 차는 위험감수를 하고 싶지 않아서라기 보단, 레시아의 견제로 올 수 없는 것뿐이었다.

 

“후후후. 짐의 차례로군. 주인이 살려달라고 빌 때까지...우읍! ”

 

레시아는 자신만만하게 내 앞으로 다가서다가 기습공격을 당하고는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진하게 이어져오는 뜨거운 숨결과 달콤한 감각은 역으로 레시아를 미치게 만들기 시작했는지, 나의 어깨를 붙잡은 손에 힘이 서서히 풀리고는 레시아를 지탱해주던 다리까지 풀려버렸다.

 

“방심했...우으으.”

 

다음은 루시피나였던가?

나는 고개를 돌리며 잘 세공 된 듯한 루비와 같은 붉은 눈과 마주했을 때. 뭔가 낌새가 수상하다고 판단한 루시피나는 서서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신랑? 잠깐만. 그 눈 뭔가 이상해. 마왕님이 단번에 쓰러질 정도면 지금 보통이 아니란 소리잖아?”

 

“뭐, 당연히 보통은 아니죠. 여태껏 당해온 것이 얼마인데. 필살기를 얼마 맞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어떻게 해야 되는 지는 잘 알게 되더라고요. 그럼 실례할게요.”

 

거의 초 근접거리인 상황에서 루시피나와 입을 맞추고 입 안으로 침투까지 했다. 키스를 당한 루시피나의 눈에는 황당함과 당혹감과 기묘함 등. 지금까지 벌어질 수 없는 것을 전부 경험하고 있다는 듯이 눈동자가 흔들리다가 이내, 레시아와 비슷한 반응으로 다리가 풀려서 털썩 주저 앉은 형식이 되었다.

 

“우리가 신랑을 너무 많이 괴롭혀서 신랑이 복수의 칼을 갈아왔...”

 

지금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것은 아마, 저기 관전하고 있던 루나와 마리아, 카렌 뿐이겠지. 마리아는 이미 공간을 도약해서 사라졌는지 오래고, 루나와 카렌은 기계식 골렘에 몸을 맡긴 체 푸른 하늘로 올라가서 달에 가는 듯 보였다.

 

“봄의 신부는 이렇게도 무섭군요오. 이거 많이 공부가 되었어요오. 그러면 오늘은 간의 결혼식 겸, 백장미의 촬영은 그만두도록 할까요오? 우후훗.”

 

-덥썩

 

“어라아? 카일? 누나의 어깨를 붙잡은 이유가 뭐에요오?”

 

느긋하게 웃고 있으면서도 루니아 누나의 어깨가 서서히 떨려오는 것을 감지하며 입을 열었다.

 

“어디 가요?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으음. 아! 맞다! 카일! 오늘은 제가 바쁜 약속이 있어서 나중에! 읍!”

 

바쁜 약속이 있건 없건 사람을 지금 사지로 몰아넣고 이런 꼴로 만들어 놓은 게 누군데? 절대적으로 나는 이 일에 있어서 다른 이들에게 복수를 하기 전까지는 분이 풀리지 않는 성격인지라, 이 바보 같은 혼돈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 루니아 누나의 어깨를 강하게 돌려서 내 쪽으로 바라보게 한 뒤에, 그대로 레시아가 혼절할 뻔한 키스를 집행했다. 어처구니 없게도 아이언 클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다른 행동을 취하는 것에도 집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하다니.

 

대략 5분정도 진행할 무렵. 루니아 누나는 땅바닥에 주저 앉고는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카일은...무서운 아이...”

 

얼굴에는 만족감으로 가득 차 있는 것만 빼면 집행은 성공한 모양이다.

이상한 형태이지만 복수는 전부 완료가 되었고, 간의 결혼식이라는 형식아래에 나는 레시아와 시나를 부부로 맞이했다고는 하지만, 그나마 멀쩡하게 일어서 있던 시나는 나에게 총총 걸어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마스터.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한들 바뀌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잡화점 멤버로 있을 때부터 가족처럼 지내왔잖아. 결혼에 관련된 거라면 내가 먼저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도 그거야. 지금 이렇게 간의 결혼식이든 뭐든 해봐도, 지금의 관계에서 더 특별해지는 것은 없어. 그만큼 우리는 서로 잘 지내왔던 것뿐이야. 결혼은 연인관계를 굳히는 접착제와 같은 것뿐이라고?”

 

“그래도 모두 마스터에게 함락당한 것은 변하지 않은 사실인 듯 합니다.”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는 아직까지 땅바닥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며, 이제서야 나는 후회하고 있었으니 아이언 클로를 사용해서 버릇을 고쳐놓을 걸. 괜히 다른 걸 사용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마스터의 키스능력은 마치 열풍참.”

 

“내 키스는 누굴 베어버리기 위해 존재하는 거냐? 아니잖아.”

 

그보다 이야기에 수록되지는 않았지만, 내가 반지를 건네주기 위해 릴리스의 영지를 직접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릴리스가 뭔가 한 것 같기도 하고...아니, 지금은 이 바보 같은 곳을 빠져나가서 하멀 씨를 만나야겠구나. 아공간에 손을 집어 넣어 내 옷을 꺼내고 탈의실에서 웨딩드레스를 어디서 빌려왔는지 모르겠지만, 깨끗하게 걸어놓은 뒤에 화장을 전부 지우고 남성용 옷으로 갈아 입었다. 하얀 티셔츠와 검은색의 가죽바지와 겉옷을 입은 상태로 나와, 일어나 있던 레시아에게 천천히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걸을 수는 있어요?”

 

“주인. 언제 색욕의 공작으로부터 능력을 받아온 것인가?”

 

화를 내지는 않고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보는 듯한 분위기였기에 나는 입을 열었다.

 

“저번에 제가 반지를 주러 갔을 때요. 릴리스가 제 반지에 사술을 걸어놓은 것 같아요.”

 

“그렇군. 릴리스 이 녀석. 그런 쓸 때 없는 일을 하다니. 이래서는 짐이 주인을 공략할 수 없지 않는가!”

 

“대체 뭐에 화를 내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슬슬 어린애 같은 이벤트도 끝났고 잡화점으로 잠깐 돌아가죠.”

 

그때 릴리스는 나에게 꼭 달라붙어서 “반지를 끼고 있으면 어떤 여자에게도 지지 않을 걸?”이라는 불길한 말을 남겼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의미였을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몽마의 여왕이라고는 하지만 서큐버스 퀸이라서 그런지 반지에 이런 사술을 걸을 줄이야.

 

잡화점에 돌아왔을 때는 루시피나가 아직까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베니는 그런 루시피나에게 놀아달라면서 고무가 마찰하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주변을 통통 튀고 있었다.

 

“카일. 집안에 들어옴. 인사함.”

 

“돌아왔어. 팔랑크스. 그나저나 무슨 일로 네가 지금 이 시간에 깨어있는 거야?”

 

거대한 몸집을 하고 있는 팔랑크스는 굵은 남성의 목소리를 내며, 붉은 안광을 번뜩이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일에게 변화가 생김. 마왕과 다른 차원에 있던 창세의 여신을 아내로 맞이함에 따라, 마기와 신성력이 누적되기 시작함.”

 

“뭐. 그 정도는 일도 아닌...잠깐만 뭐라고?”

 

마기와 신성력이 사람의 몸에서 누적된다는 터무니 없는 소리를 내가 방금 들은 것 같은데?

 

“이제 마계든 천계든 어디든지 부담 없이 이동할 수 있음. 카일 또 성장함.”

 

“아니. 사람의 몸으로 마기와 신성력이 누적되면 위험한 일이잖아?”

 

“괜찮음. 사람은 언젠가 죽음.”

 

“그건 괜찮은 게 아냐! 이 멍청한 고철 덩어리가!”

 

“하.하.하. 농담임. 마기와 신성력의 부작용이 없어졌다는 뜻임. 죽지 않음.”

 

사역마와의 페어링이 강화 되어서 그런 건가? 마나와 마기, 신성력이 한 몸에 다 담을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하다니.

 

“오! 주인이여! 정말 신기한 일이 자주 일어나는 듯 하다! 사람의 몸으로 3가지의 자원을 품는다는 그 자체는 실로 기적의 경지가 아닌가! 마검사로 알려진 영웅 또한 마나와 신성력밖에 담지 못했거늘!”

 

이제 내가 여신에게 기도를 드리면 강림하게 되고, 마기를 이용해서 마법을 사용하면 이른바 흑마법이 자연스럽게 나가는 건가? 아니. 3가지의 자원을 담을 수 있는 몸으로 되었다는 소리는, 시공간술사라는 직업에 한에서는 확실히 중요한 일이다.

 

나는 물체를 던지면서 외쳤다.

 

“감속.”

 

그리고 내가 던진 컵은 공중에서 유영하듯이 느긋하게 천천히 날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시공간술사의 길 중급부터는 자신이 의식하는 물체들의 시간을 조종하며, 자신의 신체를 과거로부터 백업할 수 있는 능력이 부여한다는 소리니까.

 

 

아직까지 나무늘보처럼 나아가고 있는 컵을 보며, 레시아와 시나는 충격을 받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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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 : 왕! 날아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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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티노스 잡화점 이야기

이야기 45 - 1

408

 

여성의 행복은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이라고 한다.

평민인 삶에서는 웨딩드레스는 입기 힘든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입는 웨딩드레스는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루니아가 잡화점에서 웨딩드레스를 권유하고 있는 모습을 본 카일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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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시간에 벌어진 일이라 손을 쓸 틈도 없이 강제로 붙잡혀서 끌려갔다. 내가 큰 죄를 지은 것이 있다고 한다면 다른 이들에게 반지를 주기 위해 하루를 꼬박 소비한 것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우정반지 비슷한 개념의 결속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물건이, 어느 사이에 결혼반지로 왜곡되어버린 현상이 나타나면서 지금 이 물품은 2층에 봉인해야 할지. 3층에 봉인해야 할지 정확히 알지도 못한 체,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한 상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말 그대로 정말 순식간에 일어나서 어디로 끌려가는지 알 수 없지만, 직감은 다양한 곳에서 짚어지기 마련이거니와, 애초에 기사단의 일은 내다 버리고 온 루니아 누나의 얼굴을 봤을 때부터 이미 종착지는 하나였다.

 

“오늘의 백장미 촬영장소는 결혼식장이에요오.”

 

“““오!”””

 

“‘오!’가 아니잖아! 항상 생각해온 거지만, 이 세트장은 누가 이렇게 호화롭게 꾸며놓은 거야!”

 

누군지 몰라도 매번 고생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으나, 아무튼 백장미의 촬영장이 결혼식장이라는 소리라면, 나더러 저렇게 커다란 웨딩드레스를 입으라는 소리인가? 머리 위에 하얀 꽃도 달고, 우아한 패턴과 넓은 치마폭을 지니고 있었으며, 솔직히 이게 왜 지금 이 시대에 존재하는지 아직까지 알 수 없었다. 미스터리이기도 하고 외계인이 이걸 건네주고 갔다는 전설도 있지만, 웨딩드레스가 지금 시대에 실존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은 다른 차원을 마음껏 떠돌아다닐 수 있는 검은 달의 여왕. 마리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매번 백장미를 응원해주는 귀부인들께서 아낌없이 자금과 인력을 보내서 설치하고, 공사를 한다고 합니다아. 아무튼 카일? 봄의 신부가 되어 마음껏 날 뛸 준비가 되었나요오?”

 

“어째서 제가 신부 역할인데요? 네? 적어도 결혼식장이라던가 그런 엄중한 분위기에서는 장난도 못 치겠네요. 그리...”

 

-콰앙!

 

“짐은 이 결혼 반대다!”

 

느닷없이 나타난 연보라 빛의 긴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는 성난 붉은 눈을 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한 눈에 띄는 카리스마를 몸에 두른 듯하지만, 얼굴을 자세히 보면 요염하고도 귀여운 외모로 언제나 당당하게 걸어 다니며, 나의 앞까지 도달하는 것은 수초도 걸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마왕.

 

“주인은 짐이 가져가도록 하겠노라!”

 

“뭘 가져가요! 누가 날 픽업하라고 했어요!”

 

“그야. 결혼식장의 해프닝은 신부를 가로채는 그런 것이 아니더냐?”

 

“남자가 웨딩드레스 입고 여자에게 가로채인다는 상황은 터무니 없이 잘못 되었거든요!”

 

“정조가 역전되면 가능하다.”

 

“여긴 역전이 안 되었으니까요!”

 

혹시나 정조가 역전된 세상에서 날아가게 된다면 거기선 내가 비정상인이겠지? 뭐 다른 의미로는 보이 크러쉬라고 할 건가?

 

“그 더러운 손 놓으세요. 마스터는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조용하면서도 불길이 치솟는 듯 살벌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빛을 내뿜으며 눈보다 더 깨끗한 소녀가 강림을 하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건 둘째치고 무표정한 시선은 신비롭기까지 하며, 권능을 사용하지 않아도 성스러운 모습이었으니, 손을 뻗는 것만으로도 모든 이의 시선을 빼앗을 정도.

 

물론 다음의 말을 듣는다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마스터는 제 신부이니 가로채지 마시죠. 냥캣.”

 

“흥! 거절한다!”

 

아직 웨딩드레스도 입지 않은 사람에게 정말 다양한 일을 벌이는구나. 게다가 이 모습으로는 웨딩드레스는 좀 무리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그보다 이거 대체 뭔가요? 시스루 레이스라고 불리던 그건가요?”

 

아직까지 입지 않았으니 나는 탈출할 타이밍을 잡고, 최대한 시간을 끌기 위해 발버둥울 쳤다. 레시아와 시나가 서로 싸우던 말던 무시하고 웨딩드레스의 구조를 보면서 순수하게 감탄을 했는데. 이걸 입은 잡화점의 멤버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대해서다.

 

물론 베니와 팔랑크스는 빼고.

특히 팔랑크스는 빼고.

 

다행이 글뿐이라서 시각적인 테러는 이루어지지 않으니 안심해도 된다.

 

“정말 아름답죠오? 이걸 입은 카일의 모습도 확실히 인기가 높을 거라고 생각해요오.”

 

“왜 이걸 제가 입는 거에요? 5월에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보낸 루테시아 씨에게나 보내세요.”

 

그러고 보니, 저번에 사기결혼을 한다는 의뢰인에게 사기를 쳐서 애들러 경과 결혼에 성공을 한 루테시아 씨는, 나에게 이번 년도 5월초에 결혼을 한다는 청첩장을 보냈다. 어차피 사고는 한번에 그것도 엄청 크게 일으키라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저질렀더니, 그나마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온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무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지금은 남의 사랑을 응원하고 축복해줄 때가 아니라, 지금 당장은 내가 살아야 하는 거니까 우선 저 멀리 붉은 머리를 한 여성과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잠깐 오라고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루시피나. 잠깐 오세요.”

 

“응? 나? 왜 그래? 신랑? 허리 부분이 안 맞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에요. 우선 루시피나가 실험 삼아 입어보라는 거죠.”

 

“내가?”

 

멀뚱멀뚱하게 나를 바라보는 붉은 빛의 눈은 웨딩드레스를 가까이에서 보며, 그 이상으로 눈이 더 커지는 것은 아닐지 괜히 걱정할 정도로 반짝이고 있었다.

 

“우선 공식적인 사이로는 루시피나와 저는 부부라면서요. 그럼 루시피나가 먼저 웨딩드레스를 입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의 눈을 바라본 루니아 누나는 황금빛의 머리를 검지손가락으로 돌돌 말면서, 잠깐 뜸을 들이는 표정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사실은...”

 

무엇 때문에 뜸을 들이는 것인지 잘 몰라도, 역시 웨딩드레스를 준비하는데 좀 오래 걸렸겠...

 

“웨딩드레스는 모두 각자의 개성이 넘치도록 준비해왔거든요오.”

 

네?

 

“파워 온! 백터맨 레시아!”

 

“아니. 레시아. 그 구호는 이상하잖아요? 마왕이 평화를 수호하는 전대물로 가면 어떻게 해요!”

 

“마스터. 저는 테일 온을 외치겠습니다.”

 

“시나? 너의 머리상태는 트윈테일이 아니거든?”

 

“문 크리스탈 파워!”

 

“루시피나! 그건 세일러 복을 입을 때 외치는 주문이거든요!”

 

각자 각기 다르게 개성 넘치는 주문을 입에 올리고 나서 각자 웨딩드레스라고 불릴만한 복장으로 입고 나왔다. 아니, 레시아만큼은 턱시도를 입고 나와서 더 놀랬지만...

 

“레시아?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입는 거라고요?”

 

“주인이 신부이지 않는가?”

 

저 미칠듯한 고정관념은 절대로 변한 적이 없구나.

 

“나는 남자라서 신랑이죠! 레시아가 신부고!”

 

“짐은 마왕이니라. 마왕의 반려는 웨딩드레스를 입어야 한다는 마계규칙이 존재한다.”

 

“그거 또 지어낸 거죠!”

 

“칫. 다시 입으면 되지 않는가? 주인도 정말 까다롭게 하는 재주가 있노라.”

 

그리고 레시아마저 순백의 드레스로 자신의 몸을 감싸며, 자신만만한 웃음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어떤가! 주인! 이런 모습을 하면 단번에 짐에게 시집을 오고 싶지 않는가?”

 

최근 나는 레시아에게 저런 말을 들으면서, 저 이상한 사고 방식을 때려부수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 시작했다. 아이언 클로를 하루에 2분간 사용하면 바뀔지도 모르겠지.

 

“매번 말하는 거지만 저는 남자라니까요. 도대체 시집이란 단어를 왜 저에게 사용하는 거에요. 그리고 레시아에게 있어서 웨딩드레스는 다리가 훤히 보일 정도의 미니스커트인가요?”

 

“짐의 웨딩드레스는 언제나 기동성과 방어력을 우선시하고 있다.”

 

“노출도에 비례해서 방어력은 올라가지 않아요.”

 

그리고는 레시아에게 가까이 가서 머리 장식의 모양을 고쳐주었다. 서로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있다는 걸 레시아가 의식하고 있는지, 얼굴에는 살며시 홍조를 띄며 “저기. 주인. 이제 괜찮다만?”이라고 중얼거렸다.

 

“예쁘네요.”

 

“뭣이?”

 

나의 한 마디에 레시아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경악했다. ‘내가 잘못된 소리를 내뱉었나?’라고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지금 주인은 짐이 예쁘다고 하였는가! 젤나가 맙소사!”

 

“마왕이 그렇게 놀라면 안 되죠.”

 

어디선가 첫 번째 자손을 실험중인 듯한 다른 생명체들을 외치는 레시아였다.

 

“드디어 주인이 짐에게 함락되는 순간이!”

 

“그냥 평범한 감상을 말했을 뿐인데 억지로 확대 해석하지 마요!”

 

레시아가 자기 혼자서 폭주를 하고 있는 사이에 시나는 내 허리부분을 살짝 잡아당겨서 뒤를 돌아보게 했다. 이건 웨딩드레스가 아니라 그저 하얀 색상의 고스로리복장일 뿐이잖아?

 

“마스터의 취향을 참고 삼아 생성했습니다.”

 

“내 취향이 고스로리라는 걸로 귀결하지 말아줄래?”

 

그래도 시나는 체형이 상대적으로 작으니까 오히려 이게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은 했으나, 애석하게도 그건 웨딩드레스가 아니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시나의 경우에는 그냥 무난하게 A라인으로 입는 것이 좋겠어. 마리아와 같이 말이지.”

 

“저도 성장하면 머메이드 라인을 입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합니다. 하지만, 마스터는 작은 체형이 더욱 더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해서, 일부러 이런 모습으로 있는 겁니다.”

 

“저기? 사역마가 주인을 범죄자로 만들면 안 되잖아?”

 

루시피나의 경우에는...

 

“세일러 복은 웨딩드레스가 아니라고요!”

 

정말 세일러복장에 티아라를 끼고 있었다.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명대사 말하지 마!”

 

결국 억지로라도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엠파이어 라인을 기초로 한 웨딩드레스를 입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야 당연히 내가 입을 웨딩드레스는 없을 테니까. 나는 자연스럽게 이 백장미를 찍는 지옥의 공간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계기까지 만들었지만, 의외로 이렇게 입혀놓고 보면 남들이 봐도 예뻐 보이기는 마찬가지. 사실상 나라도 “지금 당장 결혼하러 가자!”라고 이야기는 꺼내고 싶으나, 뒤에 있을 후폭풍이라던지 수라장을 생각해서라도 꺼내면 절대로 안 되는 단어였다.

 

“아아, 마왕님도 여신님도 루시피나도 정말 아름다워요오.”

 

“그렇네요. 그럼 전 이만...”

 

아무튼 이렇게 촬영을 하라고 놔두고 하멀 씨에게 찾아가서, 어제 아리엘을 데려가서 수사를 한 결과를 알려달라고 한 뒤에, 베니와 놀면서 낮잠이라도...

 

-덥썩.

 

“어딜 그리 급하게 가는가? 주인?”

“마스터도 입으셔야 합니다. 웨딩드레스.”

“신랑도 어서 입어보자? 응?”

“카일의 모습을 되살려서 개조를 해보았답니다아!”

 

“그만둬어어어어어!”

 

***

 

결국 반 강제로 입혀지고 말았다. 오랜만에 독백을 하면서 미래의 계획까지 세우고 자연스럽게 빠져나갔다고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이 사람들은 날 놔주지 않고 머메이드 라인으로 날 입혀놓았다.

 

“몸매가 잘 들어나는 라인은 역시 머메이드죠오?”

 

루니아 누나는 반사판을 들고 있는 루시피나에게 싸인을 보내가면서 이리저리 찍고 있었다. 애초에 짧은 시간 안에 모두 웨딩드레스에서 턱시도로 언제 갈아입었는지 모르겠지만, 마법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나서 정말 편리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왜 하나 같이 턱시도를 입고 온 거에요.”

 

“그야. 주인이 신부이지 않는가? 게다가 정조가 역전되면...”

 

“역전 된 적이 없다니까! 이 세상은!”

 

억지로 화장까지 당하고 검고 긴 생머리 가발을 쓴 나의 모습은, 우연히 루니아 누나가 평소에 자랑하고 다니는 카메라 렌즈로부터 그 처량한 몰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와! 주인님! 예뻐요!”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은 언제쯤 나오나요?”

“16호는 나왔으니까. 17호에서 볼 수 있어요오.”

“역시 카일은 그 모습이 진짜라고 첩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노라.”

 

달에서 언제 도착했는지 루나와 카렌, 마리아까지 대거 등장해서 나의 속을 긁어 다니고 있을 무렵. 다른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는 하멀 씨가 마치, 죽어가는 개를 바라보는 듯한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이러고 싶어서 입은 것이 아니라니까요? 아무튼 루니아 누나는 이제 곧 촬영이 다 끝난 시간이라고 판단하고 촬영 종료를 알리는 말을

 

“이제 결혼식 시작하죠오!”

 

하는 줄 알았는데 뭐라고요????????????

 

“녜?”

 

 

당황한 나의 물음은 허공 저편으로 사라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잡화점 멤버의 눈빛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가시화가 되어 맴도는 것을 직면한 그 순간,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을 탈출하기 위해 계획을 미리 짜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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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늘 개판이 되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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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hort sentimentally-beautified story of my childhood.

 방청소 하다 발견한 yearbook으로 인한 감상적 미화.

Tbt to 2003 only if I had the ability to time warp. 

This is a short sentimentally-beautified story of my childhood.

Taking a short look at this year book and what is written here made me laugh so much and realize that me and my friends were probably the most innocent and pure creatures in this world as kids. Not knowing a thing about stereotype nor prejudice led to having no concept of discrimination at all. I had the perfect condition of being a minority of that society-Being 1-2 year younger and also shorter than most of my friends, a female, with different race and nationality + unlike now I didn't speak any English by the time I just got there. 

However back by then I was more than welcomed, loved, respected and treated equally, had lots of great opportunities and new challenges. And of course sometimes I was hurt by some people but there were more people who cared about me with love and comforted me with smile. I still remember being hurt by what the conductor had told me at blue lake music camp but what I remember more is the figure of Amy, the counselor of our dorm, looking into my eyes which were almost full of tears and encouraging me with her warm words, beautiful smile, and hug. (I think she was a university student by then so perhaps she was much younger than my current age. But I still suck at cheering someone up.Probably it has something to do with my not-so-sweet personality) 

Now I've grown up to realize that what I had experienced was only some part and not everything of the nation and it is absolutely meaningless to idealize somewhere for that there is no place on earth to be called utopia, but still I'm thinking that this shocking experience of mine has become the significant reason of me always wanting to live outside of korea.Yet, a few experiences living abroad after that were never as easy as before because I've become an evil, also a.k.a grown up.Furthermore I am not praising certain nation but I 100% admit that society I belonged to for a short period was much more mature in understanding and respecting difference as well as accepting other cultures than the society I've been living. Anyway for the chaotic situation in Korea we are facing now I think it's not so bad for everyone to reminisce about our very innocent and pure hearted period-no maturity but also no discrimination. Simple as that. 

 방청소 하다 발견한 yearbook으로 인한 감상적 미화.

돌이켜보면 이시절의 나와 친구들은 다른 여느 어린이들처럼,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시절을 보내고있지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편견이 뭔지, 고정관념이 뭔지조차 알기전이었고 따라서 차별의 개념이라는것 또한 생기기 전의 나이였다. 나는 그사회의 소수자, 그리고 약자로 분류되기 좋은 조건들을 다 갖추고있었다. 여자, 유색인종, 외국인. 거기에 추가로 영어는 하나도할 줄 몰랐으며 같은 학년의 대부분의 친구들보다 내가 한두살어렸으며 키조차작은편에 속했다는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색의 피부와 눈동자를 지닌 이들은 영어도 못하는 이방인을 환영해주었다. 내가 떠듬떠듬 말할때는 귀기울여서 끝까지 들어주었고, 나의 의사를 존중해주었고, 호기심을 가져주었고, 사랑해주었으며 또 동등하게 대우해주었다. 새로운 도전을 항상 시도할수 있는 기회 또한 많았다. 물론 몇번의 상처는 있었으나 상처를 주는 사람보다 보듬어 주는 사람이 훨신 많았다. 아직도 나는 뮤직캠프에서 지휘자와 퍼스트플릇에게 한방먹고 울먹이던 나에게 눈을 맞추며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안아주던 카운슬러 에이미의 모습을 잊지못한다. (지금은 벌써 다섯살짜리 아들이 있지만 당시 에이미는 대학생이었으므로 지금의 나보다 훨신 어린나이였을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몇살은 더 많을 나이인 지금의 나는 사람을 달래는 방면에는 아직도 매우 서툴다. 물론 이것은 내가 태생부터 무뚝뚝하고 오그라드는것을 혐오하는 성격을 지닌탓도 있다..)

 십년이 넘게 지난 지금 나는 그때 내가 경험했던것이 그나라의 극히 일부일뿐 전부가 아니였음을 알게되었으며, 세상어디에도 유토피아따위는 없기때문에 어딘가를 이상화시키고 그곳만을 바라보는일이 얼마나 촌스럽고 쓸데없는일인가임을 깨닫게 된 씁쓸한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가끔 회상한다. 그나라를 찬양하는것은 절대 아니지만 '다름'에 대한 이해와 존중, 타문화에 대한 수용도가 훨신 높은 사회였던 사실이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던때를. 또한 확신한다. 이시절의 순수함은, 분명 나에게 역마살과 탈조선의 꿈을 심어준 너무나 크리티컬한 원인이었을거라고. 나는 이경험으로 인해 초딩때부터 탈조선을 꿈꾸는 시대를 앞서가는 어린이였다고..(?)+실제로 귀국하기싫다고 울며불며 엄마한테 홈스테이한다고 설쳤던 기억. 그러나 나와 달리 엄마는 그곳에서 이상하게 너무 힘이들었다고했는데, 그러고나서 열심히 올때마다 묵주를 돌리시던 외할머니로부터 우리가 살던집에 남미계의 귀신이 옷장속에 사는것을 목격했다는것을 들은것은 우리가 귀국한 후였다. 우리가 무서워할까봐 이걸 혼자만 보시고 비밀로 하신 할머니가 더 대단하시고 무섭다..뭐 어쨌든 그 후 정작 몇번의 탈조선은 순수함을 잃어버린 후라 그시절과는 많이 달랐다고한다. 가끔은 철도없고 차별도 없던 어린시절을 생각해보는것도 괜찮은 일 같다. 탈조선 헬조선 대신 대한민국 이라는 공식국가명칭만을 사용하게 되는 날들만이 지속되길바라며!